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2회 탄허와 장자 – 5
탄허스님이, 장자에 있는 부분들 가운데에서 각 편마다,
내7편마다 중요한 개념들을 하나 씩 뽑아서 제가 책을 썼습니다.
장자에서 각 편마다 “가장 중시하는 핵심종지가 뭐냐?” 라고 하는,
중점적으로 강의 하셨던 부분들을 뽑아서 표현을 했던 것이지요.
逍遙遊(소요유)에서는 “無己(무기)다.” 내가 없다고 하는 “無己다.” 그 다음에 齋物論(재물론)에서는 “物化(물화)다.” 만물이 “物化일체가 되는 경지다.” 養生主(양생주)에서는 “緣督(연독)이다.” 중도다. 그 다음에 人間世(인간세)에서는 “心齋(심재)다.” 마음 재계하는 법을 얘기한 것이다. 德充符(덕충부)에서는 “忘形(망형)이다.” “껍데기에 드러나 있는 바깥 모양을 잊어버려라. 라고 하는 것이 忘形이다.” 그 다음에 大宗師(대종사)에서는 “坐忘(좌망)이다.” 앉아서 잊어버린다. “참선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종지로 하는 것이 大宗師다.” 그 다음에 應帝王(응제왕)에서는 “渾沌(혼돈)이다.” 渾沌이라고 하는 것이 태초에 이 세상이 나누어지기 이전 소식. 이전 소식에 대한 얘기가 渾沌이거든요. |
탄허스님이 장자 내7편을 일곱 개로 나누어서 ↑저렇게 한 번 핵심
으로 요약을 해본 것입니다.
탄허스님이 내7편의 내용을 저렇게 일곱 가지로 키워드를 보면,
“불교와 완벽하게 회통이 된다.” 이렇게 해석을 하신겁니다.
逍遙遊라고 하는 것은 “無己다.” 그랬습니다.
탄허스님이 강의 하신 이 내용을 275쪽에 적어놨습니다.
逍遙遊라고 하는 것은 “노닌다.”는 것이지요.
조선시대에 소요태능선사도 있었잖아요?
“소요한다.”는 것은 아주 일을 다 해 마쳐서 무사 한 도인이 돼서
유유자적하게 소요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놀 遊자가 그냥 논다는 것이 아니라, “노닌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유유자적하게 자유자재로 세상을 노니는 것을 놀 遊자를 쓰는 겁니다.
탄허스님이 말씀을 이렇게 해놨습니다.
[소요유의 대의는 뭐냐? 至人(지인)은 無己(무기)다.
지극한 사람은 내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나’ 라는 것이 없고, 장자 전체에서 가장 높인 사람이 至人이다.
지극한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소요유 끝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神人(신인)은 無功(무공)하고, 聖人(성인)은 無名(무명)이다.]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데요.
“신묘한 사람은 功이 없고, 聖人은 이름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神人이나 聖人보다 더 높은 경지로,
“至人이다. 지극한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자 전체에 나온 최고의 경지에 해당하는 부분이 神人ㆍ聖人ㆍ至人
인데요. “이 가운데에서도 至人이 가장 대단한 단계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지요.
[神人은 無功하고ㆍ至人은 無己하고ㆍ聖人은 無名이다.] ←이렇게
장자 소요유 맨 뒤에 결론이 나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無己라고 하는, “내가 없다.”고 하는 것이 결론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장자가 자기 자신을 은근히 자랑하듯이 無己의 경지에
빗댑니다.
“내가 없다.”는 말이 중요한 말입니다.
내가 없다는 말과, 유교에서 말한 克己復禮(극기복례)의 克己와,
불교에서 말한 無我라고 하는 것이 결국 다른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
이지요.
동양학은 결국 자기의 문제입니다. 자기의 문제.
도교쪽에서는 自(자)자가 강하고요.
유교쪽에서는 己(기)자가 강합니다.
“己所不欲이어든 勿施於人(기소불욕물시어인)하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
己에 반대되는 것은 남[人]이 잖아요.
노장은요? 無爲自然(무위자연)이라든지, ←이런 표현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장자에는 “至人無己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自己”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 불교는 “無我” 잖아요.
결국 바깥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나에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있어서 自ㆍ己ㆍ我라고 하는 세계로 수렴
된다고 하는 것으로 동양학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일체유심조”라고 하는 것도 전부 自ㆍ己ㆍ我 ←여기에 관련된 것이지요.
바깥 세상이 나에게 작용하는 관념보다는,
내 마음속의 어떤 주체적인 생각들ㆍ사유들ㆍ마음 비우는 것ㆍ무심자리. ←이러한 것이 더 중요한 것인데요.
장자에는 “至人無己.” 라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탄허스님이 克己와 無我를
아주 비교를 잘 해놓고 있습니다.
克己ㆍ無我 ←이 부분이 탄허스님의 중요한 어떤 핵심인 것 같습니다.
“장자도 결국 불교의 無我사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소요유의 대의가 至人無己에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면서,
무슨 말씀을 했느냐?
[불교에서 이것을 비판하기를 至人은 無己라고 하니까,
己자를 몸 기자로만 봐서 몸이 없다고 했으니까 我空만 됐고,
法空은 안 됐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어.] 그럽니다.
[천만의 소리. 장자에서 말한 無己라는 것은,
人無我(인무아)ㆍ法無我. 근본이 전부 我가 되고,
법아도 我고 인아도 我기 때문에 철저히 無己가 될 것 같으면,
철저하게 자기가 없어진다. 그러면 我空ㆍ法空이 다 된다.]
‘아공이다. 법공이다. 두 가지가 다 텅 비어지는 것이다.’ 이 말이지요.
[無己라고 해서 我空만 됐다. ←이렇게 비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비판할 수는 없다.] ←이런 얘기를 탄허스님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無己라는 한 마디만 보면 불교 사상으로 볼 때,
我空만 된 소승의 경지만 아니냐?]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불교의 법무아ㆍ인무아. 법도 내가 없는 것이고,
인도 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는 것이 철저하게 없어지면
法空까지 없어지는 것이다.
장자의 無己를 불교의 我空ㆍ法空. 人無我ㆍ法無我까지 다 인정해
줄 수 있다.] 스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일심행 작성시간 24.12.27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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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一眞華 작성시간 24.12.27 逍遙遊의 大意[至人은 無己]다
神人은 無功이고, 聖人은 無名이다
고맙습니다 _()()()_ -
작성자마니주 작성시간 24.12.27 [장자의 핵심]
神人 : 無功.
聖人 : 無名
至人 : 無己
지극한 사람이 최고의 경지이다. 불교의 我空ㆍ法空, 人無我ㆍ法無我까지 다 텅 비웠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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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妙法樹 작성시간 24.12.27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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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묘심행 작성시간 24.12.30 종횡무진
넓으신 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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