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 (大乘正宗分) (如來正說)여래의 바른말씀
佛告 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所有一切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得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圭峰:
四는 如來正說이라 於中에 文二니
一은 正答所問이요
二는 躡迹斷疑라
初文에 分二하리니
一은 擧總標別하여 以牒問이라
규봉:
넷째는 여래의 바른 말씀이다.
이 가운데 글이 두 가지가 있으니
①은
물음에 대한 바른 답이고
②는
자취를 밟아서 의심을 끊음이다.
①은
둘로 나누면
1은 전체를 들어 나누어 표해서 거듭 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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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告 須菩提 諸菩薩摩訶薩은
應如是降伏其心이니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을지니
淸峯:
제보살마하살은 모든 보살들이니,
보살이란
생각 생각이 청정하여 자비 희사의
갖가지 방편으로 모든 중생을 보살피는 이를 칭한다.
마하살은
생각 생각에 물러서지 않고 (불퇴전하여
10위 이상의 법위를 증득한 보살)
시끄럽고 복잡한 사바세계 가운데 있으나
마음이 늘 청정하고 언제나 집착함이 없음이니
보살 가운데 마하살은 뛰어난 이로 살핌이 옳다.
응여시항복기심은
마땅히 번뇌의 마음을 다스린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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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前念淸淨하고 後念淸淨을 名爲菩薩이요
念念不退하고 雖在塵勞이나 心常淸淨을
名摩訶薩이니라 又慈悲喜捨하여
種種方便으로 化導衆生을 名爲菩薩이라하고
能化所化에 心無取着을 名摩訶薩이니
恭敬一切衆生이 卽是降伏其心이니라
處眞을 名不變이고 契如를 名不異니
遇諸境界하되 心無變異를 名曰眞如니라
亦云하되 外不假曰眞하고
內不亂曰如하면 念念無差曰是니라
육조:
앞생각이 청정하고 뒷생각이 청정한 것을 보살이라 하고,
생각 생각에 물러나지 않고 비록 티끌 세상에 있으나
마음이 항상 깨끗함을 큰 보살(마하살)이라 하는 것이다.
또
자비와 기쁨으로 베풀어 가지가지 방편으로
중생들을 이끌어 교화함을
보살이라 하고
교화하는 이나 받는 이 마음에 집착함이 없는
것을
마하살이라 하니, 일체 중생을 공경하는 것이
곧 그 마음을 항복 받음이 되는 것이다.
진실에 머무름을 불변이라 하고
진여에 계합함을 다르지 않다(不異)라고 하니
모든 경계를 만나되 마음에 변하고 달라짐이 없음
(끄달리지 않음)을 이름하여 眞如라 하는 것이다.
또한
밖으로 거짓됨이 없음을 참
(眞)이라 하고
안으로 산란하지 않음을 같다
(如)라 하며
생각생각 분별이 없는 것을 옳다
(是)라 이르는 것이다.
---
圭峰:
二는 約別顯摠하여 以答問이니
此는 以降伏으로 爲摠이요
住修로 爲別也라 謂住修之中에
皆有降伏이고 經意在此이니
故로 唯標降伏이니라
有科此標云擧後攝初者는 乃令經文으로
極不穩暢하여 理例顚倒이니
自古言敎에 秖有以初攝後이나
未聞將後攝初하고 況詳經文하면
無別答降伏之處하고
卽知降伏이 在住脩中이니라
住脩는 皆令離相이니 是答降伏問也니라
不別答者는 此經은 宗於離相이요
離相이 正是降心이니 ?瞬?가 欲明降心이니라
因約住脩하여 以顯住脩降伏이니本不相離니라
故로 無着의 十八住中에도 每住에
皆有住脩降伏이니라
文中에 二니 一은 答安住降心問이라
又四니 一은 廣大心이라
규봉:
②는
부분(別)으로써
전체(總)를 드러내 물음에 답한 것이니
이것은 항복으로서
總을 삼고 머물고(住) 닦음
(修)으로써
別을 삼았음이다.
住, 修 가운데
모두 다 항복이 포함되(그 뜻이)어 있고
經의 뜻이 여기에 있으므로
오직 항복만을 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구분(科目)하여 표시해 이르기를
뒤(後)를 들어 처음(初)을 다스린(攝) 것은
이에 경문법으로는 극히 온당하게 통하지 못하여
이치의 법칙(例)이 전도된 것이니,
예로부터 敎를 말하매 다만 初로써
後를 다스림이 있을지언정
後를 가지고 初를 섭함은 듣지 못했고,
더욱 經文을 자세히 살피면
따로 항복을 답한 곳이 없고
곧 항복이 住, 修가운데 있음을 알 것이다.
住와 修는
모두 相을 떠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항복의 물음에 대한 답인 것이다.
달리 답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經이 相을 떠남을 宗으로 하고
상을 여윔이 바르게 마음을 항복 받는 것이니,
본뜻이 마음을 항복 받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住, 修로 요약함으로 인하여
降伏한 마음에 住, 修를 드러낸 것이니
본래 서로 여의지 않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無着의 十八住가운데에도
“매 住마다 모두 住, 修, 降伏이 있다” 했다.
문장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①은
마음을 항복 받아 안주함에 대한 물음의 답이다.
또 이 가운데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廣大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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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항복 받는다는 것이
머물고 닦음에 있다는 것은
머무는 가운데의 항복은
곧 실로 법이 없음이고,
닦는 가운데 항복은
곧 머묾 없는 보시이다.
법이 없고 머묾 없는 것이
곧 상을 여읜 것이므로
상을 여읜 것이 이미
머물고 닦음에 통하니
그러므로 알라
항복이 이 모든 것
닦고 머무는(全體) 것이다.
부분(항복․닦음)으로 시작해 묻고
나중에 답을 전체(머묾)로 드러내어
설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항복 받으면 곧 그것이 머묾이 되고
닦음으로써 머묾이 되므로
닦고 항복 받고 머묾이
둘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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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有一切衆生之類에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
무릇 있는 바 모든 중생의 무리인
알로 생기는 것, 태로 생기는 것, 물에서 나는 것,
육신이 없는 것, 모양 있는 것, 모양 없는 것,
생각 있는 것, 생각 없는 것, 생각 있지 않기도 하고
생각 없지 않기도 한 것들을
淸峯:
위의 설명은 유위법(차별상)으로 구분하였으나
실은 중생의 어리석음으로 살펴야 하니,
난생이란 것은
이목구비(本來面目)가 무명에 쌓인 미혹함이요,
태생이란
습(習)이니 습생이란 삿됨이요,
화생이란
취향함을 쫓음이니 미(迷) 함으로 업을 짓고
습업(習業)으로
윤전(輪轉)하며, 삿됨으로 마음이
바르지 못하여 취향함을 따르므로 윤회하는 것이다.
무상(無相)의 도리에 계합하지 못함을
유색이라 하고,
마음이 佛인 줄로만 알아 복혜를 닦지 않음이
무색이요,
중도를 요달하지 못하고 생각으로 헤아려
법을 말하되 마음으로 계합되어 행하지 못함을
유상이라 하며,
미혹한 자가 妄만 제하고 자비희사의 지혜를
모르고 목석같이 작용을 모름을
무상이라 하며,
법을 생각지 않으므로
비유상이며,
도의 이치를 구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으므로
비무상이라 한다.
따라서
이 모두를 중생이라 하는 것이다.
중생세계를 욕계, 색계, 무색계 셋으로 나누고
이 삼계의 중생을 난생, 태생, 습생, 화생, 유색,
무색, 유상, 무상, 비유상 비무상(비상 비비상)
아홉 가지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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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三界普度이니 故云廣大心也니라
初句는 標요 若卵下는
列이나 列中에 文三이니
一은 受生差別이니 天獄은 化生이요
鬼通胎化요 人畜은 各四요
諸餘微細한 水陸地空은
不可具分品類니라 卵劣在初者는 二釋이니
一은 約境이니 具緣多者가 爲首요
二는 約心이니 從本至末이 爲次니라
二는 依止差別이니 有色은 四禪이요 無色은 四空이니라
三은 境界差別이니 功德施에 云하되 有想은 則空識二處요
無想은 則無所有處요 若非等은 則有頂이라하다
二는
第一心이라
규봉:
三界를 널리 제도하므로 광대심이라 한다.
첫 구절(일체 중생지류)은 기본 標示이고,
약란생 아래로는 분류이다.
분류 중의 글을 세 가지로 나누면
①은
受生의 差別(생을 받는 데의 차별)이니
천상과 지옥은 化生이요
귀신은 태생과
화생에 통하고
인간과 축생은 각각 넷(胎, 卵, 濕, 化)이 있고
모든 나머지 미세한 水, 陸, 地, 空은 가히 종류를
구분 못한다.
卵生은 열등하여 처음에 있는 것은
두 가지 해석이 있으니
첫째는 경계에 의한 것으로 인연이 많은 것이
앞에 있게 되고
둘째는 마음에 의한 것으로 근본부터 지말에
이르름이 그 다음이 되는 것이다.
②는
依地의 差別이니 有色은 四禪이요
無色은 四空이다.
③은
境界의 差別이니
功德施보살이 論에 이르기를
“생각 있는 것은
空界, 識界 두 곳이고
생각 없는 것은 곧 無所有處이고
만약 그렇지 않는 것들은
有頂天이라”고 했다.
둘째는
第一心(제일 훌륭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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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皆令入無餘涅槃하여 而滅度之
내가 모두 남김 없는 열반에 들게 해서
멸도하게 하리라.
淸峯:
무여 열반은 해탈열반이니,
번뇌를 말끔히(미세, 망념까지) 없애고
분별하는 지해(知解)를 떠나, 완전한
적정에 들어 원만하고 청정하여 일체
습기가 멸진하여 영구히 업신을
받아 윤회함을 벗어나는 것이다.
멸도(滅度)
역시 생사 대해를 건너 제불과 더불어
해탈케 하기 위하여 닦고 깨달아 얻은 바
있다고 짓는 아상을 내는
그 법아 마저 제하여 대 해탈로 번뇌 습기등
일체의 모든 업이 멸진케하여 다시
남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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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卽無住處涅槃은 不共二乘이니 故云第一이니라
無着이 云하되
何故로 願此不可得義하면 生所攝故니라
又云하되 卵濕과 無想有頂은 則不能이거늘
云何普入인가하다 有三因緣이니
一은 難處生者는 待時故요
二는 非難處生은 未成熟者를 成熟之故요
三은 已成熟者는 解脫之故니라
규봉:
곧 머물 곳 없는 열반은
二乘과 같지 않으므로 第一이라 한다.
무착이 이르되
“무엇 때문에 이 얻을 수 없음의 뜻을
바라는가 하면 중생을 포용하는 까닭이다”
또 이르기를
“卵․濕과 無想, 有頂은
곧 제도하지 못하거늘
어째서 널리 들게 한다 하는가?” 했다.
세 가지 인연이 있으니
①
제도 받기 어려운 곳에 나는 것은
때를 기다리는 까닭이고
②
제도 받기 어렵지 않은 곳에 난 것은
성숙하지 못한 것을 성숙하게 하는 까닭이며
③
이미 성숙한 것은 해탈케 하는 까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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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卵生者는 迷性也요
胎生者는 習生也요
濕生者는 隨邪性也요
化生者는 見趣性也이니
迷故로 造諸業하고 習故로 常流轉하고
隨邪로 心不定으로
見趣에 多淪墜하니라 起心修心하나
妄見是非하고
內不契無相之理를 名爲有色이니라
內心守直하여 不行恭敬供養하고
但見直心是佛하여 不脩福慧를 名爲無色이니라
不了中道하고 眼見耳聞을
心想思惟하여 愛着法相하여 口說佛行하나
心不依行을 名爲有想이라하고
迷人이 坐禪하되 一向除妄하고
不學慈悲喜捨智慧方便하여
猶如木石하여 無有作用을 名爲無想이니라
不着二法想故로 名若非有想이요
求理心在故로 名若非無想이니라
煩惱萬差이나 皆是垢心이요
身形無數이나 摠名衆生이니라
如來가 大悲普化하시어
皆令得入無餘涅槃也하여
而滅度之者는 如來가 指示三界九地衆生이
各有涅槃妙心하시어 令自悟入無餘시니라
無餘者는 無習氣煩惱也니라
涅槃者는 圓滿淸淨義이니
滅盡一切習氣하여
令永不生하여서 方契此也니라
度者는 渡生死大海也이니
佛心이 平等하여 普願與一切衆生하여
同入圓滿淸淨 無餘涅槃하여
同渡生死大海하여 同諸佛所證也니라
有人이 雖悟雖修하여 作有所得心者는
却生我相이니 名爲法我니라
除盡法我하여야 方名滅度也니라
육조:
卵生은
성품이 어리석어 미혹된 것이고,
胎生은
익혀온 성품이고,
習生은
삿됨을 따르는 성품이고,
化生은
보는 것에 끄달려 따르는 性品이니
어리석은 까닭에 모든 업을 짓고 익혀 가는 까닭으로
항상 떠돌아 상속하고 삿됨을 따라서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는 것으로 온갖 보이는 것에 끄달림에 빠져 떨어짐
(5도에)이 많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일으켜 마음을 닦으나 망령된 생각으로
시비하고 안으로 無相의 도리에 계합하지 못함을
有色
이라 하는 것이다.
안으로 마음을 바르게 지켜서 공경․공양을 행하지 않고,
다만 곧 마음이 부처라는 생각에 복과 혜를 닦지 않음을
無色
이라 한다.
中道 를 깨우쳐 알지 못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음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사량하여 모든 상에 애착해서
입으로는 부처의 행을 말하나 마음으로 행하지 않음을
有想
이라 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좌선하되 한결같이 망념만을 없애고
자비희사의 지혜 방편을 배우지 않아서 오히려 목석과
같이 아무 작용이 없는 것을
無想
이라 하는 것이다.
두 가지 法相(有無)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非有想
이라 하고, 이치를 구하는 마음이 있으므로
非無想
이라 하는 것이다.
번뇌는
만 가지 차별이 있으나
이는 모두 마음의 때요,
몸의 형상은 헤아릴 수 없으나
모두 중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여래께서 대 자비로 널리 교화하시어
모두 남김 없는 열반에 들게 하여서
멸도하게 하시는 것은,
여래께서
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의
九地(욕계 1지와 색계, 무색계 각 4계)
衆生이 각각 열반묘심이 있음을 가리켜 보이심으로써,
스스로 무여(집착과 번뇌가 남김 없는) 열반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無餘
란 習氣, 번뇌가 없는 것이다.
涅槃
이란 원만 청정의 뜻이니
일체 습기를 모두 멸해서 영원히
나지 않게 하여 바야흐로 이에 계합하게 하는 것이다.
度란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는 것이니 佛心이 평등하여
널리 원하기를 일체 중생과 더불어 원만하고
청정한 무여 열반에 같이 들어서 함께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 모든 부처님이 증득한 것과 똑같이
되고자 하는(願) 것이다.
어떤 사람이 비록 깨닫거나 수행한다 하며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리어
我相을 낸 것이니 이름하여
法我
(법상, 아상)라고 하는 것이다.
일체(法)와 나(我)라는 것을 모두(집착을)
없애야 바야흐로 滅度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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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三은 常心이라
규봉:
셋째는 항상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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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滅度 無量無數 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
이와 같이 한량없고 셀 수 없고 가없는 중생을
멸도하나 실로는 멸도를 얻은 중생이 없으니
淸峯:
미혹한 자가 공적 영지한 자성을 깨우쳐 알지 못하고
모든 상에 집착하고, 무위의 이치를 계합해 알지 못하여
아상에 집착하므로 중생이라 할 뿐 진리의 실상을
알고 보면
(미혹인 집착, 번뇌, 망상을 여의고 보면)
본래 구족했음이요,
본래 없는 망념을 지어 만들었음을 알게되니
그대로 보살심이요 부처였고,
본래 생사와 열반이 없는 것이며,
평등하므로 제도를 받을 것도 얻을 무엇도
없는 것이 그 이치인 것이다.
자기에 있는 본래 마음을 깨친 것이니,
자기 마음을 깨친 것은 부처님의 마음과
일체 중생의 마음을 깨친 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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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一은 性空故요 二는 同體故니 論에 云하되
自身滅度가 無異衆生이라하다 三은 本寂故요
四는 無念故요 五는 法界故니라
규봉:
①은
성품이 공한 까닭이요
②는
같은 몸이기 때문이다.
論에 이르되
“자신의 멸도가 중생과 다름이 없다”하였다
③은
본래 고요한 까닭이다
④는
무념인 까닭이요
⑤는
법계인 까닭이다 (일체가 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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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如是者는 指前法也이고
滅度者는 大解脫也이니
大解脫者는 煩惱及習氣와 一切諸業障이
滅盡하여 更無有餘이니 是名大解脫이니라
無量無數無邊衆生이
元各自 有一切煩惱貪嗔惡業을
若不斷除하면 終不得解脫이니
故言하되 如是滅度 無量無數 無邊衆生이라하니라
一切迷人이 悟得自性하면 始知이나
佛이 不見自相하였다면 不有自智이니
何曾度衆生이리오
秖爲凡夫 不見自本心하고
不識佛意하여 執着諸相하여
不達無爲之理하여 我人不除를
是名衆生이니라
若離此病하면
實無衆生 得滅度者니라
故로 言妄心無處卽菩提라 生死涅槃이
本平等이라하시니 又何滅度之有하리오
육조:
如是는
앞의 法을 가리킨 것이고
滅度는
대해탈이니,
대해탈은 번뇌와 습기와
일체의 모든 업장이 다 멸하여
다시 남음이 없는 것이어서
이를 대 해탈이라 하는 것이다.
한량없고 수 없고 가(끝) 없는 중생들이
원래 각각 스스로 일체의 번뇌와 탐진치와
악업이 있는 것을 만일 끊어 제거하지 못하면
마침내 해탈을 얻지 못하므로
말씀하시기를 “
이와 같이
무량, 무수, 무변 중생을 멸도 한다”고 하신 것이다.
일체 어리석은 사람이 自性을 깨달아 얻으면
비로소 부처를 알 것이나,
부처님이 (지혜가 없어) 자기의 모습
(本來面目:부처)을 보지 못하였다면
스스로 지혜가 없을 것이니
어찌 일찍이 중생을 제도한다 하리오?
다만 범부는
자기의 본심을 보지 못하고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게 되어
모든 相에 집착하여서
無爲의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여
我와 人을 제거하지 못하므로
衆生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만약
이 病만 여의면
실로 중생이 멸도를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망심이 없는 곳이 곧 보리이고
생사열반이 본래 평등이라”하시니
또 어찌 멸도 할 것이 있다 하겠는가?
---
圭峰:
四는 不顚倒心이라
규봉:
넷째는
顚倒(뒤바뀌지)되지 않은 마음이라(四心中 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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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非菩薩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라는 상, 사람이라는 상,
중생이라는 상,
한정된 생명이 있어 오래 살겠다는 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닌 것이니라.
淸峯:
아상
(내라는 실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여 재물과
학문 등 내 것이 있다 하여 경만한 생각과
나와 남이
있다고 생각하여 중생을 가벼이 생각하는
곧 나라는 것에 집착하여 고집하는 것)
인상
(축생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실상이 있다는
생각으로 행함이 바르지 않고 남을 공경하지
않으며 지계를 믿고 타를 업신여기는 생각.
혹자들은 이 인상을 ‘남이라는 생각’이라 하나
그것은 크게 잘못 아는 것이니,
실상의 본질을 설하는 이 경 가운데는 자성을
근본으로 설했음을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중생상
(좋은 것은 자기로 돌리고 나쁜 것은 남에게
돌리려는 생각과 苦를 싫어하여 제천에 나기를
원하는 생각)
수자상
(경계를 대하여 취사분별하고 집착하며,
생사의 실상이 있으므로 죽지 않고 오래
살겠다고 집착하는 생각)
곧 4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닌 것이다.
본래 自性
(우주 근본체)의 실상을 깨달아 보면
이러한 사상(四相:네 가지 상)이 비어
없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살심은
한 가지도 버리지 않으며 한 가지도
얻으려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대승보살심인 것이다.
여기에서
네 가지 상 가운데
근본이 되는 아상만 없어지면
나머지는 자연 사라지는 것인데,
설명을 좀더 자세히 한 것으로 보면 된다.
부처는 부처라는 것도 없으며,
중생도 이 또한 없으니
누가 멸도를 하며 누가 제도를 받겠는가?
※
“흙이 산을 이루어도 산의 높이를 모르고
눈이 있어도 스스로 눈을 보지 못하느니라.”
---
說誼:
悲化含生入無餘하고 智冥眞際絶能所로다
見有可度면 卽乖眞이니 我人不生하여야
名菩薩이니라
설의:
자비로써 중생을 교화해서 남김 없음
(無餘:열반)에 들게 하고 지혜가 진제(眞如)에
그윽해서 能所가 끊어지게 된다.
가히 제도할 것이 있다고 보면 참과 어긋남이니
我相, 人相이 나지 않아야 보살이라 이름하느니라.
청봉착어:
나다, 사람이다, 너다 분별하는 마음은
곧 보살심이 아니니
일체가 둘 아닌 줄 요달하면 분별심이 끊어지도다.
둘 아닌 가운데 일체를 거두니 자비는 스스로
우러나고, 제도할 것도 제도 받을 것도 없음을 알면
갖추어 쌓임이 없음(無餘:열반)에 계합하리라.
---
圭峰:
論에 云하되
遠離依止身見衆生等相이라 하다
故로 無着이 云하되
已斷我見하여 得自行平等相故로
信解自他平等하여 顯示降伏心中攝散時이니
衆生想도 亦不轉이니 如彼爾炎住故라 하시니라
규봉:
論에 이르기를
“몸뚱이에 집착하는 衆生 등이 相(4상)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무착이 이르되
“내라는 소견(我見)을 이미 끊어 스스로 행함이
平等相을 얻음(證得)으로 自他가 평등함을
믿고 알아서, 마음 가운데 산란함을 거둘때
항복 받음이 나타나 보이니
중생이라는 생각도 또한 뒤바꿔 일어나지(轉) 않고
능히 지혜를 내는 것(爾炎)과 같이
머무는 까닭이라”한 것이다.
[轉(구른다)은
곧 생하여 일어난다는 뜻이다.
내라는 소견 등이 생겨 일어나지 않음이
바로 이 마음을 조복 받음
(降伏心) 인 것이다.
爾炎
이란 것은 이것(此)을 방어(方語)로 이르면 智母로
곧 근본지혜가 능히 후득지(닦아 증득한 지혜)를
내는 때문에 지모라 이름하는 것이다.
※
근본지(본래 갖춘 지혜)는
비록 안으로 진리를 증오하나 마땅히
증오하는 마음이 없고
후득지(닦아 증득한 지혜)는
비록 밖으로 중생을 제도하나
마땅히 제도했다는 생각이 없는 것이니
爾炎과 같다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뜻으로 쓰면
뒤바뀌지 않는 마음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에 반대는 곧 顚倒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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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의지(依止)가 곧 신견(身見)으로 통하여
서로 상속되어 몸(色身)을 집착해서 보는 것을
(육경→식) 냄을 의지 신견이라 하니라
사상(四相)도 이 의지 신견이 있음이니
오온이 나라 집착함으로써
나에 집착하여 四相의 소견이 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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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衆生과 佛性이 本無有異이나 緣有四相하여
不入無餘涅槃하니 有四相이면 卽是衆生이요
無四相이면 卽是佛이니라 迷하면 卽佛이 是衆生이요
悟하면 卽衆生이 是佛이니라 迷人이
恃有財寶學問族姓하여 輕慢一切人을 名我相이요
雖行仁義禮智信이나 而意高自負하여 不行普敬하고
言我解行仁義禮智信하고 不合敬爾를 名人相이요
好事는 歸己하고 惡事는 施人을 名衆生相이요
對境取捨分別을 名壽者相이니 是謂凡夫四相이니라
修行人도 亦有四相하니
心有能所하여 輕慢衆生을 名我相이요
自恃持戒하여 輕破戒者를 名人相이요
厭三塗苦하여 願生諸天이 是衆生相이요
心愛長年하여 而勤修福業하여
諸執不忘을 是壽者相이니
有四相이면 卽是衆生이요 無四相이면
卽是佛이니라
육조:
衆生과 佛性이
본래 다름이 없지만
四相(아, 인, 중생, 수자상)이
있으므로 인하여
무여 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니,
四相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인 것이다.
어리석어 미혹되면 곧 佛이 중생이고
깨달으면 곧 중생이 부처님인 것이다.
어리석어 미혹된 사람이 재보와 학문과
세속적 문벌(族姓)이 있음을 믿고
모든 사람들을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것을
我相 이라 하고,
비록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롭고 신의(仁義禮智信)를 행하나
뜻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져서 널리
공경함을 행하지 않고 말로는
‘나는 인, 의, 예, 지, 신(信)을 행할 줄 안다’하고
남을 공경하지 않음을
人相이라 하는 것이다.
좋은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나쁜 일은
남에게 돌림을
중생상이라 하고,
경계를 대하여 취사 분별함을
수자상이라 하니
이것들을 범부의 四相이라 하는 것이다.
修行人도
역시 四相이 있으니 마음에 나와 너(能所)가
있어서 중생을 경멸하고 업신여김을 아상이라
하고, 자기가 戒가진 것을 믿고 파계한 이를
경멸하는 것을 人相이라 하고,
삼악도의 고통을 싫어하여 天上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
중생상이고,
마음에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해서 부지런히
복업이나 닦아 모든 것을 집착하여 잊지 못하는
것이 수자상이니,
四相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四相이 없으면 곧 부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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傅大士:
空生이 初請問이니 善逝가 應機酬하시니
先答云何住하시고 次敎如是修로다
胎生卵濕化를 咸令悲智收케하시니
若起衆生見이면 還同着相求니라
부대사:
수보리가 처음 물음을 청하니
부처님께서 근기에 맞게 답하시네
먼저 어떻게 머물러야 한다 하시고
다음엔 이렇게 닦아야 함을 가르치셨도다.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을
대자비 지혜로 모두 거두게 하시니
만약 중생의 소견을 일으키면
도리어 相에 집착해서 구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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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頂天立地하니 鼻直眼橫이도다
說誼:
從一法界하여 形分九類하니
形形이 皆具一法界로다 所以로
一一頭指天하고 脚踏地하면
一一鼻直向下垂하고 眼橫在上方이니라
야부:
이마는 하늘에 두고 땅위에 섰으니,
코는 곧고 눈은 가로 있도다.
설의:
한 법계로부터 형상이 아홉 가지로 나뉘니
모양 모양이 모두 한 법계에 갖추어 있도다.
그 까닭에 낱낱의 머리는 하늘을 가리키고
다리는 땅을 밟으며 낱낱의 코는 곧게 아래를
향해 드리워 있고 눈은 가로로 위쪽에 있느니라.
冶父:
堂堂大道여 赫赫分明이라
人人本具여 箇箇圓成이라
祇因差一念하여
現出萬般形이로다
說誼:
堂堂大道여 廓周沙界요
赫赫分明이여 光呑萬象이로다
人人本具여 着衣喫飯과
彈指揚眉를 不要別人이요
介介圓成이여 折旋俯仰하고
歆伸謦咳가 不借他力이로다
只因云云은 春色은 無高下이나
花枝自短長이로다
自短長이여
也不妨이니 九類同居一法界이니
紫羅帳裏撒眞珠로다
雖然如是이나 若但伊麽商量이면
盡十方世界가 都盧是無孔鐵鎚라
畜生은 永作畜生하고 餓鬼는
永作餓鬼하여 無有一介도 發眞歸源이니라
旣然如是이니 畢竟作麽生인가
風和花織地요 雲淨月滿天이로다
야부:
당당한 大道여!
밝고 밝아 분명하도다.
사람사람이 본래 갖추어 있고
낱낱이 원만히 이루어졌으나
다만 한 생각을 그르침으로 인해
만 가지 형상이 나투어 진다네.
설의:
당당한 大道여!
확연하여 항하사 법계에 두루하고
밝고 밝아 분명함이여!
광명이 만상을 머금었도다.
사람사람이 본래 갖춰져 있음이여!
옷 입고 밥 먹는 것과 손가락 튕기고
눈썹 쳐들고 봄은
다른 사람에게 구할 것이 아니요.
낱낱이 원만히 이룸이여!
몸을 굽히고, 돌리고, 숙이고, 쳐다보고,
움직이고, 펴고, 기침하는 것
(折旋俯仰과 歆伸謦咳:
온갖 기거 동작)은
남의 힘을 빌림이 아니로다.
‘다만 인하여 운운이라’는 것은
봄빛은 높고 낮음이 없으나
꽃가지가 스스로 짧고 길도다.
스스로 짧고 긴 것이여!
또한
서로 방해롭지 않으니
九類(불교 불법 외의 유교 등 9종학파)도
함께 한 법계에 사니
붉은 비단 장막 속에
진주를 뿌린 것이로다.
비록 이러하나 만약 다만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온 시방세계가
모두 구멍 없는 망치와 같아서
축생은 길이 축생이 되고
아귀는 영원히 아귀만 되어서
하나도 참을 발하여 근원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니라.
이미 이와 같을진대
필경 어떻게 할 것인가
따뜻한 바람이 불면
꽃이 땅을 수놓고
구름이 걷히면
달빛이 하늘에 가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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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밝고 밝음은 무엇으로부터 쫓아 나옴인가?
만상을 머금어 낱낱이 갖춤은 어디에 머물고 있나?
우주의 주인이요 만법의 왕은 다름이 아니라
밥 먹고 잠자는 그것이니
봄바람 남쪽에서 불고 꽃은 스스로 피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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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
涅槃淸淨이여 盡令含識依歸요 四相俱忘이여
實無衆生滅度이니 如斯了悟하면 便能脫死超生이나
其或未然이면 依舊迷封滯殼하리라
會麽인가 生死涅槃이
本平等하니 妄心盡處卽菩提로다
說誼:
悲化含生은 卽不無이나
爭乃能所歷然인가
智冥眞際하면
平等無有高下이니
如斯了悟하면
便能超生脫死이나
其或未然이면
依舊迷無明之封蔀하여
滯有漏之形殼하리라
종경:
열반 청정이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귀의케 하고
四相을 모두 잊음이여!
실로 중생을 멸도 할 것이 없으니
이와 같이 분명히 깨달으면
능히 생사를 벗어나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옛을 의지하여
미망의 껍질에 갇혀 있게 되는 것이다.
알겠는가?
생사열반이 본래 평등하니
망심 다한 곳이 곧 보리인 것이다.
설의:
자비로써 중생을 교화함은 곧 없지 않으나
어찌 이에 能所(나다, 남이다)가 역연할 것인가?
지혜가 지극함(眞際)에 그윽이 계합하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니
이같이 밝게 깨달으면
능히 생사를 벗어나거니와
혹 그렇지 못하면 옛처럼
무명의 덮개에 봉해져 어리석어
유루의 껍질에 막히어 머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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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번뇌가 곧 보리요
부처가 곧 이 중생이거늘
사상에 집착할 때 중생이라 하고
일체 평등을 요달하면 부처님이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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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
頂門具眼辨來端하니 衆類何曾入涅槃이랴
絶後再甦無一物하여 了知生死不相干이리라
說誼:
有智無悲이면 亦只是一隻眼이요
有悲無智도 亦只是一隻眼이니 悲智雙運하여
出入自在하여야 方得名爲頂門具眼하니라
來端者는 生佛平等之一源이요 悲智不二之一體이니
唯有具眼하여야 辨得有分이로다 來端을 旣已辨得이면
何更見有能度所度리오 衆生滅盡而無滅이니 生佛이
都盧眼裏花로다
종경:
지혜의 눈을 갖추어 실마리를 가려보니
온갖 무리가 어찌 일찍이 열반에 들었으랴
끊어진 후 다시 소생하여 한 물건도 없어야
생사가 서로 간섭되지 않음을 깨달아 알리라.
설의:
지혜가 있고 자비가 없으면 또한 한쪽 눈 뿐이요,
자비만 있고 지혜가 없음도 또한 한쪽 눈뿐이니,
자비와 지혜를 쌍으로 굴려 出入을 마음대로
하여야 비로소 頂門의 눈
(一隻眼:제3의 눈:慧眼)을 갖추었다 하니라.
※
來端
(처음 온 곳인 근본)이란
중생과 부처가 평등한 한 근원이고
지혜와 자비가 둘 아닌 한 몸이니
오로지 눈을 갖추어 있어야
가려낼 분수를 얻는 것이로다.
실마리(來端:공적영지 일체 평등한 不二처로서
온 곳인 근본 처)를 이미 가려 얻었다면
어찌 다시
능히 제도하고 제도될 것이 있다 하리오?
중생을 모두 멸도하되
멸도함이 없으니
중생과 부처가 모두가
눈 속의 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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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크게 죽어 크게 살면 생사가 둘 아니요
산은 산, 물은 물 옛 그대로이네
일체를 요달해 살펴보니
본래가 제도할 것이 있음이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