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폴 세잔느
절친한 친구였던 작가 에밀 졸라와 함께
그는 정치적으로 활발히 활동했으며,
자신을 혁명론자로 선언했다.
이러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세잔은 파리 미술계의 최상류층에 들어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파리 살롱전에서 그의 작품들이 거절당했을 때,
세잔은 다시 한 번 우울증에 빠졌지만
이번에는 견뎌냈다.
살롱전에서 작품을 거절당한 미술가들을 위한 대안으로, 1863년에 '낙선전'이 열렸다.
세잔은 이 전시회에서 다른 '불합격자들인
에두아르 마네, 카미유 피사로, 앙리 팡탱 라투르 등과 함께 작품을 전시했다.
20년 후인 1882년에, 그의 작품은
처음으로 살롱전에 통과되었다.
어둡고 우울한 색조로 그려진 세잔의 초기 작품들은 다소 밀실 공포증적인 느낌을 주며
침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1870년대 들어서면서 그의 양식은 변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세잔은 마리 오르탕스 피케와 사랑에 빠졌으며,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제하게 되었다.
특히 피사로에게서 인상주의 기법 및 이론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함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세잔은 자신을 진정한 인상주의 화가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1874년에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가졌다. 그는 자신의 미술이 더 '단단하고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원했다. 오랫동안 플랑드르 미술에 감명을 받았던 세잔은 플랑드르의 대가들이 사용한 것과 유사한 색조로 정물화를 그렸다. 세잔의 정물화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사과와오렌지>(1895~1900경)이다.
이 그림은 무미건조한 주제를 위대한 미술로 끌어올렸다.
1886년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세잔은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 시기에 그의 작품은 중요 미술 수집가들에 의해 선호되었으나,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세잔은 자신이 실패했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세잔은 그림을 그릴 때, 장면에 감정이 이입되는 화가였기에, 그의 삶에 일어나는 변화들과 함께 그의 미술 양식도 서서히 변해갔다.
1860년대 후반에 그는 대체로 서투르고
어쩌면 화난 것처럼, 캔버스에 물감을 겹겹이 덧칠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양식은 1866년에 그의 아버지를 그린
초상화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하지만 그는 곧 <자드부팡의 길>(1871경)과 같은 감각적인 그림들을 제작했다.
이 그림은 그의 아버지 소유의 공원을 그린 것으로 풍요롭고 색다른 해석이 특징적이다.
세잔은 풍경화나 자신의 흥미를 끄는 주제들을 반복적으로 다시 그렸다.
작품 활동의 여러 단계마다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감정들에 따라, 수많은 재창작을 시도했다. 말년에 그의 작품은 조화롭고 몽환적으로 채색된 누드화 습작들로 특징 지워지는데,
그중 <목욕하는 사람들>(1894~1905경)이 가장 유명하다.
<생트빅투아르 산>의 풍경은 세잔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이다.
세잔은 1852년에 같은 학교를 다니던 에밀 졸라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들은 곧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서로를 영웅처럼 숭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외관상 졸라는 세잔의 미술을 경외했고, 세잔은 졸라의 글을 경외했다. 졸라 역시 아마추어 화가로, 두 소년은 엑상프로방스의 시골을 산책하며 스케치하는 등 대부분의 자유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세잔은 졸라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시절을 항상 잊지 않았다. 그의 많은 작품들 속에는 함께 그림을 그리는 인물이 나타나는데, 졸라를 모델로 한 것이다.
졸라의 격려 덕분에, 세잔은 엑상프로방스를 떠나 파리로 갈 수 있었다. 졸라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졸라와 그의 어머니는 파리로 이사했다. 세잔의 아버지가 완강하게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졸라는 세잔에게 함께 파리로 가서 집중적으로 그림을 그리자고 설득했다. 세잔과 졸라는 30년 이상 친구로 지냈다. 유명한 소설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졸라는 1886년에 『걸작』을 출판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클로드 랑티에는 늘 불안해하고 성적으로 자신이 없으며, 실패한 화가로, 이후 자살을 한다. 랑티에는 졸라가 알고 있던 많은 화가들의 특성을 섞어 놓은 인물로 여겨지지만, 세잔은 랑티에가 자신을 풍자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세잔은 수십 년 동안 졸라에게 털어놓은 비밀들이 우롱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사건으로, 한때 아름다웠던 둘의 우정은 끝나버렸다.
"나의 유일한 스승,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파블로 피카소
YouTube에서 '인상주의 미술감상 : 폴 세잔' 보기
https://youtu.be/TCYPegWdK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