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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에서 육조

서산과 사명

작성자빛속으로|작성시간08.06.20|조회수46 목록 댓글 2

 

  

 

 

   서산과 사명

 

 

(1) 서산대사

 

 

  서산대사의 호는 청허(淸虛) 별호는 백화도인 또는 서산이며 법명은 휴정이다. 1520년 3월 26일 평안도 안주에서 출생했으며 아버지의 이름은 최세창(崔世昌) 어머니는 김씨로 노파가 아들을 잉태했다는 꿈을 꾸고 낳아 여신이라 했는데 3세 되는 해 아버지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운학으로 부르라 했다.

  운학이 아홉 살 되는 해에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자 의지할 곳이 없는 고아가 되었는데 총명하고 글재주가 뛰어나므로 추천되어 성균관에 기거하며 공부하게 되었다.

  학문과 무예를 닦으며 공부하던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으로 놀러갔다가 영관대사의 법문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불법(佛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화엄경, 능엄경, 유마경, 반야경, 법화경을 읽던 중 학문을 배우고 무예를 익히는 것보다 진리를 깨닫는 것이 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의 깊은 인연 때문이었는지 그가 가야할 길임을 느끼고 21세에 출가했는데 어려서 양친을 잃은 지라 삶과 죽음의 문제는 출가하게 된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태어난 모든 것은 죽으니 생물인건 동물이건 남자건 여자건 지위가 높건 낮건 천하의 왕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권력도 재물도 명예도 중요하겠지만 진실로 생사를 초월하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출가하여 열심히 정진하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꼬끼요!' 하는 한낮에 닭울음소리를 들었는데 그 순간 대오했다. 농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한낮의 닭울음소리지만 시절 인연이 익었음에 불멸하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몸뚱이는 무상하여 머리카락은 희고 이가 빠지며 지팡이에 의지해 걷다가 병이 깊어지면 누워 앓다가 죽는다. 죽으면 몸은 아무 의식이 없고 불에 태워져 한 줌의 재로 뿌려지거나 땅속에 묻힌다. 그러나 마음은 늙음과 죽음이 없다. 머리카락은 희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했던 오묘한 뜻을 닭울음소리에 활짝 깨달아 생사가 없는 세계에 찰나지간에 이르렀으니 할 일을 끝낸 대장부다.

  서산은 30세에 나라에서 시행하는 승과에 급제하고 대선을 거쳐 선교 양종의 판사가 되었는데 얼마 후 사임하고 금강산과 묘향산에 기거하며 후학을 가르치고 있던 무렵이었다.

  사명은 서산을 만나기 위해 금강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구경하며 계곡을 오르고 있었는데 서산은 시자를 불러 말했다.

  "너는 지금 산을 내려가 보아라. 내려가다 보면 한 사람을 만날 것인데 매우 귀한 손님이니 정중히 모셔오도록 해라."

  "예, 알았습니다. 그런데 금강산에 구경오는 사람이 한 둘도 아닌데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분을 어찌 알 수 있습니까요?"

  "그런 염려는 말아라. 길을 내려가다 보면 계곡물을 거꾸로 돌리면서 올라오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그분이니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시자는 스승의 엄중한 명을 받고 산을 내려갔다. 그러나 사람이 물을 어떻게 거꾸로 흐르게 할 수 있는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산새들이 고운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수려한 계곡의 오솔길을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한 사람이 지팡이를 휘휘 돌리면서 올라오고 있었는데 혹시나 하여 유의하여 보니 그가 돌리는 지팡이를 따라 놀랍게도 계곡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도인의 손님인 줄 알고 공손히 합장하여 인사를 올리고 말했다.

  "큰스님의 명을 받고 마중을 나왔습니다."

  사명은 시자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오는 줄 어떻게 알았는지 내심 놀라면서도 태연하게 안내를 따라 서산을 만났다. 사명이 인사를 올리자 백화도인은 반갑게 맞으며 방으로 안내했다. 사명은 방안으로 들어가다 한쪽 발은 문지방 안에 넣고 한쪽 발을 밖에 놓은 채 문득 멈추어 서서 말했다.

  "스님, 제가 방안으로 들어가겠습니까, 아니면 돌아서 가겠습니까?"

  만약 방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면 돌아서 갈 것이고 돌아서 갈 것이라고 하면 방안으로 들어갈 것이 뻔했다. 명성이 천하를 울리는 대도인의 목에 날카로운 비수를 겨누고 대담하게 항복을 요구했다.

  그러나 교묘한 계략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도인은 빙그레 웃음을 띠우고 창공을 날아가는 새를 손으로 붙잡아 움켜쥐고 물었다.

  "내가 이 새를 죽이겠느냐, 아니면 날려 보내주겠느냐?"

  "제가 먼저 물었으니 스님께선 저의 물음에 먼저 대답해주십시오. 그런 후에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그대는 나를 찾아 왔는데 어찌 그냥 돌아가겠는가."

  "성스런 대사께서 어찌 살생을 하시겠습니까."

  장군 멍군을 부른 두 도인은 빙그레 웃으며 서로의 비수를 품속에 다시 잘 갈무리하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사명이 자리를 잡고 앉자 서산은 마침 점심때가 되었으니 요기를 하자고 했다. 점심을 먹자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시장기를 느끼던 사명은 어떤 공양으로 대접받을지 궁금해 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근사한 진수성찬을 기대하는데 도인은 어항 속에서 한가롭게 유영하는 붕어를 한 마리 붙잡아서 건네주며 먹으라고 했다. 살아있는 날 생선을 주며 먹으라고 하니 살생을 금하는 승려로서 차마 먹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서산은 어항 속에서 다시 붕어 한 마리를 붙잡아서 태연하게 입안에 넣고 꿀꺽 삼켰다.

  황당하지만 주인이 먼저 먹고 아주 맛이 좋다고 거듭 먹기를 권하니 할 수 없이 벌래를 씹는 듯 찡그리며 먹었다.

  백화도인은 어항 속의 붕어를 몇 마리 더 꺼내어 잡아먹고는 배가 부르다고 '꺼억' '꺼억' 트림까지 했다. 배가 부르다고 불룩한 배를 쓱쓱 문지른 후에 요기를 다 끝냈다고 하더니 먹었던 붕어를 토해내어 어항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붕어는 잠시 움직이지 않더니 입을 뻐끔뻐끔 하면서 살아나 헤엄치며 유유히 돌아다녔다.

  이에 질세라 사명도 먹었던 붕어를 토해서 어항 안에 넣었는데 붕어는 모두 죽어서 한참을 기다려도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자 마침내 백기를 펄럭이며 대도인께 제자의 예로써 큰 절을 올렸다.

  1592년 서산대사의 나이 73세 되는 해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국토가 유린되고 백성이 도탄에 빠짐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전국에 격문을 돌려 승려들이 구국에 앞장서도록 독려했다. 스스로 노구의 몸을 이끌고 승병을 지휘하였는데 백성들과 합심하여 왜군을 물리치니 선조로부터 <국일도 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 大禪師 禪敎都摠攝 扶宗樹敎 普濟登階尊者)>라는 신하 중에서 최고의 존칭을 하사받았다.

  살생을 금하는 것은 불가의 첫째 계율이지만 자신의 안위만을 돌보지 않고 외적의 침입에 분연히 일어나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위기의 나라와 백성을 구하였다.

   

 

 

(2) 사명대사

 

 

  이름은 임웅규, 법명은 유정, 호는 사명으로 1544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체격이 우람하고 당당했으며 총명하였는데 일곱 살에 할아버지께 병법인 사략(史略)을 배웠다.

  15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자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김천에 있는 직지사(直指寺)로 출가했다. 1561년(18세) 나라에서 시행하는 승과에 급제하였으며 1575년 주지직을 임명받았으나 사양하고 서산대사를 찾아가 공부했다.

  금강산과 태백산 등 전국의 유명한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서산의 휘하로 들어가 활약했는데 어려서 할아버지께 배운바 있는 병법에 능통하여 왜군과 싸워서 백전백승했다. 명군과 합세하여 빼앗긴 평양성을 되찾았으며 권율과 의령에서 왜군을 크게 물리치기도 했으니 왜군은 사명대사의 깃발을 보기만 해도 두려워하였다.

  그는 평화회담을 핑계로 직접 적진에 세 번이나 들어가 동정을 살폈는데 그때 적장 가토오는 수염을 길게 길러서 삼국지의 관우운장과 같은 위풍당당한 풍모의 대사에게 물었다.

  "조선의 보배는 무엇이오?"

  "우리나라의 보배는 바로 당신의 목이라오."

  "무엇이라고! 왜 내 목이 조선의 보배요?"

  "이 땅을 짓밟고 있는 당신의 목에는 엄청난 상금이 걸려 있소. 그러므로 당신의 목은 보배며 더구나 당신의 목을 베면 이 전쟁도 끝날 테니 그 아니 보배겠소. 허, 허, 허,,,"

  적진에 혈혈단신으로 들어가 적장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히 말하니 장부다운 기개에 왜장 가토오는 간담이 서늘하였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히데요시가 죽자 지긋지긋하던 7년 전쟁이 비로소 끝나게 되었는데 전쟁이 끝나자 노예로 잡혀간 우리나라 백성과 약탈한 문화재를 반환 받기 위해 1604년 선조의 특별한 부촉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국에서 특사로 온 승병대장이었던 그가 얼마나 도가 높은지 히데요시의 뒤를 이은 일본왕 이에야스는 대사를 시험해 보기로 작정했다.

  사명당이 일본에 당도하자 특별하게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무쇠로 만든 견고한 방에 숙소를 마련하여 주었다. 그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대사에게 원한을 품고 살해하려는 세력이 있다며 안전을 구실로 방문을 걸어 잠그었다. 대사가 나올 수 없게 밖에서 문을 꼭 걸어 잠그고는 은밀히 명령을 받은 일본 관리는 방에 불을 넣기 시작했다.

  무쇠 방에다 장작불을 때니 방은 금방 벌겋게 달아올랐다. 장작을 아궁이에 쉴 사이 없이 집어넣으면서 이제 조선에서 온 중이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며 애걸복걸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방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밤새도록 불을 지피던 관리는 먼동이 트고 날이 환하게 밝자 이제 조선에서 온 중인지 특사인지는 벌써 불에 노릇하게 구워져 죽어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방문을 열어 보았는데 예상과 달리 대사는 가부좌를 하고 오뚝하게 앉아 있는데 수염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이었다.

  관리는 매우 놀라서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는데 대사는 덜덜 떨면서 말했다.

  "너희 나라 왜국은 더운 나라라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추운 거냐? 엉, 불을 좀 더 때거라."

  보고를 받은 일본왕도 크게 놀라며 대신들과 머리를 맞대고 어찌하면 조선에서 온 특사를 골탕 먹일지 논의했다.

  며칠 간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리며 음모를 꾸몄으니 웅덩이를 깊이 파서 독사들을 가득 집어넣고 그 위에 투명한 유리를 깔아 감쪽같이 위장한 다음 대사에게 공손히 말했다.

  "도인은 미물들이 함부로 해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사온데 대사께서는 매우 도력이 높으시니 독사들일지라도 감히 물지 못할 것입니다. 저희들이 보는 앞에서 독사들 사이를 걸어가시어 증명하여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그들의 청에 사명은 잠시 침묵하더니 목에 차고 있던 염주를 벗어서 뱀들이 우글거리는 소굴로 던졌다. 대사가 던진 염주는 뱀이 있는 곳에 곧장 떨어지지 않고 그 위에 걸터 있으므로 유리를 깔아서 위장한 것임을 간파하고 터벅터벅 걸어 지나갔다.

  조선에서 온 중이 새파랗게 질려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걸할 것을 기대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일본 대신들은 그의 지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을 연이어 완패 당하자 일본 정부는 여러 날을 고심하면서 대사가 꼼짝 못할 결정적인 행사를 준비했다. 무쇠로 만든 말을 불에 빨갛게 달구어 놓고 타라고 했다. 그 쇠말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만든 것으로 기계장치를 하여 사람이 조정하면 마치 살아있는 말처럼 걸어 다녔다.

  불에 빨갛게 달구어 놓은 쇠말을 준비해 놓고 타기를 권하며 만약 탈 수 있다면 특수하게 제작한 말에 대사를 모시고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명승지와 보물들을 두루 안내하여 구경시켜 줄 것이며 또한 노예로 붙잡아온 조선의 백성과 약탈한 귀중한 보물들을 모두 돌려주겠노라 선언했다.

  명분은 그럴 싸 하지만 불에 달구어진 쇠말에 올라탄다면 바로 통닭구이가 되는 것이고 비굴하게 쥐구멍을 찾으면 특사로서의 임무는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교활하게도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대사의 무릎을 꿇릴 더없는 묘책이라 생각하며 과연 어떻게 처신하는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보았다.

  그때 대사는 품속에서 주문이 적힌 종이를 꺼내어 우렁찬 음성으로 읽기 시작했다. 대사가 주문을 읽어 내려가자 갑자기 검은 먹구름이 사방에서 몰려와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주문이 적힌 종이를 태우자 우르릉 쾅쾅! 뇌성벽력이 치면서 비가 쫙쫙 퍼붓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명당이 일본으로 건너오기 전 스승인 서산을 뵙고 인사를 올렸는데 일본에 가면 틀림없이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라면서 주문을 써주며 품속에 잘 간직하고 있다가 위급한 순간에 꺼내어 읽고 불에 태우라고 미리 당부하였던 예언의 일이었다.

  스승의 예언에 따라 품속에 잘 간직하고 있던 주문이 적힌 종이를 꺼내어 읽고 태우자 번갯불이 번쩍거리고 천둥과 벼락이 치면서 비가 퍼붓기 시작했는데 폭우는 발갛게 달구어진 쇠말의 주위에만 쏟아졌다. 쇠말은 곧 식었으며 폭우가 그치고 하늘이 청명하게 개자 말 위에 점잖게 올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본 대신들은 사명당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 숙여 사죄하면서 다시는 그와 같은 무례를 범하지 않겠노라 맹세했다. 일본정부는 완전히 승복하여 그들의 보물과 명승지를 관람시켜주는 등 머무는 동안 극진하게 모셨으니 대사는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노예로 잡혀갔던 백성들과 귀중한 국보급 문화재를 모두 돌려받고 금의환향했다.

  이와 같이 적국에 가서 그 나라 왕과 대신들의 존경과 예우를 받으며 매우 어려운 임무를 당당하고 완벽하게 처리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 후로 일본에서 조선을 침범하거나 약탈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이러한 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영조는 그의 고향인 경남 밀양시 무안면에 표충비를 세웠는데 표충비는 나라에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고 한다. 비석에서 땀이 흘러도 업적을 기린 글자는 적시지 않고 글자가 없는 사이를 타고 흐른다고 하니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이교도들은 비석이 물기를 머금었다가 자연적으로 흘러내리는 것이라고 폄하하지만 표충비에서 조금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똑같은 조건의 다른 비석에서는 전혀 그런 현상이 없고 물기가 많은 장마철에는 오히려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며 특히 비석에서 흐르는 물이 마치 사람의 땀처럼 사면에서 퐁퐁 솟으며 짠맛이 느껴진다고 한다.

 

        글 / 윤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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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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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비상 | 작성시간 08.09.27 대단한 도력이시군요! 애국하신 도승의 이야기를 읽으니 백회로 기운이 내려옵니다!
  • 작성자빛속으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9.27 예, 대단한 분이시지요,,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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