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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華嚴經 參考 資料

李通玄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28권 [장순용 譯]

작성자문수법공양회|작성시간24.09.18|조회수9 목록 댓글 0
신화엄경론 제28권



26) 십지품⑦

(9) 선혜지②
이상 해(解)와 성품과 욕락(欲樂)의 차별인 8만 4천을 안다는 것은 미혹하면 8만 4천 번뇌를 이루고 깨달으면 8만 4천의 해탈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다.
아홉째,1)모든 수면(隨眠)의 갖가지 상을 안다는 것은 모두 합쳐서 말한 것이다. 수면이란 것은 항상 미혹의 오염과 더불어 상응해서 일념요각(一念了覺)의 상념이 없음을 이름하여 수면이라 함을 밝힌 것이다. 이른바 오염된 마음과 공생하는 상이란 것은 명색(名色)이 마음과 더불어 공생함을 인(因)하기 때문에 이 명색이 자기 마음으로부터 일어남을 미혹해서 집착으로 외유(外有)를 삼고, 마침내는 오염된 마음을 낳아서 명색과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마음과 더불어 공생하는 상이라 말함을 밝힌 것이다. 마음이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는 차별상이란 것은 일체 중생의 마음과 경계의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는 차별상을 모두 능히 앎을 밝힌 것이다. 영원히 행을 따르는 상(相)과 무시 이래로 뽑아내지 못하는 상이란 것은 무시 이래로 항상 5온(蘊) 12연(緣)과 함께 하면서도 일찍이 일념의 각심(覺心)이 관(觀)으로써 뽑아내지 못함을 밝힌 것이다.
일체의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삼마발저(三摩鉢底)와 신통과 함께 하는 상과 어긋나는 상이란 것은 마음과 경계가 자체성이 없어서 이동할 만한 것이 없음을 이름붙여 선(禪)이라 하며, 마음이 없어지매 모든 계박이 멸진하는 것을 해탈이라 이름불이며, 삼매란 것은 가라앉거나 들뜨는 것이 없음이며, 삼마발지란 것은 올바른 지혜이며, 신통이란 것은 정정(正定)의 흐트러지지 않음으로 상응한 바른 지혜가 신통하여 걸림이 없어서 스스로 상응하는 것이니, 수면 번뇌는 이런 것과 어긋나기 때문에 삼계의 상속과 생을 받는 계박의 상(相)을 모두 다 알아봄을 밝힌 것이다. 가없는 마음을 상속하고 현기(現起)하게 하는 상이란 것은 수면이기 때문이며, 모든 처(處)의 문을 여는 상이란 것은 수면이기 때문이니, 삼계 육도의 생을 받는 문을 여는 것이다.
견고하고 실다워서 다스리기 어려운 상이란 것은 집착이 깊고 무명이 두텁기 때문에 근본지를 미혹하는 것이며, 지처(地處)를 성취하고 성취하지 못하는 상이란 것은 열 가지 중에서 성취하고 성취하지 못하는 상을 밝힌 것이며, 오직 성도(聖道)로써 뽑아내는 상이란 것은 앞서와 같은 수면의 번뇌를 성도로써 하지 않으면 능히 제도해 뽑아낼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니, 이상은 이 지위의 보살이 수면의 번뇌상을 앎을 밝힌 것이다.
열째, “또 생을 받는 갖가지 상을 안다”는 것은 모두 합쳐서 말한 것이다. 이른바 업에 따라 생을 받는 상이라 한 것은 이 단락에서 열세 가지 업에 따라 생을 받는 인연의 상(相)이다. 6취(趣)의 차별상이란 것은 하늘ㆍ사람ㆍ아수라ㆍ축생ㆍ아귀ㆍ지옥 등의 차별상이며, 유색과 무색의 차별상이란 것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상이며, 유상(有想)과 무상(無想)의 차별상이란 것은 유상은 욕계와 색계에 통하고, 무상이란 것은 무색계의 천을 모두 든 것으로서 그 가운데서 생을 받는 차별상을 모두 다 알아보는 것이며, 업이 발이 되고 애(愛)가 윤(潤)이 되고 무명이 덮어 주로 식(識)이 종자가 되어서 모두 명색과 더불어 함께 생겨나 총체적으로 서로 여의지를 않으니, 이처럼 일심의 경계를 미혹해 후유신(後有身)을 낳아서 전전(轉轉)히 인(因)이 되어 단절치 않는 것이 실로 자체성이 없는데도 망령되게 다생(多生)을 짓는 것을 이같이 다 아는 것이다.
어리석음과 애착으로 희구해서 상속(相續)이 있는 상이란 것은 자기 마음의 성품도 없고 낳음도 없는 지혜를 미혹함으로써 모든 선악에 대해 늘 희구함이 있기 때문에 생의 상속이 있는 것이다. 욕수욕생(欲受欲生)이란 것은 일체 명색에 대해 늘 받아들이고자 함이 있기 때문에 곧 생이 있는 것이니, 애착이 생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마음의 체성이 없음을 비추니 곧 경계가 일어날 바가 없어서 마음과 경계가 모두 없어 업의 체(體)가 문득 물러가고, 오직 보광명지(普光明智)만이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는 것이다. 즉 무명이 멸진하니 열두 가지 허망한 연(緣)이 멸진하고, 오직 법계만이 걸림 없이 자재로워서 지혜와 자비의 자재로운 연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성품에 능소(能所)가 없어서 자타(自他)가 체(體)가 동일한데도 망령된 계교를 따라 미혹을 보이는 것이니, 이러한 등의 연생(緣生)을 실답게 알아보는 것이다. 무시 이래의 즐거움에 대한 집착과 망령되이 삼계를 벗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희구하는 바가 있음으로써 망령되이 삼계를 벗어났다고 말하는 것과 나아가 3승의 해탈은 다만 삼계 밖에 거친 티끌의 변화생사신을 받는다. 그러나 가령 미세한 변화신이 한 티끌 안에 모두 찰해를 담아서 일체의 불사(佛事)가 모두 그 안에 있는 것은 오직 1승 지혜신(智慧身)만이 가려내는 바임을 밝힌 것이니, 이상은 생을 받는 갖가지 상을 아는 것이다.
열한째, 또한 습기의 갖가지 상을 아는 것이다. 행하고 행하지 않는 차별상이라는 것은 이 지위의 보살이 습기의 행하고 행하지 않는 차별상을 앎을 밝힌 것이며, 취(趣)를 따라 훈습(熏習)하는 상(相)이란 것은 하늘과 사람과 6도의 생을 받는 것에 따르는 취(趣)에 따른 습기의 상을 밝히는 것이니, 이른바 경계에 의거해 얻지 않는 것이다. 중생의 행에 따르는 훈습의 상이란 것은 타인이 짓는 행을 보고 그 일에 따라 오염을 일으킴을 밝히는 것이니, 선과 악을 유례(類例)하여 알아라. 업의 번뇌를 따라 훈습하는 상이란 것은, 이른바 다른 경계에 의거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남을 일컫는 것이니, 이 같은 훈습을 다 아는 것이다. 선과 불선과 무기의 훈습하는 상이란 것은 비록 선을 행하고 비록 불선을 행하지만 선도 기억치 않고 불선도 기억치 않는 것이 바로 무기의 훈습하는 상이다. 후유(後有)을 이룸으로써 훈습받는 종자를 또한 다 아는 것이다. 차제(次第)의 훈습하는 상이란 것은 가령 삼계의 업이 있는데 어떤 업의 종자가 뛰어난가를 소승(所乘)의업에 의거해 차례로 훈습하는 것이며, 또한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가 하나하나 차례로 훈습하는 상인 것이다. 번뇌를 끊지 않고 원행(遠行)을 버리지 않는 훈습의 상이란 것은 바로 제7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와 제7 원행지(遠行地)가 8만 4천 번뇌로서 모두 다 동사(同事)하기 때문이다.
실답고 실답지 않은 훈습의 상이란 것은 실(實)인 듯하고 허(虛)인 듯한 것을 모두 다 알아보는 것이며, 보고 듣는 것으로 성문과 독각과 보살과 여래를 친근하는 훈습의 상이란 것은 2승을 친근히 해서 고(苦)을 싫어하고, 공(空)을 닦아서 대자비의 습(習)을 버리고, 보살을 친근히 해서 공을 닦고 아(我)를 타파하여 대자비의 습을 성취하며, 여래를 친근히 해서 근본 보광명지를 성취하고 법계를 원만히 총괄하여 보현행의 습을 갖추는 것이니, 이상은 모든 습기의 상을 아는 것이다.
열두째, 또한 중생의 사정(邪定)과 정정(正定)의 부정상(不定相)을 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견정정(正見正定)과 사견사정(邪見邪定)의 상이란 것은 두 법상(法相)이 다만 정견이라야 곧 정정이 있는 것이다. 정견이란 것은 사념이 없어지고 지혜가 현전하니 정(正)과 사(邪)의 견(見)이 다하고 정(定)과 난(亂)이 모두 없어져서 얻음도 없고 증명도 없으며 낳음도 없고 멸진함도 없음을 이름하여 정견이라 하고, 마음이 이 이(理)에 부합하는 것을 이름하여 정정이라 하며, 이와는 반대로 지음〔作〕도 있고 함〔爲〕도 있는 것이 곧 사정(邪定)이 된다. 2구부정상(俱不定相)이란 것은 가령 욕계의 중생과 아직 정업(正業)을 닦지 못한 자가 둘 다 부정(不定)인 것이다. 5역사정상(逆邪定相)이란 것은 2승이 무명과 탐애(貪愛)와 능소와 각심(覺心)과 모든 결사(結使)를 가리키는 것을 이름하여 5역이라 하는데, 무명으로 아버지를 삼고 탐애로 어머니를 삼고 경계를 깨달은 식(識)으로 부처를 삼고 모든 사(使)로 나한을 삼고 음집(陰集)을 이름하여 승(僧)이라 하므로 끊임없이 차례대로 끊어야 하니, 『능가』에서 설한 대로이다.
5근정정상(根正定相)이란 것은 신근(信根)과 진근(進根)과 염근(念根)과 정근(定根)과 혜근(慧根)과 같은 5근의 닦는 바를 이름하여 정정(正定)의 상이라 한다. 2구부정상(俱不定相)이란 것은 정(正)과 사(邪)의 두 일이 총체적으로 자체성이 없는 것이다. 8사사정상(邪邪定相)이란 것은 삿된 말과 삿된 업과 삿된 염(念)과 삿된 정진과 삿된 정(定)과 삿된 사유와 삿된 명(命)과 삿된 견(見)이 의식과 말나(末那)가 지은 바에 의지하는 것이니, 바른 지혜의 행한 바를 의지해서 움직임과 작용이 모두 정(定)한 것이 정정의 상이 된다. 정성정정상(正性正定相) 이란 것은 일체법에 대해 사념도 없고 상도 없고 분별도 없는 것이 올바른 성품이 되는 것이니, 바로 이 올바른 성품이 정정의 상이 되는 것이다. 다시 2구리부정상(俱離不定相)을 짓지 않는다는 것은 정(正)과 사(邪)를 다 버려서 정(定)과 난(亂)이 없어야 비로소 진(眞)에 이르는 것이다. 깊이 사법(邪法)과 사정(邪定)에 집착하는 상이란 것은 상을 취하는 중생이 모든 견(見)을 즐겨 구함으로써 설사 정(定) 중에 들어갈지라도 오히려 모든 상을 취하는 것을 이름하여 사법사정상(邪法邪定相)이라 함을 밝힌 것이다.
습행성도정정상(習行聖道正定相)이란 것은 모든 법공(法空)을 닦아서 상(相)도 없고 성(性)도 없으며 지음도 없고 짓는 자도 없는 것을 이름하여 성도(聖道)라 하고, 그 마음이 생멸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정정(正定)이라 하고, 또 4성제를 닦는 것을 이름하여 성도라 하고, 8선(禪)을 닦아서 9차제정(次第定)에 들어가는 것을 이름하여 정정이라 함을 밝힌 것이니, 9차제정이란 멸진정이라 이름한다. 이 멸진정에는 네 가지 멸진정이 있으니, 첫째 성문의 멸진정은 4제의 관(觀)으로써 식심(識心)이 소멸하니 현행 번뇌와 지혜도 또한 멸진하는 것이며, 둘째 연각의 멸진정은 12연을 관하여 소멸하니 현행 번뇌가 멸진하고 지혜도 또한 멸진하는 것이며, 셋째 권교의 보살은 12연과 4제를 관하여 고(苦)와 공(空)과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와 무인(無人)과 무중생(無衆生)과 무수자(無壽者)를 밝힘으로써 성(性)과 상(相)이 공적하여 도무지 결박한 바가 없으니, 6바라밀을 행하여 정토에 태어나고 혹은 의생신(意生身)을 따라 사바세계에 머물고 혹은 자비로써 미혹을 남겨 세간에 머문다고 말하는 것이니, 설사 적정(寂定)에 들어갈지라도 다만 무상(無相)의 이(理)를 따라 멸진하는 것은 법계 대용(大用)의 멸진을 얻기 못하였기 때문이다. 넷째 일승 보살은 여래의 보광명지에 의거해 발심함으로써 단지 근본 무명이 일체 모든 부처의 근본 보광명지임을 요달하는 것이니, 이 대지혜로 닦아 나감의 체(體)를 삼기 때문에 소유(所有)의 공적 작용이 모두 지혜문을 따르면서 일신(一身)의 적(寂)이 다신(多身)의 용(用)이고 다신의 적(寂)이 일신의 용(用)이며, 동신(同身)의 적이 별신(別身)의 용이고 별신의 적이 동신의 용이라서 이 같은 동별의 적용(寂用)이 자재로워 허공의 법계처럼 걸림 없이 자재하여 중중무애(重重無礙)한 것이니 가령 해당(海幢)비구가 이에 해당된다. 3승의 일체 법공을 10지(地)를 닦아 나가는 체(體)로 삼는 것이나 자체성 없는 이(理)를 10지의 체로 삼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니, 이런 것은 3승의 극과(極果)이기 때문이다. 2구사부정상(俱捨不定相)이란 것은 정(正)과 사(邪)를 다 버려서 정(定)도 없고 난(亂)도 없어야 비로소 진(眞)에 응하는 것이니, 이상은 정정사정상(正正邪定相)을 아는 것이다.
열셋째, “불자야, 보살은 이 같은 지혜의 명칭에 수순하여 선혜지에 머무는 것이니”의 2행 경문은 이 지(地)의 아는 바를 한꺼번에 매듭짓는 것이니,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열넷째, “불자야, 이 보살이 4승의 법을 능히 잘 연설하고 아울러 중생의 모든 취(趣)와 생을 받는 것을 능히 따르는” 것이니,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세 번째 단락 4지문(智門) 중 긴 행의 36행 경문을 세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이하 “법을 연설하다”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선교(善巧)의 지혜로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를 일으킴을 밝힌 분이다.
둘째, “이 보살이 항상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를 따라서” 이하 “걸림 없는 지혜를 즐겨 설한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의 명칭을 올바로 듦을 밝힌 분이다.
셋째, “보살이 이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로써” 이하 31행 반의 경문은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가 작용을 따라 차별이 무한함을 밝힌 분이다.
이 한 단락은 이 지위가 대법사의 지혜 작용이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다. 여래의 법장(法藏)을 능히 잘 수호한다고 말한 것은 3승과 1승의 3장(藏)과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을 아울러서 이 보살이 잘 안립하는 것이니, 3장이란 것은 계(戒)ㆍ정(定)ㆍ혜(慧)가 일체의 법장에 통하기 때문이다. 보살의 언사(言詞)를 써서 법을 연설한다는 것은 부처가 정각의 체(體)가 되어서 분별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 여래가 소유한 출생과 멸도(滅度)와 중생을 제도하는 것과 법륜을 굴리는 것이 총체적으로 보살도임을 밝힌 것이다.
이하는 경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으니, 각각의 네 가지 지혜를 의거해 굴리는 법륜이 모두 귀착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즉 법무애지(法無礙智)로써 법신의 평등한 자성의 이(理)를 총체적으로 변명하고, 의무애지(義無礙智)로써 모든 법의 총별동이(摠別同異)를 능히 변명하고, 사무애지(詞無礙智)로써 설한 바가 오류나 잘못이 없고, 낙설무애지(樂說無礙智)로써 설한 바의 모든 법이 끊겨 다함이 없는 것이니, 이 같은 네 가지 지혜로써 일체의 법륜을 굴리는 것이 이를 여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아뇩지(阿耨地)가 네 강물을 유출해서 모든 세간을 윤택케 하고 모든 초목을 생장시킴이 저마다 차별이 있는데도 체(體)가 하나의 물인 네 강물을 여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한 단락의 10다라니문 중 28행 반의 경문은 다섯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보살이 제9지에 머물러서” 이하 “법을 연설한다”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에서 법사위를 얻어서 네 가지 걸림 없는 선교(善巧)의 지혜로써 열 가지 백만불가설 다라니문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둘째, “이 보살” 이하 “남을 위해 연설한다”에 이르기까지 3행 반의 경문은 스스로 부처의 처송서 백만불가설 총지문으로써 모든 법을 듣고 나서는 이를 잊지 않고 남을 위해 연설함을 밝힌 분이다.
셋째, “이 보살이 처음으로 부처를 친견하고는” 이하 “능히 영수(領受)하는 바이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이 보살이 처음 부처의 처소에서 얻은 법문은 성문이 백천겁으로도 능히 영수하지 못함을 밝힌 분이다.
넷째, “이 보살이 이 같은 다라니를 얻어서” 이하 “더불어 비할 바가 없다”에 이르기까지 3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법좌에 처해 법을 설하는 것이 대천계에 원만해서 중생의 심락(心樂)을 따름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보살이 법좌에 처해서” 이하 13행의 경문은 일음(一音) 중 마음이 염(念)하는 바에 따라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개해(開解)도록 하며, 아울러 무정으로써 또한 법을 설하게 함을 밝힌 분이다.
다라니라고 말한 것은 총지(摠持)의 뜻이며, 여래의 오묘한 법장을 얻는다는 것은 부처와 더불어 지혜가 합침을 밝힌 것이니 설하고 있는 10주 중의 명칭이 법왕자위(法王子位)가 되는 것이다. 의(義)다라니를 얻는다는 것은 법의 총별동이(總別同異)의 걸림 없는 문을 밝힌 것이며, 법(法)다라니란 것은 법신의 성품도 없고 작위도 없는 자성이 이(理)를 밝힌 것이며, 지(智)다라니란 것은 근기의 성품을 분명히 잘 구별해서 근기에 따라 법을 줌을 밝힌 것이며, 광조(光照)다라니란 것은 가르침의 광명의 방광으로 비추어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케 하는 것이며, 선혜(善慧)다라니란 것은 총지의 모든 선혜를 얻는 것이며, 중재(衆才)다라니란 것은 법재(法財)와 세재(世財)가 모두 구족함을 밝힌 것이며, 위덕(威德)다라니란 것은 일체를 총지하여 3천의 위의(威儀)와 8만의 세행(細行)이 모든 구족해서 중생 중 보는 자를 다 해탈케 함을 밝힌 것이며, 무애문(無礙門)다라니란 것은 지혜가 걸림이 없고 언사가 걸림이 없고 의(義)가 걸림이 없고 요설(樂說)이 걸림이 없고 신통이 걸림이 없음을 밝힌 것이며, 무변(無邊)다라니문이란 것은 지은 바가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무한한 것이며, 무변(無邊)다라니문이란 것은 지은 바가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무한한 것이며, 종종의(種種義)다라니문이란 것은 능히 일체 갖가지 법문을 안립하는 것이며, 백만아승기의 선교(善巧)라 말한 것은 백만불가설 지혜문의 선교로서 온갖 근기로 하여금 능히 다 칭당(稱當)케 함을 밝힌 것이다. 이하는 경문에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다섯 번째 단락 16행 반의 경문을 뜻에 따라 두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이 보살” 이하 “널리 일체를 위해 의호(依怙)하는 바를 짓는다”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나아가 한량없는 세계의 중생이 일시에 모두 한량없는 언음(言音)으로써 어려움을 물을지라도 일시에 영수(領受)하고 또한 일음(一音)으로 그들을 위해 해석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환희케 함을 밝힌 분이다.
둘째, “불자야” 이하 “잃어버림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능히 시방의 한량없는 곳에 모두 불가설미진수의 모든 부처들의 회상이 있는데 하나하나의 부처가 모두 한량없는 불가설미진수 중생의 성품이 욕구가 같지 않음을 따르면서 설한 불가설 법문을 받아서 이 지위의 보살이 모두 능히 영수함을 밝힌 분이니, 이상은 경문에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여섯 번째 29행 반의 경문은 뜻에 따라 다섯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보살이 이 제9지에 머물러서” 이하 “모든 장엄구를 더불어 비할 자가 없다”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모든 부처를 친근히 해서 공양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 넓고 많은 것과 아울러 진금(眞金)으로 윤왕(輪王)의 보관(寶冠)을 지으니 소왕(小王)이 그만 못하다는 비유를 밝힌 분이다.
둘째, “이 9지 보살” 이하 “다만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른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2승과 하지(下地)의 보살이 같지 않은 것과 아울러 역바라밀(力波羅蜜)로 수행할 바를 삼음을 들음을 밝힌 분이다.
셋째, “불자야” 이하 “또한 능히 다하지 못한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이 지위에 있는 보살의 지덕(志德)이 광대함을 대략적으로 설함을 밝힌 분이다.
넷째, “불자야” 이하 “지지(智智)에 의지하는 자”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직분을 받아서 통화(統化)함이 광대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이 보살” 이하 “게송을 설한다”에 이르기까지 5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정진을 가하는 업과 뛰어난 원력으로 권속이 배가함으로써 광대하고 자재로움을 밝힌 분이다.
일곱 번째 한 단락 48행의 게송은 앞서의 법을 거듭 읊은 것이니, 경문에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이 이사의 대강(大綱)은 다만 지혜 경계를 따라서 지덕(智德)이 부처를 뵙고 공양하는 것과 중생을 다스리는 것과 나아가 권속이 광대함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 가고 오는 자타(自他)가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니, 다만 지혜의 경계로써 대현(對現)하기 때문이다. 가령 일체지지의 의지하는 자라는 것은 진(眞)과 속(俗) 두 지혜를 닦는 자의 의지할 바임을 밝힌 것이니, 6지는 진과 속 두 지혜가 현전하는 것이며, 7지는 오직 사물을 이롭게 하는 데 있는 것이며, 8지와 9지는 행이 원만해서 운(運)에 맡기는 것이며, 10지는 불력(佛力)이 바야흐로 끝남을 밝히는 것이다. 여래의 위 없는 양족존(兩足尊)이라 말한 것은 이 眞과 俗 두 지혜가 원만함을 밝힌 것이니, 이처럼 두 지혜를 닦는 자의 의지할 바임을 밝힌 것이다.

(10) 법운지(法雲地)①
장차 이 지(地)를 해석하는데 다섯 가지 문은 앞서와 같다.
첫째, 지의 명목을 해석한다는 것은 이 지가 어째서 그 명칭이 법운지인가를 밝힌 것이다. 이 보살이 법왕의 지위에 오르니 지혜가 원만하고 행이 두루 하여 대자비의 구름으로 모든 생사의 바다에 널리 법우(法雨)를 내려서 일체 중생의 마음 밭에 부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의 싹을 오래 기르도록 하는 것을 쉬지 않기 때문에 이로써 그 명칭이 법운지가 됨을 밝힌 것이니, 이 지(地)가 초발심으로부터 이 지혜의 지(地)에 들어가 부처 집안에 태어나서 승진 수행으로 이 지(地)에 이르니 대자비 원력의 공(功)이 종결되고 행이 원만하기 때문에 늘 법우를 내림을 밝힌 것이다.
둘째, 이 지가 어떤 행문을 닦는가를 밝히자면, 이 지는 지혜바라밀을 닦는 것을 주(主)로 삼고 나머지 아홉은 반(伴)이 된다.
셋째, 선재동자의 법을 나타냄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선재동자가 이 지위 중 보살집회보현법계광명강당(菩薩集會普現法界光明講堂) 안의 무우덕신(無憂德神) 및 1만의 주궁전신(主宮殿神)이 다 함께 와서 선재동자를 영접하고 아울러 칭찬하고 공양하면서 보살집회보현법계광명강당에 이름을 본 것은 이 지위 보살의 지혜와 자비의 행을 모으는 것이 원만함을 밝힌 것이다. 그 신들이 선재동자를 좇아 보현법계광명강당에 들어가서 석씨(釋氏)의 여인인 구파(瞿波)가 보련화 사자좌에 앉으니 8만 4천 채녀(婇女)가 다 함께 둘러쌈을 본 것에서 보살집회보현법계광명강당이란 것은 바로 이 두 지혜를 의거한 과보로 얻은 것이니 이는 지혜 경계로서 당체(堂體)를 지음을 밝힌 것이며, 석씨의 여인이 그 가운데 처한 것은 여인이 비(悲)의 체(體)가 됨을 밝힌 것이라서 지혜 안에서 자비를 행함을 나타낸 것이니, 7주(住)와 7지(地)는 자비 중 지혜를 닦는 것이며, 8지는 지혜 중 자비를 행하는 것이며, 8만 4천 채녀가 다 함께 둘러싼 바가 있는 것은 보광명의 대지혜 행으로써 일체 중생의 8만 4천 번뇌와 같이하면서 다 함께 동행하는 것이 자비의 극(極)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여인으로써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일체 중생의 8만 4천 번뇌와 낙욕(樂欲)이 같지 않은데도 보살이 대자비심으로써 모두 그 행을 같이함으로써 방편으로 이끌고 자비심으로 중생을 양육하기 때문에 여인으로 나타낸 것이지 홀로 여인으로만 삼은 것은 아니다. 구파(瞿波)란 것은 한역하면 수호지(守護地)이니, 이 법운지의 원력과 지혜와 자비가 모두 이미 원만하고 다만 일체 중생의 심지(心地)를 항상 수호하는 것으로 지체(地體)를 삼음을 밝히기 때문에 그 명칭이 수호지인 것이다. 신의 명호가 무우덕(無憂德)이란 것은 이 지(地)의 자비와 법열의 행이 원만한 지위인 것이며, 1만의 주궁전신과 함께 와서 선재동자를 영접하는 것은 이 지혜 안의 자비로 중생을 이끌어 제접하는 만행을 나타낸 것이며, 주궁전신이란 것은 자비가 궁(宮)이 되고 지혜가 전(殿)이 됨을 밝힌 것이니, 늘 지혜와 자비로 주(主)를 삼아서 일체 중생을 주도하여 모두를 깨달아 들어가게 함을 밝힌 것이며, 이 구파라는 여인이 스스로 본인(本因)을 설하면서도 구원(久遠)이래로부터 늘 부처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은 지혜와 자비가 홀로 있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하여 지혜와 자비가 늘 서로 여의지 않는다는 것이 부처의 아내라는 뜻이 됨을 나타낸 것이며, 또 10지 대지혜와 자비의 법열이 아내의 뜻과 같음을 나타낸 것이니, 이것은 세간사에 의탁해서 법을 나타내기 때문에 다만 그 뜻의 정황을 지혜와 자비로써 중생을 제도해 기르는 행을 취하는 것이지 실제로 욕애(欲愛)가 있는 범부의 아내와는 같지 않은 것이니, 이는 사(事)에 의탁해 법을 나타내서 알기 쉽게 한 것이다.
가령 비로자나는 법계의 주(主)로서 세속을 이끌어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화불(化佛)과는 같지 않은 것이며, 이 같은 모든 여인이 다 왕의 종자로부터 생기는 것은 이 지위의 자비가 지혜로부터 생김을 밝힌 것이니, 지혜로써 생사의 법 가운데 왕 노릇을 하여 자재로움을 얻는 것을 이름하여 왕이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비가 지혜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제7지로부터 제8지에 이르는 것은 자비로부터 지혜를 닦는 것이 이미 원만하매 공용 없는 지혜의 작용에 들어가는 것이며, 8지로부터 9지ㆍ10지에 이르는 것은 지혜로부터 본원력을 따라 공용 없는 자비를 닦는 것이 원만함을 밝힌 것이며, 11지에 이르는 것은 공용 없는 대자비로써 대지혜의 부처를 환생(幻生)하여 찰해에 두루 함으로써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곧 마야(摩耶)를 어머니로 삼아서 모든 부처를 두루 낳아 중생을 교화하는 것으로 나타낸 것이니, 보리심을 발한 자가 이 같은 역순(逆順)의 수행(修行)을 반드시 밝게 이해해서 닦아 나감에 잘못이 없도록 해야 한다.
넷째, 이 지(地)가 삼계 안에서 어떤 법을 얻는가를 밝힌다는 것은 이 지(地)가 시방 삼계에서 법계 보광명의 대지혜를 얻어서 대자대비가 운(運)에 맡겨 원만하기 때문에 대법운(大法雲)으로써 널리 지혜의 비를 내려서 부처의 직분을 받는 문(門)을 밝히는 것이니, 가령 선재동자가 들어간 구파녀(瞿波女)의 강당이란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지혜가 능히 늘 허공계와 동등한 일체 중생의 8만 4천 번뇌와 모든 근욕(根欲)과 함께 하면서 법으로 대치하여 해탈함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함을 밝힌다는 것에서 두 가지 뜻은 앞서와 같으며, 그 중 첫 번째로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은 이 10지 한 단락 경문으로부터 열다섯 단락을 장과하겠다.
처음 한 단락의 32행 게송을 두 단락으로 장과하겠다. 첫째, “정거천(淨居天)의 대중” 이하 28행의 게송은 정거천의 대중이 법을 듣고 공양을 일으키는 것과 아울러 불덕(佛德)의 광대무변함을 봄을 밝힌 분이다. 정거천은 바로 9지 보살 대중이니 제3선천(禪天)의 대중이며, 이후의 10지는 제4선의 지위이다. 초지에서부터 염부제왕을 많이 짓고 2지는 도리천왕이니, 차례로써 배열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승진의 자재로움이 천(天)과 같음을 나타낸 것이지 단지 천왕만을 지은 것은 아니라서, 행의 두루 하고 자재로운 하나하나의 지위가 마치 천(天)과 같음을 밝힌 것이니, 이것은 총체적으로 제1의천(義天)과 일체지천(一切智天)을 밝힌 것이지 모든 천의 하품(下品)인 10선(善) 업과의 보생천(報生天:과보로 태어나는 천상계)과는 같지 않다. 둘째, “바로 그때 해탈월보살” 이하 4행의 게송은 제10지와 행문을 청함을 밝힌 분이니, 그 가운데 문장의 뜻은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세 번째 한 단락 긴 행의 68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연화좌에 앉아 대법사가 되어서 10지에서 부처의 대직위(大職位)를 받음을 밝힌 분이다.
네 번째 한 단락 긴 행의 22행 반의 경문은 시방 모든 부처가 모두 지혜 광명을 놓아 관정(灌頂)함으로써 부처 직위와 동등함을 허가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 번째 한 단락 36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광대하면서도 미세한 차별지에 들어가서 모든 집제(集諦)를 잘 앎을 밝힌 분이다.
여섯 번째 한 단락 7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열 가지 대해탈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일곱 번째 단락 45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일념 사이에 능히 시방에 있는 모든 부처의 법의 밝음을 받아서 모두 능히 영수하는 것과 아울러 시방에 능히 법우(法雨)를 내리는 것이 자재로음을 밝힌 분이다.
여덟 번째 단락 35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염(念)을 따라서 광대함과 미세함, 크고 작음, 일(一)과 다(多)가 서로 들어가면서 통화(通化)가 자재로움을 밝힌 분이다.
아홉 번째 한 단락 18행 반의 경문은 이 대중이 10지 보살의 신통을 듣고 의심을 냈을 때 금강장보살이 체성(體性) 삼매에 들어가 보살의 신통을 나타냄으로써 대중을 위해 의심을 없앰을 밝힌 분이다.
열 번째 단락 27행의 경문은 이 지(地) 보살의 지혜와 신통력은 아래 지(地)와 같지 않으나 여래의 신력과 지혜에는 비교할 수 없음을 밝힌 분이다.
열한 번째 단락 35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여래의 신(身)ㆍ어(語)ㆍ의(意)의 업과 다르지 않으면서도 보살의 모든 삼매력을 버리지 않고 무수한 겁에 걸쳐서 일체 모든 부처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함을 밝힌 분이다.
열두 번째 단락 42행 반의 경문은 10대 산왕(山王)을 들어서 열 가지 지(地)의 차제(次第) 방편으로 행할 바의 지혜에 비유함을 밝힌 분이다.
열세 번째 단락 14행의 경문은 대해(大海)가 열 가지 덕이 있음을 들어서 열 가지 지의 승진에 비유함을 밝힌 분이다.
열네 번째 단락 20행 반의 경문은 마니주가 열 가지 성품이 있어서 온갖 보배를 능가하는 것으로서 열 가지 지가 온갖 성(聖)을 능가함을 비유함을 밝힌 분이다.
열다섯 번째 단락 22행 반의 경문은 이 10지 법문을 설할 때 감동한 바의 대지가 여섯 가지 18상(相)으로 진동하는 것과 공양을 일으키는 것과 아울러 시방의 금강장보살이 모두 와서 법을 증명함을 밝히 분이다.
열여섯 번째 단락 83해의 게송은 앞서의 법을 거듭 읊음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2)로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에 이어서 처음 한 단락 긴 행의 68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10지에서 부처 지위의 직분을 받음을 밝히고 있다. 이 한 단락을 다시 열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처음 이때 금강장보살” 이하 “직위를 받는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초지부터 제9지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복과 지혜를 닦아서 대자비행이 원만하매 중생계에 들어가 여래의 행하는 바에 들어감을 밝힌 분이다.
둘째, “불자야” 이하 “일체지의 뛰어난 직위를 받는다”에 이르기까지 8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열 가지 삼매와 일체 모든 삼매의 현전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셋째, “이 삼매의 현재와 전시(前時)” 이하 “권속으로 삼는다”에 이르기까지 7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삼매력의 복덕(福德)이 강응하는 과보로써 연꽃이 출현함을 밝힌 분이다.
넷째, “이때” 이하 “일심으로 우러른다”에 이르기까지 3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과 모든 권속 보살이 몸이 화좌(華座)에 처하여 꽃과 더불어 양이 동등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불자야” 이하 “모든 부처들의 회상이 모두 다 현현하다”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화좌에 앉고 나니 언음(言音)이 널리 시방에 충만하고 세계가 자연히 진동하고 일체 악음(樂音)이 스스로 올리는 것과 아울러 불사의한 공양의 도구로써 부처에게 공양함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 “불자야” 이하 “불퇴전을 얻는다”에 이르기까지 24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법좌에 처해 광명을 놓아 중생을 교화하는 것과 부처에게 공양함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 “불자야” 이하 “모든 여래의 발밑으로부터 들어가서”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놓은 광명이 시방계를 둘러싸서 부처의 발밑으로 들어감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 “이때” 이하 “직위를 받는 데 이른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시방의 모든 부처와 보살이 모두 다 이 지위의 보살이 직위를 받음을 앎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 “불자야” 이하 “저마다 십천(十千) 삼매를 획득한다”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9지 보살이 모두 와서 공경하고 이익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열째, “바로 이때” 이하 5행 반의 경문은 시방에서 똑같이 직분을 받은 보살이 억덕(臆德)의 광명을 놓아 시방을 널리 비추고, 이 보살의 억덕에 들어와서 세력을 증장케 하는 것이 백천(百千) 배를 넘어섬을 밝힌 분이다.
첫 번째 단락 7행의 경문은 초지부터 제9지에 이르기까지 분수대로의 백정법(白淨法)으로 조도(助道)의 행을 닦고 온갖 법을 관찰하고 복덕과 지혜를 닦아 익히고 대자비를 널리 행하고 아울러 10지의 근본 지혜와 자비의 지(地)를 성취함으로써 이 지에 이르러 원만함을 밝힌 것이니, 원래 일체 모든 부처의 지혜와 자비의 지를 거느리는 것으로써 5위의 수행을 지은 것이기 때문에 초발심주부터 이미 모든 부처의 지지(智地)에 이름을 밝힌 것이다. 초발심부터 다섯 가지 발심이 있어서 일념을 여의지 않으니, 다섯 가지 초발심이란 것은 첫째 10주의 초발심이며, 둘째 10행의 초발심이며, 셋째 10회향의 초발심이며, 넷째 10지의 초발심이며, 다섯째 11지의 초발심이다.
이처럼 5위의 초발심은 모두 여래의 근본지와 다름없이 초발심을 일으키는 것이니, 지혜의 체가 시종(始終)이 없기 때문에 이 5위의 초발심도 다 시종이 없는 것이다. 이는 정식(情識)으로 능히 볼 수 있는 바가 아니고 시일세월(時日歲月)이 거둘 바도 아니니, 이 같은 5위가 모두 일시에 발하기 때문이다.
첫째, 가려 10주의 초발심은 곧 그 마음을 그쳐 흐트러뜨리지 않음으로써 여래의 근본 지혜를 개발하기 때문에 곧 묘봉산의 덕운비구가 모든 부처의 지혜광명을 억념(憶念)하는 문을 얻은 것이다. 산(山)이란 것은 지(止)이니, 곧 처음 범부지에서부터 마음을 그쳐 흐트러뜨리지 않으니, 곧 부처의 지혜가 나타나서 여래의 지혜지(智慧地)에 들어가는 것을 이름하여 초발심주(初發心住)라 한다.
둘째, 10행의 초발심은 곧 모든 부처의 지혜 안에서 행마다 오염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즉, 삼안국(三眼國) 선견(善見)비구가 숲 속에서 경행하는 것은 행의 오염 없음을 나타낸 것이며, 숲 속의 경행은 행의 머묾 없음을 나타낸 것이며, 3안(眼)은 불안(佛眼)ㆍ법안(法眼)ㆍ지안(智眼)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스스로 여래 지혜의 3안을 얻어서 다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행에 집착할 바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셋째, 10회향 초발심에서 육향(鬻香)장자인 청련화로써 하는 것은 곧 모든 향을 화합해 팔아서 거처함을 밝힌 것이니, 곧 10회향문으로 무한한 대원문(大願門)을 일으켜 자비와 지혜의 법신을 융화해 균등케 함으로써 평등히 나아감을 밝힌 것이며, 청련화란 것은 모든 묘한 향에 오염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넷째, 10지 초발심은 대자대비를 오래 길러서 뛰어나게 함을 닦는 것이다. 즉 야신파신파연저(夜神婆珊婆演底)는 한역하면 주당춘생신(主當春生神)인데, 대자비로 중생을 주관〔主當〕하여 보리의 싹을 발생케 함을 나타낸 것이다.
다섯째, 제11지는 작위 없는 운(運)에 맡긴 대자비로써 초발심하는 것이다. 즉, 마야부인이 모든 부처를 낳는 것으로 첫머리를 삼음은 곧 자비로부터 지혜를 낳아서 중생을 교화함을 밝힌 것이다.
이상과 같이 초발심은 다섯 가지 순역(順逆)의 같지 않음은 있지만, 총체적으로는 초심 속에 일시에 구족하여 먼저와 나중이 없기에 모두 법계의 대지혜로 체(體)를 삼기 때문에 먼저와 나중, 예와 지금의 견해를 설할 수 없는 것이다. 이 1단락 7행의 경문은 먼저와 나중, 예와 지금이 없는 대지혜와 대자비를 성취해서 법계와 중생계에 부처의 행이 원만하기 때문에 대법왕 직처(職處)에 이르러 중생의 생사 조림(稠林)에 들어감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 단락 중 8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이 직위 속에 들어가니 곧 열 가지 삼매와 일체 삼매를 얻음을 밝힌 것이다. 처음에 이구(離垢)삼매란 것은 정정(正定)을 말하는 것인데, 이 지(地)가 모두 오염과 청정ㆍ열반ㆍ자비와 지혜ㆍ공용의 균등치 못한 더러움을 여의기 때문에 그 명칭이 이구삼매임을 밝힌 것이니, 3승의 생사를 여의어서 열반과 정토를 취하는 더러움과는 같지 않으며, 또한 하지(下地) 보살의 지혜와 자비, 생과 사, 열반, 만행을 다스리는데 자재롭지 못한 더러움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이 지(地)의 보살이 이 같은 더러움을 여의기 때문에 그 명칭이 이구삼매인 것이니, 법계의 작위 없는 지인(智印)으로 모든 경계가 지혜 경계가 아님이 없음을 인(印)쳐서 다시 능소(能所)와 생사열반과 오염청정 등의 장애가 없기 때문에 그 명칭이 이구삼매임을 밝힌 것이다.
또 삼(三)이란 말은 정(正)이니, 정이란 것은 일(一)과 지(止)가 곧 이 정이란 글자임을 밝힌 것이다. 이 지의 보살이 하나의 대보광명지로써 성품이 스스로 의지함이 없음을 지(止)라 말한 것이니, 항상 이 지혜로써 모든 경계를 늘 비추는 것을 이름하여 정(正)이라 함을 밝힌 것이다. 매(昧)를 정이라 말한 것은 지혜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여 모든 견(見)에 미혹하지 않음을 이름하여 정(定)이라 하니, 초지부터 모든 방편과 보리를 돕는 분(分)을 닦아서 이 지(地)의 지은 바에 이르매 공행(功行)이 공이 없고 습기 역시 없기 때문에 그 명칭이 이구삼매임을 밝힌 것이다. 또 삼매라고 말한 것은 정수(正受)이니, 이 지위가 의지하거나 머묾이 없고 공용도 없는 지혜로써 스스로 두루 함에 맡기기 때문에 그 명칭이 이구삼매임을 밝힌 것이다. 이는 공용 없는 지혜가 스스로 두루 함이 맡기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입법계차별삼매(入法界差別三昧)라는 것은 공용 없는 지혜로 운(運)에 맡겨 용(用)을 따라서 사(事)에 응해 시위(施爲)하는 것이 차별지인 것이니, 용이 체(體)를 여의지 않아서 작위 없는 근본지도 여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장엄도량삼매(莊嚴道量三昧)란 것은 모든 부처가 도를 이루어 법을 굴리는 곳 속에 두루 이르러서 신행(身行)과 온갖 보배로 장엄하는 것이다. 일체종화광삼매(一切種華光三昧)란 것은 삼매행의 광명으로 일체 중생을 비추는 것이다. 해장(海藏)삼매란 것은 온갖 법을 갈무리함을 밝힌 것이니, 바다가 열 가지 덕을 갖춘 비유 같은 것이다. 해인(海印)삼매란 것은 대지혜 해인의 자성이 원만히 밝고 청정무구함으로써 3세의 모든 경계를 인(印)쳐서 모두가 그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다. 허공계광대(虛空界廣大)삼매란 것은 법공의 지체(智體)가 비추는 바의 자세가 한없이 두루 함을 밝힌 것이다. 일체법을 관하는 자성삼매란 것은 지혜로써 모든 법을 관조하니 자성도 없고 타성(他性)도 없이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다. 일체 중생의 심행(心行)을 아는 삼매란 것은 지혜로 근기를 알아서 근기에 따라 제도하는 것이다. 일체의 부처가 모두 현전하는 삼매란 것은 이구삼매와 체성(體性)삼매가 일체 모든 부처와 더불어 동일한 체상(體相)임을 밝힌 것이다. 여시(如是) 등 이하는 무수한 삼매가 모두 나타나 앞에 있음을 총체적으로 드는 것이다.
보살이 이 일체 삼매에 들어가거나 일어날 때 모두 선교(善巧)를 얻는다는 것은 일신(一身)이 들어가서 다신(多身)이 일어나고 다신이 들어가서 일신이 일어남을 밝힌 것이며, 일어난 가운데 들어가고 들어간 가운데 일어난 것이며, 또 하나의 삼매 속에서 많은 중생의 심행이 행하는 것과 많은 삼매의 경계를 분별하여 많은 중생을 가르치면서도 때〔時〕를 잃지 않는 것이다. 최후의 삼매를 이름하여 일체의 뛰어난 직위를 받는다고 한 것은 이 10지에서 지혜가 원만하고 행이 두루 하매 평등하고 작위 없는 대자비로 운(運)에 맡겨 세간에 처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정(定)이니, 이같이 수많은 삼매가 모두 체성의 작위 없는 법신인 법계 보광명지의 적용(寂用)이 걸림 없는 삼매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이 같은 삼매는 3승의 적정을 닦는 자와 삼계를 벗어나길 구하는 자와 정토에 태어나길 즐기는 자의 경계가 아니고 일체 무명을 요달해서 문득 대지혜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는 문득 일체 중생의 신토미진(身土微塵)으로 불국(佛國)을 모두 포함한 자의 경계이니, 이 적용(寂用)의 의지함이 없는 대지혜 삼매가 일체 모든 부처 근본지의 체용이 무진장인 왕이니 능히 일체 중생의 무한한 정의(情義)를 따라서 교화가 때를 잃지 않으면서도 작자(作者)가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이 삼매가 앞에 나타나 있을 때” 이하 7행 반의 경문은 직분을 받은 보살이 과보로 꽃이 생김을 기준으로 함을 밝힌 것이니, 경문에서 “이 삼매가 앞에 나타나 있을 때 커다란 연꽃이 홀연히 출생했다”고 한 것은 직분을 받은 보살이 스스로의 자비와 지혜의 행이 원만하매 법이 응당 법계에 균등히 두루 함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과보로 얻은 것이니, 이는 10지 중 최후의 삼매신(三昧身)이다. 그 꽃의 양이 백만 삼천대천세계와 동등하다는 것은 천개의 백억 4천하가 1소천(小千)이 되고, 천 개의 소천이 1중천(中千)이 되고, 천 개의 중천이 1대천(大千)이 되니, 지금 양이 백만 삼천대천세계라 말한 것은 그 뜻이 무한한 양을 강조하여 칭함을 밝힌 것이다.
이하의 장엄은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으니, 경문에서 “세간을 벗어난 선근의 생기하는 바”라고 말한 것은 삼계를 초월하는 정토 보살과 2승의 변역생사인 보살의 모든 선근으로 생기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법이 허깨비 같은 성품임을 알아서 온갖 행이 이루어지는 바라는 것과 항상 광명을 놓아 널리 법계를 비춘다는 것은 바로 선근의 인과에 짝지우는 것이다. 가령 연꽃이 비유리마니보(毘琉璃摩尼寶)로 줄기를 삼는다는 것에서 비(毘)라 말한 것은 광명이니, 유리로써 법신지신(法身智身)의 밝고 청정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니보의 빛나고 청정하고 무구한 것이 유리와 비슷한 것이지 유리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마니를 연꽃의 줄기로 삼은 것에서 줄기라는 것은 법신지신의 성품이 더러움이 없는 보과(報果)로써 법신의 지체(智體)가 일체의 모든 행과 더불어 근본을 짓기 때문에 지금 의과보(依果報)로 연꽃이 생긴 것이고, 또한 법신 지체의 성품이 스스로 청정한 것으로써 과보를 성취한 것이니, 이 때문에 빛나고 청정한 마니로 그 줄기를 삼은 것이다. 전단왕(旃檀王)을 대(臺)로 삼는다는 것은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인 5분법신향(分法身香)의 선근으로 생기한 바임을 밝힌 것이니, 법신이 능히 계ㆍ정ㆍ혜 등 5분법신향을 성취하기 때문에 지금 의과의 보득(報得)이 차례대로 서로 자량하는 것이다. 마노(瑪瑙)를 수염으로 삼는다는 것은 보리를 돕는 분(分)과 만행의 선근이 과보로 얻은 것이다. 이는 적색의 보배이니, 만행이 보리의 이지(理智)를 현발(顯發)하고 아울러 5분법신을 장엄하기 때문에 서로서로 자량을 발하여 차례대로 진열함을 나타낸 것이다.
염부단금(閻浮檀金)으로 잎을 삼는다는 것은 이 금의 밝고 청결하고 유연함은 바로 자비의 선근으로 낳은 바이니, 자비가 바로 감싸준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 꽃에 항상 한량없는 광명이 있다는 것은 지혜법광(智慧法光)의 중생을 이롭게 하는 선근으로 일어난 것이며, 온갖 보배를 장(藏)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 지(地)가 온갖 선을 갈무리하는 것으로 생긴 것임을 한꺼번에 매듭지은 것이며, 보배 그물이 덮였다는 것은 가르침의 그물을 잘 시설해서 모든 중생을 건지는 선근으로 생긴 것이며, 13천(千) 대천세계미진수의 연꽃을 권속으로 삼는다는 것은 1행이 일체행에 두루 하고 일체행이 1행에 두루 하는 선근으로 일어난 바이니, 이는 주(主)와 반(伴)의 만행이 자재로운 선근으로 일어난 바이다. 이상과 같은 꽃이 보광명전 안에서 처음으로 10신을 설할 때 여래 앞에 나타난 꽃이며, 모든 권속 대중은 여래 미간의 터럭 속의 대중이니, 앞에서는 과(果)를 들어 닦음을 권하는 것이며, 여기서는 행이 종결된 과(果)이다.
네 번째, “이때” 이하 3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법좌에 처하는데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칭합함을 밝힌 것이다. 화왕(華王) 위에 앉은 바란 것은 바로 근본지이며, 권속 보살이 모든 화좌(華座)에 앉은 것은 바로 차별지이니, 이 지위 보살의 지혜와 자비의 만행이 두루 함을 밝힌 것이니,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다섯 번째, “불자야” 이하 5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과 권속이 법좌에 처할 때 감동과 공양을 일으킴을 밝힌 것이니, 경문에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여섯 번째, “불자야” 이하 24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법좌에 처해 광명을 놓음으로써 고(苦)를 제도함을 밝힌 것이니, 하나같이 신분(身分)에 의거해서 차례를 지은 것이다. 발밑의 광명으로 대지옥의 고(苦)를 비춘 것은 발밑에 밟고 다니는 행의 극(極)으로써 고를 제도함을 밝힌 것이다. 다음 두 무릎에서 광명을 놓아 축생의 고를 비춘 것은 밟고 있는 차례가 무릎의 수고로움에서 말미암음을 밝힌 것이다. 다음 배꼽에서 광명을 놓아 염라왕계(閻羅王界)의 고를 비추는 것은 가령 대지옥에서는 왕의 다스리는 바가 없어서 극단적인 악업이 마치 번개처럼 곧바로 고취(苦趣)에 가지만, 소지옥에서는 왕의 다스리는 바가 있다. 배꼽이란 것은 온갖 더러움이 한가운데 쌓인 분(分)이며, 생사의 제(際)이며, 진(眞)을 미혹하는 극(極)이며, 생사의 원천인 것이 술해(戌亥) 두 별자리를 건괘(乾卦)에 짝지우는 것과 같으니, 이는 만상의 생사가 그 속에 있어서 광명을 놓는 것으로 비춘 것이다. 좌우의 옆구리에서 광명을 놓아 인중고(人中苦)를 비추는 것에서 옆구리는 거두어들이고 끼어 유지하는 곳이니, 인처(人處)에 거두어들일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두 손으로 광명을 놓아서 모든 천(天)과 수라(修羅)를 비추는 것은 인도하여 제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어깨로 광명을 놓아서 성문승을 비추는 것은 능히 법을 즐겨 들어서 번뇌를 대적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두 어깨는 귀에 가까우니, 이는 법을 들음을 인(因)해서 과(果)를 얻음을 밝힌 것이다. 항배(項背)로 광명을 놓아서 벽지불을 비춘 것은 법 듣기를 즐기지 않아서 부처의 지견을 등짐을 밝힌 것이다. 면문(面門)으로 광명을 놓은 것은 이 가르침을 받기 때문이며, 미간으로 광명을 놓은 것은 10지의 중도과(中道果)인 것이며, 정수리 위에서 광명을 놓은 것은 부처의 극과(極果)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일곱 번째로 “불자야” 이하 2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앞에서처럼 놓은 광명이 공양과 지은 바 사(事)를 마치자 시방 일체 세계 하나하나 모든 부처 도량의 온갖 회상을 둘러싸 열 번 돌고서 모든 여래의 발밑으로 들어감을 밝힌 것이다. 열 번 돈다는 것은 열 가지 법의 원만함을 밝힌 것이다. 광명이 부처의 발밑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과(果)를 돌이켜 인(因)으로 돌아감을 밝힌 것이니, 보광명전으로부터 10신의 마음을 일으킬 때 여래가 두 발밑의 족륜으로부터 광명을 놓아서 그 10신을 성취하며, 다음 10주는 부처의 발가락 끝에서 광명을 놓으며, 다음 10행은 부처의 발 등 위에서 광명을 놓으며, 다음 10회향은 무릎 위로 광명을 놓으며, 다음 10지는 부처의 미간 호상 안에서 광명을 놓고, 이제 이 10지의 도가 원만하고 과(果)가 종결되는 데 이르니, 첫 믿음의 법과 다르지 않아서 때〔時〕가 옮기지 않고 법이 다르지 않으며 인과가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10지의 도가 충만한 광명이 오히려 부처의 발밑으로 들어감은 과(果)와 인(因)이 같기 때문이며, 믿는 바의 법과 다르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여래는 과가 곧 인임을 보이는 것이고, 보살의 닦아 나감은 인이 곧 과이니, 이 때문에 이 10지의 지위에서 과를 돌이켜 연을 좇는 것이며, 이 때문에 광명이 모든 부처의 발밑으로 들어감을 밝힌 것이다. 또한 행이 원만하기 때문에 부처의 족륜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니, 발이 바로 행이기 때문이다. 이하 세 단락의 10행 경문은 경문에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네 번째3)로 장과(長科)한 단락 중 22행 반의 경문은 다시 네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이때 시방의 일체 모든 부처가” 이와 “불수(佛數)에 떨어져 있다”에 이르기까지 12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직분을 받으니 시방 모든 부처가 광명을 놓아 정수리에 부음을 입음을 밝힌 분이다.
둘째, “불자야, 마치 전륜성왕처럼” 이하 “또한 이름하여 전륜성왕이 됨을 얻는다”에 이르기까찌 6행의 경문은 전륜왕이 태자의 직분을 받을 때 4대해의 물을 그 정수리에 붓는 비유를 들음을 밝힌 분이다.
셋째, “보살이 직분을 받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이하 “불수에 떨어져 있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보살이 직분을 받을 때 일체 모든 부처의 네 가지 지혜의 물로써 그 정수리에 부어서 곧 불수(佛數)에 떨어짐을 발한 분이다.
넷째, “불자야” 이하 3행의 경문은 직분을 받은 지혜의 광명이 정수리에 부어지니 덕행(德行)이 배로 늘어남을 한꺼번에 매듭지은 분이다.
이상 네 단락의 경문은 10지의 지혜가 원만함으로써 법이 응당 모든 부처가 광명을 놓아 정수리에 부음을 밝힌 것이니, 지혜가 모든 부처의 지혜와 가지런하기 때문에 불과의 지혜로써 서로 인합(印合)하게 되는 것이며, 또 11지와 부처의 묘한 지혜를 일으켜 증장함으로써 성숙케 하는 것이니, 이 10는 부처의 지혜를 처음 나타내는 것이요 11지에서야 비로소 자재로운 것이다. 나머지는 경문에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다섯 번째로 한 단락의 36행 반의 경문은 이 지우의 법운지 보살이 모든 집제를 잘 앎을 밝힌 분인데, 다시 여덟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 “불자야” 이하 “일체지로 일체의 집(集)을 안다”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이 법운지가 일체의 집제(集諦)를 앎을 밝힌 분이다.
둘째, “불자야” 이하 “모두 실답게 안다”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열 가지 화법(化法)을 실답게 앎을 밝힌 분이다.
셋째, “묘한 실답게 안다” 이하 “모두 실답게 안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열 가지 지법(持法)을 실답게 앎을 밝힌 분이다.
넷째, “또 실답게 안다” 이하 “이 같은 것들을 모두 실답게 안다”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여래의 열 가지 미세한 지혜를 앎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또 여래의 비밀한 곳에 들어가서” 이하 “모두 실답게 안다”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여래의 열 가지 비밀을 앎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 “또 모든 부처를 안다” 이하 “모두 실답게 안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여래의 역순(逆順)의 겁이 서로 들어감을 앎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 “또한 안다” 이하 “보살행과 여래지”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 보살이 여래의 열세 가지 지혜를 앎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 “불자야” 이하 1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능히 여래의 광대한 지혜에 들어감을 밝힌 분이다.
첫째, “불자야” 이하 첫 단락에서부터 8행의 경문은 이 법운지가 모든 집계를 앎을 밝힌 것이다. 경문에서 “실답게 욕계의 집을 안다”고 한 것은 5온으로써 삼계가 다 함께 미혹한 것이니, 10사(使)의 번뇌가 4제 상의 제(諦)를 미혹한 무명을 따라서 1제(諦) 위에 10을 갖추고 있다. 즉 욕계의 집(集)에는 40개의 고집(苦集)이 있고, 이러한 고집멸도(苦集滅道)가 상계 2계에선 성냄을 없애서 각각 36이 있으니, 이는 유위선계(有爲禪界)의 고집(苦集)이다. 이 상계 2계의 선(禪)은 모두 작의(作意)를 식복(息伏)하는 것으로부터 얻기 때문에 삼계 유루(有漏)가 섭수하는 것이니, 선(禪)이 소진하고 상념이 일어나면 삼계를 왕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삼계가 모두 통틀어 백스물여덟 가지 번뇌의 집(集)이니, 이는 삼계 육도의 대체(大體)이며, 대략 5온을 5진(塵)과 10사에 짝지우면 무명을 서로 인(因)해서 총체적으로는 8만 4천과 헤아릴 수 없는 집이 있다. 8ㆍ9지 이전은 이미 짝지워 마쳤으니 앞서와 같이 알 것이며, 색계와 무색계는 이상과 같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법계의 집(集)이란 것은 일념의 진(眞)에 부합하는 지혜가 나타나매 이상과 같은 8만 4천과 불가심의 모든 진로문(塵勞門)이 모두 법계 대지혜의 해탈과 해탈지견의 집임을 밝힌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축적한 지혜의 바다를 일체종종지해(一切種種智海)라 이름붙인 것이다. 유위계의 집이란 것은 삼계에 있는 번뇌가 이에 해당되며, 또한 현행 번뇌를 절복(折伏)하는 3승에 통하는 것이니, 변역생사를 얻어서 의생신을 따르는 것이 모두 몸이 삼계를 벗어난 유위의 집이기 때문이다. 무위계의 집이란 것은 오직 여래의 일체 종종(種種)의 모든 차별지이니, 나머지는 모두 유익인 것이다. 중생계의 집과 허공열반계의 집이란 것은 일체지로부터 중생계와 허공계와 열반계의 각각의 차별지 집을 일으킴을 잘 분별하는 것이다. 이 보살이 모든 견(見)과 번뇌행의 집을 실답게 안다는 것은 신견ㆍ변견 등 5견과 62견이니 앞서의 지(地)에서 이미 다 풀이했다.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집(集)을 안다는 것은 삼천대천세계와 시방 일체 세계의 약간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약간의 겁에서 머무는 것과 약간의 겁에서 무너지는 것을 모두 다 아는 것이다. 성문행의 집이란 것은 4제의 관(觀)을 통해 삼계의 고(苦)를 싫어하고 열반의 즐거움을 기뻐하는 것이다.
또 모든 세간이 고(苦)이고 공(空)이고 무상(無常)이고 청정치 못해서 즐거울만한 것이 없고 모두가 마멸(磨滅)하는 법이라서 모든 업과를 헛되이 쌓아 고가 끊임이 없는 것이 마치 물결과 같으니, 착하지 못한 법을 모아 생로병사를 증장해서 36물(物)로 다 함께 그 몸을 이룸을 관하기 때문에 250계를 닦아서 욕계의 업(業)을 청정케 하고 상계 2계의 8선(禪)을 닦아서 상계의 업이 모두 무상임을 알고 제9정(定)에 들어가서 삼계의 상념을 벗어나고 멸진정에 들어가서 몸과 지혜가 다 멸진하니 적멸해서 앎이 없다. 마치 이 경문 아래에서 “비유하건대 비구가 적멸에 들어가니 머리 위에서 북을 쳐도 다시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한 것과 같으며, 또 어떤 성문은 삼계를 벗어난 마음을 얻지 분단신을 싫어해서 불을 화(化)해 몸을 태우고 변역생사에 들어가나니, 가령 「승만경」과 「열반경」이 모두 이 설과 같다.
성문 2승과 정토 보살은 공관으로 현행의 번뇌를 절복해서 변역생사를 얻기 때문에 이 번뇌를 끊는 것이 아니니, 무명을 요달해서 근본지를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망령되게 무명의 실유(實有)를 삼아서 망령되게 염리(厭離)를 낳으며, 이 싫어하는 마음으로 삼계의 분단생사를 넘어섬을 성취하여 변역생사를 얻고 무루의 계(界)에 머물면서 후유(後有)가 삼계의 몸을 받지 않는 것이 불을 화해서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가령 『열반경』에서는 스스로 경문에서 설하고 있으니, 이는 모두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에 머무는 집(集)이다. 벽지불행의 집(集)이란 것은 12연(緣)의 행이 이에 해당된다. 이 4제와 12연을 3승이 서로 참여하여 9승이 되는데 앞에서 이미 서술한 것과 같으며, 1승 보살도 또한 이 같은 4제와 12연을 닦을 때 이 10지의 안에서 단계적으로 설하는 것이니, 닦는 바의 법은 이 한 가지로 4제와 12연을 닦으면서도 심량(心量)의 견도(見道)가 각각 스스로 같지 않다.
보살행의 집이란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속박을 벗어난 보살은 6바라밀로 분분(分分)히 자비를 닦아서 정토에 태어나고 도가 원만하게 바야흐로 세간에 처해서 중생을 교화하며, 대비 보살은 무상관(無相觀)과 4념처와 7보리분(菩提分)과 4설법과 4무량심과 10바라밀에 의거해 대자비를 닦으면서도 삼계에 집착하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니, 이는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과 무작(無作)의 해탈문에 의거해서 모든 행을 건립하는 것이며, 또한 삼승 보살의 닦는 바 방편의 가행(加行)이라서 기뻐하는 바 행문의 경계가 다만 삼천대천세계로써 1불토(佛土)를 삼는다. 그러나 이 같은 1승의 경문은 단지 여래 근본보광명지의 경계를 기준으로 해서 발심하기 때문에 닦는 바의 10바라밀과 4제와 12연과 4념처와 37품과 4설법과 4무량심의 일체 조도(助道)가 다 자기 마음의 근본지로 체용을 삼는다. 그리하여 지혜가 의지함이 없고 한량이 없기 때문에 지은 바의 행문과 보과(報果)가 모두 의지함이 없고 한량이 없어서 자타(自他)와 신토(身土)가 심오하여 서로 참현(參現)함으로써 지혜가 무한하고 걸림이 없기 때문에 있는 바 신토와 자타가 허깨비 같고 그림자 같아서 다 장애가 없는 것이며, 닦는 바 모든 행이 다 자기 마음의 근본 지혜로 체(體)를 삼는 것이다. 이상은 3승과 1승 보살행의 집(集)이니, 가령 이 경문의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와 같은 행하는 바의 방편이 바로 1승 보살행의 집(集)이다.
여래력무소외색신법신(如來力無所畏色身法身)의 집이란 것에서 역무소외(力無所畏)란 것은 10력과 4무외가 이에 해당되며, 색신이란 것은 97대인상(大人相)의 수호(隨好)가 다함이 없는 것이 이에 해당되며, 법신의 집이란 것은 이(理)가 증명을 얻음이 없어서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고 낳음도 없고 멸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음이 이에 해당된다. 일체종(一切種)이란 것은 5위의 가행이 훈습의 종자를 이룬 것이니, 일체 중생이 5온의 가행을 따라 곧 무명의 업 종자를 성취하기 때문에 보살이 5위로 가행하여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종자를 성취하는 것이다. 일체지지란 것은 근본의 의주(依住)함이 없고 작위도 없는 지혜로 차별지를 낳음을 밝힌 것이니, 3승은 후득지(後得智)라 칭하지만 1승 속의 지혜는 곧바로 근본의 원명(圓明)으로 3세가 일시이기 때문에 전후를 나누지 않는 것이다. 보리를 얻어 보일 때 법륜을 굴리는 지혜의 집(集)이란 것은 설한 바 12분교(分敎)가 이에 해당되며, 일체법에 들어가 분별하고 결정하는 지혜의 집이란 것은 금강의 걸림없는 지혜로써 출세간법을 잘 분별하여 명료치 않음이 없고 결정치 않음이 없어서 다 착오가 없는 것이다. 요점을 들어서 말한다는 것은 대강을 총체적으로 나열하는 것이며, 일체지로 일체의 집(集)을 안다는 것은 다 알지 못함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 이것은 이상의 일체집을 아는 것을 총괄적으로 매듭지어 마친 것이다.

新華嚴經論卷第二十八 長者李 通玄 撰已上知解性欲樂差別,八萬四千者,迷成八萬四千煩惱,悟成八萬四千解脫智慧,九知諸隨眠種種相者,都言之也。隨眠者,明恒與惑染相應而無一念了覺之想,名之爲隨眠。所謂與染心共生相者,明因名色與心共生迷,斯名色從自心起執爲外有遂生染心共名色俱起故,言與心共生心相應不相應差別相者,明一切衆生心與境相應不相應差別相悉能知之。久遠隨行相無始不拔相者,明無始恒與五蘊十二緣未曾一念覺心而以觀拔之。與一切禪定解脫三昧三摩鉢底神通相違相者,心境無性無可動移,名之爲禪心亡,卽諸繫滅名之解脫。三昧者,無沈掉也。三摩鉢底者,正智慧也。神通者,正定不亂相應正智神通無㝵自相應故。明隨眠煩惱與此相違三界相續受生繫縛相皆悉知見,令無邊心相續現起相者,以隨眠故。開諸處門相者,以隨眠故。開三界六道受生之門,堅實難治相者,爲執深無明重故。迷根本智地處成就不成就相者,明十種中成與不成相,唯以聖道拔出相者,明如上隨眠,煩惱非以聖道無能濟拔。已上明此位菩薩知隨眠煩惱相,十又知受生種種相者,都言之也。所謂隨業受生相,此段有十三種隨業受生因緣相,明六趣差別相者,天、人、阿脩羅、畜生、餓鬼、地獄等差別相。有色無色差別相者,是欲界、色界、無色界相。有想無想差別相者,有想通欲界、色界,無想都擧無色界天,於中受生差別相悉皆知見。業爲田,愛爲潤,無明所覆,識爲種子,皆與名色俱生,摠不相離,如是迷一心之境生後有身,轉轉爲因無有斷絕,實無有性妄作多生,如是悉知。癡愛希求相續有相者,爲迷自心無性無生之智,於諸善惡常有希求。以此有生相續欲受欲生者,於一切名色常有欲受故,卽有生也。愛爲生根故,照心無體卽境無所起,心境㧾無業體便謝,唯普光智無闇無明,卽無明滅十二虛妄緣滅,唯法界自在無㝵智悲自在緣成也。性無能所自他同體,隨計示迷,如是等緣生如實知,見無始樂著妄,謂出三界者,明以有所希求妄。謂出三界乃至三乘解脫,但於三界外受麤塵化生死身,如微塵細變化身,於一塵之內,咸該剎海一切佛事悉在其中,此唯一乘智身所辦,已上知受生種種相。十一又知習氣種種相行不行差別相者,明此位菩薩知習氣行不行差別相,隨趣熏習相者,明隨天人六道受生隨趣習氣相,謂不依境得隨衆生行熏習相者,明見他所作之行隨事起染。善惡例知隨業煩惱熏習相者,謂不依他境而自起故,如是熏習悉皆知之。善不善無記熏習相者,雖行善,雖行不善不記善不記不善是無記熏習相,隨入後有熏習相者,如是無記還成後生所熏種子,亦皆知之。次第熏習相者,如有三界業何業種子勝依所勝業次第熏習。又如十住、十行、十迴向、十地,一一次第熏習相故。不斷煩惱遠行不捨熏習相者,卽是第七具足方便,住第七遠行地,八萬四千煩惱,悉皆同事故。實非實熏習相者,若實若虛悉皆知見。見聞親近聲聞獨覺菩薩如來熏習相者,親近二乘厭,苦修空捨大悲習,親近菩薩修空破我,成大慈悲習,親近如來成就根本普光明智圓該法界,具普賢行習已上知諸習氣相。十二又知衆生邪定、正定、不定相。所謂正見、正定、邪見、邪定相者,但正見卽有正定正見者,思亡智現,正邪見盡,定亂摠無,無得無證,無生無滅,名爲正見。心稱此理名爲正定。返此有作有爲,卽爲邪定。二俱不定相者,如欲界衆生未修定業者,二俱不定。五逆邪定相者,如二乘教無明貪愛,能所覺心諸結使,名爲五逆。以無明爲父,貪愛以爲母,覺境識爲佛,諸使爲羅漢,陰集名爲僧,無閒次第斷。如楞伽所說,五根正定相者,信根、進根、念根、定根、慧根,如是五根所修名爲正定相,二俱不定相者,以正邪二事摠無性故。八邪邪定相者,邪語、邪業、邪念、邪精進、邪定、邪思惟、邪命、邪見。此依意識及末那所作,依正智所行動用俱定,爲正定相。正性、正定相者,一切法無思無相無分別爲正性,卽此正性爲正定相。更不作二俱離不定相者,正邪俱捨,無有定亂,方至眞也。深著邪法邪定相者明取相衆生樂求諸見設入定中,還取諸相名爲邪法,邪定相習行聖道正定相者,明修諸法空無相無性無作者名爲聖道。其心不與生滅和合,名爲正定。又修四聖諦,名爲聖道,修於八禪入九次第定,名爲正定。九次第者,名滅定。此滅定者,有四種滅定。一聲聞滅定,以四諦觀識心滅現行煩惱及智亦滅。二緣覺滅定,觀十二緣滅現行煩惱及智亦滅。三權教菩薩觀十二緣四諦,明苦空無常無我人無衆生壽者,性相空寂都無所縛,行六波羅蜜生於淨土,或以隨意生身住於娑婆,或言以慈悲留惑住世,設入寂定,但隨無相理滅,不得法界大用滅故。四如一乘菩薩依如來普光明智發心,但達根本無明,是一切諸佛根本普光明智,以此大智以爲進修之體,所有寂用皆隨智門,一身寂多身,用多身寂一身,用同身寂別身,用別身寂同身,用如是同別寂用自在,等空法界無㝵,自在重重,如海幢比丘是也。不同三乘以一切法空爲進修十地之體,或以無性之理爲十地之體,是三乘極果故。二俱捨不定相者,正邪俱捨,無定無亂方是應眞,已上知正定邪定相,十三佛子菩薩隨順如是智慧,名住善慧地,有兩行經,是都結此地所知,文自具也。十四佛子此菩薩善能演說四乘法及能隨衆生諸趣受生,如文自具。第三段四智門中,長行三十六行經,分爲三段。一從佛子已下,至而演說法,有兩行半經,明善巧智起四無㝵智分。二此菩薩常隨四無㝵智,至樂說無㝵智可有兩行經,明是正擧四無㝵智之名分。三菩薩以此四無㝵智已下,有三十一行半經,明四無㝵智隨用差別無限分。此一段明此位爲大法師之智用自在。云善能守護如來法藏者,三乘一乘三藏及仁義禮智信,竝是菩薩善安立故。三藏者,戒、定、慧通一切法藏故。用菩薩言詞而演說法者,明佛爲正覺之體無分別故,明如來所有出生滅度度衆生及轉法輪摠是菩薩道故。以下如文自明,各依四智所轉法輪皆有所歸,以法無㝵智摠辯法身平等自性之理,以義無㝵智能辯諸法摠別同異,以詞無㝵智所說無錯謬,以樂說無㝵智所說諸法無有斷盡,以如是四智轉一切法輪不離此也。如阿耨池流出四河,潤諸世閒生諸草木,各有差別而體不離一水四河,思之可見。第四一段十陁羅尼門中,二十八行半經,分爲五段。一佛子菩薩住第九地已下,至而演說法,有六行半經,明此位中得法師位以四無㝵善巧智,得十種百萬不可說陁羅尼門分。二此菩薩已下,至爲他演說可有三行半經,明自於佛所以百萬不可說摠持門聽聞諸法門已不忘爲他演說分。三此菩薩初見於佛已下,至所能領受有兩行經,明此菩薩初於佛所得法門非聲聞百千劫而能領受分。四此菩薩得如是陁羅尼已下,至無能與比可有三行半經,明此位菩薩處座說法滿大千界隨衆生心樂分。五菩薩處法座已下,可有十三行經,明一音中隨心所念令諸衆生悉令開解及以無情亦令說法分。云陁羅尼者,是摠持義。得如來妙法藏者,明與佛合智所說。如十住中名爲法王子位。得義陁羅尼者,明法摠別同異無㝵門。法陁羅尼者,明法身無性無作自性之理。智陁羅尼者,明善了根性隨根授法。光照陁羅尼者,以教光及放光照燭令一切衆生解脫。善慧陁羅尼者,得摠持諸善慧故。衆財陁羅尼者,明法財世財悉具足故。威德陁羅尼者,摠持一切三千威儀八萬細行悉具足,令衆生見者悉解脫故。無㝵門陁羅尼者,智無㝵,詞無㝵,義無㝵,樂說無㝵,神通無㝵故。無邊際陁羅尼門者,所作利生無限故。種種義陁羅尼門者,能安立一切種法門故。言百萬阿僧祇善巧者,明百萬不可說智門,善巧能令衆根皆令稱當,已下如文自具。第五段十六行半經,義分爲兩段。一佛子此菩薩已下,至普爲一切作所依怙,有十行半經,明此位菩薩假使三千大千世界乃至無量世界衆,一時皆以無量言音問難一時領受,亦以一音爲其解釋令其歡喜分。二佛子已下,至無有忘失可有六行經,明此位菩薩能受十方無量處皆有不可說微塵數諸佛衆會。一一佛皆隨無量不可說微塵數諸衆生性欲不同所說不可說法門,此位菩薩皆能領受分,已上如文自具。第六二十九行半經,義分爲五段。一佛子菩薩住此第九地已下,至諸莊嚴具無與等者,有八行經,明此位菩薩親近諸佛承事供養廣多及比眞金作輪王寶冠小王不如喩分。二此九地菩薩已下,至但隨力隨分可有六行經,明此位菩薩二乘及下地菩薩不如幷擧力波羅蜜爲所修行分。三佛子已下。至亦不能盡可有兩行經,明略說此位菩薩志德廣大分。四佛子已下,至智智依止者,有七行經,明此位菩薩受職統化廣大分。五此菩薩已下,至說頌有五行半經,明此位菩薩加精進業及殊勝願力眷屬倍加廣大自在分。第七一段四十八行頌,重頌前法,如文自具。此已上大綱,明但隨智境約智德見佛供養及攝生乃至眷屬廣大非有往來,自他所爲,但以智境對現故。如一切智智之依止者,明修眞俗二智者之所依止故。明六地眞俗二智現前,七地唯在利物,八九二地行圓任運,十地佛力方終。云如來無上兩足尊者,明此眞俗二智滿故,明如是修二智者所依止故。第十法雲地將釋此地,五門如前。一釋地名目者,明此地何故名爲法雲地者?明此菩薩登法王位,智滿行周,以大慈悲雲於諸生死海,普降法雨灌一切衆生田,令一切衆生發善心菩提之芽,無有休息,以此名爲法雲地,明此地從初發心入此智地而生佛家,昇進修行至此地,大悲願力功終行滿故,常雨法雨故。二明此地修行門者,此地所修智波羅蜜爲主,餘九爲伴。三明善財表法者,善財於此位中,於菩薩集會,普現法界光明講堂中,見無憂德神,幷一萬主宮殿神俱來迎善財及稱歎供養,至菩薩集會,普現法界光明講堂者,明此地菩薩集智悲行滿、故。其神等隨逐善財,入普現法界光明講堂,中見釋氏女瞿波坐寶蓮華師子之座,八萬四千婇女所共圍遶者,明菩薩集會普現法界光明講堂,此是依二智報得是智境界而作堂體釋氏女而處其中者,明女爲悲體,表智中行悲七住七地悲中修智八地智中行悲,婇女有八萬四千所共圍遶者,明以普光明之大智行等一切衆生八萬四千煩惱皆具同行,是慈悲之極故,以女表之也。如是一切衆生八萬四千煩惱樂欲不同,菩薩以大慈悲心皆同其行方便引之,以慈悲心育養衆生,以女表之,非獨直爲女也。瞿波者,此云守護地,明此法雲地,願力智悲皆悉已滿,但常守護一切衆生心地,以爲地體故。名守護地神號無憂德者,是此地慈悲法悅行滿之地,與一萬主宮殿神,來迎善財者,表是智中之慈悲引接衆生之萬行故。主宮殿神者,明慈悲爲宮,智慧爲殿,表常以智悲爲主主導一切衆生皆令悟入故。此瞿波女自說本因,從久遠以來常爲佛妻者,表智悲不獨有也。明以表智悲常不相捨離爲佛妻義。又表十地大智慈悲法悅如妻義也。此託世間事表法,但取其意,況以智悲濟養含生之行?非卽實如凡夫有欲之妻故。託事表法,令易解故。如毘盧遮那是法界主,非如化佛引俗出纏,如是諸女,皆從王種中生者,明此位悲從智生,以智爲王,生死法中而得自在,名之爲王故。故悲從智生也。明從第七地至第八地,從悲修智以滿入無功之智,用從八地至九地、十地,從智隨本願力修無功之悲滿故。至十一地,以無功之大悲,幻生大智佛遍周剎海,普利衆生,卽以摩耶爲母,遍生諸佛教化衆生,以表之,如是逆順進修發菩提心者,悉須明解,使得進修不謬。四明此地於三界中得何法者,此地於十方三界得法界普光明大智、大慈、大悲,任運圓滿,大法雲,普雨智雨,受佛職門,如善財所入瞿波女講堂者,是爲明智能常與等虛空界一切衆生八萬四千煩惱諸根欲以法對治解脫故。五明隨文釋義者,二義如前。一長科經意者,從此十地一段經中,長科爲十六段。從初一段有三十二行頌,長科爲兩段。一從淨居天衆已下,有二十八行頌,明淨居天衆聞法興供,及見佛德廣大無邊分。淨居天是九地菩薩衆,是第三禪天衆,後十地是四禪位,從初地多作閻浮提王,二地忉利王以次排之卽可知也。以表昇進自在如天,亦不獨作天王,一一位明行遍周自在如天。此摠明第一義天一切智天,非如是諸天下品十善業果報生天也。二卽時解脫月菩薩已下,有四行頌,明請第十地行門分,於中文義如經自具。第三一段長行,有六十八行半經,明此位菩薩坐蓮花座爲大法師受十地佛大職位分。第四一段長行,有二十二行半經,明十方諸佛咸放智光灌頂許可同佛職位分。第五一段有三十六行半經,明此位菩薩廣大微細差別智善知諸集諦分。第六一段有七行半經,明此位菩薩得十大解脫分。第七段有四十五行半經,明此地菩薩於一念頃能受十方所有諸佛法,明皆能領受及能於十方雨法雨自在分。第八段有三十五行經,明此位菩薩隨念廣大微細大小一多相入通化自在分。第九一段有十八行半經,明此大衆聞十地菩薩神通生疑時,金剛藏菩薩入體性三昧,現菩薩神通爲來除疑分。第十段有二十七行經,明此地菩薩智慧神通力下地不如不可比如來神力智慧分。第十一段有三十五行半經,明此位菩薩不異如來身語意業,不捨菩薩諸三昧,承事供養一切諸佛分。第十二段有四十二行半經,明擧十大山王喩十種地次第方便所行之智慧分。第十三段有十四行經,明擧大海有十種德喩十種地昇進分。第十四段有二十行半經,明摩尼珠有十種性出過衆寶喩十種地出過衆聖分。第十五段有二十二行半經,明說此十地法門所感大地六種十八相動及興供幷十方金剛藏菩薩咸來證法分。第十六段有八十三行頌,明重頌前法分。二隨文釋義者,第一從初一段長行六十八行半經,明此位菩薩受十地佛位之職,於此一段中復分爲十段。一從初爾時金剛藏菩薩已下,至受職位,有七行經,明此位菩薩從初地至第九地修大福智大慈悲行滿入衆生界入如來所行分。二佛子已下,至受一切智勝職位,有八行半經,明此位菩薩得十三昧及一切諸三昧現前分。三此三昧現在前時已下,至以爲眷屬,有七行半經,明此位菩薩以三昧力福德感報蓮華出興分。四爾時已下,至一心瞻仰可有三行經,明此位菩薩幷諸眷屬菩薩身處華座與華量等分。五佛子已,下至諸佛衆會悉皆顯現可有五行經,明此位菩薩坐華座已,言音普充滿十方世界自然震動一切樂音自鳴及以不思議供養之具供養佛分。六佛子已下,至得不退轉,有二十四行半經,明此位菩薩處座放光教化衆生及供佛分。七佛子已下,至從諸如來足下而入,有兩行半經,明此位菩薩所放光明繞十方界入佛足下分。八爾時已下,至到受職位可有兩行經,明十方諸佛菩薩皆悉咸知此位菩薩受職分。九佛子已下,至卽各獲得十千三昧可有兩行半經,明九地菩薩皆來恭敬獲益分。十當爾之時已下,有五行半經,明此十方同受職菩薩放臆德光明普照十方來入此菩薩臆德令勢力增長過百千倍分。第一段七行經,明從初地至第九地,以分分白淨法,修助道行,觀察衆法,修習福德智慧,廣行大悲,竝爲成就此十地根本智悲之地至此地滿故,明元將一切諸佛智悲之地,以作五位修行,從初發心住已能至此諸佛智地故。從初發心,有五種發心,不離一念。五種初發心者,一十住初發心,二十行初發心,三十迴向初發心,四十地初發心,五十一地初發心。如是五位初發心,皆不異如來根本智而起初發心故,爲智體無始終。此五位初發心,皆無始終,爲非情識能所見故,非時日歲月所攝故,如是五位皆一時發故。一如十住初發心,卽以其止心不亂開發如來根本智慧,卽以妙峯山德雲比丘,得憶念諸佛智慧光明門。山者,止也。卽初從凡夫地止心不亂,卽佛智慧現入如來智慧地,名初發心住二如十行初發心,卽明於諸佛智慧中行無染卽以三眼國善見比丘林中經行表行無染林中經行表行無住。三眼,表佛眼、法眼、智眼,此明自得如來智慧三眼。復利一切衆生,卽行無所著故。三十迴向初發心,卽以鬻香長者靑蓮華卽明和合諸香賣鬻而居卽明以十迴向門起無限大願門和融悲智法身使令均平等進故。靑蓮華者,明於諸妙香無染也。四十地初發心,修長養大慈大悲增勝,卽以夜神婆珊婆演底。此云主當春生神,以表大悲,主當衆生發生菩提芽故。五第十一地以無作任運大悲初發心,卽以摩耶夫人生諸佛爲首,卽明從悲生智教化衆生故。如上初發心有此五種,逆順不同,摠在初心之中,一時具足無前後際,皆以法界大智爲體故。不所說前後古今之解,此一段有七行經,明成無前後古今之大智大悲,法界衆生界佛行滿故。至大法王職處,入衆生生死稠林分,第二段中有八行半經,明此位菩薩入此職位之中,卽得十種三昧及一切三昧。其初離垢三昧者,云正定也。明此地悉離染淨涅槃悲智功用不均平垢故,名離垢三昧,不同三乘離生死取涅槃及淨土垢故,亦不同下地菩薩調治智悲生死涅槃萬行未自在垢故,此地菩薩離如是垢故,名爲離垢三昧。明以法界無作智印諸境界,無非智境,更無能所生死涅槃染淨等障故,名離垢三昧。又三之言正者,明一止卽是正字故,明此地菩薩,以一大普光明智性自無依曰止,恒以此智常照諸境,名之曰正,昧之云定者,以智利生,不迷諸見,名之爲定,明從初修諸方便助菩提分。至此地所作功行無功習氣亦無故,名離垢三昧。又云三昧者,正受,以明此位,以無依住無功智任自遍周故,名離垢三昧故,此明無功之智任自遍周故。入法界差別三昧者,是無功用智任運隨用應事施設爲是差別智故,明用不離體不離無作根本智故。莊嚴道場三昧者,有諸佛成道轉法輪處,遍至其中身行及以衆寶莊嚴故。一切種華光三昧者,放光照燭一切衆生故。海藏三昧者,明含藏衆法故。如海具十德喩等,海印三昧者,以大智海印性自圓明淸淨無垢印,三世諸境界咸現其中虛空界廣大三昧者,明法空智體所照自體無限邊故。觀一切法自性三昧者,明以智觀照諸法無自性無他性自在故,知一切衆生心行三昧者,以智知根隨根濟度故。一切佛皆現前三昧者,明此離垢三昧與體性三昧竝與一切諸佛同一體相故。如是等已下摠擧,無數三昧,皆現在前,菩薩於此一切三昧,若入若起皆得善巧者,明一身入多身起,多身入一身起。又起中入,入中起。又於一三昧中,分別多衆生心行所行多三昧境界,教多衆生而不失時,最後三昧名受一切勝職位者,此是十地智滿行周,平等無作大悲,任運處世利衆生定。如是衆多三昧,皆從體性無作法身法界普光明智寂用無㝵三昧起故。如是三昧,非是三乘修寂靜者,求出三界者樂生淨土者之境界,是達一切無明便成大智,是便以一切衆生身土微塵摠含佛國者之境界。此寂用無依大智三昧,是一切諸佛根本智體無盡藏王,能隨一切衆生無限情意化不失時,然無作者故。第三此三昧現在前時已下,有七行半經,明受職菩薩約報華生。經云:此三昧現在前時,有大蓮華忽然出生,此是受職菩薩自悲智行滿法合等周法界利益衆生之報得,是十地之中最後三昧身也。其華量等,百萬三千大千世界,千箇百億四天下爲一小千,千箇小千爲一中千,千箇中千爲一大千。今云量等百萬三千大千世界者,意明無限量之大稱,已下莊嚴如經自具。經云:出世善根之所生起者,非是超過三界淨土菩薩及二乘變易生死諸善根之所生起故,知諸法如幻性衆行所成,恒放光明普照法界,此配善根因果如蓮華,以毘瑠璃摩尼寶爲莖者,毘之云光明瑠璃表法身智身明淨故。故其摩尼寶光淨無垢以似瑠璃,非琉璃所成,但以摩尼爲蓮華莖。莖者,以法身智身性無垢之報果,以法身智體與一切諸行作根本故。今依果報生蓮華,還以法身智體性自淸淨,以成報故。是故光淨摩尼以爲其莖,旃檀王爲臺者,明戒定慧解脫知見五分法身之香,善根之所生起,以法身能成戒定慧等五分法身之香,今依果報得。以次相資,碼碯爲鬚者,是助菩提之分,萬行善根之報得,此是赤色寶,表萬行顯發菩提理智及莊嚴五分法身故。互相資發以次而陳,閻浮檀金爲葉者,此金明淨柔軟是慈悲善根所生爲慈悲,是覆蔭義故。其華常有無量光明者,智慧法光利生善根所起,衆寶爲藏者,都結此地含藏衆善所生,寶網彌覆者,善設教網漉諸衆生善根所生。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蓮華以爲眷屬者,是一行遍一切行,一切行遍一行,善根所起,是主伴萬行自在善根所起,如上之華,是於普光明殿中初說十信,於如來前所現之華,諸眷屬衆,是如來眉閒毫中之衆,前是擧果勸修,此是行終之果。第四爾時已下,三行經,明此位菩薩處座大小相稱。所坐華王之上者,是根本智,眷屬菩薩坐諸華座者,是差別智,明此位菩薩智悲萬行遍周,如文自具。第五佛子已下,可有五行經,明此位菩薩及眷屬處座之時感動興供,如文自具。第六佛子已下,有二十四行半經,明此位菩薩處座放光濟苦,一依身分而作次第,以足下光照大地獄苦,明足下是所履之行極以濟苦故。次兩膝放光照畜生苦,明在所履之次由於膝之勞苦,次臍輪中放光照閻羅王界苦,如大地獄無王所攝,以極增上惡業,猶如電擊,直往苦趣,小地獄有王所攝。臍者衆穢積中之分,生死之際,迷眞之極,生死之源,如戌亥兩辰配於乾卦,是萬像生死在中放光所照也。左右兩脅放光照人中苦,脅者,攝受扶持之處,明人處可攝受故。兩手放光照諸天修羅者,可引接故。兩肩放光照聲聞乘者,明能樂聞法敵煩惱故。爲兩肩近耳,明因聞法得果故。項背放光照辟支佛者,明不樂聞法背佛知見故。面門放光,是受教故。眉間放光,是十地中道果故。頂上放光,是佛極果故。餘如文自具。第七佛子已下,有兩行半經,明此位菩薩如上所放光明供養及所作事畢,繞十方一切世界,一一諸佛道場衆會十帀從諸如來足下而入者,十帀者,明十法圓滿故。光入佛足下者,明反果還因故。明從普光明殿中起十信心,如來於兩足下輪中放光成其十信,次十住佛足指端放光,次十行佛足趺上放光,次十迴向膝上放光,次十地佛眉閒中放光,今至此十地道滿果終。不異初信之法,時不移,法不異,因果不異。是故十地道滿之光,還從佛足下而入,明果同因故,不異所信之法故,明如來示果卽因菩薩進修以因卽果,是故此十地之位返果從因。是故光入諸佛足下也。亦明行滿故入佛足輪下,故已下三段可有十行經,如文自具。第四長科段中,有二十二行半經,於中復分爲四段。一爾時十方一切諸佛已下,至墮在佛數,有十二行經,明此位菩薩受職蒙十方諸佛放光灌頂分。二佛子如轉輪聖王已下,至亦得名轉輪聖王,有六行經,明擧轉輪王受大子職四大海水而灌其頂喩分。三菩薩受職亦復如是已下,至墮在佛數可有兩行經,明菩薩受職以一切諸佛四智之,水而灌其頂卽墮佛數。四佛子已下,可有三行經,都結受職智光灌頂德行倍增分。已上四段經,明十地智滿法合,諸佛放光灌頂爲智,齊諸佛故。以佛果智相印合,又發起增長十一地及佛妙智令成熟故。此十地創現佛智十一地方自在故,餘如文自具。第五一段有三十六行經,明此位法雲地菩薩善知諸集諦分。中復分爲八。一佛子已下,至以一切智知一切集,有八行經,明此法雲地知一切集諦分。二佛子已下,至如是皆如實知,有三行半經,明此位菩薩如實知十種化法分。三又如實知已下,有兩行經,明此位菩薩如實知十種持法分。四又如實知已下,至如是等皆如實知,可有四行經,明此位菩薩知如來十種微細智分。五又入如來秘密處已下,至皆如實知,有四行經,明此位菩薩知如來十種祕密分。六又知已下至皆如實知,可有七行經,明此位菩薩知如來逆順劫相入分。七又知已下,至菩薩行如來智,有六行半經,明此位菩薩知如來十三種智分。八佛子已下,有一行半經,明此位菩薩能入如來廣大智慧分。第一佛子已下,從初段中有八行經,明此法雲地知諸集諦。經云:如實知欲界集者,以五蘊是三界,同迷以十使煩惱,隨於四諦上迷諦無明一諦上具十,卽欲界集有四十箇苦集,以此苦集滅道,上二界除嗔,各有三十六,是有爲禪界善集。此上二界禪,皆從作意息伏而得。是故三界有漏攝故,禪消想起三界往來,此三界共通一百二十八種煩惱集,是三界六道之大體,約以五蘊配五塵與十使,無明相因,摠有八萬四千及不可數集。如八九地前,竝已配訖。如前知之,色界、無色界如上可知。法界集者,明一念稱眞智,現如上八萬四千及不可說諸塵勞門,摠法界大智慧解脫知見集,摠積集智慧之海,名爲一切種種智海。有爲界集者,三界所有煩惱是,亦通三乘折伏現行煩惱,得變易生死隨意生身皆是出身三界,有爲集故。無爲界集者,唯如來一切種種諸差別智也。自餘皆有爲故。衆生界集及虛空涅槃界集者,爲善分別從一切智起衆生界虛空界涅槃界各差別智集。此菩薩如實知諸見煩惱行集者,身邊等五見及六十二見前地已釋訖。知世界成壞集者,知三千大千世界及十方一切世界若干劫成若干劫住若干劫壞皆悉知之。聲聞行集者,以四諦觀厭三界苦忻涅槃樂。又觀諸世閒苦空無常不淨,無有可樂皆磨滅法,虛積諸業果苦無有斷絕,猶如波浪集不善法,增長生老病死三十六物,共成其身,修二百五十戒,淨欲界業皆是無常,入第九定出三界想入滅盡定,身智俱盡寂滅無知,如此經下文。譬如比丘入寂滅定頭上擊鼓不復聞聲。又有聲聞得出三界心厭患分段身,化火焚身入變易生死,如勝鬘及涅槃經,竝同此說。聲聞二乘淨土菩薩,以觀折伏現行煩惱得變易生死,非是斷煩惱,爲不了無明,成根本智故。妄爲無明實有,妄生厭離,以厭患心成出過三界分段生死,得變易生死,住無漏界,不受後有三界之身,有如化火焚身,如涅槃經,自有文說,皆是厭生死住涅槃集,辟支佛行集者,十二緣行是。此四諦十二緣三乘參互,以爲九乘,如前已述,一乘菩薩,亦修如此四諦十二緣,此十地位內次第而說所修之法。是一種修四諦十二緣,心量見道各自不同。菩薩行集者,出纏菩薩六波羅蜜分修慈悲生於淨土,道滿方來處世教化衆生,大悲菩薩依無相觀四念處、七菩提分、四攝、四無量心、十波羅蜜,修大慈悲,不著三界,教化衆生,此是依空、無相、無願、無作解脫門而建諸行,亦是三乘菩薩所修方便加行所忻行門境界,但以三千大千世界爲一佛土,如此一乘經,但約如來根本普光明智境發心所修十波羅蜜、四諦、十二緣、四念處、三十七品、四攝、四無量、一切助道,皆以自心根本智爲體用。以智無依無限,所作行門報果,皆無依無限,自他身土重重玄玄互相參現,以智無限無㝵故。所有身土自他如幻如影,皆無障㝵故。所修諸行皆以自心根本智爲體,是三乘一乘菩薩行集。如此經十住、十行、十迴向、十地、十一地,如是所行方便是一乘菩薩行集,如來力無所畏色身,法身集者,力無所畏者,十力四無畏是也。色身者,九十七大人之相隨好無盡,是法身集者,理無得證無縛無解無生無滅不垢不淨是也。一切種者,是五位加行,成勳習種者,一切衆生而隨五蘊加行,卽成無明諸業種故。菩薩五位加行,以成一切智智之種,一切智智者,明根本無依住無作智而生差別智,三乘名後得智,一乘中智直以根本圓明,三世一時,不分前後,示得菩提轉法輪集者,所說十二分教是。入一切法分別決定,智集者,以金剛無㝵智慧,善分別出世法,無不明了,無不決定,皆無錯謬,擧要言之者,摠陳大綱,以一切智知一切集者,明無不盡知也。此是摠結,已上知一切集竟。新華嚴經論卷第二十八

1)선혜지(善慧地)를 경문(經文)에 따라 해석하는데 있어 그 두 번째 단락 62행 반의 경문의 뜻을 열네 단락으로 나눈 것 중 아홉 번째이다.
2)앞에서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함에 두 가지가 있다고 한 것 중 두 번째이다.
3)앞에서 경문을 따라 뜻을 해석하는 가운데 먼저 경의 뜻을 열여섯 단으로 장과하고 그 다음에 그 단락을 따라 해석한 것 중에 네 번째 단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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