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정규교육에 관하여
지금 학생은 길러지고, 스스로 자라지 못한다.
한국의 학생들은 방향을 제시받는다.
관심이 투사된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학생을 인간으로서 믿지 못한다.
왜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선택을 대신하려 하는가.
도덕경을 통해 이러한 태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자는 인간을 교정하거나 교화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비어있는 교육을 찾아야 한다.
무위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개입하고 싶은 욕망을 견디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무책임해 보일 만큼 위험한 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그 위험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정규교육은 학생에게 지나치게 많은 답을 준다. 학생은 자신의 삶을 결정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조언과 기준을 받아들이고 있다. 너무 많은 말할 수 있는 교육이 교육의 본질인 자연스러운 성장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유학의 관점에서 교육은 인간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과정이다. 예와 규범을 배우고, 공동체 속에서 올바른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노자는 이러한 인위적 개입을 경계한다.
노자에게 규범은 이따금 도가 사라진 뒤에 등장한다. 인간을 지나치게 가르치고 교정하려는 순간 오히려 인간은 자신의 자연스러운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사람들은 무위를 그저 따뜻한 교육으로 이해하지만, 나는 실제로 무위는 상당히 냉혹한 사상이라고 이해했다.
무위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학생이 실패할 수도 있다.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자는 그 가능성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날 교육은 학생의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그래서 모든 위험을 제거하려 한다. 학생이 방황하지 않도록 돕는다. 결국 학생은 인간으로서 도에 이르지 못한다.
방황하지 않은 사람은 과연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가.
노자의 무위는 바로 이 질문을 던진다.
노자는 도는 자연을 따른다고 말한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누군가 정해준 길이 아니다. 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은 단순한 자유가 아니다. 그 선택의 책임 역시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노자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는 동시에 책임도 돌려준다.
오늘날 교육은 책임 없는 지도와(혹은 과도한 책임만이 존재하는 지도와) 자유 없는 보호 사이에 놓여 있다.
학생은 선택하지 못하지만, 결과는 책임져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자립적인 인간을 만들기 어렵다.
노자는 나는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노자는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를 긍정한다. 소수성과 비규범, 몰정상성을 지닌 사람들을 사람으로 봤다. 인간에 포함한다. 솔직하게 오늘날 교육은 이러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다.
그러나 삶을 결정하는 과정에서의 방황과 다름은 실패가 아니라 자기 발견일 수 있다. 각자에게 각자의 도가 있다. 각자의 최선이 있다.
학생이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일정한 방임과 침묵이 필요하다.
교육으로서의 무위는 무관심이 아니며, 개입하지 않을 용기이다.
나는 교육이 학생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신 결정하고,
대신 계획하고, 대신 길을 제시한다. 그러나 자신의 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국 타인의 삶을 살게 된다. 노자의 무위는 다소 냉혹하다. 그것은 학생을 자연스럽게, 그러니까 내버려두는 일이며, 어느 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방임이며, 때로는 실패하도록 허락하는 일이다.
하지만 바로 그 위험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도를 발견한다.
교육이 모든 길을 알려주는 일이라면 인간은 성장하지 못한다.
도덕경을 읽으며 오히려 교육이 해야 할 궁극적인 큰일은 학생 곁에서 한 걸음 물러서 각자의 다른 자연을 인정하고 지켜봐주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가장 어려운 교육은 가장 많이 가르치고 가장 많이 말하는 교육이 아니라, 가장 많이 기다리고 가장 많이 품어내는 교육일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