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5회 참선과 명상, 같은 점과 다른 점 – 6
그러면 이것을 탄허스님이 말씀하신 것에서 정의를 내리면서 항상
“언어 문자가 도달하지 못하는 생각 끊어진 자리! 이것이 禪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요.
여기에서 보시면 “명상”이라는 단어를 요즘 많이 쓰는데요.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80000대장경에는 나오지 않는 용어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명상이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그럼 이것이 어디서 나왔느냐?
우리가 흔히 말해서 禪이 서구 유럽에 넘어갔습니다.
넘어갔는데, Meditation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깊이 있는 사유.
그 다음에 內觀(내관). 철저하게 관한다.
그 다음에 기독교적인, 라틴어에서 나온 어떤 개념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서구 기독교에서 말하자면 성모 마리아라든지 이런 분,
하나님이라든지 깊이깊이 사유하고 관하는 어떤 그런 형태와 내밀
하게 인연을 맺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Meditation”이 뜻으로 보면 아주 깊이있는 생각!
deeply thinking 이라고 하는 그 개념을 가지고 일본에서 다시금
한자로 만들어서 “명상”이 된 겁니다.
깊이있는 사유ㆍ생각! 명상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일본에서 다시
만들어 들어온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80000대장경에 없지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禪”이라고 하면 불교적인 색체가 굉장히
강하지만, “명상”이라는 용어는 종교와 상관없이 Meditation이
전세계적으로 펼쳐진 용어입니다.
그래서 명상이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많이 쓰고 있거든요.
그런데 Meditation이라고 하는,
명상이라는 용어가 보편화 되어있지만, 앞에서 보셨지만
“禪”이라고 하는 그 정의에서 “정과 혜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도표에서도 명상은,
“집중명상 = 사마타와 분석명상 = 위빠사나”를 통합해서 하는
‘통합명상이다.’ ←이렇게 보고 있는 겁니다.
“명상에는 두 종류가 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 집중명상과 분석명상
혹은 통찰명상. ←이렇게 이 두 가지를 통합해서 얘기한다.” 그러면,
선도 그렇고 명상도 그렇고, 결국은 定과 慧!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통칭하는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마 두 번째 시간에 유교의 “中과 和.
희로애락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中이라고 하고, 그 일어났을
때의 마음이 절도에 딱 들어맞게 하는 것이 和다.” ←이것이 우리 불교
에서 말하는 대승기신론의 “진여문과 생멸문”이라고 하는 두 가지와,
“中과 和”라고 하는 것이 서로 거의 유배할 수 있겠다는 말씀을 드린 적
이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