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3회 한국학과 탄허학 – 10
우리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핵심적인 사상들을 공부하면서,
여기에서는 일제에 대한 민족정신이 생기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을 탄합하고 못살게 구는 일제에 대한 배일사상!
이런 것이 강력하게 나오셨나 봅니다. 그래서
민족사상이 스님의 역경 불사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일본에 좋은 불교 관련 주석본들이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스님은 번역하실 때에 하나도 참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번역본에 주석을 달 때, 한국에 좋은 주석이 있으면 반드시 사용하
셨습니다. 중국 주석본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 것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주석을 반드시 쓰셨습니다.
예를 들면 대승기신론 같은 것은,
탄허스님의 “대승기신론 소 별기” 원효스님의 주석을 강원 교재로
번역해서 쓰시기 시작하면서, 원효사상이 한국의 중심사상으로
대두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늘 보고 있는 텍스트책이 누구 걸 보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지지 않습니까?
조선조 500년에 주자학의 四書.
논어ㆍ맹자ㆍ대학ㆍ중용이라고 하는 주자학을 받아들임으로 인해서,
과거 시험을 전부 그걸로 봤으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나라에 성리학ㆍ주자학의 대가들이 많이 나오고,
교과서가 그렇게 되기 때문에 사회가 그렇게 형성되어 나갔듯이,
탄허스님이 어떤 譯經(역경)의 텍스트를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불교공부 하는 분들의 어떤 사상과 기초가 정립되게 마련인데요.
탄허스님은 “보천교의 2인자인 부친의 독립운동ㆍ일제탄합 등”
여기에서 민족정신이 생기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일제가 썼던 학문이나 주석서는 쓰지 않고,
한국에 사상이나 주석이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활용하셔서,
함허스님의 주석이나, 원효스님의 주석, 보조국사의
“보조법어”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우리의 근본 불교 정신으로
대두시키기 위해서 번역본으로 쓰셨다는 겁니다.
이러한 출가전의 어떤 학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친의 보천교라고 하는 사상에 유불선 3교 회통 사상이
이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학을 공부를 하셔도, 노ㆍ장학이라든지,
역학이라든지 이런 것을 깊이 공부하시게 되는 그런 바탕이 이미
10대 때 형성이 되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20대 초반에 딱 출가를 하실 때 지난 번에 말씀 드렸듯이,
한암선사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아주 기라성과 같은 큰 선사가 계셔
서 오대산 상원사에 공부를 하러 들어가셨습니다.
경허스님, 한암스님으로 내려오는 한국의 정통 법맥!
선승으로서의 갖추어야 될 최고의 학통! 법맥 속으로 뛰어들게
되신 것이지요.
그런데 처음에는요?
박한영스님 같은 아주 대단하신 강백스님에게 경전 공부를 하러
가라고 했을 때, 탄허스님에게 박한영스님이
“한암스님 계신 거기서 공부하면 된다. 여기 올 필요없다.” 그러
셨다고 그럽니다. 그러던 차제에 오대산 수도원이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오대산 수도원이 생겨서 강원도에 있는 모든 스님들이 모여서
상원사에 공부하는 그런 자리가 마련된 것이지요.
한암스님이 수도원에 가르침을 주실 때, 그때 강사로서 탄허스님이
여기에 중강으로, 20대 초반에 강사가 되셔서 이미 가르침을 하시기
시작하게 되면서 선원에서 한암스님 밑에서 경전들을 보신 겁니다.
그러니까 교학자에게,
‘강사스님에게 경전을 배우신 것이 아니라 선원에서 선사스님에게
경전을 배우셨던 그 이력이 스님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화엄경을 보든지, 금강경을 보든지 아니면 어록을 보든지 확실한
선승으로서의 그런 내용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스님은 경전을 보
시고, 불교를 파악을 하셨다.’ 이렇게 되겠습니다.
스님이 출가하시기 전과 출가하신 이후의 이런 이력을 보면서,
‘스님을 이미 한국학적인 민족종교ㆍ민족 사상이라고 하는 것에
흠뻑 한번 묻어주셨던 분이 있었다.’ 그 다음에
‘유교를 바탕으로 한 동양의 핵심을 가지고서 이미 한학에 대가가
되셔서 한문을 자유자재로 하시는 수준에서 출가를 하셨는데,
입산하자마자 한암스님이 묵언참선 부터 시키시기 시작하셔서
참선으로 인해서 불교의 근본 맛을 보시고, 모든 경전도 선적인
형태로 禪旨(선지)를 바탕으로 해서 경전을 보시게 되셨다.
역경 불사를 하실 때에도 반드시 핵심적인 禪旨를 넣어서 스님은
번역을 하셨다.’ 는 겁니다.
그래서 스님의 사상이 형성되어가는 과정들이 이렇게 禪적이고,
화엄도 선적인 화엄인 이통현장자의 화엄론을 중심으로 하게 됐던
것들이 전부 이런 배경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탄허스님의 본격적인 탄허사상을 보기 위한 그런 과정으
로서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이제 21세기는 한국이,
세계에 정수리를 드러내는 그런 때가 됐습니다.
앞으로 전 세계 사람이 한국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우리 한국의 정신문명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공부를 좀 할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한국학의 많은 영역 가운데,
탄허스님의 불교를 중심으로 한, 유불선 3교 회통과 동서문명을
회통한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 많은 분들이 한국의 정신문명을
이해를 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그런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탄허스님의 禪사상을 비롯해서,
화엄사상ㆍ회통사상들을 공부하는 그런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이번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