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글: 내 만족을 넘어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절대적인 가치를 선포한 사도 바울은, 14장에 이르러 그 사랑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하는지 은사(하나님이 주신 영적 선물)의 사용법을 통해 설명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신비로운 '방언'을 말하는 것을 대단한 영적 우월함의 척도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절)
여기서 말하는 예언은 미래의 일을 맞추는 점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깨달아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는 말(3절), 즉 '알아들을 수 있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1. 나만의 은혜에서 '너'를 위한 사랑으로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에 개인의 영적 유익(덕)을 세우는 데 좋습니다.
그러나 통역이 없다면 다른 이들은 그 뜻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를 피리나 거문고, 그리고 나팔에 비유합니다.
악기가 제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 분별 있는 음을 내지 않거나, 전쟁터의 나팔이 희미한 소리를 내면 아무도 전투를 준비할 수 없듯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그저 '허공에 대고 하는 말'(9절)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 나의 영적 만족, 나의 옳음과 기쁨에만 도취되어 정작 내 곁에 있는 형제자매의 영적 상태에는 무관심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나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 (12절)입니다.
2. 뜻이 통하는 사랑의 언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거룩하고 옳은 말이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쏟아낸다면 그것은 도리어 관계를 가로막는 '외국어'(11절)가 되어버립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당신의 은사와 언어는 형제를 세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 자신만을 만족시키고 있습니까?"
나의 기쁨이 공동체의 기쁨이 되고, 나의 성장이 이웃을 위로하는 힘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랑의 법을 성취하게 됩니다.
기도문
사랑과 질서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변함없이 신실하신 말씀으로 저의 삶을 깨워주시고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들을 내가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시간과 물질, 재능과 영적인 은사들이 혹시나 나 자신을 증명하고, 내 영적 만족을 채우는 데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는지 회개합니다.
주님, 저에게 더 큰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옵소서.
나 혼자만의 은혜에 갇혀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는 눈을 열어주시고, 내 곁에 있는 지체들의 아픔과 필요를 보게 하여 주옵소서.
내 입술의 모든 말이 허공을 치는 소리가 되지 않게 하시고, 낙심한 자를 위로하고, 넘어지려는 자를 붙들어주며,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알아듣기 쉬운 사랑의 언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분명한 소리를 내는 나팔처럼, 저의 삶이 복음의 분명한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만족보다 이웃의 유익을 먼저 구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오늘도 내가 속한 가정과 교회, 일터에서 사랑을 추구하며 덕을 세우는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모든 선한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