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7일, 앵두와 보리수는 엄마 기억을 부른다.

작성자az시나브로명숙|작성시간26.06.07|조회수0 목록 댓글 0

예쁜 고향집에서 주변을 휘 둘러보면서 내 기억은 엄마에 관한 추억을 소환한다. 정답고, 오래된 따스한 기억, 우리 엄마 위계님 씨의 모든 동선을 따라 두뇌 회로는 느리게 움직인다.

연 이틀 매실 따느라 정말 힘들었다. 수확의 기쁨은 분명 있으나 체력이 감당하지 못하는 혹사와 노동에 심신이 지쳐 밥맛이 떨어졌다.

엄마 계실 땐 수발하느라 잠시도 쉬지 못했는데 엄마께서 안 계신 현재도 시골가면 할 일이 많아 휴식은 꿈도 꾸지 않게 되었다.

깔끔한 큰언니는 오빠가 이틀전에 빤 이불을 기어코 다시 빨았다. 볕이 좋아서 빨래는 그만큼 빨리 말랐으나 바로 걷지 않고 햇볕에 더 뒀다.

고향집의 소소한 일상이 주는 의미와 위로가 삶을 지탱하는 활력소이다.

엄마는 그 작은 몸으로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셨을까?. 문득 엄마의 일상 속 삶 자체가 내가 좋아하는 박경리 선생님과 조정래 선생님을 비롯한 쟁쟁한 문학 거장의 작품 못지 않은 감동과 재미, 깊은 울림을 지닌 서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굳이 시를 쓰지 않는 건, 엄마의 일상어와 생활어 자체가 시어였고, 빼어난 숨결을 지닌 작품이었기에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엄마 혼자 영정 사진을 찍으셨는지 아무도 이 사진의 유무를 인지하지 못했다. 한 달여 전에 오빠가 사진을 발견했고, 난 엄마의 표정이 슬퍼 보여 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뒤뜰 비파 화단을 잠시 응시했다.

재간둥이 케리가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

익은 매실이 예쁘다.

우리 엄마처럼 앙증맞고 예쁜 앵두도 엄마가 안 계시니 맛을 모르겠다. 

보석처럼 영롱한 앵두의 자태에 심취했다. 투명한 앙증맞음과 귀여움이 치명적이다.

앵두를 따 오물거렸다. 보리수는 흉작인데 앵두는 촘촘하게 익었다.

이 앵두도 엄마와 함께  먹었을 때가 가장 맛이 좋았고, 마음도 말랑거렸다.

정호 아내가 보낸 파자마로 좋아하는 꽃무늬다. 피멍든 내 왼쪽 엄지 발가락은 매실 따기 때문이 아니라 선거 유세가 남긴 흔적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