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화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나는 생긴대로 그렸을 뿐이오~
왕비 후보인 여인의 초상화 한 번 잘못 그렸다가 인생을 망친 화가.
"펌글 짜집기"
[영국 튜도르 왕가의 다섯 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으로, “나라와 국민이 자신의 남편”이라면서 평생 혼자 살다간 처녀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가톨릭의 부패 속에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신, 구교의 대립
스페인과 프랑스의 강세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 지방세력의 할거
봉건세력과 종교인들의 창궐에 따른 재정결핍과 왕권강화를 위한 국력의 낭비
이러한 가운데서도 왕비의 시녀와 결혼하려고, 왕비와의 이혼을 반대하는 교황의 억압을 물리치기 위하여 가톨릭과 결별하고, 국교를 만들어 왕이 그 수장이 되기까지 한 헨리 8세,
스코틀랜드와의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어린 누이동생을 스코틀랜드 왕과 결혼시키는 잔머리의 대가..
그는 37년간(1509-1547) 재위하면서 여섯 번의 결혼을 하는데..
첫째 아내는, 결혼으로 스페인을 통일한 카스티유의 이사벨라 여왕(Queen Isabella I of Castile)과 아라공의 페르디난드(King Ferdinand II of Aragon) 사이의 딸로 셰익스피어마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라고 극찬했던 아라공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형이던 왕세자 아더 튜더와 약혼한 왕비였으나 형이 요절하자, 스페인과의 혼인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구약성경 중 레위기에 ‘누구든지 형제의 아내를 취하면 더러운 일이라, 그들에게 자식이 없으리라’는 구절은 형과 형수가 육체관계가 없었으니 괜찮다는 논리로, 강국 스페인에 우호적이던 교황의 결혼 동의를 받습니다.
여섯 살 연상이던 형수와 결혼한 그는, 캐서린과 사이에 아들없이 딸 잉글랜드의 매리(Mary I, Queen of England)를 낳습니다.
둘째 아내는 캐서린 왕비의 시녀 앤 볼린(Anne Boleyn)..
스코틀랜드의 민요, 그린 슬리브스(Green Sleeves, 푸른 옷소매의 아가씨)로 불려지던 앤 볼린..
인맥좋고 부유한 런던 상인의 딸인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헨리 8세는 위 성경구절이 들어맞아 아들이 없는 것이라며 교황에게 이혼의 동의를 구하지만,
스페인과 절친인 교황은 이를 반대하고, 꾀많은 재상 크롬웰의 꼼수로 가톨릭을 버리고 영국 국교를 창립하여 그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의 동의를 받아 앤 볼린과 결혼함으로써 그녀는 마침내 “천일의 앤”이 됩니다.
하지만, 천일의 앤도 아들을 낳지 못한채 딸만 하나 출산하는데 그녀가 바로 영국을 대영제국으로 만든 엘리자베스 1세입니다.
똑똑한 머리와 야무진 성격으로 각종 정치적 행위에 관여하다가 왕의 눈에 거슬린 앤 볼린은 크롬웰의 잔꾀로 오빠를 포함한 근친상간과 마법행위의 모함을 받아 생후 2년 6개월의 엘리자베스만 남긴채 단두대의 이슬이 되고, 그녀의 시녀인 제인 시무어가 셋째 왕비가 되지만, 이 여인도 아들 에드워드를 낳은지 12일 만에 세상을 뜹니다.
왕비의 시녀 전문 킬러(?)였던 헨리 8세가 6명의 여인과의 결혼을 끝으로 생을 마치고, 세 번째 왕비의 아들로 태어난 에드워드가 아홉 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6년만에 사망합니다..
당시 실권자인 더들리 공작이 메리와 엘리자베스를 배제하고, 에드워드의 5촌 제인 그레이(Lady Jane Grey)를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킨 후 왕위에 오르게 하지만,
9일 후 아라공의 캐더린의 딸 메리가 실각시키고 영국 최초의 여왕이 되고, “9일의 여왕” 열여섯 살의 제인 그레이는 남편과 함께 런던탑에 갇혔다가 처형됩니다.
독실한 캐톨릭 신자인 메리여왕은 개신교 신자이고, 자신의 엄마를 죽게 한 천일의 앤, 앤 볼린의 딸로, 엄마가 죽은 후 시녀노릇까지 한 엘리자베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38세의 나이에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아들로 11살 연하이고, 심한 주걱턱을 가진 스페인의 펠리페(Felipe of Spain) 2세와 결혼을 한 뒤, 수많은 성공회 성직자와 개신교 신자를 화형시키는 피의 메리(Bloody Mary)가 됩니다.
펠리페 2세는 정략결혼에 대하여 극도로 무관심한 나머지 메리 여왕은 독수공방으로 상상임신까지 하지만, 결국 5년여 만에 난소암으로 42세에 세상을 버려,
마침내 1558년 “천일의 앤”의 딸인 25세의 엘리자베스가 대망의 왕좌에 올라 무려 44년간(1558-1603) 영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수장령으로 성공회를 국교로 하면서도 왕은 형식상의 수장으로 하여 가톨릭과 개신교의 극단적 대립을 해소하고, 경제활성화와 사회복지를 강화하여 국부를 강화하여 민생을 보살핍니다.
개신교인 네덜란드 독립전쟁에서 가톨릭인 스페인이 네덜란드를 지원하고, 이복동생 메리 여왕과 결혼한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무적함대(Armada Invincible)를 파견하자
해적출신인 드레이크(Francis Drake) 제독으로 하여금 이를 격파시켜 영국이 북해 연안과 대서양 입구의 해상을 장악하고, 러시아의 이반 4세와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아메리카의 버지니아를 개척하고, 동인도회사를 설립합니다.
당시 여왕의 배려로 크게 일어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문학과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론 철학 등을 비롯하여 국민들의 정신적 결속과 일체감을 일으킨 문화의 창달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평생 독신으로 "나는 국가와 결혼하였노라"고 장담하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과연 처녀였을까요?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같은 가정교사 밑에서 공부하면서, 그녀를 여왕이 아닌 한 여자로 사랑했던 레세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는 유부남인데다가 ‘9일의 여왕’ 제인 그레이 스캔들을 일으킨 반역자 존 더들리 공작의 아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를 죽을 때까지 15년간 머리맡에 베고 잤던 여왕
메리 여왕과 결혼했던 스페인의 펠리페 2세,
아버지 헨리 8세의 마지막 부인과 결혼한 남자로 아버지처럼 따르던 사내 등 숱한 남자들의 청혼을 뿌리치고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던 그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금으로 된 관 속에 누워있는 그녀는 과연 처녀였을까요?
우리는 그냥 세익스피어의 소설을 그린 작품이나 감상함에 만족합니다..
1. 윌리암 프리스, 윈저 궁 숲에서 사슴사냥을 하는 헨리 8세와 천일의 앤(엘리자베스 여왕의 부모), 1903. 개인소장
King Henry and Anne Boleyn Deer shooting in Windsor Forest, William Powell Frith (1903)
2. 안토니스 모르, 피의 메리 여왕의 초상, 1554. 프라도 미술관 Queen Mary I (1516-58) 1554 Antonis Mor, Museo del Prado
3. 한스 에워스, 피의 매리 여왕이 짝사랑 끝에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스페인의 심한 주걱턱의 펠리페 2세 왕과 매리 부부
Hans_Eworth, Portrait of King Felipe II. of Spain and his second spouse Queen Maria I. of England. 1558
Bedford Collection, Woburn Abbey, England
4. 폴 들라로쉬(프랑스), 신, 구교의 갈등과 섭정들의 농간으로 9일 간 여왕이 되었다가 처형 당하는 제인 그레이, 1833. 런던 국립미술관
The Execution of Lady Jane Grey, by the French painter Paul Delaroche, 1833. London National Gallery
5. 작자 미상, 대관식 때의 엘리자베스 1세, 연대 미상, 런던 국립 초상화미술관
Elizabeth I in her coronation robes, patterned with Tudor roses and trimmed with ermine. London Portrait Gallery
6. 작자 미상,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기념으로 그려진 여왕의 초상(지구본을 움켜쥔 모습), 1588. 영국 워번 수도원
Portrait of Elizabeth to commemorate the defeat of the Spanish Armada (1588), depicted in the background. Elizabeth's hand rests on the globe, symbolising her international power.
7. 알렉산더 리토브센코(러시아), 여왕의 사절에게 보물을 보여주는 러시아의 황제 이반 4세, 페테르부르그, 러시아 미술관
Ivan the Terrible shows his treasures to Jerome Horsey, Elizabeth's ambassador. Painting by Alexander Litovchenko, 1875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8. 작자 미상, 여왕을 알현하려는 무어 왕국의 대사, 1600. 영국 버밍햄 대학미술관
Abd el-Ouahed ben Messaoud, Moorish ambassador of the Barbary States to the Court of Queen Elizabeth I in 1600. Birmingham University
9. 들라크로아(프랑스), 공동묘지에 간 햄렛과 호라티오 Hamlet and Horatio in the cemetery, Eugene Delacroix, 1839 Musee du Louvre
10. 미하일 브루벨(러시아),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Mikhail Vrubel, 1896 Tretyakov Gallery, Moscow
11. 존 밀레이, 오펠리아 Ophelia, John Everett Millais, 1852 Tate Gallery, London
12. 콘스탄틴 마코브스키(러시아),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Konstantin Makovsky, 1890. Tretyakov Gallery, Moscow
13. 포드 브라운, 리어 왕과 코델리아, 1848. 런던 테이트 미술관 Lear and Cordelia, Ford Madox Brown, 1848. Tate Gallery, London
14. 알마 타데마, 심벨린의 여주인공 이모겐으로 분장한 엘렌 테리, 연대 미상
Sir Lawrence Alma-Tadema, Dame Ellen Terry as Imogen Shakespeare heroine in Cymbeline
나종수 회원님이 알려주신 두 점을 추가합니다.
15. 한스 홀바인(독일), 헨리 8세의 알현을 기다리는 프랑스와 라부르의 대사들, 1533. 런던 국립미술관(크롬웰과 천일의 앤의 총애를 받아 헨리 8세의 전속화가가 된 직후의 작품)
Hans Holbein the Younger,
Double Portrait of Jean de Dinteville and Georges de Selve ("The Ambassadors"), 1533. National Gallery, London.
16. 폴 들라로쉬(프랑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죽음, 1828. 루브르 미술관
The Death of Elizabeth I, Queen of England, 1828. Musee du Louvre
--- 추가
17. 여왕과 세 여신, 1590. 런던 국립초상화 미술관
Queen Elizabeth I (Elizabeth I and the Three Graces), attributed to Isaac Oliver (circa 1590),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