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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華嚴經 參考 資料

李通玄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21권 [장순용 譯]

작성자문수법공양회|작성시간24.09.18|조회수17 목록 댓글 0
신화엄경론 제21권



25) 십회향품(十廻向品)①
제3 일체 모든 부처님과 동등한 회향이란 것은 인바라밀(忍波羅蜜)로 체(體)를 삼고 나머지 아홉으로 짝〔伴〕을 삼으니, 이 법을 표하는 가운데 선재동자가 본 가락성(可樂城)의 동쪽 대장엄당무우림(大莊嚴幢無憂林) 속의 무상승(無上勝) 장자(長者)가 이에 해당된다.
성(城)의 명칭이 가락(可樂)이 된 것은 주(主)가 행하는 바의 행적에 의거해서 그 명칭을 정하기 때문이니, 법을 얻어 인(忍)을 성취하매 남이 가락(可樂:즐거워함)으로 봄을 밝힌 것이다. 성의 동쪽에 머문 것은 인(忍)이 각행(覺行)의 첫머리임을 밝힌 것인데, 동방 각(角)ㆍ항(亢)ㆍ저(氐)ㆍ방(房)의 지위가 온갖 선(善)의 첫머리를 주재함을 나타낸 것이다. 방(房)이 청룡으로 매우 경사로운 일을 주재하는 지위가 되기 때문에 동방으로 양(陽)을 삼아서 만물을 낳는 첫머리가 되듯이, 인(忍)이 만행의 첫머리가 되서 온갖 복을 낳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성의 동쪽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대장엄당(大莊嚴幢)이란 것은 인내하여 거슬리는 경계를 따르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니, 이 당(幢)의 뜻이다. 무우림(無憂林)이란 것은 인(忍)이 성취되고 행이 원만해진 것이 숲의 광대한 그늘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무상승(無上勝)이라 호칭한 것은 온갖 행이 인(忍)을 능가하지 못하는 것이니, 온갖 행 속에 인이 없으면 행을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자세한 것은 경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두 가지 뜻은 앞서와 같으니,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해당되는 단락의 경전 뜻을 장과(長科)한다는 것은 이 한 단락의 경문으로부터 대략 열 단락으로 나눈 것이다.
첫째로 “불자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일체 모든 부처와 동등한 회향이라 말하는가?” 이하 “모든 근(根)이 청량하다”에 이르기까지 5행 반의 경문은 부처의 회향을 배워서 마음이 자유자재하고 청량하게 됨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로, “불자야” 이하 “변이(變異)하지 않는 즐거움이다”에 이르기까지 7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부처의 즐거움에 회향하는 분이다.
셋째로 “불자야” 이하 “살바야(薩婆惹)를 증득하니, 이를 일체지(一切智)라 말한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보살의 행원(行願)에 회향함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지를 증득(證得)한다”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여 그들로 하여금 고(苦)를 여의게 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로, “불자야” 이하 “구족하고 충만케 하다”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보살행이 원(願)으로 말미암아 광대하고 충만함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로 “불자야” 이하 “모든 부처의 위없는 보리에 회향한다”에 이르기까지 18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본래의 대자비로써 세속에 처하면서도 물들고 집착함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로 “불자야” 이하 “여래의 구경지(究竟地)”에 이르기까지 25행의 경문은 축생에게 먹이를 주면서 온갖 고통을 영원히 여의고 즐거움을 얻기를 염원함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로 “불자야” 이하 “제3 일체 모든 부처와 동등한 회향”에 이르기까지 14행의 경문은 보살이 일체 모든 부처와 동등하게 회향함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로 “보살마하살” 이하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보살이 부처의 공덕에 들어가고 법계에 깊이 들어가고 보살의 수행단계를 잘 앎을 밝힌 분이다.
열째로 “이 때” 이하 1행의 경문은 금강당(金剛幢)보살이 대중을 관찰하고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째서 명칭을 일체 모든 부처와 동등한 회향이라 하는가? 이 제3의 회향이 인문(忍門)을 성취하기 때문이니,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어져 3업(業)이 부처와 같아짐으로써 부처가 행한 원(願)을 모두 다 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일체 모든 부처와 동등한 회향”이라 이름붙인 것이다. 이는 원행(願行)을 한결같이 부처와 같게 하기 때문이다. 또 앞에서 불괴회향(不塊廻向)이라 말한 것은 차례대로 일체 모든 부처와 동등해지는 회향이니, 차례가 마땅히 그러함을 밝힌 것이다. 이하 48행의 게송은 2행이 한 게송인데, 앞서 게송으로 읊은 법은 경문에 자세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다시 해석하지 않겠다.
제4 일체처에 이르는 회향〔一切處廻向〕이란 것은 정진바라밀로 체(體)를 삼고 나머지 아홉을 짝〔伴〕으로 삼는 것이다. 선재동자가 본 사자빈신(師子頻申)이란 이름을 가지 비구니가 윤나국(輪那國)에 머무는 것은 한역하면 용맹(勇猛)이며, 성(城)의 명칭이 가릉가림(迦陵迦林)인 것은 현역하면 투쟁시(鬪爭時)이니, 이 비구니가 능히 투쟁을 평화롭게 끊음을 밝힌 것이다. 이는 제4 회향의 행에서 정진의 업(業)으로 사물을 이롭게 하는 상(相)을 나타낸 것이다. 비구를 나타낸 것은 오염을 여읜 청결을 밝힌 것이며, 니(尼)란 것은 자비의 소리이니 이 정진의 행문(行門)이 오염 없는 자비로써 행의 체(體)를 삼음을 밝힌 것이다.
명호가 사자빈신(師子頻申)인 것은 이미 4무애지(無碍智)를 얻고 이미 네 가지 무외(無畏)를 얻음을 밝힌 것이다. 사자란 것은 지혜로 두려움 없음을 밝힌 것이며, 빈신이란 펴고 거두는 것이 자재로운 것이다. 이는 청정한 대지혜로 용맹하고 자재롭게 펴고 거두면서 설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함에 투쟁을 잘 끊어서 한량없는 모든 중생의 동일하지 않은 견문(見聞)을 조복함을 밝힌 것이다. 자세히는 경문에서 설한 대로이다. 생각건대 제4 회향 중에서 정진의 행을 행할 때 지혜와 자비의 상(相)을 나타내기 때문에 오염 없는 자비로 법을 설하는 것이 자재로움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자비가 항상 고(苦)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지혜가 늘 오염되지 않음이 니(尼)의 뜻임을 나타낸 것이다. 4무애지란 것은, 첫째 의무애지(義無碍智)며, 둘째 법무애지(法無碍智)며, 셋째 사무애지(辭無碍智)며, 넷째 요설무애지(樂說無碍智)이다. 네 가지 무외라는 것은, 첫째 일체지(一切智)의 무외이며, 둘째 누진(漏盡)의 무외이며, 셋째 장애의 도를 설하는 무외이며, 넷째 고(苦)를 멸진하는 도를 설하는 무외이다.
두 가지 뜻은 앞에서와 같으니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 단락의 경문을 장과하는데 그 뜻을 여덟 단락으로 나누겠다.
첫째로, “불자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일체저회향에 이르렀다고 말하는가?” 이하 “가없는 세계”에 이르기까지 12행의 경문은 보살이 닦는 선근(善根)이 실제 그대로 삼세에 두루 하면서 공양함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로, “불자야” 이하 “광대한 위덕(威德)의 종성(種性) 중에”에 이르기까지 12행의 경문은 부처가 세상에 나온 것이 법신이 두루 한 것과 같아서 차별 없이 광대하게 이익을 줌을 밝힌 분이다.
셋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 모든 부처의 가르침을 호지(護持)하기 때문이다”에 이르기까지 64행의 경문은 보살이 수없이 많아 다함이 없으니, 법성 그대로의 공양의 구름으로써 법성 그대로의 가없이 수많은 여래에게 공양하여 모든 선근을 널리 거둠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불자야” 이하 “훌륭한 방편으로 회향의 도를 닦는다”에 이르기까지 16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회향을 닦을 때 무소득(無所得)으로 방편을 삼아서 일체의 선근을 닦음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 공덕을 구족한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이상의 공양 공덕을 총체적으로 매듭지은 분이다.
여섯째로 “불자야” 이하 “제4 일체처회향에 이르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이상 일체처에 두루 하는 회향의 지은 바가 부처의 종자를 끊이지 않게 함으로써 널리 불참을 엄중하고 맑게 함을 모두 매듭지음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로 “보살마하살” 이하 “능히 선근으로 이같이 회향한다”에 이르기까지 12행의 경문은 이 회향에 머물 때 몸과 말과 뜻의 업(業)이 시방 일체처에 두루 하게 됨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로 “이 때” 이하 1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대중을 관하고서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무엇을 일체처에 이르는 회향이라 말하는가? 대략 그 지위가 열한 가지가 있으니, 첫째 법신이 일체처에 이르는 것이며, 둘째 지신(智身)이 일체처에 이르는 것이며, 셋째 대원(大願)이 일체처에 이르는 것이며, 넷째 모든 부처에게 공양하는 것이 일체처에 이르는 것이며, 다섯째 모든 법을 보고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일체처에 이르는 것이며, 여섯째 색신(色身)을 두루 나타냄이 일체처에 이르는 것이며, 일곱째 중생을 깨우치는 것이 일체처에 이르는 것이며, 여덟째 털구멍에서 벗어나지 않고 일체처에 이르는 것이며, 아홉째 시방에 편만(遍滿)하여 법계와 동등하면서도 가고 옴이 없이 일체처에 이르는 것이며, 열째 한 중생의 몸과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과 같아서 일체처에 이르는 것이며, 열한째 한 불신(佛身)의 털구멍에 들어가는 것 같이 일체 불신의 털구멍과 같아서 일체처에 이르는 회향이다. 또 회향이란 것에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 작위 없는 법으로써 작위 있는 법에 회향하는 것이며, 둘째 작위 있는 법으로써 작위 없는 법에 회향하는 것이며, 셋째 하나의 법으로 많은 법에 회향하는 것이며, 넷째 많은 법으로 하나의 법에 회향하는 것이며, 다섯째 모든 유법(有法)에서 무법(無法)으로 회향하는 것이며, 여섯째 무법(無法)에서 유법(有法)으로 회향하는 것이며, 일곱째 세간법으로 출세간법에 회향하는 것이며, 여덟째 출세간법으로 세간법에 회향하는 것이며, 아홉째 일체 자성(自性)의 무회향(無廻向)으로 방편 회향의 법을 삼는 것이며, 열째 일체의 유회향법(有廻向法)으로 자성의 무회향법을 삼는 것이다.
이는 유(有)와 무(無)에 걸려 있는 자를 자재롭게 하기 때문이며, 생사와 열반이 장애가 없게 하기 때문이며, 대신통을 얻어서 사물에 얽매이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모든 부처에게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데 하나와 많음〔一多〕, 같음과 다름〔同別〕이 모두 자재함을 얻게 하기 때문이며, 성실한 마음으로 대원(大願)의 구름을 일으켜 법계와 허공계를 두루 덮으면서 갖가지 공구(供具)를 일으켜 3세의 모든 부처에게 공양함으로써 모두가 자타(自他)의 복덕이 원만하기를 바라게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 명칭이 일체처에 이르는 회향이 되는 것이니, 가령 세계종(世界種)이 바로 화장세계종과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된다.
선덕(先德)이 말하기를 “삼천대천세계를 세어서 1항하사수(恒河沙數)에 이르는 것이 1세계해가 되고, 또 해세계(海世界)의 수를 세어서 1항하사에 이르는 것이 세계성(世界性)이 되고, 또 세계성을 세어서 1항하사에 이르는 것이 1세계종(世界種)이 된다”고 하였다. 갖가지 세계는 잡다하게 많음을 말한 것이며, 전세계(轉世界)라는 것은 원형(圓形)이 구르는 것이나 강물처럼 유전(流轉)하는 것이 해당되며, 또 해나 달도 해당되는데 모두 머묾이 없는 마음을 전(轉)이라 이름붙인 것이다.
측세계(側世界)는 4천왕천이 수미산 곁에 머무는 것과 같은 것이며, 앙세계(仰世界)는 알 수 있는 것이며, 복세계(覆世界)는 벌집과 같은 것이 해당되니, 이 역시 「세계성취품」의 설 그대로이다.
이하는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대의(大意)는 10주와 10행 속에서 법신의 이지(理智)를 닦아 얻어서 바로 이 법에 의거해 대원과 대자비를 일으키고 작위 없는 이지에 의거해 신통행을 일으킴으로써 오염과 청정에 걸리지 않게 하여 오염과 청정 두 법에 얽매이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는 신통과 모든 법의 성품을 스스로 여의기 때문이다. 이하 22행의 게송은 2행이 하나의 게송이니,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제5 무진공덕장(無盡功德藏) 회향이란 것은 선바라밀로 체(體)를 삼는다. 선재동자가 본 파수밀녀(婆須蜜女)를 행하는 바의 사람으로 삼고, 거주하는 국토의 명칭은 험난(險難)이 되고, 성(城)의 명칭은 ‘보장엄(寶莊嚴)’이다. 덕을 찬탄함 속에서 마음에 분별이 없으면서도 널리 모든 법을 알고, 일신(一身)이 단정히 앉아서도 법계에 충만하여 자기 몸에서 일체의 찰(刹)을 나타내는 것은 밝힌 바의 선체(禪體)가 두루 하고 자재로운 것이니, 이는 선(禪)이 지혜와 자비를 회통해 둘이 없음으로써 체용이 자재롭다는 걸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토의 명칭이 험난인 것은 참지혜로써 세속을 회통하는 것이며, 성의 명칭이 보장엄인 것은 세속의 체(體)가 스스로 참임을 회통한 것이니, 이는 정(定:고요함)과 난(亂:흐트러짐)이 융화하고 지혜와 자비가 걸림이 없어서 티끌을 따르면서도 물들지 않기 때문에 명호가 보장엄임을 밝힌 것이다.
파수밀녀란 한역하면 세우(世友)이니, 능히 세상 사람과 더불어 사우(師友)가 되기 때문이며, 또한 천우(天友)라고도 말하는데 모든 천(天)과 더불어 사우(師友)를 짓기 때문이며, 혹은 이보(易寶)라고도 하는데 이 여인이 훌륭하고 능숙한 방편으로 중생의 일체 지보(智寶)를 쉽게 취하기 때문이다. 이 여인의 몸은 금색이며, 눈과 머리칼은 감청색이다. 만약 설법을 듣거나, 잠시 보거나, 손을 잡거나, 그 자리에 앉으면 모두 삼매를 얻는데, 이는 선(禪)의 체(體)가 두루 해서 지혜와 더불어 회통하기 때문이니, 따라서 도가 견(見)에 합치는 자는 모두 이 선(禪)의 체(體)와 지혜 및 자비가 서로 회통한 부류이지만, 만약 따로 보는 부류라면 항상 대면하더라도 그 용모를 보지 못함을 밝힌 것이다. 다만 선정이 지혜와 더불어 회통하고 지혜가 자비와 더불어 명합(冥合)하여 근거에 따라 세속을 접하기 때문에 그 명호를 여인〔女〕이라 한 것이지 그냥 여인이 된 것은 아니다.
10주(住) 중 제5의 주선문(主禪門)에서 속사장자(俗士長者)의 명호가 해탈인 것은 세속의 체(體)가 본래 참된 것이라서 중생의 몸이 본래로 불국(佛國)임을 밝히기 때문이며, 장자가 몸에 불국을 포함한 것은 중생의 몸도 역시 마찬가지라서 단지 선관(禪觀)만 상응하면 바로 봄을 밝힌 것이다. 또 10행에서는 보계(寶髻) 장자로써 선문을 밝히고 있다. 즉 본래 집이 10층인 각(閣)에 스스로 거처하고 있는데 집에는 8문(門)이 있고, 시상(市上)에서 세속을 접하여 집 안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은 바로 지혜로 선(禪)의 체(體)를 삼아서 세속에 나아가 중생을 인도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시상(市上)인 것이며, 지혜의 경계로 이끌어 들이는 것은 집 안으로 돌아옴이라 칭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이제 10회향에서 파수밀녀로 선문(禪門)을 삼는 것은 바로 10회향이 지혜와 자비로써 선의 체(體)를 삼기 때문에 여인으로 나타내 그 상(像)을 이룸으로써 법을 나타냄을 밝힌 것이다.3)즉 행하는 바 세속의 일로써 지혜가 자비의 행을 따라 세속의 오염에 처하면서도 오염되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만약 세속의 티끌을 깨닫지 못해서 업에 얽매이게 된다면 반드시 계(戒)ㆍ정(定)ㆍ혜(慧)로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를 구하겠지만, 만약 지혜를 요달해서 업이 소진했다면 반드시 저자에 처해서도 오염되지 않기에 방편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 모두를 해탈시키는 것이니, 한결같이 근기를 잘 아는 것으로 제접하여 중생을 미혹하게 혼란시키지 말 것이며 반드시 근기에 의거해 약(藥)을 주어야 한다.
두 가지 뜻은 앞에서와 같으니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해당되는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한다는 것에서 이 단락에서는 열세 단락으로 장과한다.
첫째로 “불자야” 이하 “다 구족케 한다”에 이르기까지 61행의 경문은 보살이 통상 기쁨에 따라 회향하는 것이 모두 다 구족 원만함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의 불찰도 모두 이와 같다”에 이르기까지 30행의 경문은 보살이 대원(大願)을 통해 보살 대중의 바다가 시방에 원만하여 국찰(國刹)을 장엄하게 되길 원함을 밝힌 분이다.
셋째로 “불자야” 이하 “걸림이 없는 불퇴(不退)의 법륜을 굴린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방편의 회향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불자야” 이하 “초연히 출현한다”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청정한 불찰(佛刹)에서 일체 중생계에 이르기까지 부처가 항상 초연히 출현하기 원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 법계에 들어간다”에 이르기까지 3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일체지(一切智)를 통달해서 업과(業果)의 적멸을 앎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로 “불자야” 이하 “적은 법이라도 법과 더불어 동지(同止)함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분별하지도 않고 집착해서 취하지도 않음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로 “불자야” 이하 “다함이 없는 선근을 얻는다”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보살이 다함이 없는 선근을 얻는 분이다.
여덟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 경계가 다 있는 것이 아니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계에 중생이 없음을 요달해서 법에 증득함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로 “불자야” 이하 “모든 선근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보살은 지혜가 법에 들어감이 없고 법이 지혜에 들어감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열째로 “불자야” 이하 “모든 행을 닦아 다스린다”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공덕장을 성취해서 중생의 복전(福田)이 됨을 감당한 분이다.
열한째로 “불자야” 이하 “제5 다함 없는 공덕장의 회향”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보살의 복상(福相)이 세상에서 비할 바가 없다는 분이다.
열두째로 “보살마하살” 이하 “열 가지 무진장”에 이르기까지 15행의 경문은 보살이 열 가지 무진장을 얻는다는 분이다.
열셋째로 “이 때” 이하 1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째서 그 명칭이 무진공덕장 회향인가? 이 지위는 선(禪)과 지혜가 그윽이 합치하고 지혜와 자비가 회통하여 다함이 없는 허공을 하나의 도량으로 삼고 다함이 없는 중생의 무명 행상(行相)으로 불사(佛事)를 삼는데, 몸은 늘 다함이 없는 모든 부처를 받들어 섬기면서 법계를 두루 하여 다함이 없는 중생을 교화해 모두 불신(佛身)을 이룸으로써 안팎의 상(相)과 시종(始終)의 정(情)이 소진해서 모든 법을 두루 알면서도 무심(無心)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그 명칭이 무진공덕장임을 밝힌 것이다.
경문에서 “하나의 털구멍에서 아승기의 모든 부처가 세상에 출현함을 봄으로써 법에 들어가는 무진장을 얻는다”고 설한 것은 마음의 성품이 본래 없고 크다 작다는 계교가 소진함으로써 몸이 지혜의 그림자가 되고 국토도 또한 마찬가지인데, 지혜가 청정하매 그림자가 밝아져서 대(大)와 소(小)가 서로 들어가는 것이 인다라망 경계의 비유와 같다는 것이 이에 해당됨을 밝힌 것이다.
경문에서 “부처의 지력(智力)으로 일체법이 다 일법(一法)에 들어감을 관한다”고 설한 것은 만경(萬境:온갖 경계)이 비록 많긴 하지만 모두 일심(一心)으로 일어나는 것이니, 마음이 없어지면 경계도 소멸하여 만경이 다 비어버리는 것이 마치 깨끗한 물 속의 온갖 그림자 같아서 물이 없어지면 그림자도 소멸함을 밝힌 것이다. 이것은 유(有)를 타파해서 무(無)를 성취한다는 설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또 경계로써 지혜의 생기(生起)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서 지혜가 비어 있고 경계가 환상〔幻〕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환상이 서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허(虛)를 여의지 않아서 환(幻)이 허(虛)와 다르지 않고 허가 환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환과 허가 둘이 아니라서 동일하든 다른 것이든 모두 비어 있는 것이니, 이는 지혜의 환허자재무애문(幻虛自在無碍門)으로써 설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는 모두가 법의 정황을 빌려서 설한 것인데, 실답게 아는 바는 오직 사념이 없는 자라야 지혜로 회통하는 것이며, 그 지혜로 회통한 자라야 비로소 쓸 수 있으면서도 참〔眞〕이라서 마음과 경계에 미혹함이 없으며, 이에 대원력으로 지혜를 따라 환(幻)으로 낳음으로써 중생의 수효와 동등한 몸으로 응하는 대로 교화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무진공덕장인 것이다. 나머지는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다시 해석하지 않겠다. 이하 50행의 게송은 경문에 갖추어져 있으니, 다만 말한 것과 같이 수행하라.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隨順堅固一切善根) 회향이라는 것은 반야바라밀로 체(體)를 삼음을 밝힌 것이다. 그리하여 선재동자의 지식(知識)의 명칭인 비슬지라(鞞瑟胝羅)가 선도성(善度城)에 머물면서 항상 전단좌불탑(栴檀座佛塔)에 공양하는 것으로써 법을 나타냄을 삼는 것이다. 비슬지라란 명칭은 한역하면 포섭(包攝)이니 몸이 불찰을 포섭하는 것으로써 명칭을 삼은 것이다. 선도국에 머문다는 것은 교화의 행을 잡아서 명칭을 삼은 것이니, 이로써 지혜에 머물러서 중생을 잘 제도하기 때문이다.
전단좌불탑에 공양한다는 것은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법신(解脫法身)으로 법좌의 체(體)를 삼음을 밝힌 것이다. 부처의 불열반제(不涅槃際)를 얻는다는 것은 계ㆍ정ㆍ혜의 체(體)가 소멸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니, 자세히는 경전의 설과 같다. 법좌에 형상(形像)을 안치하지 않은 것은 무상(無相)의 이(理)가 회통하는 것이 부처의 뜻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즉 법좌를 보면 법에 들어가기 때문에 성(城)의 명칭이 선도(善度)인 것이며, 몸이 허공과 더불어 합치하는 것을 이름하여 불국(佛國)이라 하며 또한 포섭(包攝)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상(無相)의 지혜가 부처의 멸도(滅度)하지 않는 법문임을 밝힌 것이니, 이는 지혜가 생멸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은 이 한 단락의 장과에서 대략 예순네 단락을 짓겠는데, 아래와 같은 이 단락의 회향의 긴 행 속에 있는 예순한 단락의 경문은 모두 보시를 행함을 밝힌 것이다. 각 단락 속에는 모두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보시를 행하는 마음의 성취를 밝힌 것이며, 둘째 보시를 마치고서 보리에 회향함을 밝힌 것이며, 셋째 저마다 열 가지 원(願)을 발해서 모두 자타(自他)의 성불을 원함을 밝힌 것이다. 이하 세 단락은 보시한 바의 공(功)과 금강당보살이 대중을 살펴서 게송을 설함을 총체적으로 매듭지은 것이다.
① 육신과 수족(手足)과 국성(國城)과 처자(妻子)를 다 버리면서 행하는 것이다.
② 밥을 보시하는 것이다.
③ 마실 것을 보시하는 것이다.
④ 맛있는 음식을 보시하는 것이다.
⑤ 탈 것을 보시하는 것이다.
⑥ 옷을 보시하는 것이다.
⑦ 꽃을 보시하는 것이다.
⑧ 만(鬉)을 보시하는 것이다.
⑨ 몸에 바르는 향〔塗香〕을 보시하는 것이다.
침상과 의자를 보시하는 것이다.
방사(房舍)를 보시하는 것이다.
등(燈)의 밝음을 보시하는 것이다.
탕약(湯藥)을 보시하는 것이다.
그릇을 보시하는 것이다.
갖가지 보배 장엄으로 장식한 수레를 보시하는 것이다.
상보(象寶)를 보시하는 것이다.
사자좌(師子座)를 보시하는 것이다.
보등(寶等)을 보시하는 것이다.
보개(寶蓋)를 보시하는 것이다.
보번(寶幡)을 보시하는 것이다.
보당(寶幢)을 보시하는 것이다.
보장(寶藏)을 보시하는 것이다.
갖가지 묘한 장엄의 도구를 보시하는 것이다.
관(冠)과 계(髻) 속의 구슬을 보시하는 것이다.
재보(財寶)와 처자를 보시하여 중생을 뇌옥(牢獄)에서 구제하는 것이다.
몸을 버려 목숨을 대신하는 것이다.
연부(蓮膚)의 정계(頂髻)를 보시하는 것이다.
눈을 보시하는 것이다.
코를 보시하는 것이다.
귀를 보시하는 것이다.
어금니를 보시하는 것이다.
혀를 보시하는 것이다.
머리를 보시하는 것이다.
수족(手足)을 보시하는 것이다.
피를 보시하는 것이다.
골수와 살을 보시하는 것이다.
마음을 보시하는 것이다.
간(肝)과 폐를 보시하는 것이다.
몸을 보시하는 것이다.
사지의 관절과 뼈를 보시하는 것이다.
피부를 보시하는 것이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보시하는 것이다.
연육과갑(連肉瓜甲)을 보시하는 것이다.
법을 구하기 위해 몸을 불구덩이에 던지는 것이다.
법을 구하는데, 한 글자 한 구절을 위해 왕위와 국성(國城)과 처자 등 일체 소유를 버리는 것이다.
보살이 스스로 도살(屠殺)의 업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잔인하게 모든 사람과 축생을 해치는 것을 보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니, 이른바 남자의 형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보살이 부처의 출현을 보고서 널리 중생에게 고하여 아만(我慢)과 희론(戱論)을 버리게 하는 것이다.
대지(大地)를 버리는 것이다.
종〔僮僕〕을 버리는 것이다.
몸을 버려 일체 중생에게 보시함으로써 스스로를 낮추는 것으로 오만을 여의는 것이다.
몸을 버려 모든 부처에게 바치는 것이다.
토지의 일체 물건들을 보시하고 아울러 세간의 일을 버리는 것이다.
도성(都城)과 국경의 수세(輸稅)를 버리는 것이다.
기녀(妓女)를 버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처자를 보시하는 것이다.
집을 보시하는 것이다.
원림(園林)에 있는 누각이나 정자를 보시하는 것이다.
광대한 시회(施會)를 보시하는 것이다.
일체의 자생물(資生物)을 보시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이 필요로 하는 바를 따라서 일체 아승기의 사물을 보시하는 것이다.
이상 이 한 단락의 회향 속에 모두 예순한 가지 보시가 있고, 하나하나의 보시 속에 열 가지 대원(大願)이 있으니, 예순한 가지의 원(願) 속에 열 가지 회향이 있는 것은 일체의 집착을 버리고 일체의 집착 없음을 성취해서 모든 성품이 작위 없는 것으로 모든 부처에게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함으로써 무진행(無盡行)을 행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불자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 회향이 되니” 이하 “모든 법 속에서 자재함을 얻는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이하 회향의 공(功)을 모두 매듭지은 것이다.
“이 때 금강당보살” 이하 6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대중을 바라보고 게송을 설해서 법을 찬탄함을 밝힌 분(分)이다.
이제 상하의 긴 행과 82행의 게송은 그 속의 경문 뜻이 스스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다시 번거롭게 해석하지 않고 대략 회향의 명목만 해석하겠다. 어째서 수순견고일체선근 회향이라 말하는가? 경문에서 “불자야, 이렇게 회향할 때는 바로 부처를 수순(隨順)해서 머물고, 법을 수순해서 머물고, 지혜를 수순해서 머물고, 보리를 수순해서 머물게 된다”고 하였으니, 총체적으로는 단바라밀(檀波羅蜜)을 행하는 것이 찰해(刹海)에 두루 해서 법신(法身)과 지신(智身)을 무너뜨리지 않고, 통화(通化)를 성취하여 대자비를 키움으로써 부처의 소행과 같기 때문에 명칭을 삼음을 밝힌 것이다. 또 해석하길, 이(理)로써 행을 따르고 행으로써 이(理)를 따르며, 지혜로써 자비를 따르고 자비로써 지혜를 따라서 방편의 원력으로 지해(智海)를 야기시키며, 자비문을 성취해서 조화롭고 자재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수순견고일체선근 회향이 되는 것이다. 논주(論主)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법신의 이지(理智)는 자체성이 없으니
평등하고 청결해서 조작이 없구나.
방편으로 원력을 장엄하니
신통변화의 행이 충만하도다.

법은 자체성이 없어서 연(緣)으로부터 생기니
연생(緣生)은 작위 없는 성품을 잃지 않는구나.
회향의 대원운(大願雲)을 마련해 일으켜서
가없는 일체의 행에 두루 하니
연(緣)의 체성이 무생(無生)임을 여의지 않고서도
지혜가 그림자나 메아리처럼 법계에 충만하구나.

지혜의 체(體)가 원(願)과 같고 보현과 같아서
회향의 대원(大願)이 다 실답지 않도다.
비록 실답지 않더라도 연(緣)을 폐기하지 않고
비록 연(緣)을 좇는다 하더라도 성품에 작위가 없구나.

보살이 일으킨 모든 행의 구름은
지혜가 가고 옴이 없어서 그림자처럼 나타나니
가령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 하더라도
마치 신통변화로 된 사람이 환술로 이루어진 무리를 제도하는 것과 같구나.

대개 세간에서 집이나 가옥〔宮室〕을 세우는 것과 같아서 요컨대 공(功)을 이루는 것으로 논하자면 스스로 베푼 공은 나타나지만 공의 체는 각각 자성이 없으며 공을 이루어 일을 마침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공이 없는 것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니 설사 집이나 가옥을 거듭해서 꾸민〔覆養〕 공이 있을지라도 또한 다시 양육했다고는 말하지 않는 것처럼 이 회향의 대원(大願)도 마찬가지이다. 즉 이지(理智)가 비록 번뇌를 청정케 하는 공은 있지만, 회향의 대원을 일으키지 않으면 감싸 기르고 이익을 주는 대자비의 공이 없는 것이니, 이 회향이 초발심주(初發心住)로부터 구족해 있으면서도 단지 승진의 우열을 잡아서 말하고 또한 설문(說文)의 넓고 좁음을 잡아서 말하고 또한 때〔時〕를 옮기지 않는 것으로 논하여 총체적으로는 5위〔位〕를 일시에 설하는 것이니, 고금(古今)이 먼저와 나중이 없다는 뜻이다.
제7 등수순일체중생(等隨順一切衆生) 회향은 방편바라밀을 체(體)로 삼아서 대비문(大悲門)을 주재하는 것이니, 이전의 6바라밀은 생사를 벗어나는 마음을 닦는 것이며, 이 제7 이후의 4바라밀은 이 방편의 지혜로 생사 속에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을 나타냄 속에서는 선재동자의 지식(知識)인 관세음보살을 이 제7 일체 중생을 수순하는 대자비의 회향 속의 행으로 삼는 것이다. 이 신경(新經)에서 관세음보살이라 이름붙인 것이 옳다. 시방 세계가 다 함께 하나의 불국(佛國)이 되는 것이지 별개의 서방에 따로 아미타가 있는 것이 아니니, 이는 여래의 방편 시설이 유위(有爲)의 몽매한 이를 이끄는 방편으로서 마음을 따라 전념(專念)하여 남은 악심(惡心)을 다스리면서도 심념처(心念處)를 따라서 화불(化佛)을 보아 스스로의 심량(心量)에 부합케 하는 것인데도, 모든 대덕(大德)이 잘못 이해해서 이 시바세계에 관세음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구경(舊經)의 판본을 고쳐서 관자재를 지은 것이니, 관자재라 말한 것은 단지 명칭을 기준하여 행을 드러내는 가운데서 세간과 출세간을 관조하는 무상(無相)의 이지(理智)가 자재함을 드러낸 것이지 자비의 행을 밝힌 것은 아니다.
관세음보살과 문수와 보현, 이 세 분의 법은 고금 3세(世)의 일체 모든 부처의 공통된 행이라서 시방에 공통된 것이니, 문수는 법신의 묘한 슬기의 이(理)를 주재하고 보현은 지혜의 몸으로 근기를 알아서 만행의 문을 성취함을 밝히고 있으며 관세음은 대자비로 생사에 처함을 밝히고 있다. 이 세 분의 법이 한 분의 덕을 성취하니 이를 비로자나라 호칭한다. 일체 중생이 모두 이 세법에 의지하기에 그 호칭을 불(佛)이라 하는 것이니, 하나라도 빠진다면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 이 일위(一位)는 옛 번역에 의거하는 것이며 새로운 번역에는 의거하지 않는 것이다. 또 범본(梵本)에서 광세음보살(光世音菩薩)이라 말한 것은 가르침의 광명과 행의 광명과 대자비의 광명이 중생과 동등하면서도 사물을 이롭게 함을 밝힌 것이니, 바로 일체처가 문수이고 일체처가 보현이며 또한 일체처가 광세음이란 이름을 얻는 것이다.
이제 관세음이라고 말한 것은 정념의 마음이 성취되면서 마음에 의거해 응현(應現)함을 취하여 명칭을 세운 것이니, 관자재로 법을 나타낸 바를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관자재란 것은 명칭을 잡아 법을 나타낸 뜻 중에서 제6 반야바라밀의 지위를 나타낸 것이지, 이 방편바라밀로 생사에 들어가 중생과 함께 하는 행인 4섭법과 4무량심으로써 번뇌를 끊지 않는 명칭은 아니니, 이는 번역한 자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세음은 보달락가(補怛洛迦)에 거주하는데, 보달락가는 한역하면 소백화수산(小白華樹山)이다. 관세음보살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모든 보살을 위해 자비경(慈悲經)을 설하시는데, 이 산엔 소백화수가 많으며 그 꽃도 매우 향기롭다. 경문에서 “산서아(山西阿)에 거주한다”고 말한 것은 서쪽이 금(金)이 되고 백호(白虎)가 되서 살위(殺位)를 주재하는 것이니, 살위로써 자비문을 주재함을 밝힌 것이다. 정취(正趣)보살이 동쪽에서 오는 것은 지혜의 지위를 밝힌 것이니, 경문에 이르면 해석하겠다.
경문에서 “불자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등수순일체중생 회향이라 말하는가?” 이하 게송을 설함에 이르기까지 스무 단락으로 장과하겠다.
첫째로 처음의 “불자야” 이하 “일체 세간의 선근”에 이르기까지 14행의 경문은 보살이 스스로 이상의 서른두 가지 가없는 선근을 모음을 밝힌 분이다.
둘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의 선근을 수습함”에 이르기까지 14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이 닦은 서른두 가지 무한한 복전(福田)의 선근 회향이 일체 중생의 공덕장이 됨을 밝힌 분이다.
셋째로 “불자야” 이하 “영원히 퇴전(退轉)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선근을 염(念)해서 작위 없고 의지함이 없는 보리심을 쌓은 것을 여의지 않고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김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불자야” 이하 “또한 다시 이와 같다”에 이르기까지 11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발원하는데, 그 원(願)이 위와 같이 닦은 무한한 선근이 소유한 과보와 미래겁이 다하도록 닦은 위와 같은 선근을 모두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면서도 시방 세계로 하여금 온갖 보배가 충만케 해서 무한한 중생에게 은혜롭게 베풂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로 “불자야” 이하 “항상 은혜로운 보시를 행하여 일체지지심(一切智智心)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보살이 다섯 가지 마음이 없이 늘 은혜로운 보시를 행하여 다섯 가지 마음을 성취함을 밝힌 분이니,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는 것처럼 거짓이 없는 마음으로 첫머리를 삼은 것이다. 이상 다섯 단락에서 앞의 서른두 가지 선근을 매듭지어 마친다.
여섯째로 “불자야” 이하 “모두 이렇게 베푼다”에 이르기까지 18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이 같은 등의 아승기상마왕기녀(阿僧祇象馬王妓女)와 자신 등의 열 가지 헤아릴 수 없는 물건〔不可數物〕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겁〔不可數劫〕이 다하도록 늘 베풂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로 “불자야” 이하 “손가락을 한번 튀기는 사이라도 권태로운 마음을 내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열 가지 보시로써 무한한 중생을 만족케 하면서도 무한한 겁이 다하도록 일념의 피로도 없음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지지심(一切智智心)에 들어간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이 보시할 때 열 가지 집착 없는 해탈심으로 시자(施者:배풂의 주체)를 삼음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지를 얻는다”에 이르기까지 8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열 가지 무한한 보시로 열 가지 무한한 원(願)을 일으켜서 일체 중생이 일체지를 얻기를 바람을 밝힌 분이다.
열째로 “불자야” 이하 “모든 유(有) 중에서 가장 존귀하고 뛰어나기 때문이다”에 이르기까지 116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두 단락의 무한한 보시업(布施業)으로써 널리 일체의 무한한 갖가지 중생을 위해 백열 가지 광대하고 무한한 소위(所爲)인 중생 등의 연(緣)한 바 사업을 일으켜서 위와 같은 시원(施願)의 회향을 행함을 밝힌 것이다.
이상 이전의 서른두 가지 무한한 선근과 그 다음 상마(象馬:코끼리와 말) 등의 열 가지 시업(施業)과 대원(大願)의 회향과 중생 등을 위한 경계를 총체적으로 매듭지어 마친다.
열한째로 “불자야” 이하 “10력(力)을 구족해서 중생을 조복한다”에 이르기까지 24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을 자비로 연민하기 때문에 고(苦)에 들어가 행을 같이 하면서 대원으로 중생을 제접함을 밝힌 분이다.
열두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법이 없는데도 집착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3행의 경문은 보살이 비록 시원(施願)으로 회향해서 고(苦)에 들어가 중생을 이롭게 하더라도 그 마음에 열 가지 집착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열셋째로 “불자야” 이하 “3세의 부처 종자를 증장(增長)해서 성취한다”에 이르기까지 3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일체의 선근으로 일체 중생이 지혜의 종자를 얻기를 바라는 것을 밝힌 분이다.
무엇을 부처의 지혜 종자에 들어가는 것이라 말하는가?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 청정심을 얻는 것이며, 둘째 지혜의 명료함이며, 셋째 내심(內心)의 고요함이며, 넷째 외부의 연(緣)에 흔들리지 않는 것인데, 이같이 닦고 다스려서 능히 3세 모든 부처님의 지혜 종자를 증장하기 때문이다.
열넷째로 “불자야” 이하 “모든 보살 등과 더불어 똑같은 견(見)이다”에 이르기까지 17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회향을 수행할 때 신통의 지력(智力)과 다라니문이 세상의 찬탄을 능가함을 밝힌 분이다.
열다섯째로 “불자야” 이하 “신통의 경계가 평등하고 청정하다”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보살이 이 같은 보살행을 수행할 때도 공덕이 사량(思量)을 넘어서거늘 하물며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성취하게 됨이랴를 밝힌 것이다. 이 단락은 공덕으로 짓는 법의 보응도 오히려 무한해서 사량을 넘어서거늘 하물며 작위 없이 자재로운 보리의 이지(理智)로 어찌 능히 성취할 수 없겠는가를 밝힌 것이니, 이는 공(功)의 지나침을 밝힌 것이다.
열여섯째로 “불자야” 이하 “보살행을 어기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15행의 경문은 보살이 법과 3세의 체상(體相)이 평등함을 봄을 밝힌 분이다.
열일곱째로 “불자야” 이하 “제7 등수순일체중생 회향”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보살이 이같이 회향할 때 법과 업과 찰(刹)과 3세의 평등을 얻어서 이미 일체 모든 부처를 받들어 섬기게 되고 일체의 청정한 온갖 회상의 도량에 들어가게 됨을 밝힌 분이다.
열여덟째로 “보살마하살” 이하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수순해서 이렇게 회향한다”에 이르기까지 9행의 경문은 위와 같은 회향의 시원(施願)으로 얻은 덕의 업용(業用)을 성취한 것에 대해 총체적으로 찬탄함을 밝힌 분이다.
열아홉째로 “이 때” 이하 1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대중을 관(觀)하고서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스무째로 그 게송이 모두 42행이 있는데, 경문의 뜻이 스스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다시 번거롭게 해석하지는 않겠다.
둘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째서 그 명칭이 등수순일체중생 회향이 되는가? 이 제7 방편바라밀이 대비문(大悲門)을 주재해서 바라밀 속에서 닦은 지혜의 힘으로 생사의 바다에 들어가서 일체 중생의 근품(根品)에 따라 행을 같이 하면서 중생을 이롭게 함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 명칭이 등수순(等隨順)인 것이니, 가령 10주 중 제7주인 대비위(大悲位)에서 휴사(休捨) 우바이가 “내게는 동행하는 권속이 8만 4천 나유타가 있는데 항상 이 정원에 거처한다”고 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그 대의(大意)를 말한다면, 일체 중생의 8만 4천과 불가설(不可說)의 번뇌를 같이하면서 다 동행하는 것이 그 뜻이며, 또한 이 지위의 제7 회향과 아울러 선재동자가 본 관음이 이 지위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한 단락의 회향에는 모두 스무 단락의 경문이 있는데, 나머지 열아홉 단락은 경문의 뜻이 스스로 갖추어져 드러나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다시 해석하지는 않겠다.
가령 제16 단락에서 법업(法業)이 평등하여 3세기 서로 어긋나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이니, 간략하게 해석하겠다. 경문에서 “일체의 불찰이 평등청정하고 일체의 중생이 평등청정하다”고 말한 것은 이지(理智)를 기준으로 해서 일체의 선근이 평등청정함을 설한 것이며, 나아가 4행의 경문도 모두 이지를 기준으로 해서 설함을 밝힌 것이다.
또 제17 단락 속에서 중생이 일체의 찰(刹)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의보가 서로 비슷함을 밝힌 것이니, 찰(刹)이 심업(心業)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이다. 중생 마음의 차별은 「세계성취품」에서 자세히 밝혀 놓은 것과 같다. 사념이 마음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사념이 마음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사념이 바로 마음인 것이니, 나머지 마음은 이에 의거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업이 과보를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과보가 업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과보가 바로 업과(業果)인 것이니, 나머지는 이에 의거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업(業)은 업의 길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내생에서 생을 받는 것과 현세에 업을 짓는 것이 서로 비슷함을 밝힌 것이니, 나머지는 이 법에 의거하라. 상품이 상(相)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무성(無性:자체성 없음)으로 상(相)을 삼고 무상(無相)으로 상(相)을 삼는 것이니, 무성 중의 실상(實相)은 여래의 몸 색깔과 묘한 경계가 이에 해당되며, 중생이 무성을 요달하지 못하고 망령되이 꾸며낸 허상은 천(天)과 사람과 용과 귀(鬼)와 축생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저마다 자기 마음이 낳는 업상(業相)을 따라서 칭하는 것이니, 나머지는 이에 의거하라.
생(生)이 성품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생(生)이 바로 무생(無生)이니 무생을 생으로 삼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찰(刹)의 평등이 중생의 평등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이(理)에 청정함이나 더러움이 없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하는 대개 마찬가지다. 일체 중생이 안주하는 평등이 욕망을 여읜 평등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중생 보거(報居)의 경계와 해탈 열반의 사이〔際〕가 둘이 없는 것이니, 이성(理性)이 때(時)가 같아서 두 성품이 없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가 미래를 어기지 않는 것은 총체적으로 3세의 성품이 때가 같아 두 성품이 없기 때문에 3세의 체(體)가 서로 어긋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니, 나머지는 예에 따라 알 것이다. 부처의 평등이 보살행의 평등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부처의 이지(理智)와 보살의 체용이 무성(無性)을 여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이같이 회향할 때 업의 평등을 얻고 과보의 평등을 얻는 이 같은 10평등법은 회향으로 원력(願力)의 장엄을 발하여 스스로 이 10평등과(平等果)를 과보로 얻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나타냄 가운데서 선재동자의 지식(知識)을 10주 제7에선 휴사 우바이로써 자비의 지위를 나타내고, 10행의 제7위에선 자비를 만족왕(滿足王)으로써 나타내는데 스스로 그 몸을 화하여 모든 죄역(罪逆)을 짓고 스스로 그 몸을 화해 잡아와서 죽이거나 벌함으로써 중생의 악역(惡逆)을 쉬게 하고, 이 10회향의 제7에선 관세음으로 자비의 지위를 나타낸다. 무릇 큰 가르침은 현유(玄悠)해서 문장이 꽃답고 뜻이 넓어서 법문의 명구(名句)가 명백하고 완연하다. 그리하여 십십(十十)의 수가 서로 따르고 만만천천(萬萬千千)이 차례대로라서 조그만 연못을 가져다가 거대한 바다에 첨가해선 안 될 것이니 그 깊은 곳까지 이르기에는 족하지 않고, 미약한 등불을 켜서 태양의 광명에 더하니 어찌 멀리까지 비추는데 능히 도움이 되겠는가?
이 경문은 뜻이 넓고 언어가 구비되고 이(理)가 갖춰지고 언사(言詞)가 풍부하기 때문에 우선 대의만을 대략적으로 해석했을 뿐 은밀한 지혜는 그윽이 잠겨 있다. 따라서 약간의 지취(旨趣)만을 편 것이니, 나머지 경전의 법상(法相)을 가해서 이 묘장(妙章)을 가로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뜻을 얻어 수행하는 자라면, 이(理)가 정(定)으로부터 발해지고 지(智)가 이(理)로써 밝아지고 자비가 원(願)을 빌려 일어나는 것이니, 행이 성취되니 원이 발해지고, 이가 넓어지니 지가 해박해지고, 원이 확장되니 자비가 넉넉해짐을 알아야 하니, 부처의 종자가 이로 인해 태어나서 법계를 이 연(緣)을 통해 제도하는 것이니, 결론을 이렇게 맺고 나머지 뜻은 뒤의 경문에서 밝히겠다.
제8 진여상(眞如相) 회향은 원바라밀(願波羅蜜)을 체(體)로 삼고 있다. 이 지위가 제8지(地)에서 지혜가 두드러지면서 원을 통해 지업(智業)을 야기하여 대자비를 성취하는 것과 동등하기 때문에 원으로 지혜를 막음을 밝힌 것이다. 지혜의 체(體)가 청정하기 때문에 이로움을 주는 교화가 넓지 못한 것이니, 법을 나타낸 것 중에서 선재동자가 동방의 정취(正趣)보살을 본 것이 바로, 그 행(行)이다. 허공으로부터 와서 사바세계에 이른 것은 법공(法空)의 지혜가 두루 감응하여 나타나면서도 가고 옴이 없음을 밝힌 것이며, 관세음이 동방의 정취를 가리키는 것을 볼 때도 관세음과 더불어 같이 모여서 보는 것은 원(願)으로 자비와 지혜를 회통함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자비와 지혜를 원만케 함을 밝힌 것이다. 동방은 지혜를 나타내고 서방은 자비를 나타내는 것이니, 태양이 떠서 밝게 비추는 것과 봄볕이 발생하는 것과 청룡의 길상(吉祥)은 지혜를 나타내는 것이며, 해가 져서 혼미해지는 것과 가을 서리로 영락하는 것과 백호(白虎)의 살해(殺害)는 지혜로 자비에 들어가 고류(苦流)에 처해서 중생을 제도하여 이익이 되게 함을 밝힌 것이다. 제8 원바라밀은 지체(智體)의 성정(性淨:성품의 청정함)을 막고서 원으로 자비를 회통해 보현행을 성취함을 밝힌 것이니, 승진할 때 그 행위(行位)에 따라서 회통해 알라.
두 가지 뜻은 앞에서와 같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은 처음 “불자야” 이하 “게송 이래”에 이르기까지 열 단락으로 장과하겠다.
첫째로 “불자야” 이하 “널리 일체 불국토에 능히 왕림한다”에 이르기까지 35행의 경문은 보살이 이 진여상 회향의 지위에 들어가매 스스로 얻은 선근으로 다시 회향을 발원하는 소연(所緣)을 가해서 지위의 승진을 성취함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로 “불자야” 이하 “안온한 거주처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이 악도(惡道)에서 받는 고통을 관하기를 자기 몸처럼 하면서 조속히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을 밝힌 분이다.
셋째로 “불자야” 이하 “마음에 흔들림이 없으니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회향 열 가지를 가짐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열 가지 커다란 이익을 얻게 함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불자야” 이하 “널리 세간에 정각의 성취를 나타낸 것이다”에 이르기 까지 46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뛰어나고 묘한 국토와 일체의 묘한 경계를 보고서 한량없는 대원(大願)으로 일체 중생이 모두 다 그 속에서 살게 되고 아울러 온갖 이익을 얻기를 바라는 것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로 “불자야” 이하 “광대한 선근”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회향의 선근으로 스스로 선근을 증장함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의 청정한 지혜를 원만케 한다”에 이르기까지 189행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은 회향이 모두 자체성 없고 집착이 없는 진여(眞如)로 회향을 삼음을 밝힌 분이다. 이상의 189행 반의 경문은 진여로 회향의 체(體)를 삼음을 기준으로 하여 진여가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법에 두루 하기에 회향도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법에 두루 함을 밝힌 것이다. 왜냐 하면 회향을 방편으로 삼아서 작위 없는 진여 속의 대지혜ㆍ대자비ㆍ대다라니문ㆍ대신통도력을 일으켜 진여의 작위 없는 대자재(大自在)에 부합하여, 작용이 항상 공적토록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 대원과 대비와 대지혜로써 무한하게 회향치 않고 다만 작위 없는 진여에만 의거해서 번뇌만 청정케 한다면, 적멸을 즐기는 2승과 6통(通) 보살의 3승이 단지 일방(一方)의 청정 국토에 태어나서 법계의 참다운 문에 들어가지 않고 문 밖의 권승(權乘)에 거처하면서 여전히 초암(草庵)의 지위에 그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반드시 알라. 시방에 가득 찬 차별종지(差別種智)가 다 대원력을 말미암아서 발생하고 법계에 원만한 행문(行門)이 회향을 빌려서 흥기하기 때문에 이 가르침의 그물을 세워서 인연 있는 자를 제접한 것이니, 이는 궤도를 분명히 알아 그 자취를 밟아 나감으로써 배우는 자로 하여금 공(功)을 덜어서 잘못되지 않게 한 것이다.
일곱째로 “불자야” 이하 “제8 진여상 회향”에 이르기까지 12행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은 진여상 회향을 통해 스스로 의(義)와 이익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로 “보살마하살” 이하 “선근으로 진여상을 수순하는 회향”에 이르기까지 13행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이 회향을 마치니 여래와 똑같은 성도(成道)를 얻음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로 “이 때” 이하 1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게송을 설해서 법을 찬탄함을 밝힌 분이다.
열째로 이하 58행의 게송은 게송으로 이전의 법을 거듭 읊음을 밝힌 분이다.
둘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나머지 경문의 뜻은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이 같은 한 단락의 경문에서 “일신(一身)이 일체세간에 충만하고, 부처의 한량없는 음성을 얻고, 하나의 털구멍 속에 널리 일체의 국토를 능히 용납하고, 부처의 한량없는 신통을 얻어서 모든 중생을 하나의 털구멍에 둔다”고 하는 것은 이 10주 초심에서 견도(見道)한 뒤에 실다운 지견(知見)에 들어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범부 중 믿음이 있는 선비를 위해 약간이나마 해석함으로써 마음의 눈을 열게 하리니, 선정에 들어가서 관(觀)과 지혜를 융화회통해야만 비로소 몸소 보는 것은 아니다. 논주(論主)가 게송으로 설한다.

털구멍의 크고 작은 성품을 마침내 깨달으니
시방의 국토가 겉과 속이 없구나.
지혜의 경계가 시방의 찰(刹)을 포용하니
찰토의 체상(體相)이 본래 다 환(幻)이로다.

지혜와 몸의 체(體)가 청정해서 서로 걸림이 없으니
털구멍과 미진(微塵)도 또한 마찬가지로다.
국토는 마음의 망령됨으로 인(因)해서 생겨나니
망령됨이 없으면 지혜와 경계는 항상 서로를 용납한다.

중생의 마음이 청정해서 겉과 속이 없으면
이로써 자신의 털도 마찬가지임을 요달해 알고
마음이 자타(自他)를 분별하는 정이 없으면
일체의 티끌과 털도 불찰을 포함하도다.

이 때문에 여래가 회향을 설하여
널리 원행(願行)을 일으켜 자타를 융화해서
타자(他者)가 자기와 똑같이 즐거움 얻기를 원하니
마음이 청정해지면서 불국(佛國)이 늘 서로 들어간다.

광대한 원(願)으로 대지혜를 일으켜서
동체(同體)의 지혜와 자비가 법계에 충만하니
공용이 없는 이지(理智)로 신운(身雲)을 일으켜
유(類)를 따라 형상을 나타내니 소리도 또한 마찬가지다.

능히 자타의 체(體)가 같은 지혜로써
중생의 몸 속에 불국을 나타내서
중생의 지혜로 법륜을 굴리지만
중생의 마음이 미혹되어서 깨닫지를 못하는구나.

중생의 지혜가 바로 부처의 지혜이며
부처의 지혜가 바로 중생의 지혜이니
미혹한 자는 부처의 지혜가 중생을 짓고
깨달은 자는 중생이 바로 부처의 지혜이네.

이같이 체(體)의 동일성과 차별성을 요달하면
중생과 더불어 의지(依止)를 지음을 감당하리라.

제8 진여상 회향을 요약해서 해석해 마친다.
제9 무착무박해탈(無着無縛解脫) 회향은 역바라밀(力波羅蜜)로 체를 삼는데, 선재동자가 본 천신(天神)으로 이 지위의 행을 나타내고 있다. 거주하는 성(城)의 명칭은 타라발저(墮羅鉢底)이며, 신의 명호는 대천(大天)이다. 성의 명칭이 타라발저인 것은 한역하면 유문성(有門城)이다. 이는 이 계(界)의 건곤(乾坤)이라서 건(乾)으로 천문(天門)을 삼고 이후는 차례로 지신(地神)을 보는 것이니, 이 두 지위로써 10회향위(廻向位)의 지극(智極:지혜의 극)과 비종(悲終:자비의 종결)을 융화하여 회통함을 밝힌 것이다. 천신은 법공의 묘한 지혜의 극(極)을 나타낸 것이며, 지신은 대자비의 지극함을 나타낸 것이니, 만물을 두텁게 실어서 중생을 양육하기 때문에 부모의 지위와 같다는 걸 표상한 것이다. 천신이 한량없는 종류의 온갖 보배를 나타내니 그 쌓임이 산과 같으며, 지신이 광명을 놓으니 대지가 진동해서 장엄하고 땅이 청정한 찰(刹)이 되어서 온갖 많은 보장(寶藏)이 자연히 솟구침은 천신과 지신이 업에 따라 양육하는 제물(濟物)의 덕이 광대함을 밝힌 것이다.
경문에 이르면 밝히겠지만, 대략 법을 나타낸 뜻을 회통함을 거양함으로써 나중에 배우는 자로 하여금 그 뜻을 쉽게 보아 교행(敎行)에 미혹치 않고 수행에 걸리지 않도록 하겠다. 법을 나타낸 것 중에서 지혜가 청정해 천(天)에 부합한 성품을 밝힌 것은 바로 법재(法財)가 충만하여 공덕의 보배가 출현함이 산과 같은 것이며, 또 순수청정한 대자비로 만물을 실어 기르는 것은 마치 대지에 수고로움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대지의 체(體)가 본래 정토일 뿐이다. 이것은 오직 지혜와 자비의 청정함이 지극하기 때문이니 곧 불국의 장엄이 청정한 것이다. 이는 신지(神智)가 진(眞)에 응하고 덕이 천지에 회통해서 사물을 갈러 구제함을 밝힌 것이며, 또한 천지의 신령(神靈)이 바로 보살로서 지위가 감당해 다스리는 진속(眞俗)의 행을 기준으로 하여 이 지위에서 천신으로 나타낸 것이니, 이는 승진의 이지(理智)가 그윽하고 미묘해서 천령(天靈)과 같이 측량치 못하며 신공(神功)의 만유(萬有)가 작위하지 않는 것으로 함을 밝힌 것이다.
두 가지 뜻은 앞에서와 같으니, 첫째 “불자야” 이하 “게송을 설한 이래”에 이르기까지 일곱 단락으로 장과한다.
첫째로 “불자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무착무박해탈 회향이라 말하는가?” 이하 “수순인가(隨順忍可)”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인(因) 속에 선근을 심어서 열 가지 존중을 냄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로 “불자야” 이하 “의지하는 바가 없는 지혜를 내며, 일체 불법의 지혜를 낸다”에 이르기까지 이상 15지(紙)의 경문은 처음으로 열 가지 선근을 닦고 열 가지 존중행(尊重行)을 닦아서 무착무박해탈의 회향으로 보현의 미세한 지혜 경계에 들어가게 됨을 밝힌 분이다.
셋째로 “불자야” 이하 “법이든 지혜이든 분별치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무분별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불자야” 이하 “제9 무착무박해탈의 회향”에 이르기까지 15행 반의 경문은 이 회향을 닦으니 3업(業)의 무착무박(無着無薄:집착도 없고 속박도 없음)을 얻어서 3세 부처의 회향이 자재함과 같음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로 “보살마하살” 이하 “보살의 자재로운 신통을 성취한다”에 이르기까지 9행의 경문은 이 회향을 닦아 선근의 불괴(不壞)를 얻음으로써 태어난 곳에서 곧바로 부처를 만나 자재로운 신통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로 “이 때 금강당보살” 이하 1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대중을 관하고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로 이하 120행의 게송은 경문에 뜻이 스스로 갖추어져 있으며, 2행이 하나의 게송이다.
둘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무엇을 무착무박해탈의 회향이라 말하는가? 자체성 없는 이지(理智)의 의지함 없는 것이 바로 일체 무착(無着)이자 일체 무박(無縛)인 것이니, 이 때문에 경문에서 “매우 깊고 깊은 미세한 지혜로 보살행을 닦고 보현의 도(道)에 머물러 경문이나 뜻과 같이 다 여실한 지혜라서 그림자 같은 지혜를 낳고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메아리 같고 화현 같고 허공 같으며 나아가 의지하는 바가 없는 등의 지혜를 낳는다”고 한 것이다.
경문에서 말하기를 “보살마하살이 일체 선근에 대해 마음으로 존중을 일으킨다”는 것은 열 가지 뜻이 무진(無盡)에 있음을 들은 것이며, “소위(所謂)”란 것은 진술한 바의 법을 논급(論及)하고자 하는 것이다. “생사를 벗어나는 데서 마음으로 존중을 일으킨다”고 말한 것은 3승 중에선 분단생사(分段生死)를 벗어나 변역생사(變易生死)를 얻는 것인데, 생사를 싫어하고 적정(寂靜)을 기뻐하기 때문에 변역생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 이는 지생신(智生身)으로 찰해에 두루 하면서 근기에 맡겨 응현(應現)하면서도 생사의 성품이 아니며 나아가 세간의 법과 같이 하면서도 생사의 성품이 아닌 1승만 못한 것이다. 모든 도를 보는 자는 응당 이같이 알아야 한다. 만약 스스로의 과보를 논한다면, 지혜가 합하고 행이 같아져야 비로소 능히 볼 수 있는 것이니, 이렇게 생사의 성품을 벗어나야 존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경문에서 “일체 선근을 섭취하는 데서 마음이 존중을 일으킨다”는 것은 선(善)을 섭수(攝收)하는 법계(法戒)이며, “일체의 선근을 희구하는 데서 마음이 존중을 일으킨다”는 것은 10신(信)의 유루(有漏)가 희구하는 것과 10주(住) 이후의 무루(無漏)가 희구하는 것 모두에 마음이 존중을 일으키는 것이며, “모든 과오(過誤)의 업을 참회하는 데서 마음이 존중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 지나간 업을 참회하는 것이다. 이하는 경문의 뜻에 따라 알 수 있는 것이니, 이같이 그 인(因)을 존중케 하기 때문에 과(果)가 문득 물러나지 않는 것이 10층 누각이 아래가 튼튼하기 때문에 위가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이상 한 단락에서 인(因)을 존중함을 마친다.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저 선근에서 모두 존중을 일으켜서 때〔時〕에 따라 인가(忍可)한다”로부터 “의지함이 없는 지혜를 낳고 일체법의 지혜를 낳는다”에 이르기까지 15지(紙)의 경문은 3세 모든 부처의 과덕(果德)과 보현 과행(果行)의 모든 미세법(微細法)을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이 미세법문을 간략히 열 가지 미세(微細)로 세워서 대략이나마 보이리니 나머지는 모두 이에 의거하라.
첫째, 불신(佛身)의 미세함이다. 부처의 보신 가운데 하나의 불신과 하나의 중생신 속에 불가설불가량(不可說不可量:설명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의 불신이 있는 것과 같으니, 일체의 불신과 일체의 중생신도 모두 마찬가지다.
둘째, 부처 지혜의 미세함이다. 하나의 지혜 속에서 허공계에 두루 한 중생의 즐거움에 따르는 법을 다 차별되게 아는 것이다.
셋째, 부처가 생(生)을 받는 것의 미세함이다. 온 시방의 일체 불찰을 모두 부수어서 티끌로 만들고, 하나하나의 티끌 속에서 일시에 수태(受胎)하고, 일시에 처음으로 태어나고, 일시에 도량에 나아가고, 일시에 법륜을 굴리는 것 등인데, 이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류신(隨類身)을 일으켜 대현(對現)함을 무너뜨리지 않고 있다.
넷째, 세간의 일체 중생을 다스리는 것의 미세함이다. 일체 불찰의 티끌 속에 보현행을 갖추고, 하나하나의 중생 앞에 유(類)를 따라 형상을 나타내서 설법으로 교화하는 것이 저마다 차별적으로 끝없이 겹치면서도 걸림이 없는 것이다.
다섯째, 국토의 미세함이다. 하나하나의 티끌 속에 모두 한량없는 허공 같은 광대한 국토가 있으면서도 하나하나의 국토가 서로 참입(參入)해서 겹겹이 겹치면서도 걸림이 없는〔重重無礙〕 것이 화장(華藏)의 바다와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된다.
여섯째, 보살 대중해〔菩薩衆海〕의 미세함이다. 위와 같은 불찰의 티끌 속 하나하나의 부처의 처소에 허공의 양(量)과 동등한 광대한 도량이 있어서 보살 대중의 바다가 다 충만한데, 이처럼 일체의 찰진(刹塵)의 안도 모두 이와 같아서 이 같은 도량과 이 같은 대중의 바다가 모두 서로 참입하여 겹겹이 겹치면서도 걸림이 없는 것이 빛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일곱째, 보살이 부처를 보는 것의 미세함이다.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를 따라 모두가 여래를 눈앞에 대하는 것처럼 봄으로써 스스로의 지위를 따르는 법을 설하고 스스로의 지위를 따르는 몸을 보는 것이다.
여덟째, 부처 음성의 미세함이다. 여래의 음성이 마음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몸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서도 늘 음성이 있어 항상 시방에 두루 하면서 듣는 자를 따라 모두 듣게 하는 것이다.
아홉째, 시겁(時劫)의 미세함이다. 3세 불가설겁(不可說劫)의 일체 모든 부처가 일념에서 벗어나지 않고 널리 지금처럼 있으며, 바로 지금 현전하는 모든 부처가 또한 과거와 미래에 거주함으로써 일시와 3세가 겁겁에 참입하여 겹겹이 겹치면서도 걸림이 없는 것이다.
열째, 신통 도력(道力)의 미세함이다. 법성이 두루 하기 때문에 지신(智身)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의주(依住)함이 없는 지혜로 색신을 대현(對現)해 시방에 메아리처럼 응하면서도 가고 옴이 없으며, 아울러 변화하고 조작하는 마음도 없으니, 지혜가 본원(本願)을 따름에 법이 응당 이와 같으며 아울러 일체 티끌 속의 경계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끝없이 겹쳐진 것이다.
이상 안립(安立)한 열 가지 법문으로 이 지위 중 회향의 법이 대체로 이와 같음을 해석해서, 이 무착무박회향위 속의 보살이 이같이 들어감을 밝힌 것이니, 나머지 경문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체적인 뜻이 작위 없는 법신과 머묾이 없는 지혜 그리고 10회향의 대원으로 조화롭게 하여 대자비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해(行海)를 성취하게 함으로써 일체의 사량분별로 지용(智用)을 삼게 하며, 일체의 지견(知見)으로 총체적으로 선문(禪門)의 본래부동(本來不動)을 삼게 하며, 이성(理性)의 근본 적정문(寂定門)으로 차별지의 몸과 습기의 몸과 변역(變易)의 몸을 일으키게 하며, 하나의 털구멍으로 일체의 불찰과 중생찰을 안립해서 모두 걸림이 없게 하며, 유위와 무위로 일법계(一法界)의 자재로움을 삼게 하기 때문에 이같이 회향하는 것이다.
제10 등법계무량(等法界無量) 회향이란 것은 지바라밀(智波羅蜜)로 체(體)를 삼는다. 법을 나타냄 속에서 선재동자가 본 안주지신(安住地神)은 여신인데, 이같은 곤신(坤神)의 분(分)에서 머무는 것은 서남방에 있으며, 또 중궁(中宮)에 처해서 사계(四季)를 다스리는 것은 지혜에 처해 자비를 행하는 것이 원만함을 밝힌 것이다. 그 지신이 머무는 마갈국(摩竭國)은 여래가 성도한 나라이니, 이 지위의 승진이 중도(中道)에 도달해서 여래의 지혜와 자비가 원만한 지위와 같음을 밝힌 것이며, 마갈국은 바로 염부제의 중심으로 중궁의 지위이다. 만약 해당 방위를 따른다면 제왕의 거처가 바로 이에 해당되며, 만약 지위의 승진에 따라 수행 중이라면 지혜와 자비의 원만행이 이에 해당되며, 만약 회향이 나타내는 지위의 회융(會融)을 조망한다면 이전의 천신은 지혜를 나타내고 이 지신은 자비를 나타내서 두 지위가 회통해 일위(一位)를 성취하는 것이니, 중생을 양육하는 도(道)요, 덕화(德化)를 성취하는 문(門)이다. 가령 백만의 지신이 대광명을 놓아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한 것은 지혜로 자비를 행해서 백만의 행문(行門)에 자비 광명의 비춤이 두루 한 것이며, 대지가 우레처럼 진동하는 것은 자비심이 감응하는 것이며, 갖가지 보물로 처처에 장엄한 것은 대비행이 원만해서 업의 과보가 나타남을 밝힌 것이니, 본위인과(本位因果)의 과보로 얻은 장엄을 들은 것이다. 자세한 해석은 그 지위에 이르면 밝히겠다. 또 지혜와 자비가 원만히 성취되어서 가르침을 시설해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그 지혜가 신과 같고 그 마음이 대지와 같아서 만물을 실어 양육하면서도 수고롭지 않은 것이 대지가 능히 낳고 능히 양육하고 능히 실어서 시종일관 옮기지 않는 것과 같음을 나타낸 것이다.
두 가지 뜻은 앞에서와 같으니, 첫째, 해당되는 지위를 장과한다는 것은 처음 “불자야” 이하 33권의 “게송을 설한 이래”에 이르기까지 스물여섯 단락으로 장과하겠다.
첫째로 “불자야” 이하 “그 선근을 증장해서 성취케 한다”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지혜와 자비가 원만하기 때문에 법사(法師)가 되어서 법을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함을 감당함을 밝힌 분(分)이다.
둘째로, “불자야” 이하 “성냄이 없는 범행(梵行)”에 이르기까지 21행의 경문은 보살이 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 스스로 범행을 닦음을 밝힌 분이다.
셋째로 “불자야” 이하 “또한 중생을 정법에 안주하게 한다”에 이르기까지 25행의 경문은 보살이 범행에 자재로움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불자야” 이하 “모두 일체지를 성취하도록 하기 때문이다”에 이르기까지 22행의 경문은 위와 같은 법시(法施:법의 베풂)가 낳은 선근의 회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해 3세의 불법을 연설해서 걸림 없는 변설과 음성의 무애(無礙)에 들어가게 되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로 “불자야” 이하 “나와 같아서 다름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보살이 모든 걸 청정케 하여 위와 같은 법시와 회향이 발원한 선근으로 다시 회향함으로써 법계와 동등한 여래가 세간에 출현함을 보고 세계와 같은 수의 다함이 없는 중생을 조복시키길 바라는 것을 밝힌 분이다.
여섯째로 “불자야” 이하 “영원히 모든 청정행을 무너뜨려 잃지 않게 한다”에 이르기까지 15행의 경문은 보살이 회향한 선근이 법계처럼 한량없음을 밝힌 분이다.
일곱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법에서 영원히 망실(忘失)치 않게 함이다”에 이르기까지 16행의 경문은 법계 등 한량없는 선근의 회향으로 일체 중생이 부처를 보고 마음이 청정하게 되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여덟째로 “불자야” 이하 “차별 없는 성품처럼 회향하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법계의 성품처럼 생기함도 없고 옮겨감도 없이 회향함을 밝힌 분이다.
아홉째로 “불자야” 이하 “보살이 법을 설하는 원력(願力)을 성취함이다”에 이르기까지 27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법시의 회향한 선근으로 또한 일체 중생이 부처의 법사위(法師位)에 들어가게 되길 원함을 밝힌 분이다.
열째로 “불자야” 이하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취해서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회향하는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무집착(無執着)으로 회향을 삼음을 밝힌 분이다.
열한째로 “불자야” 이하 “걸림 없는 광명이 항상 끊이지 않기 때문에 회향하는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22행의 경문은 세간법을 위한 것도 아니고 2승법을 위한 것도 아니고 다만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 지혜에 들게 하기 때문에 회향함을 밝힌 분이다.
열두째로 “불자야” 이하 “부처의 광대한 문에 들어가기 때문에 회향하는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30행의 경문은 일체의 선근이 단지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해서 대보리를 성취케 함을 밝힌 분이다.
열셋째로 “불자야” 이하 “휴식이 없게4)하기 때문에 회향하는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23행의 경문은 위와 같은 등 선근의 회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해 대자(大慈)ㆍ대비(大悲)ㆍ대희(大喜)ㆍ대사(大捨)에 머물고 아울러 영원히 두 가지 집착을 여의어서 부처 지혜를 원만히 성취함을 밝힌 분이다. 두 가지 집착이란 유(有)에 집착하고 무(無)에 집착하는 것이다. 시(是)와 비(非), 자(自)와 타(他), 피(彼)와 차(此), 내(內)와 외(外), 능(能)과 소(所)가 모두 둘이 된다.
열넷째로 “불자야” 이하 “응당 선근을 수습함으로써 회향한다”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보살이 이같이 회향할 때 3유(有)의 5욕(欲) 경계를 응당 탐착하지 않고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는 선근을 쓰기 때문에 선근을 수습함을 밝힌 분이다.
열다섯째로 “불자야” 이하 “대시회(大施會)를 베푼다”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보살이 약을 버리고 선을 성취해서 온갖 마업(魔業)을 여의고 법시회(法施會)를 시설함을 밝힌 분이다.
열여섯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 중생의 기나긴 잠〔長夜睡眠〕을 깨닫는 음(音)”에 이르기까지 25행의 경문은 보살이 스스로 걸림 없는 음성의 두루 함을 얻어서 일체 중생의 음성을 원만케 하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열일곱째로 “불자야” 이하 “정념(正念)의 지혜와 변재”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일체 중생이 허물과 악을 여의고 청정을 얻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열여덟째로 “불자야” 이하 “일체지신(一切智身)”에 이르기까지 14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선근의 회향으로 청정한 지신(智身)을 얻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열아홉째로 “불자야” 이하 “안주해서 보살행을 닦는다”에 이르기까지 14행의 경문은 보살이 법시(法施)의 선근으로 이같이 회향해서 일체의 찰(刹)에 따라 머물면서도 휴식이 없어서 보는 자가 이익을 얻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이상 열아홉 단락은 법시의 회향 선근으로 자타(自他)를 요익(饒益)케 하는 행문(行門)을 밝힌 분이다.
이하 30권 안에선 불찰을 장엄하는 회향을 밝힌 분이니, 이 등법계무량 회향 속에 모두 32권과 33권 두 권의 경문이 있는 것이다.
스무째로 “불자야” 이하 “광대한 지보(智寶)를 얻어서 궁극적으로 원만한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3지(紙)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은 법시공덕보(法施功德寶)의 회향으로 한량없는 불찰을 장엄하여 다 청정케 함을 밝힌 분이다.
스물한째로 “불자야” 이하 “이같이 널리 설하다”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보살이 보살신(菩薩身)으로 모든 불찰에 두루 하고 아울러 보배 장엄의 지위가 전보다 백천 배나 초과함을 밝힌 분이다.
스물두째로 “불자야” 이하 “불자야, 보살마하살의 모든 선근을 통해 널리 일체 중생을 위해 이같이 회향한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28행의 경문은 보살이 총체적으로 중생을 위해 이같이 회향함을 밝힌 분이다.
스물셋째로 “다시 이 선근으로써” 이하 “다 환희하도록 하기 때문에 회향한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19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회향을 통해 다만 법과 행을 설해 일체 중생을 안락케 함으로써 법계처럼 원만하게 함을 밝힌 분이다.
스물넷째로 “불자야” 이하 “여래의 온갖 회상의 도량이 평등함에 머무는 것으로써 회향한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22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법시와 대원의 장엄으로 널리 중생을 교화해서 총체적으로 법계의 평등함에 머물도록 하기 때문에 회향함을 원함을 밝힌 분이다.
스물다섯째로 “불자야” 이하 “제10 등법계무량 회향”에 이르기까지 11행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이 일체 선근에 회향할 때 이 같은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심업(心業)과 아울러 열 가지 법계의 청정에 안주하게 됨을 밝힌 분이다.
스물여섯째로 “보살마하살” 이하 “피안에 이른다”에 이르기까지 24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법시 등의 선근 회향으로 일체 중생이 다 부처를 보게 되어서 부처 지견(知見)에 들어가 부처의 소득(所得)과 같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다.

新華嚴經論卷第二十一長者李 通玄 撰第三等一切諸佛迴向者,以忍波羅蜜爲體,餘九爲伴,表法中以善財童子所見可樂城東大莊嚴幢無憂林中無上勝長者是也。爲城名可樂依主所行之行立其名故,爲明得法成忍人見可樂住,城東者,爲明忍爲覺行之首,爲表東方角亢氐房之位,主衆善之首,房爲靑龍,主吉慶位故,以東方爲陽,爲生萬物之首,明忍爲萬行之首,生衆福故。故名城東也。大莊嚴幢者,忍隨違境不動也。是幢義無憂林者,明忍成行滿如林廣蔭也。號無上勝者,衆行之中不勝忍也。衆行之中無忍不成行故,餘廣如經說,二義如前。第一長科當段經意者,從此一段經中,約科爲十段。一佛子云何菩薩摩訶薩等一切諸佛迴向已下,至諸根淸涼,有五行半經,明學佛迴向心得自在淸涼分。二佛子已下,至不變異樂,有七行半經,是菩薩迴向佛樂分。三佛子已下,證薩婆若,此云一切智,有七行經,明迴向菩薩行願分。四佛子已下,證一切智,有十行經,明迴向一切衆生令得離苦分。五佛子已下,至具足充滿,有兩行經,明菩薩行由願廣大充滿分。六佛子已下,至迴向諸佛無上菩提,有十八行半經,明菩薩以本大悲處俗無染著分。七佛子已下,至如來究竟之地,有二十五行經,明與畜生食願永離衆苦得樂分。八佛子已下,至第三等一切諸佛迴向,有十四行經,明菩薩等一切諸佛迴向分。九菩薩摩訶薩已下,至心無所著,有六行經,明菩薩入佛功德深入法界善知菩薩修行次第分。十爾時已下,一行經,明金剛幢菩薩觀衆說頌分。第二隨文釋義者,何故名爲等一切諸佛迴向?爲此第三迴向成其忍門,無貪嗔癡三業如佛,佛所行願皆悉願爲故,名等一切諸佛迴向,令願行一如佛故,又前云不壞迴向,以次等一切諸佛迴向,明次第合然已下,有四十八行頌,兩行一頌,所頌前法如文具明,不煩更解。第四至一切處迴向者,以精進波羅蜜爲體,餘九爲伴,以善財見比丘尼,名師子頻申住輸那國,此曰勇猛城,名迦陵迦林,此云鬪諍時也。明此比丘尼能和斷鬪諍,此表第四迴向行精進業利物之相,表比丘者,明離染淸潔,尼者慈音,明此精進行門離染慈悲以爲行體,號師子頻申者,明已得四無㝵智已得四種無畏故。師子者,明智無畏也。頻申者,卷舒自在也。明以淸淨大智勇猛,自在卷舒說法利生善和斷鬪諍皆悉從伏無量諸衆,見聞不同廣如經說意表此第四迴向中行精進之行,智悲相故,無染慈悲說法自在,表悲常隨苦流智常無所染是尼義故。四無㝵智者,一義無㝵智,二法無㝵智,三辭無㝵智,四樂說無㝵智。四無畏者,一一切智無畏,二漏盡無畏,三說障道無畏,四說盡苦道無畏。二義如前,第一長科此段經意,義分爲八段。一佛子云何爲菩薩摩訶薩至一切處迴向已下,至無邊世界有十二行經,明菩薩所修善根如實際遍三世供養分。二佛子已下,至廣大威德種性中,有十二行經,明諸佛興世如法身遍往無差別廣大利益分。三佛子已下,至護持一切諸佛教故,有六十四行經,明菩薩以衆多無盡,如法性供養雲供養,如法性無邊衆多如來普攝諸善根分。四佛子已下,至以善方便修迴向道,有十六行半經,明菩薩修迴向以無所得而爲方便修一切善根分。五佛子已下,至具足一切功德,有六行經摠結已上供養功德分。六佛子已下,至第四至一切處迴向,有六行經,明都結已上遍一切處迴向所作令佛種不斷廣嚴淨佛剎分。七菩薩摩訶薩已下,至能以善根如是迴向,有十二行經,明住此迴向時得身語意業遍十方一切處分。八爾時已下,有一行經,明金剛憧菩薩觀衆說頌分。第二隨文解義者,云何至一切處迴向?約位有十一。一法身至一切處,二智身至一切處,三大願至一切處,四供養諸佛至一切處,五見聞聽受諸法至一切處,六遍現色身至一切處,七開悟衆生至一切處,八不出毛孔至一切處,九遍滿十方等于法界而無去來至一切處,十入一衆生身心等一切衆生身心至一切處,十一入一佛身毛孔等一切佛身毛孔至一切處迴向。又迴向者,有十法。一以無作法迴向有作法,二以有作法迴向無作法,三以一法迴向多法,四以多法迴向一法,五於諸有法迴向無法,六於無法迴向有法,七以世間法迴向出世間法,八以出世間法迴向世間法,九以一切自性無迴向以爲方便迴向法,十以一切有迴向法,以爲自性無迴向法,爲令滯有無者得自在故,生死涅槃無障㝵得大神通無物拘留故,供養諸佛教化衆生,一多同別,皆得自在故,以誠實心起大願雲,周覆法界虛空界,興種種供具供養三世一切諸佛,皆願自他福德圓滿故。是故名爲至一切處迴向如世界種,卽如華藏世界種是也。約先德云數三千大千世界至一恒河沙數,爲一世界海。又數海世界數至一恒河沙爲世界性。又數世界性至一恒河沙,爲一世界種,如種種世界云衆雜多也。如轉世界者,或圓形轉,或流轉如江河,是日月亦是皆無住心名轉側世界,如四天王天,在須彌山側住仰世界,可知覆世界如蜂窠等,是亦如世界成就品說。已下如經自具。大意以修得十住十行之中法身理智,卽依此法起大願大悲,依無作理智起神通行,使不滯染淨,不爲染淨二法所拘留,神通諸法性自離故,已下有二十二行頌,兩行一頌,如文自具。第五無盡功德藏迴向者,以禪波羅蜜爲體,以善財童子所見婆須蜜女,以爲所行之人,所住國土,名爲險難,城名寶莊嚴,以歎德中心無分別,普知諸法,一身端坐充滿法界。於自身現一切剎,所明禪體遍周自在爲明禪與智悲會融無二體用自在故以國名險難者,以眞智會俗,城名寶莊嚴者,會俗體自眞,明定亂兩融智悲不㝵隨塵不染故,號名寶莊嚴,婆須蜜女者,此云世友能與世人爲師友故。亦曰天友,能與諸天作師友。或曰易寶,以此女善巧方便易取衆生一切智寶,此女身金色目髮紺靑。若聞說法,若暫見,若執手,若坐座,摠得三昧,爲明禪體遍周與智會故,道合見者,摠皆是禪體智慈相會之流。若也別見之流,常對面不睹其容也。但爲定與智會,智與悲冥,隨根接俗,號之爲女,非卽但爲女也。十住中第五主禪門卽俗士長者,號爲解脫,明俗體本眞衆生身本來佛國故,長者身含佛國,明衆生身亦然,但禪觀相應卽見,十行中卽以寶髻長者,明禪門,以本自居宅十層之閣,宅有八門,市上接俗引來宅內,卽以所行俗事,用彰智隨悲行處世染而不污。若也未悟俗塵爲業所留,要須戒定慧求出世之智若也達智業亡要須處纏不污方便利生皆令解脫,一須知根接引不得惑亂衆生,要須依根受藥,二義如前。一長科當經意者,於此段長科爲十三段#一佛子已下,至悉皆具足有六十一行經,明菩薩凡所隨喜迴向,悉皆具足圓滿分。二佛子已下,至一切佛剎悉亦如是,有三十行經,明菩薩以大願願菩薩衆海圓滿十方莊嚴國剎分。三佛子已下,至轉無障㝵不退法輪,有七行經,明方便迴向分。四佛子已下,至超然出現,有五行經,明願淸淨佛剎至一切衆生界佛常超然出現分五佛子已下,至入一切法界,有三行半經,明菩薩達一切智知業果寂滅分。六佛子已下,至無有少法與法同止,有六行經,明不分別不著取分。七佛子已下,得無盡善根有十行經,是菩薩得無盡善根分。八佛子已下,至一切境界悉無所有,有六行經,明菩薩了衆生界無衆生於法無得證分。九佛子已下,至令諸善根悉充足故,有五行經,是菩薩無智入法無法入智分。十佛子已下,至修治諸行,有六行半經,是菩薩成就功德藏堪爲衆生福田分。十一佛子已,下至第五無盡功德藏迴向,有七行經,是菩薩福相處世無倫分。十二從菩薩摩訶薩已下,至十種無盡藏有十五行經,是菩薩得十無盡藏分。十二爾時已下,有一行經,明金剛幢菩薩說頌分。第二隨文釋義者,云何名無盡功德藏迴向?此位明禪與智冥,智與悲會,以無盡虛空爲一道場,以無盡衆生無明行相,而爲佛事身,恒承事無盡諸佛,而遍周法界化無盡衆生,摠成佛身表裏相亡始終情盡,遍知諸法不壞無心名無盡功德藏經云於一毛孔見阿僧祇諸佛出興於世得入法無盡藏者,明心性本無大小繫盡,身爲智影,國土亦然,智淨影明大小相入,如因陁羅網境界喩是也。經云:以佛智力觀一切法悉入一法者,明萬境,雖多皆一心而起,心亡境滅萬境皆虛,如淨水中衆影也。水亡影滅,此約破有成無說。又以境約智生,智虛境幻,多幻相入不離一虛,幻不異虛,虛不異幻,幻虛無二,一異摠虛,此約以智幻虛自在無㝵門說。此皆借法,況說如實所知唯亡?思者智會,其智會者,方可用而眞不惑心境,以大願力隨智幻生等,衆生數身如應攝化故,名無盡功德藏。自餘如文自具,不煩更解,已下有五十行頌。如文自具,但如說修行。第六隨順堅固一切善根迴向者,此明般若波羅蜜爲體,以善財知識名鞞瑟胝羅住善度城,常供養旃檀座佛塔,以爲表法名鞞瑟胝羅。此云包攝,以身含佛剎爲名爾。住善度國者,約化行爲名故,以此住智慧善度衆生故,供養旃檀座佛塔者,明戒定慧解脫法身爲座體,得佛不涅槃際者,明戒定慧體無滅沒也。廣如經說,其座不安形像者,明無相理會是佛義故,見座入法故,城名善度,身與空合,名爲佛國,亦名包攝也。以明無相智慧是佛不滅度法門,以智無生滅故。第一長科經意者,於此一段長科約作六十四段如下,此段迴向長行中,有六十一段經,摠明行施,於段段中,皆有三義。一明行施心成就,二明施已迴向菩提,三明各發十種願皆願自他成佛。已下三段,是摠結所施之功及金剛幢觀衆說頌,一捨身肉手足國城妻子悉捨行。二施食,三施飮,四施味,五施車乘,六施衣,七施華,八施鬘,九施塗香,十施牀座,十一施房舍,十二施燈明,十三施湯藥,十四施器,十五施種種,寶嚴飾車,十六施象寶,十七施師子座,十八施寶等,十九施寶蓋,二十施寶幡,二十一施寶幢,二十二施寶藏,二十三施種種妙莊嚴具,二十四施冠及髻中珠,二十五施財寶妻子救衆生牢獄,二十六捨身代命,二十七施連膚頂髻,二十八施眼,二十九施鼻,三十施耳。三十一施牙齒,三十二施舌,三十三施頭,三十四施手足,三十五施血,三十六施髓肉,三十七施心,三十八施肝肺,三十九施身,四十施支節骨。四十一施皮,四十二施手足指,四十三施連肉爪甲,四十四爲求法故投身火坑,四十五爲求法乃至一字一句,捨其王位國城妻子一切所有,四十六菩薩爲自捨屠殺業,四十七見殘忍損諸人畜慈心救之,所謂去男形也,四十八菩薩見佛出興普告衆生,捨我慢戲論,四十九捨大地,五十捨僮僕,五十一捨身施與一切衆生謙下離慢,五十二施身給侍諸佛,五十三施土地一切諸物及捨世事,五十四捨都城關防輸稅,五十五捨妓女,五十六施所愛妻子,五十七施舍宅,五十八施園林臺榭,五十九施廣大施會,六十施一切資生物,六十一隨諸衆生所須一切阿僧祇物施,已上此一段迴向中,摠有六十一種施,一一施中十種大願,六十一願中有,十種迴向,以表捨一切所著成一切無所著,諸性無作供養諸佛,教化衆生,行無盡行故,從佛子是爲菩薩摩訶薩。第六隨順堅固一切善根迴向已下,至於諸法中而得自在,有六行經,都結已下迴向之功,自爾時金剛幢菩薩已下,有六行經,明金剛幢菩薩觀衆說頌歎法分。今上下長行及八十二行頌,於中文義自具不煩更釋,且略釋迴向名目,云何隨順堅固一切善根迴向?經云:佛子如是迴向時,卽爲隨順佛住,隨順法住,隨順智住,隨順菩提住,㧾明行檀波羅蜜遍周剎海不壞法身智身成就通化長大慈悲等佛所行,故爲名也。又釋以理順行以行順理,以智順悲,以悲順智,以方便願力引生智海,成就悲門均調自在,名爲隨順堅固善根迴向。論主頌曰:法身理智無體性平等淸淨無造作方便以願力莊嚴神通變化行充滿法無自性從緣生緣生不失無作性設興迴向大願雲周遍無邊一切行不離緣體性無生智如影響充法界智體如願如普賢迴向大願皆無實雖復無實不廢緣雖復從緣性無作菩薩所興諸行雲智無來去如影現假使教化諸群生猶如化人度幻衆大約如世造立宮室要以功成,論其現自施功,功體各無自性及至成功事畢。還以無功而益人,設宮室有覆養之功,亦復不云養育,此迴向大願亦復如是。爲理智雖有淨煩惱之功,不興迴向大願,無覆育饒益大慈悲之功,此之迴向從初發心住具足有之,但約昇進勝劣言之,亦約說文廣狹言爾,亦以時不遷論也。摠五位一時說也。古今無前後義也。第七等隨順一切衆生迴向者,以方便波羅蜜爲體主大悲門,前六波羅蜜是修出生死心,此第七已後四波羅蜜是方便,智入生死中教化衆生。是故表法中,善財知識觀世音菩薩,以爲此第七隨順一切衆生大悲迴向中行故。此新經翻爲觀自在菩薩不可依也。舊經名觀世音菩薩者,是爲十方世界共爲一佛國,無別西方別有阿彌陁,是如來權設引有爲小蒙方便,隨心專念攝餘惡心,隨心念處得見化佛,稱自心量,諸德謬解,謂此娑婆世界無觀世音,此改舊經本作觀自在,云觀自在者,但約名彰行中,但彰觀照世間、出世間無相理智自在非明慈悲之行也。觀世音菩薩、文殊、普賢,此三法是古今三世一切佛之共行,十方共同。文殊主法身妙慧之理,普賢明智身知根成萬行之門,觀世音明大慈悲處生死,三人之法成一人之德,號毘盧遮那,一切衆生摠依此三法,號之爲佛少一不成,今此一位依舊不依新翻。又依梵云光世音菩薩,明以教光行光大慈悲之光等衆生而利物,卽一切處文殊,一切處普賢,亦得名一切處光世音。今言觀世音者,取正念心成依心應現而立名也。不可以爲觀自在所表法也。觀自在者,約名表法義中,是表第六般若波羅蜜位也。非是方便波羅蜜入生死同衆生行,以四攝、四無量不斷煩惱之名,此由翻譯者悞也。觀世音住居補怛洛迦,此云小白華樹山,觀世音菩薩居之,爲諸菩薩說慈悲經,此山多有小白華樹,其華甚香。經云:住山西阿者,西爲金,爲白虎,主殺位,明於殺位以主慈悲門正趣,菩薩東來以明智位,至文方釋。經云:佛子云何爲菩薩摩訶薩等隨順一切衆生迴向已下,至說頌,長科爲二十段。一從初佛子已下,至一切世間善根,有十四行經,明菩薩自集已上三十二種無邊善根分。二佛子已下,至修習一切善根,有十四行經,明菩薩如上所修三十二種無限福田善根迴向爲一切衆生功德之藏分。三佛子已下,至永不退轉,有六行經,明菩薩念如上善根不離無作無依菩提心所積集憐愍一切衆生分。四佛子已下,至亦復如是,有十一行半經,明菩薩發願願如上所修無限善根所有果報,盡未來劫所修,如上善根,悉以迴向一切衆生,令十方世界衆寶充滿,惠施無限衆生分。五佛子已下,至常行惠施住一切智智心,有五行經,明菩薩無五種心常行惠施成五種心分,如經自具無虛僞心爲首,已上五段結前三十二種善根竟。六佛子已下,至皆如是施,有十八行半經,明菩薩以如是等阿僧祇象馬王妓女及自身等十種不可數物盡不可數劫而常施分。七佛子已下,至無有一彈指頃生疲倦心,有六行經,明菩薩以如上十種施滿足無限衆生盡無限劫無一念疲勞分。八佛子已下,至入一切智智心,有六行經,明菩薩以如上布施以十種無著解脫心爲施者分。九佛子已下,至得一切智,有八行半經,明菩薩以如上十種無限施起十種無限願願一切衆生得一切智分。十佛子已下,至於諸有中最尊勝故,有一百一十六行半經,明菩薩以如上兩段無限布施業,普爲一切無限種種衆生起一百一十種,廣大無限所爲衆生等所緣事業而行如上等施願迴向故。此已上摠結已前三十二種無限善根,以次象馬等十種施等及大願迴向及爲衆生等境界竟。十一佛子已下,至具足十力調伏衆生,有二十四行經,明菩薩爲慈愍衆生入苦同行以大願接生分。十二佛子已下,至不著無一切法,有三行經,明菩薩雖以施願迴向入苦利益衆生其心有十種不著分。十三佛子已下,至增長成就三世佛種,有三行經,明菩薩以如上一切善根願一切衆生得智種分。云何得入佛智種有四法,一得淸淨心,二智慧明了,三內心寂靜,四外緣不動,如是修治能增長三世諸佛智種故。十四佛子已下,至與諸菩薩等同一見,有十七行半經,明菩薩修行如上迴向之時,神通智力陁羅尼門出過世所稱歎分。十五佛子已下,至神通境界平等淸淨,有八行經,明菩薩如是修行菩薩行時,功德出過思量,何況得成無上菩提?此段明功德作法報生猶尚無限出過思量,何況無作自在菩提之理智?豈可不能成也?言功過也。十六佛子已下,至不違菩薩行,有十五行經,明菩薩見法三世體相平等分。十七佛子已下,至第七等隨順一切衆生迴向,有十行經,明菩薩如是迴向時,得法業剎三世平等,已得承事一切諸佛,入一切淸淨衆會道場分。十八菩薩摩訶薩已下,至等隨順一切衆生如是迴向,有九行經,明摠歎如上迴向施願所得之德業用成就分。十九爾時已下,一行經,明金剛幢菩薩觀衆說頌分。二十其頌摠有四十二行,文義自具,不煩更釋。第二隨文釋義者,何故名爲等隨順一切,衆生迴向爲明第七方便波羅蜜主大悲門,以波羅蜜中所修智慧之力,入於生死海隨一切衆生根品同行利生故故名等隨順,如十住中第七住大悲位休捨優婆夷云我有同行眷屬八萬四千那由他常居此園者是。大意云同一切衆生八萬四千及不可說煩惱悉同行故。是此義也。亦是此位第七迴向與善財所見觀音,是此位也。可知。如此一段迴向摠有二十段經文,餘十九段,文義自具顯現,不煩更釋。如第十六段,得知法業平等三世互不相違,約作略釋。經云:一切佛剎平等淸淨,一切衆生平等淸淨,此約理智說,一切善根平等淸淨,乃至四行經摠明,約理智說,如第十七段中,衆生不違一切剎者,明依報相似,剎從心業起故,衆生心差別,如世界成就品具明,思不違心者,以思從心生,卽思是心,餘心倣此知,業不違報者,報從業生報是業果,餘倣此知。如業不違業道者,明來生受生與現世作業相似,餘倣此,法性不違相,爲無性爲相,無相爲相,無性中實相,卽如來身色及妙境,是衆生不了無性妄計之相,卽天、人、龍、鬼、畜等,是各隨心,自心所生業相稱餘倣此,生不違性,明以生是無生無生爲生故,剎平等不違衆生平等,此約理無淨穢,已下例然。一切衆生安住平等,不違離欲際平等者,明衆生報居之境與解脫涅槃際無二理性同時,無二性故,過去不違未來,摠明三世性故,三世無體,可相違故,餘例知。佛平等不違菩薩平等者,明以佛理智及菩薩體用不離無性,菩薩摩訶薩如是迴向時;得業平等,得報平等如是十平等法明以迴向發願力莊嚴自報得此十平等果故,表法中如善財知識十住第七,以優婆夷休捨表慈悲位,十行第七位,表慈悲以滿足,王自化其身作諸罪逆,自化其身捉來殺罰,以息衆生惡逆。此十迴向第七,卽以觀世音表慈悲位也。夫大教玄悠芳文義廣,法門名句明白宛然,十十之數相從,萬萬千千次第,不可以將小池而添巨海,未足以致其深,炷微燈而益#日光,焉能資其遠照?此經義弘言脩理具詞豐,且略釋其大意,密智幽潛,聊申少趣,不可加餘經之法相滯此妙章。若得意修行者,理由定發,智以理明,悲藉願興,行成願發,理弘智博,願廣悲寬,佛種因此而生,法界以斯緣濟,都結如此餘義後文。第八眞如相迴向者,以願波羅蜜爲體,明此位同第八地智增勝以願引生智業成大悲故,以願防智爲智體淨故利化不弘,表法中如善財童子見東方正趣菩薩是其行也。從空中來至娑婆世界者,明法空智應現普周亦無來去,觀世音指東方正趣及至見時與觀世音同會而見,表以願會悲智令悲智圓滿故。東方表智,西方表悲,日出照明春陽發生,靑龍吉祥表智,日入昏迷秋霜凋零白虎殺害,明以智入悲處苦流濟益衆生故。第八願波羅蜜,明防智體性淨以願會悲成普賢行昇進,隨其行位和會知之。二義如前,第一長科經意者,自初佛子已下,至頌已來長科爲十段。一佛子已下,至普能往詣一切佛土,有三十五行經,明菩薩入此眞如相迴向位中以自所得善根更加迴向發願所緣成位昇進分。二佛子已下,至顯示安隱住處,有十行經明菩薩觀衆生惡道苦如身願速出離分。三佛子已下,至心不動搖無障㝵故,有十行經,明菩薩以如上迴向有十爲令衆生得十種大利分。四佛子已下,至普於世間現成正覺,有四十六行半經,明菩薩見勝妙國土及一切妙境,以無量大願願一切衆生皆盡普得生在其中幷獲衆益分。五佛子已下,至廣大善根,有五行經,明菩薩已上迴向善根自增善根分。六佛子已下至圓滿一切淸淨智慧有一百八十九行半經,明以如上迴向,皆以無性無著眞如爲迴向分。上一百八十九行半經,明約以眞如爲迴向體,以眞如遍世間一切法,迴向還遍世間、出世間一切法,何以然者?爲以迴向爲方便興起無作眞如中大智大悲大陁羅尼門大神通道力令稱眞如無作大自在作用恒寂故。若不如是以大願大悲大智慧無限迴向,但依無作眞如用淨煩惱,卽同二乘樂寂及三乘六通菩薩,但生一方淨國,不入法界之眞門,居門外之權乘,且止草菴之位,當知滿十方之差別種智,皆由大願力,而發生圓法界之行門,藉迴向而興起,故立斯教網,用接有緣明知軌度而踐其蹤,使學者,省功而不錯謬者也。七佛子已下至第八眞如相迴向有十二行半經,明以如上眞如相迴向自獲義利分。八菩薩摩訶薩已下,至善根隨順眞如相迴向,有十三行半經,明如上迴向已得同如來成道分。九爾時已下,一行經,明金剛幢菩薩說頌歎法分。十已下有五十八行頌明以頌重頌前法分第二隨文釋義者,於自餘文義經文自足,如此一段。經云:一身充遍一切世間,得佛無量音聲,於一毛孔中,普能容納一切國土,得佛無量神通,置諸衆生於一毛孔,此約十住初心見道之後入實知見,然爲凡夫有信士,略釋少分,以開心目,非入禪定觀智會融方親見爾。論主頌曰:了知毛孔大小性十方國土無表裏智境含容十方剎剎土體相本皆幻智身體淨相無㝵毛孔微塵亦復然國土因心虛妄生無妄智境恒相納衆生心淨無表裏乃了自身毛亦然心無分別自他情一切塵毛含佛剎是故如來說迴向廣興願行融自他願他得樂與己同心淨佛國恒相入以廣大願興大智同體智悲充法界無功理智起身雲隨類現形聲亦爾能以自他同體智衆生身中現佛國以衆生智轉法輪衆生心迷不知覺以衆生智是佛智佛智本是衆生智迷者佛智作衆生悟者衆生是佛智如是了達體同別堪與衆生作依止約釋第八眞如相迴向竟。第九無著無縛解脫迴向者,以力波羅蜜爲體,以善財所見天神爲所表此位之行也。所居之城名墮羅鉢底,神號大天,城名墮羅鉢底者,此曰有門城,此是此界乾神,以乾爲天門,以後次第見地神。以此二位明和會此十迴向位之智極悲終,天神表法空妙智之極,地神表大慈悲至極,厚載萬物育含生故,像如父母位也。天神無量種衆寶積聚如山,地神放光地震嚴,地爲淨剎,衆多寶藏自然踊現,明天地神隨業養育濟物之德廣大,至文方明,略擧會通表法之意,令後學者易見其意,不迷教行,不迂修行,表法中明智淨稱天之性,卽法財充滿功德寶出現如山。若純淨大悲育載萬物,如地無勞故,地體本唯淨土,此唯智悲之淨極故,卽佛國莊嚴淨也。此明神智應眞德會天地濟育物也。亦是天地之神靈,是菩薩約位所堪治眞俗之行,此位天神表之,明昇進理智幽微像天靈,而不測神功,萬有以不作而爲之,二義如前,第一從佛子至說頌已來,長科爲七段。一佛子云何爲菩薩摩訶薩無著無縛解脫迴向已下,至隨順忍可,有八行經,明因中種善根生十種尊重分。二佛子已下至生無所依智生一切佛法智已上可十五紙經,明修初十種善根,修十種尊重行無著無縛解脫迴向得入普賢微細智境分。三佛子已下,至不分別若法若智,有七行經,明得無別分。四佛子已下,至第九無著無縛解脫迴向,有十五行半經,明修此迴向得三業無著無縛同三世佛迴向自在分。五菩薩摩訶薩已下,至成就菩薩自在神通,有九行經,明此修迴向得善根不壞所生値佛得自在神通分。六爾時金剛幢菩薩已下,一行經,明金剛幢菩薩觀衆說頌分。七已下有一百二行頌,文義自具,兩行一頌,第二隨文釋義者,云何爲無著無縛解脫迴向爲無性?理智無依,卽一切無著一切無縛。是故經云:甚微細智,修菩薩行,住普賢道。若文若義,皆如實智生,如影智生,如夢如幻,如響如化,如空乃至無所依等智生也。經云:菩薩摩訶薩於一切善根心生尊重者,擧十種意,在無盡所謂者,欲論及所陳之法,謂於出生死心生尊重者,三乘中出分段生死,得變易生死,爲有厭生死忻寂靜故,得入變易生死,不同一乘以智生身遍周剎海任根應現非生死性,乃至同於世法非生死性,諸見道者,應如是知。若論自報智合行同方能睹也。如是出生死性生尊重故。經云:於攝取一切善根心生尊重者,卽攝善法戒,於希求一切善根心生尊重者,十信有漏所求,十住已去無漏希求,摠須心生尊重,於悔諸過業心生尊重者,是悔往業也。已下隨文義可知。如是令尊其因故,果便不退,如十層之閣下固而上存,已上一段以尊重因竟。自佛子菩薩摩訶薩於彼善根皆生尊重隨時忍可,至生無所依智生一切法智,有十五紙經,摠明成就三世諸佛果德及普賢果行諸微細法如是微細,法門約立十種微細,略以示之,餘皆倣此。一佛身微細,如佛報身中,於一佛身中及一衆生身中,有不可說不可量佛身,一切佛身一切衆生身,摠爾。二佛智微細,於一智慧中遍虛空界衆生隨樂之法皆差別知。三佛受生微細,盡十方一切佛剎,皆末爲塵,於一一塵中一時受胎,一時初生,一時趣道場,一時轉法輪等,而亦不壞起隨類身對現故。四攝世一切衆生微細,於一切佛剎塵中具普賢行,一一衆生前隨類現形說法教化,各各差別重重無㝵。五國土微細,於一一塵中,皆有無量等虛空廣大國土,一一國土互相參入,重重無㝵如華藏海是。六菩薩衆海微細,於如上佛剎塵中一一佛所,有如虛空量等廣大道場,菩薩衆海皆悉充滿,如是一切剎塵之內,摠皆如是如是道場,如是衆海,皆相參入,重重無㝵,如光如影。七菩薩見佛微細,隨其十住、十行、十迴向、十地皆見如來如對目前,說隨自位法,見隨自位身。八佛音聲微細,如來音聲,不從心出,不從身出,常有音聲,恒遍十方隨聞之者,皆使得聞。九時劫微細,以三世不可說劫一切諸佛不出,一念普在如今,如今現前諸佛還居未來過去,一時三世參入,劫劫重重無㝵。十神通道力微細,以法性遍故智身亦爾。以無依住智對現色身,十方響應而無往來,亦無變化造作之心,以智隨本願法應如是,及一切塵中境界亦復如是。重重無盡,如是已上安立十種法門,釋此位中迴向之法,大況如是?明此無著無縛迴向位中菩薩堪如是入故,餘文可知。大意以無作法身無住智以十迴向大願,調和令得成就大慈悲利衆生之行海,令使一切思分別便爲智用,令使一切知見摠爲禪門本來不動,令使理性本寂定門起差別智身慧身變易,令使一毛孔中安立一切佛剎衆生剎悉皆無㝵令使有爲無爲爲一法界自在故,如是迴向。第十等法界無量迴向者,以智波羅蜜爲體,表法以善財童子所見安住地神,是女神,如此坤神分位在西南方。又處中宮而治四季,明處智行悲圓滿故,其地神住摩竭國者,是如來成道之國,明此位昇進至中道同如來智悲圓滿位故,摩竭國是此閻浮之中心,是中宮位,若隨當方有帝王所居處,卽是#若隨位昇進,修行中智悲圓滿行是。若望迴向,表位會融中,前天神表智,此地神表悲,二位會融,以成一位,養含生之道#成德化之門,如百萬地神放大光明遍三千大千世界者,以智行悲,百萬行門慈光照燭遍也。大地震吼者,悲心感應也。種種寶物處處莊嚴者,明大悲行,滿現業果報,擧本位因果報得所嚴也。廣釋至位方明。又表智悲成滿可以設教利生,須當其智如神其心如地載育萬物不以爲勞,如地能生能養能載終始不移焉。二義如前,第一長科當位者,從初佛子已下,至三十三卷中說頌已來,長科爲二十六段。一佛子已下,至令其善根增長成就有十一行經,明此位菩薩智悲圓滿堪爲法師施法利生分。二佛子已下,至無恚梵行有二十一行經,明菩薩以法利生自餘修梵行分。三佛子已下,至亦令衆生安住正法,有二十五行經,明菩薩自在梵行分。四佛子已下,至悉得成就一切智故,有二十二行經,明如上法施所生善根迴向願得爲一切衆生演說三世佛法入無㝵辯及音聲無㝵分。五佛子已下,至得如我無異有十一行經,明菩薩令諸淸淨以如上法施及迴向發願善根,又迴向願見等法界如來出興於世調伏等世界無盡衆生分。六佛子已下,至不失壞諸淸淨行,有十五行經,明菩薩迴向善根如法界無量分。七佛子已下,至於一切法永不忘失,有十六行經,明以法界等無量善根迴向願令一切衆生得見佛心淸淨分。八佛子已下,至無差別性迴向,有六行經明如法界性無起無遷迴向分。九佛子已下,至成就菩薩說法願力,有二十七行經,明菩薩願如上法施迴向善根,又願一切衆生得入佛法師位分。十佛子已下,至不以取著利益衆生故迴向,有六行經,明以無取著以爲迴向分。十一佛子已下,至無㝵光明恒,不斷故迴向,有二十二行經,明不爲世法不爲二乘法但令一切衆生入佛智故迴向分十二佛子已下,至入佛廣大門故迴向,有三十行經,明一切善根,但令一切衆生離苦得樂成大菩提分。十三佛子已下,至自在神通無有休息有二十三行經,明以如上等善根迴向爲一切衆生住大悲大喜大捨及永離二種著成滿佛智慧分,二著者,著有,著無,是非自他彼此內外能所都爲二。十四佛子已下,至應以修習善根迴向,有六行經,明菩薩如是迴向時於三有五欲境界不應貪著以無貪瞋癡善根故修習善根分。十五佛子已下,至設大施會,有四行經,明菩薩捨惡成善離衆魔業設法施會分。十六佛子已下,至覺悟一切衆生長夜睡眠音,有二十五行經,明菩薩自得無㝵音聲普遍願令一切衆生音聲圓滿分。十七佛子已下,至正念智慧辯才,有十行半經,明願一切衆生得離過惡得淸淨分。十八佛子已下至一切智身有十四行半經明菩薩以如上善根迴向願得淨智身分。十九佛子已下,至安住修菩薩行,有十四行經,明菩薩法施善根如是迴向願隨住一切剎無有休息見者獲益分。已上十九段明法施迴向善根饒益自他行門分。已下三十三卷中,明莊嚴佛剎迴向分,此等法界無量迴向中,通有此三十二三十三兩卷經。二十佛子已下。至廣大智寶究竟圓滿,有三紙半經,明以如上法施功德寶迴向莊嚴無量佛剎皆令淸淨分。二十一佛子已下,至如是廣說,有十一行經,明菩薩願以菩薩身遍諸佛剎及寶莊嚴位過前百千倍分。二十二佛子已下,至佛子菩薩摩訶薩以諸善根普爲一切衆生如是迴向,有二十八行經,明菩薩摠爲衆生如是迴向分。二十三復以此善根已下,至咸令歡喜故迴向,有十九行經,明菩薩以如上迴向但欲令說法及行安樂一切衆生令圓滿如法界分。二十四佛子已下,至如來衆會道場平等迴向,有二十二行經,明菩薩以如上法施及大願莊嚴廣願化衆生摠令住法界平等故迴向分。二十五佛子已下,至第十等法界無量迴向,有十一行半經,明以如上迴向一切善根時得如是身口心業及十種安住法界淸淨分。二十六菩薩摩訶薩已下,至到於彼岸有二十四行經,明菩薩以如上法施等善根迴向皆願一切衆生得見佛入佛知見同佛所得分。新華嚴經論卷第二十一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3)“바로 지혜로 선의 체(體)를 삼아서” 이하 여기까지는 고려대장경 판본에는 없는 것이다. 문맥의 뜻으로 볼 때 누락된 것으로 생각되어 탄허(呑虛)스님의 현토본(懸吐本)의 내용을 첨가한다.
4)고려대장경본에 의하면 “휴식이 있게〔有〕하기 때문에…”라고 되어 있으나 문맥상 탄허스님 현토본의 내용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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