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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單한 行狀 2
適丁兵革하야 師卽棄去하니 大尉黙君和가
於城中에 捨宅爲寺하니 亦以臨濟爲額하고
迎師居焉하니라 後拂衣南邁하야
至河府하니 府主王常侍가 延以師禮하니
住未幾에 卽來大名府興化寺하야 居于東堂하니라
師無疾하고 忽一日에 攝衣據坐하야 與三聖問答畢하고
寂然而逝하니
時唐咸通八年丁亥 孟陬月十日也니라
門人以師全身으로 建塔于大名府西北隅하니
勅謚慧照禪師요 塔號澄靈이라
合掌稽首하야 記師大畧하노라
住鎭州保壽嗣法小師 延沼謹書
住大名府興化嗣法小師 存獎校勘
簡單한 行狀 2
適丁兵革하야 師卽棄去하니
적정병혁 사즉기거
大尉黙君和가 於城中에 捨宅爲寺하니
대위묵군화 어성중 사택위사
亦以臨濟爲額하고 迎師居焉하니라
역이임제위액 영사거언
後拂衣南邁하야 至河府하니
후불의남매 지하부
府主王常侍가 延以師禮하니
부주왕상시 연이사례
住未幾에 卽來大名府興化寺하야
주미기 즉래대명부흥화사
居于東堂하니라 師無疾하고
거우동당 사무질
忽一日에 攝衣據坐하야
홀일일 섭의거좌
與三聖問答畢하고 寂然而逝하니
여삼성문답필 적연이서
時唐咸通八年丁亥
시당함통팔년정해
孟陬月十日也니라 門人以師全身으로
맹추월십일야 문인이사전신
建塔于大名府西北隅하니
건탑우대명부서북우
勅謚慧照禪師요 塔號澄靈이라
칙시혜조선사 탑호징령
合掌稽首하야 記師大諡하노라
합장계수 기사대략
그 때 마침 난리가 나서 그 곳을 떠나셨다.
태위 묵군화가 성안에 있는 자기의 집을
희사하여 절로 만들었다.
역시‘임제’라는 액호를 달고
스님을 맞아 계시도록 하였다.
뒤에 옷깃을 떨치고 남쪽으로 향하여
하북부에 이르렀다.
부주인 왕상시가 제자의 예를 갖추어 맞이하였다.
거기에 머무신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대명부의 흥화사로 옮겨 동당에 기거하였다.
스님은 병이 없으셨는데
하루는 옷깃을 여미고 자리에 앉으시더니
삼성 스님과 문답을 마치시고 조용히 돌아가셨다.
때는 당나라 함통 8년 정해(867) 정월 10일이었다.
문인들이 스님의 전신을 대명부 서북쪽에
탑을 세워 모셨다.
시호는 혜조 선사,
탑호는 징령이라 하였다.
합장하고 머리 숙여
스님의 행장을 간단히 쓰노라.
適丁兵革하야 師卽棄去하니
적정병혁 사즉기거
大尉黙君和가 於城中에 捨宅爲寺하니
대위묵군화 어성중 사택위사
마침 병란이 일어났어.
중국에는 끊임없이 병란이 일어나니까.
그래가지고 힘센 놈이 지역이 넓히고,
군사 많이 모으고, 땅 하나 점령하고
그러면 그만 자기 나라가 되는 거야.
삼국지도 그렇고, 다 그런 역사지.
중국의 역사는 끊임없이 그런 역사야.
그래서 여기도 보면 전쟁이 일어났다 했는데
그 당시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났죠.
“사즉기거(師卽棄去)하니”스님이
거기에 전쟁이 일어났으니까 버리고 가버렸죠.
그리고 태위인 묵군화가 자기 집을
절을 만들도록 했어요.
亦以臨濟爲額하고 迎師居焉하니라
역이임제위액 영사거언
後拂衣南邁하야 至河府하니
후불의남매 지하부
그렇게 해서‘임제’라는 편액을 달게 되었죠.
그래서‘임제원’이렇게 하는 거야.
스님을 영접해서 거기에 살게 했다.
뒤에 옷을 떨치고 남쪽에 가서 하북부에 이르렀어
府主王常侍가 延以師禮하니
부주왕상시 연이사례
住未幾에 卽來大名府興化寺하야
주미기 즉래대명부흥화사
그래서 부주왕상시,
저 앞에서 처음에 나왔죠?
부주왕상시가 맞이해서 스님을 예로서 대접,
스승으로 예를 하고 거기에 머문 지 오래지
아니해서 대명부흥화사로 가게 되었죠.
居于東堂하니라 師無疾하고 忽一日에 攝衣據坐하야
거우동당 사무질 홀일일 섭의거좌
그래서 흥화사 동당에 머물러 있다가
스님이 아무 병도 없이 홀연히
어느 날 옷을 바르게 입고는
반듯하게 앉아가지고
與三聖問答畢하고 寂然而逝하니 時唐咸通八年丁亥
여삼성문답필 적연이서 시당함통팔년정해
삼성과 더불어 문답을 해 마치고 고요히 가시니,
스님은 당나라 함통 8년(867)이예요. 함통 8년 정해
孟陬月十日也니라 門人以師全身으로
맹추월십일야 문인이사전신
建塔于大名府西北隅하니
건탑우대명부서북우
‘맹추월’은 정월입니다.
정월 10일에 돌아 가셨는데
문인이 전신으로서
대명부 서쪽 모퉁이에다 탑을 세웠어.
중국에는 화장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화장을 안 하고 그대로 탑에 넣기도 하고,
그대로 또 3년 후에 꺼내가지고 습기가
다 없어지면 그걸 금칠을 해가지고
그대로 모셔놓기도 하고 그런 예도 많았어요.
여기도 보면 그렇게 한 거야.
勅謚慧照禪師요 塔號澄靈이라
칙시혜조선사 탑호징령
合掌稽首하야 記師大諡하노라
합장계수 기사대략
그래서 칙명으로‘혜조선사’라고
시호를 내리고
탑호는‘징령’이라고 했죠.
스님의 간단한 약력을 이렇게 기록한다.
스승의 행장을 대략 기록한다. 그랬어요.
住鎭州保壽嗣法小師 延沼謹書
주진주보수사법소사 연소근서
住大名府興化嗣法小師 存獎校勘
주대명부흥화사법소사 존장교감
법제자 진주 보수사 주지 연소는 삼가 쓰고,
법제자 대명부 흥화사 주지 존장이 교감하다.
住鎭州保壽嗣法小師 延沼謹書
주진주보수사법소사 연소근서
이걸 기록한 사람은 진주 보수에
머무는 법을 이어 받은 소사,
연소라는 사람이 썼고,
住大名府興化嗣法小師 存獎校勘
주대명부흥화사법소사 존장교감
대명부 흥화사에 머무는 사법소사,
법을 이은 중 존장이 교감을 했다.
전부 임제의 후손들이죠.
이렇게 해서 임제록의 강의는 모두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