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着)
인도의 無着 은 18주위(十八住位)
十八住處는
1
發心住이니
경에 이르되 “응당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을지니 있는 바 일체 등등...”이고
2
波羅蜜相應行住이니
“색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이고
3
欲得色身住이니
가히 색신상견등 즉
“몸의 모양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느냐” 등이며
4
欲得法身住로
法身은 둘이 있으니 첫째는 言說法身이니
“자못 어떤 중생이..” 등으로
말로써 이치를 나타내는 까닭이고
證得法身이니
이것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智相이니“여래가 아뇩다라를 얻었느냐”
등이고
또 하나는 福相이니
“만약 사람이 만삼천대천 세계...” 등이다.
5
(於修道得勝中無慢住)
닦아서 수승함을 얻는 가운데 게으름이 없이
머무는 수다원 등이니,
여기서부터 十六住에 이르기까지 차례대로
十二種障을 대치하니
뜻이 색신과 법신을 밝게 구하고자 하면
이 두 가지 장애를 여의어야 하는 것이다.
장애가 다했으므로 十七證道에 들어가니
第一의 게으른 장애(慢障)를 대치함에 해당하고
6
不離佛出時住이니
“옛적에 연등불회상에서...”등이며
第二少聞障(가르침을 들음이 적은 장애)을
여읨이니 부처님의 세상을 떠나지 않으면서
多聞을 갖추는 것이며
7
願淨佛土住이니
“보살이 불 국토를 장엄하느냐”등이니
작은 인연으로 생각을 지어
수도하는 장애를 떠남이니
形相土(모습)를 인연하면 小이고
인연함이 없으면 大니 法界에 계합한 까닭이며
8
成熟衆生住이니
“사람 몸이 수미산 같다면...”등이니
중생심을 버리는데 있어서
장애됨을 여의는 것이니
만약 大小(차별상)를 보면 능히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며
9
遠離隨順外論散亂住이니
“항하 가운데 있는 바 모래 수...”등으로
외도의 소견(여법한 불교 외)에
쫓아 산란함에 머무는 것을 즐기는 장애를
여의게 하는 것이니 항하사와 같은
많은 보물로써 보시하는 것도 경을 가지는 것에
미치지 못하거늘 어찌 다른 학문을 하여
正法을 닦지 않는가 하는 것이고
10
色及衆生身搏取中에 觀破相應行住이니
“三千世界에 있는 미진”등이다.
影像相을 破한 (형상은 있으나 실체가 공한)
가운데는 선교 방편이 없다는
장애를 여의는 것이니
[離破아래는 여의는 것이 막힘이니
영상상이라는 것은 색신등 법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법계가운데 영상이며
또한 가히 업식의 영상이다.
無巧便障
이란 것은 바른 방편이 없으므로 인하여
능히 이 영상을 파하지 못하는 것을
이에 막힘이 된다 하는 것이니
만일 방편의 재주가 있어 파하면
그 머묾을 이루게 된다
이미 산란을 여의어서 定에 相應하면
細末과 不念의
두 가지 방편으로 거친 번뇌를 깨뜨려
細에 이르고
미세한 것을 없애서 空한 데까지 이르면
영상의 相想(상을 생각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며
11
供養給侍如來住이니
“가히 三十二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등으로
복덕이 갖춰지지 않는 장애를 여의는 것이니
相으로써 보지 않고 항상 法身을 보는 것을
“받든다”고 이름하니 그 복이 한량이 없으며
12
遠離利養 及 疲乏熱惱故로 不起精進 及 退失住이니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면”등이니
게을리(懈怠)하고 재리를 탐함을 즐겨하는
장애를 여읨이니
항하사와 같은 몸을 보시함도 오히려 경을 가지는
것만 못하거늘 어찌 一身을 이롭게 하는 재리에
탐착하여 몸이 피로하고 마음이 번거롭다고 해서
게으름을 피우겠는가 하는 것이고
13.
忍苦住이니
忍辱波羅蜜의 “신체를 낱낱이 베일 적에...”등으로
능히 고통을 참지 못하는 장애를 여읨이니
我相, 人相 等이 없으면 온갖 고통을 능히 참는 것이고
14
離寂靜味住이니
“오는 세상에 만약 능히
이 경을 수지 독송하면...”등으로
智資粮(지혜의 양식)을 갖추지 못한
장애를 여의는 것이니
하루에 세 번씩 몸을 바쳐 보시함을
낱낱 모래 수만큼 할지라도
經을 믿는 것에 미치지 못하거늘
어찌 오로지 禪定만 노려 고요함에 빠져
지혜를 잃어 지녀서 설(經)하지 않으며
15
於證道時에 遠離喜動住이니
“어떻게 머물며 항복하리까”등이다.
十一의 스스로 관대히 거두지 못하는 장애를 여읨이니,
내가 능히 항복하여 머물면 마음에 기쁨이 생기니
움직이면(마음이 動하면) 곧 능히 스스로 거두지
못하는 것이고
16
求佛敎授住이니
“연등불회상에서 법이 있어서
보리를 얻었는가...” 등이다.
十二의 가르치고 전할 것이 없다는 장애를 여읨이니,
初地에 들고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해야 하므로
부처님을 만나 도를 깨달아(證道)
얻을 바 없음을 얻는 것이고
17
證道住이니
“사람 몸이 장대함...” 등이다
성품의 지혜종자를 거두어
두루 진여를 깨달아 행하며
法身과 報身을 이루므로 크다고 하며
[성품의 종자를
거두는 아래는 머무는 뜻을 해석하여 이룬 것이다.
지혜의 체는 곧 관조반야이니
이는 능히 증오한 것이다.
곧 묘관찰지와 평등성지의 무분별이니
이 지혜를 얻어 여래의 집에서 나와 결정코
부처의 종자를 잇는 까닭이다.
이는 마음 땅 앞에 행함을 더하는 지혜이니,
처음 마음 땅에 이르러 구르고 굴러
이름을 받은 것이다.
두루 증하는 등이란 것은
체가 곧 실상 반야이니 이를 증하는 것이다
18.
上求佛地住이니
이 가운데 다시 六가지가 구족하니
첫째
國土淨具足이니
“내가 마땅히 불 국토를 장엄하리라”등이다.
이것은 二地이상의 모든 대보살을 가리킴이다.
둘째
無上見智淨具足이니
[見淨이란
것은 곧 5안이니
見이 곧 봄이 없음을
이름하여 깨끗함이라 하고
보지 못할 바가 없음을 이름하여
具足이라는 것이다.
智淨이란 것은
곧 모든 마음을 모두 안다 하는 등이니
智가 곧 아는 것이 없음을 이름하여 깨끗함이라 하고
알지 못할 바 없음을 이름하여 具足이라 하는 것이니
智와 見이 다르지 않으므로 한 곳에 마땅한 것이다]
“육안이 있느냐”등이다. 이 아래로는 모두가 오직
佛果이므로
위없다(無上) 하는 것이니,
위없다는 말이
아래 四가지와 서로 통하며
셋째
福自在具足이니
[묻되,
앞에서 이미 보시의 복을 여러 번 설하였으니
이것으로 더불어 무엇이 다르냐?
답은,
앞에서 설한 바는 다 이 받아 지님의
복에 미치지 못함을 비교해 이른 것이거니와
지금 이것을 설한 것은 이에 이 머물지 않는
성품의 복이니 능히 비교할 것이 아니므로
갖지 않는 것이다.
묻되,
佛은 이 果요,
보시는 이 因이거늘
어찌하여 果 가운데 곧 因行을 말씀하는가?
답은,
무릇 이 과와 덕이 모두 저 인이 이룬 것이니
저 무주의 인을 들어서 성품이라 칭하는
복을 밝힌 것이다.
自在라 말한 것은
유루의 복은 자재하지 못함으로 가린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 찬
칠보..”등이고
넷째
身具足이니 “부처를 구족한 색신으로써..”등이고
다섯째
語具足이니 “너희는 여래께서 설법한다
말하지 말라”등이며
여섯째
心具足이니 “ ‘부처가 아뇩보리를 얻었느냐?’
‘얻은 바 없게 되었는가?’로부터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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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十八住를
간략히 八種으로 나누어도
역시 만족함을 얻으리니
一은
攝住處요
二는
波羅蜜淨住處이니
一과 二를 (18주 중) 차례대로 배열하고
三은
欲住處로
三과 四를(18주 중) 거두는 것이고
[攝은
이 籠羅包納의 뜻으로 곧 중생을
널리 제도하여 현재 어기는 것(違反)이
없음을 쓴 것으로써 제일 발심주와 같다고
짝(配)하는 것이다.
깨끗함에 상응함이 대개 한 뜻이니
그러므로 제二住와 같다고 짝(配)하는 것이다.
三攝三四란 것은 비록 三色과 四法이라도
가히 얻고자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3, 4의 二住와 같다고 짝(配)하는 것이다]
四는
離障礙住處이니
곧 앞의 二十障礙며 곧 五에서 十六까지 이고
五는
淨心住處요
六은
究竟住處이니 위(18주 중)의 둘은 차례대로
十七, 十八로 배열하고
七은
廣大住處요
八은
甚深住處이니 위 두 가지는 각각
모두 十八住處 전체를 거두는 것이니
낱낱의 주처 가운데 모두 깊고 모두 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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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八住文을
각 位地로 배열하면
一은 十住요
二는 十行가운데 앞의 六行이요
三은 제七行이요
四는 뒤의 三行이요
五에서 十四까지는
이같이 十廻向(보살수행 52위 가운데
제31위에서 제40위로 대자비심으로
일체중생을 구호함)으로
배열하고
十五는 煖頂이요
十六은 忍世의 第一이요
十七은 初地요
十八은 二地부터 佛地까지이다.
이상으로 科判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