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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家解 金剛經

無得無說分 第七 (三, 斷無相云何得說疑)

작성자무소유|작성시간26.06.23|조회수16 목록 댓글 0

無得無說分 第七  (三, 斷無相云何得說疑)

斷無相云何得說疑
無相을 
어찌 말로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심을 끊어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 
如來 有所說法耶
須菩提 言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 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無有定法如來可說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 不可說 非法 非非法
所以者 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無得無說分 第七 
(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음)

圭峰:
第三은 斷無相云何得說疑니라
論에 云하되 
向說不可以相으로 見佛이라하니 
佛非有爲거늘 云何釋迦께서 
得我耨菩提며 云何說法할까 
斷之니라하다 文이 二니 
一은 問答斷疑이고 文이 四니 
一은 擧疑因以問이라

규봉:
3(疑斷) 
無相을 어찌 말로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심을 끊어주신 것이다.
 論에 이르되 “앞서 말하길 
가히 相으로써 부처를 보지 못한다 하니 
부처는 함이 있지 않는데 
어찌 석가모니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며 
어찌 설법하는가 하고 의심해서 
말하는 것을 끊어주신 것이다” 했다.

글에 두 가지니
 (1)은 
문답으로 의심을 끊음이고, 
이것을 넷으로 나누면
①은 
의심의 원인을 들어 물은 것이다.
--------------------------------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 
如來가 有所說法耶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무상정등정각을 얻었다 하겠느냐? 
여래가 말한 바 
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겠느냐?

淸峯:
물음은 부정을 뜻하여 
물음으로써 있음이 없음을 
알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

圭峰:
佛問得不은 意顯不得이니라 
故로 無着이 云하되 
顯示翻於正覺取故라하다 
二는 順實理以酬라

규봉:
부처님이 얻었는가? 하고 물으심은 
얻는 것이 아님을 밝히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無着이 이르되 
“正覺을 취득했다는 것을 
뒤바뀌어 드러내 보이신 까닭이라”고 했다. 
②는
실다운 이치를 따라서 대답한 것이다.
-------------------------

須菩提言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 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無有定法 如來可說
수보리가 말씀드리기를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정한(만들어진) 법(진리)이라는 것이
없는 것을 무상정등정각이라 이름하며, 
또한 정하여 있게된 법이라는 것이 없음을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 옵니다.

淸峯:
법(法)이라고 하는 것은 
정해진 것은 다시 바꾸기 전에는 
절대로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도 
불법(法)이라 하는 것이니, 
세간 법은 고칠 수 있는 법이나 
불법은 만든 것도 아니요, 
고칠 수도 없는 절대 진리인 것이다

무유정법이라. 
어째서 법이 정(정해서 만들어지고 변하게 되는)
한 바가 없는 것일까? 
진리는 밖으로 쫓아 얻음이 아니며 
우주가 생기기 이전에도 
그대로 있었던 것이 누가 만들었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정해(存在)있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꾸거나 조작할 수 없는 즉, 
이설(異說)이 없이 있는, 
즉 만들(結定)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며 이름도 없고 
변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에 
틀림이 없어 법(法)이라 한다.

또 법이란 
본질적으로는 공하여 이름조차 없으니 
고정되어진 바가 없는 것이다
[차별상으로 뒤집으면 무유정법이란 
만든 것은 
본래 고정(결정)되어 있는 바가 아니며
또한 다시 고쳐 만들 수 있기에 
정해진 바가 아닌 것이기도 하니 
이것을 세간법이라 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상정등정각- 줄여서 정각)라는 것도 
얻을 것이 실제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증오한 바를 이름하여 정각을 
성취했다고 하는 것이다.

說誼:
眞如佛性菩提涅槃과 以至六度諦緣等
一切名言이 皆是對機不得已之施設이 
就實而觀하면 初無伊麽事이니라
又乘時有說이나 無實法與人이니라

설의:
진여, 불성, 보리, 열반과 육바라밀 (六度), 
4제(고집멸도), 
12인연법 (무명, 행, 식, 명색,
6처,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등 
일체의 이름(名詞)인 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기틀에(이 한 물건에)  대하여 
부득이 말로써 베푼 것이니, 
실다움을 쫓아 보면(觀) 
이러한 일은 애초에 없음이라.
또 때에 따라서
說함이 있으나 법과 더불어 
이 실다운 것이 없는 것이니라.
---

圭峰:
偈에 云하되 
應化는 非眞佛이며 亦非說法者라하다

규봉:
偈에 이르되
“應身 化身은 
眞佛이 아니며 
또한 설법하는 이도 아니라” 했다.
---

六祖:
阿耨多羅는 
非從外得이고 但心無我所하면 卽是也니라
祇緣對病設藥하여 隨宜爲說이시니 
何有定法乎이랴
如來께서 說하시되 無上正法은 
心本無得이며 亦不言不得이나
但爲衆生의 所見이 不同하여 
如來께서 應彼根性하여 種種方便으로 
開誘化導하시어 俾其離諸執着하시니라
指示 一切衆生의 妄心이 生滅不停하여 
逐境界動이라 
前念이 瞥起하면 後念이 應覺하면 
覺旣不住이니 見亦不存이시다

若爾인데 豈有定法爲如來可說也인가 
阿者는 心無妄念이요 耨多羅者는 心無驕慢이요
三者는 心이 常在正定이요 藐者는 心이 常在正慧요
三菩提者는 心常空寂하여 一念凡心이 頓除하여 
卽見佛性也니라

육조:
무상정등정각은 
밖으로 쫓아 얻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마음에 나와 대상(我所:상대적인 나)
이라는 것이 없으면 곧 이것이다.
다만 
병에 따라 약을 베풂으로 인하여, 
마땅함을 따라서 적절히 설하신 것이니,
어찌 정한(결정하여 만들어진) 법이 있으랴? 
여래께서 설하시되 위없는 바른 법(正法)은 
마음에 본래 얻을 것이 없으며 
또한 얻지 못했다고도 말할 수 없으나
(닦아 증득할 뿐), 
다만 
중생들의 소견이 같지 않아
(잘못 아는 이들이 많아) 
여래께서 성품의 근기(根性)에 따라 
갖가지 방편으로 가르침을 펴서 
교화하여 이끌어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모든 집착을 여의게 하신 것이다.

일체 중생의 망령된 마음이 
일어나고 멸함이 멈추지 않아서 
경계를 쫓아 움직이니, 앞생각이 
문득 일어남을 보아 뒷생각이 마땅히 
깨닫게 되면, 깨달음이라는 것이 
이미 머묾이 아니니 보는 것도 
또한 있지 않음을 가리켜 보이신 것이다. 
그러한데 어찌 定한 法이 있어서 
여래가 설했다 하겠는가?
 

阿는 마음에 망념이 없음이고,
耨多羅는 마음에 교만이 없음이고, 
三은 마음이 항상 바르게 고정되어 있음이요, 
藐은 마음이 항상 바른 지혜가 있음이며, 
三菩提는 마음이 항상 비고 고요해서 
한 생각 범부의 마음을 몰록 제하면 
곧 佛性을 보는 것이다.
---

冶父: 
寒卽言寒하고 熱卽言熱하니라

說誼:
以有二乘說二乘하시고 以有大乘說大乘하시니
應物行權無定法이나 隨緣立理脫羅籠이니라

야부:
추우면 춥다고 말하고 
더우면 덥다고 말하니라

설의:
二乘이 있으므로 이승을 설하시고 
大乘이 있으므로 대승을 설하시니, 
중생에 응하여 방편을 행하심은 
정한 法이 없으나 
인연을 따라서 이치를 세워 
그물(輪廻)을 벗어나게 하였느니라
---

청봉착어:
무유정법은 본래 정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요
만들어진 건 변동 없음이 또한 아니니
무상정등정각이니 설법이라 함은 방편이요
본래 그러한 것 있음이 없도다.
---

冶父:
雲起南山雨北山하고 驢名馬字幾多般인가 
請看浩渺無情水하라 幾處隨方幾處圓인가

說誼:
依俙說諦緣하시고 更爲談六度는 以機不同이며
法亦無定이기에 從此分開萬種名이도다 
以無念智應群機하시니 半滿偏圓多小說인가
多小說이나 曾無一字落言詮이도다

야부:
구름이 남산에서 이니 북산에서 비가 내리고
나귀 이름에 馬자가 얼마나 많은가.
넓고 아득하게 덧없이 흐르는 물을 보라
몇 곳이 모났고 몇 곳이 둥근가?

설의:
가끔 四諦와 十二因緣법에 의거하여 설하시고 
다시 육바라밀을 말씀하신 것은 근기가 같지 
않음으로서, 법 또한 정해짐이 없기에 
이를(근기) 쫓아 만가지 이름으로 가려 펴도다.
 
무념지로써 온갖 근기에 응하시어 
완전하지 않는 가르침(半敎)과 
완전한 가르침(滿敎)과 
방편으로 가르침(偏敎)과 
원만한 가르침(圓敎)을 얼마나 설했던가?
그토록 설했으나 
일찍이 한 글자도 말에 떨어짐이 없었도다.
---

청봉착어:
밥그릇에 밥 담고 
국그릇에 국 담음이 비록 옳으나
국그릇에 밥 담고 밥그릇에 국 담은들 
그 또한 그르지 않으니
근기 따라 방편으로 이름 짓도다.
---

圭峰:
三은 釋無定法之言이라

규봉:
③은 정해진 법이 없다는 
말을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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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以故하면 如來所說法은
皆不可取이며 
不可說이며 非法이며 非非法이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은 
모두가 얻어 가질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법도 아니요 
법 아님도 아닌 것이옵니다.

淸峯:
이름 붙여(즉, 말로써) 논할 바가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여래가 설하신 
진리가 얻어 가질 수도 
말씀 하시지도 않았다 
하는 것일까?

형상이 없고 본래 갖추어 있는 것이니 
얻을 것이 없음이요, 
말씀하신 것이 분명히 있으면서 
말씀하신 것이 없다 하는 것은 
진리를 조작하여 만들거나 
세존의 생각과 조작에 의한 말로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하듯 있는 것을 깨달은바 
그대로 삼키고 토한 것이니, 
바람이 움직인다 해도 공기는 
우주에 그대로 꽉 차있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분다 하나 
나무가 바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님과 같은 도리인 것이다.

또한 불(佛)은 
그대로 여여부동하니 
설해도 설함이 없는 도리이며 
또 문자나 말을 뛰어 넘은 것이라 
생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니, 
말에 쫓아 교법에 끄달리면 
진실을 요달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말씀(敎法)은 다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 것이요 달(實相)이 아닌 것이다.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못하면 비법이고,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여 얻은 바가 없음을 
요달하면 이름하여 비비법인 것이다. 
따라서 
바로 이것이라 해도 안되며, 
이것 아니라 해도 안 되는, 
말로써 이르지 못하며 
생각 일으켜 말을 하면 어긋나는 것이므로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 하는 것이다.

說誼:
佛所說法은 
若說有相과 若說無相에 圓話自在하여
終不滯於一邊이라 所以로 不可取說이니라 
又 佛所說法은 謂是法이라도 
亦不是며 謂非法이라도
亦不是니 若定非法함은 渡河에 須用筏이요
若定是法함은 到岸에는 不須船이니라 所以로 
有時에 道하되 至理一言이 革凡成聖이라하고
有時에 道하되 三乘十二分敎는 是甚麽인가 
熱椀鳴聲이라하니 
金屎之論도 亦以此也니라

설의: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有相으로 설했거나 無相으로 설했거나 
원만한 말이 걸림 없어 
마침내 한쪽 변에 머무르지
(치우치지) 않음이라.
그런 까닭으로 가히 가지고(取) 
설하지 못한다 하는 것이니라.

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이 법이라 해도 또한 옳지 않으며, 
법이 아니라 해도 옳지 않으니, 
만약 결정코 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강을 건너는 데는 모름지기
뗏목을 쓰게 되는 것이요, 
만약 결정코 법이라고 하는 것은 
저 언덕에 이르렀음에는
배를 필요로 하지 않음이니라. 

그런 까닭에 어떤 때는 말하기를 
“지극한 이치의 한마디가 
범부를 고쳐서 성인을 만든다”하고 
어떤 때는 말하기를
 “三乘十二分敎는 이 무엇인가?
뜨거운 사발 그릇에 물끊는 소리”라 하시니
金과 똥을 말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니라.

[곧 법이 정한바 없으나 설법의 
방편이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없다, 있다 
하는 한 변의 소견으로 
치우칠까 염려하신 말씀이다]

청봉착어:
바로 쓰면 약이요 잘못 쓰면 독이라
차별(事)로써 평등(理)을 가르키니
차별은 곧 평등이 아니요 
평등은 곧 차별이 아니로되
차별이 곧 평등이요 
평등이 곧 차별로 양변을 여의네
---

圭峰:
無着이 云하되 
不可取者는 謂正聞時이고
不可說者는 謂正說時니라
非法者는 分別性故로 
非非法者는 法無我故라하다
論에 云하되 
彼法非法은 依眞如義說이니 
非法者는 一切法이 無體相故이며 
非非法者는 彼眞如無我하여 實相有故니라
何故로 唯言說하고 不言證인가 
有言說者는 卽成證義故이니 
若不證者이면 卽不能說이라하다

규봉:
무착이 이르되
“不可取란 것은 바르게 들을 때를 말하는 것이고 
不可說이란 바르게 說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非法이란 分別性이므로 
非非法은 法이 我가 없는 까닭이다” 했다.

論에 이르되
“저 法과 非法은 
진여의 뜻을 의지하여 설한 것이니
非法이란 일체법(모든 것)이 실체의 
모양이 없는 연고이며, 
非非法이란 저 진여는 我가 없으나 
실다움이 있는 연고이다. 
어찌하여서 오로지 설한다는 말만하고 
깨달음(證)은 말하지 않았을까?
說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깨달았음을 이룬 뜻이므로 
‘만약 증득하지 못했다면 
곧 마땅히 설하지 못한다’ 라고” 했다.
---

六祖:
恐人이 執着如來所說文字章句하여 
不悟無相之理하고
妄生知解하여 故로 言不可取니라 
如來가 爲化種種衆生하여 
應機隨量하고 所有言說이나 
亦何有定乎인가
學人이 不解如來深意하고 
但誦如來所說敎法하여 不了本心하여
終不成佛이니 故로 言不可說也니라 
口誦心不行하면 卽非法이요
口誦心行하여 了無所得하면 卽非非法이니라

육조:
사람들이 여래의 설하신 文字와 
글귀에 집착하여
無相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망령되이 알음알이를 낼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不可取라 하신 것이다.
如來께서 갖가지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근기의 정도에 따라서 응하여 量을 따라 말씀으로 
설하신 것은 있으나 역시 어찌 결정된 것이 있겠는가. 

學人이 여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다만 여래의 설하신 교법만 외우고 
여래의 本心을 밝게 깨닫지 못하여 
마침내는 
성불하지 못하므로 不可說이라 하는 것이다. 
입으로만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곧 非法이요,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여 
얻을 바가 없음을 밝게 깨달으면 
곧 법 아님이 아닌(非非法) 것이다.
---

傅大士:
菩提離言說이며 從來無得人이라
須依二空理하여 當證法王身하며 
有心俱是妄이니
無執乃名眞이니 若悟非非法이라하면 
逍遙出六塵하리라

부대사:
보리는 말로 설함을 여읜 것이며 
옛부터 얻은 사람이 없어라. 
모름지기 二空(我, 法)의 이치에 의하여 
응당 法王의 몸을 증득하며 
有心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니 
집착이 없어야 이에 참이라 이름하니 
만약 법 아닌 것도 아닌 것을 깨달으면 
六塵을 벗어나 속세 밖을 거니니라.
---

冶父:
是甚麽인가

說誼:
佛所說法은 如水上하여 
按胡盧相似하여 觸着便轉하니
無定法可取이며 無定法可說이니 
若定說有이면 爭奈非有하며 
若定說無라면 爭奈非無리오 
卽非有無法이라면 畢竟是甚麽인가
又 謂法謂非法은 旣皆不是이니 
畢竟是甚麽인가

야부:
이 무엇인가?(이 뭣고?)

설의:
부처님이 설하신 법은 
마치 물위에 떠 있는 표주박과 같아서 
부딪치면 곧 바뀌나니
(근기 따라 설함이 다름) 
가히 취할 정한 법이 없으며 
가히 설할 정한 법이 없는 것이니, 
만약 결정코 있는 것을 설한다면 
있지 않음은 어찌하며, 
만약 결정코 없는 것을 설한다면 
없지 않음은 어찌하리오. 
이미 有無의 法이 아니라면 
필경 이 무엇인가? 
또는 法이라 말하고 
非法이라 말하는 것은 
이미 모두 옳지 않으니, 
필경에 이 무엇인가?
---

청봉착어:
결정(고정)된 것 없어 가히 취할 것이 없고
결정된 것 없어 가히 설할 것이 없으니
결정된 것 없는 것을 설한 것 있다 하면
있지 않음은 어찌하며
결정된 것 없기에 설한 것 없다 하면
없지 않음은 어찌하나?  악!

若色名色非眞色  약색명색비진색 이요
空亦說空非眞空  공역설공비진공 이니
一念動卽非實相  일념동칙비실상 이요
天然自在卽是眞  천연자재즉시진 이니라

색은 색이라 하는것이 참색이 아니요
공도 또한 공이라 하면 참공이 아니니
한 생각 곧 움직이면 실다움이 아니요
다만 있는 그대로가 옳은 것이니라.
---

冶父:
恁麽也不得이고 不恁麽也不得이니
廓落太虛空에 鳥飛無影迹이로다 咄
撥轉機論却倒廻하니 南北東西任往來하라

說誼:
定有定無俱不是이니 
莫向四句覓黃老니라
黃老는 不坐四句中이니 
不坐四句中은 
鳥飛空中無影迹이로다
咄 更須向鳥道裏轉身하여야 始得이니
南北東西一天地에 莫分彊界任往來니라 
又 法與非法이 二俱不是이니 
二見이 皆非佛本心이라 
誰向空中覓鳥迹이리오 咄 
縱然伊麽去라도 亦非佛本心이니 
若也眞知佛本心이라면 謂是法이라도 
亦不妨이고 謂非法이라도
亦不妨이니라

야부:
이렇다해도 옳지 않고 
이렇지 않다 해도 옳지 않으니,
텅 빈 큰 허공에 새가 날아간 뒤
(方便) 자취가 없어라, 咄!  
교화를 위해 설함(機論)이 
도리어 거꾸로 돌아가니
사방(東西南北)에 오고감을 맡겨두어라.

설의:
정함이 있음과 정함이 없음이 
모두 옳지 않으니
四句를 향해서 황면노자(부처님)를 
찾지 말지니라.
황면노자는
四句(네 가지 분별하는 글귀) 
가운데 앉아 있지 않으니
四句가운데 앉아 있지 않는다 함은 
새가 공중에 날아가도 
그림자 자취가 없음이로다. 咄!

다시 새가 날아간 그 길을 향하여 
몸을 굴려야
(중생 교화의 길)  비로소 옳으니 
사방 천지에 경계를 나누지 말고 
오고감을 맡겨 둠이니라.
또는 법과 비법은 둘 다 옳지 않으니 
두 가지 견해가 
모두 부처의 본심이 아니니라. 
누가 공중을 향해 
새의 자취를 찾으리오. 咄!
비록 
이렇게 하더라도 역시 부처님의 
본마음이 아니니 
만약 부처님의 본마음을 참으로 안다면, 
법이라 이를지라도 또한 방해되지 않고, 
非法이라 해도 또한 방해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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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이렇다 저렇다 말로써 이를 수 없으니
일체가 환이요 꿈일진대
환도 꿈도 아닌 건 무엇이련가?
흙 소가 용궁에 들어간 뒤 소식이 없어라.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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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四는 釋無取說之所以라

규봉:
④는 取하고 說할 게 없는 
까닭을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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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으로 
而有差別이나이다
어째서인가하면, 모든 현인과 성인들이 
모두 함이 없는 법으로써 차별을 
내기 때문이나이다.  "

淸峯:
즉, 분별심이 없는 것이니 
곧 차별이 없고 
여여부동한 것이 부처의 경계요, 
차별을 낸다함은 그 가운데 
행함으로 곧 화신불이요 
보살행인 것으로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도리를 살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무위는 무주이고 무주는 무상이며 
무상은 무생(無生)이니
생함이 없으면 멸함도 없고 
공적하여 해탈인 곧 불인 것이다.
불은 
각이며 각은 곧 지혜를 발현하니 
그러므로 정‧혜(定慧)로 반야를 행함이 
곧 보살행으로 성인의 분별을 여읜 
무위법을 설하심인 것이다.

心欲度衆生  심욕도중생 하고자
用無數方便  용무수방편 하여
以有爲之事  이유위지사 로써
顯現無爲理  현현무위리 로다

중생을 제도하고자
무수한 방편을 써서
함이 있는(事) 것으로써
함이 없는 것(理)을 드러내 보였도다.

說誼:
一切賢聖所證法이 皆以無爲로 有差別이니 
而此差別이 卽無爲라 逈出中間與二邊이로다 
伊麽則一味無爲法이 在聲聞則名四諦요 
在緣覺則名因緣이요 在菩薩則名六度이니 
六度因緣與四諦가 一一無取不可說이로다

설의:
일체 어지신 성인(賢聖)의 증득한 법이 
모두 함이 없음으로써 
차별을 내니 이 차별이 곧 함이 없음이라 
중간과 二邊을 멀리 벗어남이로다.

이러하면 
곧 한 맛의 무위법이 
聲聞에 있으면 곧 四諦라 하고 
緣覺에 있으면 곧 十二因緣이라 하고 
보살에 있으면 곧 육바라밀이라 하니, 
육도와 十二인연과 四諦가 
낱낱이 취할 만한 것이 없으니 
설하지 못한다 하는 것이다.
---

圭峰:
魏釋에 云하되 
一切聖人이 皆以無爲法으로 得名이라하고
論에 云하되 聖人은 但依眞如淸淨得名하며 
非別得法이니 故無取說이라하다 
而有差別者는 論에 云하되 眞如는 具足淸淨과 
分淸淨故라하며 
無着이 云하되 無爲者는 無分別義라하다 
是故로 菩薩은 有學得名이요 如來는 無學得名이니 
初無爲者는 折伏散亂時에 顯了故요 
後無爲者는 唯第一義者의 無上覺故라 
三乘賢聖이 皆修證無爲이니 故로 通說爲差라하니라

규봉:
魏釋에 이르되 
“一切聖人이 모두 무위법으로 
이름을 얻었다”했고,
 論에 이르되 
“聖人은 다만 진여의 청정에 의하여 
이름을 얻었으며 
달리 법을 얻지 않았으므로 
取하여 설한 것이 없다”고 했다. 
而有差別이란 論에 이르되
“진여는 깨끗함을 완전히 갖춤
(具足淸淨:佛)과 
깨끗한 부분(分淸淨:보살)인 연고라” 하며, 
무착이 이르되 
“무위란 것은 무분별의 뜻이다” 했다.

이런 까닭에 
보살은 배움이 있음으로 이름을 얻었으며 
여래는 배울 것이 없음으로 이름을 얻었다고 하나니 
처음의 無爲란 것은 산란을 조복할 때 
밝게 드러난 까닭이요,
나중의 무위란 것은 오직 구경의 진리(第一義)인 
위없는 깨달음인 연고이다.

三乘[성문승, 연각승, 보살승(대승)]의 賢聖이 
모두 무위를 닦아 증득한 연고로 통틀어 
차별이 된다고 설하신 것이라 했다.
---

六祖:
三乘根性이 所解不同하여 見有淺深이니 
故言差別이니라
佛說無爲法者는 卽是無住이니 無住가 
卽是無相이며 
無相이 卽是無起이며 無起가 卽是無滅이라 
蕩然空寂하여 照用齊收하며 䥣覺無礙가 
乃眞是解脫佛性이니라
佛은 卽是覺이며 覺은 卽是觀照며 觀照는 
卽是智慧며 
智慧는 卽是般若波羅蜜多니라

육조:
三乘들의 根性이 이해하는 것이 같지 않아 
見解에 얕고 깊음이 있으므로 
차별이라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설하신 無爲法이란 것은 
곧 無住이니 無住가 곧 無相이며 무상이 곧 
無起(생각 일으키지 않음이며 無記와는 다름)며 
무기가 곧  無滅(생할 것이 없으니 
멸할 것도 없음)이다.

텅 비어 공적하여
照(체)와 用(작용)을 모두 거두며 
밝게 보아 깨달아 걸림이 없는 것이 
참으로 解脫이요 佛性인 것이다. 

佛은 
곧 覺이며 각은 곧 돌이켜 비춰봄(觀照)이며 
(觀照) 는 곧 智慧 이며 智慧 는 
곧 般若波羅蜜多 인 것이다.
---

傅大士:
人法俱名執이나 了卽二無爲라 
菩薩은 能齊證하고
聲聞은 離一非니라 所知煩惱盡하면 
空中에 無所依이니
常能作此觀하여 證果定無疑노라

부대사:
사람과 법이 모두 집착이라 하지만 
깨달으면 곧 둘 다 함이 없으니 
보살은 능히 함께 증득하고 
성문은 한가지 아닌 것(非)만 여의었느니라
所知와 煩惱가 다하면 
빈 가운데 의지할 게 없으니 
항상 능히 이렇게 관하여 果를 증득하면 
결정코 의심할 바 없노라.
---

冶父:
毫釐有差하면 天地懸隔이니라

說誼:
法雖一味나 見有千差이니
 所以千差가 只在一念이라 
一念之差에 隔同天地이니 
雖然如是이나 天地一統이니라 
伊麽則金爲千器면
 器器皆金이요 栴檀萬片이 
片片皆香이로다

야부:
털끝 만한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만큼 현격하게 벌어지니라.

설의:
법이 비록 한 맛이나 견해에 천의 차이가
(굉장한) 있으니 
이 까닭에 천차가 다만 한 생각에 있음이라.
한 생각 차이에 나누어짐이 하늘과 땅 차이 같으니 
비록 이와 같으나 천지는 하나로 통하니라.

이러한즉 
금으로 천개의 그릇을 만들면 
그릇 그릇이 모두 金이요, 
전단(약용 향나무)의 만 조각이 
조각마다 모두 香이로다.
---

청봉착어:
本覺이 體요  또한 體의 慧가 곧 用이니
없이 있으나 聖相일체를 밝게 앎이 慧요
비춰보아 진공묘유함을 깨달음이 始覺이니
慧의用으로써  體를 요달함이 반야바라밀 
그것이니라.
---

冶父:
正人이 說邪法하니 邪法이 悉歸正하고 
邪人이 說正法하나 正法이 悉歸邪하니
(歸邪는 一作皆邪라) 江北成枳江南橘이나 
春來에 都放一般花로다

說誼:
一味無爲法이 能正亦能邪하니 
一種이 分南北하나
南北이 一般花로다

야부:
바른 사람은 삿된 법을 설해도 
삿된 법이 모두 바른 법으로 돌아오고 
삿된 이가 바른 법을 설해도 
바른 법도 모두 삿됨으로 돌아오니
江北에서는 탱자요 江南에서는 귤이나 
봄이 오면 모두 한가지로 꽃 피도다

설의:
한 맛의 무위법이 능히 바르기도 하고 
또한 능히 삿되기도 하니
한 종자가 남북으로 갈려도 꽃은 남북이
한가지로다
---

청봉착어:
정각을 이루니 일체가 둘 아니어서
바르고 삿됨도 둘 아니라
꽃을 꽃이라 함에 옳지도 그르지도 않아
근기 따라 설함에 걸림이 없어라
---

宗鏡:
得亦非說亦非이니 能仁機輪이 電掣이라 
取不可捨不可이 空生舌本이 瀾翻이로다 
且道하라 無爲法이 爲甚麽有差別인가
萬古碧潭空界月을 再三撈漉始應知인가

說誼:
得而無得이고 說而無說이니 神妙其機가 電光이라
難能入手이니 取之不可取며 捨之不可捨니 快然其舌은
勇浪이 能爲高下로다 此則且置하고 只如無爲法이 
爲甚麽有差別인가 君今欲識無爲理이면 
不離千差萬別中이니라
雖然如是이나 但知空月이 落潭心하면 
爭似癡猿枉勞形이리오 

종경:
얻는다는 것도 또한 틀리고 
설한다는 것도 또한 틀리니
能仁(부처님)의 기틀의 쓰임
(機輪:솜씨)이 번개와 같아 
취하려해도 取하지 못하고 
버리려해도 버리지 못하니 
수보리의 혀뿌리가 물결침(무유작용)이로다.

자, 일러라! 
무위법이 어찌하여 차별이 있는가? 
만고의 푸른 못에 잠긴 허공의 달을 
재삼 건져 보아야 비로소 능히 알겠는가?

설의:
얻어도 얻음이 없고 설해도 설함이 없으니 
신묘한 기틀의 솜씨가 번개라 손에 넣기 어려우니 
取할래야 취하지 못하고 버릴래야 버리지 못하니
상쾌한 그 혀는 용맹스러운 물결이 능히 오르고 
내리도다. 이것은 곧 그만두고
다만 
저 무위법이 어찌하여 차별이 있는가?
그대가 이제 無爲의 도리를 알고자 하면 
천차만별 가운데를 여의지 않아야 하느니라. 
비록 이와 같으나 다만 허공의 달이 
못 가운데 떨어짐을 알면, 
어찌 어리석은 원숭이가 부질없이 
수고로운 짓을 행하리오.
---

청봉착어:
함이 없는 무위법은
본래 차별상이 없으니
구름 없는 허공의 달이
만강에 떠 있음을 알라
---

宗鏡:
雲捲秋空月印潭이여 
寒光無際與誰談하리 
豁開透地通天眼하면
大道分明 不用參이리라

說誼:
若使空月不印潭이면 豈謂寒光廣無邊인가 
照天照地含萬象하니 無窮此味與誰談할까
但於頂門能具眼하면 更向何處覓玄宗이리오

종경:
구름 걷힌 가을 하늘아래 못에 비친 달이여
밝은 빛의 끝없음을 누구와 더불어 말하리
천지를 꿰뚫는 안목을 활짝 열면
大道가 분명하여 의심하지 않으리라.

설의:
만약 허공의 달이 못에 비치지 않는다면 
어찌 밝은 달빛이 넓고 끝이 없다고 말하겠는가? 
하늘을 비추고 땅도 비춰서 온갖 모습을 머금었으니 
무궁한 이 맛을 누구와 더불어 얘기할까? 
다만 정수리에 능히 눈(慧眼:일척안)을 갖추면 
다시 어느 곳을 향해 현묘한 종지를 찾으리오?
---

청봉착어:
천 강에 뜬 달은 곧 하나의 달이요
하나의 달이 강마다 떠 있으니
일체의 달이 둘 아니라서
하나의 달이 일체를 거두도다.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한 맛으로 돌아가니
이 오묘한 도리를
누가 알아 더불어 논하리요 끊어주신 것이다.
論에 이르되 
“앞서 말하길 가히 相으로써 
부처를 보지 못한다 하니 
부처는 함이 있지 않는데 
어찌 석가모니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며 
어찌 설법하는가 하고 
의심해서 말하는 것을 
끊어주신 것이다” 했다.

글에 두 가지니
(1)은 
문답으로 의심을 끊음이고, 
이것을 넷으로 나누면
①은 
의심의 원인을 들어 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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