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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작성자지수.혜수아빠|작성시간16.03.08|조회수1,596 목록 댓글 4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omingo Felipe)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피라게스에서 출생 - 1989년 1월 23일사망
그의 이름은 1년 전 죽은 형의 이름이기도 하다.

14세 때 미술학교에 진학하여 공부하였으나 결국 1924년 퇴학을 당한다.
강한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젊어서 받은 프로이트의 영향이 일생을 지배했다.

사진1
창가에 서 있는 소녀 1925
감상자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주제는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로부터 차용된 것인데
불과 일 년 후 초현실주의의 그림 안에서 왕성하게 표현되는 꿈의 해방을 예고하는 것이다.

사진2
비너스와 어린 큐피트 1925

사진3
입체주의적 자화상 1926

20세기 초 파리는 세계 예술가들의 둥지이자, 무덤이기도 했다.
그는 처음 파리에 가서 피카소를 만난다. 스페인 출신 두 거장의 만남이었다.
이미 대가인 피카소와 달리는 서로를 알아보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으로 평생 선을 그으면서 살게 된다.
이런 종류의 작품에서 달리가 사용한 모델들은 1910년 피카소에 의해서 그려진 칸바일러나 볼라르드의 초상 작품을 기억나게 한다.

사진4
소름의 시작 1928

1928년에는 파리에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초현실주의파의 일원이었던 달리는 10여 년 후에는 라파엘로의 영향을 받아 다시 고전주의로 회귀하면서
앙드레 부르통과의 불화로 인해 초현실주의파에서 제명된다.
"나는 초현실주의 자체이니까 아무도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

사진5
보이지 않는 남자 1929-1933

사진6
기억의 영속성(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달리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기억의 영속성>.
이 작품은 달리가 친구들과 극장에 가기로 약속한 날, 편두통에 시달려 아내인 갈라만 보내고 홀로 집에 남아 작업실에서 프랑스산 까망베르 치즈로 식사를 하다가 더위 때문에 접시에 부드럽게 녹아내린 까망베르 치즈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늘어진 시계는 시간을 재는 시계가 고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며
극장을 다녀온 갈라는 자신이 보고 온 영화를 완전히 잊을 정도로 감탄했다고 한다.


달리는 어린시절 부모님과 루브르뮤지엄에서 <만종>을 처음 본 순간, 비명을 질렀다.
알수없는 불안감과 공포 때문이었다고 하였고 두 부부 사이에 있는 감자자루가 관처럼 느껴진다고 하였다.
그 후,『밀레의 만종의 비극적 신화』라는 책을 쓰며 <만종>을 새롭게 내놓았지만 미치광이 소리를 듣던 달리의 말을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수십년 후,
루브르뮤지엄에서 <만종>을 적외선 투사 작업을 통해 그 감자 바구니가 초벌 그림에서 죽은 아이의 관이었다고 밝혀졌다.
밀레가 그려주기로 했던 가난한 부부의 갓난아이가 굶어 죽게 되고 아기를 묻기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가슴아픈 그림을 그렸다가 주위의 권유로 지금처럼 수정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진7
갈라와 밀레의 만종(Gala and the Angelus of Millet) 1933
이 작품은 '그림 속 그림'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의자에 앉아있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 갈라, 갈라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레닌으로 해석되며
머리 위에 바닷가재를 얹은 사람은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문필가 막심 고리키이며 고리키로 변형된 달리 자신으로 해석한다.
열 살 연상의 갈라는 달리에게 모성애의 상징이므로 모친에 비유하며
레닌은 달리의 다른 작품인 <윌리엄 텔의 수수께끼>에서 달리의 부친으로 변형된 바 있으므로, 부친을 상징하고
바닷가재 사람은 위에서 말했듯이 달리 자신이다.
엄한 아버지의 지배로부터 심리적으로 두려워하며 문 밖에 서서 들어오지 못하는 소심한 달리의 자화상을 묘사한 듯 하다.

사진8
건축적인 밀레의 만종 1933

사진9
만종(Angelus) 1935
1933년 전후로 달리는 밀레의 <만종>을 변형시킨 작품들을 내놓았다.


달리는 마요카라 출신의 중세 말기의 지성인 라이문도 루리오나,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인 줄리오 카밀로의

<기억의 연극>에서 영감을 받아 중세와 르네상스의 기억술과 연관된 기억의 바퀴와 기타 기계장치에 관심을 보였다.

달리는 일생을 통해 많은 그림에서 특징적인 조형 요소인 가구나 인물로 기억술과 관련된 장치를 번안하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서랍이다.

사진10
인간 형상을 한 캐비넷 1936

사진11
불이 붙은 기린 1936-1937

사진12
우주적인 운동 선수 1968

서랍들은 무의식을 의미한다.
달리는 "인간의 신체는 그리스 시대에는 순수한 신플라톤적이었다.
오늘날의 신체는 비밀스러운 서랍들로 가즉 차 정신분석 학자들만이 열 수 있다."라고 쓰고 있다.
건축물을 사용한 비유도 이와 유사하게 해석될 수 있겠다.

그에겐 단 한명의 여인인 갈라가 있었다.

그녀는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었고 10살 연상의 여인이었다.

둘은 바로 사랑에 빠지고 만난 지 수십년 후 엘뤼아르가 사망하자, 인정받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죽은 형의 인생을 살아야 했던 달리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기 위해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그의 옆에서 혹독하게 감시하였고 그 결과, <건축적인 밀레의 만종>, <불이 붙은 기린> 등 명작을 쏟아냈다.


사진13
섹스어필의유령 1934

어린 달리는 거의 주체할 수도 없는 목발을 한 늙은 노파의 신체를 바라보고 있다.
그 노파의 상체 부분은 거대한 소세지로 이루어졌으며 이렇게 하여 모든 먹을 수 있는 것들과 대립된 죽음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목발은 때로 달리의 회화 세계에서의 성불구를 상징한다.

사진14
가을의 카니발리즘 1936-1937

탐욕스런 식욕과 죽음의 연관성이 나타나는 그림 중 하나이다.
달리는 모든 종류의 요리 기구를 세밀히 묘사하였고 빵과 과일과 고기 묘사와 함께 죽음의 연회를 창조하고 있다.
해질 무렵 가을의 금빛 색조는 폭력적인 화면을 부드럽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사진15
소녀라고 믿었던 6세의 달리 1950

편집광적이고 불안한 분위기를 재창조하여 카다케스 해변의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표현하였다.

사진16
십자가에 달리신 성 요한의 예수 1951

신비주의에 대한 달리의 관심은 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그리게 하였는데,

이것은 <정신적 찬미가>의 주석에 의한 십자가에 달린 성 요한의 표현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으며

동시에 유명한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대한 명백한 존경을 표하고 있다.

사진17
원구로 그려진 갈라테아 1952

한 해 전 달리는 <신비주의 선언서>를 저술하였는데, 거기에서 그는 자신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구성 요소를 제의한다.

이 작품에서 갈라의 이중 이미지는 제 2차 세계대전 후 달리의 작품에서 복원된 강박관념들 중

두 관념인 정신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에 대한 자극을 통합하고 있다.

사진18
미완성의 입체 그림 1974

거울을 이용한 이중 공간의 묘사는 벨라스케스의 <라스메니나스>와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에서 참조한 것이다.


달리의 연인 갈라는 89세에 세상을 떠난다.

그 후, 달리는 파킨슨병과 자살 기도, 침실 화재로 인한 수술을 받으면서 힘든 노년을 보내다가

결국 폐렴과 심장병 합병증으로 84세에 갈라의 곁으로 돌아간다.

달리에 대한 평가는 1989년 그의 죽음 이후에는 아무도 그의 위대함을 의심하지 않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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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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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수.혜수아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3.08 어렵다.
  • 작성자지수.혜수아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3.09 어려워 '' 글에 포함된 스티커
  • 작성자지수.혜수아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3.12 천재랑 싸이코는 종이한장 차이같네요.
    근데 경계를 어떻게 구별할까?
    ???
  • 작성자지수.혜수아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6.08 오랜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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