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길목에서 만난 동행(同行)
돌아보면 저의 고등학교 시절은 그리 빛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상위권 성적은 중학교에 올라서며 미끄러졌고, 뒤처진 발걸음으로 진학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맞지 않는 옷 같은 ‘이과’를 선택했습니다.
기초가 없는 수학과 과학 과목들이 늘 하위권에 맴돌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학업에 부대끼며 힘들 때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자취방을 같이 쓰게 된 그 친구는 나와는 결이 달랐습니다. 문과를 선택한 친구는 그 시절 유행하던 ‘사당오락(四當五落)’을 몸소 실천하는 악바리였습니다. 학교 야간 자율학습실에서 먹고 자며 책과 씨름하는 친구를 보며 저도 자극을 받았지만, 도저히 그 지독함을 따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대학을 포기하는 대신 공무원 시험 서적을 파고 들었습니다.
길은 달랐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했던 시간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당당히 대학에 진학했고, 나는 1년 뒤 스물한 살의 나이로 공직 생활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친구는 ROTC를 거쳐 금융기관의 은행원으로, 나는 60세 정년을 꽉 채운 공무원으로 묵묵히 인생의 레일을 달렸습니다.
바쁜 삶에 치여 한동안 연락이 끊기기도 했지만, 퇴직을 5년 앞둔 무렵부터 저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자석처럼 이끌렸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밥을 먹으며 식어 가던 우정에 불을 지폈고, 은퇴한 지금은 더없이 편안한 노후를 함께 바라보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손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곳의 일상은 평탄하지만, 때로는 지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로울 틈은 없습니다. 매일 아침 주고받는 스마트폰 속 카카오톡 메시지가 두 나라의 거리를 단숨에 지워버리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이고, 저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정적인 사람이라 성향은 사뭇 다릅니다.
지금의 소박한 삶에 만족할 줄 알고, 매사에 꾸준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공통점을 가졌습니다. 인생의 가장 아프고 찬란했던 시절을 공유하고, 황혼의 길목에서도 여전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제 인생은 충분히 따스하고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진표의 천년지기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친구입니다.
https://youtu.be/2OjXs2P5hkQ?si=c1hpH4gC5v0rgTf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