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2회 – 7

작성자釋대원성|작성시간24.12.28|조회수59 목록 댓글 13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2회 탄허와 장자 – 7

 

 

       “무아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불교 공부를 하고 배워도 무아는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늘 아상에 시달리고 있고, 죽을 때까지 아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럴려면 극기라고 하는 것의 극공에 도달해야 된다.” ←이런

설명을 하시는 부분이 탄허스님의 장자 첫 편. 소요유에서 가장 중시하고

있었던 내용입니다.

   

   至人無己(지인무기)라고 하는 말을 克己(극기)와 無我(무아)로

함께 通釋(통석). 같이 회통해서 해석하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

이라는 말씀입니다 .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교재 276쪽을 보시면,

 

      [공자께서는 克己라고 그랬거든.

       논어에 克己復禮(극기복례)라는 말이 있는데,

       유교에서 주자가 자꾸 반발하면서

      성인의 말씀처럼 克己라고 해야되지, 장자처럼 無己라고 하면

       황당무게하다.]

주자가 그랬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탄허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유ㆍ불ㆍ선을 다 회통해서 보지 못할 때에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겠지만, 스스로 공부를 해서 다 회통해서 보니까

        주자의 비판이 좀 지나쳤다. 공자의 克己라는 말이나,

        장자의 無己라는 말이 둘이 있는 소리가 아니란 말이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學者(학자)들. 배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니까

          克己라는 표현을 썼고, 장자는 大人(대인)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다 보니까 無己라는 말을 쓰게 됐다.

        공자도 絶四(절사) 자한편에 毋意(무의), 毋必(무필), 毋固(무고),

          毋我(무아)다.] ←이렇게, “나는 네 가지를 끊었다.” ←이런 말을

다는 겁니다.

 

   공자의 말씀에 이런 것이 있지요. 

“나는 毋意ㆍ毋必ㆍ毋固ㆍ毋我다.” ←이렇게 했습니다.

여기에 “무아”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공자가 자한편에 “나는 네 가지를 끊었다. 絶四했다.” ←이렇게 얘기

하고 있거든요.

 

毋意 -- 뭔가 의도적으로 하는 것. 나는 그런 것 없다.

毋必 -- 기필하는 것 없다. 그것이 꼭 이루어져야 된다.

그것은 꼭 돼야 된다. 나는 그런 것 없다.

毋固 -- 나는 고의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없다.

毋我 -- ‘나’라는 것이 없다. ←이 네 가지를 끊었다.

 

       “공자가 극기만 얘기한 것이 아니라,

        무아라는 말을 썼지 않느냐?

        의도함도 없고ㆍ기필함도 없고ㆍ고집함도 없고ㆍ아도 없다고

        했지 않느냐? 무아와 무기와 극기가 결국은 통하는 말이다.”

이렇게 회통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공자 말씀에 이런 것이 있지요.

“無可無不可(무가무불가)다. 가한 것도 없고 가하지 아니한 것도 없다.

이것은 항상 절대적으로 되어야 된다.” ←이런 것 기필한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克己라고 하는 것이,

장자의 無己나 불교의 無我와 다르다고 했던 역대의 많은 비판들.

주자까지도 거론하면서,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

        유교에서 말하는 극기가 결국 장자에서 말한 至人無己요,
        제법무아다. 불교에서 말한 무아사상과 같다.

        결국은 유불선 3교의 종지가 내가 없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탄허스님의 회통론에 있어서 굉장히 독창적인 부분이고

요.

 

이런 부분들은 우리 현대인들이 꼭 한 번 보아야 됩니다.

특히 한국에 이런 주석이 있었다는 내용은 다른 책에는 잘 찾아보기 힘

든 장자의 주석입니다. 장자 첫 편 소요유에 있는 이 주석에서만 봐도,

스님이 얼마나 불교와 유교에 깊이 잠심해서 이런 주석을 하고 계신지?

그 다음에 스님은 어떻게든 태평양처럼 모든 사상과 종교를 하나로 엮어

서 근본이 같은 것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싶어했는지를 우리가 알 수 있습

니다.

 

   온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코로나라든지 자연재해ㆍ기상이변. 이런 것을 통해서,

각각의 나라가, 우리나라만의 이기심만 가지고는 세상을 더 이상 행복

하게 살 수 없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해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모든 사상과 종교가 근본이 하나라고 하는 탄허스님의

이런 사유! 이런 사상은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이고요.

 

‘다른 그 어떤 나라에서 나온 사상들 보다도 굉장히 귀하고 값진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뭔가 이질적이고 반대 되는 것. 서로 차이가 나는

것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그 근본이 같은 데에 있다. 진리는 하나다.’ 라고

하는 것! 그래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서로 수용하는 조화로운 그

런 마음을 내야할 필요가 있다.’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불교의 무아 사상을 가지고 유교의 극기와 노장의 무기라고 하는 사상을

회통했던 내용들을 오늘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어서 장자의 내7편 가운데 나머지 여섯 편들의 핵심 내용

들을 어떻게 불교ㆍ유교와 함께 회통해서 보셨는지? 그 내용들을 자세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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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일심행 | 작성시간 24.12.29 고맙습니다 _()()()_
  • 작성자惺牛大華 이삼연 | 작성시간 24.12.30 文光스님 - 韓國學(呑虛思想) - 22-7. 呑虛와 莊子.
  • 작성자묘심행 | 작성시간 25.01.01 모든 사상과 종교가 근본이 하나다.
    상대방을 이해, 인정, 수용하는 조화로운 마음 필요.
    _()()()_고맙습니다
  • 작성자여연행 | 작성시간 25.01.01 고맙습니다 _()()()_
  • 답댓글 작성자釋대원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1.02 고맙습니다.
    새해 만사형통 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이처럼 언제나 저를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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