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카페 책방(지안스님)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작성자영축산|작성시간26.04.01|조회수91 목록 댓글 10

 

 

                                                      '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

                                                        -  피천득의 수필집을 읽고 -                                                                              

                                                                                        글쓴 이 미상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언젠가 길을 걷다보면 주변 환경을 두루 살피게 될 때가 있고, 푸른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게 될 때도 있다. 그럴때면 당시의 기분이 어떻든간에, 우리는 아주 짧게나마 무어라 감상을 남기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그 아름다움의 수준과 달리, 이 속에 담긴 말은 나 말고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안타까운 손실을 아쉬워하던 이들이 수필가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주변 환경을 관조하여 즐거움을 누리고 푸른 하늘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생각을 내보이는 듯한 글은, 세살배기 아이가 썼다해도 그건 아마 수필이라 불림이 마땅할 것이고, 수필가라 이야기해줌이 바를 것이다.

 

 소설은 소설가와 몽상가만 적을 수 있고, 시는 주정뱅이와 시인만 적을 수 있지만 수필은 다르다. 누구나 적을 수 있기에 잘 쓴 수필과 못 쓴 수필이 있을 뿐이다. 다루고자 하는 것에 얼마나 명백해질 수 있냐가 그 기준이다.

 

 세상에 명백한 글이 하나 있노라면 그건 다른게 아니라 수필일 것이고, 그만큼 참 순수한 것이다. 자기 내면을 관조해 있는 생각과 마음을 끄집어내는, 그를 통해 무엇보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가능한 갈래는 수필 외엔 존재치 않는다.

 

 잘 쓴 수필은 현실과 가까운 환상을 그리려 노력하는 소설들과는 달리 소리 없는 감탄이 어울린다. 피천득의 글을 읽으면서 죄와 벌의 속죄를 느낄 때처럼 눈물 흘리지도 않았고, 오 헨리의 위트를 마주할 때처럼 웃지도 않았다. 다만 그에 못지않은 여운과 감동이 길게 남았다. 잘 쓴 수필이 그리는 현실이란 그런 것이다.

 

 이런 수필을 좋아하는데 피천득을 싫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 자체가 잔잔하잖는가. 좋아한다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형식이다. 나는 이런 글을 좋아한다고 말해놓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늘 마지못해 사랑한다고 정정하곤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의 글은 한 마디로 맑다. 아이 같이 때 묻은 곳 없이 맑다는 게 아니라, 성숙하지만 청초하다. 물론 그런 면만 있는 작가는 아니다.

 

 때로는 허허 웃는 인자한 어버이 같고, 때로는 살아온 삶을 반추하는 늙은이 같고. 언제는 우는 젊은이의 적막한 고독감에 휩쓸려가기도 하고, 한편으론 폭풍이 잦아들듯 고요함을 끌어모아 한 자 한 자 정성 다해 적은 듯하고. 이런 양식의 글을 그저 적을 수 있는 이는 많겠지만, 이런 글이 가능한 이는 얼마 없을 것이다. 짧게 생각해봐도 최소한 네 개의 면을 지닌 작가 같은데, 그중 하나도 뽐내려 애쓰지 않는 것은 아마 타고난 성미며 겸손이지 않을까.

 

 서론이 너무 길어지니 좋았던 몇 작품만 꼽아보자. 예를 들어 <수필>의 경우 나열의 연속이다. 수필이 무엇인지, 어떠한 것으로 구성되고 어떠한 속성을 지니는지 그 특징을 자기 생각 그대로 펼쳐서 쓴 짧은 글이다. 어떤 것이 두각을 드러내는 작품도 아니지마는, 그렇기에 어떤 것도 모자라지 않은 글이다.

 

 그는 권의 서두가 될 이 첫 글부터 반성을 시작한다. 사실 뭐 이리도 반성할 일이 많은가 싶을만큼, 그는 대부분의 작품 내에서 반성을 진행한다. 작가는 그것을 상대의 모자란 면에서 얻기도 하고, 상대의 뛰어난 면에서 깨닫기도 한다.

 

 수필은 좋은 차와 같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그 첫인상을 중요시하지만, 앞의 경험을 지울 정도로 첫 모금 이후의 여운이 진하게 남는다는 것이 차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실질로 중요한 것은 마무리라고 볼 수도 있다.

 

 피천득의 좋은 마무리엔 기억에 남는 작품이 많다. <파리에 부친 편지>의 '날이 흐리면 머리에 빗질 아니 하실 것이 걱정되오나, 신록 같은 그 모습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예스러운 말투로 펼쳐진 멋진 문장이다. 읽는 맛도 뜻도 좋은 것이 최고다.

 

 글 전체가 좋았던 것은 역시 <가든파티>다. 덕수궁과 순박한 말투의 순경 같이 우리의 전통을 떠올리는 익숙한 사물과 그에 대조되는 서양적 이야기로 가득한 전개, 소설이 아님에도 대치가 훌륭히 이루어진 점이 재밌었고, 온갖 서양적 사고 끝에 가 그가 선택했던 일이 농군을 떠올릴 정도로 소박했다는 점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주고자 한다.

 

 개인적인 견해와 비슷한 말을 마주한 작품은 <가구>였다. 어떤 물건이든 오래가서 정이 든 놈이 곧 전통이라 말하는 글이 끝나자, 손을 대고 있는 책에서 눈을 떼고 잠시 쌓여있는 책들을 보게 되었다. 크게 다를 말도 아니었다.

 

 역시 과거의 향수를 느낄만한 작품도 있었다. <전화>에서 그는 도화선으로 연결될 적의 전화를 말하며 이리 연결되어 항상 같이 있는 듯해 든든하지만, 꼭 선이 없더라도 우리가 연결되지 않음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을 쓰는 나는 반절은 겨우 공감했다.

 

 이후로는 딸 서영이에게 보낸 편지나 다른 가족들이나 주변 인물들과의 일화가 수록되어있는데, 울림이 좋았지만 지나치게 우울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가끔 말하는 이는 담담하지만 듣는 이가 무거워지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꼭 그런 느낌의 글이다.

 

 그 많은 작품 중 <인연>은 따로 감상까지 써가며 구구절절이 설명했으니 필요 없을 듯하고, 도산 안창호나 춘원 이광수, 로버트 프로스트 등과의 특이한 일 역시 적혀있다. 그는 여기서도 놀랍도록 솔직하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건 뒷부분을 차지하는 아들 피수영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초반에는 꽤 길게 쓰져 있고 중반엔 여느 아버지가 그렇듯 많은 걱정을 실어 보낸다. 건강하니, 여자친구는 있니. 수필에서의 그 소탈한 모습은 역시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후반에 다다라 자신의 삶을 후회하던 피천득은, 마지막 편지에 이르러선 아들에게 몇 마디의 단문만을 전한다. 단문도 아니다. 문장이 되지도 못한 건강하고 책 많이 읽으라는 덕담 몇 마디, 어쩌면 아버지 생각엔 그것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편지에 적혀있던 특유의 '안녕 안녕. 아빠.'는, 그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음에도 편지마다 다른 울림을 던져준다. 편지가 이토록 문학 같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후의 작품 해설은 읽지 않았으면 한다. 좋았던 작품을 외적인 요소로 깨야한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깔끔하고 씁쓸한 감동으로 맺음한 글을, 안타깝다 싶은 사족으로 풀어헤치는 일은 아주 안타까웠다.

 

 직접 읽어보길 원하며 최대한 짧게 끊은 감상을 적으면서도 사족을 붙이게 되고, 더 이야기하고 싶어지고, 더 철없고 격조 없이 굴고 싶어지는 까닭은 할아버지 같은 수필집의 매력 덕분일 것이다. 참 즐거운 독서였다.

 

 그렇다 해서 늘상 재밌는 글이었나 되짚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몇십 편에 달하는 글 중에 저점이 없기란 어려운 일이고, 그랬기에 때로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막연한 감동만을 얻고 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마저도 즐거운 일인 것이 수필의 매력인가 한다.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란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만년이란 작품에 적힌 그의 바람대로, 이 글을 읽고 나면 짧은 한숨이 피어오른다. 좋은 차를 맛보면 느껴지는 따스한 여운. 글자들로 자연스레 연상되고 그려지는 심상의 경치는 그런 효능감을 지니고 있다.

 

 헌데 아무리 생각해도 참 염치없는 바람이다. 짧은 몇 페이지의 글을 읽고 당신이 사랑을 했는지 안했는지를 읽는 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순진한 기대에 피식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고, 그 순박한 마음에 한숨 짓게 되는 말이다. 그걸 보면 그는 적어도 인생을 사랑했던 것 같다.

 

 다만 사랑을 하고 갔다는 말은 다소 부정확하지 않나 싶다. 피천득의 사랑은 늘 오는 것이다. 그는 머얼리 가버렸지만, 그의 사랑은 아직도 오고 있다. 수필마다 맑디맑은 여운으로, 푸르디푸른 마음으로. 그렇게 늘 오고 있다.

 

 하여 페이지를 덮을 적이 되서는, 나 또한 짧게나마 웃고 마는 것이다. 이 지극한 마음이 참으로 좋게만 느껴져, '아.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정행심 | 작성시간 26.04.01 얼마전에 오래전에 읽고 서가에 꽂아둔
    피천득의 수필을 읽었어요.
    얼마나 포근하고 다정다감한지요.

    서영이가 크면 눈내리는 서울 거리를 함께 걷고싶다.
  • 작성자道元眞如園 | 작성시간 26.04.01 _()()()_
    고맙습니다.
  • 작성자아미산 | 작성시간 26.04.01 _()()()_
    감사합니다.
  • 작성자慈月性 | 작성시간 26.04.02 _()()()_
    고맙습니다.
  • 작성자미향심 김기숙 | 작성시간 26.04.04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