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8회 看話禪과 위빠사나의 會通 - 10
탄허스님은 참 특별한 주장을 많이 하셨는데요.
우리 스님들이 4년 동안 강원을 다니면 맨 마지막 4학년 때는,
“대교 반”이라고 그러고 화엄경을 공부합니다.
1학년 때는 “치문 반”이라고 해서 치문을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2학년ㆍ3학년 때는 보통 4집과 4교라는 것을 합니다.
4집은 선 사상에 관련된 겁니다.
서장ㆍ선요ㆍ절요ㆍ도서 ←이 네 가지 책을 보고요.
4교는요? 대승기신론ㆍ금강경ㆍ원각경ㆍ능엄경 ←이렇게 네 개를
보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탄허스님이 이 모든 경전들을,
강원의 교재들을 다 번역을 하셨는데요.
어떤 주장을 하셨나 하면,
“4교 4집을 5교 5집으로 만들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인가?’ 봤더니,
4교인, 금강경ㆍ능엄경ㆍ기신론ㆍ원각경 ←여기에 유마경을 넣자.
유마경이야말로 유마경에 나온 “불2 법문” 과 여기가 모두
“불국토” 라고 하는 사상. 그 다음에 거기에 거사님이 나오잖아요.
유마거사님 아닙니까?
그러니까 “스님이 아닌 거사지만 최고의 경지에,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대승불교의 꽃이 아니
겠느냐? 그러니 4교에 유마경을 넣어서 5교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그 다음에
4집인 禪에, 육조스님의 제자였던 영가 현각스님의
“영가 집을 넣어서 5집을 만들자.” 이런 주장을 하셨습니다.
“영가 집” 이라고 하는 책이 매우 특별합니다.
그 책에 차례가 열 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가 쭉~~ 나열을 해 봤거든요.
앞 부분에는 서론ㆍ본론ㆍ결론격에 해당 하는데요.
영가 현각스님은 어떤 분인가 하면 유마경을 보고 견처가 생겼고,
천태지자대사의 천태학을 공부하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옆의 도반 스님이 “육조스님 한테 우리가 한번 친견을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같이 갑니다. 말하자면 친구 따라 같이 간 것이지요.
도반 따라갔습니다.
갔다가 육조스님 하고 법거량을 하는데요.
척척 답이 나오는 겁니다. 아까 그랬잖습니까?
“육조스님도 쩔쩔맬 정도로 慧가 아주 밝았다.”
뭐 쩔쩔맨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아주 그냥 멋진 법거량을 한 것이거든
요. 그래서 육조스님이 당장에 인가를 해주실 정도였습니다.
그랬더니, 인가를 받고 스님이 그냥 바로 인사드리고 가려고 그럽니다.
“아휴~, 왜 그리 바쁜가? 하룻밤만 자고 가라.”
그래서 별명이 一宿覺(일숙각)이라고 그럽니다.
하룻밤 잠잘 숙자 깨칠 각자. ‘하룻밤 잠자고 간 도인이다.’
一宿覺이라고 하는 영가 현각스님이 지은 “선종 영가 집” 의 내용을
보면, 여러 가지 수행하는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 나와 있습니
다.
그리고 또 다른 영가 현각스님의 멋진 저작이 “증도가” 라는 것이 있
습니다. 7언으로 해서 쭉~~ 앞으로 詩로 길게 悟道頌(오도송)!
육조스님과 대담 이후에 지었다고 하는 悟道頌이 길게 되어있는 영가
현각스님의 증도가가, 우리가 신심명과 더불어 많이 외우는 그런 멋진
오도송 아닙니까?
영가 현각스님의 영가 집에 보면,
본론격에 해당 하는 중간의 내용에 보면, 사마타송ㆍ위빠사나송ㆍ
우필차송 ←이렇게 세 가지가 꼭 등장을 합니다.
사마타송 = 定. 위빠사나송 = 慧. 우필차는 中道법문입니다.
定과 慧를 같이 닦아야 된다면서, 영가 집 내용가운데 사마타 = 삼매.
마음을 고요하게 삼매로 들어가는 데는 가장 중요한 것이
惺惺寂寂(성성적적)이다. 마음을 또렷또렷하게, 생각을 또렷또렷하게
가지는 것 하고 寂寂. 고요하게 가지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망상은ㆍ모든 공부 수행의 장애는 졸립거나 딴 생각나거
나 이 두 가지입니다.
그것을 昏沈(혼침)과 掉擧(도거)라고 하지요.
졸릴 때는 惺惺해야 됩니다. 자꾸 딴생각이 일어날 때는 고요하는 寂寂
으로 가야됩니다.
삼매로 들어가서 일념이 지속이 되려고 하는 선정을 닦으려면 반드시
惺惺寂寂해야 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고요.
위빠사나라고 하는 것은 관법이지 않습니까?
관하는데, “境智冥一(경지명일)이라.”그랬거든요.
‘바깥에 있는 외부의 경계와 내 속에 알고 있는 나의 내면에 있는 지각.
이런 것이 그윽히 하나가 돼야된다.’
관 할 때 관하는 나, 주관과 관하는 대상이 따로 떨어져 있으면 선정
삼매로 들어가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관하는 나와, ‘능과 소가 한 덩어리가 돼야된다. 주관과 객관이
한 덩어리가 돼야된다.’ ←이것이 위빠사나의 핵심이라는 내용이
영가 집의 위빠사나송에 나옵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가 하나의 수행을 해도 결국에는,
하나는 定과 慧고, 하나는 止와 觀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것이 결국은 ‘雙融(쌍융)이다. 서로 융합되어있다. 융통되어있다.
사마타 속에 위빠사나가 있고, 위빠사나 속에 사마타가 있다. 서로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위빠사나를 열심히 공부를
하셔도 사마타가 그속에 있고, 사마타를 열심히 해도 그 속에 위빠사나가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우리 화두 참선으로 한 번 예를 들어봅시다.
예를 들면 마조의 1할에 대해서 화두를 들고,
‘어째서 1할을 했는가? 어째서 할을 했는가?’ 이렇게 화두를 들고 참선
하실 때,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다가 딴생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됩니까?
바로 알아차리고 딴생각으로 가지말고, 다시 화두를 들어야 되겠지요.
그것이 화두가 1념으로 지속이 되는 사마타,
선정의 세계로 쭉~~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이 일어나거나,
졸음이 일어났을 때 빨리 알아차려서 觀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반드시 定속에 慧가 있는 겁니다.
사마타 속에 위빠사나가 반드시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수행을 쭉~~ 해나가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