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명 ‘고관’의 유래
1607년 조선은 일본과의 교역을 위해 두모포(현 부산 동구청과 수정시장 일대)에 왜관을 설치했습니다. 이후 늘어나는 물자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좁았던 부지와 대형 무역선이 정박하기 어려웠던 지리적 문제 때문에 초량 왜관(현 용두산 공원 일대)으로 이관했고, 두모포 왜관은 고관(古館) 또는 구관(舊館) 으로 불리다 고관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현재 고관의 건물은 문자 그대로 구관이 되었지만 ‘고관 입구’라는 이름은 여전히 버스 정류장으로 사용 되고 있습니다. 범일동 방향에서 버스를 타고 부산역쪽으로 가다보면 부산진역 다음 정류소가 '고관입구'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옛 KBS방송국이 있던 자리 주위이다. 그래서 '고관입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아는데, 정작 '고관'은 어디이며 무슨 뜻인가? 아무래도 시계를 한 400년전으로 돌려 보는것이 이해가 쉽겠다. 그러니까 조선중엽 임진왜란이 1592년~1598년에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과의 교역이 단절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의 끈질긴 통상요구에 의해 문을 열게된다. 전쟁전의 개항 3곳(울산 부산 진해)이던 포구는 중단하고 부산의 한곳에만 지정하여 허락한다. 그곳이 바로 부산포 옆에 붙은 '두모포' 라는 곳이고 위치는 지금의 수정동인 '고관입구'라고 불리워지는 곳이다. (1900년대 일제강점기 때에 이 주위가 매립이 되였고 그 이전에는 바닷물이 들랑 날랑했다)
그리고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서 '두모포 왜관' 이라고 거주지를 지어 활동을 제한했다. 그'두모포 왜관'의 위치는 지금의 부산일보사 뒷쪽으로 수정동 시장이 된다 (이것을 훗날 '고관'(古館)이라고 부르게된다)
당시 왜관의 규모는 동서의 길이가 126보 남북이 63보 였으니 대략 동서70m 남북이40m 정도의 직사각형 규모였다 (1만평 가량) 이 ‘두모포 왜관’은 1607년에 설치되여 72년간 존속하다가 지금의 용두산 주위로 새로운 왜관(신관 新館)을 지어서 가게되자 기존 수정동의 두모포 왜관은 옛건물이라 하여 구관( 舊館 ) 혹은 고관( 古館 )이라고 불리워 진다.
두모포는 옛이름이고 지금은 쓰지 않는 이름이다. 위치는 지금의 고관입구 쪽이고--
여기에는 조그만 공원이 조성돼있다. 공원에는 '두모포 왜관'이라는 안내석이 있고 공원 가운데는 임진란 당시 다대포 첨사로써 순절한 윤흥신 장군상이 석상으로 조성돼있다. 이 석상은 아무래도 다대포쪽에 있는것이 더잘 어울릴텐데 왜 이곳에 세워졌는지 이상하다.
그건 그렇고 석상에 새겨진 건립문 내용을 조금 살펴보자. "임진년 그해 4월---- 장군의 굳은 의지에 따라 더불어 싸우다가 순절한 군관과 백성들의 모습도 함께 모신다------장군이여 오늘 그대 단성의 넋을 석상으로 다듬어 모든 후대인에게 나라 사랑하는 크나큰 거울로 삼고쟈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