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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통가리로 국립공원

작성자영축산|작성시간26.05.16|조회수55 목록 댓글 9

 

 

                                                               뉴질랜드 통가리로 국립공원

 

                                                                                                                            박 정 경

 

 

  Tongariro National Park을 다녀온 뒤의 기억은, 여행이라기보다 하나의 오래된 지구의 숨결을 잠깐 빌려 쓴 느낌으로 남는다. 뉴질랜드라는 나라의 풍경이 대체로 그렇듯, 과장되지 않은 자연이 오히려 더 압도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퉁가리로의 길은 화려함으로 유혹하기보다, 묵묵히 인간의 속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다가왔다.

 

 아침의 공기는 차갑고 맑았다. 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이미 도시의 소음은 희미해졌고, 대신 바람이 나무 사이를 통과하며 내는 낮은 소리가 귀를 채웠다. 걷는다는 행위가 이렇게 단순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발밑의 자갈이 굴러가는 소리, 숨이 조금씩 거칠어지는 리듬, 그리고 멀리서 흐릿하게 보이는 산의 윤곽. 그것들이 전부였다.

 

 퉁가리로의 풍경은 단순하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황량한 화산 지형이 드러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검은 용암의 흔적 위로 바람이 불고, 그 위에 다시 풀이 자라는 모습은 시간이라는 것이 결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인상을 남겼다. 무엇이 파괴이고 무엇이 회복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풍경 앞에서, 인간의 판단은 잠시 멈춘다.

 

 오르막이 이어질수록 생각은 점점 줄어들고 감각이 남는다. 발의 통증, 뺨을 스치는 바람의 방향, 그리고 갑작스럽게 열리는 시야.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말수가 줄어들었다. 누구도 그 침묵을 어색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침묵이 이 장소에 어울리는 언어처럼 느껴졌다.

 

 정상 부근에서 내려다본 세계는 낯설 정도로 넓었다. 색은 단순해지고 형태는 추상적으로 변했다. 붉은 대지와 회색 돌,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 그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작아진다기보다, 잠시 배경으로 물러나는 느낌에 가까웠다. 자연이 인간을 압도한다기보다, 인간이 잠시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산하는 길에서는 올라올 때와 다른 생각이 스쳤다. 같은 길인데도 방향이 바뀌면 풍경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였다. 아까는 정복해야 할 대상처럼 보이던 경사가 이제는 천천히 내려가도 괜찮은 시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행은 결국 이동이 아니라 시선의 변화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퉁가리로를 떠나며 남는 것은 거창한 감동이라기보다, 조용한 균형감이다. 인간이 자연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잠시 그 속에 섞여 있었다는 감각. 그리고 그 짧은 섞임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사실.

 

 돌아오는 길의 풍경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보는 사람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 미묘한 변화가 여행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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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명선 | 작성시간 26.05.16 고맙습니다 ()()()
  • 작성자道元眞如園 | 작성시간 26.05.16 _()()()_
    고맙습니다.
  • 작성자현본/심광월 | 작성시간 26.05.17 new 감사합니다 (())
  • 작성자제주보현행 | 작성시간 26.05.17 new 그 미묘한 변화...공감합니다. 여행의 진수를 보여주는 글, 감사합니다. ()()()
  • 작성자慈月性 | 작성시간 26.05.17 new _()()()_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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