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엄경론 제27권 26) 십지품⑥ (8) 부동지(不動地) 장차 이 지(地)를 해석하는데 다섯 가지 문(門)은 앞서와 같다. 첫째, 지의 명목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 지를 어째서 부동지라 이름붙였는가? 이 지위의 보살이 세간에 처한 지혜에서 공용을 구하지 않고 신(神)으로써 사량하여 생각지도 않고 하지도 않으면서 지혜가 만유를 따라 통화(通化)하는 데 방소(方所)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부동지라 함을 밝힌 것이다. 둘째, 이 지의 행문(行門)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 지가 원바라밀(願波羅蜜)을 행하니, 이 지(地)의 지혜가 증가하여 지혜의 체(體)가 본래 청정하기에 원(願)으로써 행을 일으켜 더욱더 다시 자재롭게 하는 것이다. 만약 원으로써 지혜를 일으키지 않으면 오히려 2승과 같아질까 걱정하여 원으로써 방비함으로써 청정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 지에 이르고 나면, 법이 합당히 모든 부처의 3가(加)와 일곱 가지 권(勸)으로 본원을 염(念)케 해서 지혜 작용을 일으키므로 운(運)에 맡겨 능히 광대한 자비를 일으켜서 문득 능히 작위 없는 지혜와 자비를 성취하여 작용에 맡겨 원만함을 성취하는 것이다. 앞의 제7지는 세간에 들어간 가운데서 행이 있고 개발이 있음을 성취하지만, 이 지는 행이 있고 개발이 있는 가운데서 행이 없고 개발이 없음을 성취하는 것이니, 지혜 작용에 맡겨 대자비를 원만케 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나중의 선혜(善慧)에서 자재롭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운에 맡긴 지혜가 더욱 밝아서 작의(作意)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선재동자의 법을 나타냄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선재동자가 이 행 속에서 친견한 선지식이 이 도량 안에 있는 것은 3지가 이(理)에 칭합해 진(眞)에 들어가매 지혜가 작위 없음에 칭합해서 중의(中義)에 계합함을 밝히기 때문에 “이 도량 안에 있다”고 말한 것이니, 지혜가 중도에 계합함을 이름하여 중(中)이라 하고, 이(理)에 피차(彼此)와 아인(我人:나와 너)과 자타(自他)가 없음을 이름하여 도량이라 함을 밝힌 것이다. 이 선지식의 명호가 대원정진력구호일체중생(大願精進力救護一切衆生)인 것은 이 지위에서 비로소 능히 그 본원에 다다라 중생을 구원하는 것이 한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 이는 제7지에서 자비를 따라 지혜를 행하는 것은 성취하기 어렵지만 이 지위에서 지혜를 따라 자비를 행하여 사물을 제도함이 광대한 것은 성취하기 쉽기 때문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지혜의 체(體)가 두루 해서 시방을 대현할 때 중생의 광협(廣狹)을 따르는 것이며, 메아리가 응하듯이 무심하게 일체의 온갖 음과 합하는 것이며, 그 지혜가 사념(思念)이 없어서 등허공계(等虛空界)와 법계의 일체 중생이 즐기는 마음과 합함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아소(我所)가 없고 작자(作者)가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야천(夜天)의 명호가 대원정진력구호일체중생이다. 보현일체궁전마니왕장(普現一切宮殿摩尼王藏) 사자좌에 앉은 것은 대자비로 일체 중생을 널리 덮는 것이 궁(宮)이 되고, 지혜로 대현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전(殿)이 되며, 지혜가 오염과 청정이 없는 것이 마니(摩尼)가 되며, 오염과 청정에 따라 거처하여 공용이 없으면서도 중생을 널리 구원함을 이름하여 왕이라 함을 밝힌 것이다. 법계의 국토가 마니보배의 그물로 그 위를 가득 덮음을 널리 나타낸 것은 지혜의 경계가 널리 포함되어서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시설한 것을 이름하여 망(網)이라 하고, 지혜가 체(體)가 없어서 능히 온갖 법을 나타내면서도 작자(作者)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마니(摩尼)라 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지혜 작용을 잡아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과보의 의과(依果)가 인(因)을 관해 과(果)를 알고 과를 들어 인을 권함을 밝힌 것이며, 나아가 널리 경문에 설한 것과 같으니, 이는 이 8지 교문이 수행할 바의 법이며, 야천의 명호가 대원정진력인 것이 행하는 사람임을 밝힌 것이다. 넷째, 삼계 중에서 이 지(地)가 어떤 계(界)의 해탈을 얻는가를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는 사물을 이롭게 하는 지혜의 작용이 두루 함을 얻으면서도 항상 공용이 없이 해탈함을 밝힌 것이다. 초지부터 7지까지는 유위와 무위에 모두 배우고 닦음이 있지만, 이 8지는 두 행이 이미 종결됨을 밝힌 것이니, 예컨대 보살행 중의 이 지(地)는 공(功)의 마침이요, 모든 부처의 10력과 18불공법의 자재로움은 10지에 비로소 종결된다. 다섯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두 가지 뜻은 앞서와 같으니, 첫 번째로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에서 이 8지에 대해 대략 열한 단락의 장과(長科)로 나누겠다. 첫째, “이때 천왕과 천중(天衆)이” 이하 “일심으로 우러르면서 법을 듣고자 한다”에 이르기까지 22행의 게송은 모든 천(天)의 법을 듣고 공양을 일으켜서 부처의 신덕(神德)을 찬탄함을 밝힌 분이다. 둘째, “그때 해탈월” 이하 2행의 게송은 8지를 설해주길 청함을 밝힌 분이다. 셋째, “이때” 이하 한 단락 긴 행으로 10행의 경문은 제8지를 향해 닦아서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어감을 밝힌 분이다. 넷째, “불자야, 보살이 이 인(忍)을 성취해서” 이하 17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무공용에 들어감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불자야, 이 지(地)의 보살이” 이하 1단락 40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가 무공용에 들어가고 나니 모든 부처가 열 가지로써 권발(勸發)하고 가지(加持)함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 “불자야” 이하 한 단락 59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스스로의 지덕(智德)으로 온갖 법의 차별과 성괴(成壞)를 잘 알아서 동사(同事)로 중생을 섭수하는 것이 광대하고 자재로움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 “불자야” 이하 10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신(身)ㆍ명(命)ㆍ재(財)의 10자재(自在)에서 잘못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 “불자야” 이하 한 단락 6행 반의 경문은 부동지가 덕의 용(用)에 따라 열 가지 명칭을 갖춤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 “불자야, 보살이” 이하 한 단락 10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부처 경계에 들어가서 부처의 호념(護念)을 얻으며, 법왕ㆍ제석ㆍ사천왕과 역사(力士)가 따르고 모시면서 널리 마도(魔道)를 항복받아 부동지에 머묾을 밝힌 분이다. 열째, “불자야” 이하 한 단락 32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의 지견이 넓고 많음과 직분을 받음을 밝힌 분이다. 열한째, “7지에서 방편의 슬기를 닦아 다스리고” 이하 “억겁을 지나도록 능히 다하지 못한다”에 이르기까지 44행의 게송은 앞서의 법을 거듭 읊은 것이니, 경문에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두 번째로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처음 한 단락 긴 행의 10행 경문에서 “일체법이 허공성 같음에 들어가는 것을 이름하여 무생인(無生忍)을 얻는다”고 한 것은 초지부터 7지까지는 무생인을 따르는 것이요, 8지에야 비로소 무생인을 얻었다고 이름하는 것이니, 8지 이전은 유위와 무위에서 모두 깨우치고 관하고 닦고 배우는 것이 있고 이 8지에 이르러서 2행이 비로소 종결됨을 밝힌 것이다. 나머지 문장의 뜻은 경문에서 스스로 밝힌 것과 같다. 두 번째 단락 긴 행의 17행 경문을 네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보살이 이 인(忍)을 성취해서” 이하 “모두 다 지식(止息)한다”에 이르기까지 5행 반의 경문은 제8 부동지에 들어가니 일체의 상념을 여의고 적멸이 현전하는 것이 2승의 멸정(滅定)이 미치지 못할 바임을 밝힌 분이다. 둘째, “보살마하살” 이하 “두 행이 상행(相行)해서 다 현전치 못한다”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초지 이래로 방편의 공이 종결되어 공용이 없으매 두 행이 현전치 않음을 밝힌 분이다. 셋째, “불자야” 이하 “모두 현전치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범세(梵世)에 나매 욕계의 번뇌가 현전치 않는 비유를 들음을 밝힌 분이다. 넷째, “이 보살마하살” 이하 1행 반의 경문은 보살심ㆍ불심ㆍ보리심ㆍ열반심도 오히려 현전치 않음을 밝힌 분이다. 경문에서 “일체의 성문이나 벽지불이 미치지 못할 바이다”라고 한 것은 2승이 유(有)를 싫어하고 무(無)를 증득하기 때문에 유와 무, 두 행이 원만하매 작위 없는 공(功)에 맡겨서 모든 논쟁을 여의고 적멸이 현전함으로써 유와 무, 두 행의 공이 이미 원만하기 때문에 논쟁이 없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니, 5지는 세간의 것을 다 요달하고, 6지는 3공의 지혜가 종결되고, 7지는 대자비의 모든 행이 원만하고, 8지는 운(運)에 맡긴 공용 없는 지혜가 자재해서 대화(大化)로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작자(作者)가 없는 것이다. 경문에서 “비유컨대 비구가 신통(神通)을 구족해서 마음의 자재함을 얻는다”고 한 것은 작은 것을 기준으로 해서 큰 것을 대비한 것이니, 가령 비구는 삼계를 벗어난 정(定)을 얻어서 삼계의 마음이 없으며 다만 청정한 정력(定力)을 따라 삼계를 벗어난 묘하고 청정한 뜻으로써 신통을 화현하는데, 그 신통은 여섯 가지로서, 첫째 신통(身通)이며, 둘째 천이통(天耳通)이며, 여섯째 누진통(漏盡通)이다. 이 같은 2승의 6신통은 정토 보살과 명칭과 수효는 비슷하지만 다만 신통 작용의 넓고 좁음이 같지 않으니, 2승의 신통 변화는 타방 불토에 두루 함을 얻지 못하고 정토 보살의 신통은 타방 정토에 왕생함을 얻으며, 1승 보살의 신통은 시방 불찰과 중생찰(衆生刹)을 모두 털구멍에 용납한다. 3승은 누진통으로 증명을 삼지만 1승 보살은 비록 모든 욕망을 여의더라도 누진통으로 증명을 삼지 않으며, 3승의 6통은 모두 한량이 있지만 1승의 10통은 한량이 없으니, 아래의 「십통품」에서 스스로 밝힌 것과 같다. 가령 「정명경」에서는 “비록 6통을 행하더라도 누(漏)를 다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는 지혜가 자재로워서 모두 왕래가 있는 3승 신통의 소과(小果)와는 같지 않은 것으로서 3승의 경문에서 “내가 본토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1승 보살의 시통은 이지(理智)의 인(印)에 의거해서 성품이 스스로 두루 하여 허공계와 같기에 사물에 응해 시위(施爲)하는데 가고 옴이나 중심과 변두리의 성품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1승 보살은 누진통을 증명하지 않는 자로써 지혜 경계에 처하여 누성(漏性)과 무루(無漏)의 취하고 버림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은 만법의 성품이 스스로 법계이기 때문이고 지혜가 자재롭기 때문이고 중생을 다스리는 행이 두루 하기 때문이니, 이는 좋아하고 싫어함, 취하고 버림이 있는 3승과는 같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 이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비유한 것이다. 가령 아래에서 꿈으로 법을 비유한 것은 초지부터 7지까지는 배움이 있고 닦음이 있는 것이 마치 꿈에 지은 바를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고, 8지는 꿈이 이미 깬 것과 같기 때문에 만사가 모두 없어서 작용에 맡겨 지혜를 좇음으로써 지혜가 자재롭기에 지혜를 왕이라 호칭함을 밝힌 것이다. 나머지는 경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다. 세 번째, “불자야” 이하 한 단락 40행 반의 경문을 열두 단락으로 요약해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이 보살의 본원력 때문에” 이하 “이 인문(忍門)에서”에 이르기까지는 시방의 모든 부처가 가(加)를 나타내서 모든 여래의 18불공법을 닦기를 권한 분(分)이다. 둘째, “또 선남자야” 이하 “너는 반드시 이 같은 중생을 불쌍히 여기라”에 이르기까지는 모든 부처가 무생인을 얻어서 번뇌악각(煩惱惡覺)의 중생을 제도하길 염함을 권하고 찬탄한 분이다. 셋째, “또 선남자여, 너는 반드시 억념(憶念)하라” 이하 “지혜의 문”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모든 부처가 본래의 서원한 바를 염(念)해서 일체 중생을 크게 요익케 함을 권한 분이다. 넷째, “또 선남자야” 이하 “일체의 2승도 또한 무분별법을 능히 얻는다”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모든 부처가 법성에 머물기를 권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또 선남자야, 너는 우리의 신상(身相)을 관해서” 이하 “응당 이 일을 성취해야 한다”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모든 부처가 가권(加勸)해서 복덕의 지혜와 설법의 음성을 닦게 한 분이다. 여섯째, “또 선남자야” 이하 “너는 응당 수행해서 이 법을 성취해야 한다”에 이르기까지 3행 반의 경문은 모든 부처가 한량없는 법명(法明)을 닦길 권함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 “또 선남자야” 이하 “그 일을 통달한다”에 이르기까지 1행 반의 경문은 모든 부처가 갖가지 차별을 닦길 권해서 실답게 그 일을 통달케 함을 밝힌 문이다. 이상 20행 반의 경문에 모두 3가(加)와 7권(勸)이 있으니, 3가란 것은 첫째 모든 부처가 몸을 나타냄이며, 둘째 지혜를 주는 것이며, 셋째 “착하고 착하도다” 하고 칭찬하는 것과 정수리를 어루만지는 것이며, 7권이란 것은 앞의 과문(科文)에서 일곱 단락을 지은 것이 이에 해당된다. 여덟째, “부처이신 세존께서는 이 보살에게 무량한 지혜를 일으키는 문을 주어서” 이하 2행의 경문은 모든 부처의 7권 3가로써 차별업을 일으키게 함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 “불자야” 이하 “우파니사타분(優婆尼沙陀分)에도 단 하나 미치지 못한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지혜를 일으키는 문을 얻으매 이전의 초발심을 초월함이 비할 수 없음을 밝힌 분이다. 열째, “왜냐 하면” 이하 “부동법(不動法)이기 때문이다”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한량없는 신(身)ㆍ어(語)ㆍ의(意)의 업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열한째, “불자야” 이하 “설사 백 세를 거친다 해도 미칠 수 없다”에 이르기까지 3행의 경문은 배를 타고 바다에 이르는 것이 백 세를 거치는 것보다 빠르다고 비유함을 들음을 밝힌 분이다. 열두째, “불자야” 이하 “능히 미치지 못한다”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배를 타고서 이 공용이 없는 행해(行海)에 이름을 밝힌 분이다. 이 같은 권가(勸加)가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로부터 하나하나 지위의 첫머리에서 모든 부처가 다 설법자에게 권하여 찬탄하고 가지(加持)하여 법을 설하게 한 것이며, 이 8지에 이르러서 3가(加)와 7권(勸)은 스스로 수행하는 자가 스스로 공용 없음을 행해서 터득해 미친 바이기 때문에 이 지(地) 안에서는 법 그대로 지혜가 나타나 모든 부처의 가지법(加持法)이 상응하기에 일체 모든 부처의 광대한 법을 받음을 감당함을 밝힌 것이다. 가령 세간의 제왕이 덕(德)을 갖추지 곧 봉(鳳)이 상서롭고 기린이 감응하는 것이 바로 덕의 감응이듯이 이 8지의 공용 없는 지혜가 나타나니 시방 부처의 감응함이 바로 법 그대로로서 응당 그러함을 밝힌 것이다. 경문에서 “선남자야, 이 인(忍)이 첫째로서 모든 불법(佛法)을 따른다”는 것은 이 지(地)가 무생인을 얻은 것이 제6ㆍ7지 이전의 순인(順忍)과는 같지 않음을 밝힌 것이니, 이 인(忍)이 첫째로 모든 불법을 따른다는 것은 이 무생인이 모든 부처의 본체인 지성(智性)임을 밝힌 것이다. “선남자야, 우리가 소유한 십력무외(十力無畏)”란 것은 바로 처비처력(處非處力) 등과 4무외(無畏)가 이에 해당되며, “18불공(不共)의 모든 불법을 네가 지금 얻지 못했다”는 것은 여래의 자재로움으로 승진함을 권함으로써 무공용(無功用) 가운데 머물러 있게 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18불공이란, 첫째 잘못이 없는 것이며, 둘째 갑작스럽고 거친 음성이 없는 것이며, 셋째 염(念)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며, 넷째 정(定)하지 않은 마음이 없는 것이며, 다섯째 갖가지 상념이 없는 것이며, 여섯째 지욕(志欲)을 가려내지 못함이 없는 것이며, 일곱째 정진이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여덟째 염(念)이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아홉째 정(定)이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열째 혜(慧)가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열한째 해(解)가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열두째 일체의 업에서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열셋째 지혜를 따르면서 지혜를 굴리는 것을 전도(前導)로 삼는 것이며, 열넷째 일체 모든 어업(語業)이 지혜가 전도가 되서 지혜를 따라 구르는 것이며, 열다섯째 일체의 의업(意業)이 지혜가 전도가 되어서 지혜를 따라 구르는 것이며, 열여섯째 과거세(過去世)를 알아 집착이 없는 것이며, 열일곱째 미래세를 알아 집착이 없는 것이며, 열여덟째 현재세를 알아 집착이 없는 것이다. 4무외란 것은, 첫째 일체지가 무외이며, 둘째 누진(漏盡)이 무외이며, 셋째 장애의 길을 설함이 무외이며, 넷째 고(苦)를 멸진하는 길을 설함이 무외이다. 10력은 앞에서 이미 밝힌 것과 같다. 가령 “네가 비록 이 적멸의 해탈을 얻을지라도” 이하는 아직 얻지 못한 중생을 염(念)하길 권유하여 본원을 염하게 해서 널리 크게 요익케 하는 것이며, 이하 통틀어서 3기와 7권이 있는 것은 경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7권(勸)을 통해 한량없는 차별지의 업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가라분(歌羅分)이란 것은 한역하면 사람 몸의 털 하나를 쪼개서 백분의 1이 되는 것이며, 혹은 16분의 1이라고도 한다. 서역에서는 16분(分)이 1승(升)이 된다고 하니, 이른바 이 지(地)가 지혜를 일으켜서 승진하니 이전의 지법(地法)으로는 능히 조금이라도 비대(比對)하질 못하는 것이다. 우파니사타분이란 것에서 우파(優波)는 한역하면 근(根)이고 사타(沙陀)는 대(對)를 말하는 것인데, 이 지(地)의 지혜를 일으켜 사물을 이롭게 하는 광대함은 이전 지(地)에서 설사 백천억불가수(百千億不加數)의 겁을 거치면서 지은 이익이라도 또한 여기의 털끝만한 미미한 이익에도 비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니, 이전 지(地)는 이익이 열등하기 때문이며, 이 지(地)는 무한한 화신의 이익을 일으킴을 밝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경문에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이상 한 단락은 3가 7권으로 법칙을 안립함으로써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 등의 제8위에서 대세가 공동임을 밝힌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10주의 초심에서 일념에 도에 들어가 여래의 지혜 집안에 태어날 때 일체법이 모두 구족하지만, 그러나 법이 반드시 차제의 승진을 안립해서 모든 행에 걸리지 않는 것이며, 모든 처음 발심하는 자로 하여금 궤도(軌度)를 알게 하는 것이며, 초발심으로부터 대원을 일으키는 것이며, 대자비의 지혜로 하여금 법신과 더불어 가지런히 승진케 함을 밝힌 것이다. 가르침을 시설하는 것은 앞뒤가 있으나 배우는 자는 일시이니, 지혜가 미혹과 깨달음이 있어서 깊고 얕음이 스스로 드러날지언정 지혜 경계는 앞뒤가 있는 것이 아니다. 네 번째 단락의 59행 경문을 여덟 단락으로 요약해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보살이 이 제8지에 머물러서” 이하 “모두가 여실히 안다”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을 훌륭하고 교묘한 지혜로써 세간의 생성과 무너짐이 어떤 업의 인(因)을 말미암는가를 관함을 밝힌 분이다. 둘째, “또 지계(地界)의 작은 모습과 큰 모습을 알며” 이하 “차별상”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의 크고 작은 차별상을 밝힌 분이다. 셋째, “미진(微塵)의 미세한 모습을 알며” 이하 “미진의 차별지를 안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미진의 차별상을 앎을 밝힌 분이다. 넷째, “또 욕계와 색계의 생성과 무너짐을 알고” 이하 “삼계의 차별지를 관한다”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삼계의 생성과 무너짐의 모습을 앎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불자야, 이 보살이 다시 지혜의 밝음을 일으켜서” 이하 “그 몸을 다 나타낸다”에 이르기까지 7행 반의 경문은 중생신(衆生身)의 차별을 관하고 감응에 따라 몸을 나타냄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 “불자야” 이하 “몸을 나타내게 된다”에 이르기까지 12행의 경문은 몸을 나타내 일을 함께 함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 “불자야” 이하 “이 몸에 이 같은 형상을 나타낸다”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심상(心相)이 없는 데 머물러서 몸을 나타내는 것의 동별(同別)이 자재로움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 “이 보살이 중생의 집(集)을 알아서” 이하 “색신의 상(相)을 나타낸다”에 이르기까지 12행 반의 경문은 업보의 몸과 상(相)의 차별을 밝힌 분이다.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일체지를 관한다는 것은 근본지이며, 행하는 바 경계란 것은 차별지이니 근본지로부터 행하는 바를 분별하기 때문이다. 세간의 이루어지는 모습을 관한다는 것은 가령 세간의 처음 이루어짐과 사시(四時)와 인천(人天)과 지옥ㆍ축생ㆍ아귀 등의 이루어지는 모습과 무너지는 모습이 모두 업을 말미암아 이루어지며 또한 무너지는 것이라서 다 동류(同類)로 상응함이 일정치 않은데, 총체적으로는 옮기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 무시(無時) 속에서 수명이 긺을 보고 수명이 짦음을 보아서 늦고 빠른 것이니, 만류(萬類) 부동(不同)의 자성(自成)과 타괴(他壞), 혹은 동시(同時)가 모두 업을 따라 그러한 것이지 진유(眞有)가 아니기 때문이니, 이 같은 생성과 무너짐, 겁주(劫住)의 늦고 빠름, 시분(時分)의 증감이다. 이 8지 보살은 지계(地界)의 작은 모습과 큰 모습을 안다는 것에서 작은 모습은 1진(塵)이 해당되며, 큰 모습은 1진이 체(體)가 없어서 넓고 좁음이 다 평등하다고 앎을 밝힌 것이며, 또 한 털구멍 속에 광대한 세계와 작은 세계를 안립하여 청정과 더러움의 차별이 모두 그 속에 머물러서 미세무한(微細無限)하고 겹겹이 겹치면서도 걸림 없는 것이 인다라망(因陀羅網)과 같아서 시방이 서로 참여함을 이렇게 다 보는 것이다. 가령 수(水)ㆍ화(火)ㆍ풍계(風界)의 크고 작은 모습이란 것은, 우선 이 같은 세계를 「구사론」을 기준으로 해서 이르기를 “기세계(器世界)를 안립하는데 풍륜이 가장 밑에 있으니, 그 양이 넓어서 수(數)가 없으며 두께가 16억 유순이다. 다음 그 위의 수륜은 깊이가 11억 2만 3천4백과 2분의 1 유순인데, 아래 8억 유순은 몸이며 나머지는 응결해서 금(金)을 이루는 것이니, 이같은 금강제(金剛際) 위에 티끌을 쌓아 세계를 이루었다”고 하였으며, 「능가경」에서는 “진윤(津潤)의 망상이 능히 안팎의 수계(水界)를 낳고, 감능(堪能)의 망상은 능히 안팎의 화계(火界)를 낳고, 단절(斷截) 망상은 능히 안팎의 지계를 낳고, 표동(飄動) 망상은 능히 안팎의 풍계(風界)를 낳는다”고 하였으나, 이른바 애(愛)가 수계를 낳고 아소(我所)의 감능이 화계를 낳고, 능소(能所)의 두 집착이 능히 지계를 낳고, 사상(思想)의 피차가 능히 풍계를 낳는 것이다. 애심(愛心)이 멸진하니 물의 재앙이 미치지 않고, 아능(我能)과 아소(我所)가 멸진하니 불의 재앙이 미치지 않고, 사상이 멸진하니 바람의 재앙이 미치지 않아서 2선(禪)은 물의 재앙이 미치지 않고 3선은 불의 재앙이 미치지 않고, 4선은 바람의 재앙이 미치지 않아 사상(思想)이 끊어지기 때문에 안으로 들고 나가는 술이 없으니 밖으로는 바람의 재앙이 없고, 안으로 능소가 없으니 밖으로는 불의 재앙이 없고, 안으로 욕애(欲愛)가 없으니 밖으로는 물의 재앙이 없나니, 한결같이 색계 4선의 차례와 같다. 또 증상의 욕애를 쓰기 때문에 능히 화계를 낳는 것이니, 곧 연화보녀(蓮華寶女)가 지옥을 애심(愛心)으로 취했기 때문에 욕애가 증상해서 문득 열동주(熱銅柱) 등의 고(苦)를 이루어 열로써 태워버리니 기절하여 문득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하여 하루에 천 번 나고 만 번 죽음으로써 고(苦)가 끝이 없는 것이다. 이는 모두 애련(愛戀)을 말미암는 것으로서 마치 증상의 업화(業火)가 융통(融銅)과 맹화(猛火)와 업풍(業風) 등을 이루는 것과 같으니, 한결같이 지옥 등을 설한 경전과 같으며, 이 같은 업의 무너짐을 이 지위의 보살은 모두 능히 여실히 알아본다. 경문에서 “어떤 세계 속을 따라 있는 지ㆍ수ㆍ화ㆍ풍계의 제각각 약간의 미진”이란 것은 가령 작은 것을 쌓아 큰 것을 이룬 것이니, 곧 인허진(隣虛塵)과 투금진(透金塵)과 투동진(透銅塵)과 투철진(透鐵塵)과 극중진(隙中塵)과 토호진(兎毫塵)과 양모진(羊毛塵)과 기슬진(蟣虱塵)과 초자진(草子塵)과 광맥진(穬麥塵)이 모두 칠칠(七七)로 견줌으로써 분(分)ㆍ촌(寸)ㆍ척(尺)ㆍ주(肘)ㆍ궁(弓) 등의 양을 이루는 것이다. 아는 자는 범정(凡情)으로 아는 것이니 「구사론」에 설한 바와 같으며, 아울러 이 염부제 주지(洲地)의 동서남북의 넓고 좁음의 양도 또한 그 설과 같다. 가령 사람이나 축생 몸의 길고 짧음을 티끌을 쌓는 법으로써 칠칠(七七)로 견주어 사람이나 축생 몸의 티끌 수를 아는 것은 바로 범정의 양견(量見)이다. 이 지위의 보살은 세계의 국토와 사람이나 축생 등의 몸을 모두 지혜 눈으로 본다. 삼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짐을 아는 지혜라는 것은 삼계가 이루어지는 때〔時〕와 나아가 큰 모습과 작은 모습을 이 지위의 보살이 다 지혜의 힘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바라문 대중이란 것은 청정의 종자요, 찰리(刹利) 대중이란 것은 왕의 종자이며, 비사(毘舍) 대중이란 것은 상고(商估)의 종자이며, 수타(首陀) 대중이란 것은 농부의 종자이다. 경문에서 “이 보살이 중생신(衆生身)을 안다”고 한 것은 바로 업보신(業報身)이며, 국토신(國土身)이란 것은 혹은 중생신으로 국토를 삼으니, 가령 사람 몸 가운데에 8만 4천 호(戶)의 미물이 거처한다는 등이 이에 해당되며, 이하의 10신(身)은 모두 능히 동별(同別)이 자재로운 것이다. 이 보살이 중생의 집업신(集業身)을 안다는 것은 어떤 업과(業果)의 증상(增上)을 모아서 과보로 얻은 몸인가를 다 아는 것이며, 번뇌신이란 것은 삼계에 통하는 몸이며, 색신이란 것은 색계의 몸이며, 무색신이란 것은 무색계이니, 이 같은 것들의 몸의 크고 작은 모습을 지혜로써 능히 아는 것이다. 여래신에 열 가지 종류의 보리신(菩提身)이 있고 원신(願身)이 있음을 안다는 것은 보리심으로 원(願)을 일으켜 몸을 이루기 때문이며, 화신(化身)이란 것은 중생을 따라 나타나는 바이기 때문이며, 역지신(力持身)이란 것은 10역으로 유지하는 바이기 때문이며, 상호신(相好身)이란 것은 복(福)과 지혜의 만행(萬行)이 장엄하는 바이기 때문이며, 위세신(威勢身)이란 것은 모든 아만(我慢)을 꺾어버림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며, 의생신(意生身)이란 것은 중생의 정(情)이 욕구하는 바를 좇기 때문이며, 복덕신(福德身)이란 것은 장엄을 갖추기 때문이며, 법신이란 것은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지신(智身)이란 것은 가없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지신을 안다는 것은 자지(自智)와 타지(他智)를 깨닫기 때문이며, 선사량상(善思量相)이란 것은 지혜의 아는 바에 맡겨서 정식(情識)이 없기 때문이며, 선사량상(善思量相)이란 것은 지혜의 아는 바에 맡겨서 정식(情識)이 없기 때문이며, 여실결택상(如實決擇相)이란 것은 근본지로써 차별지를 일으켜 의상(義相)을 잘 가려내기 때문이며, 과행소섭상(果行所攝相)이란 것은 1승이 근본지의 과(果)로부터 보현의 원행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세간과 출세간의 차별상이란 것은 진(眞)과 속(俗)의 두 지혜가 다 현전하기 때문이며, 3승의 차별상이란 것은 2승은 적멸로 나아가고 보살은 정토에 태어나며 혹은 미혹을 남겨 중생을 윤택케 한다는 등의 일이며, 공상(共相)이란 것은 3승과 1승이 다 함께 일체무생(一切無生)의 상(相)인 것이며, 불공상(不共相)이란 것은 범부와 성인이 일체로서 여래지를 갖춘 것이며, 불공상은 미혹과 깨달음의 같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며, 출리상(出離相)이란 것은 3승이 이에 해당되며, 비출리상(非出離相)이란 것은 일체범부의 번뇌를 갖춘 자가 이에 해당되니, 1승은 이 두 가지 일이 없다. 유학상(有學相)이란 것은 7지 이전의 보살이 이에 해당되며, 무학상(無學相)이란 것은 8지 이후의 보살이 이에 해당된다. 법신의 평등상을 안다는 것은 만법이 자성이 없기 때문이며, 불괴상(不壞相)이란 것은 지혜가 과보로 얻은 바의 경계와 같은 것이며, 때에 따라 세속을 따르는 가명(假名)의 차별상이란 것은 바로 화신이 욕망을 즐기는 마음을 따르기 때문이며, 중생과 비중생 법의 차별상이란 것은 유정과 무정의 차별상이기 때문이며, 불법성승법(佛法聖僧法)의 차별상이란 것은 성문승과 연각승과 정토보살승과 일승보살승의 차별상을 부처도 또한 유(類)를 따라 아는 것이다. 허공신(虛空身)의 무량한 모습을 안다는 것은 법신으로 지혜를 일으켜서 행을 따라 감득(感得)한 바의 한량없는 색별(色別)이기 때문이며, 주변상(周邊相)이란 것은 법신(法身)과 지신(智身)이 두루 하니 행도 또한 두루 하기 때문에 그 색상도 또한 두루 한 것이며, 무형상(無形相)과 무이상(無異相)이란 것은 모두 다 동체(同體)이기 때문이며, 무변상(無邊相)이란 것은 법신의 지혜 경계가 정(情)의 한계가 아니기 때문이며, 색신의 모습을 현현한다는 것은 색신을 체(體)도 없고 의지함도 없는 지혜로 자재롭게 현현함을 밝히기 때문이다. 이상 앞서와 같은 과문(科文) 중 여덟 단락의 경문에서 깊고 은밀한 곳은 해석하고,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는 곳은 경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과 같으니, 그 대의는 이 8지 보살의 공용 없는 지혜로 미칠 바의 작용을 밝힌 것이다. 다섯 번째 단락 10행 반의 경문을 세 단락으로 요약해 나눈다. 첫째, “불자야” 이하 “법의 자재함”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가 이미 위와 같은 신지(身智)를 성취하여 이미 10자재(自在)를 얻음을 밝힌 분이다. 둘째, “이 10자재를 얻기 때문에” 이하 “능히 무너뜨릴 수 없는 지혜로운 자”에 이르기까지 1행 반의 경문은 네 가지 지혜의 자재를 얻음을 밝힌 분이다. 셋째, “이 보살” 이하 “일체 불법을 쌓는다”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잘못이 없는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업으로써 반야바라밀을 따라 능히 일체 불법을 모음을 밝힌 분이다. 경문에서 명자재(命自在)라고 한 것은 불생불멸하는 대지혜의 체(體) 위에서 일체 중생과 동일하게 생사를 받음이 자재롭기 때문이며, 심자재(心自在)란 것은 무념의 지혜를 따라 지은 바를 능히 변별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경문에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여섯 번째, 한 단락의 9행 반의 경문은 모두 한 단락이 되는데, “불자야, 보살이 이 지(地)에 머물러서” 이하 “모든 일 속에서 허물이나 잘못이 없다”에 이르기까지는 이 지위의 보살이 열 가지 힘에 머물게 됨을 밝힌 분이니,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는 대로이다. 일체종일체지(一切種一切智)라고 말한 것에서 일체종이란 것은 가행(加行)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지혜를 갖추어 닦음을 밝힌 것이며, 일체지란 것은 바로 근본지이다. 혹 일체지지(一切智智)라 말한 것은 근본지로부터 차별지를 일으킴을 밝힌 것이니, 그 뜻은 근본의 공용 없는 지혜로써 갖가지 많은 공용을 짓는데 지혜가 둘이 없음을 밝힌 것이며, 지혜가 현전하기 때문이란 것은 위와 같은 자재로운 지혜가 현전함을 밝힌 것이다. “이 보살” 이하는 공용이 없는 지혜의 힘을 얻기 때문에 능히 일체의 모든 행위를 나타내면서도 모든 행위 중에 허물이나 잘못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 지혜에 능소가 없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한 단락의 6행 반의 경문은 부동지가 열 가지 지명(地名)을 갖춤을 밝힌 분이니, 그 지(地)의 명칭과 의의는 경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과 같다. 일체 세간이 능히 측량할 수 없기 때문에 동진지(童眞地)라 이름붙인 것은 7지 이전은 행도 있고 개발도 있어서 세간지이지만, 이 8지는 공용 없는 지혜가 현전하고 이 시초의 동몽(童蒙)이 참지혜에 들어가기 때문에 동진지라 호칭함을 밝힌 것이다. 잘못이 없기 때문에 명칭이 생지(生地)가 된다는 것은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는 것이 이미 끊어지니 각과 관으로 찔러 상할 바가 없기 때문에 생지라 말하는 것이니, 공용 없는 지혜 속에 태어나 존재함을 밝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여덟 번째, 한 단락 10행 반의 경문을 두 단락으로 요약해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보살이 이 같은 지혜를 성취해서” 이하 “정각을 성취함을 보인다”에 이르기까지 5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부처 경계에 들어가 자력(自力)으로 지닌 바로 범천ㆍ제석ㆍ사왕(四王) 등을 따르면서 시봉함을 감응해 불러들임을 밝힌 분이다. 둘째, “불자야, 보살이 이처럼 1승의 회상에 들어가서” 이하 “부동지에 머문다”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1승의 공용 없는 회상에 들어가 신통을 얻어서 뜻대로 자재함을 밝힌 분이다. 항상 여래의 호념(護念)이 된다는 것은 모든 부처가 일체 중생과 선근을 끊은 무리들을 호념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 호념에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아직 발심하지 못한 고(苦)의 길을 가는 중생을 호념하는 것이며, 둘째 이미 발심한 자와 배움이 있고 개발이 있는 자를 호념하는 것이며, 셋째 공용 없음에 들어간 보살을 호념하여 부처의 자재함을 얻게 하는 것이다. 범천ㆍ제석ㆍ사천왕ㆍ금강 역사가 항상 따르면서 시위(侍衛)하는 것에도 또한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일체 중생을 시위하는 것이며, 둘째 이미 발심한 자를 시위하는 것이며, 셋째 이미 공용 없는 지혜에 이르는 것과 일체 모든 부처를 시위하는 것이다. 시위에도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대자비가 감싸서 기르는 시위이며, 둘째 지위에 들어간 보살은 저 법을 존경함으로써 시위하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몸에 대세력이 있어서 그 과보로 얻은 신통이란 것은 7지 이전은 닦아서 태어난 업보의 신통이라 자재로움을 얻지 못하지만, 이 지(地)의 공용 없는 지혜는 보업(報業)의 신통이 광대하고 자재로운 것이니, 7지 이전의 보업 신통은 선정과 원력에 의거해 태어난 것이요, 이 지(地)의 보업 신통은 작위 없는 지혜로 태어나서, 닦아서 짓는 것이 없다. 대광명을 놓는다는 것은 지은 장애가 없어지기 때문에 광명을 놓아 스스로 응하는 것이며, 걸림 없는 법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모든 지음이 이미 없어졌기 때문에 지혜에 맡겨서 걸림이 없는 것이다. 나머지는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아홉 번째, 한 단락 32행의 경문은 네 단락으로 요약해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이하 “지혜의 문을 능히 잘 열어서 넓힐 수 있다”에 이르기까지 13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부처를 보는 것의 넓고 많음과 진금(眞金)으로 보장엄(寶莊嚴)을 다스려 짓는 비유를 듦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 “불자야” 이하 “궁진(窮盡)할 수 없다”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널리 광명을 놓는 것과 행하는 바의 행인 원바라밀의 증상함을 밝힌 분이다. 셋째, “불자야” 이하 “일체지지에 의지하는 자”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직분을 받는 것과 모든 바라밀ㆍ4섭법ㆍ4무량을 행하는 것이 삼보를 여의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넷째, “이 보살” 이하 5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공용 없는 지혜로써 정진력을 일으켜 얻은 삼매와 원력의 구하는 바로써 보살의 권속이 넓고 많음을 나타내 보임을 밝힌 분이다. 열 번째 단락 가운데 42행의 게송은 앞서의 법을 거듭 읊은 것이니, 경문에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9) 선혜지(善慧地)① 장차 이 지(地)를 해석하는데 다섯 문은 앞서와 같다. 첫째, 지(地)의 명목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 지(地)가 어째서 그 명칭이 선혜지인가? 이 제9지의 행이 10주(住) 중 제9 법왕자주(法王子住)와 같아서 매양 5위 중 제9위와 나란히 법사위(法師位)와 같은 것이니, 온갖 법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명칭이 선혜지다. 둘째, 이 지가 어떤 행문을 닦는가를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 지(地)는 역바라밀(力波羅蜜)을 닦는 것으로 주(主)를 삼고 나머지 아홉은 반(伴)이 된다. 셋째,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냄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선재동자가 염부제에 있을 때 하나의 원림(園林)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남비니(嵐毘尼)요, 어떤 신을 보았는데 그 이름이 묘덕원만(妙德圓滿)이었다. 이 염부제란 것은 바로 이 주(洲)의 숲 명칭이니, 이 주(洲)가 숲을 인(因)해서 명칭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지위가 지혜로 가르침을 시설하는 것이 마치 숲이 광대하게 그늘을 드리우는 것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또 그 가운데 원림이 있다고 말한 것은 지혜가 중중무진(重重無盡)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남비니임을 밝힌 것이다. 혹은 유미니(流彌尼)라고도 하는데, 니(尼)란 여음(女音)이니, 유미니(流彌尼)란 낙승원광(樂勝圓光)이요, 이 선혜지의 지혜의 법락(法樂)과 무구(無垢)의 원광을 밝힌 것이다. 즉 선혜(善慧)의 원광으로 번뇌를 타파해서 즐거움을 얻게 하기 때문에 신의 명칭이 묘덕원만임을 밝힌 것이니, 법사위에서 묘한 슬기가 원만함을 밝힌 것이다. 보수장엄누각(寶樹莊嚴樓閣)에 머문다는 것에서 보수(寶樹)란 법사의 행이요, 누각이란 것은 지혜가 고원하여 겹겹이 멀리 비추면서 걸림 없음을 밝힌 것이니, 온갖 행으로 지혜를 장엄하여 모든 가르침을 잘 설함으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신복(信伏)케 함을 밝힌 것이다. 이는 법사(法師)의 해(解)와 행이 구족한 것이다. 넷째, 이 지(地)가 삼계에서 어떤 해탈을 얻는가를 밝힌다는 것은 지혜의 원만한 해탈을 얻는 것이다. 다섯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에서 두 가지 뜻은 앞서와 같다. 첫째,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으니, 이 선혜지를 일곱 단락으로 장과한다. 첫 번째, “이 보살이 8지를 설할 때” 이하 26행의 게송은 이전 지(地)의 법을 듣고 대중이 공양을 일으켜 칭찬하는 것과 제9지 법문을 설해주길 청함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 단락 긴 행의 62행 반의 경문은 9지를 향해서 수행해 들어가 9지의 마음에 바르게 머무르니 모든 법의 차별을 앎을 밝힌 분이다. 세 번째 단락 긴 행의 36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대법사가 되어서 4무애지로써 일체 법문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네 번째 단락 긴 행의 28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대법사가 되어서 백만억의 불가설총지문(不可說摠持門)을 얻어서 뜻에 따라 자재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 번째 단락 긴 행의 16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하나의 음성으로 무한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어려움을 들으니 그의 바라는 바에 따라 모두 환희케 함을 밝힌 분이다. 여섯 번째 한 단락 긴 행의 29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부처를 보는 것의 넓고 많음과 공양하여 받드는 일과 아울러 스스로 직분을 받음을 밝힌 분이다. 일곱 번째 한 단락의 48행 게송은 앞서의 법을 거듭 읊은 분이다. 둘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26행의 게송 중에서 다시 두 단락이 있으니, 먼저 25행의 게송은 이전 지(地)를 듣고서 대중이 환희하면서 공양을 일으켜 법을 찬탄한 분이며, 나중 1행의 게송은 나중의 지(地)를 청한 분이니, 이 두 단락의 게송은 그 중의 문장 뜻이 게송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과 같다. 두 번째 단락 긴 행의 62행 반의 경문은 그 뜻을 열네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이때” 이하 “제9 선혜지”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제9지를 향해 들어가는 분이다. 둘째, “불자야” 이하 “무위의 법행(法行)”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제9지에 머물러서 일체 중생의 열 가지 행하는 바의 법을 앎을 밝힌 분이다. 셋째, “이 보살이 이 지혜로써” 이하 “삼취조림(三娶稠林)”에 이르기까지 3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일체 중생의 열한 가지 조림을 앎을 밝힌 분이다. 넷째, “이 보살이 실답게 아니” 이하 “모두가 실답게 안다”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열 가지 상(相)의 차별을 통달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또 모든 번뇌의 갖가지 상을 아니” 이하 “8만 4천을 실답게 안다”에 이르기까지 4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8만 4천 번뇌의 상(相)을 실답게 앎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 “또 모든 업의 갖가지 상을 아니” 이하 “8만 4천을 다 실답게 안다”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업의 갖가지 상(相)과 나아가 8만 4천을 앎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 “또 모든 근(根)의 연중승상(軟中勝相)을 아니” 이하 “나아가 8만 4천을 다 실답게 안다”에 이르기까지 4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모든 근(根)의 차별상을 앎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 “또 모든 해(解)를 안다”의 1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모든 해(解)의 차별과 나아가 8만 4천을 앎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 “또 모든 수면(睡眠)의 갖가지 상(相)을 아니” 이하 “오직 성도(聖道)로써 뽑아내는 상이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수면의 갖가지 상을 앎을 밝힌 분이다. 열째, “또 생(生)을 받는 갖가지 상을 아니” 이하 “망령되이 삼계를 벗어난다 말하면서 탐착하여 구하는 상이다”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생을 받는 갖가지 상을 앎을 밝힌 분이다. 열한째, “또 습기(習氣)의 갖가지 상을 아니” 이하 “여래의 훈습상”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습기의 갖가지 상을 앎을 밝힌 분이다. 열두째, “또 중생의 정정(正定)을 아니” 이하 “둘을 함께 버리는 부정상(不定相)”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정(定)의 바르고 삿됨을 앎을 밝힌 분이다. 열셋째, “불자야” 이하 “해탈을 얻게 한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이상 열두 단락에 있는 차별의 모든 법을 앎을 한꺼번에 매듭지음을 밝힌 분이다. 열넷째, “불자야, 이 보살” 이하 4행 반의 경문은 사승법(四乘法)으로 근기에 따라 이익을 얻게 함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 단락 긴 행의 62행1)경문을 열네 단락으로 나눈 것과 또 처음 한 단락 6행 반의 경문으로부터 경문에서 “이때 금강장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고하기를” 이하 6행 반의 경문을 제9지를 향해 닦는 것인데, “이 같은 한량없는 지혜로써 사랑하고 관찰하여 다시 더욱 뛰어난 적멸의 해탈을 구하고자 한다”는 것은 제8지에서 이지(理智)의 공용 없음에 들어가 여래의 불과인 10력과 4무외의 대용적멸(大用寂滅)한 공용 없음에 들어가서 승진함을 밝힌 분이다. “다시 여래의 지혜를 닦아 익힌다”는 것은 8ㆍ9지를 닦으면서도 부처의 공용에 자재롭지 못함을 밝히기 때문이다. “여래의 비밀법에 들어간다”라는 것은 사랑하고 닦아 익혀 아는 바를 초과해서 염(念)을 짓지 않고 만유에 널리 응하여 쉼이 없기 때문이다. 불사의(不思義) 대지혜 성품을 관찰한다는 것은 바로 근본보광명대지혜(根本普光明大智)인데, 성품이란 것은 지혜의 체(體)를 밝힌 것이니 성품이 의지하거나 머묾이 없어서 근(根)과 물(物)을 대해 대용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모든 다라니를 청정케 하는 삼매문이란 것은 의지하거나 머묾이 없는 지혜로 널리 사물에 응해서 대용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총지(摠持)를 바로 받아들이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신통을 갖췄다는 것은 지혜가 근(根)에 따라 응하는 것을 신(神)이라 칭하고 가지 않으면서도 체(體)가 시방에 두루 한 것을 통(通)이라 칭하는 것이며, 또 지혜가 머묾이 없는 것을 신이라 칭하고 자타와 더불어 지견(知見)이 가지런함을 통이라 칭하는 것이며, 또 지혜의 성품이 대공(大功)을 갖추면서도 형상이 없음을 신이라 칭하고, 자성이 없으면서도 온갖 앎을 갖춘 것을 통이라 칭하는 것이며, 또 지견을 갖추었으면서도 생사가 없는 것을 신이라 칭하고 법계와 더불어 하나〔一〕와 많음〔多〕이 같음을 통이라 칭하는 것이다. 이하는 경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다. 이상 6행 반의 경문은 제9지를 향해 닦는 것이다. 두 번째 한 단락 4행의 경문은 제9지에 머무는 분(分)인데, 경문에서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선혜지에 머물러서 선(善)과 불선(不善)과 무기(無記)의 법행을 실답게 안다”고 한 것은 이 지위가 대법사가 되어서 일체 중생심이 행하는 바의 선ㆍ불선의 경계를 잘 아는 것과 아울러 선도 불선도 짓지 않는 것을 무기라 칭함을 다 앎을 밝힌 것이다. 가령 불선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자성과 상응과 인발(引發)과 승의(勝義)며, 선은 열세 가지가 있으니 지성과 상응(相應)과 수축(隨逐)과 발기(發起)와 제1의생(第一義生)과 방편의 현전을 얻는 것과 공양과 요익(饒益)과 인섭(引攝)과 대치(對治)와 정(靜)과 등류(等流)와 적정(寂靜)이며, 무기는 두 가지가 있으니 여덟 가지 식(識) 중 눈ㆍ귀 등 다섯 가지 식은 무부무기(無覆無記)이며, 여섯 번째인 의식은 유부무기(有覆無記)이며, 일곱 번째인 집식(執識)은 유부무기이며, 여덟 번째인 종자(種子)는 그 명칭이 장식(藏識)으로서 무부무기이지만 다만 집식과 더불어 유루(有漏)의 선한 종자를 성취해 내세에 태어나는 인(因)을 짓는 것이니, 마치 그릇에 사물의 종자를 담는 것과 같다. 또 네 가지 무기가 있으니, 위의(威儀)와 공교(工巧)와 변화(變化)와 이숙(異熟)이다. 가령 세간 사람이 위의 있음과 위의 없음 그리고 공교에서 모든 정념을 잊어버리며, 세간의 변화를 배우는 데도 마찬가지로서 정념과 더불어 상응치 않으며, 금세에 업을 지으니 내세의 이숙(異熟)을 성취해서 몸이 죽음과 더불어 상응하매 일념도 깨닫지 못하는 데서 태어남을 받는다. 또 네 가지 무기는 자성과 상응과 인발과 승의이니, 이 네 가지 무기는 출세간의 도로서 이 같은 행법들을 이 지위의 보살은 다 안다. 유루와 무루의 법행이란 것은 삼계의 법은 유루이고 삼계를 벗어난 법은 무루이니, 3승의 삼계를 벗어난 법은 유루이지만 1불승(佛乘)의 보광명지(普光明智)는 무루이다. 세간과 출세간의 법행이란 것은 3승은 출세간의 법행이요 범부는 세간의 법행이지만 , 1승은 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니니 능히 세간을 따라서 보현행의 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의(思議)와 불사의(不思議)의 법이란 것은 일체의 삼계가 사의법(思議法)이며 또 3승의 출세간도 모두 사의이니, 모두 얻는 바가 있기 때문이지만, 1승의 지혜와 경계는 불사의이니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공적(空寂)의 작용이 가없어서 매우 자재롭기 때문이다. 정(定)과 부정(不定)의 법이란 것은 색계의 4선과 무색계의 4선이 정법이고 부정법이니 참다운 정(定)이 아니라 생멸이 있기 때문이다. 3승의 세간을 벗어난 적멸의 정이 정법이고 부정법이니 모두 취하고 버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승의 법계선(法界禪)은 정법이며 부정법이니, 이는 공적의 작용이 자재롭기 때문이다. 일체 범부의 법이 부정법이고 일체 모든 부처가 정법이기 때문에 일체의 범부와 성인이 모두 무정법(無正法)이니 성품에 의지함이 없기 때문이다. 성문과 독각의 법이란 것은 고집(古集)을 싫어해 멸도(滅道)를 닦고 연생(緣生)을 요달해 태어남이 없는 성품에 들어감으로써 자비와 지혜를 여의고 세간 연(緣)의 결박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보살이 법행을 행한다는 것은 6바라밀을 행해서 미혹을 남기는 것과 정토에 태어나는 법행이다. 여래지와 법행이란 것은 보광명지가 이에 해당되니, 일체 중생과 2승ㆍ1승과 더불어 지(地)를 짓기 때문이다. 유위의 법행이란 것은 삼계의 인천(人天)과 3승의 닦아서 생긴 무루가 모두 유위의 행에 속하는 것이니, 청정함과 더러움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무위의 법행이란 것은 오직 여래 지혜의 지(地)이기 때문이다. 이상 한 단락 4행의 경문에 있는 열 가지 법행을 앎을 밝힌 분을 마친다. 셋째, 이 보살이 일체 중생의 열 가지 조림(稠林)을 아는 분(分) 중에서 경문에 이르기를 “이 보살이 이 같은 지혜로 실답게 중생심의 조림을 안다”고 한 것은 번뇌의 넓고 많음이 조림과 같아서 모두가 마음을 말미암아 일어남을 총체적으로 든 것이니, 무심하면 곧 모든 행의 조림이 멸진해서 대지혜가 숲과 같아 능히 널리 일체 중생을 덮어 보호하기 때문이다. 번뇌의 조림이란 것은 법계의 자성연생(自性緣生)을 미혹해서 허공계와 동등한 세계미진수(世界微塵數)의 일체 번뇌 조림을 이루는 것이니, 이는 번뇌의 광대하고 많은 예장(翳障)이 조림과 같지만 한번 지혜 경계를 요달하면 문득 만행의 공덕 조림이 됨을 밝힌 것이며, 업과 근(根)과 해(解)와 종성(種性)과 낙욕(樂欲)은 아울러서 알 수 없을 것이다. 수면(睡眠)의 조림이란 것은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 욕망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欲受), 둘째 성냄〔瞋〕이며, 셋째 유에(有恚)이며, 넷째 애(愛)이며, 다섯 째 만(慢)이며, 여섯째 무명(無明)이며, 일곱째 견의(見疑)이다. 이는 견도의(見道疑)이니, 이 일곱 가지가 항상 서로 미혹하고 이를 가리기 때문에 수면이라 호칭하는 것이며, 능히 가없는 심경을 미혹해서 보리의 지혜를 가로막기 때문에 조림이라 호칭하는 것이다. 수생(受生) 조림이란 것은 1찰나제(刹那際)에 8백의 생멸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습기(習氣)의 조림이란 것은 경문에서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를 안립하는 것이 모두 지(地)2)이전의 1분(分)에 여래 지혜의 집안에 태어나서 삼계의 거친 미혹을 단박에 끊고 지(地) 위의 습기를 점진적으로 다스리는 것과 같으니, 초지는 세간을 관하는 법을 밝히는 것이며, 2지는 계바라밀로 욕계의 미혹된 습기를 다스리는 것이며, 3지는 4선(禪) 8정(定)을 닦아서 상계 2계의 미혹된 습(習)을 다스리는 것이며, 4지는 여래 집안에 태어나는 것이며, 5지는 세간의 온갖 기예의 문을 닦는 것이며, 6지는 속박을 벗어난 지혜가 이미 원만한 것이며, 7지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방편에 들어가는 것이며, 8지는 공용 없는 지혜가 현전하는 것이며, 9지는 행이 운(運)에 맡김을 성취하는 것이며, 10지는 공이 원만한 부처의 작용이니, 이는 모두 습기를 다스리는 방편이다. 삼취차별(三聚差別) 조림이란 것은 세 가지 선하지 못한 근(根)으로부터 간략히는 열여섯 가지 조림의 명칭이 있는데, 자세히는 8만 4천과 무진(無盡)으로서 3불선근(不善根)과 3독(毒)과 3주올(株杌)과 3구(垢)와 3소해(燒害)와 3전(箭)과 3악행(惡行)과 3유(遺)와 3박(縛)과 3소유(所有)와 3열(熱)과 3뇌(惱)의 3부정(不淨)과 3치연(熾然)과 3조림(稠林)과 3구애(拘礙)이니, 총체적으로는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으로 체(體)를 삼아서 갖가지 번뇌의 명칭을 지은 것이다. 이상 3행의 경문은 조림의 번뇌를 밝힌 분(分)이다. 넷째, “이 보살이 중생심의 갖가지 모습을 실답게 안다”고 한 것은 모두 합쳐서 말한 것이다. 이른바 잡기상(雜起相)이란 것은 마음의 소연(所緣)인 잡경계(雜境界)이며, 속전상(速轉相)이란 것은 생멸이 무상하여 찰나도 머물지 않는 것이며, 괴불괴상(壞不壞相)이란 것은 세간의 무상함을 괴상이라 칭하는 것이며, 세간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곧 무너짐도 없는 이것이 바로 세간의 출세간의 평등상이며, 무형질상(無形質相)이란 것은 마음으로 공(空)을 염(念)하여 공무상견(空無相見)을 짓는 것이며, 무변제상(無邊際相)이란 것은 무변제의 염상(念相)을 짓는 것이며, 청정상이란 것은 이 같은 오염과 청정, 속박과 속박되지 않음을 모두 실답게 아는 것이며, 나아가 한량없음을 다 실답게 아는 것이다. 이상은 이 지위의 보살이 실답게 갖가지 심상(心想)의 상(相)을 아는 것을 지혜로써 능히 앎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 4행 반의 경문에서 “또한 모든 번뇌의 갖가지 상(相)을 안다”는 것은 모두 합해서 말한 것이다. 이른바 구원수행상(久遠隨行相)이란 것은 모든 번뇌가 처음과 끝이 없어서 늘 무명의 연(緣)한 바 행을 따름을 말한 것이다. 무변인기상(無邊引起相)이란 것은 명색(名色)을 말미암아 마음으로 반연하는 명색을 행(行)이란 이름붙이는 것이며, 그 마음이 경계를 반연하매 수(受)가 곧 동시라서 심상(心想)이 연(緣)에 얽매이니 식(識)의 종자가 문득 익어서 5온 12연의 파도가 쉬지 않는다. 그리하여 명색이 경계가 되고 마음이 수주(受主)가 되고 상행(想行)이 사(使)가 되는데, 말나집식(末那執識)이 탐냄ㆍ애착ㆍ성냄ㆍ어리석음을 일으켜 본업(本業)의 밭에다 식(識)의 종자를 심어서 모든 묘가(苗稼)를 낳는 것이 대략 8만 4천이 있다. 구생불사(俱生不捨)는 앞에서 이미 해석한 것과 같다. 면기일의(眠起一義)란 것에서 면(眠) 번뇌는 앞서와 같은 일곱 가지가 이에 해당되며, 기(起) 번뇌는 현재에 업을 짓는 10사(使)와 10전(纏) 등이 이에 해당된다. 가령 10사 중 신견(身見)과 변견(邊見)과 사견(邪見)과 계견(戒見)과 의(疑)와 견취(見取) 등의 여섯은 견도(見道)를 가로막고,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ㆍ아만 등 네 가지는 수도의 행을 가로막으니, 비록 도를 보았어도 행에서는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수도의 번뇌는 3지에 이르러서 없애고 견도의 번뇌는 6지에서 없애며 7지와 10지는 부처의 자비와 지혜를 융화 회통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이다. 그러니 초지와 2지는 상상(上上)의 10선(善)으로 욕계의 미혹을 다스리고, 3지는 4선(禪) 8정(定)을 닦아 상계 2계의 미혹을 다스려서 삼계를 벗어나는 마음을 얻으며, 6지는 3공(空)이 현전하면서 세간을 벗어난 지혜가 다 구족하기 때문에 견도의 미혹이 없는 것이며, 7지 이후는 한결같이 세간에 처해 부처의 지혜와 자비를 배움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는 문이 된다. 이같이 안립하는 명분(名分) 법칙은 반드시 이와 같지만, 초발심을 한 자는 일시에 갖추어 닦으니, 경문에서 면기일의상(眠起一義相)이라 말한 것은 체(體)에 두 모습이 없기 때문에 하나의 참된 지혜〔一眞智〕를 미혹해서 수많은 망령됨을 지은 것을 오히려 하나의 체(體)에 거두어들임을 밝힌 것이다. 마음과 더불어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는다는 상(相)이란 것은 마음이 경계와 더불어 합하는 것이 상응하는 모습이 되고 경계와 더불어 합하지 않고 망령되이 반연하는 것이 마음이 상응하지 않는 모습이다. 취(趣)를 따라 생을 받아서 상(相)에 머문다는 것은 이 같은 번뇌로 인한 생(生)과 이 같은 주처(住處)를 다 아는 것이다. 삼계의 차별상이란 것은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생을 받는 것과 그 가운데의 경계를 잡아서 정(定)과 난(亂)의 심상(心想)이 반연하는 바를 모두 실답게 아는 것이다. 애견(愛見)과 어리석음ㆍ아만이 화살같이 과환(過患)에 깊이 들어가는 상(相)이란 것은 삼계의 생을 받는 것이 모든 이 네 가지 번뇌를 말미암아서 갖가지 번뇌를 지음을 밝힌 것이다. 나아가 8만 4천이란 것은 가령 10사의 번뇌가 5온(蘊)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니 1온 중에 1백이 있어서 5온에선 5백이 되고, 5온으로써 5진(塵)을 이루기에 5진 중에도 또한 5온과 10사가 있어서 1백이 되므로 5진 중에 5백이 있다. 그리하여 온(蘊)을 안으로 삼고 진(塵)을 밖으로 삼으면서도 모두 의(意)가 주(主)가 됨으로써 의(意)가 능연(能緣)이 되고 진(塵)이 소연(所緣)이 되어 이것의 안팎에 각각 5백이 있어 합하여 1천을 이룬다. 이를 7식(識)에 배당하면 7천이고, 3세로 나누면 3 곱하기 7은 21로서 2만 1천이 되는데, 이를 성냄의 행이 많은 자와 탐냄의 행이 많은 자와 어리석음의 행이 많은 자와 등분(等分)을 행하는 자의 각 2만 1천이 합계 8만 4천이 된다. 이는 번뇌의 업을 짓는 것이 다만 7식 때문이지 나머지는 능히 하지 못함을 요약한 것이다. 가령 「수호광명공덕품」에서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접촉의 안에 5백 번뇌가 갖추어져 있고 밖에도 역시 5백 번뇌가 있는데, 성냄의 행이 많은 자가 2만 1천이요, 탐냄의 행이 많은 자가 2만 1천이요, 어리석음의 행이 많은 자가 2만 1천이요, 등분(等分)을 행하는 자가 2만 1천이다”라고 하여 다만 이 말씀이 있을 뿐 역시 배당하지는 않고 있다. 이상 4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갖가지 모든 번뇌의 모습을 실답게 앎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 5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업의 갖가지 모습을 앎을 밝힌 분이다. 가령 경문에서 “또한 모든 업의 갖가지 모습을 안다”고 한 것은 모두 합쳐서 말한 것이다. “이른바 선과 불선과 무기”의 상(相)에서 선과 불선은 알 수 있는 것이고, 무기(無記)란 것은 두 가지 무기가 있으니, 하나는 선과 불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혼침에 빠진 수면은 바로 불선의 무기이며, 둘은 삼매를 바로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마음과 경계가 다 없어져 바른 지혜가 현전하매 다만 중생을 위하여 바른 법륜을 굴리고 그 자(自)와 타(他)에서 올바로 기억할 만한 법이 없기 때문에 무기상(無記相)이라 말한 것이다. 표시가 있고 표시가 없는 상(相)이란 것에서 유표업(有表業)이란 것은 어떤 업(業)의 인(因)은 표시가 있게 생기나니, 곧 이전 경계의 견문각지(見聞覺知)할 만한 것이 있음으로 인해 마음이 그것을 취함으로써 업의 종자를 이루는 것이며, 어떤 업의 종자는 밖으로 표시할 게 없으니 마음의 횡념(橫念:멋대로 생각함)을 말미암아서 스스로의 계교로 업상(業相)을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마음과 더불어 같이 생기면서 상(相)을 여의지 않는다는 것은 업이 마음을 말미암아 일어나니 마음이 곧 업이라서 거울 속의 그림자처럼 업의 과보로 얻은 과(果)가 바로 마음의 영상이니, 마음이 없어지면 경계도 적멸함을 밝힌 것이다. 자성의 찰나가 무너짐을 인(因)하더라도 단계적으로 과(果)를 모아 상(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업을 짓는 것이 자성을 미혹함을 말미암는 것이니, 비록 망령된 업을 짓더라도 홀연히 일어났다가는 없어지고, 비록 늘 계박해서 앞에 있지는 않더라도 모은 바의 과보 하나하나를 잃지 않음을 밝힌 것이니, 스스로 오직 바른 지혜가 현전하여 모든 업이 문득 지혜의 작용이 되어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과보의 상(相)이 있고 과보의 상이 없다는 것에서 삼계의 중생과 2승, 아울러 정토 보살은 모두 과보의 상(相)이 있는 것이며, 오직 1승의 불과만은 오염과 청정의 마음이 없어지니 과보에 의지함 없어서 다만 중생의 낙욕(樂欲)을 따르기 위하여 사물에 따라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 여의주가 사물과 더불어 빛깔을 같이하면서도 자성도 없고 타성도 없는 것과 같으니, 본래 일체 중생과 더불어 그 일심(一心)을 같이함으로써 그 마음의 보는 바에 맡기는 것이니, 요달한 자는 법이 스스로 이와 같을 뿐이지 작용이 왕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흑흑(黑黑) 등의 온갖 과보를 받는 상이란 것은 무명의 업 안에서 겹겹이 흑업(黑業)을 지음을 밝힌 것이니, 지혜를 백(白)으로 삼고 식(識)을 흑(黑)으로 삼은 것이다. 밭과 같이 한량없는 상이란 것은 비유를 들어서 업이 밭 속에 갖가지 초목을 낳음과 같음을 밝힌 것이니, 가령 업의 밭 안에서는 갖가지 식(識) 종자의 싹이 매우 무성한 조림을 낳기 때문이다. 범(凡)과 성(聖)의 차별상이란 것은 인간의 업과 축생의 업과 지옥과 아귀와 천(天)의 업과 성문과 연각과 정토 보살과 1승 불과(佛果)의 대자비지혜의 업을 이 지위의 보살이 모두 능히 요달해 앎을 밝힌 것이다. 현재에 생을 받고 나중에 생을 받는 상이란 것은 3세의 생을 받는 업을 미리 앎을 밝힌 것이다. 승비승정부정상(乘非乘定不定相)이란 것은 외도의 승(乘)과 정(定), 아울러 3승의 출세간은 망령되게 출세간이라 부르지만 출세간의 도업(道業)이 아닌 것이며, 나아가 8만 4천을 모두 여실히 안다는 것은 불과 이래의 차별업을 모두 실답게 아는 것이다. 이상은 업의 차별상을 앎을 밝힌 것이다. 일곱째, 모든 근(根)의 연중상승상(軟中上勝相)을 안다는 것에서 연자(軟者)는 하근기요, 중자(中者)는 중근기요, 상자(上者)는 상근기이다. 이 같은 선제(先際)와 후제(後際), 차별과 무차별의 상중하의 상(相)이란 것은 3세의 근행(根行)의 차별을 알아서 동일성과 차이성을 다 아는 것이다. 번뇌와 구생(俱生)이 서로 상(相)을 여의지 않는다는 것은 수생(修生) 번뇌와 구생 번뇌의 서로 상을 여의지 않음을 다 아는 것이다. 승비승정부정상이란 것은 앞서와 같다. 수근망경전괴상(隨根網輕轉壞相)이란 것은 근기에 따라 가르침의 그물을 시설하니 번뇌의 가볍고 무거움을 따라 전괴(轉壞)하는 상을 모두 능히 아는 것이다. 증상무능괴상(增上無能壞相)이란 것은 근품(根品)의 상상(上上)으로 퇴보해 움직이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영원히 공생(共生)을 따르면서도 같지 않은 상이란 것은, 가령 일체 중생이 무시 이래로 공생하여 하나의 성품을 여의지 않으면서도 분별하는 근기의 성품을 따라 차별이 같지 않음을 다 아는 것이며, 나아가 8만 4천을 실답게 알아서 모두 착오가 없는 것이다. 여덟째, 모든 근기를 안다는 것은 이상 근기의 차별해(差別解)를 아는 것 가운데서 모든 해(解)의 상ㆍ중ㆍ하와 성품과 낙욕(樂欲)의 8만 4천까지를 아는 것이니, 경문에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新華嚴經論卷第二十七長者李 通玄 撰第八不動地將釋此地,五門如前。一釋地名目者,此地何故名不動地?明此位菩薩於處世閒智,不須功用,用神思量,不思不爲,而智隨萬有,通化無方,名爲不動地。二明此地行門者,此地行願波羅蜜,爲此地智增以智體本淨以願興行轉更自在。若不以願起智,恐同二乘,以願防之不令滯淨,至此地已法合得諸佛三加七種勸,令念本願起生智用,任運能起廣大慈悲,便能成無作智悲任用圓滿,前第七地成入世閒中有行有開發,此地成有行有開發中無行無開發,任智用滿大悲故,仍於後善慧未自在故。又以任運智慧增明非待作意故。三明善財表法者,善財於此行中所見善知識在此道場中者,明八地稱理入眞智稱無作契會中義故。云在此道場中明智契中道名之爲中,理無彼此我人自他名之爲道場。此善知識號大願精進力救護一切衆生者,明此位中方能赴其本願救生無限爲表,第七地隨悲行智者,難成故。此位隨智行悲濟物廣大易成故,爲智體遍周十方對現隨衆生廣狹故。如響應無心而與一切衆音合故。其智無思等虛空界法界一切衆生所樂心合,而以利之,而無成所,而無作者。是故以夜天號大願精進力救護一切衆生,坐普現一切宮殿摩尼王藏師子之座者,明大慈悲普覆一切衆生爲宮,以智對現利生爲殿,智無染淨爲摩尼,隨居染淨而無功廣救衆生名爲王故,普現法界國土摩尼寶網彌覆其上者,表智境普含隨根設教名之爲網,以智無體能現衆法而無作者名曰摩尼。此明約智用利生所報依果觀因知果擧果勸因故。乃至廣如經說,明此八地教門是所修行之法,夜天名大願精進力,是行之人,四明此地於三界中得何界解脫者,明得智用利物遍周恒無功而解脫,明從初地已來至於七地,有爲、無爲皆有修學。此八地二行已終,如菩薩行中,此地功畢,諸佛十力、十八不共、自在十地方終。五隨文釋義者,二義如前。一長科經意者,於此八地約分十一段長科。一是時天王及衆已下,至一心瞻仰欲聽法,有二十二行頌,明諸天聞法興供歎佛神德分。二時解脫月已下,兩行頌,明請說八地分。三爾時已下,一段長行有十行經,明修第八地向入無生忍分。四佛子菩薩成就此忍已下,有十七行經,明此位菩薩入無功用分。五佛子此地菩薩已下,一段有四十行半經,明此位入無功用已諸佛以七種勸發加持分。六佛子已下,一段有五十九行經,明此位菩薩以自智德善知衆法差別成壞同事攝生廣大自在分。七佛子已下,有十行經,明此位菩薩於身命財十自在無過失分。八佛子已下,一段有六行半經,明不動地隨德用具十種名分。九佛子菩薩已下,一段有十行半經,明此位菩薩入佛境界得佛護念梵釋四王力士隨侍普伏魔道住不動地分。十佛子已下,一段有三十二行半經,明此位菩薩知見廣多及受職分。十一七地修治方便慧已下,至經於億劫不能盡,有四十四行頌,重頌前法,如文自具。二隨文釋義者,第一如初一段長行十行。經云:入一切法如虛空性是名得無生忍者,明初地已來至七地,是順無生忍,八地方名得無生忍,八地已前,有爲、無爲,皆有覺觀修學,至此八地二行方終,自餘文義,如文自明。第二段長行者,有十七行經,分爲四段。一佛子菩薩成就此忍已下,至皆悉止息,有五行半經,明入第八不動地離一切想寂滅現前二乘滅定所不及分。二菩薩摩訶薩已下,至二行相行悉不現前可有八行經,明自初地已來方便功終無功二行不現前分。三佛子已下,至皆不現前可有兩行經,明擧生梵世欲界煩惱不現前喩分。四此菩薩摩訶薩已下,一行半經,明菩薩心佛心菩提心涅槃心尚不現前分。經云:一切聲聞辟支佛所不能及者,爲二乘是厭有證無,不同有無二行滿,任無作功,離諸諠諍寂滅現前,有無二行功以滿故,無有諍故,五地拔世悉達,六地三空智慧終,七地大悲諸行滿,八地任運無功智自在大化利生故,無作者故。經云:譬如比丘具足神通得心自在者,約小況大?如比丘得出三界定無三界心,但隨淨定力以出三界,妙淨意化現神通,其通有六。一身通,二天耳通,三天眼通,四宿命通,五他心通,六漏盡通。如是二乘六通與淨土菩薩名數相似,但通用廣狹不同。二乘神通變化不得遍他方佛土,菩薩神通得往他方淨土,一乘菩薩神通,十方佛剎衆生剎,摠納於毛孔,三乘以漏盡通爲證。一乘菩薩離諸欲不以漏盡通爲證。三乘六通,皆有限量,一乘十通無限,如下十通品自明。如淨名經云,雖行六通而不盡漏,以智自在不同小果,三乘神通皆有往來,如三乘經云,我欲還歸本土等,是一乘菩薩所有神通依理智印,自遍周等虛空界,應物布施爲無有去來中邊之性,所以一乘菩薩不證漏盡通者,以爲明處智境界不見漏性及以無漏有取有捨萬法性自法界故。以智自在故,攝生行遍故,不同三乘有忻厭取捨故。是故今此以小況大?喩如下以夢況法?喩者明初地至七地有學有修,如夢所作未寤,八地如夢已覺故萬事摠無,任用從智,以智自在,號智爲王,自餘如文自明。第三佛子已下,一段有四十行半經,約分爲十二段。一佛子此菩薩本願力故已下,至於此忍門是十方諸佛現加勸修諸如來十八不共法分。二又善男子已下,至汝當愍念如是衆生是諸佛勸歎得無生忍念度煩惱惡覺衆生分。三又善男子汝當憶念已下,至智慧之門有兩行經,諸佛勸念本所誓願普大饒益一切衆生分。四又善男子已下,至一切二乘亦能得無分別法有兩行半經,明諸佛勸住法性分。五又善男子汝觀我等身相已下,至宜應成就此事,有兩行半經,是諸佛加勸令修福德智慧說法音聲分。六又善男子已下,至汝應修行成就此法,有三行半經,明諸佛勸修無量法明分。七又善男子已下,至通達其事,有一行半經,明諸佛勸修種種差別如實通達其事分。如上二十行半經,摠有三加七勸三加者。一諸佛現身,二與智,三讚言善哉善哉及與摩頂七勸者。如上科文作七段是也。八佛世尊與此菩薩無量起智門摠有可兩行經,明諸佛以七勸三加令起差別業分。九佛子已下,至優婆尼沙陁分,亦不及一可,有七行經,明以得起智門超前初發心不可比對分。十何以故已下,至以不動法故可五行經,明得無量身語意業分。十一佛子已下,至設經百歲亦不能及,有三行經,明擧喩況乘舩至海速疾超過百歲分。十二佛子已下,至不能及,有四行經,明乘舩至此無功行海分。如是勸加從十住、十行、十迴向、十地。一一位初首皆諸佛勸歎加持說法者,令說法故,至此八地三加七勸明自修行者,自行無功所得及故,於此地中法爾智現,諸佛加持法相應故,堪領受一切諸佛廣大法故,如世帝王德備卽鳳祥麟應,是德所感也。明此八地無功智現卽十方諸佛咸應是法爾合然故。經云:善男子此忍第一順諸佛法者,明此地得,無生忍非如第六七地已前順忍故。此忍第一順諸佛法者,明此無生忍是諸佛本體智性故。善男子,我等所有十力無畏者,卽處非處力等及四無畏是。十八不共諸佛之法汝今未得者,明勸昇進如來自在不令住在無功用中,十八不共法者,一無有悞失,二無卒暴音,三無忘失念,四無不定心,五無種種想,六無不擇捨志欲,七無退精進,八無退念,九無退定,十無退慧,十一無退解,十二無退一切業,十三隨智而轉智爲前導,十四一切諸語業智爲前導隨智而轉,十五一切意業智爲前導隨智而轉,十六知過去世無著,十七知未來世無著,十八知現在世無著。四無畏者,一一切智無畏,二漏盡無畏,三說障道無畏,四說盡苦道無畏。十力如先已明,如汝雖得是寂滅解脫已下,勸令念未得衆生,令念本願,普大饒益已下,通有三加七勸,如文自明。以此七勸令起無量差別智業。如歌羅分者,此云豎析,人身上一毛爲百分中一分,或曰爲十六分之一分,以西域十六分爲一升。所謂此地起智昇進,不可以前地法能比對小分故。優波尼沙陁分者,優波此云近也。沙陁云對,明此地起智利物之廣大,前地設經百千億不可數劫所作利益,亦不比竝此之小許微毫之益故。爲明前地以益劣故,以此地起無限化身之益故,餘如文自具。已上一段以明三加七勸安立法則,十住、十行、十迴向、十地等,第八位中大勢共同,摠明十住初心一念入道生如來智慧家時一切法摠具。然法須安立次第昇進,不滯諸行故令諸始發心者知軌度故從初發心興大願故,令大悲智而與法身齊昇進故,設教前卻學者,一時智有迷悟淺深自路,以智境界非有前後。第四段有五十九行經,約分爲八段。一佛子菩薩住此第八地已下,至皆如實知,有四行經,明以善巧智觀世閒成壞由何業因分。二又知地界小相大相已下,至差別相,有兩行經,明地水火風大小差別相分。三知微塵細相已下,至知微塵差別智,有七行經,明知微塵差別相。四又知欲界色界成壞已下,至觀三界差別智,有兩行半經,明知三界成壞相分。五佛子此菩薩復起智明已下,至悉現其身,有七行半經,明觀衆生身差別隨應現身分。六佛子已下,至而爲現身,有十二行經,明現身同事分。七佛子已下,至於此身現如是形,有十行半經,明此位菩薩住於無心相中,現身同別自在分。八此菩薩知衆生集已下,至顯現色身相有十二行半經,明業報身及相差別分。隨文釋義者,如觀一切智者,是根本智,所行境者,差別智也。從根本智所分別故,觀世閒成相者,如世界初成及四時人天地獄畜生餓鬼等成相及以壞相,皆由業成,皆由業壞,皆同類相應非常摠爾。於不遷不變無時之中,見長壽,見短壽,延促萬類不同,自成他壞,或復同時,皆隨業然,非眞有故。如是成壞劫住延促時分增減。此八地菩薩悉知,地界小相大相者,明知小相一塵是也。大相一塵無體卽廣狹悉等。又如一毛孔中,安立廣大世界及小世界淨穢差別咸住其中。微細無限,重重無㝵,如因陁羅網,十方互參,如是悉見如水火風界大小之相者,且如此世界,約俱舍論云:安立器世界,風輪最居下,其量廣無數,厚十六億由旬,次上水輪,深厚十一億二萬三千四百半由旬,下八由旬水餘結凝成金,如是金剛際已上積塵成世界,如楞伽經云,津潤妄想能生內外水界,堪能妄想,能生內外火界,斷截妄想,能生內外地界,飄動妄想,能生內外風界。所謂愛生水界,我所堪能生於火界,能所二執能生地界,思想彼此能生風界,愛心亡水災不及,我能我所亡火災不及,思想亡風災不及,二禪水災不及,三禪火災不及,四禪風災不及,爲思想絕故,內無出入息,外無風災,內無能所,外無火災,內無欲愛,外無水災,一如色界四禪次第。又以增上欲愛故,能生火界,卽如蓮華寶女地獄以愛心取故,欲愛增上,便成熱銅柱等苦,以熱燒煿悶絕,便死而復生。如是一日千生萬死,苦無窮極,皆由愛戀。如增上業火成融銅猛火業風等,一如說地獄等經如是業壞,此位菩薩悉能如實知見。經云:隨何世界中所有地水火風界各若干微塵者,如以積小成大者,卽以鄰虛塵透金塵透銅塵透鐵塵隙中兔毫羊毛蟣蝨草子穬麥,皆七七比之以成分寸尺肘弓等量,知之者是凡情所知,如俱舍論所說及此閻浮提洲地南北東西廣狹之量,亦如彼說。如人畜身以身長短以積塵之法,七七比之而知人畜身之塵數者,此是凡情之量見也。此位菩薩世界國土人畜等身,皆智眼見之。知三界成壞智者,三界所有成時乃至大相小相,此位菩薩皆智力知見。婆羅門衆者,淨種也,剎利衆者,王種也。毘舍衆者,商估種也,首陁衆者,農夫種也。經云:此菩薩知衆生身者,是業報身也。國土身者,或以衆生身爲國土,如人身於中有八萬四千戶虫居等是。已下十身,悉能同別自在。此菩薩知衆生集業身者集何業果增上,而報得身悉知之,煩惱身者,通三界身色身者色界身也。無色身者,無色界也。如是等身大小相,以智能知,如來身有十種菩提身,願身者,以菩提心起願成身故。化身者,隨衆生所現故。力持身者,十力所持故。相好身者,福智萬行所莊嚴故。威勢身者,示現摧伏諸我慢故。意生身者,逐衆生情所欲故。福德身者,具莊嚴故。法身者,如虛空故。智身者,知無邊法故。知智身者,覺自智及他智故,善思量相者,任智所知無情識故。如實決檡相者,以根本智起差別智善決擇義相故。果行所攝相者,卽一乘從根本智果起普賢願行故。世間出世閒差別相者,眞俗二智悉現前故。三乘差別相者,二乘趣寂,菩薩生於淨土,或云留惑潤生等事。共相者,三乘共一體無生相,不共相者,具慈悲無慈悲名不共相。又共相者凡聖一體具如來智。又不共相者,有迷悟不同故。出離相者,三乘是也。非出離相者,一切凡夫具煩惱者是。一乘非此二事。有學相者,七地已前菩薩是,無學相者,八地已後菩薩是。知法身平等相者,萬法無自性故。不壞相者,如智所報得境界故。隨時隨俗假名差別相者,卽化身隨樂欲心故。衆生非衆生法差別相者,有情無情差別相故。佛法聖僧法差別相者,聲聞僧緣覺僧淨土菩薩僧一乘菩薩僧差別相故。佛亦隨類知之,知虛空身無量相者,以法身起智隨行所感無量色別故。周遍相者,爲法身,智身周遍,行亦周遍故。其色相亦遍無形相無異相者,悉同體故。無邊相者,以法身智境非情限故。顯現色身相者,明色身無體無依智自在顯現故。已上如前科文中有八段經,文深隱處解之,文自具處如文自明,大意明此地菩薩無功之智所及之用故。第五段有十行半經,約分爲三段。一佛子已下,至法自在,有兩行半經,明此位已成就如上身智已得十自在分。二得此十自在故已下,至無能壞智者,有一行半經,得四種智自在分。三此菩薩已下,至積集一切佛法,有六行半經,明此位菩薩以無過失身口意業隨般若波羅蜜能集一切佛法分。經云:命自在者,於不生不滅大智體上同一切衆生受生死自在故,心自在者,隨無念智所作能辦故。餘如文自具。第六一段有九行半經,摠爲一段。佛子菩薩住此地已下,至於諸事中無有過咎,明此位菩薩得住十種力分。如經自具云,一切種一切智者,一切種者,明加行具修多種智故。一切智者,是根本智。或云一切智智者,明從根本智起差別智故。意明以根本無功用智作種種多功用智無二故。智現前故者,明如上自在智現前故。此菩薩已下,明得無功之智力故。能現一切諸所作事於諸事中無有過咎,以智無能所故。第七一段有六行半經,明不動地具有十種地名分。其地名義如經自明。一切世閒無能測故名童眞地,明七地已前有行有開發是世間智此八地無功之智現前故。是初童蒙入眞智故,號曰童眞地,無過失故名爲生地,明有覺有觀已絕無覺觀剌之所傷故,云生地,以生在無功用智中故,餘如文自具。第八一段有十行半經,於此段中約分爲兩段。一佛子菩薩成就如是智慧已下,至示成正覺,有五行半經,明此位菩薩入佛境界自力所持感招梵釋王等常隨侍奉分。二佛子菩薩如是入一乘會中已下,至住不動地,有五行經,明入一乘無功用會獲神通隨意自在分。常爲如來之護念者,明諸佛非不護念一切衆生斷善根之輩。其護念有三義。一護念苦道衆生未發心者,二護念已發心者有學有開發者,三護念入無功用菩薩令得佛自在故。梵、釋、四王、金剛力士,常隨侍衛亦有三義。一侍衛一切衆生,二侍衛已發心之者,三侍衛已至無功用智及一切諸佛故。侍衛亦有二義。一大悲覆育侍衛,二入位菩薩以尊敬彼法侍衛。於一一身有大勢力報得神通者,七地已前是修,生報業神通未能自在,此地無功之智報業神通廣大自在,七地已前報業神通依禪定願力生,此地報業神通無作智生,無修作故。放大光明者,所作障亡故,光明自應,入無㝵法界者,諸作已亡故,任智無有㝵,餘如文自具。第九一段有三十二行經,約分爲四段。一佛子已下,至善能開闡智慧門故,有十三行半經,明此位菩薩見佛廣多及擧眞金治作寶莊嚴喩分。二佛子已下,至不可窮盡有六行半經,明此位菩薩普放光明及所行之行願波羅蜜增上分。三佛子已下,至一切智智依止者可有七行經,明此位菩薩授職及行諸波羅蜜、四攝、四無量不離三寶分。四此菩薩已下,有五行半經,明此位菩薩以無功用智起精進力所得三昧及願力所求示現菩薩眷屬廣多分。第十段中有四十二行頌,重頌前法,如文自具。第九善慧地將釋此地,五門如前。一釋地名目者,此地何故名爲善慧地?爲此第九地行同十住中第九法王子住。每與五位中,第九位竝同法師位,善知衆法故名善慧地。二明此地修何行門者?此地修力波羅蜜爲主,餘九爲伴。三明善財表法者,善財於閻浮提有一林,名嵐毘尼,見有神,名妙德圓滿。此閻浮提者,是此洲林名此洲因林而得名故。以明此位智慧設教如林廣多覆蔭故。又言其中有園林者,明智慧重重無盡故,名嵐毘尼,或曰流彌尼。尼者,女音。流彌尼者,樂勝圓光也。明此善慧地智慧法樂無垢圓光明,以善慧圓光破煩惱令得樂故。神名妙德圓滿,明法師位妙慧圓滿故。住寶樹莊嚴樓閣,寶樹者,是法師之行也。樓閣者,明智慧高遠重重迥照無㝵故。明以衆行莊嚴智慧善說諸教令衆生信伏故。是法師解行具足。四明此地於三界中得何界解脫者?得智慧圓滿解脫。五明隨文釋義者,二義如前。一長科經意者,於此善慧地長科爲七段。第一說此菩薩八地時已下有二十六行頌,明聞前地之法大衆興供稱歎及請說第九地法門分。第二段長行有六十二行半經,明修入九地向正住九地心知諸法差別分。第三段長行有三十六行半經,明此位菩薩爲大法師以四無㝵智說一切法門分。第四段長行有二十八行半經,明此位菩薩爲大法師得百萬億不可說摠持門隨意自在分。第五段長行有十六行半經,明此位菩薩以一音聲而爲無限衆生說法問難隨彼所欲皆令歡喜分。第六一段長行有二十九行半經,明此位菩薩見佛廣多及以供養承事幷自授職分。第七一段有四十八行頌,重頌前法分。二隨文釋義者,第一二十六行頌中復有兩段。一二十五行頌,是聞前地大衆歡喜興供歎法分。二末後有一行頌,是請後地分。此兩段頌,於中文義如頌自明。第二段長行有六十二行半經,義分爲十四段。一爾時下,至第九善慧地,有六行半經,是趣入第九地向分。二佛子已下,至無爲法行可有四行經,明住第九地知一切衆生十種所行法分。三此菩薩以是智慧已下至三聚稠林可有三行經,明此位菩薩知一切衆生十一種稠林分。四此菩薩如實知已下,至皆如實知,有四行經,明此位菩薩通達十種相差別分。五又知諸煩惱種種相已下,至八萬四千如實知,有四行半經,明此位菩薩如實知八萬四千煩惱相分。六又知諸業種種相已下,至八萬四千皆如實知可有五行經,明此位菩薩知業種種相乃至八萬四千分。七又知諸根軟中勝相已下,至乃至八萬四千皆如實知可有四行半經,明此位菩薩知諸根差別相分。八又知諸解有一行半經,明此位菩薩知諸解差別乃至八萬四千分。九又知諸隨眠種種相已下,至唯以聖道拔出相可有六行經,明此位菩薩知隨眠種種相分。十又知受生種種相已下,至妄謂出三界貪求相可有五行經,明此位菩薩知受生種種相分。十一又知習氣種種相已下,至如來熏習相可有五行經,明此位菩薩知習氣種種相分。十二又知衆生正定已下,至二俱捨不定相可有四行經,明此位菩薩知定正邪分。十三佛子已下,至令得解脫有兩行經,明都結上十二段知差別諸法分。十四佛子此菩薩已下,有四行半經,明以四乘法隨根獲益從第二段長行有六十二行經中分爲十四段。又從初一段六行半經。經云:爾時金剛藏菩薩告解脫月菩薩已下,六行半經,是修第九地向以如是無量智慧思量觀察,欲更求轉勝寂滅解脫者,明第八地入理智無,功趣入昇進如來佛果十力四無畏大用寂滅無功用故。復修習如來智慧者,明修八九地於佛功用未自在故。入如來祕密法者,過思量修習所知而不作念,普應萬有無休息故。觀察不思議大智性者,是根本普光明大智也。性者,明智體也。性無依住,對根物而成大用故。淨諸陁羅尼三昧門者,以無依住智普應物而成大用是正受摠持義故。具大神通者,智隨根應名之爲神,不往而體遍十方名之爲通。又智無住與自他而齊知見名之爲通。又智性具大功而無形名之爲神,無自性而具衆知名之爲通。又具知見而無生死名之爲神等法界而同一多名之爲通,已下如文自明。已上六行半經,是修第九地向。二一段可四行經,住第九地分。經云:佛子菩薩摩訶薩住此善慧地,如實知善不善無記法行者,明此位大法師,善知一切衆生心之所行。若善若不善,及不作善不善名無記皆悉知之。如不善有四種自性相應引發勝義。善有一十三種自性相應隨逐發起。第一義生得方便現前,供養饒益,引攝對治靜等流,寂靜無記有二。如八種識中眼耳等,五識無覆無記,第六意識有覆旡記,第七執識有覆無記,第八種子名爲藏識無覆無記,但與執識成有漏善種子作來世生因故,如器盛物種子故。文有四種無記,威儀工巧變化異熟,如世人有威儀無威儀及工巧皆忘失正念,如學世閒變化亦爾。與正念不應,如今世造業成來世異熟,身與死相應一念不覺受生。又四種無記,自性相應引發勝義。此四無記是出世道,如是等行法,此位菩薩悉知。有漏無漏法行者,三界是有漏,出三界法是無漏,三乘出三界法是有漏,一佛乘普光明智是無漏。世閒出世閒法行者,三乘是出世閒法行,凡夫是世閒法行,一乘是非世閒非出世閒,能隨世閒具普賢行法故。思議不思議法者,一切三界是思議法。又三乘出世皆是思議,皆有所得故。一乘智境,是不思議無所得故。是寂用無邊大自在故。定不定法者,色界四禪,無色界四禪是定法,是不定法,非眞定故,有生滅故。三乘出世寂滅定,是定法,是不定法,皆有取捨法故。一乘法界禪,是定法是不定法,是寂用自在故,一切凡夫法,是不定法。一切諸佛是定法故。一切凡聖皆無定法性,無依止故。聲聞獨覺法者,厭苦集,修滅道,了緣生入無生性,捨離悲智超世緣縛故。菩薩行法行者,行六波羅蜜留惑及生淨土法行。如來地法行者,普光明智是而與一切衆生及二乘一而作地故。有爲法行者,三界人天及三乘修生無漏摠屬有爲行故。淨穢心自在故。無爲法行者,唯如來智地故。已上一段四行經,明知十種法行分竟。三此菩薩知一切衆生十種稠林分中,經云此菩薩以如是智慧如實知衆生心稠林者,摠擧煩惱廣多如稠林,皆由心起,無心卽諸行稠林滅,大智如林,能普覆護一切衆生故,煩惱稠林者,迷法界自性緣生,成等虛空界世界微塵數一切煩惱稠林,明煩惱廣多翳障如稠林,一達智境便爲萬行功德稠林故。業根解種性樂欲竝可知,隨眠稠林者,有七。一欲受,二瞋,三有恚,四愛,五慢,六無明,七見疑。是見道疑。此七種常相迷覆,號曰隨眠。能迷無邊心境障菩提智故號稠林,受生稠林者,一剎那際八百生滅,同時而起,習氣稠林者,如經安立十住、十行、十迴向、十地,皆爲現前,一分生如來智慧家,頓斷三界麤惑,地上漸治習氣如。初地明觀世法,二地以戒波羅蜜以治欲界惑習,三地修四禪八定治上二界惑習,四地生如來家,五地修世間衆技之門,六地出纏智慧已滿,七地入利生之方便,八地無功智現前,九地行成任運,十地功圓佛用,皆是治習氣方便。三聚差別稠林者,從三不善根中,約有十六種稠林名廣乃八萬四千及無盡三不善根、三毒、三株杌、三垢、三燒害、三箭、三惡行、三遺、三縛、三所有二熱、三惱、三不淨、三熾然、三稠林、三拘㝵。摠以貪瞋癡爲體,作種種煩惱名,已上三行經明稠林煩惱分。四此菩薩如實,知衆生心種種相者,都言之也。所謂雜起相者,心所緣雜境界,速轉相者,生滅無常剎那不住壞。不壞相者,世閒無常,是名爲壞相。世閒相無成,卽無有壞。此卽世閒出世閒平等相無形質相者,如心念空作空無相見,無邊際相者,作無邊際念想,淸淨相者,如是淸淨相者如是染淨縛不縛悉如實知,乃至無量皆如實知已上明此位菩薩如實知種種心想相以智能知五有四行半經。又知諸煩惱種種相者,都言之也。所謂夂遠隨行相者,言諸煩惱無有始終,恒隨無明所緣行故。無邊引起相者,由名色以心所緣名色名之爲行,其心緣境受,乃同時心想繫纏,識種便熟,五蘊十二緣濤波不息,名色爲境,心爲主,受想行爲使,末那執識起貪愛嗔癡,於本業田中種識種子生諸苗稼,約有八萬四千,俱生不捨者,如前已釋。眠起一義者,眠煩惱者,如前七種是。起煩惱者,現作業十使十纏等是。如十使中身見、邊見、邪見、戒見、疑見等六是障見道,貪嗔癡慢四是障修道,行爲雖見道在行數起,修道煩惱至三地除,見道煩惱六地除,七地十地會佛悲智利衆生行,爲初地二地已上上十善治欲界惑。三地修四禪八定治上二界惑,得出三界心故。六地三空現前出世智慧悉皆具足故,無見道惑。七地已去一向處世,學佛智悲利生之門,如是安立名分法則,須當如是。初發心者,一時具修。經云:眠起一義相者,明體無二相故。迷一眞智而作多妄者,還一體收故。與心相應不相應相者,心與境合爲相應相,不與境合而妄緣之是。心不相應相,隨趣受生而住。相者,因如是煩惱生如是住處悉皆知之。三界差別相者,欲界色界無色界受生執境,於中定亂心想所緣,皆如實知愛見癡慢,如箭深入。過患相者,明三界受生,皆由,是四種煩惱作種種煩惱乃至八萬,四千者,如十使煩惱以五蘊所成,一蘊中有百,五蘊中有五百,以五蘊成五塵,五塵中還有五蘊十使,以爲一百,五塵中有五百,以蘊爲內,以塵爲外,皆意爲主,意爲能緣,塵爲所緣,以此內外各有五百,共成一千,配七識七千,分三世,三七二十一,二萬一千,瞋行多者,貪行多者,癡行多者,等分行者,各二萬一千,共爲八萬四千,以約造煩惱業,但七識故餘不能爲,如隨好光明功德品云,於色聲香味觸,其內具有五百煩惱,其外亦有五百煩惱,瞋行多者,二萬一千,貪行多者,二萬一千,癡行多者,二萬一千,等分行者,二萬一千,但有此言亦不配當。已上四行半經,明此位菩薩如實知種種諸煩惱相分,六可有五行經,明此位菩薩知業種種相分,如經云。又知諸業種種相者,都言之也。所謂善不善無記相善不善可知。無記者,有二種無記,一不記善不善及昏沈睡眠,是不善無記。二三昧正受心境俱亡正智現前,但爲衆生轉正法輪,於其自他無法正記。故云無記。相有表示,無表示相,明有表業者,或有業因,有表示,生卽因,有前境可見聞覺知由心取彼以成業種,或有業種外無表示,由心橫念自計成業相,與心同生不離相者,明業由心起心卽是業,如鏡中像,業所報果是心影像,心亡境寂因自性剎那壞而次第集果不失相者,明作業由迷自性,雖作妄業,忽起還亡,雖不常繫在前,所集果報一一不失,自非正智現前諸業便爲智用始可脫也。有報無報相者,三界衆生及二乘幷淨土菩薩皆是有報相,一乘佛果染淨心亡不依果報,但爲隨衆生樂欲隨物現形,似如意摩尼與物同色無自性無他性,爲本來與一切衆生同其一心,任彼心所見達者,法自如是非作用往來故,受黑黑等衆報相者,明無明業中重重作黑業故。以智爲白以識爲黑,如田無量相者,擧喩明業如田中生種種草木,如業田中生種種識種苗芽甚繁稠林故。凡聖差別相者,明是人業是畜生業是地獄是餓鬼是天業是聲聞是緣覺是淨土菩薩是一乘佛果大悲智業。此位菩薩悉能了知,現受生受後受相明懸知三世受生業故。乘非乘定不定相者,外道所乘及定幷三乘出世,妄謂出世非出世道業故,乃至八萬四千皆如實知,及佛果已來差別業皆如實知。已上明知業差別相,七知諸根耎中上勝相者,耎者下根,中者中根,上者上根,如是先際後際差別無差別。上中下相者,知三世根行差別,同異悉知故。煩惱俱生不相離相者,修生煩惱俱生煩惱不相離相,皆悉知之,乘非乘定不定相如前,隨根網輕轉壞相者,隨根設教網隨輕重煩惱轉壞相悉能知之。增上無能壞相者,言根品上上而無退動故遠隨共生不同相者,如一切衆生無始共生不離一性而隨分別根,性差別不同悉皆知之,乃至八萬四千如實知之,皆無錯謬。八知諸根已上知根差別解中知諸解,下中上性樂欲乃至八萬四千如文自具。新華嚴經論卷第二十七丙午歲分司大藏都監開板 1)두 번째 단락에 대해서 앞에서는 62행 반이라 하였고 여기서는 62행이라 하였기에 밝혀 둔다. 2)대장경에는 현(現)으로 되어 있으나 현토본에는 지(地)로 되어 있는데, 현토본이 맞을 뜻하여 그에 따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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