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스님과 효봉스님, 성철스님과 경봉스님과 구산스님, 전강스님, 춘성스님, 당대
내노라하는 기라성 같은 선지식들은 모두 당신들만의 독특한 가풍이 있었다.
그런 회상에서 쉬지 않고 정진했다.
“1967년 해인사에서 성철스님을 방장스님으로 모시고 해인총림을 설립했을 때,
그해 겨울 한철을 용맹정진했습니다. 통도사 극락암 경봉스님 아래서는 매일 108 참회와
밤 12시가 넘어서도 정진 하는 수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라도 곡성 동리산자락의 한적한 암자에서 범룡스님을 모시고 둘이서 몇 날 며칠 국수만 삶아 먹으며 지낸 적도 있어요.”
배울 점들이 많은 분들이었다.
하지만 이상으로 꿈꾸던 선지식과 간극도 느껴지는 분들이었다.
[서장]이니 [선요]니 [임제록]같은 선어록 지침서가 늘 그 간극을 메워 주었다.
“내가 깨달았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음미하고 음미하며 글로 쓰고
또 써보세요.”
법문 중에 무비스님은 늘 그렇게 권유한다. 스스로가 젊은 시절부터 그런 방식으로 공부를 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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