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서문 無比스님 특강
(師)
왜냐하면 기록한 사람이니까,
기록한 사람이 썼으니까,
제자가! 임제스님의 제자가 기록을 했으니까,
자기 스승을 뭐라고 표현 하겠어요.
대(大) 임제라고 쓰기도 그렇고 해서
스승 사(師)자 하나로 표현합니다.
임제스님이
황벽스님의 회하(黃檗會下)에,
황벽스님의 회상에 있었다
처음에, 행업이순일(行嶪純一)이라,
행업(行業)이라고 하는 말은,
선원생활이 선방에서 공부하는
그런 행동거지가 아주 순수하면서 순진해!
그대로 밥만 먹으면 참선하고
밥 먹고 그저 오직 그 뿐이라!
옆도 돌아보지 않고 누구하고
잡담하는 적도 없고 그렇게 아주
올 곧게 수행을 잘했다 이거야!
괜히 기도하러 가 갖고
내~ 잡담만 하고 시장 돌아가는
이야기나 하고 그리고는 몇 시간
있다가 쑥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기도만 하지 옆도 안 돌아보고
말 한마디 안 떼고 순수하게 하는
그런 경우를 (行業純一)이라 그럽니다.
임제스님의 선방 생활이 그랬다는 거예요.
수좌내탄왈(首座乃歎曰),
수좌는 목주스님인데
그 당시에 수좌 이것은 소임 이예요.
선방에서 제일 밑에 사람을 지도하는
사람은 수좌입니다.
조실은 황벽스님이고,
대중을 관리하고 지도하고 하는 사람이죠.
이 사람은 공부를 잘 한다 못한다,
이 사람은 저기 조실스님께 가서
점검받게 해야 되겠다 아니면 자기가
어느 정도 이렇게 가르쳐야 되겠다
등등 그런 책임을 진이가 수좌인데
목주스님입니다.
수좌내탄왈(首座乃歎曰)이에,
아주 찬탄해 말하기를
수시후생(雖是後生)이나, 비록 후배이지만
이제 선방에 늦게 온 사람이지만은
여중유이(與衆有異)이다.
대중들과 더불어 다르니이다.
딴 대중하고 다르다 이거야,
공부하는 태도가 벌써 달라.
대개 어디가도 그래요.
뛰어날 사람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벌써 공부하는
자세가 틀려요. 그래야 뭐
남다른 공부를 하지,
남하고 똑 같아 가지고야
남 달라 질수가 없는 거죠.
여중유이(與衆有異)이다,
대중들과 더불어 다르니이다.
그래서 이제 가만히 살펴보니 그렇거든
보통 중국의 총림의 대중이라고 하는 것은
무려 500명, 700명, 1000명, 2000명,
3000명 까지 한 사찰에 그렇게 살아요.
그런데 누가 어떻게 사는지 제대로
눈에 뛸 수가 없다 구요.
그런 데 워낙 철저히 잘 하면 수좌 눈에
뛸 수가 있겠죠. 3년 만에 뛰었다는 거예요.
여기에 보면 그래서 수좌가 물었어요.
"상좌재차다소시(上座在此多少時)오".
상좌가 여기에 있은 지가 얼마나 되었느냐?
다소시(多少時)오, 얼마나 되었느냐?
그러니까 이제 임제 스님이 있다가,
사운,삼년(師云, 三年이니다) 3년 되었습니다.
이 선방와서 공부한지가 3년이 되었다.
중이 맞대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예요.
임제스님은, 다른데서 경학을 오랫동안 봤어요.
많이 봤습니다 경학을, 아주 본래 율를 10년
공부하고 경을 보고 이제 선방에 간다.
이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최소한도 10년에서
15년 이상 경전을 봤다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불교에 대한 그런 교리적인 것,
이론적인 것은 환히 꽤 뚫고 있는 그런 상태에서
이제 선방에 와 가지고 3년 되었다 이거야,
---
수좌가 말하기를
증참문야무(曾參問也無),
참문(參問)이라고 하는 말은,
가서 물었느냐? 공부에 대해서
조실스님한테 가서 물은 적이 있느냐?
이렇게 물었어요. 사운 불승참문
(師云 不曾參問)이니다.
한 번도 가서 물은 적이 없습니다.
아니! 3년이나 선방에 와서 살면서,
보아하니 그리 공부도 잘하는 것 같은데
왜 가서 공부에 대해서 묻지를 않았느냐?
이 말 입니다. 그런데 묻지를 않았는데
"부지문개십마(不知問箇什麻)오"
"어떻게 물어야 할지를 몰라서 그랬습니다”
"어떻게 물어야 할지 내가 모르겠습니다.”
그냥 내 나름대로 끙끙대고 공부만 했다 이거야,
그러니까
아~ 수좌운(首座云), 수좌가 말하기를
여하불거문당두화상(汝何不去問堂頭和尙),
당두화상이라고 하는 것은
(큰스님, 방장스님, 선지식스님
말하자면 황벽스님입니다
여기서는) 당두화상! 방장스님께 가서
왜 묻지를 않았느냐?
가서 이렇게 물어야 된다
가서 물으려면,
여하시불법적적대의(如何是佛法的的大意),
어떤 것이 불법의 적적대의냐?
명확한 대의냐?
불법대의! 불법의 대의가 과연 무엇이냐?
이것이 중요한 것 아니냐?
그거 알려고 너가 여기와서 공부하는 것이고,
모든 불자는 승속을 막론하고
모든 불자는 전부 그게 숙제다 이거야,
그게 과제다. 불법대의가 뭐냐 이거야,
기도도 그것 때문에 하는 것이고 참선도,
경전공부도 그것 때문에 하는거야,
원래의 뜻은 그렇습니다. 원래의뜻은
불교적인 모든 그 행위는
이 문제 하나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불법 대의가 뭐냐?
정말로 불법이 뭐냐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그래 가서
어떤 것이 불법의 적적대의냐?
명확한, 분명한 대의냐,
불법대의라해도 좋고
불법적적대의라해도 상관없어요.
불법의 명확한 뜻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해서 물으면 되는데
왜 그걸 안 묻느냐? 그거 아는것이
모든 수행자의 큰 화두이고
큰 과제이고 큰 문제 아니냐,
이 문제 밖에 더 있느냐 이거야,
불법의 대의가 무엇이냐?
불법대의가 무엇인지 그거 아는 것이
모든 수행자 또는 모든 불자의 화두이지
뭐 딴 것이 있느냐!
그래서 가서 그대로 물었어요.
어떤 것이 불법대의냐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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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절(聲未絶)에,
어떤 것이 불법의 적적대의 입니까
라고 하는 소리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말 황벽편타(黃檗便打)라!
황벽스님이 곧 방맹이로 때렸다 이거야!
방맹이로 때렸는데
이건 그래 한번 딱 때리고 만 것이 아니라
그러면 싱거워서 안돼죠.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어요.
무려 스무번을 내려 쳤다고 그렇게 되어있어요.
스무번이나, 그러니까 뭐 정신을 차릴수가 없죠.
선지식들이 때릴 때 인정사정 보고
어디 다칠거다 어디 깨질거다 이런 거
생각하고 때리는 것이 아니예요.
그냥 사정없이 후려치는 거예요.
그래서 고봉스님의 제자
준공스님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 고봉스님은 사후방에 들어가 있는데
밑에는 사다리를 놓아야만
겨우 올라갈 수가 있어요.
그런데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는데
이 고봉스님이 사다리를 밀쳐버렸어요.
그래 중간에 올라가던 준공,
아주 공부 잘 하는 제자가, 법을 이은 제자죠
그 분이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어.
그래도 그거 문제도 되지 않는 거예요.
그런 정도로
이 선에는 참 생명에 대한 문제 이해가
중요한 것이지 이놈의 몸뚱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은 문제를 삼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또 이 육신을 이렇게 말하자면
몽둥이로 때림을 통해서 비로소
참 생명의 눈을 떠 라는 거예요.
참 생명의 눈을 떠라!
맞는다고 다 눈 떠는 것도 아니지만
공부가 되어 있으면
또 눈을 떨 수도 있는 거예요.
편타(便打)라!
곧바로 때렸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곧 바로 때렸다. 이건 뭡니까?
그 나름대로 황벽스님은 불법대의를
보여 준거예요. 불법대의를
불법적적대의를, 불법을 진짜 보여 준거예요.
불법대의를 물었는데 그기에 대한 답이니까
어쨌거나, 그기에 대한 답으로서 이렇게
스무번을 방맹이로 때린 거예요.
여기에 우리가 마음을 열게 해서
이 문제에 마음을 써야해요.
임제록이 어렵다면 이런 의미가,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여기 이 관계속에서 과연 무엇이 있는가?
불법을 물어 보는데 때렸다.
불법을 아주 제대로 말하자면 받은 거죠.
제대로 받았는데
그것을 불법에 대한 눈을 떴느냐 못 떴느냐
하는 것은 맞는 사람의 당사자의 문제죠.
어쨌든 황벽스님은 자기가 가진 불법을
남김없이 보여준 것이고
뭐 달리 아이구 금강경이 뭐 어떻고
화엄경이 어떻고 이런 식으로 한 것이 아니예요.
그렇게 너즐한 소리 할 겨를이 없는 거예요.
정말 살아 있는 그런 불법을 보여줬는데
여기에 눈을 떠느냐 못 떠느냐 하는 것은
이제 맞는 사람 당사자의 문제죠.
그래서 사하래(師下來)라!
임제스님이 다시 내려왔어요.
수좌가 말하기를
질문하고 이제 선방으로 내려오니까,
수좌가 기다리고 있다가 문화작마생
(問話作麽生)고,
물으러 갔던 전후 이야기가 어떠냐?
문화(問話)가?
물은 그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어떠냐?
어떻게 물었고 어떻게 답 하더냐?
그걸 이제 수좌가 물었죠.
사운,모갑문성미절
(師云, 某甲問聲未絶)에,
내가 묻는 말이 끊어지기도 전에
화상 편타하니
모갑불회(和尙이便打하니 某甲不會)니다.
화상(황벽스님)이 곧 나를 후려 때려 쳤으니
모갑(某甲),
제 자신은 무슨 뜻 인지 모르겠습니다
.
회(會)는 알 회(會)자예요. 알지를 못하겠습니다.
무슨뜻인지, 내가 불법대의를 물었는데
나를 그렇게 후려쳤으니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수좌가 다시 말하기를
“그럼 다시 가서 물어 보아라”네가 모르니
다시 가서 물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뭐 할 일이 없지 않느냐?
어차피 이거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단경거문(但更去問)하라!
다만 다시가서 물을 일 뿐이지 않느냐?
그러니까 사우거문 (師又去問)이라,
또 몇일후에 바로간게 아닙니다.
여러날이 걸린거죠.
몇 일 있다가 또 올라가서 또 물었습니다.
황벽이 우타(黃檗又打)라!
또 황벽스님이 또 그렇게 때렸어요.
여시삼도발문(如是三度發問)하고,
이와 같이 세 번묻고 삼도피타
(三度被打)라! 세 번 얻어 맞았다.
한번에 스무방씩 그렇게 정신도
못 차릴 정도로 그렇게 얻어 맞았으니
오죽 했겠습니까?
그리고 이 임제스님이
오로지 그저 불법대의가 무언지?
진정한 뜻이 무언지를 알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오롯한 그런 마음으로도 얻어 맞았으니
그게 뭐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말로만
남의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지만,
그 순간의 그 두 분들의 오고 간 마음과
그 느낌이 어떠했는지는 감히 우리가
상상하기도 어려운 그런 경우이지요.
세 번 묻고 세 번맞다.
사하래 수좌운(師下來에 首座云),
임제스님이 다시 와가지고
수좌에게 고백해서 말하기를
행몽자비(幸蒙慈悲)하야,
다행히 수좌스님이 가서 물으라고 하는
그런 자비로운 가르침을 내가 입어서
영모갑문범화상하야 삼도발문
(令某甲問訊和尙하야 三度發問)에
큰스님 화상에게 묻게 되기는 했는데,
3년 동안이나 살면서 질문할 줄도 몰랐는데
그렇게 가서 질문하고
세 번 묻고 세 번 얻어 맞기만 하였습니다.
자한장연(自恨障緣)으로
스스로 한탄하는 것은 장애의 인연으로
불영심지하니 금차사거
(不領深旨하니 今且辭去)하노이다,
황벽스님의 깊은 뜻을 내가 알지 못하겠으니
저는 지금 떠나겠습니다.
※
금차사거(今且辭去),
황벽스님과도 인연이 없고 이 도량하고도
인연이 없는 가 봅니다.
다행히
스님이 가서 물으라 해서 묻기는 했습니다만은
나한테 도에 대한 그런 어떤 장애가
너무 많은 모양입니다.
도대체 내가 이런 처지가 돼 가지고
더 이상 여기에 살 마음도 없습니다.
그래서 떠 날려고 합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수좌가 있다가
여약거시 수사화상거
(首座云, 汝若去時에는 須辭和尙去)하라,
만약 갈려면 대개 이제 스님들이 갈려면
간다온다 소리 없이 가죠.
그런데 특별히 수좌가 이렇게 했어요,
그럼 간다고 화상께 하직 인사라도 하고 가라,
하직 인사라도 하고 가면 뭔가 다른
어떤 지시가 또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세 번이나 그렇게 물으러 갔다가
세 번이나 정말 죽도록 얻어맞고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너무 섭섭하고
참 죽고 싶은 그런 아주 너무나 절박한 심정이죠.
그러니까, 사례배(師禮拜)라, 예배하고 물러났죠.
그런데
그걸 알려준 수좌스님이
황벽스님께 먼저 가 가지고
그 이야기를 했어요.
전번에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그 사람이
근기가 아주 상당히 괜찮은 것 같은데,
이 도량의 스님 밑을 떠 날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스님께서 좀 잘 선처해주라고
가서 이야기를 한 거예요 수좌가,
일종의 비서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황벽스님 계신 곳에 가서 물으러 왔던
그 후배가 법의 그릇이 제대로 된,
아주 여법한 사람이라 말이죠.
만약에 하직 인사하러 오면
좀 잘 봐주십시오.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때리기만 한다고
그 높은 뜻을 알아듣습니까?
그 사람을 잘 거두어 주면 앞으로 큰 그릇이
될 만한 사람인데 저런 사람 놓칠까 싶어서
안타까운 거야, 안타까워서 가서 수좌는
황벽스님께 그렇게 이야기 한거죠.
앞으로 잘 다듬고 단련하면
한 그루의 큰 나무를 만들어 가지고서
천하 사람들이 그 밑에 와서 그 그늘 밑에서
쉬어 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정도의 아주 큰
그늘을 드리워 줄 수 있는
그런 인물이 될 것 같습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그러니까,
어떻게 잘 좀 거두어 주시라고,
그래 저런 사람 놓칠까봐 안타까운 거야,
잘 만하면 아주 크게 깨달아 가지고
큰 선지식이 될만한 사람인데
수좌가 그렇게 본거예요.
수좌 역할이 아주 컸어요.
임제스님은 그 사실을 몰랐죠.
황벽스님께 가서 하직할 것을
떠날 것을 이야기 하니까,
황벽스님이 말하기를 "딴 데 가지마라,
너가 떠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다른 데는
가지 말고 여기 내가 일러 준 데 로 가라." 그래요.
왕(지명)이라고 하는 지역의 강가 항구에
대우라고 하는 스님이 살고 있는데,
그기를 가라. 그기에 가면 소득이
있을 줄 모른다. 다른 데는 가지 말고
그 대우 선지식한테 가면 있을 거다. 그랬어요.
그 아까 두 구절의 서문에 황벽산두에 증조통방!
(黃檗山頭에 曾遭痛棒)하고,
하는 것이 황벽스님께 세 번 묻고 세 번 죽도록
얻어맞은 것 지금까지, 그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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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스님과 인연 이니까,
대우늑하에 방해축권이라!
(大愚肋下에 方解築拳이로다),
대우스님의 옆구리에
세 번 주먹질을 할 수 있었다.
주먹을 쥐어박을 수 있었다라는,
그 얘기가
여기서부터 이제 시작 되는 거죠.
반드시 그대를 위해서 뭔가 얘기가 있을 것이다.
임제스님이 대우스님께 가니까,
대우스님이 묻기를 "어느 곳에서 왔느냐"?
황벽스님 계신 곳에서 왔습니다.
대우스님이 말하기를
그러면 황벽스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더냐"?
임제스님이 말하기를 세 번이나
불법 적적 대의를 물었다가
세 번이나 죽도록 얻어맞았습니다.
나는 그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이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무슨 허물이 있어서 맞았습니까?
무슨 죄가 있어서, 무슨 잘못이 있어서
맞아도 보통 맞은 것이 아니니까.
그래 그걸 대우스님께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대우스님의 대답이 아주 대단합니다.
황벽스님이
그대를 위해 가지고서
정말 그렇게 노파심절!
팔십 먹은 어머니가 육십 먹은 아들을
차 조심하라고 나갈때 일러주는 그런 정도로
노파심절하게, 간절하게 너를 위해서
뼈에 사무치도록 정말 깊이깊이 사무치도록
철저하게도 잘도 가르쳤건만은,
다시 여기 나한테 까지 와서는
무슨 내가 허물이 있느냐,
무슨 죄가 있느냐 없느냐
무슨 잘못이 있어 이렇게 나를 때리느냐
하고 이렇게 묻느냐! 참으로 딱하다.
내가 너를 보니 참으로 너무 딱하다.
그 황벽스님은
누구에게도 베풀지 않는
그런 노파심절한 자비심을 베풀어서 그렇게
철저히 잘도 가르쳤건만, 너는 여기 와서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 뭔 잘못을 했길래
나를 이렇게 때리느냐 하고
이런 어린 아이 같은 그런 거 철딱서니 없는
그런 소리를 하니 참으로 기가 찬다.
그런 이야기를 한 거예요,
대우스님이, 그러니까 세 번 때린 것이
그게 미워서 때렸겠어요?
어쨌든 불법 적적대의를 물었으니까,
불법적적대의를 철저하게 보여준 거라.
몸으로 느끼도록 해 준거예요,
거기에 뭐가 있습니까?
때린 사람이 있고
맞는 사람이 있어요.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기에 불법이 다 있다는 거예요.
때린 사람이 있고 맞는 사람이 있고
그 맞고 아픔을 느끼는 그 사람이 있어요.
그기에 부처님이 있고 불법이 있고 불교의
모든 것이 그기에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이제 못 깨달았으니까,
그 대우스님의 설명이 기가 막히는 거예요.
그렇게 노파심절하게 친절하고도 자상하게
가르쳤건만은 여기 와 가지고
무슨 내가 잘못이 있느냐 없느냐 이렇게 하니
참 안타깝고 기가 찬다. 그러니까 그 말 듣고
임제스님이 바로 크게 깨달은 거라.
그 말에 바로 그기에 있었구나!
바로 그 것이구나!
정말 때리고
맞고
그 아픔을 느끼는
정말 정신이 나갈 정도로,
정말 뭐 기절할 정도로 얻어맞은 바로 그 순간
그기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것을 비로소 크게
깨달은 거야. 그리고 한 말이 유명한 말입니다.
※
원래
황벽불법이 무다자(無多子)라!
원래 황벽스님의 불법이 별것 아니구나!
무다자(無多子)다자가 없다, 많은 것이 없다.
고작 이거야!
황벽스님의 불법이란게 뭐야!
기껏 이거냐고,
이렇게 아주 큰소리 친 거예요.
이 말이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원래 황벽불법이 무다자(無多子)라!
이것은
우리가 생각으로 뭐 이렇게 사량 분별해가지고
어떤 사전을 통해서 이해할 그런 경지가 아니예요.
우리는 기껏해야 생각으로 지금 끼어 맞추고는
있습니다만은 그게 아닙니다.
지금 여기는 그런 상황이 아닌 거예요.
생각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생각이 끊어지고
한 생각의 일어나기 이전 자리고,
일어났으면 그 생각이 다 끊어진 자리!
무념무상의 경지라고나 할까?
바로 그런 자리죠. 그러니까
대우스님이 기도 안 차거든
또, 대우스님이 들으니까
아까는 뭐 징징 짜는 소리해 가면서,
나한테 잘못이 있느냐 어쩌냐 그러더니
지금 와서는 그 하늘같은 황벽스님을 같다가
황벽불법이 기껏 이것 뿐 이냐고
이게 뭐냐, 시시한 것 이것 뿐 이냐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니
대우스님이
멱살을 딱 잡고는 이 요상귀자야! (尿牀鬼子:
잠자리 이불에다가 오줌 싸는 어린놈)
오줌싸개 같은 놈! 왜 오줌싸개냐?
황벽스님 밑에 있다가 오줌 싸고는 말하자면은,
소금 얻으러 가라고 대우스님께 보낸 택이 된거야
또 돌아가야 돼!
결국은 또 황벽스님께 돌아갈 처지야!
소금 얻었으니 돌아가야지,
그래서 이제 표현이 그거야, 야!
오줌싸개 같은 어린 자식아!
아까는 와 가지고 뭐 잘못이 있느냐
없느냐라고 그렇게 말하더니
지금은 황벽불법이 무다자라고?
황벽불법이 별것 아니라고,
그렇게 말 하냐 이거야,
대우스님도
참! 황벽불법! 스승이고 도반이고
아주 천하에 황벽이고 천하의 대우인데,
황벽불법을 그렇게 말하니까
자기가 무시당한 것과 같죠.
그러니까 이제 네가 그렇게 큰 소리치는데
도대체 무슨 도리를 봤느냐?
뭘 알았느냐?
네가 뭔가 알아도 안 것이 있으니까,
그런 소리 할 것 아니냐!
이런 말이죠.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빨리 일러 보아라
도대체 뭘 알았기에
그런 큰소리치느냐? 빨리 말해봐! 그러니까
그때
임제스님이 대우스님의 옆구리에다
축삼권(築三拳)이라!
세 번 주먹질을 옆구리에다
죽어라고 후려 친 거예요.
세번 주먹으로 때리니까
멱살을 잡았던 대우스님이
임제스님을 밀쳐버리면서
"너의 스승은 황벽이다.”
“나 하고는 내 일하고는 관계없다.”
이렇게 이제 표현을 했습니다.
이게 이제 깨닫기는 대우스님한테 와서 깨달았죠.
대우스님의
아~~그렇게 자비스럽고 노파심절하게
잘 가르쳤는데,
여기 와서 무슨 그런 잘못이 없느냐
있느냐? 그런 소리를 하느냐 하는
그 말에 깨닫기는 했지만, 결국은 그래도
그 근원을 추적해 보면 결국
황벽스님이 친절하게도 스무 방맹이 씩을
무려 세 번이나 그렇게 후려쳐서
보여준 그기에 말하자면 이미 공부가
다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 하고는
관계없다. 너의 스승은 황벽이다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이게 뭐 무슨 전체 작용이다
기용개시다
정말 인간이 말하자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 속에다 포함되어 있는
그런 내용이죠. 말하자면
참 거~ 시원스런 대목이죠.
특히 대우스님이
“너의 스승은 황벽이고, 나에게는 관계없다
” 정말 아주 폭우가 쏟아져서 물이 넘실대면서
흘러가는 그런 아주 시원스런 그런 대목입니다.
정말 지저분한 것이 하나 없죠.
아주 간결하고 너무나 간결 하죠,
너무도 자연스럽기도 하고 여기에 말하자면
임제스님의 공부 살림살이가 여기에 다
표현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은 없어요 사실은
이 대목의 이것이
임제스님의 전체 살림이고,
또 불교의 전체이고
역대 조사스님들의 모든 깨달음이
바로 이 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앞으로
이제 이야기 되어질
모든 임제스님의 고준한 설법이라든지,
또 사람 관계에 있어서 어떤 법 거량 이라든지,
이런 것은 전부 바로 여기서 이 깨달음에서부터
파생되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정말 정신없을 정도로
때렸을 때,
또 맞은 사람과
또 때린 사람의
그 마음과, 맞은 사람의 어떤 그 느낌과,
여기에 그야말로 온 우주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고 불법 뿐만 아니라,
모든 부처님과 불법,
온 우주 삼라만상까지가 전부
그 속에 다 표현되어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로
우리가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이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이 간단한 깨달음에서,
수많은 그런 높고 낮은 근기에 맞는
그런 그 가르침이 또 펼쳐집니다.
이런 내용은 너무나도 이제 참~
어떤 의미에서 보면
깨달음의 경지이기 때문에 아주 고준하지요.
그러면서 저기 시중이라고 해서
일반 법문에는 들어가면
우리가 사량 분별로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그런 내용들도
상당히 많이 있고 그렇습니다.
임제록
공부가 뭐 다~100% 이해 되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어떤 공부도 아니고요.
요건 이제 스스로 느끼고 참구를 하고
또 공부를 해가면서 공부한 만치,
이것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그런 일입니다.
일상생활에
무슨 아주 눈에 번쩍 뛰는 그런 명구가 있어서
무슨 내 놓을 만한 그런 말보다는,
정말 이런 법이 오고 가는 여기에 정신을
잘 가다듬으면, 참으로 우리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자기 자신이 어떤 것이다 라고 하는 것,
불법은
진정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닌 것,
이것이 참으로 진정한 불법이다라고, 하는
이런 것 들을 조금씩 이해 해가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