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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수 카작기행

이교수의 카자흐스탄 견문록 - 두꺼비집을 모르는 카작아이들

작성자zhanna|작성시간06.07.27|조회수280 목록 댓글 0
아침에 퀸즈 장로교회 김목사님이 전화해 주셨습니다. 어제 잘 들어갔는지 안부한 후, 우슈또벡에 갈 경우의 행동요령을 친절하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냥 가지 말고, 사전에 소망교회 관리집사님(퀸즈장로교회통역사)에게 전화해 취지를 설명해 할머니들을 모이시게 부탁하면서 "할머니들께 과일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란 말을 하고, 실제로 과일을 준비해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짜는 없으니까요" 그 말의 의미를 밤에 알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14년간 살고 있다는 분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우즈베키스탄과는 달리, 이곳 고려인들은 철저히 기브 앤 테이크라는 것이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소개한, 할머니들이 많이 나오신다는 알마티감리교회에 전화해서 주소며 예배시각을 확인해 두었습니다. 이번 주일날, 알마티감리교회 가서 예배하고 할머니들을 만나야겠습니다.

김 빅토르 노인이 전화를 해서, 이번 토요일(내일)에 노인들과 만날 수 있다 했다는 주인의 전언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이곳 알마티와 우슈또벡 사이쯤에 있는 박박띠에 민박집 주인(박사장)이 데려다 준다고 합니다. 이분의 말로는, 박박띠에도 고려인 노인들이 많다니 아주 기대가 됩니다. 드디어 내일부터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는 겁니다.

건기라는데 아침 일찍 한차례 비가 내렸습니다. 혼자 택시 타고 국립박물관 갈까 했으나 비도 오고 해서, 오전 내내 집에 있으면서, 어제 녹음한 김 빅토르 노인의 구술을 녹취했습니다.

오후에, 민박집이 있는 가가리나 거리 산책을 나섰습니다. 남쪽으로 5000미터에 이르는 천산의 위용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설산이었습니다. 꼭대기에 하얀 눈이 덮여 있었습니다. 남쪽은 천산산맥이, 북쪽으로는 대평원이, 알마티는 분지에 자리잡은 도시라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북으로 기울어 있어서 배수가 잘되기 때문에 홍수날 일이 없다 했습니다. 하지만 배기에는 문제가 있어, 겨울이면 춥고 강한 바람에 눈이 많고 스모그가 자욱해서 회색도시가 되어 버려 살기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모스크바도 마찬가지로 겨울이면 칩거해야 하다 보니, 보드카(독주)와 섹스와 철학이 발달해 있다는 이야기를 이곳에서 사업하는 분이 말해 주었습니다. 이곳 카작인들은 섹스에 개방적이어서, 혼전 순결 의식이 희박하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절대부족하다 보니 여대생조차도 괜찮은 남자를 만나면 첩으로 들어가는 걸 개의치 않으며, 일단 임신하면 중절하지 않고 낳아서 기르며 이혼을 아주 많이 한다고 합니다. 유목민 기질이 지금도 남아 있기 때문인 모양입니다.(이와는 달리, 정주민이며 농업국가인 우즈벡키스탄 사람들은 순결의식이 강하며, 첫날밤 하얀천을 침대에 깔아 처녀성을 확인한다고 합니다. 우리와 정서와 문화가 아주 흡사해, 우즈벡에 가면, 우리 텔레비전 드라마를 그렇게 좋아하고, 화제에 올린답니다. 우리가 택시 타면 탤런트들에 대해서 막 질문한답니다.)

오늘 산책에서 알았는데, 집 부근에 통신회사인 카작텔레꿈이 있었고 작은 시장도 있어서 온갖 과일이며 생필품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큰길로 갈 때는 몰랐는데, 골목으로 접어들자,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로 하면 판자집같은 데서 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함석 담장의 대저택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 아파트 공터에서 아이들이 모래로 장난치고 있기에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여나믄 아이들이었는데 얼른 보아도 인종이 다양했습니다. 270여 민족이라더니 백인아이도 있고, 카작인 아이도, 중국풍의 아이, 몽고풍의 아이들이 섞여서 러시아어로 잘들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으면 두꺼비집을 지으며 놀텐데, 이 아이들은 그럴 줄 몰랐습니다. 그냥 일자로 모래를 쌓은 다음 다시 허물거나 상대방에게 흩뿌리며 놀 뿐이었습니다. 내가 다가가서 아뭇 소리 않고 두꺼비집을 지어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세개쯤 지어 보여주었더니 따라서들 했습니다. 내가 박수를 해 주었더니 웃으면서 다른 아이들도 따라서 했습니다. 내가 "두꺼비집" 하며 따라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으나 아이들은 따라 하지 못했습니다. 발음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모래장난을 하다가 옷을 버리자, 어머니인 듯한 젊은 여성이 와서, 아이한테 뭐라뭐라고 한참 나무랐습니다. '그렇게 버리면 어떡해?' 아마 그런 꾸지람이겠지요? 그 표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에 아파트 현관으로 피해 있다가 비가 그친 후 민박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다 보니 러시아인 거지가 빵집 옆에서 구걸하였습니다. 꼽추 러시아 처녀도 보았습니다.  빈부의 격차, 신체 장애는 어디에나 있는 모양입니다. 문화는 다르지만 사람 사는 양상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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