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하늘에 닿는 물이 되다.
하늘은 항상 높은 곳에 있고,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물이 하늘에 닿는 길은 영원히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내려만 가던 물이 드디어 바다에 이르면 수평선을 만난다.
하늘과 물이 만나는 곳이다.
물이 하늘에 승천하고 하늘이 내려와 물을 보듬어 주는 곳이다.
하늘이 물을 보듬고 물이 하늘에 올라 구름이 되면 그 곳에서 생명들이 소생하도록 비가 내린다.
라후니 부족의 산마을에도 비가 내린다.
짜러가 몽족 주인의 종이 되어 마을을 떠나던 날 내렸던 비는 이렇게 내린 비였다.
한 없이 내려가서 하늘을 만났던 물이었다.
하늘이 내린 물이었다.
생명의 물이었고, 사랑의 물이었고, 그래서 라후니 부족처럼 비참한 역사의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물이었다.
내려가기만 하는 물은 세상의 삶을 거절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은 하늘에 닿으려고만 한다.
높아지기만을 바란다.
높아진 사람을 영웅이라 말한다.
그들은 혹시 신이라도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높아지고 싶어하는 허망한 욕심의 반영일 뿐이다.
높이 오르고서 하늘에 닿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산은 아무리 높아도 하늘 아래 있을 뿐이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하늘 아래 있기 때문에 하늘의 은총을 받으며 사는 것이다.
산은 하늘의 은총을 위해서 내려가기만 하는 물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산에는 늘 흐르는 물이 있다.
태국 북부의 산들이, 그 모양이 작든지 높든지, 항상 늠름하고 라후니 부족을 품고 살아주는 것도 자신도 하늘 아래 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은 밤마다 물을 만들어 하늘의 은총을 찬양하며 물을 흘려 내려 보낸다.
산에 속한 모든 것들은 은총의 이치를 안다.
바나나 숲도, 티크 나무들도, 하늘로 치솟다가 고개를 숙이는 대나무들도, 물길을 만드는 돌작들도, 물이 잠시 쉬어 기도의 시간을 갖도록 길을 막은 가랑잎들도 은총의 이치를 안다.
은총의 이치를 모르는 것은 인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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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후니 부족과의 삶에서 선교쎈타를 짓고 아이들이 희망을 갖자 아잔 박의 명성은 한국에서 높아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때를 맞춰 한 기인이 나타나 아잔 박의 명성을 더욱 높여주었다.
그는 한국 민족임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옛 고구려의 기상을 자랑스러워하고 중국을 위협하며 말을 타고 달리던 고구려를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옛 고구려가 멸망할 때 유민 이십만명이 중국으로 끌려 왔다는 중국 당서기와 한서기의 기록을 잊지 못하고 그 유민의 후손들을 찾는 사람이었다.
그는 라후부족을 그 유민들의 후예라고 믿었다.
라후부족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삶을 보면서 그들의 문화가 옛 고구려의 문화와 흡사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그는 라후니 부족에게 연민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아직까지 보존 된 구구려 유민의 후예들이라는 생각에 몰입됐다.
그리고 보니 얼마나 안스러운 존재들인가.
나라의 멸망이라는 비운을 안고 꽁꽁 얼어붙은 만주 벌판의 살추위를 당하면서 먼 중국 땅까지 사슬에 묶여 끌려갔다. 그리고는 노예로 팔렸다.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마지막 고구려의 지도자는 비루한 중국의 관리가 되어 향연을 즐겼지만 백성들은 처참함 속에서 고구려의 기상을 지키려 마지막 힘을 다했다. 굶어 죽더라도 비굴하게 살지도 죽지도 않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들의 신전을 짓고 또보를 세우고 살았다.
그리고 중국 당나라가 그들을 중국의 운남성 산자락에 유배를 하고 감히 다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참혹하게 짓밟았을 때 그들은 라후인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저자 주/중국 소수부족 대학의 학자들은 라후부족의 등장을 당나라 시절 중국 운남성 동북부 리구 호수에서 발견 되기 시작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라후인!
현재 중국이 사용하는 拉枯人(말라 죽은 고목 인간)이 아니라 La Hu Chaw Ya (호랑이를 키우고 사냥하는 사람들)로 불렸다.
일부 타이야이족들은 그들을 무사(武士, 므서)라고 불렀다.
기개가 당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비참했다.
추위와 싸워야했다. 가파른 산 비탈을 의지하고 살아야 했다.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야 했다. 외세의 핍박을 피하며 살아야 했다.
그렇게 살기를 수 천년, 그리고 세상이 개화되고 문명이 세상을 덮어도 그들은 그것을 모른 채, 말라 비틀어진 열네살 엄마의 젖꼭지를 아기의 입에 틀어넣으며 젖물이 나오게 해달라고 아기와 함께 울며 사는 삶을 살아 왔다.
이러한 생각에 젖어드니 그 기인은 왈칵 설음이 밀려 왔다.
그리고 그는 이 고구려의 후예들을 다시 한국으로 데라고 가야한다고 역설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아직까지 찾지 않은 것은 우리들이 속죄 할 수 없는 죄를 범한 것이다 라고 눈물을 지으며 책을 쓰기도 했다.
그 기인은 라후니 부족이 고구려 유민의 후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사실 그 이야기들은 그렇게 설득이 될 만한 자료들이 되지를 못했다. 우선 라후니 부족에게는 글짜가 없었으므로 기록이 없이 수천년 전의 일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한국의 텔레비전을 자극했다. 신문사들을 자극했다. 언론 단체들끼리 경쟁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민족사에 남을 일이라고.... 어떤 이들은 허위라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그리고 라후부족은 한국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쟌 박은 그들로 부터 함께 할 것을 몇 차례 제의 받았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시 라후말을 할 수 있던 한국 사람은 아쟌 박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아쟌 박은 자신은 선교사일 뿐이라며 그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저자 주/ 그 기인은 그 후에도 라후부족을 연구하다가 지병으로 타계했다. 그는 한국에 묻힐 것을 거절하고 짜또보 마을에 작은 무덤을 만들고 묻혔다.)
그래도 라후부족이 한국 사람들에게 알려짐과 아울러 아쟌 박도 알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쟌 박이 한국에 알려짐은 선교에 있어서 부정적 측면이 많았다.
우선 선교적 자세가 높아지는 부정적 측면이었다.
선교적 자세는 하나님의 은총을 알리는 것이므로 낮아져야 한다. 필요하면 고초도 겪어야 한다. 그러나 선교의 업적이 알려지고 높아지면 선교적 생명력은 부패하며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공룡처럼 그 생명력이 단축 될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이것은 선교회의 규모가 커지면 선교의 원동력인 신앙의 힘 보다는 사업에 대한 결과만 따지게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또 아쟌 박이 알려지고 높아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함께 하는 다른 선교회는 물론,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을 압박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아쟌 박은 당시 세 사람의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쟌 박이 높아질 수록 상대적으로 더욱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선교 활동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부족함 보다는 아쟌 박이 알려지고 그 영향력이 커져가는 현상에 반사적 결과라고 판단되었던 것이다.
아쟌 박은 선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며 기도에 빠졌다.
한 사람이 임금과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단색론적인 선교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뛰어난 사람은 없지만 고만 고만한 사람들이 아기자기 조화를 이루고 다 함께 일하는 선교회가 될 것인가?
기도의 대답은 꿇어 앉은지 삼십분이 지나지 않아서 응답됐다.
사실 대답은 뻔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결코 단색론적 마음이 아니다.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여 조화된 모습을 기뻐하신다.
위대한 임금과 영웅 보다는 소 시민들이지만 서로 사랑하여 조화하므로 다 함께 위대해지는 백성을 좋아하신다.
기도의 대답은 당연히 아쟌 박이 작아지고 다른 선교사님들이 성장하며 나아가서 현지 사역자들이 성장하고 성숙해서 함께 하는 선교회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쟌 박이 몇 일 동안이나 기도에 빠졌던 것은 그 당연한 하나님의 대답을 따르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 때문이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성장을 멈추고 내려가기를 주저하는 그의 마음이 문제였다.
하나님의 마음은 둥근 달처럼 영롱하도록 확실했다.
인간의 더럽혀진 마음도 씻어내고 씻어내면 욕심, 사특한 꾀, 이런 보이지 않는 더러운 죄까지도 씻어질 수 있다.
인간의 노력의 결과라기 보다도 반복되는 하나님의 은총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쟌 박은 몇일 만에야 마음을 정리했다.
함께 하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자리를 마련했다.
기도하며 정리한 마음을 선교사님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은 작아지고 선교사님들은 더욱 커지며 현지인들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선교회의 주인들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그 어려운 과제를 의논했다.
모두가 조화된 선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그 비젼을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 하는 대답에는 침묵일 수 밖에 없었다. 아쟌 박이 어떻게 독주하지 않고 작아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회의는 다음의 결론을 다짐하며 마쳤다.
모두가 인사 조차 못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모두 희망에 가득 찼다.
선교회에 대한 자부심도 가슴을 뿌듯하도록 채웠다.
1. 아쟌 박은 향후 십년 동안 휴직을 한다. 단 십년 후 돌아오면 대표를 도와 사역을 한다.
2. 향후 선교회의 재정과 모든 업무를 관장하는 선교회 대표는 후임자가 행하며 대표사역 사년 후에는 대표직을 사임하고 다음 후임자가 대표직을 행하게 한다. 대표사역을 경험한 선교사는 대표를 도와 실제 사역을 행한다.
3. 현지인 사역자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하여 유능한 사역자들을 선발하여 지속적으로 한국 내 신학대학에 유학을 시킨다.
아쟌 박은 십년 휴직으로 인하여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만큼 기대했고, 그 만큼 사랑했고, 그 만큼 믿었기 때문이었다.
라후니 사람들에게서 실망이 쏟아졌다.
십년 후에는 돌아온다고 설득해도 모두 떠나기 위한 핑계라고 생각했다.
선교를 후원하던 분들은 이런 결정은 어불성설이라고 한마디로 몰아 붙였다. 아직까지 누구를 믿고 후원했느냐고 사정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너무 무모한 실행이라고 따뜻하게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신뢰를 주지 않았다.
아쟌 박은 결국 십년 휴직 기간 동안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그 대책 때문에 휴직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는 것이 두려웠다.
그의 꿈은 한국교회에서 선교적 신앙의 관점에서 목회를 하여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서 진정으로 선교에 임하는 교회와 신자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교회의 중심 신학은 한 사람의 영혼이 죄의 저주에서 구원을 받는 개인 구원에 초점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세상의 하나님 보다는 나의 하나님이 되는데 초점이 있다. 우리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강조되지 못한다.
신앙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는 통로로 강조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시랑의 실현으로 태어나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죽은 실현된 하나님의 사랑이러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세주, 나의 대속자, 나의 축복자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의 나무가 되었고 나는 그 사랑의 결실로 그 사랑을 실천하는 또 하나의 나무가 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소홀히 한다.
신자의 거룩과 성결한 생활은 교회 생활을 성실히 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므로 신자들의 삶을 교회에 가둬두고 기독교에만 편협한 사람들이 되게 한다. 그래서 교회에 열심인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등한히 하게 되고 자연히 교회의 삶과 사회생활이 구분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은 거룩한 장소인 하늘을 떠나서 죄가 많은 이 세상으로 내려왔으며, 하나님이지만 인간의 육체를 입고 죄와 싸우며 십자가 위에서 피투성이가 되면서 사랑을 실천한 거룩이라는 것을 그들은 외면하고 있다.
신자의 평안은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품은 마음으로 감사와 자족의 마음을 갖고 사랑할 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인데, 교회는 성공을 위해서 기도하라며 성공하지 못한 것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몰아쳤다.
천국은 아직 받지는 못하였지만 앞으로 받게 될 하나님의 마지막 사랑이다. 그러므로 항상 사랑에 지친 신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천국의 존재는 사랑하는 일에 동력이 되어 주고 순교의 자리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게 할 만큼,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최고의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 땅에서도 성공을 하고 천국에서는 더 더욱 잘 살고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면류관도 받고 우리가 가장 바라는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누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천국을 하나님의 사랑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한국교회의 신앙은 개인적 신앙이며 기복적 신앙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령의 역사를 개인의 신앙적 체험에 초점을 두게 하므로 성령의 열매인 사랑의 실천의 중요성을 무시하게 하므로 행함이 따르지 않는 죽은 믿음이 되는 것이다.
아쟌 박의 꿈은 이러한 한국교회에 목이 터져라 외쳐 설교를 하며 목회를 하고 싶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고 싶었다.
아쟌 박이 십년 휴직을 하고 떠난 후, 라후니 부족선교회는 더욱 견고하게 사역을 발전시켰다. 아쟌 박이 껍데기를 지어 놓았다고 한다면 이어서 대표를 맡았던 아쟌 리와 아쟌 신은 그 내실을 충실하게 만들었다고 평가 된다. 또 약속대로 아쟌 리는 사년의 대표직 수행 이후 후임자인 아쟌 신에게 대표직을 이양하고 자신은 그를 돕는 사역자가 되어서 선교회의 '내려가서 섬기는 전통'을 세우는 첫 돌을 놓았다.
아쟌 박은 휴직 후 4년차가 되어서 비로소 꿈을 품었던 대로 중대형의 한국교회에 담임목사가 되었다. 장년 신자가 일천 오백명, 어린이와 청소년 신자가 육백명이 되는 교회였다.
그는 선교적 신앙의 관점에서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육년 동안 목회를 했다.
그는 육년간의 목회에 충분한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교회는 그의 라후니 부족 귀임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그의 선교적 신앙을 높여 주기로 했다.
그가 일년 안식년을 마치고 선교지로 귀임하는 파송예배를 드리는 날 오백여 신자들은 울먹이는 눈으로 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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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메아이 선교센타는 몇일 간 분주했다.
12년만에 돌아오는 선교사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환영예배를 위해서 각양의 찬양을 준비했다.
선교사가 살게 될 집에 페인트를 칠했다.
그 동안 새로 부임한 선교사님들과 그 동안 세워진 라후니 부족의 일꾼들은 그가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큰 희망을 꿈꾸게 됐다.
빠스도 환영예배에 참석을 했다.
빠스는 오랜만에 메아이 선교센타에 이르렀다.
그리고 환영예배에 참석했다.
아내를 시켜 만든 미쳐(라후니족의 헝겁가방)을 아쟌 박의 어깨에 걸어 주었다.
아쟌 박이 그를 안아 주었다. 쑥스러웠다. 그러나 한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아쟌 박의 어깨에서 가방이 비뚜르미 흘러내렸다.
빠스는 아쟌 박의 어깨에 미쳐를 고쳐 매 주었다.
아쟌 박은 몽족 주인이 어린 짜러의 어깨에 미쳐를 고쳐 매 주던 장면을 상상했다.
"나는 라후니 부족의 종으로 팔려 나왔다."
환영예배에 얼굴을 내민 아쟌 박은 이제 초노의 나이가 된 평범한 사람이었다.
별반 다른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모두는 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던 모세처럼 그렇게 위대한 사람의 형상이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십년 동안 행하지 않았던 모든 일을 기적처럼 행할 수 있는 그런 초인이기를 은근히 바랬다.
늘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산 사람답게 외모부터 선한 분위기가 가득한 그런 사람이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는 그저 중년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는 초조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따라 성령으로 잉태 되어 태어난 아기, 하늘의 천사들이 노래를 부르고, 태어난 마굿간에 별빛이 비추었던 그 아기! 그 아기가 그저 평범한 아기였던 것처럼...
다만 그는 그 복잡한 삶을 살고 왔음에도 그냥 활짝 핀 웃음으로 웃고 있을 뿐이었다.
믿음이 주는 변하지 않는 웃음!!!
그는 도착 후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한국교회에게 눈을 감은 채 쓴 편지였다.
(2010년 12월 31일 초고를 끝내다.)
10년만에 돌아왔습니다.
돌아 온 우리를 모두가 반깁니다.
선교사님들, 쟌위롯 목사님 부부, 새로이 태어난 두 아이를 데리고 나온 레위 목사님 부부, 예배를 드리면서 힐끈 힐끈 뒤를 돌아보는 신학생들과 메아이의 학생들, 후이므앙 어린이들... 내일, 우리 부부를 환영하는 예배를 드린다고 산마을 전도사님들과 옛 동역자들이 쎈타로 내달려옵니다. 그리고 환한 웃음을 나누어줍니다.
10년 동안 우리는 떠났지만 이들은 내내 우리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뜻 안에서 인도하심을 믿으면서 세월을 지키어 오늘 만났습니다.
메아이쎈타는 모두 원숙한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10년 전, 묘목만 심어 놓고 떠났는데 아이들도, 영적모습도, 선교사님들의 유창한 라후어와 태국어도, 신학생들의 산을 울리는 기도소리도, 그리고 나무들도 하늘에 닿을 듯이 성장했습니다. 이들의 성장이 얼마나 큰지 나의 작은 안목으로는 다 볼 수 없어서 눈물이 나의 시야를 가리고 말았습니다. 그저 나의 고백은 '으자마자웨 어빠 으샤웨 어보어씨타 치므 치므웨요'(크고 높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뿐이었습니다.
이형국 선교사님을 비롯해서 모든 선교사님들이 우리의 정착을 도와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저희가 쓰던 옷장과 침대, 화장대, 작은 소파를 잘 보존했다가 저희의 방에 정돈하여 놓아 주셨습니다. 20년 세월에 낡기는 했지만 옛정이 물씬 솟아나게 했습니다.
어째든지 아내는 또 새로운 보금자리 마련을 마쳐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내의 기도소리가 아침을 깨우는 어떤 새소리 보다도 더 아름답게만 들립니다.
이제 남은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라후부족 사랑'이라는 주님의 소명으로 채워져 갈 것입니다.
형식적이었지만 성결교단 라후부족 선교부 대표인 이형국 선교사님께 협력사역을 요청했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당연한 일이며 또 감사한 일이라며 기쁘게 받아 주었습니다.
함께 일 할 선교사님들은 이형국, 유진규, 이영동, 유선정, 조종형, 한승석 선교사입니다.
앞으로 사역은 라후말과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역자들에게 설교를 위한 말씀 묵상법을 가르치면서 나는 라후말을 더욱 익히고 사역자들에게는 좀 더 감동이 있는 설교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하려고 합니다. 치앙라이교회와 루암밑 사역자, 한국 유학을 다녀 온 사역자들. 그래서 총6~7명이 함께 공부를 하게 될 것입니다. 아내는 태국사람들과 쎈타 식구들 중심으로 한국말교실을 열어 가르치면서 태국말을 완전하게 회복하려고 합니다.
엎드리는 새벽마다 주님의 기름 부으심이 저희의 머리에 가득합니다.
사명과 능력 그리고 사랑과 순종이 새벽을 깨우게 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저희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소명과 위로의 통로입니다.
메아이 하늘 아래서 여러분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그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5~6)
하늘에 닿는 물이 되어
/박윤식(재파송 되어 라후형제들에게로 돌아가며)
물이
하늘에 닿으려면
내려 가야한다.
물이
내려 흘러
바다가 되면
물은 수평선 한 점에서 하늘에 닿는다.
물이
파도 되어
하늘에서 돌아와 다시 땅에 이른 것은
하늘이 좋아
땅을 사랑한 것이다.
찰싹, 땅을 위로하고
철썩, 땅을 만져 새 일을 이루려는 것이다.
흩어진 발자국을 파도로 지워내고
라후사람 찾는 새 발걸음을 남기라는 것이다.
하늘에 닿은 물은
땅의 일을 거절한다.
하늘에 닿은 물은
하늘 것을 먹는다.
푸르면 푸르러
밤이 되면 검은 융단이 되어
해가 뜨면 불꽃으로
바람이면 하늘가까지 넘실이는 물결이 되어...
나는
기뻐 내려흐르는
하늘에 닿는 물이 되기를....
은혜를 간구한다.
(2010. 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