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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중국고대철학 / 철학과 / 2025101225 / 박지유

작성자박지유|작성시간26.06.10|조회수34 목록 댓글 1

해당 과제물을 임시저장해두고 게시해두지 않아 뒤늦게 올리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쓸모없음의 쓸모.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으로 본 한국 청년의 자기계발 문화

장자(莊子)는 『장자』 「인간세(人間世)」 편에서 한 늙은 나무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 거대한 나무는 꿈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쓸모없기를 오래 구한 덕에 지금 이 크기가 되었다. 만약 내가 쓸모 있었다면 진작 베였을 것이다." 이것이 무용지용(無用之用)이다. 쓸모없음 속에 가장 깊은 쓸모가 있다는 역설. 장자가 고대 중국의 효용 중심 사회에 던진 이 물음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의 삶 앞에 다시 선명하게 놓인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 캠퍼스는 이상하게 조용하다. 낭만이 사라진 자리에 스펙이 들어섰다. 어학 점수, 자격증, 인턴십, 대외활동 졸업 전까지 채워야 할 칸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끊임없는 활동들은 본질적으로 취업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지를 향한다. 그렇다면 그 목적지에 닿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들 (친구와 아무 이유 없이 걸었던 오후, 좋아서 읽은 소설 한 권, 목적 없이 앉아 있던 바닷가)은 과연 낭비인가?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 역시 유용성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각국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해 능력 있는 인재를 필요로 했고,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가들은 군주에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유가(儒家)는 인의예지(仁義禮智)로, 법가(法家)는 법술세(法術勢)로 저마다 효용을 내세웠다. 그러나 장자는 그 흐름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그는 거대한 박이 너무 커서 아무 용기로도 쓸 수 없다는 친구 혜시(惠施)의 말에, "왜 그것을 강호에 띄워 유유히 떠다닐 생각은 하지 않는가"라고 되물었다. 쓸모의 기준 자체를 다시 묻는 것, 그것이 장자의 방식이었다.

이 물음은 현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는가? 취업을 위한 자기계발은 종종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잘 팔리는 나'를 만드는 작업에 가깝다. 인간이 노동력 상품으로 규격화되는 과정에서, 점수로 환산되지 않는 경험들은 자연스럽게 잉여로 분류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온전히 소진하면서 쌓은 스펙이 정작 그 사람의 내면 깊이와 연결되지 않을 때, 면접관들은 "이 사람이 왜 이 일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인상을 받는다. 효율이 오히려 공허를 낳는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지표가 말해준다. 청년 번아웃, 취업 후의 공허감, 목적을 잃은 피로... 이것들은 모두 유용한 것만을 향해 달려온 삶이 남긴 자국들이다. 장자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무가 쓸모없었기에 살아남아 그늘을 드리울 수 있었듯, 인간도 때로 쓸모없는 시간을 살아야만 뿌리가 깊어진다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시간, 정처 없이 걸었던 골목, 아무 이득도 없이 몰두했던 취미, 이것들은 포트폴리오에 적히지 않지만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

생산성과 효율성만으로 삶을 재단할 때 잃어버리는 것은 단순히 '여유'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서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는지 이런 것들은 계획표에 따라 발견되지 않는다.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 즉 목적 없이 노니는 유유자적한 삶은 현대인에게 단순한 낭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도구로 환원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이며,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내면의 나침반을 다듬는 시간이다.

쓸모없는 것은 정말 가치가 없는가. 장자의 대답은 분명하다. 쓸모없음이야말로 가장 큰 쓸모를 품고 있다. 취업난의 현실이 아무리 각박해도, 삶의 풍요는 결국 효율이 닿지 못하는 영역에서 자란다. 목적 없이 보낸 시간들이 쌓여 한 사람의 깊이가 되고, 그 깊이에서 비로소 자신만의 방향이 생긴다. 대학이 취업 준비 기관으로 축소되어가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장자의 늙은 나무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베이지 않았기에 크게 자랄 수 있었던 그 나무처럼, 쓸모없음을 기꺼이 살아내는 용기가 어쩌면 가장 긴 쓸모일지 모른다.
쓸모없음의 쓸모.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으로 본 한국 청년의 자기계발 문화

장자(莊子)는 『장자』 「인간세(人間世)」 편에서 한 늙은 나무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 거대한 나무는 꿈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쓸모없기를 오래 구한 덕에 지금 이 크기가 되었다. 만약 내가 쓸모 있었다면 진작 베였을 것이다." 이것이 무용지용(無用之用)이다. 쓸모없음 속에 가장 깊은 쓸모가 있다는 역설. 장자가 고대 중국의 효용 중심 사회에 던진 이 물음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의 삶 앞에 다시 선명하게 놓인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 캠퍼스는 이상하게 조용하다. 낭만이 사라진 자리에 스펙이 들어섰다. 어학 점수, 자격증, 인턴십, 대외활동 졸업 전까지 채워야 할 칸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끊임없는 활동들은 본질적으로 취업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지를 향한다. 그렇다면 그 목적지에 닿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들 (친구와 아무 이유 없이 걸었던 오후, 좋아서 읽은 소설 한 권, 목적 없이 앉아 있던 바닷가)은 과연 낭비인가?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 역시 유용성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각국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해 능력 있는 인재를 필요로 했고,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가들은 군주에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유가(儒家)는 인의예지(仁義禮智)로, 법가(法家)는 법술세(法術勢)로 저마다 효용을 내세웠다. 그러나 장자는 그 흐름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그는 거대한 박이 너무 커서 아무 용기로도 쓸 수 없다는 친구 혜시(惠施)의 말에, "왜 그것을 강호에 띄워 유유히 떠다닐 생각은 하지 않는가"라고 되물었다. 쓸모의 기준 자체를 다시 묻는 것, 그것이 장자의 방식이었다.

이 물음은 현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는가? 취업을 위한 자기계발은 종종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잘 팔리는 나'를 만드는 작업에 가깝다. 인간이 노동력 상품으로 규격화되는 과정에서, 점수로 환산되지 않는 경험들은 자연스럽게 잉여로 분류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온전히 소진하면서 쌓은 스펙이 정작 그 사람의 내면 깊이와 연결되지 않을 때, 면접관들은 "이 사람이 왜 이 일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인상을 받는다. 효율이 오히려 공허를 낳는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지표가 말해준다. 청년 번아웃, 취업 후의 공허감, 목적을 잃은 피로... 이것들은 모두 유용한 것만을 향해 달려온 삶이 남긴 자국들이다. 장자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무가 쓸모없었기에 살아남아 그늘을 드리울 수 있었듯, 인간도 때로 쓸모없는 시간을 살아야만 뿌리가 깊어진다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시간, 정처 없이 걸었던 골목, 아무 이득도 없이 몰두했던 취미, 이것들은 포트폴리오에 적히지 않지만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

생산성과 효율성만으로 삶을 재단할 때 잃어버리는 것은 단순히 '여유'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서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는지 이런 것들은 계획표에 따라 발견되지 않는다.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 즉 목적 없이 노니는 유유자적한 삶은 현대인에게 단순한 낭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도구로 환원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이며,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내면의 나침반을 다듬는 시간이다.

쓸모없는 것은 정말 가치가 없는가. 장자의 대답은 분명하다. 쓸모없음이야말로 가장 큰 쓸모를 품고 있다. 취업난의 현실이 아무리 각박해도, 삶의 풍요는 결국 효율이 닿지 못하는 영역에서 자란다. 목적 없이 보낸 시간들이 쌓여 한 사람의 깊이가 되고, 그 깊이에서 비로소 자신만의 방향이 생긴다. 대학이 취업 준비 기관으로 축소되어가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장자의 늙은 나무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베이지 않았기에 크게 자랄 수 있었던 그 나무처럼, 쓸모없음을 기꺼이 살아내는 용기가 어쩌면 가장 긴 쓸모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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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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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호밀밭파수꾼™ | 작성시간 26.06.16 장자의 무용지용을 오늘날 청년들의 자기계발 문화 비판으로 매우 설득력 있게 확장하였습니다..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고전 구절을 현대 사회의 불안과 공허함에 연결한 흐름이 특히 좋습니다.비교의 방향이 선명하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늙은 나무의 비유를 단순한 고사로 끝내지 않고, 취업 중심의 캠퍼스 문화, 스펙 쌓기, 자기계발의 압박, 번아웃과 공허감까지 이어 붙인 구성이 탄탄합니다. 또한 문장력이 강합니다. “더 나은 나”와 “더 잘 팔리는 나”의 대비, “효율이 오히려 공허를 낳는다”는 문장, “쓸모없음을 기꺼이 살아내는 용기” 같은 표현은 글의 핵심을 또렷하게 남깁니다. 장자의 소요유를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도구로 환원되지 않기 위한 저항”으로 읽은 점도 해석이 좋습니다. 다만 같은 도입과 전개가 한 번 더 반복되어 글의 밀도가 살짝 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 버전만 남기고 중복을 덜어내면 훨씬 힘 있게 읽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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