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土曜 登山/ 89 옛날 히말라야 원정 캐러번하던 시절이 그립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4.04.06|조회수19 목록 댓글 0

옛날 히말라야 원정 때는 요즘 유행하는 짧은 시간을 내어 트레킹 하는 것 하고는 다르다. 요즘은 길어야 15일 정도로 하고 있지만 원정 당시는 최소 3개월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많은 대원과 포다 그리고 세르파와 대장인 사다와 함께 질서 있게 계획표에 의하여 운행하는데 이러한 원정대를 그때는 캐러번이라고 했다.

요즘처럼 누구나 가는 것도 아니고 원정대가 지나는 마을과 텐트를 치고 숙영을 하는 마을에는 잔치분위기다

서로 다른 문화와 생활습관 먹거리로 이야깃거리와 볼거리가 많은 시절이었다.

안나푸르나 북쪽 베이스켐프를 갈 때는 포카라에서 티베트로 가는 대상(隊商, 馬商)들을 고용해서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가기도 하고  

안나푸르나 남쪽 베이스캠프 트렉킹과 푼힐 전망대 경유지는 당연 란두룽(Landulung) 이다.

그때는 숙박업소인 로지가 없었고 그냥 마을에 탠트를 치거나 헛간의 침대를 빌려 잠을 잤다.

란두룽(Landulung) 은 전망도 좋고 안나푸르나 남봉이 코앞에 보이지만 기후가 따뜻하고 사방의 갈림길목이라 제법 번창하였고 내가 좋아하는 둥근 돌집 흙집이 있었는데 그 뒤에 가보니 없어져서 사진만 보관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원정 때는 티베트 무역 교역로가 없어 카트만두(Kathmandu)에서 트럭에 원정용 짐을 가득 싣고 지리(jiri)에 도착했다.

지리(jiri)까지는 비포장 도로가 뚫려 있었고 그 당시에는 주위가 울창한 숲이었는데 벌목을 하던 광경을 보았다

그 뒤 들리는 소문에는 그곳에 농장을 해서 치즈공장이 들어섰다고 했다.

우리는 지리(jiri)에서 미리 계약한 원정용 짐을 지고 갈 포타(porta)와 세르파(Sherpa)와 사다(guv)와 만나 짐표가 달린 목줄을 가지고 일일이 포타(porta)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는 짐을 분배했다. 이 일은 대장격인 그 나라사람 사다(guv)가 처리한다.

개중에는 탈락한  사람이 짐을 가지고 자기가 가겠다고 우기기도 하고 짐을 나르는 포타(porta) 중에 여성 아주머니도 몇 사람 있었다.

한쪽에서는 우리 대원중에 장비담당 대원이 짐꾼에게 신발과 재킷을 나누어 주는데 신발이 발에 맞질 않아 대부분 그냥 짐에 넣어 가지고 간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맨발로 다녔기에 발가락이 모두 사방으로 넓게 벌어져있어서다 특히 여성인 아주머니가 맨발로 눈밭을 걸어가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단한 인내심이다고 여겨졌었다.

그 당시 남녀 똑같이 33kg씩 배분한 것 같았는데 그들의 짐을 합하면 40kg~50kg의 짐을 지고 갔다고 보아야 한다. 

요즘은 교통의 발달로 단기간 여행으로 국내의 항공기를 이용하므로 길고 긴 케러번(caravan)을 볼 수 없다

그때는 네팔 카트만두(Kathmandu) 여행사에서 안내인 대장 1인을 구했는데 그의 명칭은 사다(guv)라고 합니다

사다(guv)가 다시 차량이나 현지에 가서 케러번(caravan)이 시작되는 곳에 당도하면 수십 명의 포타(porta)가 줄을 섭니다 

사다(guv)는 포타(porta)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목걸이를 걸어주며 짐 함박스를 지라고 합니다

때로는 포타(porta)가 짐을 지고 케러번(caravan) 도중에 도망을 치기도 합니다 만약 그 짐박스가 정상공격 시에 보조쟈일이나 장비가 든 박스라면 사다(guv)는 마을로 내려가서 그 사람을 잡아 오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소용없는 물건이기에 고스란히 받기도 합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였는데 기상악화로 날마다 하릴없이 텐트 속에 있는데 술을 좋아하는 대원중에는 어떻게 구했는지 술을 먹다가 술이 떨어져서 주정재료인 소독약의 에칠 알코올인지 독성이 있는 매칠 알코올을 먹었는지 다음날에는 아픈 머리를 호소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2023.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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