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8회 看話禪과 위빠사나의 會通 - 3
여러분, 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이 진리는ㆍ도는 하나입니다.
1000년 전의 道 다르고 지금의 도 다르고 그러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확철대오를 하면 1000년 전에 그 어떤 말씀을 해놨더라도
척척 답이 나오고, 다 알게 되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기 위해서 역대조사의 살림살이들을
하나로 꿰어서 다 알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이 우리 한국 불교의 선종의 깊이 있는 우리의
전통입니다. 그래서 하나라도, ‘하나의 공안이라도 모르는 곳이 나오
면, 견성했다고 인증해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돈오돈수 사상이었던
것이지요.
‘하나도 답을 못하고 막히면 아직까지 재참해야 된다. 또 다시 공부
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 철저한 우리 수행 가풍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간화선의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참 난해하고 어려운
공부입니다. 이것 만이 공부라고 한다면, 공부를 처음 시작도 못 하고
중도 하차하는 분들이 많이 나올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탄허스님같은 분은 여기에서도 아주 넓은,
화엄경처럼 넓은 바다와 같은 수행의 그런 학설을 내놓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화두 들고 참선하시는,
간화선을 주장하는 분들은 “간화선이라야 확실하게 깨칠 수 있다.”고
말씀하게 마련인데요.
그것을 탄허스님은 “너무 간화선 지상주의에 취할 수는 없다. 모든
근기에 있는 대중들을 다 건져내는 것이 부처님의 불법이지, 간화선만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수행 법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회통선을 보여주
시기 시작합니다.
탄허스님은 간화선과, 요즘은 명상 meditation이라는 말이 활성화
되어서 많이 쓰이고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잘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간화선과 관법” 이라고 하는 표현을 쓰면서 법문을 해
놓으셨던 내용이 많습니다.
↑이것은 제가 스님의 법문테이프에서 간화선과 관법 내용들을 찾아서
이렇게 정리를 한 것입니다.
책에는 없고, 스님이 강의하셨던 흩어져 있던 내용들을 제가 다 정리를
해서 모은 겁니다.
스님이 이 관법! ‘명상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셨나?’ 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게 들어나겠지요.
먼저 “북방의 간화선과 남방의 위빠사나의 교량이 될만한 북방의
관법도 강조하셨다.” 우리 지금 흔히 말해서,
“우리 북방에서는 간화선을 중심으로 하고, 남방에서는 위빠사나를
중심으로 한다.” ←이렇게 해서 “사마타가 옳으냐? 위빠사나가 옳으
냐?” 혹시 이렇게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요.
탄허스님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북방에도 위빠사나가 있다. 우리 북방 불교에도 관법이 있다.” 그런
북방의 관법을 알게 되면, 당연히 지금 우리 현대의 수행법에 있어서도
남방의 관법, 위빠사나와 서로 소통을 하면서 서로 대화가 가능하게 되는
통로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듯이 탄허스님은,
“상근기는 간화선을 하고,
중근기는 관법을 하고,
하근기는 염불을 한다. 그러면 서로 다른 수행법을 하면, 공부를 하면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도착하는 곳은 똑같은 곳에 도착한다.”
상근기의 간화선만 더 많이 깨치고,
중근기는 중간쯤 깨치고,
하근기의 염불은 아주 낮은 수준으로 깨치는 그런 것이 아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