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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家解 金剛經

善現起請分 第二 (수보리가 일어나 법을 물음)[正宗分]

작성자무소유|작성시간26.06.19|조회수25 목록 댓글 0

善現起請分 第二
수보리가 일어나 법을 물음)[正宗分]
[正宗分]
善現起請分 (善現申請)

時 長老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著地
合掌恭敬 而白佛言
希有世尊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當爲汝說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世尊 願樂欲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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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第二는
依 天親論 約答問斷疑科釋에 總分四段하니
 一은 善現申請이라
又二니 一은 整儀讚佛이라

규봉:
둘째는 天親論에 의하여 문답으로 의심을
끊어서 科를 해석함에 모두 四단으로 나누니
 1.
수보리(善現)가 법을 청한 것이니
여기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①위의를 정돈하고
부처님을 찬탄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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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에 長老須菩提가
在大衆中하다 卽從座起하여 偏袒右肩하고
右膝着地하고 合掌恭敬하여
而白佛言하되 希有世尊이시여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그때에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한편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공경하여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고
모든 보살들을 잘 부촉하십니다.

淸峯:
어째서 희유한가?
일체가 원융하여 상대적인 차별이 없는
평등문으로 보면
세상에 둘 없는 것을 보이심이니
참 부처는 그대로 여여 부동이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말없는 가운데 보이시니
희유한 것이며,
차별문으로 보면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평범한 것이 도 임을 보이셨다.
이것은 유위(有爲)의 것으로
무위(無爲)의 실상을 보이심이다

유위(有爲)의 차별상으로 장하심을 살피면,

왕위를 집착하지 않고

장육신장에 32상호, 80종호를 갖추어
삼계에 비할 데 없이 뛰어나신 것

8만 4천법(일체종지)을 증득하여 삼키고
토함(설함)으로 3신(法,報,化身)을 원융하게
갖춤으로 세존이시며,
지혜가 삼계에 뛰어나 미칠 이가 없고
덕이 높아 위가 없어
일체가 공경하므로 존칭하여
세존이라 하는 것이다.

반야의 지혜로
자기의 몸과 마음을 살펴 지키며,
망령된 애증을 일으켜
육진 경계에 끄달려
생사고해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마음(心)으로부터 생각 생각을
바르게 하고, 삿되지 않게 가르쳐
(善護念)주시고
참된 자기성품인 진여를 살펴
증득하게 하시기 때문에
모든 보살(나아가 모든 중생)들이
청정한 반야의 지혜를 제시하심을 받들어
이를 행하여 해탈에 이르게 하시고
바른 법을 끊어지지 않게 하시
(善付囑)기 때문이다.
장로라는 것은
덕이 높고 지혜가 밝은 비구승을 칭하는 말
수보리:
10대 제자 중 1인이며 선현(善現), 선길(吉),
선업(業), 공생(空生)등 이라고도 하며
해공(解空~공의 이치를 깨달아  지혜로써)
제일의 깨달은(阿羅漢) 제자.

說誼:
楊岐가 云하되 黃面老子가 幸自可憐生이로다
被須菩提가 出世道介希有하여 當下에 氷消瓦解라하니
此老此說은 只要敎人으로 向劫外承當이니라 所以로
大慧가 擧此話云하되 黃面老子가 不下一言이거늘
須菩提가 見介甚麽道理기에 便道希有인가
但向楊岐의 氷消瓦解處看하여 自然看得破하면
 一生參學事畢이라하고 又古德頌云하되
四溟風息月當天하고
不動波瀾駕鐵船이로다
賴得空生重漏洩하여 免同良馬暗窺鞭이라하시니
則世尊이 端坐하사 不下一言處에서 最初一句子를
覿面提持하여 向諸人面前하여 兩手로
分付了也거늘 須菩提가 早知如是하여
出來道希有하니 不有須菩提면 誰知暗中明이리요
因憶毘耶의 當日事하니 一聲雷震三千界로다

설의:
양기(방회선사)가 이르되
“黃面老子(석가모니)가 다행하게도
스스로 불쌍하게 되었도다.
수보리가 나와서 ‘희유하십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얼음이 녹고
기와가 풀리게 된 것이다” 라고 했으니,
이 노인(양기스님)의 이러한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劫 밖을 향해서 알아차리게 한 소식이니라.

이런 까닭에
大慧(종고선사)가 이 말을 들어 말하길
“황면노자가 한 말씀도 하지 않았는데
수보리가 무슨 도리를 보았길래
‘희유하십니다’ 라고 말했는가?
다만 양기 스님이 말한 빙소와 와해처를
향하여 보아 자연히 깨쳐 얻으면(看得破)
일생의 공부하는 일을 마치리라.”했으며
 
또 옛 선사께서 頌하시길

“四海에 바람이 쉬니
달이 하늘에 떠있고
파도를 일으키지 않고도
철선을 몰도다.
수보리의 거듭 누설에 의해서
良馬가 그윽히 채찍질을
면함과 같도다”라 하셨다.

즉 세존이 단정히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은 곳에서
최초의 한마디를 눈앞에서 가져다
모든 사람의 면전을 향하여
두 손으로 나누어 부쳤거늘
수보리가
벌써 이와 같은 도리를 알고서 나와
“희유하십니다”하니
수보리가 아니었으면
누가 어둠 속에서 밝음을
알았으리오.
비야리 성의
그때 일(유마거사의 黙言)을
돌이켜보니
한 우뢰소리가
삼천 세계를 진동함이었도다.
---

圭峰:
長老者는 德長年老이니 唐譯에 云하되 具壽이니
壽卽是命이요 魏譯에 云하되 慧命이니 以慧爲命이니라
須菩提는 有三義譯하니 謂善吉善現空生이라
生時에 室空하여 解空之善瑞가 現矣요 相師가
占云하되
唯善唯吉이라하니라 從座起下는 皆整理威儀이니
脩敬之相이니라
希有者는 世所無故이며 如來者는 從如而來니라
論에 云하되
善護念者는 依根熟菩薩說로 謂與智慧力하여
令成就佛法하고 與敎化力하여 令攝取衆生이니라
善付囑者는 依根未熟菩薩說이니 懼其退失하여
付授智者라하다 付者는 將小付大요
囑者는 囑大化小니라
菩提薩埵는 此云覺有情이니 三釋이라
一은 約境이며 所求所度요
二는 約心이니 有覺悟之智하되 餘情慮之識이요
三은 約能所니
所求能求이니 三皆如次配覺及有情이니라

규봉:
長老라는
것은 덕이 높고 나이가 많은 것을 이르니
중국말로 번역하면 具壽라 하니 壽가 곧 목숨이요,
魏譯으로는 慧命이라 하니
智慧로써 명을 삼는 때문이다.
수보리를 해석하면 세 가지 뜻이 있으니
善吉, 善現, 空生이다.
태어날 때 방이 텅비게 되어(空生)서이고,
空의 도리를 이해하는 상서로움이 나타남(善現)인데,
관상 보는 이(相師)가 점쳐 이르되
“오직 선하고 오직 길하다(善吉)”라고 함인 것이다.

從座起下(자리에서 일어남)는
모든 위의를 정리(가지런히)한 것이니
공경하는 모습이다.
 “희유하다” 하는 것은 세상에 없는 까닭이며
 如來란 진여로부터 온 것이다.

 論(천친론)에 이르기를
 “선호념 한다는 것은
근기가 성숙한 보살을 위하여 설한 것으로
지혜의 힘을 주어서 불법을 성취케 하고
敎化의 힘을 주어서 중생을 다스리게
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선부촉은
근기가 미숙한 보살을 위하여 설한 것이니
혹 물러날까 염려하여 지혜 있는 이에게
붙여주는 것이다”했다.
 付는
작은 것을 가져 큰 것에 부치는 것이요,
 囑은
 큰이에게 부쳐서 작은 이를 교화하는 것이다.

보리살타(Bodhisattva)는
覺有情이니 세 가지로 해석한다.
①은
 約境이니 구하여 제도하고자 하는 것이며(所求所度)
②는
 約心이니 깨달음의 지혜가 있으나 사량하는
생각(情)의 알음알이(識)가 남아 있음이고
③은
約能所이니 구할 것(所)과 구하는 것(能)이니
세 가지 모두를 순서대로 깨달음과 식정이 남아
있음에 따라 나눈 것이다.
---

六祖:
何名長老인가
德尊年高이니 故名長老니라
須菩提는 是梵語인데 唐言으로 解空이니라
隨衆所坐이니 故云卽從座起니라
弟子가 請益에 先行五種儀이니
一者는 從座而起요
二者는 端整衣服이요
三者는 偏袒右肩하며 右膝着地요
四者는 合掌하고 瞻仰尊顔하되 目不暫捨요
五者는 一心恭敬하여 以伸問辭니라
希有는 略說三義이니
第一希有는 能捨金輪王位요
第二希有는 身長丈六이며 紫磨金容과 三十二相과
八十種好가 三界無比요
第三希有는 性能含吐八萬四千法하시고
三身圓備시니 以具上三義이니 故云希有也니라

世尊者는
智慧過三界하여 無有能及者며 德高更無上하여
 一切咸恭敬이니 故曰世尊이니라
護念者는 如來가 以般若波羅蜜法으로
護念諸菩薩이요
付囑者는 如來가 以般若波羅蜜法으로
付囑諸菩薩이니라
言善護念者는 令諸學人으로 以般若智로
護念自身心하여 不令妄起憎愛하여
染外六塵하여 墮生死苦海하며
於自心中에 念念常正하여
不令邪起하여 自性如來를 自善護念이요
言善付囑者는 前念淸淨을 付囑後念淸淨하여
無有間斷하여야 究竟解脫이니 如來가
委曲誨示衆生과 及在會之衆하시어 當常行此이니
故云 善付囑也니라
菩薩은
是梵語인데 唐言에 道心衆生이며
亦云覺有情이니
道心者는 常行恭敬하여 乃至 蠢動含靈도
普敬愛之하고 無輕慢心이니 故名菩薩이니라

육조:
무엇을 長老라 하는가?
덕이 높고 나이가 높으므로 長老라 한다.
수보리는 범어인데 唐言으로는 解空이라 한다.
대중들과 함께 앉았으므로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것이다.
제자가 法門을 청할 때는 먼저 다섯 가지
威儀를 행하게 되니
 1.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2.
의복을 단정히 하는 것이고
 3.
오른쪽 어깨에 옷을 걷어 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는 것이고
4.
합장하고 존안을 우러러보되
눈을 잠시도 떼지 않는 것이고
 5.
한마음으로 공경하여 사뢰어
물어야 하는 것이다.

希有는
간략히 설명하면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제1.
희유는 능히 제왕의 왕위를 버린 것이요,
제2.
희유는 身長이 丈六이며
금빛 얼굴과 三十二상호와 八十종호가
삼계에  비할 데 없음이요,
제3.
희유는 성품이 능히 八만 四천 法을
머금기도 하고 吐하기도 하시고
三身을 원만히 갖추셨으니 이로써
위의 세 가지 뜻을 갖추었으므로
 “희유하다고” 하는 것이다.

세존이란
지혜가 삼계를 뛰어넘어
능히 미칠 자가 없으며
덕이 높아 다시 위가 없어
일체가 공경하므로
세존이라 하는 것이다.
護念이란
여래가 반야바라밀법으로써
모든 보살들을
잘 보호해 지킨다 하는 것이요,
付囑이란
여래가 반야바라밀법으로써
모든 보살들에게 부쳐서 전하는 것이다.
수보리가 말한 善護念이란
모든 學人으로 하여금 반야의 지혜로써
자기의 몸과 마음을 잘 지켜서 망령되이
미움과 사랑의 마음을 일으켜 밖으로 육경에
물들어 생사의 고해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자기 마음 가운데 생각 생각을 항상 바르게
하여 삿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해서
自性如來를 스스로 잘 지키게 하는 것이다.
선부촉이란
앞생각이 깨끗한 것을 뒷생각까지 깨끗하게
잘 부쳐 전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여 마침내
해탈케 하는 것이다.
여래께서 중생과 모인 무리에게 자세히
가르쳐 보여서 마땅히 항상 이것을
행하게 함으로 선부촉이라 이르는 것이다.
菩薩은
범어인데 중국말로 도를 구하는 마음을 지닌
중생(道心衆生)이며
또한 깨달음에 정(情)이 남아있는 것이니
道心을 지닌 이는 항상 공경을 행하여
준동함령 (작은 미물인 일체 생물)까지라도
널리 공경하고 사랑해서 경멸하고 업신여기지
않으므로 보살이라 하는 것이다.
---

冶父:
如來가 不措一言이나
須菩提가 便興讚歎하니
具眼勝流는 試着眼看하라

說誼:
相逢不拈出하여도 擧意便知有하니
是何境界인가 同道라야 方知니라

야부:
여래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수보리가 문득 찬탄하였으니,
눈을 갖춘 뛰어난 무리들은 시험삼아
잘 착안해 보라.

설의:
서로 만나서 들어내지 않아도 뜻을 들면
문득 아는 이가 있으니 이 무슨 경계인가.
道를 같이해야 비로소 아느니라.
---

청봉착어:
많은 사람이 밥 먹고 그릇 씻고 발 닦고
앉아도 희유하다 하지 않았어라.
다만 말없음으로 말없는데 이르름을
지음(知音)자는 스스로 안다네.
---

冶父:
隔墻見角하면 便知是牛요
隔山見煙하면 便知是火이니
獨坐巍巍여 天上天下이니
南北東西에 鑽龜打瓦로다. 咄

說誼:
知火知牛事希奇하니
知音相見이 正如是로다
獨坐云云은 混虛空爲自身하고
盡大地爲坐具하여 坐斷千差하여 不通凡聖이니
是可謂天上天下渾漫漫이로다 更無一物爲等倫이로다
若是過量漢이면 一見에 便不疑거니와
若非過量漢이면  未免暗思量하니라

야부:
담 넘어 뿔을 보면 문득 소인 줄 알고
산 넘어 연기를 보면 문득 불인 줄 아나니
홀로 앉아 높고 높기는 천상천하이니
남북동서에서 거북과 기와로 점을 치도다. 돌!

설의:
불을 알고 소를 아는 일이 희귀하니
知音者(서로 알아주는 사람)가
서로 보는 것이 바로 이와 같도다.
홀로 앉아(獨坐) 운운한 것은
온 허공으로 자신을 삼고
온 대지를 방석으로 삼아서
온갖 차별을 끊고 앉아서 凡聖이
통하지 않으니(차별이 없음) 이것이
가히 천상 천하에 혼연히 늠름한 모습이로다.
다시
어떤 물건도 그것과 짝할 수 없는 것이로다.
만약 이런 대근기(過量漢)라면 한번보고
다시 의심할 것이 없거니와 대근기가 아니면
가만히 사량함을 피할 수 없느니라.
---

圭峰:
二는 正發問端이라

규봉:
②는 바로 물음을 시작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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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尊 善男子善女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며 云何降伏其心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녀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서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을 것이옵니까?”

淸峯:
선남자, 선여인은 걸림이 없고 순조로운
마음과 바른 지혜의 마음을 일으켜
평탄심과 정혜심으로
일체공덕을 성취한 남녀,
또는 바르게 수행하는 남녀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위(뇩다라) 없는(아)
바른(삼먁)
진리(삼보리)를
일으킨(발)
생각(심)이다.
좀더
자세히 살피면 발은 생각을 일으킴이고,
아는 때묻음이 없음이요,
뇩다라는 비할 데 없는 최상을,
삼은 바른 지혜 곧 정견이며
먁은 넓고 두루한 일체이고,
보리는 지혜로운 깨달음이며,
심은 그 마음이니,
바른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켰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상정등정각의 마음을 낸 것을 말한다.

마음(心)이라는 근본 성품과
일으킨 마음은
구분하여 살펴야 한다.
근본 마음은
응무소주요 여여부동이고,
일으킨 마음은
이생기심이니
마음과 생각으로 구분하면
쉽게 이해하리라 믿는다.
따라서
이때의 일으킨 마음은
때묻음이 없고 비할 데 없는
최상승의 바른 지견으로
일체를 넓게 알아 성불 할 수 있는
그 마음인 것이다.
곧,
일체중생이 망령된 생각이
끊이지 않게 일어나
요동하고 집착하고 끄달림을
어떻게 수행하여 그 마음을
고요하고 밝게 머물(지킴)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더 나아가 어떻게 하여
위가 없는 보살도를 행하며,
청정한 반야바라밀다 법을 알아서
이로써 그 마음을
다스리고 (항복:조복)
일체중생을 제도할까? 하는 것이다.

說誼:
空生이 一見世尊端坐하시고 便不疑十方婆伽梵하여
仍發證同諸佛之心하여 直問云하기를 塵不得出은
由未得住요 心不解脫은 由未降心이니
云何得住하여야 不住六塵이며
云何降心하여야 得心解脫이리까 하니
不言我已發心이니 云何住降하고
而以善男善女로 言者는 諱却已悟之니라
人人分上에 不假修治어도
本自圓成이나 空生이 以此問者는
雖復本來金이나 終以銷成就이니
此는 正同善財가 於福城東畔에서
初遇文殊하여 頓證法界이나
歷參五十三善知識하여
於一一善知識所에서 白言하기를
我已先發菩提心하니 云何學菩薩道며
修菩薩行이니라

설의:
空生(수보리)이
세존께서 단정히 앉아 계심을 한번보고
문득 시방의 婆伽梵(佛)을 의심치 않아서,
모든 부처님의 증득하신 같은 마음을 일으켜
곧 묻기를
“육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머물지 못하는 까닭이며,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을 항복 받지 못한 까닭이니,
어떻게 머물러야 육진에 머물지 않으며,
어떻게 마음을 항복 받아야
마음에 해탈을 얻으리까”하니라.

“내가 이미 발심했으니
어떻게 머물고 항복 받으리까.
”라고 말하지 않고
선남자 선여인이라고 말한 것은
깨달음(자기의)을  숨긴 것이니라.

사람들이 닦고 다스리지 않아도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나,
공생이 이렇게 묻는 것은
비록 본래 금이긴 하지만
마침내 녹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니,
이는 바로 善財동자가 福城 동쪽 언덕에서
처음 문수보살을 만나서
몰록 법계를 증득하고서도
五十三 선지식을 친견하여
곳곳의 선지식의
처소에서 사뢰어 말씀하기를
 “내가 이미 보리심을 발하였으니
어떻게 보살의 길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행을 닦으리이까”한 것과 같으니라.

청봉착어:
머물지 못하는 것은 경계에 끄달려
번뇌 가운데 허상에 집착하므로
들뜸이니 항복 받지 못함도 이와 같음이다.
수보리가 항복 받음과 머무름을 물은 것은
선재동자가 중생들을 위해
53선지식을 찾아 방편으로 법을 물으면서
중생을 위하여 스스로 깨침을 숨긴 것과 같은 것이다.
---

 圭峰:
曲分爲二하면
先擧當機이니 華嚴에 云하되
忘失菩提心하고
脩諸善業者는 魔所攝持라하다
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此云無上正徧正覺이니
謂正智徧智로 覺知眞俗하여
不偏不邪니라 後正申問이니
魏譯에 云하되 應云何住며
云何修行이며 云何降伏其心인가
意云若人이 發菩提心已에
住何境界하고 脩何行業하며
妄心이 若起하면 云何降伏이니라
故로 佛이 令安住四心하고
脩六度行하여 於中降心하여 不令着相이니라
秦譯에 略修行者한 意云住道降心이
卽是修行인 謂四心六度를 皆名住脩降伏이라하니라
故로 無着이 云하되
住는 謂欲願이요
修行은 謂相應等持요
降伏은 謂彼心이 若散에 制令還住라하니라
又十八住中에 一一皆以住脩降伏으로 釋之이니
故知約義雖三이나 而行是一이니라

규봉:
자세하게 두 가지로 나누면
먼저 해당되는 근기를 드니
화엄경에 이르되
“보리심을 잃고 모든 선업을 닦는 자는
마군이의 포섭한 바가 된다”고 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無上正徧正覺
(위없이 바르고 두루한 바른 깨달음)이라고 이르니
正智와 徧智로 眞(理)과 俗(事)을 깨달아 알아서
치우치지도 않고 삿되지도 않음인 것이다.
다음은 바른 것을 거듭 물으신 것이니
魏譯에 이르기를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수행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으리까” 했으니,
그 뜻은 만약 사람이 보리심을 발한 뒤에
어떤 경계에 머물고 어떤 行業을 닦아야
 하며 망상이 만약 일어나면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四心(직심, 발행심, 심심, 보살심)에
安住하게 하시고,
六度行(육바라밀)을 닦아서
그 가운데서 마음을 항복 받음으로서
相에 집착하지 않게 하신 것이다.

秦譯에
修行을 생략한 뜻을 이르기를
“住道(마음을 머무는 도리)와
降心(마음을 다스리는 도리)이
곧 수행인 까닭으로 四心과 六度를
모두 머물고 수행하고 항복 받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無着이 이르되
“住는 원하는 것이요,
修行은 서로 응(相應)해서 함께 가지는 것이요,
항복은 저 마음이 산란함을 통제하여 돌아와
(본처) 머물게 한다”고 하였다.
또 十八住 가운데 하나하나 모두를
住, 修, 降伏으로써 해석한 것이니,
그러므로 요약된 뜻은 비록 세 가지나
그것을 행하는 것은 하나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

六祖:
善男子者는 平坦心也며 亦是正定心也이니
能成就一切功德하여 所往無碍也니라
善女人者는 是正慧心也이니
由正慧心하여 能出一切有爲無爲功德也니라
須菩提가 問하되
一切發菩提心人은 應云何住며
云何降伏其心한것은
須菩提가 見一切衆生하니
躁擾不停함이 猶如隙塵이며
搖動之心이 起如飄風하여
念念相續하여 無有間歇하고
爲令降伏故로 問하되
若欲脩行하면 如何降伏其心이니까하다

육조:
선남자란 마음이 편하고 너그러운(平坦心)것이며
또한 바르고 안정된 마음(正定心)이니
능히 일체 공덕을 성취해서
가는 곳마다 걸림이 없는 것이다.
선여인이란 바른 지혜의 마음(正慧心)이니
정혜심으로 인하여 능히
모든 유위와 무위의 공덕을 내는 것이다.
수보리가 묻되
일체의 보리심을 낸 이는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으리까? 한 것은,
수보리가 일체 중생을 보니 조급하고 어지러워서
멈추지 못하는 것이 마치 문틈으로 비치는 먼지와
같으며, 요동치는 마음이 회오리바람과 같아서
생각생각 상속하여 쉴 사이가 없음을 보고 항복받게
하여 주고자 함으로 묻되,
 만약 수행하고자 하면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합니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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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일체중생이 마음이 어지러워 안주
(한 곳에 있다는 뜻이 아님)하지 못하고
항상 번뇌망상이 요동치는 것이 이어져
그치질 않음을 보아
그 마음을 조복케 하여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머물러 바른 지혜를 낼 수 있는 수행 방편을 물으니
이는 수보리 자신이 몰라서가 아니라
중생을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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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這一問은 從甚處出來인가

說誼:
法法이 虛融하여 無法可住며
心心이 寂滅하여 無心可降이니
今此住降二問은 從甚處出來인가
又須菩提는 佛稱解空第一이라시는데
豈不知妄心이 本空하고 塵境이 本寂이리오
若果知得인데 如何輕發此問來일까
又問法하니 法無可問이요 修道하나 道無可修라
但向未發問時하여 着眼이니
何須更問住與未住와 降與未降인가
如是着語한 意旨如何인가
若明今日事하면 昧却本來身이니라

야부:
이 한 물음은
어느 곳으로부터 나왔는가?

설의:
法과 法이 모두 비어 통해서 法
(모든 것)이 머물 곳이 없으며
마음과 마음이 적멸해서 
항복 받을 마음이 없으니 
지금의 住하고 항복 받는다는
두 가지 물음이 
어느 곳으로부터 나온 것인가?

수보리는 부처님께서 空도리를 이해하는데
제일인자라 하셨는데
어찌하여 망령된 마음이 본래 공적하고
티끌 같은 경계가 본래 고요한 것을
 알지 못했으랴. 만약 果를 알아 얻었을진대
어찌 가볍게 이런 질문을 했겠는가.
 또
법을 묻는다 했으니 
법은 가히 물을 것이 없음이요,
도를 닦는다 하나 
도는 가히 닦을 것이 없음이라.
다만 그 묻기 이전을 향해서 착안해야 하나니
어찌 머물고 머물지 못하는 것과 
항복하고 항복 받지 못하는 것을 
다시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이와 같이 말을 붙인(着語) 뜻이 어디 있는가?
만약 오늘의 일을 밝혔다 하면
본래의 몸(本性)을 멀어지게(어두워져) 하니라.
---

청봉착어:
묻는 놈도 물은 것도 본래 없는데
어디서 이렇게 물음이 나왔을까?
만약 이 물음이 나온 것이 
이것이라 하면
벌써 글렀음을 요달해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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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你喜我不喜하고 君悲我不悲니라
鴈思飛塞北하고 燕憶舊巢歸로다
秋月春花無限意를 箇中이 只許自家知니라

說誼:
你與我와 君與我는 本分人이 向今時人하여 稱이니
你能住降하면 心生喜動하고 未能住降하면
心生悲憂되나 我此世界는 本自淸平하여
理亂俱亡이니 何傷何喜리오
如鴈之思塞北과 燕之憶舊巢하니
豈以悲喜로 爲心哉인가
只有一段空이 來去自由耳로다
以至春生夏長하며 秋收冬藏과 月圓圓缺하며
花開花落이 凡有消長盈虛者가
莫不各有無窮無盡之意在焉이나
此는 父不得而傳이며 師不得而授이니
各自當人이 自肯自悟하여야 始得이니라

야부:
너는 기뻐도 나는 기쁘지 않고,
그대는 슬퍼도 나는 슬프지 않네
기러기는 북방으로 날아갈 것을 생각하고
제비는 옛집으로 돌아올 것을 생각하도다
가을달과 봄꽃의 한없는 뜻이
그 곳이 다만 자기의 집임을 알리라

설의:
너와 나, 그대와 나는 본성(本分人)이
今時人(업식인)을 향해서 일컫는 것이니,
네가 능히 머물고 항복 받으면 마음이 기쁘고,
능히 住하지 못하고 降伏받지 못하면
 마음이 슬프고 근심되나, 
나라고 하는 이 세계
(本來面目)는 본래 스스로 맑고 편안해서
 다스릴 어지러운 것이 모두 없으니
무엇이 근심스럽고 무엇이 기쁘리오?

기러기가 저 북방을 생각하는 것과
제비가 옛집을 생각함과 같으니
어찌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삼겠는가?
다만 하나의 빈 것이 오고감에 자유로울 뿐이로다.
봄에는 만물이 소생하고
여름에는 자라며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엔 갈무리하는 것과,
달이 차고 기울며 꽃이 피고 지는데
이르기까지 무릇 줄고 늘며 차고 비는 것이
각각 무궁무진한 뜻이 있으나, 
이것은
아버지가 얻어 전할 수 없으며
스승이 얻어줄 수 없는 것이니
각자 본인이 스스로 수긍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비로소 증득(證得)했다(成就)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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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기쁨도 슬픔도 네가 만든 것
본래로 그러한 것 있지 않아,
너는 상에 쫓아 헛꽃에 매달리고,
나는 스스로 본래 적묵(寂黙)하니라.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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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二는 如來讚許라

규봉:
둘째는 如來가 칭찬하고 허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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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言 善哉善哉라
須菩提야 如汝所說
如來가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하라 當爲汝說하리라
善男子善女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여
應如是住며 如是降伏其心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착하고 착하다, 수보리야!
너의 말과 같이
여래가 모든 보살을 바르게 보살피고
모든 보살을 바르게 부촉하느니라,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말해 주리라.
선남자 선여인이 무상정등정각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을 지니라.”

淸峯:
즉, 일체 중생이 망념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
요동하고, 집착하고,  끄달림을 어떻게 수행하여
그 마음을 고요하고 밝게 머물(定:지킴)게 하고,
다시 더 나아가 어떻게 하여야 위가 없는 보살도를
행하며, 청정한 반야바라밀다 법을 알아서 이로써
그 마음을  다스리고(調伏) 일체 중생을 공경할
것인가를 일러주시겠다 하신 것이다.
---

圭峰:
曲分爲三하리니
一은 印讚所讚이니 重言善哉는 讚美之極이니라
護付能令佛種不斷은 是事必然이니
故로 印讚言如汝所說이니라
二는 勑聽許說이니 無以生滅心行하여야
聽實相法이니라 智論偈에 云하되
聽者端視如渴飮하여 一心入於語義中에
踊躍聞法心悲喜하는 如是之人可爲說이라하다
三은 標勸將陳이니 我當爲汝하여
如是如是委細而說이니라

三은 善現이 佇聞이라

규봉:
자세히 세 가지로 나누면
하나는,
칭찬할 바를 허락해서 찬탄한 것이니
거듭 선재라 말씀하신 것은 찬미의 극치이다.
호념하고 부촉해서 능히 부처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이 일이 반드시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네 말과 같이...'라고
인정하여 찬탄하셨다.
둘은,
잘 듣기를 분부해서 설함을 허락한 것이니
생멸(生滅)하는 마음으로 행함이 없어야
허망하지 않는 진실한 법(實相法)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智道論의 偈에 이르기를
“듣는 다는 것은 단정하게 우러러보는 것이
목마른 이가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이 해서
‘일심으로 말뜻 가운데 들어가(契合)
뛸 뜻이(환희심) 법(法)을 들어 마음으로
슬퍼하고 기뻐하는’
이와 같은 사람을 위해 설한다” 하였다.
셋은,
권함을 드러내어서(이끌어줌)
장차 법을 펴게 하려는 것이니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하여 이와 같고
이와 같이 자세하게 설해주리라”고 한 것이다.

셋째는
善現(수보리)이 가만히 듣는 것이다.
唯然世尊이시여 願樂欲聞이나이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즐겁게 듣기를 원하옵니다.”

 說誼:
當爲汝說은 欲說這介事요 願樂欲聞은
 欲聞這介事로다

설의:
“마땅히 너를 위하여 말해 주리라”는 것은
이 일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요,
“즐겁게 듣기를 원한다” 하는 것은
이 일을 듣고자 하는 것이로다.
---

圭峰:
唯者는 順從之辭이니 禮對曰唯요 野對曰阿니라
十地經에 云하되
如渴思冷水하고 如飢思美食하며 如病思良藥하고
如衆蜂依蜜하여 我等도 亦如是하여 願聞甘露法이라하다

규봉:
唯(오직)는 순종하는 말이니
예절을 갖추었음을 일러 
唯라 하고
예절을 갖추지 않았음을 일러 
阿라 한다.
十地經에 이르기를 “목마른
자가 냉수를 생각하듯 하고
배고픈 자가 좋은 음식을 생각하듯 하며
병자가 좋은 약을 생각하고
벌떼가 꿀에 매달리듯 하여,
우리들도 또한 이와 같이 감로법을
듣고자 원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

六祖:
是는 佛이 讚歎須菩提善得我心하며
善知我意也니라
佛이 欲說法에 常先戒勑하시어
令諸聽者로 一心靜黙이시니
故로 云汝今諦聽하라 吾當爲說이라하니라

阿之言은 無요
耨多羅之言은 上이며
三之言은 正이요
藐之言은 徧이요
菩提之言은 知이니
無者란 無諸垢染이요
上者는 三界無能比요
正者는 正見也이고
徧者는 一切智也요
知者는 知一切有情이 皆有佛性하여
但能修行하면 盡得成佛이니라
佛者는 卽是無上淸淨般若波羅蜜也이니라
是以로 一切善男子善女人이 若欲修行이면
應知無上菩提道하며
應知無上淸淨般若波羅蜜多法하여 以此로 降伏其心이니라
唯然者는 應諾之辭요
願樂者는願佛이 廣說하시어 令中下根機로 盡得開悟이고
樂者는 樂聞深法이요
欲聞者는 渴仰慈誨也니라

육조:
이것은 부처님께서 수보리가
나의 마음을 잘 얻고(증득)
나의 뜻을 잘 안 것을 찬탄한 것이다.
부처님이 설법하고자 하시려면
항상 먼저 훈계하시어
모든 듣는 자로 하여금
한마음을 조용하게 하시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자세히 들어라.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해
설하리라”하신 것이다.
阿는 
없음이고
耨多羅
라는 말은 위이며

이라 하는 것은 바른 것이고

이라 하는 것은 두루함이요
菩提
라는 말은 앎이니 없다
(無)는
것은 모든 때묻고 물듦이 없음이요,
위는 삼계에 능히 비할 데 없음이요,
바른 것 (正)
은 바른 지견이고 
두루함(徧)
이란 모든 지혜이며 
아는 것(知)
은 일체 식정있는 
모든 것은 佛性이 있어서 능히 수행하면
모두 성불하게 되는 것을 아는 것이다.
佛은
곧 위없이 맑고 깨끗한 반야바라밀이다.
이로써 선남자 선여인이 수행하고자 하면
마땅히 위없는 반야의 진리를 알아야 하며
마땅히 위없는 맑고 깨끗한 반야바라밀법을
알아서 이로써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唯然)는 응락하는 말이요,
즐겨 원합니다
(願樂)는 부처님이 널리 설하여
중, 하근기 모두가 깨닫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고,
즐겁다는 것
(樂)
은 심오한 법을 즐거이 들음이요,
듣고자 한다
(欲聞)는 것은 자비로운 가르침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

傅大士:
希有希有佛이여
妙理極泥洹거늘
云何降伏住인가 降伏住爲難이니
二儀法中妙요 三乘敎喩寬하여
善哉今諦聽하시어 六賊免遮欄이로다

부대사:
희유하십니다. 희유하십니다. 부처님이시여!
묘한 이치가 고요함에 다했거늘
어떻게 항복 받고 머문다 한 것인가
항복 받고 머문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니
두 가지 위의는 법 가운데 묘함이로다.
三乘으로 가르쳐줌이 지극히 너그러워
착하다 이제 자세히 들어라 하시어
육적에 막힘을 벗어나게 하도다.
---

冶父:
往往事因叮囑生이로다

說誼:
只這介事는 要因叮囑而現이로다

야부:
가끔 이 일은 요긴한 것으로 인하여
단단히
부탁(囑)함으로 생기는 것이로다.

설의:
다만 이 일은 요긴한 것으로 인하여
단단히 부탁함으로 나타났도다.
---

冶父:
七手八脚神頭鬼面이라 棒打不開刀割不斷이니
 閻浮踔躑幾千廻여도 頭頭不離空王殿이라

說誼:
神用自由롭고 妙體難覩라 動彈不得이요 堅固難壞로다
生死路에 幾度往返인가 脚跟은 元來淸淨如空이로다

야부:
일곱 개의 손에 여덟 개의 다리 
신의 머리에 귀신의 얼굴이라
몽둥이로 쳐도 열지 못하고 
칼로 베어도 끊지 못하니
염부제를 뛰어 몇 천 번 오갔어도
모든 것(두두물물)이
부처님의 빈 집을 떠나지 않았어라.

설의
신비하게 씀에 자유스럽고,
묘한 몸은 보기가 어려우니라.
흔들고 퉁겨도 얻지 못하고,
견고해 파괴하기 어렵도다.
생사의 길에서 몇 번이나 오고 갔던가.
발자취는 원래 맑아 빈 것과 같도다.
---

청봉착어:
있어도 있음이 없으니
찾아도 찾을 수 없고
없으나 묘하여서
일체를 건립함이여!
---

宗鏡:
昔奇哉之善現이 讚希有之慈尊하여
悲憐濁世衆生하여 諮決菩提心要하니
可謂一經正眼이며 三藏絶詮이로다
千聖이 不傳하고 諸祖가 不說이니
如是降伏은 扁舟已過洞庭湖요
護念丁寧은 何啻白雲千萬里이랴 爲甚麽如此인가
毘婆尸佛이 早留心하여 直至而今不得妙로다

說誼:
善現之所以奇哉者는 以其不待聲敎而信無疑也요
慈尊之所以希有者는 以其不現聲敎而開覺人天也니라
無言演化는 爲上根上智는 卽得이나
中下之機는 如盲處日하여 不知玄化의 所在니라
又末世衆生이 尙未遇玄化하여 爲二障之所礙하여
昧菩提之知見이기에 須假語言方便하여
開示菩提心要니라 以故로 空生이 爲之諮決하니
只此菩提心要는 可謂一經正眼이요 三藏絕詮이로다
千聖이 不傳하고 諸祖不說이니 如是降伏과 護念丁寧을
謂之如標月指는 卽得이나 謂之一經正眼이라면
扁舟已過洞庭湖니라 何啻白雲千萬里리오
爲甚如此인가 多劫留心尙茫然이니라

종경:
옛적에 기특한 善現(수보리)에 의해
희유하신 慈尊(세존)을 찬탄하여
오탁악세의 중생을 가엾게 여겨서
보리심의 요체를 물어 해결하니
가히 一經의 깨달음의 눈이 되며
三藏(경, 율, 론)의 뛰어난 말씀이 되었다.

천 명의 성인(모든 성인)이 전하지 못하고
모든 조사가 설하지 못하니,
이와 같이 항복하라 함은
조각배가 이미 동정호를 지났음이며,
간절히 호념하심이여!
어찌 흰 구름이 천만리뿐이랴,
어찌하여 이 같은가?
비바시불(최초 佛:법신 불)이
일찍이 마음을 머물러 지금에
이르러도 이 묘함은 얻지 못하였도다.

설의:
善現이 기특하다고 한 것은
말씀해서 가르쳐 주실 때를
기다리지 않고 믿어 의심하지 않음이요.
慈尊(부처님)이 희유하다는 것은
가르치기 위해 말씀을 드러내지 않고도
人天을 깨닫게 했음이다.

말없이 교화를 펴는 것은
높은 근기와 높은 지혜로는
곧 증득 하거니와 중․하근기는
눈먼 사람이 햇빛에 나가는 것과 같아서
현묘한 교화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또 말세 중생이 현묘한 교화를 얻지 못해서
二障(번뇌장, 삼매장)의 걸림이 되어서
보리 지견이 어둡게 되었기에 모름지기
말의 방편을 빌려서 보리심의
요체를 열어 보이시는 것이니라.

그런 까닭으로 空生(수보리)이
그들을 위하여 물어서 해결했으니
다만 이 보리심의 요체는
가히 한 권(경)의 바른 깨달음의 눈이요
三藏의 뛰어난 말씀인 것이로다.
여러 성인이 전하지 못하고
모든 조사가 설하지 못하니,
이와 같이 항복함과 간절히
호념하신 이것을 가지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안다면 증득하거니와,
이것을 일러 一經의 正眼이라면
조각배는 이미 동정호수를 지났음이라.
어찌 백운이 천만리일 뿐이리오.
어찌하여 이 같은가?

오래 머물러온 마음은
오히려 넓고 멀어 아득하기만 하나니라.
---

청봉착어:
대통지승 여래불이 십겁을 앉아
몸과 마음 움직이지 않으나
불법이 현전하지 않아 부처를 이루지 못함이여,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는데
중생은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도다.
---

宗鏡:
問處孤高答處深하여 妙圓眞淨不須尋이니
瞥然如是知端的이니
黙契菩提大道心하리라

說誼:
一問一答에 妙理斯在하니 妙圓眞淨을
不須別處尋覓이니라
寒山指頭에 月團團하고 多少傍觀의 眼如盲이니
但向指頭開活眼하면 滿目寒光을 無處藏하리라

종경:
묻는 곳이 홀로 높으니 답한 곳도 깊어서
妙하여 둥글고 참으로 맑아 찾을 수 없으니
언뜻 이같이 진실됨을 알면
묵묵히 보리인 큰 도의 마음
(大道心)에 계합(契合)하리라

설의:
한번 묻고 한번 답함에
묘한 이치가 그 안에 있으니
妙하고 원만하고 참으로
깨끗함을 모름지기
다른데서 찾지 말라.
寒山의 손가락 끝(방편:用)에
달(본성:體)이 둥글고
얼마쯤의 방관인의 눈은
봉사와 같으니
다만 손가락 끝을 향해서 눈을 뜨면
눈에 가득한 맑은 빛(慧)은 감출 곳이 없으리.
---

청봉착어:
묻는 곳 답하는 곳 크고 넓어
끝간 데 없어서 보지 못하네
어리석은 이는 밖을 찾아 헤매고
지혜 있는 이는 집밖을 나서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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