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효와 의상
1, 원효의 깨달음
원효의 성은 설씨다.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100년쯤 뒤인 신라 중기로 서기 617년 신라 진평왕 39년에 경북 경산시 자인면 불지촌에서 태어났다.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그를 잉태하였으며 오색 구름이 자욱히 깔리는 불지촌의 밤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는데 그런데 원효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은 지 며칠 후에 돌아가셨다.
원효는 총명하고 기상이 활달하여 일찍이 화랑으로 선발되어 학문과 무예를 익혔는데 전쟁에 나가서 친구가 싸움터에서 죽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깊은 슬픔과 무상을 느껴 15세에 흥륜사로 출가하였다.
그는 당시 명망이 높은 낭지스님께 법화경을 배웠으며 그 후 의상과 함께 고구려에서 백제로 망명한 보덕스님에게 불법을 배우러 찾아갔다. 그런데 보덕스님을 찾아가다가 백제군에게 붙잡혀서 첩자로 의심받기도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첩자가 아닌 스님으로 인정되어 보덕스님에게 열반경과 유마경을 배우게 되었다.
불법에는 아군과 적군의 대립이 없다. 모든 생명을 귀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므로 살생을 금하며 원한을 맺지 않고 자비와 평화를 가르친다. 그러므로 세계적 권위의 평화상이 있다면 불법을 여법하게 실천하며 수행하는 분들은 모두 훌륭한 수상 대상자일 것이다.
첫 새벽이라는 뜻인 원효는 경, 율, 논 삼장에 능통하여 나라 안에서 그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나이 34세 때 여덟 살 아래의 의상과 함께 불교가 활짝 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당나라로 가다가 고구려의 국경 지대인 요동에서 고구려 군에게 붙잡혀 첩자로 오인되어 평양으로 압송되던 중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하여 무사히 신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나라로 가다가 실패한 11년 후인 45세 되는 해에 신라가 국경을 넓혀서 당나라로 가는 뱃길이 새롭게 열렸다. 그 뱃길을 이용하여 의상과 함께 이루지 못한 유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당나라로 가던 중이었다.
그들이 충청도 바닷가 어느 지방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피해서 산중의 묘지 옆에 있는 빈 움막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원효는 자다가 한밤중에 목이 심히 말랐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해골바가지에 고인 빗물을 찾아서 벌컥벌컥 아주 맛있게 마셨다. 갈증에 먹는 물맛은 꿀맛이었다.
물을 맛있게 마시고 다시 곤히 잠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지난밤에 먹었던 꿀맛 같던 물이 생각나서 다시 먹으려고 찾아보니 그것은 해골바가지에 담긴 빗물이었다. 썩은 해골에 담긴 더러운 빗물을 먹은 줄 뒤늦게 알고는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는 왝!왝! 거리며 토했다.
한참을 토하다가 생각하기를 똑같은 물인데 지난 밤 해골에 담긴 물인 줄 모르고 먹을 때는 꿀맛이더니 해골에 담긴 물인 줄 알고 나서 더럽다는 생각에 먹은 물까지 토하는 자신을 보면서 모든 것이 마음을 따라서 변하는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임을 깨달았다.
"하,하,하,하,,,,, "
원효는 천지가 무너질 듯 요란하게 웃었다.
의상은 원효가 해골에 담긴 물을 먹고 '억''억' 거리며 토하는 광경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토하다가 갑자기 웃어대니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 사형 무슨 일인데 그렇게 웃습니까?"
실성한 듯이 웃어대는 사형에게 의아해서 물으니 그러자 원효는 웃음을 멈추고서 사제인 의상에게,
"한 마음이 생기니 만 법이 일어나고 한 마음이 사라지니 만 법은 절로 사라지는 것으로 모든 것이 다 마음의 장난이라네."
라고 말하고는 다시 호탕하게 껄껄껄 웃었다.
자기 마음을 보면 곧 부처다.
일체가 마음의 작용임을 깨달아서 이미 진리를 깨달았으므로 더 이상 구할 법이 없어진 원효는 당나라로 가려던 유학의 계획을 취소하고 신라로 돌아왔다.
2, 무애가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진리를 깨달은 원효는 신라로 돌아와서,
"하늘을 바칠만한 기둥을 만들 자루 없는 도끼를 달라,"
라고 노래를 부르며 저자거리를 술에 취하여 흥얼거리며 돌아다녔다.
아이들은 원효가 부르는 이상한 노랫가락을 따라서 부르며 돌아다니므로 이러한 원효의 행태가 태종무열왕에게 보고되었다.
무열왕은 '하늘을 바칠 만한 기둥을 만들려고 하니 자루 없는 도끼를 달라'고 하는 노래 구절을 듣고는 생각하기를 그가 결혼하여 장차 나라에 큰 인물이 될 아이를 낳을 것을 예언하는 것임을 알았다.
무열왕은 원효의 뜻을 알고 원효를 극진히 사모하여 가끔 법문을 청하여 듣곤 하던 그의 딸 요석공주와 합방시키기로 작정했다.
요석공주는 신혼 초에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여 일찍이 과부가 되어서 혼자 살고 있었다. 외롭게 사는 공주를 볼 때마다 아버지로써 무열왕은 늘 걱정이었는데 딸이 덕망이 높은 원효와 결혼하면 딸의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라에 훌륭한 인재를 얻는 것이므로 일거양득이라 원효대사를 요석공주와 합방시킬 묘안을 강구했다.
하루는 원효가 술을 많이 먹고 취하여 휘청거리며 궁궐 앞의 개울 다리를 건너다가 잘못하여 다리에서 떨어져 물에 빠졌다. 개울에 빠져서 온 몸이 물에 흠벅 젖었는데 그 때 마침 그를 미행하던 왕명을 받은 궁인이 물에 빠진 원효를 궁궐로 데려와서 요석공주의 침실에 데려다 주고 그곳에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원효가 밖으로 나올 수 없게 군사들이 요석공주가 거처하는 궁의 문을 굳게 지키고 있으니 자의반 타의반 공주와 합방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들 설총을 낳았으니 설총은 이두라는 문자를 만들어 백성들이 글을 쉽게 읽고 쓸 수 있게 하였다. 아버지 원효와 함께 설총은 신라 천년의 역사에서 공적과 업적이 가장 지대한 열 분에 선정된 신라 십 현 중 한 분이다,
유교 문중에서도 그를 성현으로 받들어 모시는 학문과 인품과 덕이 높은 훌륭한 분이다.
무열왕은 원효가 부마가 되어서 나라에 중책을 맡아 줄 것을 바랐으나 거절하고 승복을 벗어 던지고 평복차림에 스스로 소성거사라 칭하며 호롱박을 허리에 차고 벙거지를 머리에 쓰고 저자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중생구제의 노래를 불렀다.
한 생이 나타남은, 나무아미타불.
한 점 구름이 나타남이요, 나무아미타불,
한 생이 끝남은, 나무아미타불,
한 점 구름이 사라짐이라, 나무아미타불,
세상의 부귀영화 풀잎에 이슬이요, 나무아미타불,
물 위의 거품이라네, 나무아미타불,
콩 심으면 콩이 나고, 나무아미타불,
팥 심으면 팥이 나며, 나무아미타불,
복을 지어 복을 받고, 나무아미타불,
죄를 지어 벌을 받네. 나무아미타불,
짓세 짓세 복을 짓세, 나무아미타불,
하세 하세 착한 일을 하세, 나무아미타불,
장단을 맞춰서 노래 부르며 거리를 돌아다니니 거지들이 그를 같은 부류인가 하고 생각하며 그의 뒤를 졸졸 따르면서 합창을 했다.
나무아미타불을 흥겹게 부르며 거지 떼가 거리를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다니니 아이들까지 그 행렬에 끼어 노래를 부르고 어른들도 뒤를 따르며 나무아미타불을 합창하니 가히 장관이었다.
하루는 대나무를 잘라서 끝을 뽀족하게 깎은 다음 거지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대나무를 하나씩 나누어주는 원효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아니 이 대나무는 무엇에 쓰려고 나누어주시는 겁니까?"
"너희들은 내생에 태어나면 부잣집에서 살고 싶으냐 아니면 지금처럼 거지로 집집마다 구걸하면서 살기를 바라느냐?"
"당연히 내생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살고 싶습니다요,,,."
거지들의 우렁찬 합창에 대사께서 말했다.
"너희들이 지금 빌어먹고 사는 것은 전생에 복을 짖지 않은 때문이다. 지금처럼 빈둥거리며 놀면 내생에도 거지의 신세를 면할 수는 없다.
너희들이 내생에 부자로 살고 싶다면 낮에 할 일없이 빈둥거리며 잠을 자거나 놀지만 말고 남의 밭에 김이라도 메주면서 복을 쌓아야 한다. 지금 복을 쌓아야만 내생은 빌어먹지 않고 부유하게 살 수가 있는 것이니 이제 너희들에게 나누어 준 대나무 꼬챙이를 들고 다들 나를 따라서 복을 지으러 가자!"
라고 말하니 거지들은 내생에 부잣집에서 태어나게 복을 쌓으러 가자고 하니 기뻐하며 우르르 따라 나섰다.
복을 지어 복을 받고 나무아미타불,
죄를 지어 벌을 받네 나무아미타불,
복을 짓세 복을 짓세 나무아미타불,
하세 하세 착한 일 하세 나무아미타불,,,
거지 떼가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대나무를 들고 시주 받은 집의 밭으로 가서 잡풀을 뽑고 김을 매주었다. 그러니 일손이 부족하던 농부들은 매우 좋아했다. 뙤약볕 아래 자신의 논밭에서 거지들이 김을 매주므로 기뻐하며 거지들이 구걸을 나오면 듬북 듬북 밥을 퍼 주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거지는 부자로 인도하고 부자는 천상으로 인도하는 원효는 당시에 귀족들만의 점유물이었던 불교를 민초들에게까지 널리 전파한 해동의 성자로 승과 속에 걸림 없는 무애가를 불렀다.
3, 금강삼매경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은 파계자라며 대부분 승려들은 원효를 무시하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비난에 개의치 않았다.
그 무렵 왕비가 병이 들어 위독하여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의원을 찾았으나 도무지 고칠 수 없고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다.
그때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부처님 말씀이 적힌 종이 30장을 주며 이 경을 해설하여 들으면 왕비의 병이 낫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경은 처음 보는 것으로 난해하여 여러 스님들을 찾아가서 보여주며 해설해 주기를 사정하고 부탁했으나 어려워서 도무지 모르겠다고 다들 사양하여 아무도 강설할 사람이 없었다.
주정뱅이처럼 언제나 '대안(大安)!' '대안(大安)!'을 외치며 머리를 기르고 누더기 옷을 입고 저자거리를 돌아다니던 대안(大安)대사에게 궁인이 그 경을 보여주며 해설하여 주기를 부탁하니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머리를 내 젖던 뒤죽박죽으로 엉클어진 금강삼매경의 순서를 차곡차곡 정리해주면서,
"이 경을 강설할 사람은 신라 땅에 오직 원효뿐이니 그를 찾아가서 부탁하시게."
라고 말했다.
궁인은 왕비의 병이 위중해 목숨이 경각이라 대안대사의 말을 따라 급히 원효를 찾아가서 경을 보여주며 서둘러 설법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낮선 경을 강설하려면 며칠 간의 시일이 필요한데 급하게 해설해 달라고 애원하므로 황소의 두 뿔에 강설할 글을 쓸 수 있도록 지필묵을 준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원효는 궁인이 준비한 커다란 황소를 타고 궁궐로 오면서 황소의 양쪽 뿔 위에서 심오한 글을 읽고 해설하면서 5권의 해설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를 시기하는 무리(승려)가 밤중에 원효가 쓴 책을 모두 훔쳐갔다. 자기들이 할 수 없는 금강삼매경을 원효가 강설하지 못하도록 5권의 책을 몰래 훔쳐간 것 이였다. 그러자 그는 금강삼매경을 3권으로 요약해서 궁중에서 왕과 대신과 많은 스님들이 보는 앞에서 물이 흐르듯 유창하게 해설하니 왕비의 병은 씻은 듯 나았다.
그러니 원효를 파계했다고 비웃던 스님들은 모두 꼬리를 내리고 머리를 숙여야 했다.
원효와 함께 오어사의 유래가 있는 혜공도인은 작은 암자에 기거했는데 그는 늘 삼태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술에 취한 듯이 거리를 흥얼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는 한여름 무더위 때에는 우물 속으로 들어가 한 여름을 지내다가 더위가 물러가면 그 때에야 우물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더욱 기이한 것은 우물에서 나올 때는 청의 동자가 먼저 나오고 그가 나오는데 옷에는 물이 조금도 젖지 않았다고 했다.
명랑스님이 금강산에 절을 짓고 낙성식을 하는 날이었는데 초청한 사람들은 모두가 참석을 했으나 혜공대사가 보이지 않으므로 명량스님이 부처님 전에 향을 정성스럽게 피우고 혜공이 참석해 줄 것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혜공이 빙그레 웃으면서 나타나 걸어와서는,
"내가 참석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니 마땅히 참석해야겠지."
라고 말하므로 주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루는 어느 사람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는데 그가 죽어서 몸이 썩는 것을 보고는 급히 산에서 내려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해공이 죽었다고 알렸다. 그런데 그가 시내를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해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는 임종 때 공중에 둥둥 떠서 죽는 신비한 열반상을 보여 주었다.
사람들이 혜공에게 승찬대사가 쓴 신심명을 보여주자 전생에 자신이 썼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3조 승찬대사가 열반에 든 후 이백 년이 지나서 신라에 환생한 분인지 모르겠다. 원효는 혜공과 내왕하면서 경의 난해한 부분은 상의하며 책을 저술했는데 수행의 깊은 안목과 수려한 필체로 해설한 책이 백여 권이 넘었다, 그런데 현재는 중국과 일본에 전해져 칭송 받는 금강삼매경론과 대승기신론소 등 일부만 전해오고 있다.
원효가 쓴 발심수행장은 13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구도자의 필독서로써 내용을 요약하면,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룬 몸이란 100년을 지나기 어려운데 하루하루 오욕락을 탐하며 살다보면 금방 늙어서 저승길이다. 그런데 천상으로 가라고 권해도 천상으로 가는 사람은 매우 적고, 지옥은 가지 말라고 막아도 가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낡은 수레가 움직일 수 없듯이 늙은 몸으로 수행하기 어려우니 내일 내일하면서 수행을 미루지 말고 깊은 산 속 동굴로 집을 삼아서 춥거나 배가 고파도 꾹 참으며 오욕락을 잠시 끊고 목석처럼 공부하여 생사를 초월하여 안락한 열반의 땅에서 영원히 즐겁게 살라.}
라고 권장하는 지극하고 간절한 대사의 뜻이 담긴 글이다.
어느 날 원효대사는 판자를 급히 구해서 해동사문 원효라 써서 공중으로 던졌다. 그런데 그 판자는 멀리 중국 땅으로 날아가서 어느 절의 마당에 둥실 떠 있었다. 그 절의 누군가 공중에 둥둥 떠있는 판자를 보고 괴이 여겨서 법당의 대중들에게 전했는데 대중은 신기한 현상을 구경하러 모두 밖으로 나왔다.
그 때 법당이 와르르 무너졌다.
대중의 목숨을 구한 판자에 해동사문 원효라 써 있는지라 그를 흠모하여 사람들이 줄을 이어 신라로 찾아와서 천성산에서 수행하여 천명의 성인이 탄생하였다고 하여 그래서 천성산이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4, 의상대사와 선묘낭자
법을 구하기 위하여 당나라로 가던 중에 원효는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진리를 깨닫고 신라로 돌아가고 의상은 혼자 뱃길로 당나라로 건너갔다.
낮선 당나라 땅에 도착하니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마침 불심이 깊은 장자를 만나서 그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 집에는 선묘라는 아가씨가 있었다. 그 아가씨는 신라에서 당나라로 노비로 잡혀온 처녀였다. 선묘는 당나라 상인에게 붙잡혀서 평생 노비로 살 바에는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겠다며 치마를 뒤집어쓰고 바다에 빠졌다. 바다에 뛰어 들었으나 죽지 않고 파도에 밀려서 해변가로 밀려나왔다.
해변에 밀려나온 소녀를 불심이 깊은 이 집 주인이 지나가다가 발견하여 처녀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공부를 가르치며 함께 지냈는데 아이가 총명하고 품행이 단정하며 효행이 지극하므로 마침 그들 슬하에는 자식이 없는 지라 선묘를 수양딸로 삼아서 애지중지 귀여워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선묘낭자는 신라에서 왔다는 의상스님이 자신의 집에 머물자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다.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면서 의상을 찾아가서 고향의 소식을 물었다. 스님에게 고국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불법에 대하여 여쭈었는데 의상스님은 자상하게 고향소식과 불법에 대하여 가르쳐주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문이 매우 뛰어나고 더욱이나 잘 생긴 그에게 선묘낭자는 흠뻑 빠져들어 사모하게 되었다.
예쁘고 총명하고 거부인 집안의 딸인 선묘에게 여러 명문의 집안으로부터 혼처가 들어왔으나 다 마다하고 물리쳤다.
그녀의 부모는 선묘가 의상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을 알고 하루는 의상을 불러서 고관이나 거부가 입을 수 있는 고급 비단옷을 선물로 주면서 딸아이가 의상스님을 마음에 두고 다른 혼처는 다 거절하니 선묘와 결혼하여 살아줄 것을 간곡히 청했다. 선묘와 결혼하면 공부할 수 있는 훌륭한 절도 지어주고 또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뒷바라지를 다 하겠노라고 언약했다.
그러나 의상은 세상의 부귀영화란 뜬구름 같은 것이라며 거절했다.
정중하고 간곡히 부탁했으나 의상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선묘낭자는 늦은 저녁에 의상을 직접 찾아가서 결혼해 줄 것을 청했다. 만약 거절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했다.
난감한 상황에 놓인 의상은 선묘낭자에게 말했다.
"결혼을 하여 산다는 것은 근심과 걱정과 고통의 생을 받는 윤회의 길이오, 더욱이 나는 이미 출가한 몸으로 만약 낭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계를 지키겠다고 한 부처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오. 만약 부처님과의 약조를 어기고 불사음계를 범하게 된다면 차라리 내가 먼저 목숨을 끊을 것이오."
불사음 계를 범하면 의상이 먼저 목숨을 끊을 것이라며 단호하니 선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눈앞에서 죽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그녀의 뜻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루한 장마철이 끝나자 의상은 당초 계획한 대로 종남산 지상사에 계시는 지엄대사를 찾아갈 차비를 했다. 준비를 모두 마치고 그동안 잘 보살펴준 선묘낭자 방으로 찾아가서 말했다.
"종남산에 계시는 지엄스님을 찾아뵙고 화엄경 공부를 하려고 이제 떠나려 합니다. 선묘낭자, 그 동안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시구려."
종남산으로 떠나는 의상을 선묘는 더 붙잡을 수가 없음을 알고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정녕 떠나신다니 더 말릴 수도 없군요. 공부 열심히 하시여 뜻하신 바를 부디 성취하시기 바라옵니다. 그리고 소녀의 마지막 소원이오니 신라로 돌아가실 때에는 꼭 저에게 들렸다 가주시기 바랍니다."
"알았소, 만약 신라로 돌라갈 때에는 틀림없이 낭자에게 인사하고 가리다."
라고 의상은 쾌히 언약을 하고 지엄대사를 찾아 지장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5, 화엄법계 일승도
당시 우리나라는 불교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경전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다. 법화경, 열반경 유마경 등 일부만 있었으며 화엄경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
의상은 당대 화엄경의 최고봉인 지엄대사를 찾아가서 그분의 문하에서 화엄경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엄대사의 문하에는 많은 분들이 화엄경을 배우고 있었는데 의상은 많은 제자들 중에서 곧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되었다.
화엄종의 법맥을 이어받은 지엄대사는 여러 번의 문답과 시험을 통하여 의상스님이 화엄경의 정수를 완전히 터득하였음을 알고 그에게 법을 인가하여 주었다.
지엄대사는 의상에게 법을 인가하고 나서 그에게 말했다.
"화엄경은 너무 길어서 대중이 읽기가 매우 어려운 점이 많네. 그러니 자네가 읽기 쉽고 또 이해하기 쉽도록 짧게 요약해서 가져와 보게."
라고 의상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의상은 스승의 명 받아서 밤을 세워가며 화엄경을 요약하여 몇 권의 책을 만들어서 바쳤다.
지엄대사는 의상이 쓴 글을 다 읽고 나서 말했다
"자네가 쓴 책을 다 읽어보았네. 내용이 매우 훌륭하고 문장이 수려하더군, 그런데 아직 글이 너무 장황하고 길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지은 책을 불에 태우게, 불에 태워서 타지 않는 글자가 있을 것이니 그 글자들로 다시 요약하여 가져오게나."
의상은 스승이 책을 불에 태워서 타지 않는 글자로 요약하여 다시 가지고 오라고 명하니 글자가 불에 타지 않을 것인지 반신반의하며 스승의 명에 따라서 자신이 쓴 책을 불에 태웠다.
불에 책을 태우고 탄 재 속을 뒤적거리니 신기하게도 210 자는 불에 타지를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의상은 불에 타지 않는 210자를 정성스럽게 모아서 어떻게 글자를 배열하며 문장을 만들 것인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심했다.
그러던 중에 꿈속에 신인이 나타나서 그에게 총명하게 되는 약을 주고 가르침을 주므로 이윽고 화엄일승법계도를 만드니 유명한 의상대사의 법성게다. 지엄대사는 의상의 글을 보고 매우 흡족해 하며 자신도 할 수 없고 오직 의상만이 지을 수 있는 뛰어난 글이라며 극찬을 하니 화엄경의 정수다.
법성원융무이상 (법의 성품 원만하여 둘이 아니고)
제법부동본래적 (모든 법이 부동하여 본래 고요하니)
무명무상절일체 (이름도 형상도 없는 일체가 끊어진 자리)
증지소지비여경 (지혜로 증명할 뿐 지식으론 알 수 없고)
진성심심극미묘 (진실한 성품은 깊고 깊어 미묘한데)
불수자성수연성 (자성을 지키지 않으면 인연을 따라서 이루네)
일중일체다중일 (하나 중에 일체가 있고 일체가 하나이니)
일즉일체다즉일 (하나가 즉 일체고 일체가 즉 하나며)
일미진중함시방 (한 티끌 속에 시방 세계를 머금으니)
일체진중역여시 (일체 티끌마다 세계를 머금었네)
무량원겁즉일념 (무량한 세월이 한 생각이고)
일념즉시무량겁 (한 생각이 무량한 세월이며)
구세십세호상즉 (끝없이 넓은 세계가 엉킨듯 하나 인즉)
잉불잡란격별성 (엉켜서 혼란한듯 하지만 각각 분명하네)
초발심시변정각 (처음 일으킨 마음이 부처를 이룬 때로)
생사열반상공화 (생사와 열반이 서로 한 바탕이니)
이사명연무분별 (이치와 일상이 있는 듯 분별이 없는 곳)
십불보현대인경 (모든 부처님과 성인의 경계일세)
능인해인삼매중 (해인 삼매 속에 능히 모든 것 갖추고)
번출여의부사의 (부사의한 무진법문 여의하게 펼치니)
우보익생만허공 (유익한 보배 비가 허공에 가득하여)
중생수기득이익 (중생의 그릇따라 이익을 얻어서)
시고행자환본제 (수행자가 진리의 고향에 돌아가면)
파식망상필부득 (망상을 안 쉴려고 해도 안 쉴 수 없네)
무연선교착여의 (무연의 방편으로 여의주를 잡으니)
귀가수분득자량 (집안에는 재물이 가득하여)
이다라니무진보 (다라니의 무진 보배를 써서)
장엄법계실보전 (법계를 장엄하니 보배 궁전이라)
궁좌실제중도상 (중도의 해탈좌에 그윽히 앉으니)
구래부동명위불 (예부터 변함없는 그 이름 부처라네)
화엄종의 법맥을 이은 지엄대사가 열반에 들자 의상은 그곳에서 스승의 뒤를 이어 대중에게 화엄경을 가르쳤다.
그런데 어느 날 당나라로 은밀히 파견된 신라의 정보원으로부터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한다는 첩보를 받고는 당나라에 머물 수가 없어서 스님은 서둘러 귀국을 하게 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탐욕과 분노는 끊이지 않아서 전쟁의 끝이 없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전쟁이 없는 평화와 안락을 만날 것인가, 오직 해탈의 세계뿐이다.
선묘낭자는 의상스님에게 신라로 돌아갈 때에는 자신에게 꼭 들려주기를 부탁했는데 스님은 선묘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귀국 선에 올랐다.
선묘는 의상스님이 무엇을 하는지 심부름꾼으로부터 스님의 정황을 알고 있었는데 스님이 신라로 가는 배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포구로 달려와 보니 이미 배는 닻을 올리고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녀는 의상이 공부하는 십여 년 동안 혼자서 관세음보살께 의상의 안녕을 기원 하면서 그에게 줄 옷을 손수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었다. 스님이 귀국할 때에 전해 주려고 달려왔는데 이미 배가 떠나 옷을 전할 수 없자 안타까워하며 옷을 싼 함을 바다에 던지면서 부디 옷이 의상스님의 배에 닿기를 기원했다.
그러자 옷은 물살을 가르며 의상이 탄 배까지 손살같이 달려갔다. 의상이 옷을 받아들자 갑자기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풍랑이 매우 거칠어지면서 배가 기웃거리며 뒤집혀질 지경이었다.
선묘는 그 광경을 보자 자신의 한 몸을 바다에 던져서 용이 되어 의상스님을 보호할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내생에는 부디 의상과 부부의 연을 맺기를 기원하고 또 세세생생 그를 따르며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할 것을 다짐하고는 치마를 얼굴에 가리고 거친 바다에 몸을 던졌다.
참으로 지극한 선묘의 사랑이다. 바다에 뛰어들자 그녀는 곧 파도에 휩쓸려 죽고 말았는데 그녀는 죽은 후 용으로 변했다. 커다란 용이 되어서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니 바다는 다시 잔잔해지므로 의상은 무사히 신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신라에 돌아온 의상은 무열왕을 만나서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할 첩보가 있으니 나라의 방비를 튼튼히 하라며 방책을 일러주었다.
왕은 의상에게 국사가 되어 왕궁에 머물러주길 청했으나 사양을 하고 화엄경을 펼칠 장소를 물색했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량을 찾던 중 훌륭한 장소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곳은 이교도가 이미 점령한 곳이라 난감했다.
그런 차에 용이 된 선묘가 의상의 꿈에 나타나서 계책을 일러주었다. 다음날 의상은 선묘가 일러준 계책대로 이교도들을 불러모아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커다란 바위를 공중으로 번쩍 들어올리니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모두 도망을 가고 말았다.
그들이 줄행랑을 치자 그것에 절을 지으니 돌이 뜬 절이라는 뜻의 부석사다.
의상은 그곳에서 말년까지 머물며 화엄경을 펼쳤는데 초라한 듯 자그마한 선묘낭자의 사당이 부석사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데 선묘낭자의 이야기는 중국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에까지 전해져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6,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다
어느 날 의상대사의 꿈에 선묘가 나타나서 말했다.
동해안 오봉산 바닷가 기슭의 바위굴에는 관세음보살님이 살고 있는데 지극하게 기도를 하면 관세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그곳으로 가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해보라고 권했다.
선묘의 말을 듣고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의상은 양양 오봉산 동해안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 절벽 위에서 깨끗이 목욕하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저 의상은 세세생생 관세음보살님을 모시면서 불법을 배울 것이며, 뭇 중생들을 고난에서 건질 것을 맹세하옵니다. 부디 관세음보살님께서는 모습을 나타내시어 저의 뜻을 증명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발원하며 관세음보살을 뵙기를 지극 정성으로 소원했다.
지금은 관광지라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를 소원하던 그때는 절도 없고 민가도 없는 한적하고 산림이 무성한 외딴 바닷가 절벽 위였을 것이다.
그는 의상대가 있는 곳에서 밤낮으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를 기원했다. 그렇게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침식마저 잊고 기도하던 7일 째 되는 날이었다.
둥근 보름달이 뜬 잔잔한 동해 바다 위에 붉은 연꽃을 타고 관세음보살이 환하게 나타났다. 의상은 아름답고 거룩하고 성스러운 관세음보살이 붉은 연꽃 위에 나타나자 환희로움으로 지극하게 예배를 올렸다.
밝은 빛으로 눈부신 관세음보살께서 의상에게 그윽한 음성으로 말씀했다.
"푸른 대나무와 검은 대나무가 자라는 곳에 절을 짓고 열심히 수행할 것이며 널리 중생들을 고난에서 구제하여라."
의상은 관세음보살의 현신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면서 거듭 예배를 올렸다.
관세음보살이 사라진 후 관세음보살이 예언한 푸른 대나무와 검은 대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마침 푸른 대나무와 검은 대나무 두 그루가 자라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절을 지으니 지금의 낙산사다. 낙산사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으로 세계적인 관음 기도도량이다.
또 관세음보살이 붉은 연꽃을 타고 나타난 바닷가 바위굴에 암자를 세우니 바로 홍련암인 것이다.
홍련암의 마루에는 사각으로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 구멍을 통하여 아래를 내려보면 깊은 절벽아래에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파도가 바위굴에 부딪쳐서 울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오늘날도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고 하는 바위굴 위에 지은 홍련암에서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밝히며 기도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의상대사는 관세음보살이 예언한 곳에 낙산사를 짓고 법당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원효대사도 설악산의 금강굴과 계조암에서 지내다가 영혈사에도 머물며 탁발을 하면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원효는 가끔씩 의상이 수행하고 있는 낙산사를 찾아와 들려보곤 하였는데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의상은 탁발을 다니지 않았다. 사형벌이 되는 원효가 그 까닭이 궁금하여 하루는 어떻게 공양을 하는지 의상에게 물어보았다.
"의상 여보게, 내가 보기에 자네는 탁발을 다니지 않는데 공양은 어떻게 하는가?"
"원효 사형, 저에게는 천신이 때에 맞춰서 공양을 가져온답니다. 그래서 탁발을 다닐 필요가 없지요."
"아, 그래서 탁발을 다니지 않았구먼,,"
"아마 조금 있으면 천신이 공양을 가지고 나타날 것입니다. 이왕 오셨으니 오늘은 저와 함께 천신의 공양을 받아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오늘은 자네와 함께 천신의 공양을 받아보세나."
의상은 천신의 공양을 은근히 자랑하며 함께 공양하기를 청했다. 원효는 의상의 제안에 쾌히 승낙하고 천신의 공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때가 지나도 웬일인지 천신이 나타나지 않았다.
공양시간이 지나고 한참을 더 기다려도 천신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원효는 그만 돌아갔다. 원효가 돌아가고 조금 지나자 그제야 천신이 공양을 가지고 나타났다.
사형에게 큰소리 땅땅 쳤는데 망신을 당한 다음에야 나타난 천신에게,
"아니, 오늘은 왜 이리 공양이 늦었소?"
하고 천신에게 공양이 늦은 이유를 추궁했다.
그러자 천신이 대답하기를,
"원효스님의 주위에 화엄성중들이 지키고 있어서 방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원효스님이 방을 나가자 원효스님을 옹호하는 성중들이 함께 따라서 가므로 이제야 공양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매우 송구해하였다.
원효와 의상의 일화에서와 같이 누구나 바른 법에 의지하여 열심히 공부하면 의상대사처럼 천신의 공양을 받기도 하고 또 원효대사처럼 거룩한 선신(善神)들이 항상 옹호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