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진즉불
다섯 번째 분진즉불이라, 진리를 증명한다 했는데 여기서도 차근차근 올라갑니다. 보살십지로 말하자면 보살 초지에서 이지, 삼,사, 오, 육, 칠, 팔, 구, 십지+까지 성인지가 올라갑니다. 같은 성인도 그 습관성을 온전히 녹인 분인가? 좀 많이 녹인 분인가? 그 습관성을 녹인 정도에 따라서 일지. 이지 ....., 그와 같이 구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십지에서 온전히 녹여서 그때는 그야말로 참 불지로 구경각을 우리가 성취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도달하는 것이 물론 어렵겠지요. 어려우나 본래가 부처이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벌써 이 자리가 갖춰 있습니다. 갖춰져 있다고 분명히 믿고서 염불도 하고 화두도 하고 그래야 공부가 빠른 것입니다.
나는 아직 멀었다. 이렇게 공부해서는 자기암시가 되지 못하고 그러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공부가 더딘 것입니다. 따라서 '본래 내가 부처다!' 하는 그 생각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렇게 도인들이 위차를 말씀해 놓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런 자리를 우리가 빨리 알아 가지고서 이자리가 바로 자기 본래면목이니까 이 자리에다 마음을 두고서 공부를 하라는 그런 의미가 다 포함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도 스스로 자기 비하라든가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거지가 된다 하더라도, 아파서 금방 죽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역시 본래가 부처이기 때문에 성불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신을 속인 죄로 코카사스 큰 바위 위에 꽁꽁 묶이게 됐는데 사나운 독수리들이 날아와서 프로메테우스의 눈과 간장을 쪼아 먹는단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런 사람도 구제를 받습니다. 몸뚱이 이것은 허깨비인 것입니다. 어느 순간도 우리가 진정으로 부처님을 믿고 영생불멸하는 생명 자체를 믿는다고 생각할 때는 구제를 받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돈오돈수頓悟頓修만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와 같이 보살 초지에서 이지나 삼지나 사지.... 이렇게 올라가는 것을 부정합니다. 돈오라는 것은 성불만이 돈오인 것이지, 이런 것은 아직 견성도 못된다. 이렇게 그분들이 말씀합니다만 사실은 부처님 경전을 뚜렷이 보고 조사 「어록」을 착실하게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이것은 다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성인도 똑같은 정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인도 근본번뇌는 다 없애 버려서 성인이 되겠지만 습관성은 미쳐 못 여의어 있단 말입니다.
가사 사과의 예를 들어본다고 할 때 사과가 비배 관리를 잘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지만 아직 갓 맺은 선 사과는 먹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시일이 지나서 익어야 비로소 사과 구실을 한단말입니다. 그와 똑같이 우리 근본번뇌를 떼어버리고서 성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습관성이 남아 있습니다. 금생의 습관성은 빨리 끊어 버릴 수 있다 하더라도 과거 전생의 습관성, 우리 인간은 어떤 누구나 과거 전생에 지옥으로 아귀로 또는 축생으로 다 거쳐 왔단 말입니다. 하기 때문에 과거 무수생 동안에 지어 내려온 버릇이 우리 마음 잠재의식 속에 꽉 차 있습니다. 즉 과거로부터 묻어 나온 그런 번뇌는 우리가 쉽게 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여불성을 증명했다 하더라도 상당히 오랫동안 두고두고 이른바 보임수행이라, 여기서 비로소 보임 수행이란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보임수행은 견성견도 한 뒤에 차근차근 이지로 삼지로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육조단경맨 마지막 부품에 가서 '그대들이 만약 부처의의 일체종지라, 부처의 그런 조금도 흠없는 지혜를 알려고 생각할 때는 마땅히 일상상매와 일행삼매를 닦을 지니라.' 이런 말씀이 있단 말입니다. 육조단경 그러면 참선법으로 해서는 보배 같은 경아닙니까. 그리고 같은 경에서도 「부품은 결론적인 것입니다.
「돈황본」에는 없고, 덕이본이나 다른 본에서는 다 있습니다만 「부품」에 가서 어떤 말씀이 있는가 하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육조 스님께서 우리 중생한테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만약 부처의 무량지혜를 얻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닦을 지니라' 일상삼매 무엇인고 하면은 한 일[-]자, 서로 상(相]자, 천지 우주가는 오직 다 부처뿐이라는 그러한 의미가 일상삼매 입니다. 천지 우주가 다른 것이 없이 우리 중생은 그렇게 안 보이지요. 그러나 성자가 본다고 생각할때에는 조금도 구분 없이 우주를 하나의 도리로 봅니다. 우주를 하나의 도리로 보는 이것이 일상삼매입니다.
우리가 본래는 그와 같이 부처이기 때문에 다 갖추고 있는 것인데, 금생에도 우리가 잘못 배우고, 잘못 생각하고, 잘못 듣고, 잘못 버릇 붙이고, 이것 때문에 그렇게 안 보인단 말입니다. 또는 과거 전생의 나쁜 버릇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전생의 업장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극락세계에 벌써 다 가 버렸겠지요. 업장이 가벼우면 천상에도 가 버리고, 사람 정도 밖에 업장이 안 되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났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 차원에서 업장을 녹여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 죄를 없애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본래가 하나이기 때문에 '천지 우주는 오직 다 하나의 부처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것이 일상삼매입니다.
그러면 일행삼매 무엇인가? 우리가 '모두가 오직 하나의 부처뿐는 이다' 이렇게 일상삼매를 한다 하더라도 금방금방 또 우리 마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다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저것 생각하고 순식간에 생각이 다른 데로 달아나고 만단 말입니다. 이런데서 불교 말로 '우리 범부는 모도범부터럭 모[毛]자, 길 도[道]자, 마치 터럭이 바람이 없어 라'도 항시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단 말입니다. 그와 똑같이 우리 중생 마음은 항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그 소중한 법문 '모두가 다 오직 부처님뿐이다' 이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 생각이 지속이 잘 안 됩니다. 지속이 안 되면 우리버릇은 녹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염주를 헤아리고, 철야정진도 하고, 정근도 하고, 참선도 하고, 그러는 것은 다 지속을 시키기 위해서 그런단말입니다. 백일 동안 기도하는 것도 모두가 다 지속을 시키기 위해서 합니다. 우리 참선하는 스님네가 앉아서 90일 동안 결제하는 것도 모두가 다 바른 생각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 우주가 오직부처 뿐이다 이 생각을 빈틈없이 지속시키는 것이 일행삼매 입니다. 한일[-]자, 행할 행[行]자, 일행삼매란 말입니다.
부처님 법문을 통틀어서 대의가 무엇인가? 그렇게 말하면 일상삼매와 일행삼매입니다. 이것이 생소하므로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기가 곤란스럽겠지요. 다시 바꿔서 말씀드리면 '모든 것이 오직 하나의 생명이다' '오직 하나의 부처뿐이다' 이것이 일상삼매입니다. '천지 우주는 부처아님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상삼매인 것이고, 그리고 그런 생각을 지속을 시킨단 말입니다. 염주를 헤아리고 그런 것도 모두가 부처라는 생각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냥 덮어 놓고 이름만 부르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 부처님은 무엇인가? 부처님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바로 우주에 충만해 있는 생명의 광명입니다. 생명의 빛입니다. 내 몸에도 충만해 있고, 이 공간 속 어디에도 충만해 있습니다. 다만 우리 중생은 어리석어서 그 빛이 안 보인단 말입니다. 공부가 되면 된 만치 우리는 그 빛과 가까워집니다. 그러다가 우리 업장이 녹아지면, 우리 마음이 정화가 되면 정말로 그 빛이 정작으로 보인단 말입니다.
원아임욕명종시 진제일체제장애 면견피불아미타 즉득왕생안락찰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극락도사 아미타여래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