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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안개

작성자영축산|작성시간26.01.07|조회수82 목록 댓글 9

 

 

                                                                   파리의 안개

 

                                                                                             김 채 원

 

 

 파리의 안개, 무겁게 길 밑으로 내려드린 하늘과 지하철에서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 세느강, 어머니가 잠시 파리에 오셨을 때 밤에 어머니와 둘이 호숫가 벤치에 앉아서 느낀 그 초라함, 나의 젊은 날의 초상이라면 바로 그 시간으로 집약되는 것 같다.

 

 지금 돌아다보니 세 개의 노래가 떠오른다. 동경 하숙방에서 듣던 노래, “시레또 마을에 하나마수꽃이 필 때면 우리들의 일이 생각난다, 마시고 떠들며 언덕을 오르니 먼 곳에서 백야가 밝아오던 것을…”이라는 노래다.

 

​  네 장 반의 다다미방, 다다미에서 풍기던 냄새, 조그만 포터블이 돌아가며 그 속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던 때의 기분이 생각난다. 레코드 표지에 여정을 느끼게 하는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그녀는 동경대학에 다니며 애인은 정치적인 일로 감옥에 있다고 들었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다.

 

​  하숙방에 커다란 유리창이 있고 유리창 밖은 두꺼운 함석의 덧문이 있어 낮에도 그 문만 닫아 놓으면 깜깜했다. 아침에 그 문을 열 때마다 너무 밝은 빛이 한꺼번에 들이밀려 그 눈부심이 굉장했다. 창밖은 앞집 벽이 막혀 있었다. 몸을 조금 앞으로 내밀면 그곳으로 나리다 양복점 앞길이 조금 보였다. 내가 세 들어 있던 집 아래층이 나리다 양복점이었다. 교포 어느 분은 내가 보낸 편지 주소를 보고 나리다 양복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인 줄 알았다고 했다. 누가 이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어 입을까 싶은데 그러나 주인아저씨는 늘 혼자서 옷감을 들고 일을 하고 있었다.

 

​  하숙방에 엎드려서 단편 「먼바다」와 「밤 인사」를 썼다. 분명 그랬을 것이나 하숙방에서 글을 쓰던 기억은 없고 아르바이트하러 다닐 때 연필과 노트를 꼭 가지고 있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어느새 무엇인가 적으려고 연필과 노트를 몸의 일부처럼 가지고 있구나, 어느 날 문득 느끼던 것이 기억난다. 그것이 없다면 나를 지탱하기 힘들다고 여기며 오로지 연필에 매달렸던 것 같다.

 

 ​뉴욕 어느 밤 카페에서 사람들의 소음 사이로 어떤 노래가 들려왔다. 음악이 크게 흐르지 않고 어딘가에서 그저 소음의 일부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어느 멜로디가 가슴에 와서 쿵, 하고 부딪쳤다. 맥주를 날라 온 웨이터에게 이것이 무슨 노래인가 물었고 그 사람은 힘들게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가서 그것이 쥬디 콜린스가 부르는 〈삐에로를 보내다오〉라고 알아다 주었다. 그 노래를 듣던 밤 카페의 불빛과 소음과 사람들의 실루엣이 떠오른다. “그것이 진실이지 않니?”라고 시작되는 노래다.

 

​  또한 뉴욕의 거리를 걸으면서 어느 쇼윈도에서 토슈즈를 들여다보던 기억이 난다. 뉴욕을 이기는 길은 세계를 이기는 길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러나 그 중얼거림 자체가 나하고는 전혀 무관한, 너무도 엉뚱한 발상임을 또한 알아야만 했다. 나를 제물처럼 바친다 한들 ‘뉴욕을 이기는 길은 세계를 이기는 길’이라는 그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그 길을 갈 수 있었다면 그것은 전혀 내가 아닌 아마 다른 나가 아니었을까.

 

 파리에서 어느 연극을 갔을 때 연극 속에 나온 노래가 있다. 그 노래의 아코디언 반주가 가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켜 놓았다. 극장 복도에서 도너츠 판을 팔고 있어서 나오다가 샀다. 그 노래를 죽으리만큼 많이 들었는데 인생의 빛깔을 바꾸고 싶다는 내용의 노래라고 했다. 후렴 부분에 가서 아코디언 반주가 나올 때, 그때마다 어김없이 무엇이라고 표현할 길 없는 숨가쁨을 느꼈다. 무엇으로인가 절정에 가 닿게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파리의 안개, 안개 때문에 나무들이 공중에서 가지만 펼쳐 보이던 풍경, 무겁게 길 밑으로 내려드린 하늘과 지하철에서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 사람들의 옷자락, 미술관의 창들, 호수의 백조, 마로니에 낙엽, 세느강, 어머니가 잠시 파리에 오셨을 때 밤에 어머니와 둘이 호숫가 벤치에 앉아서 느낀 그 초라함, 산을 무너뜨려도 상쇄될 것 같지 않던 그 초라함을 잊을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짐을 주소를 물어서 힘들게 찾아간 우체국에서 배로 부치고 오는 길에 어느 카페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나의 젊은 날의 초상이라면 바로 그 시간으로 집약되는 것 같다. 그곳에 앉아서 한참 동안 바깥 거리를 바라보았다. 수첩을 꺼내 바라다보이는 가로수를 흐린 연필로 스케치한 후 지금 이 순간의 아픔을 잊지 말자고 적었다. 그리고 꼭 다시 파리에 오자고 적었다. 외유 생활 7년이라는 세월이 어디론가 가버리고 그 순간 오직 그 모습만이 거기에 남아 있었다.

 

 며칠 전 책꽂이를 옮기다가 그 수첩을 발견했다. 그때의 기록이 그대로 있었다. 꼭 다시 파리에 오자고 했던 자기와의 약속이 그 속에 들어 있었다. 그때의 ‘나’가 아직도 그곳에 앉아서 창밖을 보며 지금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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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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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행심 | 작성시간 26.01.07 마음은 온 세계를 감싸고 있으니
    생각하면 당장 파리에도, 뉴욕에도 갈 수 있어요.
  • 작성자아미산 | 작성시간 26.01.07 _()()()_
    감사합니다.
  • 작성자道元眞如園 | 작성시간 26.01.07 _()()()_
    고맙습니다.
  • 작성자미향심륜우 | 작성시간 26.01.08 ...()...
  • 작성자慈月性 | 작성시간 26.01.08 _()()()_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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