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6회 頓悟漸修와 頓悟頓修 - 7
그러나 공부라고 하는 것은 어찌 됐든 간에, 묘각의 경지까지 와야만
성불인 것이지요.
이것은 누구나 다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頓悟頓修! 성철스님의 선 사상!
如來出現ㆍ寶王如來性起ㆍ初發心時便正覺 ←이것은 화엄의 교학
적인 사상이잖아요.
선 사상에 입각했을 때, 初發心時便正覺 ←이것이 문제가 있다고 지
적한 것은, “10주 초주가 돈오” 라고 인정을 해버리고 나면, 묘각이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돈오인데,
“돈오라는 것은 완벽하게의 뜻이 있다.”고 아까 그랬잖아요.
‘10주 초주가 완벽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부족하지 않느냐?
묘각까지 와야 완벽한 돈오가 되지 않느냐? 진정한 證悟가 될때만
正覺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탄허스님은,
“등각도 아직 묘각이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等覺은 깨달음과 같다.’ 이런 표현 아니냐는 것이지요?
깨달음과 같다는 것은 깨달음입니까? 아직 깨달음에 못 온겁니까?
깨달음에 아직 못 온것이지요.
“네가 남자와 같다. 네가 여자와 같다.” 이런 말은 아직까지는 남자다
여자다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等覺은 근처까지는 왔지만, 아직 완벽한 깨달음은 아니다.
등각경계는 아직까지 망상경계다.’
성철스님은 “妙覺에 와야 된다. 묘각에 와야 진정한 돈오고, 돈오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닦을 필요가 없는 頓修가 돼야 된다.” 이겁니다.
“돈수가 될 때만 돈오라고 붙일 수가 있다.”
여기서 “돈수”라고 했을 때는 갑자기라는 뜻도 있지만,
“완벽한 닦음”이겠지요.
그래서 이런 형태로 “돈수가 돼야 돈오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돈오돈수 론은 “묘각까지 오기 전 까지는 끝까지 수행을
해나가야 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놓고 본다면,
돈오돈수를 입각해서 공부를 한다면 부산이나 광주에 갈 때,
부산이나 광주 톨게이트 앞에 1미터가 부족해도 아직까지는 부산도
아니고 광주도 아니잖아요. 1미터가 부족해도요.
묘각에는 한 걸음이 부족해도 아직까지 완벽한 깨달음이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가야합니다.
돈오돈수를 강조하는 성철스님의 입장에서는,
“깨달음을 쉽게 인가해 줄 수는 없다. 부처님과 더불어서 조금도 흠결이
없을 만큼 완벽한 깨달음이라야 돈오했다고 얘기한다.”
‘돈오라고 하는 것은 돈오돈수 돼야 見性이라고 인정해줘야 된다.’ 이 말
이거든요. ‘證悟라야 된다.’
初發心住 ←‘이 정도의 경지에서 돈오를 견성이라고 얘기해선 안 된다.’
라는 어떤 엄격한 禪에 입각해서 하는 말씀인 겁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봐야 돼냐하면, 성철스님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공부가 끝났느냐? 안 끝났느냐를 점검하기 위한 방식인 것이지요.
그러나 보조국사나 한암스님이나 탄허스님이 돈오점수 사상을 제기했을
때는,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등각 ←이 길고 험한 공부의 길에서
돈오돈수! 마지막 證悟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시작도 못 할 사람들이 너무
나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얘기를 하느냐?
初發心 ←처음에 발심하는 것.
“發心과 畢竟(필경)이 二不別(이불별)이라.” 그럽니다.
“발심하는 것과 깨달음을 이룬 것의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
그러나 “如是二心先心難(여시이심선심난)이라. 이 두 가지 마음
가운데 발심의 마음이 더 어렵다.”
묘각에 들어서 마지막 공부 끝나는 것보다도 처음 발심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런 말씀이 있잖아요.
열반경에 나오는 말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런 구절을 들어서 발심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저는 성철스님의 입장을,
성철스님의 徹자를 써서 “徹的觀點(철적관점)이라.”고 그랬습니다.
‘철저하다.’ 이겁니다.
철두철미ㆍ철상철학. 공부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안 된다는 것을 주
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탄허스님의 입장에서는,
탄허스님의 이름에서 나온 “呑的觀點(탄적관점)이다.”
‘다 포함한다.’ ←이렇게 제가 비유를 들었습니다.
성철스님이 마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가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1미터만 부족해도 아직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위로 올라가는 향상의 그 세계를 제시한 것이라면,
돈오점수 사상은 탄허스님처럼 모든 것을 다 머금어서 태평양 바다처럼
모든 것을 다 받아 안아주는 포괄하는 겁니다.
‘어떤 형태로든 다 공부하러 들어와라.’
여러분 태평양 바다가 1000개의 강물이 오는 것을 취사를 합니까?
다 받아들이지요. 다 받아들이는데 그 가운데서 바다에 들어오는 순간
한 맛밖에 내지 않습니다. 一味(일미)! 짠맛 한 맛만 내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든 것을 회통해서 다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염불도 좋고ㆍ다라니도 좋고ㆍ경전도 좋고ㆍ독경도 좋고ㆍ절도 좋고ㆍ
위빠사나도 좋고ㆍ간화선도 좋고ㆍ호흡법도 좋고ㆍ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이 속에 다 들어와라.’ 그런데 첫 수행할 때 시작은 발심이 돼야 된다는 겁
니다. 발심이 되지 않으면 필경에 묘각자리는 올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화엄경에 보면 선재동자가 10信을 구족할 때,
처음에 문수보살을 만납니다. 문수보살을 만나서 보리심을 내지요.
확실하게 발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53선지식을 만나러 가서 첫 번째 10주 초주에 만나는
분이 우리가 많이 외우는 “덕운해운선주승” ←이렇게 나오잖아요.
처음에는 스님들 세 분을 만나러 갑니다.
덕운스님을 만나러 처음에 묘봉산에 갔더니 뭐 “하라.”고 하십니까?
“염불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염불해라.” 묘봉산에 덕운스님 만나러 갔을 때가 初發心住입니다.
초발심주 = 10주 초주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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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釋대원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7.29 만약 무비스님이 다짜고짜 60방망이를 주셨더라면,
저는 佛자만 들어도 벌벌 떨겁니다.
어르고 달래는 무비스님이 아버지이지 뭐유? -
작성자法雨性 작성시간 24.07.29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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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眞 覺 心 작성시간 24.07.30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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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묘심행 작성시간 24.08.03 _()()()_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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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惺牛大華 이삼연 작성시간 24.08.10 文光스님 – 呑虛思想 - 韓國學을 말하다. 6廻-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