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9회 金剛經의 핵심, 空 - 3
부처님은 무조건 無我思想(무아사상)을 주장하셨습니다.
無我라고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겁니다.
“내” 라고 하는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것이지요.
無我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뜨만”이라고 하는 인도의 기본적인 “브라만교”부터 내려오는,
지금의 “힌두”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어떤 “내”가 있어서 윤회를
계속하고 있다는 생각이 잘못됐다고, 부처님께서는 설법을 해주신
것 아닙니까? 부처님의 핵심사상 아닙니까?
그것이 無我라고 하는 것은 인정은 하는데요.
20개 부파 가운데서 “독자부”라고 하는 부파에서는 “無我인데,
내가 없기는 없는데, 그래도 남과 구별되는 어떤 개별적인 나는
약간 있지않느냐?” ←이렇게 해서
‘無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있는 것 같다.’라고 하는
것으로 “뿌드갈라”라는 말을 가지고 설명을 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도 잘못 된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번역을 “個我(개아), 개별적인 나” 라는 겁니다.
無我라고 하는 것은 인정은 하는데요.
부처님 말씀이니까 인정은 하는데요. 그래도 ‘남하고 구분되는
뭔가가 있지 않겠나?’ 이런 식으로 보는 것이지요.
衆生相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생명체가 있어서,
각자 각자 생명을 갖인,
각자 각자가 감정을 가지고 마음을 가지고 있는 다른 어떤 존재자
로써 내가 있다고 하는 것을 중생이라고 번역했고요.
“지와”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영혼”을 말하는 겁니다.
‘죽어도 영원히 존재하는 어떤 영혼이 있다.’ ←이런 개념이 壽者相.
그러니까 영원히 존재한다는 개념에서 “수자상”이라고 해놓고,
‘오래 산다는 생각’ 이렇게 되어있는 것이지요.
오래 산다는 것은 뭐냐하면, 내가 이 몸뚱이를 버리고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라는 것이 영원히 있다.’
많은 종교에서 영혼을 이야기하고, 영생을 얘기하고요.
“영원히 어떤 좋은 천국 같은데 가서 영생을 누린다.”라고 했을 때,
그것을 누가 누리는 것이냐? 영혼이 있다는 개념이 있다는 것이지요.
4상의 해석 ↑이것을 보시면,
自我라고 하는 것은ㆍ我相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불멸한 실체로서의
나가 있다는 관념입니다. 영원한 내가 있다는 겁니다.
個我(개아)라고 하는 것ㆍ뿌드갈라 라고 하는 그것을 구마라집은,
“人相”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개별적 주체인 개체가 있다는 관념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이 무아인 것은 내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뭔가 개별적인 어떤 주체가 있다는 생각...
衆生은, 살아서 움직이는 어떤 생명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죽고 살고ㆍ죽고 살고 하면서 어떤 생명체가 있어서,
이것도 결국은 실체가 있다는 생각이 될 수밖에 없지요.
영혼은 생사를 초월해서 자기 동일성을 갖고 존속하는 목숨이 있다는
생각. 죽어도 죽지 않는 뭔가가 영원히 지속되는 영혼이 있다는 이런
생각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던 그 “無我”라고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보니까 계속해서,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하는 아상의
형태가 여러 가지로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我相ㆍ人相ㆍ衆生相ㆍ壽者相이라고 하는 ←이 네가지는요?
결국은 我相이라고 하는 하나에 수렴됩니다.
“四相은 곧 我相의 집결체다.”
我相ㆍ人相ㆍ衆生相ㆍ壽者相 ←이 네 가지의 다양한 생각들이 알고
보면, 我相이거든요. 그래서 금강경의 핵심은,
금강경의 핵심은 無我相이라는 것이지요.
無我想이고, 영원한 실체로서의 自性이 없다는 것!
그 다음에 그것이 空이라는 것!
그 다음에 이것이 반야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것이 앞으로 空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아셔야 될
내용이 아상이 없다는 겁니다. 無我라고 하는 것이지요.
三法印(3법인)에도 “諸法無我(제법무아)다.” 이랬습니다.
모든 존재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한 我가 없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