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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華嚴經 參考 資料

李通玄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20권 [장순용 譯]

작성자문수법공양회|작성시간24.09.18|조회수7 목록 댓글 0
신화엄경론 제20권



23)승도솔천궁품②
첫째로 “이때 일체 보장엄전” 이하 “다 모든 천(天)의 공양을 초과한다”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여래께서 청을 받아들여 전(殿)에 들어감으로써 부처님의 자기 선근의 의과(依果)가 모든 천(天)보다 뛰어난 것이 비할 바가 없음을 밝힌 분(分)이니, 이는 가행(加行)으로 뛰어난 지위를 회통하므로 덕이 부처님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둘째로 “그때 도솔천궁에서” 이하 “그리고 게송을 설한다”에 이르기까지 5행반의 경문은 모든 천(天)의 기악(妓樂)이 치열해서 쉬지를 않고 모든 천(天)이 환희하면서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니, 이는 법에 들어간 기쁨을 밝힌 것이다.
아홉 번째 20행의 게송은 과거의 여래께서 이 전(殿)에 들어온 것을 찬탄한 분(分)이다. 길상(吉祥)이라 말한 것에서 온갖 선(善)을 모든 것을 길(吉)이라 이름붙이며, 온갖 복을 더한 것을 상(祥)이라 이름붙인다. 금색전(金色殿)이라 말한 것은 전(殿)에 금색의 광명이 있는 것이며, 또한 법신에 더러움이 없음을 이름한 것이다. 연화전(蓮華殿)이라 말한 것은 전에 온갖 색깔의 연화(蓮華) 장엄이 있는 것이며, 또한 법신의 오염 없음이 바로 연화의 뜻임을 나타낸 것이다. 산왕전(山王殿)이란 것은 덕을 쌓음이 산왕(山王)과 같음을 밝힌 것이지 전(殿)에 산이 있는 것이 아니니, 마치 경문에서 말한 보배가 귀한 덕을 보배라 한 것이지 보옥(寶玉)에 관련된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나머지 뜻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과거의 여래를 찬탄한 것에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도솔천왕이 과거 자분(自分)의 선근력이 고(古)에 합치함을 염(念)한 것이며, 둘째 옛날이나 지금의 모든 부처님의 도(道)의 자취가 널리 두루함을 밝힌 것이며, 셋째 여래의 도의 자취가 옛날[古]에 의거해 다르지 않아서 천(天)ㆍ마(魔)ㆍ범(梵)이 바꾸질 못하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믿어 들어가게 함을 밝힌 것이니, 이 10불(佛)도 가행으로 행을 따라 명칭을 성취한 것이다.
열 번째 2행의 경문은 도솔천왕이 부처님을 찬탄하고 아울러 시방이 이와 똑같다고 매듭지음을 밝힌 분(分)이다.
열한 번째 품의 말미에 있는 13행 반의 경문을 대략 두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로 “이때 세존께서는” 이하 “대중을 위해 법을 설하셨다”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여래께서 법좌에 처해서 대중을 위해 법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둘째로 “불가설의 모든 보살 대중” 이하 “모두 다 이와 같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시방의 보살이 모여들어 법좌에 처하니 전(殿) 안의 장엄한 묘호(妙好)가 모든 천(天)보다 뛰어남과 일체 시방의도솔천도 모두 이와 똑같이 운집해서 장엄함을 밝힌 분이다.
법좌의 체(體)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해석을 끝냈다. ‘사자좌 위의 결가부좌(結跏趺坐)’란 것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세간의 위의(威儀)이며, 둘은 이 10회향 중의 이(理)와 사(事)가 서로 사무침을 회통하는 것이다. 여래 법좌의 체(體)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의 부사의한 지혜의 의주(依住:의지하거나 머묾)함이 없는 대자대비로써 법좌의 체(體)를 삼는 것이니, 의주함이 없는 지혜가 그 성품이 스스로 두루하여 허공과 동등함으로써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색신을 대현(對現)하는 것을 중생의 수(數)와 더불어 같이 한다. 그리하여 근기의 차별에 맡겨 감응에 따라 조복함으로써 교화해 제도하는 데도 조작하는 바가 없으니, 가령 경문에서 “법신이 청정하고 묘용(妙用)이 자재롭다”고 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삼세의 부처님과 더불어 경계가 동일해서 일체지(一切智)에 머문다’는 것은 지헤의 체(體)가 안과 밖, 중심과 변두리가 없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 함께 머무는 경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일체의 부처님과 더불어 하나의 성품에 똑같이 들어간다’란 것은 자체성 없는 성품이 들어오고 나감이 없는 것이니, 모든 부처님이 이와 똑같다.
‘부처님의 눈이 명료하다’란 것은 일체법이 유(有)도 무(無)도 아님을 깨달아서 능히 지혜로 일체 모든 법을 두루 아는 것이다.
‘커다란 위력으로 법계에 널리 노닐면서 일찍이 쉰 적이 없다’란 것에서 작위 없고 의지함도 없는 이지(理智)로써 일체의 집착을 타파해서 다 없애는 것을 ‘위력(威力)’이라 칭하는 것이며, 지혜에 겉과 속이 없고 성품이 허공처럼 두루해서 감응으로 형태를 나타내면서도 가고 옴이 없는 것을 노닌다[遊]라고 칭한 것이며, 세속에 진(眞) 아님이 없는 것을 법계라 칭하는 것이며, 일념에 삼세 고금의 정(情)이 다하여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을 ‘일찍이 쉰 적이 없다’라고 칭한 것이니 이는 시간이 변천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대신통(大神通)을 갖추었다’란 것에서 대지혜가 의지함도 없고 형태도 없어서 성품에 생멸이 없는 것을 신(神)이라 칭하는 것이며, 지혜로 요달하지 못함이 없는 것을 통(通)이라 칭하는 것이다.
‘교화할 수 있음을 따라서 모두 다 능히 두루 간다’는 것은 지혜가 가고 옴, 중심과 변두리, 겉과 속이 없어서 시방 중생이 감(感)에 응하여 모두 보면서도 모두가 다 같지 않은 것을 ‘두루 간다’고 칭함을 밝힌 것이다.
‘일체 모든 부처님의 걸림 없는 장엄으로 그 몸을 장엄한다ㄴ’는 것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4무애지(無碍地智)의 장엄이며,둘은 부처님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인 두 가지 복(福)의 장엄이다. 일체의 상호(相好)와 수호(隨好)가 이에 해당되는데, 여래의 몸은 정보이며 국토인 연화장세계는 의보이다. 지혜 스스로의 선업(善業)으로 장엄하여 자신과 경계가 지혜가 됨으로써 법 그대로 스스로 가없는 공덕을 갖추게 되니, 가령 아흔일곱 종류의 대인상(相)이 이에 해당된다. 다만 무명에 덮여 있기 때문에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로써 중생을 이롭게 해서 과보로 얻은 의과란 바로 수화광명(隨好光明)의 공덕이 이에 해당된다. 즉 부처님의 대인상(大人相)은 십화장세계미진수의 수호(隨好)가 무한한데도 경전에서는 간략하게 한 종류의 수호(隨好) 공덕만 들고 있으니 그 이름이 원만왕(圓滿王)이며, 갖고 있는 이익은 경전에서 자세히 갖추어 설하고 있다.
또 의주(依住)함이 없는 지혜는 그 체(體)가 자타(自他)와 안팎의 집착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소유한 의보와 정보의 장엄과 몸[身]과 국토의 일체 경계가 서로서로 함입(含入)하는 것이 마치 백천(百千) 개의 밝은 거울의 영상이 서로 서로 받아들여 겹겹이 겹쳐서 다함이 없는 것과 같으며, 겹겹이 겹쳐서 다함이 없는 몸과 국토의 온갖 경계가 서로 들어가면서 다함 없는 것이, 마치 제석천이 거처하는 보배 그물에 모든 하늘의 권속이 보배 안에 겹치는 것 같아서 온갖 상(像)이 서로 들어가서 몸과 경계가 걸림이 없으며, 몸이 찰토(刹土)를 내고 찰토가 신운(身雲)을 냄으로써 함께 불사(佛事)를 나타내며, 한 종류가 자로우면 모든 법이 다 마찬가지라서 지혜 경계에서는 유정과 무정의 법을 설하지 않는다.
경문에서 “그 때를 잘 알아서 대중을 위해 법을 설한다”는 것은 근기의 생소하고 익숙함을 요달해서 감응하는 대로 교화 제도하는 것이다.


어째서 모든 부처님께서는 중생심의 시(時)와 비시(非時)를 압니까?


여래의 마음과 일체 중생의 마음은 본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니, 즉 하나의 마음이고 하나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시(時)와 비시(非時)를 아는 것이니, 모든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깨달아서 중생과 함께 하지만 중생은 미혹 되어서 스스로 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심의 지혜로써 정각을 성취하지만, 일체 중생은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미혹하여 중생을 짓는다. 나아가 성불할 때는 또한 ‘중생의 이(理)를 미혹한 부처님’을 성취하기 때문에 설하는 법문도 중생심 속의 ‘부처님을 미혹한 중생’을 이해하는 것이니, 이러한 다르지 않음 때문에 중생심을 아는 것이다.
경문에서 “불가설의 모든 보살이 저마다 타방(他方)의 갖가지 국토로부터 다 함께 모여들었다”고 말한 것에서 만행의 차별을 잡아서 타방이라 칭하는 것이며, 법으로 근기에 따라서 사물에 응해 조복하는 것을 ‘갖가지 국토’라 칭하는 것이며, 여래의 대원명지(大願明智)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다 함께 모여들었다’고 칭한 것이다. ‘대중의 모임이 청정하다’는 것은 정식(情識)이 없는 것이며, ‘법신이 둘이 없다’는 것은 부처님과 더불어 체성(體性)이 동일하고 성품이 없음도 동등하며, ‘의지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얻음도 없고 증명함도 없는 것이며, ‘능히 자재로워서 부처님의 신행(身行)을 일으킨다’는 것은 자위 없는 지혜가 부처님의 작용과 같은 것이며, ‘이 법좌에 앉았다’는 것은 이 10회향 법계의 근본에 회통하는 것이며, ‘전(殿)에서 수호(殊好)를 낸다’는 것은 지혜로써 감응하는 것이며, ‘모든 천(天)을 넘어섰다’는 것은 지혜로써 과보가 감응하기 때문에 정(情)의 작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해석하기를 ‘보살의 과보상(相)은 행이 낳은 것을 잡은 것’이니, 논주(論主)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보살은 인(忍)을 수만(垂鬘)으로 삼고
참괴(慙愧)는 항상 의복의 장식이 되며
계품(戒品)은 도향(塗香)과 말향(末香)이며
자비로 널리 덮음은 그 덮개[蓋]가 되며

정심(正心)의 흔들림 없음이 선정의 깃발이며
지혜의 깃발이 모든 삿된 견해를 타파하며
방편으로 늘 생사의 바다에 머물며
중생을 요익하게 하는 것이 기악(妓樂)이 되며
총지(總持)로 묘한 법의 음성을 펼쳐서
듣는 자가 해탈하는 것이 노래와 음악이 된다.

이상은 경문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니, 이 단락에는 불가설(不可說)의 타방 보살 대중이 있다.
이 1단락에서 모든 천(天)과 도솔천궁에 머무는 보살 대중이 총체적으로 150개의 백만억 대중이 있고, 저 타방에서 온 보살은 말할 수 없을 만큼이 있으며, 모든 천(天)이 장엄한 높은 법좌와 궁전의 색류(色類)도 180종류의 차별이 있어서 일류(一類)가 백만억이 있고, 여래와 보살이스스로의 복으로 장엄한 것이 헤아릴 수가 없으니, 이 회상이 거느리고 있는 이같은 대자비와 이같은 지혜와 이같은 만행은 단지 초발심주(初發心住)에서 처음으로 부처님 집안에 태어난 지혜와 대자비를 길이 길러 익숙하게하고 자재롭게 하기 때문에 시(時)도 고치지 않고 법도 다르지 않고 지혜도 변천하지 않는 것이 마치 죽위(竹葦:대나무와 갈대)가 옛[舊]에 의거해서 이루어질 때 처음의 생김과 마지막 종결이 거칠거나 세밀함이 없는 것과 같으며, 또 어린 아이가 자랄 때 처음 생긴 대로 크는 것이지 다르게 크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이는 다만 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로써 도를 기르는 방편을 삼기 때문에 불과가 초발심에 있는 것이다. 또 10주(住) 중 1주(住)가 10주의 공용을 갖추고 있고, 아울러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가 모두 10주 중에 모두 구족해 있기 때문에 마치 신룡마왕(神龍馬王)이 낳은 그 신구(神駒)가 그 당에 태어나서 아비와 더불어 늦고 빠름이 비슷하면서도 오직 역용(力用)만이 어미와 같지 않은 것처럼, 저 초발심 보살도 여래의 일체지승(一切智乘)을 타고서 부처님 집안에 처음 태어날 때 부처님과 더불어 지혜가 같으면서도 오직 신통의 도력(道力)이 같지 못하기에 대자비 만행의 오랜 양육을 기다리는 것이다. 비록 오래 양육한 공(功)이 종결되더라도 법이 다른 것이 아니며 때[時]도 옮기지 않는 것이라서, 마침내 초발심 때 역용(力用)의 공(功)이 마치는 것을 벗어나지 않으니, 가령 용녀가 찰나를 벗어나지 않고 일생(一生)1)에 성불하는 것이 이에 해당되며, 또 선재동자가 일생에 불과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이니, 일생이란 뜻은 무생(無生)을 얻는 것이다.
이제 간략하게 무생(無生)에 열 가지가 있음을 세우겠다. 첫째 모든 온(蘊) 자체가 무생이며, 둘째 온갖 견(見) 자체가 무생이며, 셋째 공(空)이 무생이며, 넷째 성품이 무생이며, 다섯째 시겁(時劫)이 변천하지 않는 것이 무생이며, 여섯째 열반과 생사가 무생이며, 일곱째 법을 설하는 음성의 적묵(寂黙)함이 무생이며, 여덟째 지혜의 분별이 무생이며, 아홉째 신통 도력의 성품이 스스로 두루함이 무생이며, 열째 찰나를 벗어나지 않고 삼세가 다한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겁에서 일체 중생 앞에 대현(對現)하는 몸이 무생이니, 이 열 가지 무생의 뜻이 있기 때문에 그 명칭이 ‘일생에 반드시 보리를 얻는다’이다.
이 경문의 뜻은 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 법의 방편으로 초발심의 불과를 자량하여 전후의 정(情)인 바라는 바를 끊는 것이니, 자량(資糧)과 불과(佛果)가 동시에 서로 체용이 되어서 서로 돕기 때문에 그 명호가 ‘각(覺)과행이 서로 장엄함’이 되는 것이다. 이 경문은 과(果)로써 행을 자량하여 행에 집착이 없게 하고 ,행으로써 과(果)를 자량하여 대용이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가령 3승의 의생신(意生身) 보살로서 부처님의 일체지승을 탔다고 설하지 못하는 것은 불과를 11지(地) 이후 3기(祈)의 겁이 종결할 때까지 미루기 때문이니, 즉 지(地) 이전의 3현(賢)이 자량이 되고 10지가 견도(見道)가 되고 불과는 11지 이후 3기(祈)의 겁이 종결되는 데 있지만, 이 가르침에서는 3승의 5위행상(位行相)과는 1배나 뒤바뀌어서 행상(行相)이 같지 않으니 나중에 다시 밝히겠다.

24)도솔천궁중게찬품(兜率天宮中偈讚品)
장차 이 품을 해석하는 데 세 가지 문은 앞에서와 같다.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금강당(金剛幢) 등의 10보살이 저마다 다른 불찰로부터 와 도솔천궁에 거처하면서 여래의 처소에 이르러서 각각 묘한 보배의 장(藏)인 사자좌를 변화로 만들어 내고 나서 각각 10회향 법문의 인과로 게찬(偈讚:게송으로 찬탄함)함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그 명칭이 ‘게찬품」이니, 다른 불찰이란 10행으로부터 와서 10회향에 들어가는 것이다.
둘째, 품의 온 뜻을 해걱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이 품은 10회향 중의 인과 법문을 성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 품이 온 것이다.
셋째, 경문에 따라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그 뜻을 둘로 나누리니, 첫 번째는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첫 번째의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에서 이 1품의 대의(大意)를 앞뒤로 모두 열한 단락의 장과를 짓겠다.
첫째로 “이때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 이하 “그리고 게송을 설했다”에 이르기까지 52행의 경문은 금강당 등 10보살 대중이 시방에서 모여들어 인(因)을 드러내고 과(果)를 보이는 것이 둘이 아님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로 “여래께서 세간에 나오지 않아서” 이하 10행의 게송은 부처님께서 실(實)로써 권(權)을 보임을 밝힌 분이다.
셋째로 “이때 견고당(堅固幢)보살” 이하 10행의 게송은 불신(佛身)의 성(性)과 상(相)이 비할 데 없음을 찬탄함으로써 늘 가깝게 공양하기를 싫어함 없이 대원이 원만히 성취되어야 비로소 능히 부처님께서 행한 도(道)를 실천할 수 있음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이때 용맹당(勇猛幢)보살” 이하 10행의 게송은 부처님과 법은 요컨대 청정한 마음과 청정한 행이라야 비로소 요달하는 것이니, 부처님을 보는 것은 유위(有爲)로는 감당하지 못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로 “광명당(光明幢)보살” 이하 10행의 게송은 하나의 불신(佛身)으로 많은 불신을 낳는 데 꼭두각시[幻]처럼 생기함을 밝힌 분(分)이다.
여섯째로 “이때 지당(智幢)보살” 이하 10행의 게송은 부처님의 지혜가 의지함도 없고, 작위함도 없고, 조작함도 없고,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면서도 능히 형상을 나타내 널리 두루함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로 “이때 보당(寶幢)보살” 이하 10행의 게송은 여래가 응현(應現)하는 것이 정(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공(功) 없음에 맡겨서 중생이 스스로의 업으로 마땅히 봄을 밝힌 분이다. 이 단락은 스스로 수행한 행(行)에서 지혜가 나타나 상응한 것이기 때문에 시분(時分)의 지혜가 아니니, 시분을 세우는 것은 바로 정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든 적은 시간이든 모두 정(情)이다.
여덟째로 “이때 정진당(精進幢)보살” 이하 10행의 게송은 불신(佛身)이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라서 시방 부처님께서 동등하게 안팎이 없는 몸으로 중생의 업을 대해 나타냄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로 “이때 이구당(離垢幢)보살” 이하 10행의 게송은 마음도 없고 사념도 없고 의지함도 없는 여래의 지혜를 통해 성품에 겉과 속이 없으니. 시방에 대현(對現)하는 것이 근기에 따라 널리 응함을 밝힌 분이다.
열째로 “이때 성수당(星宿幢)보살” 이하 10행의 게송은 여래께서 심의식(心意識)이 없기에 그 이름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니, 중생으로서 심의식이 있고 적멸심에 머무는 자는 모두 부처님을 볼 수 없음을 밝힌 분이다.
열한째로 “이때 법당(法幢)보살” 이하 10행의 게송은 차라리 온갖 고통을 받을지언정 여래를 버리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이상은 각각 하나의 법을 설해서 다 함께 10회향심을 성취한 것이다. 다만 유(有)를 설하면 중생이 유(有)에 집착하고 무(無)를 설하면 중생이 무(無)에 집착하기 때문에 경문에 나오는 성수당보살의 게송에서는 “중생은 부처님이나 세계다 하고 분별하지만, 법성을 요달한 자는 부처님도 없고 세계도 업다”라고 하였으며, 아래 경문의 법당보살의 게송에서는 “차라리 일체 세간의 고통을 항상 받을지언정 결코 여래를 멀리하여 자재력(自在力)을 못보게 되지는 않겠다”고 하였으니, 이 두 게송은 모두 서로가 유(有)나 무(無)를 성취하여 변견(邊見)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것이니, 나머지는 유사하게 비교하여 알아라. 가령 시방을 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온갖 뜻의 같고 다름을 관하는 것이며,또한 시방 세계 모든 부처님의 법이 동일해서 둘이 아님을 관하는 것이다.
둘 번째의 경문에 따라 해석하는 것 속에서 제1 처음 52행 경문의 뜻을 열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로 “이때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 이하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에 이르기까지는 모든 대중이 모여 온 분(分)이다.
둘째로 “그 명칭을” 이하 “법당보살”에 이르기까지는 모여든 10보살의 명호를 거양한 분이다.
셋째로 “말미암아 온 바의 국토” 이하 “묘향세계”에 이르기까지는 모든 보살이 좇아 온 국토의 분이다.
넷째로 “저마다 부처님의 처소에서 범행(梵行)을 청정히 닦으니” 이하 “관찰당불(觀察幢佛)”에 이르기까지는 본래 섬기고 있는 부처님의 명호를 든 분이다.
다섯째로 “그 모든 보살” 이하 “한량 없는 공덕”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도래한 모든 보살이 법좌를 화해 앉아서 광명을 놓고 덕을 드러내서 요익하게 함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로 “이른바” 이하 “마치 허공과 같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도래한 모든 보살이 의지함이 없는 청정법신의 지혜를 보고 시방에 두루 노닐면서 부처님을 섬기는 데 자재롭고 걸림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로 “이같은 세계” 이하 “차별이 없다”에 이르기까지는 시방이 이와 똑같이 모여든다고 매듭지음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로 “이때 세존께서는” 이하 “신변(神變)의 상(相)”에 이르기까지는 여래의 광명이 시방에 두루 비춰서 피차의 대중이 모두 서로 봄을 밝힌 분(分)이다.
아홉째로 “이같은 보살” 이하 “모두 회상에 모였다”에 이르기까지 16행의 경문은 도래한 모든 보살의 과거 인(因)이 부처님의 선근과 같아서 법의 궁극적인 자재로움에 이름[至]을 밝힌 분이다.
열째로 “부처님의 처소에 계시니, 광명으로 인하여 보는 바가” 이하 게송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시방이 이 세계의 보살 지회와 똑같다고 매듭지음을 밝힌 분(分)이다.
두 번째의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에서 이 50행의 경문을 대략 열 가지 문으로 나누겠다. 첫째 시방 보살이 온 바의 법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보살의 명칭 아랫 글자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셋째 10세계가 표현한 바를 해석하는 것이다. 넷째 10불(佛) 명호의 인과(因果)를 해석하는 것이다. 다섯째 10보살이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화현한 바 법좌의 체(體)를 해석하는 것이다. 여섯째 보살 몸의 광명의 인(因)을 해석하는 것이다. 일곱째 보살이 어떤 법을 얻었길래 능히 자재하면서 화현(化現)이 시방에 충만하기를 밝히는 것이다. 여덟째 여래께서 광명을 놓은 처소의 법을 나타냄을 해석하는 것이다. 아홉째 도래한 모든 보살 대중의 바다가 누구로부터 발심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열째 지위에 따라 닦아 나가는 인과를 밝히는 것이다.
첫째로 보살이 온 바의 법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경전에서 “하나하나가 각기 만불찰미진수와 더불어”라고 말한 것은 승진의 법을 밝힌 것이니, 지혜의 지견(知見)이 이전의 지위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10주에서는 백(百)이라 말하고, 10행에서는 천(千)이라 말하고, 10회향에선 만(萬)이라 말하는 것이다. 다 함께 만불찰미진수국토 밖의 모든 세계로부터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는 것은 법을 미혹했기에 외부 세계라 말하고 지혜가 요달했기에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고 밝힌 것이니, 만불찰미진수라 말한 것은 바로 미혹과 깨달음의 수(數)이다.
둘째로 보살의 명칭 아랫 글자의 뜻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그 명칭을 금강당보살이라 말한 것에서 보살은 앞에서 이미 해석했으며, 금강당이란 것은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앞의 10행위에서 보살을 임(林)이라 이름붙인 것은 행의 그늘을 드리움이 넓고 많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며, 이 지위의 보살을 당(幢)이라 칭한 것은 대자비의 행이 생사의 대해(大海)에 처해서 능히 일체 중생의 번뇌를 타파하면서도 스스로의 지혜는 기울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10행은 행으로써 스스로를 나춰 원(怨)을 융화하는 뜻임을 밝힌 것이며, 10회향은 대지혜가 굳고 강해서 자비를 따라 원(怨)을 타파하는 것이 자재롭다는 뜻을 밝힌 것이니, 이는 단바라밀의 행에 근거한 것이다.
견고당(堅固幢)보살이란 대자비로 계(戒)의 체(體)가 된 것이며, 용맹당(勇猛幢)보살이란 대자비로 인(忍)이 됨을 잡으니, 이것이 용맹의 뜻이며, 광명당(光明幢)보살이란 대자비가 정진의 체(體)가 됨에 근거한 것이니, 생사의 밤에 길이 처해서 지혜로써 광명을 발하기 때문이다.
지당(智幢)보살이란 이 지위의 대지혜가 생사 속에서도 늘 밝아서 항상 어둠을 타파하기 때문에 이로써 선정의 체(體)를 삼는 것이며, 보당(寶幢)보살이란 대자비와 대지혜로써 가르치의 그물을 잘 베푸는 것을 ‘보당’이라 칭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가르침이 고귀한 것이라서 세간의 보배가 아님을 밝힌 것이다.
정진당(精進幢)보살이란 이 지위가 제7 방편행인데, 능히 근기를 잘 알아 사(事)를 같이함으로써 세속에 처해서도 미혹하지 않고 진(塵)을 같이하면서도 오염되지 않는 것이 바로 정진당의 뜻이다.
이구당(離垢幢)보살이란 제8 원바라밀인데, 스스로 생사가 없으면서도 지혜로써 원(願)을 따라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항상 더러움이 없는 것이다.
성수당(星宿幢)보살이란 바로 역바라밀의 법왕위(法王位)에 차별지(差別智)를 이루는 것이니, 중생의 근기를 잘 아는 것이 마치 성수가 크든 작든 모두 밝음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법당(法幢)보살이란 지(智)바라밀인데, 모든 법을 잘 안립해서 능히 깨뜨릴 자가 없는 것이 법당의 뜻이다. 이상은 능히 행을 행하는 사람이다.
셋째로 세계의 명칭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좇아온 국토를 묘보(妙寶)세계라고 말한 것은 묘한 법으로 중생에게 널리 베푸는 것이 고귀하다는 뜻을 밝힌 것이며, 세계를 묘락(妙樂)이라 이름붙인 것은 대자비가 계(戒)가 되니 생사에 처해서도 중생을 이롭게 하여 커다란 즐거움을 얻게 함을 밝힌 것이다. 묘은(妙銀)세계란 법신의 이지(理智)로 말미암아 인(忍)의 체(體)를 이루니 마치 백은(白銀)이 부드럽고 밝고 청정함과 같음을 밝힌 것이며, 묘금(妙金)세계란 정진으로 세속을 이롭게 하면서도 게을리함이 없어서 진리를 훼손하지 않고 황중(黃中)으로 복을 이루는 것이 모두 금색임을 밝힌 것이다. 묘마니(妙摩尼)세계란 법성이 순백 청정으로 작용하면서도 더러움 없이 자재로운 것을 선정의 체(體)로 삼음을 밝힌 것이며, 묘금강(妙金剛)세계란 자체성 없는 묘한 슬기가 능히 허망을 타파하면서도 그 자체는 파괴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묘파두마(妙波頭摩)세계란 바로 적련화(赤蓮華)인데 대자비로써 능히 색향(色香)을 같이하면서도 오염이 없음을 밝힌 것이며, 묘우발라화(妙優鉢羅華)세계란 청련화색(淸蓮華色)인데, 제8 지혜로 자비를 따르는 행이 청결해 오염되지 않기 때문에 진흙에 처해서도 더럽혀지지 않는 청련화색으로 나타낸 것이다. 묘전단(妙旃檀)세계란 이 법사위(法師位)로서 법을 설하는 향(香)을 설취하는 것이며, 묘향(妙香)세계란 이 지위의 대지혜와 대자비가 지위를 따라 공덕이 종결되니, 의지함도 없고 작위도 업는 미묘한 지혜로써 시방에 충만하여, 오고 감이 없는 지혜의 법음(法音)이 그에 따라 두루하면서도 형태가 없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다만 묘향이라 말할 뿐 형류(形類)를 말하지 않은 것이니, 이전의 자취가 있는 것보다 뛰어남을 나타낸 것이다.
이상 10세계의 명칭은 바로 10회향위에서 행(行) 중의 법인 것이니, 묘향세계(妙香世界)라고 말한 것은 생사를 따라서 중생을 교화하는 이지(理智)의 묘용인데, 세간은 토지와 산하로써 세계를 삼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지덕(智德)의 묘용으로 세계를 삼은 것이다.
넷째로 10불(佛) 명호의 인과를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경전에서 “저마다 부처님의 처소에서 범행(梵行)을 청정히 닦는다”고 말한 것은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가는 가행(加行)의 불과를 밝힌 것이니, 바로 다음과 같은 열 분의 부처님이 이에 해당한다.
소위 무진당불(無盡幢佛)이란 이 10회향 대자비의 지위에서 베푸는 바가 다함이 없음으로써 불과를 성취하는 명호를 밝힌 것이니, 그 베풂은 아래의 「회향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과 같다.
풍당불(風幢佛)이란 손괘[巽]가 바람[風]이 되며, 순백의 청정이 되고 언설(言說)이 되고 적(赤)이 되고 태양[日]이 되고 명(明)이 되고 순백의 청정이 됨을 밝힌 것이니, 즉 바람은 형태나 색깔이 없으면서도 향기와 냄새를 다 불어서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 손괘는 닭[鷄]이 되어서 때[時]를 알아 울기 때문에 근기를 알아서 가르침을 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위로 천문(天門)을 만나는 것은 온갖 선(善)을 여는 것이다. 또 손괘는 사(巳)가 되어서 성양(盛陽)의 시초이자 시비를 정하는 때[時]이니, 재계(齋戒) 법칙의 때임을 밝히는 것이다. 또 손괘는 언설이 되고 구(口:입)가 되고 면문(面門:얼굴)이 되니, 온갖 선(善)을 말하여서 능히 신(辛)ㆍ축(丑)을 다스리는데, 축(丑)은 소남(小男)이 되므로 온갖 언설로써 어린 아이[童蒙]를 교화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말하면, 풍당불은 바로 계바라밀(戒波羅蜜)의 풍화(風化:교화)인 과(果)의 명호이다.
해탈당불(解脫幢佛)이란 것은 인위(忍位) 중의 과(果)이니, 인력(忍力)이 이미 원만히 성취되니 해탈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는 서방이니, 태(兌)는 비하(卑下)의 뜻이 된다.
위의당불(威儀幢佛)은 북방을 주재하는 불과(佛果)이니, 신위(信委) 중 북방의 위의지불(威儀智佛)과 명호가 같다. 이는 북방의 사범위(師範位)를 주재하는데, 이 위의가 펼쳐져서 어린 아이를 제접하기 때문에 행을 잡아서 과(果)의 호칭을 삼은 것이다.
명상당불(明相幢佛)은 10신위 중 동북방의 명상지불과 더불어 호칭이 같은 것인데, 감(坎)은 다스리는 바가 되며, 축(丑)은 신심이 되며, 인(寅)은 이(理)에 계함해서 비로소 밝아짐을 잡은 것이니, 이는 방위를 빌려서 법을 나타냄을 밝힌 것이다. 즉, 축(丑)이 산이 되고, 산(山)이 부동(不動)이 되고, 부동이 바로 정(靜)이고, 정이 능히 명(明)을 발함을 주재하는 것이다. 명(明)은 선(禪)의 시초라서 선정에 들어가는 시초에 바른 슬기가 열리는 것이니, 10회향의 지위가 10신이 믿는 바의 법을 여의지 않고 그 법 위에서 안립하기 때문이다. 이는 10회향의 선정의 체(體)가 대자비로 세속을 이롭게 하는 밝은 슬기를 능히 발함을 밝힌 것이다.
상당불(常幢佛)은 10신 중 제6 구경지불(究竟智佛)과 더불어 또한 서로 같으니, 총체적으로는 지위에 따라 승진하는 바라밀 위에 불과의 명호를 세운 명칭이 모두 10신이 믿는 과(果)를 여의지 않음에 근거한 것이다. 가령 선재가 한결 같이 미륵의 불과에 이르자 또한 선재를 가리켜 문수를 보도록 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문수가 이 계몽의 과(果)를 믿는 지위니, 행을 발해서 닦아 나아가는 데 옛 자취를 여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이제 문수보살이 청량산에 머무는 것은 염부제 한 경계의 동북방이 간위(艮位)를 주재하는 것이니, 이는 계몽을 발명(發明)하는 첫머리임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동자 보살이 된 것인데, 실제로 말하자면 시방 모든 부처님의 자체성 없는 이(理)의 묘한 슬기로써 성불하는 데에는 이를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이 문(門)은 일체 중생이 다 갖고 있지만, 이(理)를 미혹해서 스스로 미혹해 보지 못하는 것이니, 만약 이(理)를 깨달은 자라면 현행(現行)의 분별이 해당되는 것이라서 선정으로 비춰야 비로소 분명하기 때문에 간(艮)이 지(止)가 되는 것이다. 나머지는 예에 준거해서 명칭에 따라 지위를 회통하면 알 것이다.
다섯째로 모든 보살이 와서 화현한 법좌의 체(體)를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경전에서 “묘보장(妙寶藏) 사자좌를 변화로 만들어 낸다”고 말한 것은 법보(法寶)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는 교행(敎行)의 그물이기 때문에 보배 그물로써 법좌 위를 덮는 것이니, 10신위 중 법좌의 체(體)는 과(果)를 근거로 해서 명칭을 이루기 때문에 보련화장(寶蓮華藏)을 체(體)로 삼으며, 10주위 중에서는 여래의 지혜와 자비를 근거로 해서 체를 이루기 때문에 비로자나장을 체로 삼으니 곧 사자좌의 명호가 비로자나장이며, 10행위에서는 청정한 행으로 더러움을 여의니 사자좌가 연화장을 체로 삼고 있으며, 10회향위에서는 대자비로 생사에 처해 가르침의 행을 시설하는 데 만법을 총괄할 뿐 1법도 집착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법좌의 체가 다만 보(寶)로써 명칭을 삼고, 색류(色類)에 국한됨 없이 가르침의 행이 두루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에 법좌에 보배 그물이 있어서 그 위를 덮는 것이다.
여섯째로 보살의 몸의 광명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이 지위의 보살이 대자비행으로 세앙에 처해서 사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지혜에 맡겨 중생을 비추는 것이 바로 청정한 광명이 항상 비추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일곱째로 보살이 어떤 법을 얻었길래 자재로운가를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경전에서 “의지함이 없는 청정법신을 보고 지신(智身)으로써 한량엇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씀이 이에 해당되는데, 이는 법의 의지함이 없는 성품을 보니 일체 무명이 문득 묘용의 지혜가 되어서 곧바로 신통변화가 방위가 없음을 밝힌 거이다.
여덟째로 여래께서 광명을 놓은 처소의 ‘법을 나타냄’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10신에서 발 밑 족륜으로 광명을 놓은 것은 신(信)으로 시초를 삼음을 밝힌 것이며, 10주에서 발가락 끝으로 광명을 놓은 것은 성위(聖位)에 들어가는 시초임을 밝힌 것이며, 10행에서 발 등으로 광명을 놓은 것은 성성(聖性)에 들어가는 시초임을 밝힌 것이며, 10행에서 발 등으로 광명을 놓은 것은 성성(聖性)의 법신에 의지해 행을 일으킴을 밝히는 것이다. 무릎이란 것은 사람이 앉았다, 일어났다, 돌렸다, 굽혔다, 폈다 하는 것이 자재로움에 말미암는 바이니, 이는 이 회향위의 법문이 진(眞)을 돌이켜 세속에 처해서 해탈하여 물듦이 없는 대지혜와 비원(悲願)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 생사에 처해서도 항상 열반이고 열반에 처해서도 생사와 함께 해서 걸림없이 자재롭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는 광명을 놓는 처소로써 나타낸 것이며, 10지에서 미간은 중도(中道)의 과광(果光)을 나타낸 것이다.
아홉째로 모든 보살이 누구로부터 발심했는가를 밝힌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모두 자기 마음의 비롯함이 없는 분별무명을 발심의 시초로 삼아서, 이 비롯함이 없는 무명이 대원경지(大圓境智)가 되는 것을 요달하기 때문에 시방 비로자나 여래와 더불어 선근이 같은 것이니, 만약 이 지혜를 여의면 성불할 기약이 없으며 부처님을 볼 날도 없다. 이 때문에 경전에서 “이같은 보살이 모두 비로자나 여래와 더불어 과거에 선근이 같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니, 이는 자기의 무명을 요달하여 대지혜의 체(體)를 성취함으로써 모든 부처님께서 이 지혜를 함께 함을 밝힌 것이다.
열째로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가는 인과를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금강당보살은 수행하는 사람이고, 묘보(妙寶)세계는 닦는 바의 행이며, 무진당불(無盡幢佛)은 행한 바의 과(果)임을 밝힌 것이니, 나머지 아홉은 이를 본받아 알 수 있다.
이하 10단락의 게송이 있는데 1단락이 10행이고 1행이 1게송이니, 송(頌)한 바의 법은 해당 지위인 10회향의 지위에서 모두 다스리는 강기(綱紀)의 문이다. 경문에 스스로 갖추고 있어서 다시 해석을 가하면, 문장이 번거롭고 뜻이 침체되어서 표현한 법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해석을 생략하겠으니, 나머지는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 있다.

25)십회향품(十廻向品)
장차 이 품을 해석하는 데 세 가지 문은 앞에서와 같다.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 품이 어째서 명칭이 10회향인가?


10주에서 처음으로 모든 부처님의 지혜 가문에 태어나서 비록 제7 방편바라밀로 대자비행을 이루었지만, 그러나 처음 진(眞)에 응하느라고 이지9理智)를 닦는 출세간의 마음이 많고 자비를 행하는 행이 열등하기 때문에 초발심주(住)의 묘봉산 정상에서 이름이 덕운(德雲)인 비구를 보고서 ‘모든 부처님을 억념하는 지혜 광명문’을 얻은 것이니, 비록 이후 단계적으로 10선지식이 10바라밀로 서로서로 사무쳐 들어가서 모든 행을 융화시켜 일찍이 구족했음을 알긴 하지만 그러나 반드시 본위(本位)의 행문을 따라서 우열이 전혀 다르니, 이는 같은 것 가운데 구별됨을 밝혀서 승진하게 한 것이다.
또 10행위의 행이 되는 첫머리에서 삼안국(三眼國)의 선견(善見)이라는 이름의 비구가 바로 숲 속에서 경행(經行)하는 것은 그 10행의 지안(智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으로 근기를 관해 중생을 이롭게 하고 교화해서 세속을 벗어나게 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비구로써 나타낸 것이며, 10행이 광대해서 감싸서 그늘을 드리우는 것이 많이 있기에 임(林)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 10회향위에서는 앞의 두 지위가 세속을 벗어난 마음이 많고 대자비행이 열등함을 밝힘으로써 10주 초심에서 얻은 모든 부처님의 지혜와 10행 중의 세간을 벗어난 행문을 갖다가 세속에 처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회향이라 이름 붙인 것이니, 진(眞)을 돌이켜 세속에 들어가서 중생을 이롭게 하기에 그 명칭이 회향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지위의 법을 나타낸 선지식을 바로 죽향(鬻香)장자의 명호인 청련화로써 나타낸 것은 이 10회향 법문을 밝히는 것이다. 마치 합화향법(合和香法)에서 온갖 향을 합쳐 하나의 환(丸)을 만들어 서로 서로 자익(資益)함으로써 두루 스며들게[熏] 하는 것처럼 이 10회향 법문도 마찬가지라서,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인 오분법신향(五分法身香)으로써 대자대비와 모든 바라밀과 4섭법과 4무량심과 열반과 생사와 모든 번뇌문을 화합해서 다 함께 한 법계의 진향(眞香)을 이루는 것이 모두 대원(大願)으로부터 첫머리를 삼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 지위의 명칭이 회향인 것이며, 장자(長者)의 명칭이 청련화인 것은 이 지위의 행이 오염과 청정, 생사와 열반에 물들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또 장자는 세속의 흐름에 처해서 지혜가 세상 사람보다 뛰어난 것을 밝힌 것이기에 그 이름이 장자인 것이다. 청련화는 온갖 색깔의 꽃 중에서 이 꽃이 색과 향이 제일이듯이 오위 행문에서 이 10회향 법문이 제일임을 나타낸 것이니,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10회향 법문이 대원력으로써 자비와 지혜, 생사와 열반을 회통하여 1법계의 참된 자재법(自在法)을 성취하기 때문에 능히 이전 지위를 불과를 자량하여 보현의 행문을 성취해서 익숙하게 하고 자재롭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전후의 10주, 10행과 10지, 11지가 모두 이 10회향 지위의 이지(理智)와 대원(大願)과 대지혜와 대자비가 원융한 바임을 밝힌 것이다. 그리하여 10회향 지위가 앞에도 통하고 뒤에도 사무쳐서 총체적으로 모두 거두어들이는 것이니, 이 때문에 청련화가 모든 꽃 중에서 색과 향이 가장 뛰어남으로써 다른 꽃을 능가한다고 나타낸 것이다.
또 도솔천궁이 삼계에서 가장 뛰어남을 나타낸 것이니, 그 이유는 무엇이가? 세간의 삼세 모든 부처님께서 모두 이 도솔천에 계시면서 보리심을 원만히 키워 세간을 교화하기 대문이며, 그 위의 화락천(化樂天)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은 방일(放逸)을 즐겨하기 때문이며, 또 그 위의 색계와 무색계는 정(靜)을 즐기는 마음이 많기 때문이며, 도솔천 밑의 야마천과 도리천은 즐거움에 집착하는 곳이라서 지족(知足)하는 천(天)이 아니기 때문이며, 4천왕천은 사면으로 거쳐해서 정위(正位)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문에 이 도솔천이 욕계의 하늘에 처해서 상하의 가운데에 처한 것이며, 또 이 도소천에서 세 가지 복덕을 긴요히 닦은 사람이 다 함께 태어나는 것이다.
세 가지가 무엇이냐면, 첫째 보시를 수행하는 것이며, 둘째 계율을 지키는 것이며, 셋째 선정을 닦는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하늘들은 세 가지 복을 닦아서 균등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 치우침이 많다. 즉 계율과 보시, 두 가지 복만 닦기 때문에 나머지 하늘은 방일이 많거나 정(靜)을 즐김이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상생경(上生經)』에서는 “즐거이 보리심을 키우고자 하는 자는 이 천에 와서 태어난다”고 한 것이니, 이 때문에 이 도솔천에서 10회향문을 설해서 법의 뛰어남을 나타낸 것이며, 또 그 밑의 도리천ㆍ야마천과 그 위의 화락천ㆍ타화자재천을 합친 5천의 한 가운데에 처한 것이다. 그러므로 10회향을 설해 지혜와 자비를 균등하게 융화시켜 회통함으로써 중(中)에 처하도록 하기 때문에 이 하늘에서 10회향을 설한 것이다. 다라서 이 처소를 갖고서 설한 바의 법문을 나타낸 것이며, 또 죽향(鬻香) 장자의 명호인 청련화로써 나타낸 법위(法位)도 이 뜻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명칭이 10회향인 것이다. 그리하여 10바라밀 행이 일(一)과 다(多), 동(同)과 별(別)의 문을 융화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열 가지 회향으로 다함 없음[無盡]을 나타낸 것이며, 대원(大願)의 바람으로 지혜와 자비의 구름을 불어서 널리 비처럼 내리게 하는 것이다.
둘째, 품의 온 뜻을 해석한다는 것의 대의(大意)는 앞서 서술한 바와 같으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이 뜻을 둘로 나누리니, 하나는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이며, 둘은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첫 번째의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이때” 이하부터 제33권 말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다섯 단락으로 장과하겠다.
첫째로 품의 처음인 “이때” 이하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일체 모든 부처님의 회향”에 이르기까지 33행의 경문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금강당보살에게 가지(加持)하여 10회향을 설하게 한 분(分)이다.
둘째로 “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설했고 앞으로 설할 것이고 현재 설한다”에 이르기까지 9행 반의 경문은 바로 10회향의 명목을 올바르게 거양한 분이며, 이 이하 “불자야, 무엇을 보살마라살이라 말하는가”부터 제33권에서 일컫는 “모두 청정을 얻어 피안에 이른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10권의 경문은 10회향의 10바라밀을 따라 닦아 나아가는 행문을 올바르게 설함을 밝힌 분이다. 이상 10개의 회향은 한 개가 하나의 바라밀행이어서 모두 다 함께 열 단락의 과(科)가 되는 것이다.
열세 번째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 이하 “일체 세계의 도솔천궁이 다 이와 같다”에 이르기까지 16행의 경문은 대지를 진동하고 공양을 일으킨 분(分)이다.
열네 번째 “이때 다시 부처님의 신력으로” 이하 “또한 다시 이와 같다”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명호가 같은 보살이모여 들어서 증명 지음을 밝힌 분(分)이다.
열다섯 번째 “이때” 이하 6행 반의 경문은 금강다보살이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처음 제1 단락에서 모든 부처님께서 금강당에게 가지(加持)한 분(分)을 다시 네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로 “이때 금강당보살” 이하 “모든 보살의 10회향을 연설했다”에 이르기까지 1행 반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선정에 드니 모든 부처님께서 같은 명호로 더불어서 가지함을 밝힌 분이다. 둘째로 “불자야, 너는 반드시 부처님의 위시력을 이어받아서” 이하 “장애가 없는 법광(法光)”에 이르기까지 4행 반의 경문은 모든 부처님께서 10회향 법문을 권유해 설함을 밝힌 분이다. 셋째로 “이때” 이하 “선근력”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모든 부처님께서 금강당에게 열 가지 법력의 가지를 줌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이때” 이하 “과거ㆍ미래ㆍ현재 일체 모든 부처님의 회향”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모든 부처님께서 손으로 정수리를 어루만져서 금강다보살로 하여금 선정에서 나와 법을 설하게 함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의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한면, 대략 열 가지 문을 세우겠다. 첫째 삼매에 들어간 인연을 해석하는 것이다. 둘째 삼매의 명칭을 해석하는 것이다. 셋째 도래한 모든 불찰의 멀고 가까움을 밝히는 것이다. 넷째 모든 부처님의 수(數)를 밝히는 것이며, 다섯째 모든 부처님의 명호가 동일한 연유를 밝히는 것이다. 여섯째 부처님께서 현전해서 칭찬함을 밝힌 것이다. 일곱째 모든 부처님께서 다함께 가지(加持)해서 선정에 들게 함을 밝힌 것이다. 여덟째 모든 부처님께서 정수리를 어루만지는 인연을 밝히는 것이다. 아홉째 선정에서 나와 대중에게 고해서 법을 탄탄함을 밝히는 것이다. 열째 열 가지 회향을 올바로 설함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로 삼매에 들어간 인연을 해석한다는 것은 나중에 배우는 보살로 하여금 궤칙(軌則)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삼매의 방편으로 지혜를 나타내서 밝고 청정하게 함을 알도록 한 것이며, 삼매의 힘으로 능히 법을 설하게 함으로써 지혜로 간택하는 자재로움이 분명하게 함을 알도록 한 것이니,삼세 모든 부처님의 법칙이 응당 이와 같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반드시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둘째로 삼매의 명목을 해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째서 명칭이 지광삼매(智光三昧)인가? 대자비의 문을 성취하는 데는 대지혜가 아니면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이니, 가령 10주 중에서는 부처님 지혜가 자기 마음과 더불어 합치함을 드러내기 때문에 곧 방편 삼매로써 작위도 없과 사량도 없는 것이, 마치 청정한 물이 맑고 밝으매 해나 달 등의 온갖 만상이 자연히 드러나 사무치는 것과 같다. 또 10행 안에서 삼매가 곧 선사유(善思惟)라고 호칭한 것은 곧 이(理)에서 사법(事法)의 차별을 따르기 때문에 그 명칭이 선사유임을 밝힌 것이지만, 이 10회향에서 들어간 삼매의 명칭이 지광(智光:지혜의 빛)인 것은 곧 지혜로써 자비를 행한 것이니, 세속에 처해 오염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이 지광(智光)으로 세속을 비추니 세속마다 진(眞) 아님이 없는 것이며, 그래서 죽향(鬻香)장자의 청련화로 나타내서 세속에 처해서도 오염이 없음을 밝힌 것이며, 10주와 10행에서 비구를 표수(標首)로 삼은 것은 세속을 벗어난 공(功)을 밝힌 것이라서 하나같이 선재동자의 선지식에 의거해 나타낸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지위에서는 자비와 지혜를 원융시켜 자재롭게 한 것이니, 따라서 삼매의 명칭이 지광(智光)이 된 것이다.
셋째로 도래한 모든 불찰의 멀고 가까움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지위에 따라 승진하면서 지혜가 발전함을 밝힌 것이니, 10행에서 만불찰미진(萬佛刹微塵)이라 말하고, 이 지위에서 십만불찰미진이라 말한 것은 승진이 이전보다 능가함을 나타낸 것이다.
넷째로 모든 부처님의 수(數)를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경문에서 “시방으로 각각 십만불찰미진수”라고 말한 것은 닦아 나아가는 지업(智業)이 광대해서 시방 여래와 더불어 지체(智體)의 공용(功用)이 합치함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로 모든 부처님의 명호가 동일한 연유를 밝힌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째서 시방 모든 부처님께서 선정에 들어간 보살과 더불어 명호가 같은 금강당이 되어서 그 앞에 나타났는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앞에서 해서했듯이 닦아 나아가는 지혜가 회통하는 것이며, 둘째 부처님의 명호와 여래의 몸으로써 선정에 들어간 보살 앞에 나타나는 것은 지위에 처해 미혹하지 않고서 자타(自他)의 의심을 끊고 법인(法印)을 성취하며, 또 지혜가 이미 합일하니 몸 역시 둘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여섯째로 모든 부처님께서 나타나서 금강당을 칭찬함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말로써 가지(加持)하여 선정에 들어간 자로 하여금 법을 인가해 의심하지 않게 하며, 또 배우는 학도로 하여금 나머지 의심을 끊게 하는 것이며, 또 몸[身]과 지혜가 이미 동일하니 법을 설하는 것도 동등함을 밝힌 것이다.
일곱째로 모든 부처님께서 다 함께 가지해서 선정에 들어가게 함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른바 ‘다 함께 가지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자기 지혜의 회통한 바가 부처님의 덕에 합하는 것이며, 둘째는 모든 부처님께서 지혜와 역(力)을 따라서 두 연(緣)이 회통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가지가 되며, 또 스스로는 비록 의심하지 않더라도 타자의 의혹을 끊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 가지를 주어서 법칙을 성취한 것이다. 또 부처님의 가지를 설한 것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명호가 같은 가지이니 같은 명호를 주기 대문이며, 둘째는 몸을 나타내는 가지이니 그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며, 셋째는 말로 찬탄한 가지이니 말로 찬탄하기 대문이며, 넷째는 비로자나의 과거 원력의 가지이며, 다섯째는 열 가지 법을 주는 가지이니 경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으며, 여섯째는 시방 모든 부처님께서 손으로 정수리를 어루만지는 가지이다.
여덟째로 모든 부처님께서 손으로 정수리를 어루만지는 인연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어째서 손으로 정수리를 어루만지는가? 오른손이란 것은 작용의 편함을 밝힌 것이니, 모든 부처님께서 오른손으로 인도해 제접함으로써 선정에서 나와 법을 설하게 한 것이며, 또 스스로의 작용이 모든 부처님의 작용과 더불어 서로 미치기 때문이며, 또 모든 부처님께서 법제(法際)에 이름[至]을 허가함을 밝힌 때문이다. 그리하여 해당되는 지위에서 자기 지위의 제법(祭法)이 있는 것이다.
아홉째로 선정에서 나와 대중에게 고해서 법을 찬탄함을 밝힌다는 것은 경문에서 스스로 갖추고 있다.
열째로 열 가지 회향을 올바로 설함을 밝힌다는 것은 아래 경문대로이다.
이상 첫단락 33행 경문의 해석을 마친다.
두 번째,2)“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설했고 앞으로 설할 것이고 현재 설하고 있다”에 이르기까지 9행 반의 경문은 10회향의 명목을 올바로 들은 분(分)이며, 이후 해당되는 지위에 따르는 분까지는 앞으로 해서하겠다.
세 번째, 10회향이 10바라밀을 따라 닦아 나아감을 올바로 설한 분(分) 중에서 “불자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회향이다”부터 이하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衆生相)을 여읜 회향이라 말하는가?”에 이르기까지 이 한 단락 속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해당 단락의 경문의 뜻을 과(科)하는 것이며, 둘째 경문에 따라 해석하는 것인데, 이 열 개의 회향 속 장과(長科)에는 180단락의 경문이 있다.
첫 번째, 해당되는 단락의 경문 뜻을 과(科)한다는 것에서 이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의 단락을 10단락으로 장과하겠다.
첫째로 “불자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이라 말하느가?” 이하 “이같은 등의 한량없는 선근”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6바라밀과 4무량심을 닦아서 처음으로 회향을 성취함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로 “선근을 닦을 때” 이하 “모두 일체지를 얻게 한다”에 이르기까지 14행반의 경문은 대원(大願)의 염(念)을 일으켜 중생을 제도함을 밝힌 분이다.
셋째로 “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33행 반의 경문은 친소(親疎:치하고 소원함)와 선악에 평등함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에 머문다“에 이르기까지 20행의 경문은 모든 불법으로 뛰어난 연(緣)을 삼아서 깊이 자기 선근을 심어 중생에게 주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로 “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 “해탈을 얻게 했다”에 이르기까지 20행의 경문은 모든 불법으로 뛰어난 연(緣)을 삼아서 깊이 자기 선근을 심어 중생에게 주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로 “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 “해탈을 얻게 했다”에 이르기까지 38행의 경문은 보살이 악도(惡道)에 들어가서 모든 중생을 대신해 고(苦)를 받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함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로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다시 이런 생각을 지었다” 이하 “피안에 이르게 한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보살이 자기의 선근을 통해 모든 중생에게 열 가지 궁극적 즐거움을 얻게 함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의심을 끊게 했다”에 이르기까지 11행 반의 경문은, 보살의 대원은 중생이 비록 많지만 다성(多聖)을 빌리지 앟고 오직 나 한 사람만이 홀로 능히 제도해서 다함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에 이르기까지 31행의 경문은 보살이 마치 태양이 널리 비추면서도 은혜의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처럼 중생법에 집착하지 않고 회향함을 밝힌 분이다.
열째로 “이때” 이하 “게송을 설한다”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금강당(金剛幢)보살이 대중을 관하고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 경문에 따라 해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째서 명칭을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마녀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이라 했는가? 이 명목의 해석에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지위에 따라 수행하는 단계의 법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바야흐로 근본 지위의 명호를 밝히는 것이다.
첫째로 지위에 따라 수행하는 단계의 법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10주 중 초발심주(住)에서는 일체지를 구해서 이 보살이 반연하는 열가지 난득법(難得法)을 마음에 발하니, 이른바 처(處)와 비처(非處) 등의 열가지 여래의 지력(智力)을 마음에서 발하여 부처님 집안에 태어나 부처님의 참된 자식이 되는 것이며, 10행에서는 환희행을 행할 때 대시주(大施主)가 되어서 무릇 소유한 물건을 모두 능히 은혜롭게보시하면서도 인색하거나 후회하는 일이 없는 것으로 보살행을 행함으로써 반연을 삼으며, 이 10회향에서는 첫 회향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의었다고 이름붙인 것은 바로 6바라밀과 4무량심으로 반연을 삼는 것이다. 즉 10주와 10행에서 얻은 대지혜 법신의 집착 없는 청정행으로 광대한 원행(願行)을 일으켜 생사에 처해서 6바라밀로 행의 첫머리를 삼고, 자ㆍ비ㆍ희ㆍ사를 생사에 처해서 사물을 이롭게 하는 연(緣)을 삼으니, 이 때문에 그 명칭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이 됨을 밝힌 것이다. 즉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로써 구원과보호를 삼고 6바라밀의 출세간법으로 중생상을 여읨을 삼는 것이니, 6(度)의 행문이 출세간의 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같이 세운 단계가 총체적으로 10주의 초발심 지위에서 일시에 다갖췄지만, 다만 종이나 대나무ㆍ비단에 쓰는 명언(名言)의 차례 때문에 마침내 단락의 나뉨이 생기는 것이지 이 법이 먼저와 나중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니, 가령 10주위 중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낸 중에서 해문국(海門國)에서 대해를 관할 때 아수라 등 10왕의 공양 등을 갖추고 있음이 바로 회향의 뜻이다. 그러나 교문(敎門)의 단계적 승진은 간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만약 이렇지가 못하면 나중에 배우는 자로 하여금 행이 침체해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로 근본 지위의 명칭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또한 대지혜의 법신으로 여읨의 체(體)를 삼고, 10바라밀과 4무량심을 생사에 처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반연을 삼기 때문에 그 명칭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심이 된다. 즉 지혜의 체(體)가 의지함이 없고 구원하고 보호하는 바가 머묾이 없고 중생이 상(相)이 없어서 올바로 구원하면서도 작위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중생이 스스로 참되어서 생겨나고 사라짐이 없기 때문에 그 명칭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이 되는 것이다.
이 첫 회향 법문을 성취하는 데는 다섯 가지 연(緣)을 구조하는데, 첫째 법신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스스로 요달해 아는 해타의 연을 갖추는 것이며, 둘째 대지혜 해탈의 연을 얻는 것이며, 셋째 대원력으로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연을 갖추는 것이며, 넷째 10바라밀이 구족한 뛰어난 행의 연이며, 다섯째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로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 연이니, 이 다섯 가지 법을 갖춰야 비로소 능히 이 첫 회향을 성취하는 것이다.
‘어떻게 단바라밀을 행하고 계바라밀을 청정하게 하는가’는 능히 악법을 버리기에 계의 체(體)가 스스로 청정한 것이다.
‘어떻게 인바라밀을 닦는가’는 시계(施戒:보시의 계율)가 이미 이루어져서 반드시 인(忍)의 힘을 닦아야 하는데, 그때 보시의 체(體)는 능히 버리기 계의 체(體)와 더불어 청정한 인(因)이 되지만, 인의 체는 모름지기 가행해서 닦으니 인(忍)은 남이 능욕하는 것을 막는 것이지 자기가 스스로 버림을 말미암지 않으므로 반드시 가행해서 인을 배우는 것이다.
‘어떻게 정진바라밀을 일으키는가’는 인의 체(體)가 스스로 그 분노와 원한을 쉬는 것이지 사물을 이롭게 하는 행을 기꺼이 닦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름지기 사물을 이롭게 하는 행을 일으키는 것이 이 지위의 정진의 뜻이다. ‘어떻게 정진바라밀을 일으켜 선바라밀에 들어가는가’는 정진으로 사물을 이롭게 하는 행을 부지런히 하는데, 흐트러진 행동으로 상응함이 많을까 걱정스럽기 때문에 모름지기 선바라밀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반야바라밀에 머무는가’는 선(禪)이 능히 청정한 슬기를 발생하는 것이다. ‘무엇이 대자(大慈)와 대비(大悲)와 대희(大喜)와 대사(大捨)인가’는 6바라밀이 출세간의 마음이 많아지기 때문에 자ㆍ비ㆍ희ㆍ사의 중생을 이롭게 하는 법으로써 모든 행을 균형과 조화가 있도록 가지(加持)한 것이다. 이상 6도(度)와 4무량심을 균등하게 함으로써 지혜와 자비가 처소를 얻어 이 첫 회향 법문을 이룬 것이다.
이 회향의 법문은 10신ㆍ10주ㆍ10행에서부터 모두 갖춰져 있건마는 이 본위(本位)에 이르러야 비로소 제등(齊等)하게 하는 것이니, 만약 해행문(解行門)으로 한다면 차이가 있지만 만약 이지문(理智門)으로 한다면 모두가 먼저와 나중, 처음과 끝이 없는 법이다. 이하 해당되는 지위에서 10도(度)로 다스리는 법이 있음은 아래 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다시 해석하지 않겠으니, 다만 경문대로 행으로써 행해야 한다. ‘어째서 단지 6바라밀로만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을 삼았는가’는 대비문(大悲門) 속에서 다만 중생이 세간을 벗어나도록 했기 때문이니, 그런 뒤에야 비로소 생사 속에 들어가게 함을 밝힌 것이다.
이하 게송 중에서 56행의 게송은 주앵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을 읊은 것이니, 이 한 단락 안에서는 보살이 행하는 행이 균형되고 조화로워서 처소를 얻음을 밝힌 것이다. 2행 1게송이 경문대로 스스로 갖춰져 있으니 뜻을 얻어 행으로써 행해야 한다.
이 한 단락은 단라바밀을 주(主)로 삼고 9바라밀을 짝[伴]으로 삼는다. 선재 동자가 죽향(鬻香)자자의 명호인 청련화로써 행을 행하는 사람을 나타낸 것은 이름 아랫 글자의 듯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 그 가운데 행한 바의 법칙은 죽향장자가 향을 파는 사람인지라 능히 모든 향을 가려내고 모든 향을 화합해서 사람에게 파는 거으로써 이 지위의 행을 나타낸 것이니, 앞에서 이미 해석해 마쳤다.
제2 불괴회향(不壞廻向)은 계바라밀로 체(體)를 삼고, 나머지 아홉으로 짝을 삼는다. 선재동작 강사(舡師)의 명호인 바시라(婆施羅)로써 행을 행하는 사람을 나타낸 것은 한역하면 자재(自在)인데, 누각성(樓閣城) 문 밖 해안 위에 머물러서 대비당(大悲幢)이 행하는 법문을 닦는 것은 이 회향위 소에서 대비를 계의 체(體)로 삼아 일체 생사의 바다를 보아서 일체 대지혜의 바다를 얻게 하여 생사 바다에 거처하면서 자재로움을 얻기 때문에 그 명칭이 자재임을 밝힌 것이니, 널리 경전에서 설한 대로이다. 또 계의 체(體)가 바다의 성품이 청정해서 죽은 시체를 묵혀두지 않는 것과 같음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법신이 본래 더러운 번뇌의 오염과 더러운 죽은 시체를 묵혀두지 않음을 밝힌 것이니 자세한 뜻은 경문대로이다.
경문에서 “불자야,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불괴회향이 되는가?”라고 했는데, 이 한 단락 경문의 뜻을 둘로 나누겠다. 첫째는 이 한 단락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이며, 둘째는 경문에 따라 해설하는 것이다.
첫 번째의 이 한 단락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불자야” 이하 “게송을 설하다”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여섯 단락으로 과(科)하겠다.
첫째로 “불자야” 이하 “무량무수행(無量無數行)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1행반의 경문은 보살이 믿음의 불괴(不壞)를 얻음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로 “불자야” 이하 “대원이 다 만족하게 하다”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보살이 주지(住持)하면서 중생을 교화함을 밝힌 분이다.
셋째로 “보살이 이와 같이” 이하 “아승기의 옷이 그 땅에 널려 있다”에 이르기까지 33행의 경문은 의과보(依果報)의 장엄을 들어 천명함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불자야” 이하 “최상의 신해심(信海心) 회향”에 이르기까지 12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의과의 소유장엄(所有莊嚴)으로써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모두 중생을 제도해 해탈시키기 위한 것임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로 “불자야” 이하 “제2 불괴회향”에 이르기까지 24행의 경문은 보살이 능히 생사를 따라서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모든 업에 사(事)를 같이 하여 일체지의 순백 청정한 법을 구해서 항상 버리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로 “보살마하살” 이하 “게송을 설하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묘한 법에 대한 의심을 끊고서 들은 대로 스스로 요달하여 능히 상(想)의 힘을 따라서 일체의 찰(刹)에 들어가 중생을 널리 비춤을 밝힌 분이다.
이하 50행의 게송이 있는데, 2행 1게송이 모두 해당되는 지위 안에서 회향의 행할 바 행을 읊은 것이다. 경문에 스스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다시 해석하지 않겠으니 경문대로 행하라.
두 번째의 경문에 따라 해설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어째서 불괴 회향이 되는가? 비록 생사의 바다를 따르지만 법신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비록 분별을 따르지만 작위 없음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비록 온갖 견해를 따르지만 법안(法眼)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비록 온갖 행을 따르지만 보리심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비록 중생을 교화하고 성숙하게 해서 모두 불과에 이르지만 몸과 마음의 의주(依主)함이 없는 문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비록 이체 중생을 따라서 근기를 알아 사(事)를 같이 하지만 계의 체(體)가 늘 스스로 순백 청정함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그 명칭이 ‘불괴회향’인 것이며, 또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의 성취나 파괴가 없는 체(體)인 것이다.
이같은 아승기 보배[寶]라는 것은 근본행 속의 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의보과(依報果)이며, 아승기 꽃[華]이라는 것은 행으로써 능히 자타(自他)를 이롭게 하여 온갖 선(善)을 꽃피우는 의과이며, 아승기 만(鬘)이라는 것은 인(忍)의 과보인 것이며, 아승기 옷[衣]이라는 것은 참괴(慙愧)로부터 생긴 것이며, 아승기 덮개[蓋]라는 것은 대자비가 낳은 것이며, 아승기 번(幡)이라는 것은 회향심으로 낳은 것이며, 아승기 당(幢)이라는 것은 행의 물러나지 않는 힘을 따라서 생긴 것이며, 아승기 장엄구(莊嚴具)라는 것은 모든 조도법(助道法)이 낳은 바이며, 아승기 급시(給侍)는 겸손한 공경으로 오만을 여읨으로부터 생긴 것이며, 아승기 도식지(塗飾地)라는 것은 계품(戒品)으로부터 생긴 것이며, 아승기 도향(塗香)이라는 것은 계가 모든 법에 두루함으로써 생긴 것이며, 아승기 말향(末香)이라는 것은 과거에 꽃향을 뿌린 과보로써 생기 것이니, 대략 행으로써 과(果)를 아는 것이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아서 하나하나가 서로 비슷하니, 물류(物類)에 준하여 뜻으로 이해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에 일찍이 같은 물건들로 불(佛)ㆍ법(法)ㆍ승(僧)에게 공양할 때 이같은 과(果)를 획득한 것이니, 나머지는 이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이 회향의 체(體)는 가령 경전에서 “여실한 법인(法印)으로 모든 업문(業門)을 인(印)치고, 법의 무생(無生)을 얻어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에 머물며, 무생의 성품을 관해서 모든 경계를 인(印)침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호념(護念)으로 발심해서 회향하는 것이니, 모든 법성과 더불어 상응하는 회향과 작위 없는 법에 들어가 지은 바를 성취하는 방편회향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불괴회향의 대체(大體)이다. 이는 지혜가 불괴(不壞:파괴되지 앟음)이고, 생사가 불괴이며, 대원이 불괴이고, 대자비가 불괴로서 다 여실하기 때문이다.
가령 10주위에서는 오염을 여읜 대자비를 계의 체(體)로 삼기 때문에 곧 해문국(海門國)의 해운(海雲)비구로서 표상을 삼고, 10행위에서는 곧 공교(工巧)와 산술(算術)을 계의 체(體)로 삼기 때문에 석천(釋天)동자가 물가에서 한 산인법(算印法)으로 표상을 삼은 것이니, 행이 강물의 흐름이 되어서 바다로 돌아감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10회향위에서는 세속에 처한 대자비를 계의 체(體)로 삼기 때문에 곧 해강사(海舡師)의 자재함으로써 표상을 삼은 것이다.

新華嚴經論卷第二十長者李 通玄 撰一爾時一切寶莊嚴殿已下,至悉過諸天供養之上,有八行經,明如來受請入殿以佛自己善根依果出勝諸天無比對分。此明加行會勝位德如佛故,二時兜率天宮中已下,至而說頌言有五行半經,明諸天妓樂熾然不息諸天歡喜說頌分,此明入法悅樂故。第九有二十行頌,明稱歎往昔如來來入此殿分,云吉祥者,衆善所集名吉,衆福所加名祥,云金色殿者,殿有金色光明,亦名法身無垢。云蓮華殿者,殿有衆色蓮華莊嚴,亦表法無染,是蓮華義。山王殿者,明積德如山王非殿有山,如經云,寶者,貴德爲寶,非關寶王,餘義可知。所以須歎往昔如來者有三義,一兜率天王念昔自分善根力合古,二明古今諸佛道迹普周,三明如來道迹依古不異非天魔梵所改今爲衆生生信入故,此十佛亦以加行隨行成名。第十兩行經。明兜率天王歎佛幷結十方同此。第十一品末有十三行半經,約分爲二段,一爾時世尊已下,至爲衆說法,有六行半經,明如來處座爲衆說法分。二不可說諸菩薩衆已下,有七行經。明十方菩薩來集處座殿內莊嚴妙好勝諸天一切十方兜率天悉同此雲集莊嚴分,座體前已釋訖。師子座上結跏趺坐者,有二義,一世閒威儀,二會此十迴向中理事交徹,如來座體,以法界緣起不思議智無所依住大慈、大悲以爲座體。以無依住智性自遍周與虛空等,不去不來,而對現色,身與衆生數等,任根差別,隨應調伏,而化度之,而無所造作。如經云,法身淸淨妙用自在者是也。與三世佛同一境界住一切智者,以智體無內外中邊,諸佛同住境界亦爾。與一切佛同入一性者,爲無性之性無出入也。諸佛同此也。佛眼明了者,覺一切法非有無,而能以智遍知一切諸法也。有大威德普遊法界未嘗休息者。以無作無依之理智破一切執著,皆悉消亡名之爲威力。以智無表裏性遍如虛空應感現形而無來,去名之爲,遊無俗不眞名爲法界,一念三世古今情盡教化衆生無始無終,名未嘗休息,明時不遷也。具大神通者,大智無依無形性無生滅名之爲神,智無不達名之爲通,隨有可化悉能遍往者,明智無去來中邊表裏,十方衆生應感皆見,皆悉不同名爲,遍往,以一切諸佛無礙莊嚴而嚴其身者,此無礙莊嚴有二義,一四無礙智莊嚴,二佛依報正報二福莊嚴。一切相好及隨好,是以如來身是正報,國土蓮華藏世界是依報,智自善業而嚴自身及境爲智,法爾自具無邊功德,如九十七種大人之相,是只爲無明所覆,以慈悲喜捨饒益衆生,報得依果者,卽隨好光明功德是。如佛大人相有十華藏世界微塵數隨好無限,如經且約擧一種隨好功德名圓滿王,所有利益具在經說。又如無依住智體無自他內外所執,所有依報正報莊嚴身及國土,一切境界互相含入,猶如百千明鏡影像互相,容入重重無盡,重重無盡,身土衆境互入無盡,猶如帝釋所居寶網,諸天眷屬寶內重重衆像相入身境無礙,身出剎土,剎土出身雲,俱現佛事,一種自在諸法㧾然,於智境界不說有情無情之法。經云善知其時爲衆說法者,了根生熟如應化度。問曰:何爲諸佛知衆生心時與非時?荅曰:以如來心與一切衆生心本不異故,是一心一智慧故,以此知時與非時,諸佛了悟而與衆生共之。衆生迷惑自謂爲隔,一切諸佛以一切衆生心智慧而成正覺,一切衆生迷諸佛智慧而作衆生,及至成佛時還成衆生迷理之佛,所說法門還解衆生心裏迷佛衆生,以此不異故。知衆生心。經云不可說諸菩薩各從他方種種國土而共來集者,約萬行差別名爲他方,以法隨根應物調伏名種種國土,不出如來大圓明智,名爲而共來,集衆會淸淨者無情識也。法身無二者,與佛同一體性等無性也。無所依止者,無得無證也。而能自在起佛身行者,無作之智同佛用也。坐此座已者會此十迴向法界本也。殿出殊好者,以智所感也。出過諸天者,以智報感非有情爲也。解云:菩薩所報相約行所生。論主頌曰:菩薩以忍爲垂鬘慚愧恒爲衣服飾戒品塗香及末香慈悲普覆爲其蓋正心不動禪定幢智慧幡破諸邪見方便常住生死海饒益衆生爲妓樂㧾持演暢妙法音聞者解脫爲歌樂已上如文可知。此段有不可說他方菩薩衆,此一段諸天住兜率宮,菩薩衆㧾有一百五十箇百萬億衆,若他方所來菩薩有不可說諸天莊嚴高座及宮殿色類,有一百八十種差別,一類有百萬億,如來及菩薩自福莊嚴無有限數。此會所將如是大悲,如是智慧,如是萬行,但爲長養初發心住初生佛家之智慧大悲令慣習自在故時亦不改,法亦不異,智亦不遷,猶如竹葦依舊而成。初生與終無有麤細,亦如小兒長初生而爲大無異大也。此直以十行、十迴向、十地、十一地爲養道之方便,佛果在於初發心。又十住中一住具十住之功用故,及十住、十行、十迴向、十地,摠十住中摠具足故,猶如神龍馬王所生,其神駒生在其地,與父遲速相似,唯力用未如其母,如初發心菩薩,以乘如來一切智乘,初生佛家,與佛同智,唯神通道力未如,以待大悲萬行長養故,雖長養功終法不異也。時不遷也,終不出初發心時力用功畢,如龍女不出剎那際三生成佛,是如善財一生得佛果亦爾。一生義者得無生也。今且約立無生有十。一諸蘊自體無生,二諸見自體無生,三空無生,四性無生,五時劫不遷無生,六涅槃生死無生,七說法音聲寂默無生,八智慧分別無生,九神通力性自周遍無生,十不出剎那際對現三世盡古今劫一切衆生前身無生。有此十種無生義故,是名一生當得菩提。是此經意,以十行、十向、十地、十一地法方便用資初發心佛果,絕前後之情所望故以資糧與佛果同時互爲體用相資故,故號爲覺行互嚴。此經以果資行令行無著,以行資果大用得辦,如三乘以意生身菩薩未說乘佛一切智乘者,推佛果在十一地後三祇之劫終也。卽地前三賢爲資糧,十地爲見道,佛果在十一地後三祇之劫也。如此教與三乘中五位行相,一倍顚倒行相不同,後當更明。兜率天宮中偈讚品第二十四將釋此品,三門如前。第一釋品名目者,明以金剛幢等十菩薩各從異佛剎來,處兜率天宮至如來所,各化作妙寶藏師子之座已,各以十迴向法門因果而偈讚之。故名偈讚品,異佛剎者,從十行中,來入十迴向。第二釋品來意者,此品爲欲成十迴向中因果法門故此品須來也第三隨文解釋中,義分爲二。第一長科經意,第二隨文釋義。一長科經意者,於此一品大意前後摠作十一段長科一從爾時佛神力故已下至而說頌言有五十二行經,明金剛幢等十菩薩衆十方來集彰因示果不二分,二如來不出世已下,有十行頌,明佛以實示權分。三爾時堅固憧菩薩已下,有十行頌,明歎佛身性相無比要常親近供養無疲大願成滿方能履佛所行道分。四爾時勇猛幢菩薩已下,有十行頌,明佛及法要以淨心淨行方了見佛有爲不堪分。五光明幢菩薩已下,有十行頌,明一佛身而生多佛身如幻而生起分。六爾時智幢菩薩已下,有十行頌,明佛智無依無作不造不內不外而能現形普遍分。七爾時寶幢菩薩已下,有十行頌,明如來所有應現非情所爲任智無功衆生自業應見分。此段約自修行之行智現相應故,非時分智立時分者是情故,多時少時俱是情故,八爾時精進幢菩薩已下,有十行頌,明佛身非內外十方佛同等無有內外身對衆生業現分。九爾時離垢憧菩薩已下,有十行頌,明如來以無心無思無依之智性無表裏對現十方隨根普應分。十爾時星宿幢菩薩已下,有十行頌,明如來無心意識可名爲佛衆生以有心意識及住寂滅心者,摠不能見佛分。十一爾時法幢菩薩已下,有十行頌,明寧受衆苦不捨如來分。已上各說一法共成十迴向心,或但說有衆生著有,或但說無衆生著無。如經星宿幢菩薩頌云:衆生有分別,是佛是世界,了達法性者,無佛無世界。如下文法幢頌云,寧可恒具受,一切世間苦,終不遠如來,不睹自在力。此二頌皆相成就有無恐墮邊見,餘例知,如觀十方何意爲觀衆意之同別,亦觀十方世界諸佛法同不二。二隨文釋義中,從第一初五十二行經義分爲十段。一爾時佛神力故已下,至來詣佛所是諸衆來集分二其名曰已下至法幢菩薩,擧所來十菩薩名號分。三所從來國已下,至妙香世界,是諸菩薩所從來國土分。四各於佛所淨修梵行已下,至觀察幢佛,擧本所事佛之號分,五其諸菩薩已下,至無量功德有八行經,明諸來菩薩化座而坐放光顯德饒益分六所謂已下至猶若虛空有七行經,明諸來菩薩見無依止淸淨法身智慧遍遊十方事佛自在無礙分。七如此世界已下,至無有差別,明都結十方同此來集分。八爾時世尊已下,至神變之相,明如來放光所在普照十方彼此大衆皆相見分。九如是菩薩已下,至皆來集會有十六行經,明諸來菩薩往因同佛善根至法究竟自在分。十在於佛所因光所見已下,至頌有兩行經,明都結十方同此世界菩薩集會分。二隨文釋義者,於此五十行經,約立十門。一明十方菩薩所來之法,二釋菩薩名下之義,三釋十世界之所表,四釋十佛名號之因果,五釋十菩薩來至佛所所化之座體,六釋菩薩身光之因,七明菩薩所得何法而能自在化滿十方,八釋如來放光處所表法,九明諸來菩薩衆海從誰發心,十明隨位進修因果。一明菩薩所來法者,經云一一各與萬佛剎微塵爲數者,明進昇之法智之知見勝前位故,十住云百,十行云千,十向云萬,俱從萬佛剎微塵數國土外諸世界中來詣佛所者,明迷法云外世界智達名來詣佛所,云萬佛剎微塵者,是迷悟之數也。二釋菩薩名下之義者,其名曰金剛幢菩薩者,菩薩前已釋訖。金剛幢者,名堅固不動義,前十行位菩薩名林,表行覆蔭廣多義故。此位菩薩以幢爲稱者,明大悲之行處生死大海能摧破一切衆生煩惱自智無傾動故。十行明以行自卑和怨義,十迴向明大智堅强隨悲破怨自在義,此約檀度行堅固幢菩薩者,此大悲爲戒體故。勇猛幢菩薩者,此約大悲爲忍,是勇猛義,光明幢菩薩者,此約大悲爲精進之體,長處生死之夜,以智發明故,智幢菩薩者,此位大智於生死之中恒明常破闇故,以爲定體。寶幢菩薩者,明以大悲大智慧善施教網,名爲寶幢,明教可貴故,非世寶也。精進幢菩薩者,此位是第七方便行,善能知根同事處俗不迷同塵不污,是精進幢義故。無垢幢菩薩者,是此第八願波羅蜜自無生死,以智隨願利生故,常無垢也。星宿幢菩薩者,此力波羅蜜法王位成差別智,明善知衆根猶如星宿大小皆明。法幢菩薩者,此位是智波羅蜜,善安立諸法無能摧破者,是法幢義故。此已上是能行行之人。三釋世界名者,所從來國謂妙寶世界,明以妙法普施含生是可貴義,世界名妙樂者,明大悲爲戒處生死利衆生令得大樂,妙銀世界者,明以法身理智以成忍體猶如白銀柔軟明淨,妙金世界者,明精進利俗無有勞倦不虧眞理黃中致福悉皆金色也。妙摩尼世界者,明法性白淨用而無垢自在,以爲定體故。妙金剛世界者,明無性妙慧能破虛妄不自壞故,妙波頭摩世界者,是赤蓮華也,明此以大悲方能同色香而無染故。妙優鉢羅華世界者,靑蓮華色也。明第八以智隨悲之行淸潔不污,以靑蓮華色處泥不污,以用表之也。妙旃檀世界者,以此法師位成說法香也。妙香世界者,明此位大智大悲隨位功德終,以無依無作之微妙智,而滿十方無來去智,法音隨遍無有形故,但云妙香不云形類,表勝前有迹故。此十世界已上,名是此十迴向位行中之法故,言妙香世界者,是隨生死教化衆生理智妙用也。世間以土地山河爲世界,智人以智德妙用爲世界。四釋十佛名號因果者,經云各於佛所淨修梵行者,明隨位進修加行佛果,卽如下十箇佛是。所謂無盡幢佛者,明此十向大悲之位所施無盡,以成佛果之號,其施如下迴向品自明,風幢佛者,明巽爲風爲白淨爲言說爲赤爲日爲明爲白淨卽如風無形色而香臭悉吹皆令淨故。又巽爲雞知時而鳴故,像此知根而垂教也。上値天門開衆善也。巽爲已盛陽之始也。定是非之時也。時齋戒法則之時故,巽爲言說爲口爲面門談衆善也。能治辛丑,丑爲小男,以衆言說化童蒙也。以此言之,風幢佛是。此戒波羅蜜之風化果號也。解脫幢佛者,忍位中果也。忍力已成無不解脫也。是西方兌爲卑下義,威儀幢佛,此主北方佛果,共信位中北方威儀智佛同號。此主北方師範位也。以威儀庠序以接童蒙故,以約行爲果號,明相幢佛。此與十信位東北方明相智佛同號故,明約坎爲所治,丑爲信心,寅爲契理,始明借方表法也。主丑爲山,山爲不動,不動卽淨,淨能發明,明禪之始也。入定之始正慧開敷,以十向之位不離十信所信之法,於彼法上以爲安立,此明十向之定體,能發大悲利俗之明慧故,如常幢佛,與十信中第六究竟智佛亦相似,摠約隨位昇進波羅蜜上,立佛果號之名,摠不離十信所信果,一如善財至彌勒佛果還指善財見文殊者是也,明文殊是啓蒙信果之位,發行進修不離舊迹,今文殊菩薩住淸涼山,是此閻浮一境之東北,主艮位,表啓蒙發明之首故,故爲童子菩薩,以實言之,本是十方諸佛無性理之妙慧,成佛莫不由之。此門卽一切衆生盡有,迷理自惑而不見。若悟理者,現行分別是也。以定照之方明故,艮爲止也。自餘准例,隨名會位知之。五釋諸菩薩來所化之座體者,經云化作妙寶藏師子之座,以法寶利生教行網故,以寶網彌覆座上,十信位中座體約果成名,以寶蓮華藏爲,體十住,位中約得如來智慧大悲而成體,卽以毘盧遮那藏爲體,卽師子座號毘盧遮那藏,十行位中,以淨行離垢師子座,卽以蓮華藏爲體,十迴向位明大悲處生死設教行普該萬法不拘一法故,座體直以寶爲名,不限色類以教行遍周而漉衆生故,座有寶網彌覆其上。六釋菩薩身光者,明此位菩薩以大悲行處世利物任智慧而照衆生卽淨光恒照七明菩薩得何法而自在者?經云見無依止淸淨法身,以智身現無量故,是明見法無依止性,一切無明便爲妙用智慧,卽能通化無方。八釋如來放光處所表法者,明十信足下輪中放光以信爲初,如十住足指端,明入聖位之初,十行足趺,明依聖性法身起行,十廻向卽於膝上放光者,明表法光明以膝者人之坐起廻旋卷舒自在之所由也。明此迴向位法門是。迴俗處眞解脫無染之大智,以悲願利生,處生死而恒涅槃,處涅槃與生死無礙自在,以放光處表之,十地眉間表中道果光也。九明諸菩薩從誰發心者,皆於自心無始分別,無明爲發心之始,達此無始無明爲大圓鏡智故,卽與十方毘盧遮那如來同善根故,若離此智,無成佛期,無見佛日,是故經云:如是菩薩皆與毘盧遮那往昔同善根故,明達自無明,成大智體諸佛共此智也。十明隨位進修因果者,明金剛幢菩薩是所修行之人,妙寶世界是所修之行,無盡幢佛是所行之果,餘九例知倣此,已下有十段頌。一頌十行,一行一頌,所頌之法是此當位十廻向位中,都調治綱紀之門,如文自具,更加文釋,文煩義沈表法難知,方可約釋,餘如文自具書。十迴向品第二十五將釋此品,三門如前。一釋品名目者,此品何故名爲十迴向?答曰:以十住初生諸佛智慧家,雖有第七方便波羅蜜成大悲行,然爲創始應眞修理智出世心多行悲行劣故,於初發心住,於妙峯山頂見比丘,名爲德雲,得憶念諸佛智慧光明門,雖知以後次第十善知識,以十波羅蜜互相參入,和融諸行早已具足,然當隨本位行門勝劣全異。此明同中別令昇進故,如十行位中爲行之首,卽以三眼國比丘名善見,卽以林中經行,用表其十行,以智眼慧眼法眼,觀根利生化令出世故,以比丘所表爲十行,廣大覆蔭衆多以林所表。如此十迴向位中,明前二位出俗心多,大悲行劣,以將十住初心所得諸佛之智慧,十行之中,出世之行門,處俗利生故名迴向,迴眞入俗利生故,名迴向。是故此位表法善知識,卽以鬻香長者名號靑蓮華表之,明此十迴向法門,如合和香法,以將諸衆香合爲一丸,互相資,益以成遍熏。十迴向者,亦復如是。以戒、定、慧、解脫、解脫知見,五分法身之香,和合大慈大悲、諸波羅蜜、四攝、四無量、涅槃、生死諸塵勞門,共成一箇法界之眞香,皆從大願爲首,是故此位名爲迴向。長者名靑蓮華者,表此位行不染垢淨生死涅槃也。又長者明處俗流,智長於世人名之爲長者,靑蓮華者,明諸色華之中此華色香第一,以表五位行門,此十迴向法門第一。何以然者?爲此十迴向法門以大願力會融悲智,生死涅槃成一法界之眞自在法故,能資前位佛果,使具普賢行門圓滿故,亦成後位十地十一地行門,使慣習自在故,明前後十住、十行、十地、十一地,摠是此十迴向位中理智大願大智,大悲所圓融故。故以此十迴向位,通前徹後摠通收故,表靑蓮華。衆華之中色香最爲殊勝出過餘華也。尺以表兜率天宮,於諸三界此天殊勝。何以故?爲世間三世諸佛皆在此天長菩提心滿化世間故向上化樂天他化天樂放逸故。又向上色界無色界是樂淨心多故,已下夜摩忉利是著樂之處天非知足故,四天王天四面而居非正位故。是故此天處欲界之天上下處中故。又此天要修三福德人之共生處故。何者爲三?一修施,二持戒,三修定,自餘諸天不修三福令均平故,皆偏多也。修戒施二福,是故餘天。或多放逸,或多樂淨。是故上生經:云樂欲長菩提心者,來生此天。是故此天說此十迴向門,於此表法勝故。又向下忉利夜摩向上他化化樂,此天於此五天處中故。故說十迴向,和會智悲均平令處中故。故於此天說十迴向故。故將此處表所說法門。又將鬻香長者號靑蓮華,所表法位以此之義可解。是故名十迴向。以表十波羅蜜行參和一多同別之門故,爲十種迴向以表無盡故,以大願風吹智慈雲令普雨故。二釋品來意者,大意如前所述可知。三隨文釋義者,義分爲二,一長科經意,二隨文釋義。一長科經意者,從爾時已下,至第三十三卷末,摠作十五段長科。第一從品初爾時已下,至去來現在一切諸佛迴向,有三十三行經,是十方諸佛加金剛憧菩薩,令說十迴向分。第二佛子菩薩摩訶薩已下,至過去未來現在諸佛已說當說今說,有九行半經,是正擧十迴向之名目分。自此已下,佛子云何爲菩薩摩訶薩已下?至第三十三卷內,至皆得淸淨到於彼岸,摠有十卷經,明正說十迴向隨十波羅蜜進修行門分,已上十箇迴向,一箇是一箇波羅蜜行,都共爲十段科。第十三佛神力故已下,至一切世界兜率天宮悉,亦如是,有十六行經,是動地興供分。第十四爾時復以佛神力已下,至亦復如是,有十行經,明同號菩薩來集作證分。第十五爾時已下,有六行半經,明金剛幢菩薩說頌分。從初第一段諸佛加金剛幢分中,復分爲四段。一爾時金剛幢菩薩已下,至演說諸菩薩十迴向有十八行半經,明金剛幢菩薩入定諸佛與同號加持分。二佛子汝當承佛威神之力已下,至無障礙法光故,有四行半經,明諸佛勸說十迴向法門分。三爾時已下,至善根力故,有六行經,明諸佛與金剛幢十種法力加持分。四爾時已下,至去來現在一切諸佛迴向,有四行經,明諸佛以手摩頂令金剛幢菩薩出定說法分。二隨文釋義者,約立十門。一釋入三昧因緣,二釋三昧之名,三明諸來佛剎遠近,四明諸佛之數,五明諸佛同號所緣,六明佛來現前稱讚,七明諸佛共加入定,八明諸佛摩頂因緣,九明出定告衆歎法,十明正說十迴向。一釋入三昧因緣者,爲欲令後學菩薩知軌則故,爲知三昧方便現智令明淨故,爲知三昧之力能令說法智慧簡擇自在分明故,三世諸佛法則合如是故,故須入定二釋三昧之名者,何故名爲智光三昧?爲以成就大悲之門非大智而不顯,如十住中顯佛智慧與自心同合,卽以方便三昧無作無思,如淨水澄明日月萬像自然現徹,如十行之內三昧,卽名號善思惟,則明於理隨事法差別名善思惟。如此十迴向所入三昧名智光者,明以智行悲明處俗無染,以此智光照俗無俗不眞。是以鬻香長者,靑蓮華表之,用明處俗無染,十住、十行比丘以爲標首,以明出俗之功,一依善財知識表之,是故此位圓悲智之自在故,故三昧名爲智光。三明諸來佛剎遠近者,明隨位勝進智慧增廣,十行云萬佛剎微塵,此位云十萬佛剎微塵,表勝進過前。四明諸佛之數者,經云:十方各十萬佛剎微塵數,明進修智業廣大與十方如來智體功用合故。五明諸佛同號所緣者,何故十方諸佛與入定菩薩同號爲金剛憧?而現其前者?有二義,一如前所釋進修智會,二以佛名號及如來身而現入定菩薩前,明處位不惑斷自他之疑故,成法印故,又智旣合同,身亦無二故。六明諸佛來現稱讚金剛幢者,明以言加令入定者,印法不惑,亦令當學之徒斷餘疑惑故,又身智旣同說法亦等故。七明諸佛共加入定者,所云共加者,有二#義,一自智所會合佛德故,二諸佛隨智與力二緣會故,名之爲加。又爲自雖不疑斷他惑故,諸佛與加成法則故。又說佛加持有六,一同名號加與同名故,二現身加而現其前故,三言讚加以言讚歎故,四毘盧遮那往昔願力加,五與十種法加,如文自明,六以十方諸佛手摩其頂加。八明諸佛手摩其頂因緣者,何故手摩其頂?明右手作用之便,明諸佛以右手引接令出定說法。又自作用與諸佛作用相及故,又諸佛許可到法際故,以當位有自位際法也。九明出定告衆歎法者,經文自具。十明正說十種迴向者,如經下文,此釋初段三十三行竟。第二佛子菩薩摩訶薩已下,至過去未來現在諸佛已說當說今說,有九行半經,正擧十迴向之名目分,至後隨當位分中方釋。第三正說十迴向隨十波羅蜜進修分中,從佛子是爲菩薩摩訶薩十種迴向已下,云何爲菩薩摩訶薩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於此段中,有二義,一科其當段經意,二隨文解釋。此十箇迴向中,長科有一百八十段經文。一科其當段經意者,於此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段中,長科爲十段。一佛子云何爲菩薩摩訶薩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已下,至如是等無量善根可,有五行經,明修六波羅蜜、四無量心,成就初迴向分。二修善根時已下,至皆令得一切智,有十四行半經,明起大願念度衆生分。三佛子菩薩摩訶薩已下,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有三十三行半經,明親疏善惡平等分。四佛子菩薩摩訶薩已下,至住佛所住,有二十行經,明以諸佛法而爲勝緣深植自善根願與衆生分,五佛子菩薩摩訶薩已下,至令得解脫,有三十八行經,明菩薩入於惡道代諸衆生受苦令諸衆生得樂分。六佛子菩薩摩訶薩復作是念已下,至使到彼岸,有七行經,明菩薩以自善根令諸衆生得十種究竟樂分。七佛子菩薩摩訶薩已下,至無量善根,有五行經,明菩薩隨宜救護衆生得出生死供,養諸佛親近善友分。八佛子已下,至令一切衆生斷疑故,有十一行半經,明菩薩大願衆生雖多不假多聖唯我一人獨能度盡分。九佛子已下,至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有三十一行經,明菩薩如日普照不求恩報不著衆生法迴向分。十爾時已下,至說頌,有六行半經,明金剛幢菩薩觀衆說頌分。二隨文解釋者,何故名爲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釋此名目有二義,一明隨位修行次第之法,二方明本位名號。一明隨位修行次第之法者,如十住中,於初發心住求一切智,此菩薩所緣十種難得法而發於心,所謂處非處等十種如來智力而發於心,生於佛家爲佛眞子,如十行之中,行歡喜行爲大施主,凡所有物,悉能惠施,無有悔悋,行菩薩行以爲所緣,如此十迴向中,初迴向名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者,卽以六波羅蜜、四無量心,以爲所緣,卽以十住、十行所得大智法身無著淨行,起廣大願行處於生死,以六波羅蜜以爲行首,慈悲喜捨以爲處生死利物之緣,是故卽名爲救護衆生離衆生相迴向,卽以慈悲喜捨爲救護,以六波羅蜜出世閒法爲離衆生相故,爲六度行門是出世行故。是故如是安立次第,摠在十住初發心位一時摠具,只爲紙素竹帛名言次第,遂生分段,非是法有前後義故,如十住位中善財童子表法之中海門國觀大海,具有阿脩羅等十王供養等是迴向義,然教門次第昇進不可不存。若不如斯,使後學之流行沈淪而不進。二明本位之名者,又以大智法身,以爲離體,十波羅蜜、四無量心,以爲處生死救護衆生所緣。是故名救護衆生離衆生相迴向,心以智體無依所救護者,無住衆生無相正爲救護而無作者故,故衆生自眞無出沒故,名救、護衆生離衆生相迴向。成此初迴向法門具足五緣。一具自了法身本自淸淨解脫緣,二得大智慧解脫緣,三具大願力奉事諸佛利衆生緣,四十波羅蜜具足勝行緣,五慈悲喜捨不捨一切衆生緣,具此五法方能成就此初迴向。云何行檀波羅蜜淨戒波羅蜜?以能捨惡法戒體自淨故。云何修忍波羅蜜?施戒已成,當修忍力時,爲施體能捨故,與戒體淨因忍體,須加行修學、爲忍防他凌辱,非由己自捨故。故須加行學忍。云何起精進波羅蜜?以忍體是自息其忿恨,非是忻修利物之行故,須起利物之行,是此位精進義。云何起精進波羅蜜?入禪波羅蜜,以精進勤利物之行,恐多散動相應故,須入禪波羅蜜。云何住般若波羅蜜?以禪能發生淨慧故。云何大慈大悲大喜大捨?爲六波羅蜜是出世心多故,加以慈悲喜捨利衆生法均調諸行故#此已上六度、四無量心,使令均平智悲得所成。此初迴向門此迴向法門,從十信、十住、十行,摠具有之,至此本位方令齊等,若以解行門中有此差降。若以理智門中摠無前後,始終之法已下當位,有十度調治之法,如下文中具明,不煩更釋,但如文以行行之。云何但以六波羅蜜,爲利生行?爲明大悲門中但令衆生出世閒故,然後方令入生死中,已下頌中,有五十六行頌,頌此救護衆生離衆生相迴向。此一段中,明菩薩所行之行,調均得所兩行一頌如文自具,得意以行行之。此之一段,以檀波羅蜜爲主,九波羅蜜爲伴,以善財鬻香長者號靑蓮華表行行之人,以名下義思之可解,於中所行法則鬻香者賣香人也能。辦諸香和合諸香,賣鬻與人,用表此位之行,前已釋竟。第二不壞迴向,以戒波羅蜜爲體,餘九爲伴,善財以舡師號婆施羅,爲表行行之人,此云自在,住樓閣城門外海岸上,住修大悲幢行法門,明此迴向位中以大悲爲戒體,視一切生死之海,令得一切大智之海,居生死海而得自在,故名自在,廣說如經文。又表戒體如海性淨不宿死屍,明法身本淨不宿煩惱染污死屍也。廣義如文經云:佛子,云何爲菩薩摩訶薩不壞迴向者?於此一段經文義分爲二段,一長科此一段經意,二隨文解說。第一長科此一段經意者,自佛子已下,至說頌已來,摠科爲六段。一佛子已下,至無量無數行境界故,有十三行半經,明菩薩得信不壞分。二佛子已下,至大願悉使滿足,有十一行經,明菩薩住持教化衆生分。三菩薩如是已下,至阿僧祇衣敷布其地,有三十三行經,明擧依果報莊嚴分。四佛子已下,至最上信解心迴向,有二十一行半經,明菩薩以如上依果所有莊嚴供養諸佛皆爲度脫衆生分。五佛子已下,至第二不壞迴向,有二十四行經,明菩薩能隨生死度脫衆生,同諸事業#求一切智,白淨等法恒不捨分。六菩薩摩訶薩已下,至說頌有七行經,明菩薩得於諸佛妙法斷疑,如聞自達能隨想力,入一切剎普照衆生分,已下頌有五十行,兩行一頌,皆頌當位之中迴向所行之行,如文自具,不煩更釋,如文行之。第二隨文解說者,云何爲不壞迴?向雖隨生死海而不壞法身,雖隨分別而不壞無作,雖隨諸見而不壞法眼,雖隨諸行而不壞菩提心,雖教化成就衆生皆至佛果,不壞身心無依住門,雖隨一切衆生知根同事,而不壞戒體恒自白淨,是故名爲不壞迴向。又一切世間出世閒法無成壞體,如是阿僧祇寶者,是本行中,以法利生依報果也。阿僧祇華者,是以行能利自他,開敷衆善之依果,阿僧祇鬘者,是忍所報也。阿僧祇衣者,從慚愧生也,阿僧祇蓋者,大慈悲所生也。阿僧祇幡者,迴向心所生也。阿僧祇幢者,是隨行不退力所生也。阿僧祇莊嚴具者,諸助道法所生也。阿僧祇給侍者,從謙敬離慢所生也。阿僧祇塗飾地者,從戒品生也。阿僧祇塗香者,以戒遍諸法生。阿僧祇末香者,以往昔散華香報所生。大約以行知果,如影隨形,一一相似准物類,以義解之可解,亦以昔曾以如是物供養佛法僧獲得如斯果故,餘准此知之。此迴向體,如經云,如實法印印諸業門,得法無生住佛所住,觀無生性印諸境界,諸佛護念發心迴向,與諸法性相應迴向,入無作法成就所作方便迴向,此是不壞迴向之大體也。智不壞生死不壞,大願不壞,大悲不壞,皆如實故,如十住位,以離染大悲爲戒體,卽以海門國海雲比丘爲所表。十行位中,卽以工巧筭術以爲戒體,卽以釋天童子於河渚中筭印法,以爲所表,爲明行爲河流而歸海故,十迴向中,以處俗大悲爲戒體,卽以海舡師自在爲所表。新華嚴經論卷第二十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고려대장경에는 삼생(三生)으로 나와 있으나 앞뒤 문맥상 현토본에 나와 있는 일생(一生)으로 봄이 적절하다.
2)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가운데 “첫 번째의 경문의 뜻을 열다섯 단락으로 장과한다”에서 두 번째 단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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