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유유자적 칼럼

<땅이름 찾아 떠나는 여행 69> 충청도(忠淸道)

작성자무념무상|작성시간19.11.12|조회수28 목록 댓글 0


<땅이름 찾아 떠나는 여행 69>

     

충청도(忠淸道)

       “1832626일 영국 상선 암허스트 호가 공충도(公忠道 · 충청도) 홍주 고대도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했다. 실록에는 이들이 누구며 원하는 바가 뭔지가 육하원칙에 따라 자세히 기록돼 있다.(1832721순조실록’)”

 

       박종인의 땅의 역사란 글을 읽다가 공충도(公忠道)’란 말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위키백과를 검색하니 공충도는 충청도의 옛 이름 중 하나였습니다. 1106(고려 예종 1)에 충주와 청주의 앞 글자를 따서 충청도라는 명칭이 처음 생긴 이후 충청도는 수없이 많은 개칭을 거듭한 끝에 충청도란 첫 이름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1413(태종 13)8()로 나뉘고, 충청도에 공주목, 청주목, 충주목, 홍주목(현 홍성군)이 설치되었는데, 이 네 곳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명칭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1505(연산군 11)에 충청을 내시 김처선의 출신지라 배척하여 조선시대 충청도의 중심지였던 공주의 앞 글자를 따서 충공도(忠公道)로 개칭하였으나 다음해 중종반정으로 회복하였습니다.

 

       1540(중종 35)에는 충주가 예성으로 강등되면서 다시 '청공도'(淸公道)가 되었으나 중종이 "무익"하다고 여겨 다음해 다시 복귀하였습니다. 1550(명종 5)에는 충주의 역모로 청홍도(淸洪道)라고 했고, 다시 선조 때 충청도로 회복하였습니다. 1598(선조 31)에 충청도 감영을 공주목으로 옮겼습니다. 1612(광해군 4)에는 청주에 역모가 발생해 충청도 서부의 중심지였던 홍주(홍성)의 앞글자를 따서 '충홍도'(忠洪道)로 개칭하였으나 다음 해 충주에서 유인발이 난을 일으키자 충주 역시 다시 강등되고 도명은 공홍도(公洪道)로 바뀌었다. 인조반정 이후 다시 충청도로 돌아갔습니다.

 

       1628(인조 6)에 괴산, 충주의 역모로 '공청도'(公淸道), 18년 뒤 다시 공주의 역모로 1646(인조 24) '홍청도'(洪淸道)로 고쳤고, 7(10)만인 1653(효종 4)에 다시 충주를 충원현에서 회복하여 충청도(忠淸道), 1658(효종 9)에 다시 청주를 서원현으로 강등하여 '충홍도'(忠洪道), 1661(현종 2)에 홍주의 역모로 '충공도'(忠公道)라고 했다가 다시 다음해 충청도로 삼았습니다. 다시 1680(숙종 6) '공청도'(公淸道), 1681(숙종7) 그 전해 청주의 간음사건으로 강등된 것을 청풍현이 있다고 뒤늦게 고쳐 '공홍도'(公洪道), 1689(숙종 15) 1'충홍도'로 하고 8월 다시 충청도로 회복했습니다.

 

       1735(영조 11)에는 청주와 충주가 모두 난을 일으켜 '공홍도'로 했다가 1747(영조 23)에 다시 충청도로 회복시켰습니다. 1777(정조 원년) '공충도'(公忠道), 1778(정조 2) '홍충도'로 했다가 다음해 회복했습니다. 1804(순조 4) '공충도', 1813(순조 13) 다시 충청도, 1817(순조 17)에는 '공청도', 1826(순조 26) 1월에는 다시 충청도라고 했으나 다시 10월에는 '공충도', 1834(순조 34)에서 헌종 즉위년 사이에 다시 충청도로 여러 번 개칭되었습니다. 1862(철종 13)에는 '공충도'(公忠道)로 개칭되었고, 1871(고종 8) 최종적으로 충청도로 돌아왔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