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4회 탄허스님의 禪사상 – 5
‘禪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의 근본으로 하나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라고 해도 이것은 30방망이를 맞아야 됩니다.
하나라고 해도 30방망이를 맞아야 된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
유교에서는 “一以貫之(일이관지)”라 그럽니다.
공자가 그러시잖아요?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로써 꿰뚫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다음에
불교에서는요? “萬法歸一(만법귀일)”이라 그럽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된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 다음에
도교에서는요? “得一이 萬事畢(득일만사필)이다.”그랬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 근본적인 하나만 딱 얻게 되면,
萬事가 끝난다.” 畢 = 마쳤다. ‘하나를 얻으면, 萬事를 마쳤다.’
유교 → 一以貫之!
불교 → 萬法歸一!
도교 → 得一萬事畢!
유교ㆍ불교ㆍ도교. 다 똑같이 하나를 중시하는 겁니다.
하나를 중시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을요?
“하나라고 해도 30방망이를 맞는다.” 그러면 一心에서 더 나아가면
空이라고 하는 것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라고 말로 하는 순간,
“開口卽錯(개구즉착)이다. 입을 열면 이미 그르쳤다.”
그래서 역학에도 一心에서 “無極(무극)이다.”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太極(태극)이라. 그래도 30방망이를 맞아야 돼.” 이렇게 된 겁니다.
그것을 “하나 있다.” 라고 하는 순간 이미 속는다는 겁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하나 있다.” 이러는 순간 이것은 이미 그르쳤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空이요. 노장에서 말한 무애사상이요.
역학에서 말한 무극의 사상이다.’ 이 말이지요.
이것은 이론적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空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無가 있다.
有가 있고 無가 있으면 無라고 하는 순간,
無라는 언어가 있고,
無라고 하는 생각이 있고,
有라고 하는 것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有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無라는 말이 하나 존재하려면 이미 세 개가 존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 “無다ㆍ空이다.” 얘기하려고 그러면 이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말 無心이 돼야 됩니다.
우리가 마음 수행을 해서 닦아야 空이니ㆍ無니ㆍ無極이니 하는 것과,
비로서 조우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마음을 수행한다는 형태가 반드시 우리의 과제상
으로 남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모두, “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空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입니다. 진짜 마음이 공해져 봐야 되고, 텅 비어져
봐야 되고, 마음이, 無心이 지속이 돼봐야 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모든 80000대장경에 나오는 모든 말은 敎지만,
一以貫之ㆍ萬法歸一ㆍ得一萬事畢.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一(하나)이라고 하는 세상을 알기 위해서 禪이라고 하는 형태가 비로소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인도 불교에 없었던 종파인
禪宗(선종)이 등장한 가장 큰 이유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