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엿보는 '인도이야기'
여행사진가 이성만 씨가 35일 동안 앵글에 담은 인도의 모습들
신비의 나라 인도. 어느 누구라도 미지의 자유로움을 찾아 훌쩍 그곳으로 떠나기를 희망한다. 어떤 이는 인도를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던가. “인류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이 땅에서 평화롭게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면 그곳은 바로 인도이다.” 라고 말이다. 세계 인구의 6분의 1인 1억의 인구가 모여 사는 대국이며, 그 안에 힌두교, 시크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종교와 철학과 사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자유의 터. 인도. 오늘은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배낭을 둘러메고 낯선 길을 떠나는 이방인이 되어 꿈에 그리던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자.
넉넉하지 않은 가난한 살림을 살면서도 목마른 나그네에게 차 한잔을 스스럼없이 건네주었던 아담한 농가의 아낙네. 남루한 모습이지만 세속에 물들지 않으며, 투명하고 깊은 눈빛을 지닌 평화로운 모습으로 구도의 길을 걷는 수행자들. 인도로 간 사진가 이성만 씨가 가까이 다가가서 엿본 인도에서의 더 생생하고 리얼한 삶의 흔적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긴 여행을 끝낸 후에야 인도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인도인의 번뇌와 고통의 세월을 담담하게 살아내는 모습은 현대인들에게 무한한자유와 내면의 평안을 주는 안식처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고 말한다.
그에게 인도행은 서울을 떠나오며 이미 고생을 각오했던 길이었다, 그러나 막상눈 앞에 펼쳐진 상황은 생각보다도 많이 달랐다. 그가 살던 곳과는 사뭇 다른 환경과 처음 대하며 겪었던 고생은 사진가에겐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겨져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은 인도에 대한 호기심으로 어느 사이 당찬 용감함으로 순식간에 바뀌어 갔다, 그때서야 정말 그들과 하나가 됨을 감지했다. 그리고 35일 동안을 지침도 없이 처음 가는 길을 떠나고 또 떠났다,
매일 별다른 반찬도 없이 중국식 볶음밥과 거친 밀가루를 얇게 펴서 화덕에 구워 만든 인도인의 주식 짜파티로 배를 채워야만 했다, 말이라고는 전혀 통하지 않는 가난한 시골마을을 혼자서 헤집고 다니며, 그들의 꾸밈이 없는 그대로의 생활 모습을 접하며 새로운 체험과 경험을 하게 되었다.
때로는 그곳에서 우리네 시골 풍경을 아주 많이 닮은 소박하고 성실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에게 잠시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했고 좋은 인상을 남겼다. 허름한 식당에서 사람들과 정다운 담소를 나누며 밤을 지새웠던 줄거운 추억, 암리차르에서 기도에 몰두하던 시크교도의 경건한 모습, 이틀을 친절하게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던 따스한 온정, 어느 깊은 산골에 시골 아주머니의 따뜻한 차 한 잔.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렇지만, 카메라만 달랑 메고서 이 집 저 집을 서슴없이 활보하며 셔터를 누르는 낯선 길손님이 반갑지 않았겠지만,그럼에도 너그러운 인심을 베풀어 주곤 했다.
이성만 씨는 그동안 결코 짧지 않았던 세월을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여행사진을 담아왔다. 매번 잊지 못할 기억과 재미있는 순간들과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매력이 있어 매번 낯선 나라의 얼굴들을 만나러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도 또한 예외이지 않았다. 인도는 칼라풀하고 다양한 색깔의 매력을 지니고 있어 더욱 신비로움과 흥미로움을 주었던 나라였다.
매일 15시간 이상을 추위를 이기며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고, 뼈속까지 아려오는 엄청나게 싸늘한 냉기가 스며드는 시멘트 호텔 방에서 옷을 입은 채로 침낭 속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던 순간들.광활한 사막을 찾아서 이틀 밤과 낮을 낙타 사파리를 단행하며 추위를 견디며 길을 걸었던 일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런 숫한 고생 중에서도 밤하늘에 영롱하게 반짝이는 찬란한 별들을 가슴에 담으며 그곳에서 새해를 맞았던 그날은 지금도 지울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사진은 말’ 이라고 언제나 변함없이 말하는 사진가 이성만 씨. 그는 35일 동안의 긴 인도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비록 인도라는 가난한 나라에서 21세기의 물질적 풍요를 벗어나 헐벗고 굶주리는 생을 살아가지만, 고유의 신앙심을 가지고정신세계를 지키며 평화와 자유를 추구하는 그들만의 행복함을 느끼는 생, 삶의 진정한 보물은 꼭 물질의 풍요에서만 오지 않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서의 35일의 긴 여행은 더욱 의미가 깊다. 그는 앞으로도 어느 나라에서 어떤 순간을 만나더라도 그만의 느낌과 생각을 사진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고 싶은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소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진제공/ 이성만 = http://www.photolees.net
글/ 윤경희 = 윤경희의 포토갤러리
그러나 인도 깊숙이 파고 들어가 헐벗음과 굶주림으로 가득 찬 삶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그리고 그런 참상들을 앵글에 맞추면서 나의 자세는 구도자(求道者)처럼 되어 가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낡은 등산복을 장삼(長衫)처럼 걸치고, 배낭을 바랑처럼 지고, 카메라를 염주처럼 움켜쥐고, 때로는 백성들을 쓰레기처럼 방치하고 있는 정치가들과, 민중들을 무지한 종교의 율례로 족쇄 채우고 있는 종교인들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때로는 그들의 고통이 가슴에 눈물처럼 젖어드는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둑이 많기로 악명 높은 아그라 행 야간 열차에서 배낭을 쇠사슬로 묶고도 카메라 장비를 잃을까 뜬눈으로 지새던 밤들, 15시간 이상 추위와 싸우던 밤 열차, 온수는 물론 찬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1,500원 짜리 호텔과 침낭 속에서의 새우잠, 이틀동안 추운 사막의 밤에서 보았던 별들의 찬란함, 반찬도 없는 중국식 Fried Rice를 주메뉴로 배를 채우면서 가난이 저주처럼 널려있는 시골마을을 헤매며 목격했던 어둡던 장면들, 그리고 카메라를 들이대므로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느끼던 죄책감들, 구걸을 요청하던 한 소녀의 애절한 눈빛, 헐벗고 굶주린 수행자들의 끝없는 고행들, 그 가슴아픈 장면들을 무엇을 위해 나는 그리도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던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갠지스 강 화장터에서 얻을 수 있었다. 매캐한 냄새 속에서 훨훨 타오르는 시신을 끝없이 바라보면서 열반(涅槃)을 갈구하는 인도인들의 모습은 차라리 거룩 그대로였다. 죄를 씻고 해탈과 영생을 얻기 위해 강가에 뛰어들어 몸을 씻고 그 물과 함께 살다가 때가 되면 육체의 옷을 미련 없이 벗어 던지고 물처럼 사라져 가는 인생들. 이방인들의 눈에는 그 강은 불결한 물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는 대지의 젖줄이자 영원에 대한 생명수이며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인도여행을 시작할 때는 그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잘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써의 오만이 뻣뻣이 고개 들고 있었다. 그러나 여행하면서 인도인들이 그 참담한 빈곤 속에서도 초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면서 물질의 풍요가 높아갈수록 정신적으로 퇴행(退行)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다는 생각으로 사치한 오만을 버릴 수 있었다. 앞으로는, 사진가로서 가려진 사람들의 "생애의 비밀"을 찾아 구도자의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카메라 앵글을 맞추리라.
* 위의 글은 제1차 인도여행을 끝내고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