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익숙한 낯설음
이번 연도 초에 일본 여행을 갔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었고 친한 사람들과 처음부터 계획을 같이 짜고 시행착오를 겪고서 가는 자유 여행이라 들뜸과 즐거움이 늘 함께였다. 일본에 가서는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낯선 만큼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아마 그곳이 동네이자 살고 있는 일본 사람들은 매번 지나치고 무시했을 작고 오래된 가게라던가 벽에 그려진 낙서들, 누군가 정성들여 키우고 있을 화분들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또 간판이나 표지판 등 길거리에 써진 낯선 일본어가 너무 신기해서 감탄하다가 이동시간이 길어져서 종종 계획한 것을 지키지 못했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그 순간만은 즐거웠지 않았나.
여행을 마치고 동네에 오니 분명 어릴 때부터 살아서 너무나도 익숙한 공간이 순간 또 다른 여행지를 온 것처럼 낯섦이 확 느껴졌다. 무신경했던 한국어 간판이 새롭고 예뻐 보였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이런 것들을 보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낯섦과 동시에 새로움을 느끼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후로도 단기적으로 익숙한 낯섦을 느낀 게 아니라 지금까지도 작은 것들에 더 관심을 가지는 습관과 예전엔 눈살 찌푸렸던 모습까지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익숙한 낯섦을 경험한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았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관찰하던 습관이 강해지고 제주도에 와서 식물을 더 자주 관찰하게 되었다. 그중 대학교 안에 자라있는 식물을 자주 보게 되는데 항상 지나가는 길에 있던 익숙한 나무에 어느 날 연둣빛 작은 잎들이 자라있고 예쁜 꽃이 피는 모습, 그저 잡초들만이 무성하게 자라있다고 생각한 곳에 봄이 왔다는 걸 알리듯 작은 들꽃들이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자주 있다. 시간이 변함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하는 건 당연하지만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 익숙해지고 낯설게 느끼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
난 육지에서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왔기 때문에 여기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처음보는 사람들이다. 이런 낯섦 속에서 가장 익숙한 건 나 자신의 생각, 가치관, 습관, 생활 방식처럼 나 자신에 내제되어있는 것인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애기하고 점점 친밀해지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눌 때, 상대방과 나의 생각이 서로 다를 때에 가장 익숙하고 단단하게 굳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순간 ‘가차관은 내가 어떤 환경에 있고 어떤 사람을 만나냐에 따라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질 수도 있겠다’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평소에 느껴왔던 생각을 익숙한 낯설음에 대입해 보니 나 자신이 이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음에 신기하고 또 낯설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익숙한 것에 자주 낯설음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면 끝임없는 궁금증으로 심심하고 지루하지 않은, 다채롭고 뻔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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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호밀밭파수꾼™ 작성시간 23.06.14 전공 관련해서 예쁜 이야기를 써냈네요.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을 찾는 여행의 묘미라는 게 사실은 평범한 일상에서 탈출하는 "특별한" 체험을 하는 데 있답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특별함"이 내가 떠나온 일상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지요. 이렇게 "단기적으로 익숙한 낯섦을 느낀"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늘 새롭고 특별함을 찾아내는 것을 통해서, 결국은 일상의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일상의 "가치"라고 하는 것이 "일상"의 철학적 의미이기도 하고요. 제주에서 만나는 경관은 육지 어느 곳과도 다른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자세히 보아나가다 보면 결국 떠나온 육지에서도 제주의 것과는 다른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답니다. 그것이 우리의 시선을 지평을 확대시켜나가는 것이고, 삶을 특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랍니다. "다채롭고 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