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五 如理實見分(一. 斷求佛行施住相疑)
모든 유형·무형의 존재를
사실대로 본다, 바르게 본다,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 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身相 得見如來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佛 告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如理實見分 第五
(여래를 실다운 이치로 봄)
圭峰:
二는 攝跡斷疑라
論에 云하되 自此己下는
示現斷生疑心이라하니
於中에 文分二十七叚이라
第一은 斷求佛行施住相疑이니
疑云하되
爲求佛果行施라면
卽是住所求佛相인데 云何無住며
又不住相爲因이면 豈感色相之果함에
因果不類故로 斷之니라
文이 四니
一은 擧疑因以問이라
규봉:
二.
자취를 쫓아 의심을 끓어주신 것이다.
論에 이르되
“여기서부터 의심을 내는 마음을
끊는(疑斷) 것을 보이신 것이라” 했다.
그 가운데 글을 二十七단으로 나눈 것이다.
1.
斷求佛行施住相疑
(疑斷)
부처를 구하려고 보시를 행함도
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끊어주신 것이니
의심해 이르기를
佛果를 구하기 위해 보시를 행함이라면
곧 부처를 구하는 相에 집착하는 것인데
어찌 집착 없다하며
또한 相에 집착하지 않고 머무는 것이 원인이면
어찌하여 형상의 과보를 받을까? 함에,
因果가 같지 않다 하심으로써
끊어주신(의심을) 것이다.
글이 네 가지니
(1)은
의심의 원인을 들어서 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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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야 於意云何 可以身相 見如來不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히 몸의 모양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느냐?”
圭峰:
本秖因以相爲佛故로 對前不住相起疑하시어
佛이 擧疑起之因하여 問答으로 欲令除斷이니라
二는 防相得以酬라
규봉:
본래 다만 相으로 因하여
부처를 삼는 까닭으로 인할까하여
그러므로
앞의 상에 집착하지 않는다는데 대해
의심을 일으킬까 하시어
부처님께서 의심을 일으킨 원인을 들어
물음에 답하심으로
이를 끊어서 없애고자 하신 것이다.
(2)는
相으로 얻고자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답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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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也이니다 世尊이시여
不可以身相得見如來이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가히 몸의 모양으로써 여래를 보지 못하옵니다.
圭峰:
遮防疑者 欲以相求하여 令得見佛故로
答云不可以相得見이라하시다
論에 云하되
爲防彼相成就得如來身이라하다
규봉:
의심하는 자가 相으로써 구하여
부처를 볼려고 하는 것을 막고자
하신 연고로 답하시기를
“형상으로써 볼 수 없으니” 하였다.
論에 이르되
“저 상을 쫓아 여래의 몸을 얻는 것을
성취한다고 할까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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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色身은 卽有相이고 法身은 卽無相이니라
色身者는 四大和合하여 父母所生이라
肉眼所見이나
法身者는 無有形段하여 非有靑黃赤白이며
無一切相貌하여 非肉眼能見이며
慧眼이라야 乃能見之니라
凡夫는 但見色身如來하고
不見法身如來하니 法身은 量等虛空이라
是故로 佛이 問須菩提하시되 可以身相으로
見如來不인가하시니
須菩提가
知凡夫는 但見色身如來하고 不見法身如來이니
故로 言不也이니다 世尊이시여 不可以身??으로
得見如來라하니라
육조:
色身은 곧 相이 있고 法身은 곧 相이 없다.
色身이란 4대(地, 水, 火, 風)가 화합하여
부모가 낳은 것이라 육안으로 볼 수 있으나,
法身은 형상이 없어서 靑․黃․赤․白이 있지 않으며
일체 형상과 모양이 없어 육안으로 능히 볼 수
없으며 慧眼이라야 능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범부는 다만 색신 여래만 보고 법신여래는
보지 못하니 법신은 그 모양이 허공과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물으시되
“가히 身相으로 여래를 볼 수 있느냐” 하시니
수보리가
범부는 다만 색신 여래만 보고
법신 여래는 보지 못하므로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육신의 몸매로서는 여래를 보지 못합니다
”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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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三은 釋體異有爲라
규봉:
(3)은 체(法身)가
함이 있음과 다르다는 것을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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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몸의 모양이라는
것은 곧 몸의 모양이 아니옵니다."
淸峯:
여래의 몸이라는 것은
32가지 거룩한 형상을 말하는 것이나
색신은 유상(有相)이므로 허환한 것이고,
세존이 말씀하신 여래는
실상인 법신을 일컬음이니
법신은 무상(無相)이기 때문이다.
법신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모양 있음이 아니니
혜안으로만이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색신은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는 것이나
법신은 생사를 받지 않고
항사묘용(恒沙妙用)을 구족한 것이다.
그러나 법신까지도 법신이라고
개념화하면 허망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또 일체가 둘 아니어서
이 법신을 여의고
보신(報身), 화신(化身)이 없으며
법, 보, 화 삼신(三身)이
따로 차별된 모습을 취하지 않으므로
삼신불이 둘 아닌 일체인 것이다.
說誼:
佛擧身相問空生하시어 欲明妙圓無相身이시니
空生은 本是獅子兒라 不曾逐塊能咬人이로다
莫以無相云是斷하라 非形이 終不外於形이니라
설의
부처님께서 몸 모양을 들어
수보리(空生)에게 물으시어
묘하고 원만한 모양 없는 몸
(無相身)을 밝히고자 하시니,
수보리는 본래 사자새끼라
일찍이 흙덩이를 쫓지 않고
능히 사람을 물었도다.
無相으로써 의심을 끊었다고 이르지 말라.
형상이 아닌 것이 마침내
형상을 벗어난 것이 아니니라.
청봉착어:
세존이 육신을 들어 설하시고자 하니
수보리 존자는 그 뜻이 어디에 있음을 알고
형상 있는 몸을 이르심이 아니라 하나
형상 없는 몸이 형상 있음을 여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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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相是有爲라 生住異滅하나
佛體는 異此이니 故非身相이니라
偈에 云하되
三相의 異體故者는 佛體가
異於有爲三相也라하다
住異二相은 同是現在이니
故合爲一이되고 若細分하면
卽四니라 故로 唯識에 云하되
生表此法先非有요
滅表此法後是無 異表此法이 非凝然이요
住表此法이 暫有用이라하다
규봉:
相은
조작함이 있는 것(有爲)이고
生, 住, 異, 滅하는 것이나
부처의 몸(법신)은 이것과 다른 것이니
그러므로 相의 몸이 아닌 것이다.
偈에 이르기를
“三相의 몸이 다르다고 하는 까닭은
부처의 몸이 만들어진 것(有爲:화신)은
三相과 다르다”했다.
머무르고 (住:법신) 달라지는(변화하는:異)
二相(법신, 화신)은 같은 현재이므로 합하면
하나가 되고 만약 세분하면 곧
넷(生, 住, 異, 滅)인 것이다.
그러므로
唯識에서 이르되
“生은
이 모든 것(法)이 전에는 있지 않았던 것을
드러낸(表) 것이고
滅은
이 모든 것(法)이 나중에는 없어짐을 표한 것이며
다름(異)은
이 법이 고정된 것이 아님을 표한 것이고
住는
이 법이 잠시 쓸데가 있음을 표시한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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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色身은 是相이요 法身은 是性이라
一切善惡이 盡由法身이요 不由色身이니
法身이 若作惡하면 色身이 不生善處하고
法身이 作善하면 色身이 不墮惡處하나니라
凡夫는 唯見色身하고 不見法身하니
不能行無住相布施하며
不能於一切處에 行平等行하여
不能普敬一切衆生이니라
見法身者는 卽能行無住相布施하며
卽能普敬一切衆生하며 卽能脩般若波羅蜜行하여
方信一切衆生이 同一眞性하며 本來淸淨하여
無有垢穢하고 具足恒沙妙用이니라
육조:
色身은 형상이고
法身은 이 법성(형상 없는, 實體)이다.
일체 선악이 다 법신을 말미암고
색신을 말미암아서가 아니니,
法身이 만약 악을 지으면
색신이 좋은 곳에 나지 않고
법신이 선을 지으면
색신이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범부는 오직 색신만 보고 법신을 보지 못하니
능히 상에 집착하지 않는 보시를 행하지 못하며
일체처에 평등한 행을 행하지 못하여
널리 일체 중생을 공경치 못하는 것이다.
法身을 본 이는 곧 능히 무주상 보시를 행하며
곧 능히 일체 중생을 널리 공경하며
곧 능히 반야바라밀행을 닦아서 바야흐로
일체 중생이 동일한 참된 성품임을 믿으며
본래 청정하여 때묻거나 더러움이 없고
모래 수 같이 많은 묘한 작용을
갖추어졌음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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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且道하라 卽今行住坐臥는
是甚麽相인가 休瞌睡니라
說誼:
吾今色身이 卽是常身法身이니
不得離却色身別求常身法身니라
若也離却色身을 別求常身法身이면
慈氏宮中에서 願生兜率이고
含元殿裏에서 更覓長安이니라
所以로 道하되
卽今行住坐臥 是甚麽相하니라
要見常身法身이면 直須向行住坐臥處하여
覰破하여야 始得이니
離却日用으로 別求常身法身이면
便是鬼窟裏에서 作活計니라
所以로 道하되 休瞌睡하라하니라
야부:
자 일러라!
지금의 가고, 머무르고, 앉고, 눕는 것은
이 무슨 형상인가? 졸지 말지니라.
설의:
나의 이 색신이 곧 항상 하는 몸인 法身이니
色身을 떠나서 따로 항상 하는 몸인 법신을 구하지 말라.
만약 색신을 떠나서 달리 항상 하는 법신을 구하면
미륵궁전 가운데서 도솔천에 나기를 원함과 같고
궁전(含元殿) 안에서 다시 장안을 찾는 것과 같으니라.
그런 까닭으로 말하길
곧 “지금의 행,주,좌,와 이것은 무슨 相인가?” 하니라.
항상 하는 몸인 법신을 보고자 하면 바로 행주좌와처를
향해 간파하여야 비로소 얻을 수 있으니
날마다 쓰는 것을 떠나서 달리 항상 하는 몸인 법신을
구하면,
문득 이 귀신굴 속에서 살 궁리를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길 “
졸지 말지어다”하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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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항상 하는 몸(法身佛)은
色身(응신인 현상계)을 떠나 달리 있지 않으니
단멸공에서 빠져 법신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바다에서 산삼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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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身在海中休覓水하고 日行嶺上莫尋山이라
(嶺上은 一作山嶺이라) 鶯吟燕語가 皆相似이니
莫問前三與後三하라
說誼:
淸淨水中에 遊魚自迷하고 赫赫日中에
盲者不覩라 常在於其中하여 經行及坐臥하되
而人이 自迷하여 向外空尋하니 身在海中에서
何勞覓水며 日行山嶺하며 豈用尋山인가
鶯與鶯吟이 聲莫二요 燕與燕語 語一般하니
但知物物非他物하면 莫問千差與萬別이니라
야부:
몸이 바다 가운데 있으니 물을 찾지 말고
날마다 산등성이를 다니면서 산을 찾지 말라
앵무새 노래와 제비 소리가 한가지이니
前三과 더불어 後三을 묻지 말라.
설의:
맑은 물 가운데 노는 고기가 스스로 미혹하고,
밝고 밝은 대낮에도 눈먼 자는 볼 수 없음이라.
그 가운데 항상 있으면서 다니고 또 앉고 눕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미혹하여 밖을 향해 부질없이 찾으니,
몸이 바다 가운데 있음에도 어찌 수고로이 물을 찾으며,
매일 산봉우리를 다니면서 어찌 산을 찾을 것인가?
앵무새와 앵무새 노래가 둘이 아니고
제비와 제비 소리가 한가지라 말하니
다만 만물이 다른 물건이 아님을 알면
천만가지 차별을 달리 묻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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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전삼삼 후삼삼이여 묻지 말라
전삼삼 후삼삼 무엇이 전이요,
무엇이 후이련가?
전과 후가 둘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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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四는 印佛身無相이라
규봉:
(4)는 불신은 상이 없음을
증명해 보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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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告 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체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을
진실한 형상 아님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淸峯:
모두가 생주이멸 하는 허상이며,
참으로 실다운 본성이 곧 진불이니
불은 상이 없는 줄 알면,
그 상없는 법신불이 곧 여래임을 알리라.
이 게송은
금강경 사구게 가운데
가장 중심 되는 게송이다.
사구게는 네 글귀이고
게송은 시나 노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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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부(冶父)는
이 게송을 두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
불(佛)은 어느 곳에 있는고?” 하였다.
“달이 천강(千江)의 물이 있어 비치니
천강이 달이요,
만리 허공에 구름이 없으면
만리가 하늘이다.”
라는 도리를 알아야 하며
산은 산, 물은 물
이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입에 올려 떠드는 것으로는
아무 이익됨이 없는 것이니, ‘
그 깊은 소식’을 알아야 한다.
또 사구게 가운데
중심 되는 글자 하나가 있으니
이것을 가릴 줄 알면
산은 산, 물은 물의 근본 도리를
바로 알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중심이라고 하는 것을
내가 격외로 이른다면
“운전은 혼자 하는 것이다”하리라.
만약 이 사구게 가운데
중심 되는 그 한 글자를 바로 요달하면
삼세제불 일체중생을 낳은 어머니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일체상은 허망한 것이라
필경에는 멸하는 것이라 ‘실이 아닌 것’이다.
실은 환이 아니니 환이 아닌 것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이며,
그 실상이 자성불인 것이다.
일체의 모든 상은 허망한 환이며
모든 상이 진실한(실다운)것이
아닌 것임을 볼 줄 알면
볼 줄 아는 그것이 곧 여래니
곧 상이 없으나 볼 줄 아는 그것이니라.
說誼:
目前에 無法이니
觸目皆如니라
但知如是하면
卽爲見佛이니라
설의:
눈앞에 일체가 없는 것이니
눈 닿는 곳이 모두 같
(不二, 絶代平等)으니라.
다만 이같이 알면
곧 부처를 보게 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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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형상이란 그 있음이 항상 하지 않고
본래 공한 가운데 나툰 마음의 그림자이거늘
범부는 형상에만 쫓아 그 실다움을 보지 못하나
그 상을 여의고 실상이 또한 달리 있지 않으니라.
是心是佛作分別 시심시불작분별 하고
一念萌動萬里差 일념맹동만리차 하나니
山則是山水是水 산즉시산수시수 이라
山水以前是甚麽 산수이전시심마 던가
마음이라 부처라 이름지어 분별하고
한 생각 싹터 움직이면 곧 만리가 어긋나나니
산은 곧 산이요 물은 물이라
산 물 이전에는 이 무엇이던고?
---
圭峰:
非但佛身이 無相이라
但是一切凡聖依正有爲之相 盡是虛妄이니
以從妄念所變現故라 妄念이 本空이니
所變이 何實인가
故로 起信에 云하되
一切境界가 唯依妄念하여 而有差別이니
若離心念하면 卽無一切境界之相이라하다
若見諸相等者는 遮離色觀空也이니
恐聞相是虛妄하고 又別求無相佛身이니
故로 云하되 相卽非相이 便是如來니라
不唯佛化身無相是如來라
所見一切相이 旣無相이니
卽如來也니라하다
故로 起信에 云하되
所言覺義者를 謂心體離念이니
離念相者하면 等虛空界하여
卽是如來平等法身이라하고
肇가 云하되 行合解通하면 卽爲見佛이라하다
偈에 云하되
離彼를 是如來者는 離彼三相이
是法身如來라하고
無着은 則於色身을 但離遍計하여
不執色相하면 卽眞色身이라
故로 彼論에 云하되
此爲顯示如來色身이며
又此當第三欲得色身住處라하다
규봉:
비단 佛身이 상이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모든 범부와 성인이 의존하는(세간, 기세간 등)
바로 일체 함이 있는 (有爲) 相이 모두가 허망한 것이니,
이것은 망념으로부터 변하여 나타난 까닭인 것이다.
妄念도 본래 빈 것(空)인데 변하는 것(나타난 것)이
어찌 실답겠는가.
그러므로 기신론에 이르되
“일체 경계가 오직 망념에 의하여 차별이 있으니
마음에 생각을 여의면 곧 일체 경계의 相이 없게
된다”고 했다.
若見諸相等이라고 한 것은
色을 떠나서 空을 관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니
相이 허망하다 함을 듣고 따로 모양 없는
佛身을 구할까 염려하셨으므로 이르시기를
“형상이 곧 형상이 아닌 곧 이 여래인 것이다.
오직 부처님의 化身이
상이 없는 것을 如來라 할 뿐만 아니라,
보이는 바의 일체의 형상이 다하면
상이 없는 것이니 곧 如來이다”하였다.
그러므로 기신론에 이르되
“覺의 뜻을 말하면
몸과 마음이라는 생각을 여읜 것이니
생각에서 상을 여의면 허공계와 같아
곧 여래의 평등법신이라” 하고
승조(法師)가 이르되
“아는 것과 행함이 일치하면
곧 부처를 본다”고 했다.
偈에 이르기를
“저(차별상대)를 여읜 것을 여래라 한 것은
저 三相을 떠남이
法身如來라 하는 것이라”고 했고,
무착은
“곧 색신에 다만 두루 계교함(遍計)을 여의고
형상에 집착하지 않으면
곧 참 몸의 모양이라” 했다.
그러므로 저 論에 이르되
“이는 여래의 색신을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이며
또 이는 마땅히 第三색신(法, 報, 化身)의 머무는
곳을 증득하고자 하는 것이라” 하였다.
---
六祖:
如來가 欲顯法身하시어
故說一切諸相이 皆是虛妄이니
若悟一切諸相이 虛妄不實하면
卽見如來가 無相之理也니라
육조:
여래께서 법신을 나타내고자 하시어
그러므로 설하시되
“일체 모든 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일체 모든 상이 허망하여 실다움이
아님을 깨달으면 곧 여래를 보리라”
하신 것이 상이 없는 도리인 것이다.
---
傅大士:
如來가 擧身相은 爲順世間情이니
恐人生斷見하여 權且立虛名이로다
假言三十二하고 八十也空聲이니
有身非覺體요 無相乃眞形이로다
부대사:
여래께서 몸 모양을 거론하신 것은
중생 세상의 뜻을 따른 것이니
사람들이 아예 없다는 생각(斷見)을
낼까 염려해서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웠도다.
거짓으로 三十二상이라 하고
八十종호 또한 헛된 소리이니
몸이 있는 것은 覺의 體가 아니요
모양(相)이 없는 것이 참다운 형체로다.
---
冶父:
山是山水是水로다
佛은 在甚麽處인가
說誼:
卽今見山하면 卽是山이요
見水하면 卽是水이니
佛은 在甚麽處인가
야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부처는 어느 곳에 있는가?
설의:
만약 한결같이 佛身은 모양이 없다 하면,
모양밖에 반드시 佛身이 있어야 하거늘
곧 지금 산을 보면 곧 이 산이요
물을 보면 곧 이 물이니,
부처는 어느 곳에 있는가?
---
청봉착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다만 산과 물이 실다움이 아닐진대
실다움은 또한 어느 곳에 있는가?
산도 아니고 물도 아니요
아닌것도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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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有相有求하면 俱是妄이요
無形無見이면 墮偏枯이니
堂堂密密何曾間이리오
一道寒光 爍太虛라네
說誼:
執有執無 俱成邪見이니
有無無二하여야
一味常現하니라
야부:
相(있음)이 있다고 하여
求함이 있으면
이 모두 허망이요
相이 없고 봄이 없다면
치우친 소견에 떨어지니
명백하고 친밀하여
어찌 간격이 있으리오
하나의 맑은 빛(寒光)이
큰 허공에 빛난다 말하네.
설의:
有에 집착하고 無에 집착하는 것은
모두 삿된 소견을 갖춘 성품이니,
있고 없음이 둘 다 없어야 한맛(一味)으로
항상 나타나니라.
---
청봉착어:
상도 없고 구할 것도 없어야 실답다 하나
없음에 치우치면 변견이라 하나니
상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상을 여의지 않아서
다만 명백히 우주에 두루하네.
---
宗鏡:
金身顯煥이시니 巍巍海上孤峰이요
妙相莊嚴하여 皎皎星中圓月이로다
雖然如是이나 畢竟非眞이니
經에 云하되 眞非眞恐迷하여
我常不開演이라시다
且道하라 意在於何인가
一月이 普現一切水하니
一切水月을 一月攝이로다
說誼:
報化高大는 一似海岳之巍巍요
妙相端嚴은 猶如江月之皎皎로다
然이나 此身此相은 遇緣卽現하고
緣盡則隱하니
任他報化隱現하고 寂光眞身이
常湛湛이로다
從敎水月有無하고 天上一輪은
常皎皎로다
一身이 應爲千百億이니 千百億身을
一身攝이도다
종경:
금빛 몸으로 환하게 나투시니
높고 높아 바다 위에 우뚝 솟은 봉우리요,
묘한 상은 장엄하여, 밝고 밝은 별 중에
뚜렷한 달이로다.
비록 이 같으나 필경에 참이 아니니,
經에 이르되
참과 참 아님에 미혹될까 염려하여
내가 항상 열어 펴 보이지
(숨은 뜻) 않는다 하시었다.
자, 일러라!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널리 나타나니,
모든 물에 비친 달을 하나의 달이 거두는 것이다.
설의:
報身, 化身의 높고 큼은
마치 바다 위의 높고 높은 봉우리요,
妙한 상의 바르고 엄숙함은
마치 江에 비친 달처럼 밝고 밝도다.
그러나
이 몸과 이 相은
인연을 만나면 곧 나타나고
인연이 다하면 곧 숨으니,
저 보신, 화신은 숨고 나타나는 대로 맡겨두고
부처님(寂光)의 眞身은 늘 맑아 깊도다.
물 속의 달은 있다 없다 하는 대로 둔 채
하늘에 뜬 달은 항상 밝고 밝도다.
한 몸이 응하여 千百億이 됨이니
천백억화신을 한 몸으로 거두도다.
宗鏡:
報化非眞了妄緣하면
法身淸淨廣無邊이라
千江에 有水千江月이고
萬里에 無雲萬里天이로다
說誼:
看取棚頭弄傀儡하라 抽牽이
全借裏頭人이니라
裏頭人이여 量恢恢하니
瑩若淸空絶點霞로다
絶點霞여 隨機普現百億身이로다
刹塵有機刹塵身이요
刹塵無感但眞身이로다
次下는 顯示悟脩證門하니
雖末世衆生이라도
亦自有分也라서 能信此經하면
悟也니라 無我人等하면 修也하여
得無量福德이 證也니 是知하라
法無古今하고 悟無先後也니라
종경:
報身, 化身은 참이 아니요
망령된 인연임을 깨달으면
法身이 깨끗하고 넓어 끝이 없어라.
千江에 물이 있으면 千江에 달이고
萬里에 구름이 없으니 만리가 하늘이로다.
설의:
무대(棚頭)위의 꼭두각시(인형극)를 잘 보아라.
당기고 미는 것이
전부 숨어서 조정하는 사람에 의지한 것이로다.
숨어있는 우두머리(裏頭人)여!
그 양이 크고 크니
그 밝음은 맑은 빈 하늘에 노을 한 점 없음이로다.
노을 한 점 없음이여!
근기를 따라서 널리 백억 화신을 나투도다.
한량없는 세계(刹塵 ; 온 세계)에 근기가 있어
한없는 세계의 몸이요
한없는 세계에 참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이
다만 진신이로다.
이하는
깨달음을 수행으로 증오해 들어감을
들어내어 보이시니
비록 말세중생일지라도 또한 스스로
갖추어 있어서
마땅히 이 경을 믿으면 깨달을 수 있을 것이요,
아상 인상 등이 없으면 곧 닦음이 되어 한량없는
복덕을 얻게 되는 것이 깨달음이니
알라,
일체 것(法)은
옛과 지금이 없고
깨달음에는 선후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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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화신 부처님이
출현하심도
인연 따라 나투시나
참이 아니니
천강에 물이 있으면
천강에 비춤도
하나의 법신이
일체에 나툼과 같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