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역경원장은 운허스님, 역경장은 탄허스님, 편찬부장은 법정스님이었고, 이기영 박사, 김달진 시인등 당대 쟁쟁한 강백들이 강사진을 이뤘다.
“운허스님이 최고의 강사진을 투입하셨고, 역경실습과 논문 쓰기를 시키셨어요. 우리가
한문 실력이 모자라는 것을 보시고는 몇 개월간 강의를 전부 폐지하고 저마다 한문책을
정해 독송하도록 하셨어요. 나는 [맹자]를 정해서 일부분을 이천 번 읽었습니다.
용맹정진이 따로 없었죠. 같은 방을 쓰던 동기생과 닷새간 말 한마디도 안 할 정도로
공부에만 매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역경원에서의 성과가 컸다.
특히 역경장이시면서 강의도 해주시던 탄허스님과의 만남이 그러했다.
“그때 탄허스님이 [화엄경]을 한창 막바지로 번역하고 계셨나봐요. 나중에 탈고를 하고
교정을 하는데 나를 찾았어요. 부산 삼덕사라는 절에서 통광스님, 각성스님,
비구니 성일스님, 민족사 윤창화거사, 교림출판사 우담거사 이렇게들 모였어요.”
하루에 열네 시간씩 다 같이 번역과 원문을 돌려 가며 읽었다. 그러면서도 일하는 대중의 요청으로 탄허스님께서 하루에 한 시간은 [화엄경]을 강의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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