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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곽리(東郭履)

작성자페 리 호|작성시간26.06.19|조회수4 목록 댓글 0

동곽리(東郭履)

동곽의 신발이라는 뜻으로,

매우 가난함을 비유한 말이다.

東 : 동녘 동
郭 : 성곽 곽
履 : 신발 리

 

출전 :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효무제(孝武帝) 때 제(齊)나라 사람

동방 선생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름을 삭이라 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책을 좋아하고

경술을 사랑하며 경사 외의 전기나 잡설도 두루 읽었다.

효무제 때 대장군 위청(衛靑)은 위(衛)나라

황후의 오빠로 장평후(長平侯)에 봉해졌다.

 

그는 종군하여 흉노를 무찌르고

포로들을 잡아 공을 세웠다.

 

그가 돌아오자 황제는

조서(詔書)를 내려 황금 천근을 내렸다.

위청이 궁궐을 나서자, 그 당시

공거(貢擧; 조정의 공문과 신하나 백성들의

상소문을 처리하는 부서)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던 동곽선생(東郭先生)이

수레를 가로 막고는 절을 하며 말했다.

동곽왈, “왕 부인께서는

새로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습니다만

그녀의 집이 가난합니다.

 

지금 장군께서 황금 천근을 받았으니,

부디 왕 부인의 부모님께 그 절반을 주십시오.

 

황제께서 이 일을 들으면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이는 매우 기이한 것으로

실행하기도 편리한 계책입니다.”

위청은 감사의 말을 하고는 동곽선생의 말대로

황금 오백 근을 왕부인의 부모에게 주었다.

 

며칠 후, 이 소식을 들은 왕부인은

위청의 행동에 감사하며 무제에게 말 했다.

그러자 무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대장군은 이런 일을 할 줄 모른다.”

 

그리고는 위청을 불러 이런 계책을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물었다.

위청은 말했다. “조서를 기다리고 있는

동곽선생에게 받았습니다.”

 

이에 황제는 조서를 내려 동곽선생을 부르고

군(郡)의 도위(徒尉)로 임명하였다.

동곽선생은 오랫동안 공거(貢擧)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빈곤하여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으며,

옷은 해지고 신발도 온전치 못해서

눈 속을 걸어가면

 

신발이 위만 있고 바닥은 없어서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

길 가던 사람들이 동곽선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배를 쥐고 웃자

동곽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신을 신고 눈 속을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볼 때 그 위는 신발이지만

아래는 사람의 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소?”

동곽리(東郭履)는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운

동곽선생의 신(履)이 닳고 달아 신의 윗면만 있고

밑면은 없어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가난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예로부터 선비는 가난을 미덕으로 삼았다.

이 동곽선생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청빈한 선비의 모습을 살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지혜를 덜어 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도

복록이 미치고 그 복록의 힘으로 스스로의

영예까지 걺어쥐는 지혜를 살필 수 있다.

즉, 지혜의 번짐을 넓고도 크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으려면

사심을 버린 도량이 필요하다.

 

계산속에서 이런 지혜가

나올리는 만무하다.

 

-옮긴 글 빛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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