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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연중 11주일(26년 6월 14일)

작성자토마스 아퀴나스|작성시간26.06.13|조회수26 목록 댓글 0

평화를 빕니다!

 

온전한 믿음을 주시어, 우리가 모든 악을 물리치고 주님 안에서 더욱 굳세게 하소서.

 

환대의 아브라함

경청과 환대는 가정형 위센터의 모토입니다.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해도 말하는 이가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스스로 풀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환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의 가르침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천막을 찾은 미지의 세 나그네를 극진하게 대접하며 환대합니다. 반죽을 하여 빵을 만들고 물을 길어와 피로를 풀어주도록 발을 씻도록 합니다. 품질 좋은 송아지 고기를 대접하고 우유를 만들어 극진히 대접합니다. 지극 정성으로 환대함으로 야훼 하느님께서 깊은 믿음을 보시고 복을 내려주십니다. 우리 속담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에 그 상황에 아브라함에게 잘 어울릴 듯합니다.

기쁨을 얻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타인을 환대함으로써 기쁨을 얻습니다. 남을 잘 되게 도와줌으로써 얻는 기쁨이 바로 이러한 환대의 정신입니다. 환대에는 많은 노고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결코 쉽게 지치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비밀이 아닐까 합니다. 눈앞에서 타인을 돕고 타인에게 도움이 가는데 기쁨은 아브라함이 얻습니다. 그리고 또 그의 아내도 놀라운 기적의 당사자가 됩니다.

떡과 고기와 우유 그리고 발 씻을 물로 타인을 환대하는데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놀라운 일을, 기쁨을 넘어서 정말 놀라운 기적의 은총을 내려주십니다. 내년 봄 새싹이 돋을 무렵 아이를 낳았을 것이라는 말씀하시니 사라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칩니다. 당치도 않는 말이니까요. 나이가 들어 죽은 사람처럼 되어 가는 마당에 될 법한 일인가요?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으니 사라도 그런 웃음이 나옵니다. 누구라도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으로서 믿지 못할 일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나무라시며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넌지시 가르치고 계십니다.

 

고통에서 희망으로

2독서에서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함을 말씀합니다. 고통을 겪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이 또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고통은 우리를 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일이 어떻게 쉬운 일일 수 있겠습니까?

최근 네비디아의 젠슨 황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성공한 CEO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고통이나 실패, 어려움을 겪을 때일수록 더욱 긴장하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그런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한층 명민해 지고 또 그 명민함을 잘 활용하고자 할 때 회복탄력성으로 난관을 극복하였고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고통가운데, 실패한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그런 회복탄력성이 지금의 성공으로 이어지게 한 하나의 요인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만고불변의 회복탄력성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통이나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확고한 믿음의 반석인 하느님의 사랑이 있어서 언제든 어려움을 이겨낼 명민함과 끈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로마 5:2-4)

 

끈기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는 사랑에서 오는 회복탄력성입니다.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는 주님이 주시는 사랑이니 기꺼이 우리는 고통 가운데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희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절로 오지 않는 평화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주님에게, 평화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에게 우리는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화는 그냥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의 전쟁과 폭력으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세상으로 가서 가르침을 주라고 명하십니다. 세상에 제자를 보내는 것을 두고, 양들을 이리 떼 소굴에 보내는 것에 비유합니다. 그러하기에 이리의 소굴에 갈 때에는 뱀의 슬기와 비둘기의 양순함을 지녀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상황에 따라 슬기롭게 때로는 순한 모습으로 세상을 이겨내기를 열두 제자들에게 당부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험난한 세상으로 내 보낼 때, 격랑이 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간절히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극진히 헤아려주는 주님이시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 인내하고 끈기로 견뎌냄으로써 마침내 평화를 이룩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도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납니다. 세포나 균들이 유익한 진영과 해로운 진영으로 나누어 싸움을 벌이기에 우리의 몸에 마치 포격전과도 같은 열이 나곤합니다. 또 우리는 나이듦에 따라 평화로운 안정 상태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노화는 자연현상이라고도 하니, 자연스럽게 나이듦으로써 우리 몸이 평화롭게 늙어가기를 원합니다만 질병인 듯이 병을 앓게 됩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사랑이시기에 주님은 또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어 우리를 치유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이 주신 사랑과 은총으로 평화를 이루어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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