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법사와 강사로서 절정을 이루다
1977년도에 [범망경]을 번역한 것을 필두로
1993년 [예불문과 반야심경][금강경 오가해]
1994년 [금강경 강의][한글 화엄경](완역 12권)
1996년 [무비스님과 함께 하는 불교공부][천수경][보현행원품 강의][나옹선사 어록]
등이 쏟아져 나왔다.
무비스님은 수많은 법회의 법사로 나섰고, 라디오에서 법문을 했다.
그중에 한글로 80화엄경을 완역한 [한글 화엄경]을 1994년도에 출간한 것은 그간 공부의
결정체와 같았다. 원문 영인본 두 권과 함께 열두 권으로 풀어낸 [한글 화엄경]은
탄허, 지관, 운허스님의 해석을 하나로 녹이면서도 ’빨랫줄 같은‘ 줄글의 방대함과
일대일 번역의 어색함을 개선했다. 누구라도 쉽게 친근한 한글로 [화엄경]을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여기에 힘입어서 1997년 1월, 강원의 교재용으로 한문에 일일이 과목을 붙인 한문
[화엄경] 2차본을 민족사에서 네 권으로 펴냈다.
한 품에 하나밖에 없던 제목을 매 품마다 십여 개 이상 소제목으로 뽑아서 달았다.
그렇게 과목을 쳤다는 것이 획기적이었다. 소제목을 뽑아내려면 철저한 내용 분석을 해야
했다. 창작에 가까운 어려운 일이었다.
덕분에 소제목만으로도 내용 파악이 잘 되었다.
경전의 어디를 펼쳐 들어도 연결이 안되어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무비스님이 처음에는 [화엄경] 원고를 손으로 썼는데 얼마 못 가 손목에 병이 났다. 당시
새로 나온 워드프로세서를 구입했다가, 곧이어 컴퓨터가 나와서 학원에 다니며 컴퓨터를
공부해서 사용법을 익혔다. [화엄경]의 한자들을 일일이 컴퓨터에 입력을 했다. 원고지
1만 6천장, 26개의 디스켓에 [화엄경]을 담았다.
1996년 7월 조계종 종립 대학원으로 은해사에 승가대학원이 개원되었다. 무비스님이
초대 승가 대학원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