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자유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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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사가
그는 역사가였다. 그 중에서도 전쟁이 그의 관심 분야였다. 그는 유사 이래 벌어진 모든 전쟁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킬레스의 트로이 전쟁, 펠레폰네소스 전쟁, 중국 전국시대의 크고 작은 전쟁, 알렉산더의 원정, 카르타고인 한니발의 패배, 적벽대전, 황산벌 싸움, 정묘호란, 인도 무굴제국의 창시자 바부르의 파니파트 전투, 만주 사변, 1·2차 세계대전, 6·25 등의 전쟁은 물론이고 각각의 전투, 전투의 세부, 장군의 이름, 병사의 수효, 신무기, 작전, 첩보전 양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아가 그 전쟁을 기술한 사가 중 비교적 공정하게 평가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평가도 할 수 있었다.
그가 평가하기를 좋아했던 플루타르코스, 사마천과 마찬가지로 그는 역사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공식적인 직업이 없었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재야 사학자였다.
그가 재야 사학자임을 아는 사람은 그가 사는 동네의 아이들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것이 그의 직업이었고 보람이었으며 그가 이승에서 찾아낸 유일한 재미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 측에서 동원한 이천삼백십육 대의 수송기, 일만 삼천 대의 항공기, 육천 척의 함선, 팔천구백십오 명의 사망자와 같은 숫자를 정확하게 외웠고 연합군이 승리를 하게 된 원동력, 퍼붓는 포화 속에서 <나가서 싸우자>라고 외친 사람의 계급, 쌍방의 총사령관, 이를테면 아이젠하워와 롬멜의 전략, 승인과 패인, 그들이 졸업한 학교, 출신지, 주변의 평가, 권력자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는 해박한 지식으로 아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그 일을 하느라 바빴고 늘 기침을 달고 다니는 자신을 돌 볼 겨를이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모인 아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의 끼니를 걱정하거나 지붕이 새는 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눈을 반짝이며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듣다가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그와 그의 집은 궁핍하며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이웃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기억력과 분석력과 끊임없이 솟아나는 새로운 이야기에 놀라게 마련이었다. 그에게 책을 써보라고 권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나가서 일을 하라, 아내를 얻고 아이를 낳고 지붕을 수리하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으리라. 그에게 병을 고치고 새로운 출발을 하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들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그는 이웃의 어른들에게 미움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없을 때는 숲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어쩌다 그 노래를 들은 사람은 모두 그의 목소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한마디씩 하게 마련이었다. 그 노래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는
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그는 패잔병처럼 버림받았고 불구자처럼 살았다. 다른 사람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가 원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영웅과 영웅이 칼을 맞대고 병사와 병사가 숨죽이고 대치하며 예광탄이 어둠을 찢고 은은한 포성이 울리는 폐허는 매혹적이고 아름다웠다. 저공비행하는 전투기의 무자비한 기총소사, 문득 공중에 피어나는 뿌리 없는 꽃과 같은 낙하산. 국경이 무너지고 진주군의 발자국 소리가 탱크의 캐터필러 소리에 섞여 들리는 새벽은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 꿈을 꾸었다. 꿈 이야기를 들은 가족은 다시는 그의 집에 아이를 보내지 않기도 했다. 그게 그늘 낙망시키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들이 찾아왔고 그는 똑같은 이야기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언제든 되풀이할 수 있었다.
그는 전쟁을 일으킨 적도 없었고 전쟁터에서 병사를 지휘한 적도 없었고 심지어는 전쟁에 참가해 보지도 않았다. 세상 여러 곳에서 전쟁이 지나갔지만 그는 소집이 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사라졌다. 그는 죽음의 형식을 빌어 우리 곁을 떠났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그가 죽었다거나 없어졌다고 하지 않고 <떠났다>고 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기억했다. 그가 사라진 것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자랐을 것이다. 내가 자라 결혼했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있듯이 이제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그때 아이였던 어른들은 전쟁이 났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그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를 기억할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 그가 이제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 고통스럽다. 그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위대한 전쟁 사가였다.
요컨대 그는 누구에게나, 그 자신에게도 무해무익했다.
오오 나는, 누구보다 위대한 장군인 그가 어린 영혼들을 지휘하여 세월과 세상을 상대로 한 대전에서, 통쾌하게 싸워 전사했다고 기록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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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웃음소리
우리 나라 사람이 쓴 책에는 웃음 소리를 직접 인용한, 형용한 대목이 적다. 특히 진지하고 정통에 가까운 소설일수록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자주 나오는 것은 미소. 미소짓다, 미소를 흘리다, 미소하다, 소리없이 웃음짓다, 웃음을 머금다, 빙그레 웃음짓다 등으로 아까울 것도 없는 웃음 소리를 아끼고 있다.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점잖지 못해다고 여겨서인가. 그래서 감정 표현에는 점잖은 소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솔직한 만화를 대상으로 웃음 소리를 찾아보았다.
가장 웃음 소리가 많은 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1) 숨을 모아 한꺼번에 내보내는 소리에 가장 가까운 ㅎ 자음에 다섯 모음을 결합한 형태. 빈도수가 가장 높다.
하하, 허허, 헤헤, 후후, 흐흐, 히히.
2) 1)의 경우에 ㅅ을 결합, 강조한 것
핫핫핫, 헛헛헛, 헷헷헷, 후훗, 흣흣, 힛힛힛.
3) 1)의 경우에 웃음에 충분한 숨을 만들기도 전에 튀어나오는 웃음 소리를 형용한 것. 목적이 있는, 억지 웃음에도 쓴다.
아하하, 으하하, 와하하, 어허허, 에헤헤, 우후후, 으흐흐, 이히히.
4) 파열음 ㅋ, ㅍ을 ㅎ 대용으로 쓰고 있는 경우.
카(크)하하, 크카카, 카카카, 크크크, 파하하, 푸(프)하하, 푸후후,
5) 몇몇 작가만이 쓰고 있는 경우.
우후훙, 후아, 헐헐헐, ㅎㅎㅎ, ㅍㅍㅍ.
6) 헛웃음, 냉소
피식, 픽, 푸시시, 피시식.
7) 실제로는 들을 수 없으나 문자로는 쓰는 경우
깔깔깔, 낄낄낄, 끄끄, 깰깰깰, 킬킬
8) 위의 경우를 모두 이용하여 만든 간단한 소극(반드시 따라 읽어야 효과가 있음)
하하…허허…헤헤…후후…흐흐…히히…핫핫핫…헛헛헛…호호홋…후훗…흣흣…힛힛힛…아하하…으하하…와하하…어허허…에헤헤…우후후…으흐흐…이히히…우후훙…헐헐헐…푸하하…푸후후…ㅎㅎㅎ…ㅍㅍㅍ…피식…픽…푸시시…피시
식.
9)응용(반드시 따라 읽어야 효과가 있음)
하헤히호후후히힛헤헤이히히픽아하하하하하하하오호호호호호호흐흐흐흐히힛헤헷으흐으으으이아와으이호훗흐헷훗홋핫헐헐헐핫핫핫피시시.
비명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에는 비명 소리를 직접 인용하거나 형용하는 대목이 적다. 죽음에 임박한 순간의 비명, 단말마의 비명은 더구나 찾기 어렵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한국인이 매우 조용하게 숨을 거두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다음은 만화와 만화에 버금가게 친절하고 사실적인 무협지에서 가려모은 단말마의 비명 모음. 이 책이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온 어떤 책보다 단말마의 비명이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이 되도록.
1) 끄으윽
임종시 숨이 넘어가는 소리. 이승에 미련이 많은 사람의 비명.
2) 끅
임종시 숨이 넘어가는 소리. 이승에 미련이 적은 사람의 비명.
3) 끽
'끽 소리 없이 죽다'에서처럼 '끽'은 소리없는 죽음을 묘사할 때 쓰였으나 요즘은 음가가 생긴 듯.
4) 꽥
짐승, 그 가운데서도 집짐승인 돼지의 비명 소리에 자주 쓰이나 그에 맞먹을 정도의 짐승 같은 사람이 죽을 때 내는 비명으로 쓰임.
5) 으악
빈도수 높음. 단말마 비명의 대표격.
6) 아악
빈도수 높음. 5)의 여성형으로, 또는 고통을 호소할 때도 쓰임.
7) 우욱
고통을 참으며 죽어가는 비명.
8) 으윽
고통을 참으려고 할 때 나오는 비명. 이런 비명 소리를 자주 내다가는 이빨이 성하지 못할 것이고 대체로 '아악'의 단계를 거쳐 '으악'으로 생을 끝마치는 경우가 많다.
9) 짹
참새가 죽을 때도 '짹' 소리를 내는 법.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의 비명.
10) 찍, 깩
쥐처럼 작은 동물이 탱크처럼 육중하고 강한 물체에 깔려죽을 때 나올 법한 비명. 그에 가까운 상태에 있는 사람의 비명.
11) 흐흑(또는 흑)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많이 내지르는 비명.
12) 훅
11)의 경우와 비슷하나 폐활량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
13) 힉
놀라 죽을 때의 비명.
14)비명만이 등장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비극(따라 읽을 필요 없음)
끄으…윽…끅…끽…꽥…으악…아악…우욱…으윽…짹…찍…깩…흐흑…훅…힉.
15) 인류 최대의 비극 제 2탄(제발 소리내어 따라읽지 말 것)
힉…훅…흐흑…찍…짹…으윽…우욱…아악…으악…꽥…끽…끅…끄으윽…윽…끅…끽…꽥…으악…아악…우욱…으윽…짹…찍…흐흑…훅…힉…끄으…윽…끅…끽…꽥…으악…아악…우욱…으윽…짹…찍…흐흑…훅…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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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눈물
그는 늘 눈물을 흘린다. 밤이나 낮이나 술을 마시거나 않거나 누가 죽거나 말거나 슬프거나 말거나. 늘 눈물을 흘리는 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진데 눈물이 없이는 눈이 말라 눈을 뜰 수가 없는 법이다. 곡식이 익든 말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치거나 한결 같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려는 이 사람은 눈물을 눈 밖으로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넘치게 흘려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이만큼 맵시 있고 예의 바르게 우는 사람도 세상에 따로 없을 것이다. 그의 눈물에는 오랜 세월 동안의 경험으로 얻은 품위가 있고 평정이 있고 법도가 있다. 심지어 울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가 언제부터 울기 시작했는지, 왜 우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 그는 특별한 호의로 내게 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는 요즘 사람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늘 양복 가슴께에 달린 주머니에 분홍 손수건을 꽂고 다니는데 먼저 그 손수건을 기품있게 꺼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정신을 집중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가끔 수건으로 눈가를 훔쳤고 코도 풀었다. 잠깐 눈물을 멈추고 내게 울음 소리도 원하느냐고 했는데 나는 깜짝 놀라서 아니라고 손을 저었다. 그는 한동안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더니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낮은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삼십 분 정도를 그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 울음은 내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가히 경지에 달한 울음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분홍 손수건을 접어 양복 웃도리 주머니에 소중히 간수했다. 근육의 긴장과 감정의 격동을 자신과 남에게 동시에 경험하
게 하는 울음, 그 울음 뒤에 오는 나른한 편안함, 고요. 그는 후식이라도 되는 양 그것까지 맛보게 해주었다.
그 눈물 때문에 그는 늘 물에 빠진 종이처럼 처량해 보인다. 그래서 일자리도 변변치 못하고 하는 일도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나는 그에게 노래를 부를 때 늘 눈물을 흘리는 가수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 가수의 노래는 대체로 비장한 정조로 느리고 무겁게 흘러가는데 그 가수는 그와는 달리 손수건을 쓰지 않는다. 그저 눈물이 뺨 위를 흘러가도록, 텔레비전 카메라가 그 눈물을 더 잘 포착할 수 있도록, 관중이 잘 볼 수 있도록 얼굴을 돌려가면서 운다. 그의 노래가 끝나면 청중은 다른 가수에게 그러하듯 박수를 치는데 그의 눈물을 잘 봤다는 뜻인지, 노래를 잘 들었다는 뜻인지 불확실하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 또 눈물을 흘렸다.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게 기뻐서? 아니면 슬퍼서? 수준이 맞아서, 아니어서? 눈물까지 상표로 만든 게 더러워서, 감탄스러워서?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도리질하면서 그저 섧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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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폭력에 대하여
나는 행운아다.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맞지 않았다. 나는 행운아다. 이 폭력이 난무하는 나라에서 한 대도 맞지 않고 살아왔다니. 아니, 행운아가 아니다. 한 번은 맞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행운아다. 한 번밖에 맞지 않았다. 교내 폭력, 학교 주면 폭력, 폭력 서클, 폭력배, 언어 폭력, 폭력 단체, 비폭력무저항 등등등 갖가지 폭력이 판을 치는 나라에서 단 한 번밖에 맞지 않은 나는 행운아다.
중학교 때였다. 나는 시골에서 서울로, 서울의 변두리, 사람이 지독히 많이 살고 그 사람 수에 곱하기 2를 하면 대략 수가 나오는 주먹의 나라로 전학을 왔다. 전학 오기 전의 나라, 그러니까 요즘 말로 초등학교로 고친 국민학교 시절 내가 살던 곳은 양과 사자가 함께 노는 나라였다. 그 나라에서는 폭력을 쓰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다. 먹고 살기 위해 폭력을 쓴다는 말은 아예 없었다. 먹고 살기 힘들면 굶어죽으면 되지. 그 나라에서 이사를 온 건 내 뜻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뜻도 아니었을 것이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하기 위해 일부러
주먹나라로 전학을 보냈다고 믿을 수는 없다.
어쨌든 나는 주먹 나라의 중학교로 전학와서 며칠 안되어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내게 심부름을 시킨 아이는 나보다 서너 살은 많고 학년은 같고 주먹과 칼로 일대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재수생, 전문학교, 전수학교, 학원에까지 골고루 명성을 떨치고 있던 깡패였다. 그런 훌륭한 깡패가 왜 시골에서 막 전학 온 핏기없고 어리숙한 나한테 '매점 가서 빵과 사이다를 사오너라'는 심부름을 시켰는지는 모르겠다. 그건 하느님이 아시겠지. 다른 아이라면 '아아,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구나. 영광스럽게도 나한테 심부름을 시키시다니,
이 목숨 바쳐 빵을 사와야지.' 하면서 두 주먹을 꼭 쥐고 뛰어가련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왜냐구? 나는 물정을 몰랐다. 나는 양과 사자의 나라에서 왔다. 나는 바보였다. 그래서 그 심부름을 거부했다.
"싫다."
그 아이의 표정을 아직 잊지 못한다. 무안한 듯한, 어이가 없는 듯한, 귀찮은 듯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그 표정은 군대 가서 걸핏하면 몽둥이부터 들고 보는 내무반장에게도 나타났고 데모대가 시가지를 휩쓸던 어느 때 강경진압 담화를 발표하는 대통령에게서도 보았다. '네가 군인이야?' '네가 학생이야?'
'너는 뭐하는 놈이야?' '네가 인간이야?'라는 말을 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그 표정. 폭력 직전의 표정.
물론 나는 맞았다. 변소 뒤에 끌려가서 나보다 작고 나보다 힘없고 나보다 먼저 전학온 아이들에게 조롱을 받아가면서 두 시간은 좋게 맞았다. 맞아죽으면서까지 절대로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잖은가. 무릎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기 원한다는 어른들도 있잖은가. 나는 바로 그렇게 하염없이 버티어서 시원하게 맞았다. 그 다음부터 나는 절대로 맞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실천에 옮겼다. 나는 행운아다. 결심을 실천에 옮기고도 무사할 수 있었다. 이 폭력의 왕국에서.
어떻게? 가령, 고등학교 일학년 시절 교실 앞뒷문을 잠궈놓고 역도부 3학년 선배들이 단체로 '빳다'를 칠 때는 어떻게 하느냐. 가령, 사납게 생긴 국어선생이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한 시간 안에 외우라는 숙제를 주고 한 시간 후에 와서는 못 외운 사람을 몽둥이질할 때는? 학교 뒷담길을 지나가다가 이웃학교 야간고등학교 깡패들이 버스표를 달라고, 라면 사먹을 돈을 달라고 포크를 들이댈 때는 어떻게 하느냐? 토끼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라. 창문이 안 열리면 깨고 뛰어라. 가방이 무거우면 버리고 뛰어라. 다리가 부러지면
어떠냐, 창문이 깨지면 어떠냐. 치료비가, 창문값이, 가방값이 들면 또 어떠냐. 폭력에 당하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 훨씬 싸다. 폭력은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은 쉽게 잊을 수 있지만 그에 당하는 사람은 평생 두고두고 그 순간의 끔찍함에 몸서리칠 것이다. 무엇보다도 폭력은 폭력을 낳기 때문에 나쁘다. 토끼면 된다. 서로에게 이익이다. 중학교에 내가 처음 전학을 왔을 때 나는 1백미터를 20초에 뛰는 느림보였다. 처음으로 맞고 나서 1백미터를 뛰어보니 약 2초가 향상됐다. 졸업할 무렵 다시 2초가 단축됐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1백미터를 13초에 뛰는 준족을 자랑했고 1년이 지나기도 전에 11초대에 진입했다. 그때 국가대표급 축구선수로 각광받던 축구선수가 유일하게 나보다 빠른 발을 가졌다. 졸업할 무렵 나는 그 선수를 추월할 수 있었다. 자신과 비슷하게 발이 빠른 보통학생이 있다는 걸 안 그 녀석이 어느날 주먹을 쳐들고 나를 따라왔기 때문에 나는 순식간에 10초대에 진입했다.
마침내 나는 국가대표 달리기 선수가 되었고 태극마크를 달고 각국의 내로라하는 토끼들과 각축전을 벌여 국위를 선양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이 혹시 교내든 교외든 학원 근처든 집안이든 밖이든 폭력에 당하게 될 위기에 처하면 나를 기억해주기 바란다. 관중의 뜨거운 환호와 탄성 속에서 토끼고 또 토끼는 나를. 여러분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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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죽음에 이르는 병
나는 스스로의 동족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가엾은 닭을 알고 있다. 먹고 싶어서 먹은 것이 아니다. 계란을 먹고 나면 껍질을 부수어 닭에게 먹이듯 사람들이 닭에게 닭을 먹였다. 털이 뽑히고 내장이 털렸으며 목을 잘린 채 두 다리를 들고 팔려간 닭이 남기고 간 것을 사료로 만들어 사람이 먹인 것이다. 그것을 먹은 닭의 운명 역시 대부분은 먼저 간 동료와 같다. 닭보다는 오래 사는 양, 소는 어떤가. 양과 소에게 동족이자 동료가 남기고 간 내장과 뼈를 사료로 만들어 먹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 먹이사슬이 반복되자 어느 때에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는 이상한 병에 걸려 미친 증세를 나타내는 소가 생겼다. 사람들은 그 소를 먹고 비슷한 병에 걸려 미칠까 겁을 냈다. 그래서 수백만 마리의 양과 소를 무차별로 도살했다. 그 희생양들은 더 이상 다른 양에게 먹이지 않았다. 그 이상한 병의 이름은 광우병(BSE), 사람들이 걸릴까 겁을 낸 병의 이름은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이다. 나는 스스로를 먹은 뱀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 뱀은 제 꼬리를 먹기 시작해서 결국 제 입을 먹고 말았다. 알다시피 뱀의 이빨은 안으로 굽어 있어서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다 먹을 때까지 멈출 수가 없다. 사람의 이는 어떻게 생겼던가. 사람들이 말하는 발전은 어떤가. 부귀영화는 또 무엇인가. 스스로의 목구멍 안에 들어가기 전에 생각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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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식(大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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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목격한 대식(大食)의 기록은 함께 자취를 하는 고등학생들이 작성한 것이었다. 내가 방문하던 때 그들은 마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부지런히 라면 봉지를 뜯어서 수프와 면을 분리해놓고 있었고 한 사람은 파를 다듬고 달걀을 깨뜨려 반죽을 만들었다. 그들이 쓰는 솥은 칠인용 전기 밥솥이었다. 사방 벽에는 라면상자가 천장까지 쌓아올려져 있었는데 반은 비어 있었고 반은 들어 있었다. 라면 상자 때문에 책상이나 장을 놓을만한 공간도 없었고 교과서며 일상도구, 옷은 라면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라면 상자가 그들의 식탁이었고 조리대였고 설거지를 한 다음 남은 쓰레기를 버리는 쓰레기통이었다. 국물까지 하나 남김없이 마셔버리기 때문에 설거지라는 게 솥에 남은 기름기를 제거하는 것 정도로 간단했다. 그 기름기는 두루말이 화장지로 닦아서 라면 상자 안에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나마 기름기를 닦아낼 짬이 별로 없을 정도로 식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졌다.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자 그들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커다란 함지가 있었으면 좋겠어. 솥이 하나밖에 없어서 한 사람이 솥을 끌어안고 먹고 있으면 그동안 다른 사람이 기다려야 하거든. 순서 때문에 가끔 싸우기도 해. 그게 불편하고 싫어."
"그럼 한 사람이 한꺼번에 라면 아홉 개를 먹는단 말이니?"
"응. 엄마가 더 큰 솥은 안된다고 하셨어. 다른 솥을 하나 더 샀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라면값 때문에 등록금을 못 낼지도 모른다고 한사코 말리셨어."
2
내가 직접 겪어보지는 못하고 이야기로만 들은 대식가 역시 고등학생이다. 앞서 말한 고등학생들과는 달리 이 고등학생에게는 많이 먹을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씨름 명문으로 이름난 고등학교의 촉망받는 씨름선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몸무게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니 먹는 것도 두 배 이상이어야 마땅하다.
씨름선수의 아버지는 지방의 말단 공무원으로 삶의 희망이라고는 아들이 천하장사가 되어 제 덩치만한 금송아지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박봉으로는 도저히 아들의 식대를 댈 수가 없어 그의 희망은 희망으로 그칠 가능성이 많았다. 그 때문에 그는 남보다 먼저 머리가 세었고 늘 우울한 표정인데다 한숨을 쉬는 게 버릇이 되었다. 차츰 그의 사정을 알게 된 동료 직원들이 그를 돕자, 씨름 선수를 키워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그의 동료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씨름 선수에게 저녁을 사주기로 했다.
첫 번째 순서가 된 사람이 내게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다.
그가 씨름 선수 부자를 만난 곳은 지방 소도시에서 제일 유명한 불고기집이었다. 아들 때문에 비쩍 마른 아버지는 자리에 앉자마자 조그만 소리로 가까운 돼지갈비집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는 고민 많은 동료를 돕자고 나온 것, 이미 단단히 각오를 했다고 큰소리를 쳤고 십 인분의 불고기를 주문했다. 아버지는 젓가락을 들었다 말았다 하며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그는 씨름선수가 보여주는 엄청난 먹성에 질려 일 인분을 먹었나 말았나 했다. 그러니까 나머지 구 인분은 씨름 선수 혼자서 다 먹었다는 것이다. 눈
돌리는 법도 없고 입 한 번 떼지 않고 고개를 드는 법도 없이. 씨름선수의 아버지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불안해 했다. 그는 그 아버지를 위로하면서 다시 십 인분을 더 주문했다.
"어때? 충분해?"
다시 십 인분을 다 먹고 난 씨름선수에게 그가 물었다. 씨름 선수는 먹고 나면 머리를 숙이는 버릇이 있는지 방바닥을 보며 손끝으로 바닥에 떨어진 물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덥지도 않은데 땀을 흘렸다. 하지만 말이 없는 건 아들과 마찬가지였다. 아직 모자란 모양이라고 판단한 그는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밖에 나와서 돼지갈비 간판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처음부터 돼지갈비집으로 갔으면 이런 일이 없을 걸. 미안해서 어쩌지...."
"아니, 이제 겨우 시작인데 뭘 그러십니까. 오늘 저녁은 제가 책임진다니까요. 하긴 돼지고기라고 해서 영양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연한 건 참 맛있습디다."
부자는 그가 이끄는 대로 돼지갈비집에 발을 들여놓았다. 씨름선수는 여전히 묵묵부답 말이 없었고 아버지는 조금 시름을 덜은 듯했다. 그는 이번엔 먹고 싶은 만큼 시키라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지갑 사정이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씨름선수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뭐랍니까."
"배가 불러서 많이 못 먹겠다는군. 나보고 주문하래."
"하시죠, 뭐."
"그럴까. 이거 미안해서...."
아버지는 종업원에게 십오 인분의 돼지갈비를 한꺼번에 가져다 달라고 주문했다. 왔다갔다 하게 하는 것도 미안하다면서. 이번에는 그도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그저 김칫국물을 조금 마셨다. 씨름 선수는 엄청나게 빠른 솜씨로 고기가 구워지기 무섭게 서너 장의 상추를 솥뚜껑만한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열 점 이상의 고기를 들어올린 다음 한 입에 그 모두를 쓸어넣었다. 입 속에 든 내용물을 씹고 삼키면서 한 손은 이미 새로운 상추를 펴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식사가 끝나자 씨름 선수는 비로소 포만감을 느낀 듯 했다. 그도 간신히 주머니 사정과 체면이 모순을 일으키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했다. 그때 종업원이 다가왔다. 냉면, 밥 가운데 무엇을 먹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냉면을 주문했다. 그때 씨름선수가 아버지를 향해 또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뭐랍니까."
아버지는 간신히 입을 떼어 아들의 말을 옮겼다.
"밥을 먹으면 안되냐구...."
"아, 먹어야지, 먹어. 많이 먹어. 먹는 게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거야. 그래,
뭐 먹을래?"
씨름선수가 수줍게 고개를 들었다. 그에게 물었다.
"비빔밥 먹어도 돼요?"
"그럼. 여보세요, 여기 비빔밥을 특별하게 많이 갖다주세요."
아버지는 아예 천장을 쳐다보며 한숨을 후우후우 불어내고 있었다. 씨름 선수는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아버지가 전혀 도움을 주지 않자 할 수 없이 제 입으로 원하는 것을 말했다.
"저어, 그런데요, 두 그릇요."
그가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 비빔밥 두 그릇이 날라져 왔다. 씨름 선수는 씨름판에서 상대를 메다꽂듯이 비빔밥 한 그릇을 바짝 들어 다른 그릇에 엎었다. 그 다음 두 그릇 분의 밥을 한꺼번에 비벼 삽시간에 해치웠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냉면은 먹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씨름 선수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 먹고 나서 씨름선수는 콧등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빠, 내일도 저녁 약속 있어?"
3
이번에는 환상 속의 대식가 이야기다. 한 사람이 아니고 가족이다. 앞서의 부자처럼 여기에 등장하는 대식가 역시 부자인데 앞서의 부자와는 달리 두 사람 다 대식가다. 그의 부인을 통해 그들이 어느 정도 먹는지 알아보자.
제 친정 식구들은 전부 빼빼 말랐거든요. 친정 부모님은 원래 조금씩 드셔요. 형제들도 부모님을 닮아서 밥상머리에서 깨작거리는 게 버릇이구요. 결혼하기 전 그이를 만났을 때 시원시원하게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게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어요. 신혼여행을 갔을 때, 좀 많이 먹는다 싶었어요. 갔다와서 많이 먹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이미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우리집 엥겔지수는 99예요. 그런다고 잘 먹는 것도 아니예요. 반찬이라고 해야 김치가 오르는 정도인데 그것도 돈이 많이 들어서 보통 때는 밥도 반찬도 다 밥이예요. ....
친정에서 농사를 짓는데 신혼 때는 쌀을 얻어다 먹었어요. 친정 식구가 여덟 명이다가 제가 결혼해서 일곱으로 줄었거든요. 친정 식구들 한 달 먹는 쌀을 신혼 부부 두 사람이 열흘이면 다 먹어요. 얻어오는 것도 나중에 눈치가 보여서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 그때부턴 그이 월급 받는 게 거의 전부 쌀 사는 데 들어갔죠.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다니고 옷은 꿰매고 꿰매서 바늘 들어갈 자리도 없이 된 옷이 많아요. 결혼 이후 처음으로 택시를 타본 우리 애 낳으러 병원 갈 때였어요. 그런데 그 애가 자라니까 또 무섭게 먹기 시작하더라고요. 밥
많이 먹는 것도 유전인가 봐요. 젖 떼고 세 살 때 먹던 밥그릇이 어른 밥그릇만했어요. 일곱 살이 되니까 아빠 반을 먹더라고요. 할 수 없이 제가 취직을 했어요. 애는 누가 보느냐구요? 걔는 밥만 있으면 돼요. 나갈 때 밥을 한 함지 해놓고 가면 혼자서도 잘 놀아요. 파출부를 하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식당에 취직을 했어요. 남는 밥이나 반찬을 얻어가면 혹시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그것도 잠깐이었어요. 요새는 주인이 자꾸 눈치를 줘요. 남는 밥은 개나 돼지밖에 더 먹겠어요. 우리가 개나 돼지처럼 보일까봐 밥을 많이 가져오지도
못해요. 지금 우리가 사는 건 인간 이하예요. 밥이 뭔데 사람을 이렇게 망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 아빠가 덩치가 크냐구요? 아니오, 그냥 보통 사람보다 조금 큰 정도예요. 애는 좀 커요. 저는 보시다시피 말랐죠. 저요? 저도 갓 결혼했을 때보다는 많이 먹어요. 네. 한 끼에 다섯 공기는 먹어요. 왜 그렇게 되었냐고요?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에라, 이 다음은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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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의 △ 이야기
지금부터 30여년 전, 어느 초등학교에 학생들로부터 처참하게도 '미친개'라고 불리는 선생님이 있었다.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늘 자신의 큰 덩치와 울퉁불퉁한 근육에 걸맞는 크고 거칠거칠한 몽둥이를 가지고 다녔고 언제 어느 때나 그 몽둥이를 휘둘러 댔으며 그와 동시에 자신이 학생의 입에 담지 못하도록 하는 욕설을 퍼부어대는 것으로 명성을 날렸다. 한 해 동안 그에게 맞아 머리가 터진 학생의 수는 열 명을 넘었고 고막이 터진 학생은 그 두 배, 도망치다 담에서 떨어져 뼈에 금이 간 학생은 반 쯤 되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그런 일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고 학생들이 그를 무서워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학생의 이름은 ▽이다. ▽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눈에 잘 띄지 않았으며 광견병에 걸린 적이 없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 1박2일 예정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됐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미친개'는 '군기'를 잡는다고 버스마다 돌면서 눈에 띄는 대로 후려치고 쥐어막고 욕설을 퍼부었다. ▽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친개'의 눈에 띄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았다고 즐거웠다는 것은 아니다. '좌석 위 수류탄!' 하고 미친개가 외치면 좌석 밑으로 기어들어가야 했고 '만원버스!' 하고 외치면 차 맨 뒤쪽으로 몸이 터져나가도록 스스로를 집어던져야 했다. 나중에 ▽은 군대에서 고스란히 같은 훈련을 받게 되는데 군대에서는 군기를 잡을 이유도 있고 좌석 위에 수류탄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제일 처음 그 훈련을 받았을 때 ▽은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그때 ▽은 처음으로 '두고 보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버스는 부산 해운대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울산 공업단지를 거쳐 경주에 도착했다. 거기서 수학여행단은 하루를 묵게 되어 있었다. 숙소에서 선생님들은 한 방에 두 명씩, 몸이 작은 학생들은 15명에서 20명이 한 방에 배치되었다. 방의 크기는 같았다고 한다. 특별히 수학여행까지 몽둥이를 가지고 온 '미친개'에게는 방 하나가 배정되었고, 아니 어떤 학생이나 선생도 '미친개'와 한 방을 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배정했고, 그 때문에 ▽은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래서 ▽은 다시 '두고 보자'고 생각했다 한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손가락 굵기만한 멸치와 짜고 매운 김치를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고(그것도 미친개의 호령에 따라 조용히, 감사하며) 선생님들은 반주를 곁들인 성찬을 마쳤다고 한다
(만취한 선생님과 덜 취했지만 젓가락 장단으로 하던 노래를 계속 부르자고 소리치는 선생님이 있었다). 학생들은 저녁을 먹자마자 잠을 자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방이 너무 좁아 전원이 몸을 이층으로 포개지 않는 한 누워서 자는 것은 불가능했다. ▽은 다시 '두고 보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랫배에 힘을 주다보니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은 콩나물시루 같은 방에서 나와 화장실로 갔다. 당연히 화장실은 재래식이었고 지저분했고 어두웠다. ▽은 거기서 성냥개비 하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은 그 성냥개비 끝에 △ 모양으로 쌓인 화장실의 특산물의 일부를 묻혔다. 그리곤 밖으로 나와서 방으로 향하다 문을 연 채 만취해 잠든 '미친개'를 보았다. ▽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충동에 따라, 나중에도 이해할 수 없을만큼 빠른 동작으로 성냥개비 끝을 미친개의 코에 갖다댔다. 미친개는 성냥개비 끝이 코속에 닿자 근지러운 듯 손으로 쓱 훔쳐 버리곤 돌아누워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학생들은 일렬로 서서 세수를 하고 일렬로 서서 수건 하나에 15명에서 20명씩 얼굴을 닦은 뒤, 일렬로 줄을 지어 전날과 마찬가지의 식사가 마련된 큰 방으로 향했다. 이미 밥상 머리엔 선생님들이 다 앉아 있었고 미친개만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거품을 물고 구령을 했다. 학생들은 줄을 맞춰 앉았고 구령에 따라 일제히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식사 시작!'이라고 외쳐야 할 '미친개'는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바로 앞에 앉은 아이에게 물었다.
"너 방귀 꿨지?"
그 아이는 사색이 되며 고개를 저었다. 미친개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그 옆에 앉은 아이에게 물었다.
"너냐?"
그 아이 역시 얼굴이 푸르게 변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미친개'는 아이들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흔들고는 '식사 시작' 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숟가락을 들려다가 그는 옆자리에 앉아 열심히 숟가락을 놀리는 동료에게 물었다.
"누가 방귀 꿨소?"
그의 동료들은 일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밥을 먹었다. 그때부터 집으로 향하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너 방귀 꿨지?"
"너냐?"
"누가 방귀 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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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과의 연애
시간을 끔찍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실한 공무원이었고 매일 똑 같은 시간에 집에서 나와 똑같은 시간 만큼 기차역으로 가서 똑같은 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똑같은 시간이 경과한 후에 종착역에 도착하면 똑같은 시간을 걸어 자기 책상에 앉아 똑같은 시간동안 일했다.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고 똑같은 시간이면 기차역 앞에 도착해서 똑같은 가게에서 똑같은 분량의 술과
안주를 사서 똑같은 봉지에 담아들고 똑같은 걸음걸이로 걸어가서 똑같은 기차를 타고 똑같은 시간 동안 밖을 내다보며 하루를 정리한 다음 똑같은 속도로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고 똑같이 기분이 좋아져서 똑같은 통로를 걸어나와 똑같은 문을 통해 기차에서 내린다. 내일도 마찬가지일 인사를 기차역무원과 나누고 마찬가지로 꽃이 핀 길을 따라 마찬가지로 노래,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까지를 반복해서 작은 소리로 부르며 집으로 향한다. 그의 아내는 시집 와서 처음부터 그래왔듯이 그를 맞으러 나오고 처음부터 그래왔듯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나직한 목소리로 주고받으며 집안으로 들어가 저녁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는 그때부터 잠자기 전까지 혼자가 되어 시간에 대해 명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시간은 돈이다'라는 금언을 생각해 냈는데 벤자민 프랭클린이란 미국 사람이 그 말을 먼저 했다는 걸 알고는 다소간 실망했다. 하지만 곧 '시간은 가장 위대한 의사이다'라는 말을 생각해내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벤자민 디즈렐리가 없었다면 그는 한동안 행복했으리라. 시간은 두 장소 사이의 가장 먼 거리다라는 말은 그가 집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동안 심심풀이로 만들어낸 말인데 테네시 윌리엄스라는 미국의 극작가가 한 말도 그와 비슷하다. 그걸 알고난 다음 그는 홧김에 시간은 한순간도 쉬임이 없는 움직임이다(톨스토이)라는 말도 지어냈고 남이 먼저 했거나 말았거나 간에 시간은 잘 이용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다(쇼펜하우어)라는 말을 아들에게 들려주었고 어느날 생일을 맞은 아내에게 '시간은 야박스러운 술집 주인과 같다. 나가는 손님에게는 가볍게 작별인사를 하고 들어오는 손님에게는 호들갑스럽게 달려가서 악수를 한다. 반길 때는 웃는 모습이면서 헤어질 때는 언제나 한숨을 쉰다'(셰익스피어)는 말이 적힌 카드를 선물했다. 그 카드에는 '시간의 흐름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실은 화살같이 날아가고 과거는 여전히 정지하고 있다. - 실러'라는 경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가 시간에 대해 명상하는 방안의 벽에는 '시간은 지나가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매일 같이 찾아오긴 하지만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다'는 사마천의 말이 액자에 걸려 있다. 그는 이처럼 시간에 대해 시간을 넘어 석학과 문호와 역사가 및 자신과 잦은 대화를 나누어 왔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문득 자신이 늙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의 주변 사물 역시 어제에 비해, 처음에 비해, 그 생각을 하기 전에 비해 낡았다. 그의 아이들은 다 자랐고 집을 나가 각자의 일을 찾았으며 가정을 꾸몄다. 그가 변함없이 사랑하고 의지하는 아내의 얼굴에도 주름이 생기고 머리칼은 희어졌다. 말투는 느려지고 이따금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이 몸 구석구석을 찾아오며 옛일을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부터 그는 시간에 대해 일생을 바쳐 연구를 할 결심을 하게 됐다. 그의 지식의 일부를 빌어 시간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이 상상해낸 가장 긴 시간 단위 가운데 하나가 겁(劫)인데 1겁은 범천(梵天)의 하루에 해당하며 년수로 치면 4억3천2백만 년이다. 혹은 인간의 연월일로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이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하늘과 땅이 개벽한 이후 그 다음 개벽할 동안이란 뜻이다. 혹은 둘레 사십리 되는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하늘에 사는 나이 많은 이로 하여금 3년에 한 알씩 가지고 가도록 하는데 죄다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이 1겁이라고도 한다. 혹은 둘레 사십리 되는 돌을 하늘 사람이 무게 3수(銖)의 옷으로 3년에 한 번씩 스쳐 그 돌이 닳
아없어질 때까지 하는 것을 1소겁이라 하고 둘레 팔십 리 되는 돌을 그렇게 하면 1중겁, 120리 되는 돌을 그렇게 하면 1대겁이라고 한다. 혹은 8만4천 세의 때로부터 1백 년에 한 살씩 줄어 10세에 이르고 다시 1백 년에 한 살이 늘어 8만4천세에 이르는 것을 1소겁이라고 하고 20소겁을 1중겁, 4중겁을 1대겁이라고 한다. 어디 기왕 살 것 이만큼 살아나 보자. 20겁에 해당하는 성주괴공의 겁, 대겁이라고 해도 실은 가장 작은 시간 단위인 찰나(刹那, 刹那=叉拏=Ksama = 一念 = 1/75초)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120 찰나가 달찰나를 이루고 60달찰나( 刹那)가 하나의 납박(臘縛)이 되며 납박이 모호율다(牟呼栗多)인데 이것은 곧 수유(須臾)로서 30수유가 1주야(24시간)이다. 그러므로 바닥에 떨어진 찰나라도 눈 씻고 찾아서 닥닥 걷어올려 내 것으로 쓰자.
"성 형, 내가 한 가지 중요한 발견을 했소. 높은 데 사는 사람이 낮은 데 사는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소."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계의 경과시간을
t라고 하고 이 사람에 대해 속도 V로 움직이고 있는 산꼭대기의 관측자가 보면 시간 경과 로 표현할 수 있는데(c는 초당 30만km의 광속도) 지구의 자전에 의해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산꼭대기에 사는 사람에 비해 더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꼴이 된다. 따라서 수식에 의하여 속도가 빠를수록 속도가 느린 관찰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모두 산에 가서 살자. 인생을 백년이라고 칠 때 산에 사는 것이 바다에 사는 것보다 몇 분은 더 시간을 더 쓸 수 있을 테니까. 혹시 아들이 직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한다면 더 높은 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비행기 운전을 하라고 하자. 사실 직업 중 가장 장수를 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은 우주비행사이다.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지상에서 겨우 지구의 자전속도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들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진행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주선에 탄 친구들은, 아직 광속에는 어림없지만, 딴에는 상당한 속도를 자랑한다. 7.9 킬로미터(시속 28,000킬로미터)의 속도로 가면 지구 주위를 따라돌 수 있게 되고 11.2 킬로미터가 되면 지구를 벗어나며 16.7 킬로미터를 넘으면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다.
"더 말씀해 보셔요."
너무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잠깐 내 눈치를 보던 그는 내 말에 기운을 얻어 다시 설명한다.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갈 수 있는 우주선을 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속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의 시간은 지구에 남은 사람에 비해 느리게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카시오페이아 자리의 초신성에 다녀오는데 일 년이 걸렸다고 하면 지구상에서 문명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애써서 다녀왔는데 인간이 멸망하고 바퀴벌레들만이 땅을 덮고 있다면 그는 얼마나 허무해 할 것인가. 미칠지도 모른다. 고향의 미루나무와 미리 작별 인사라도 해둘 것을!
"그렇군요. 너무 빠른 우주선은 몸에 해롭겠네요."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그게 궁금하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사람이며 일이며 세상을 싫어하는 건 물론이고 싫어하는 시간마저 아까워한다. 나아가 쓸데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도 싫어한다. 그가 혼자 틀어박혀 시간을 연구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는 공직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공직과 싸워 시간을 얻었고 아버지로서 아들과 싸워가며 시간을 쟁취했으며 노인으로서 생로병사의 허무와 남은 시간이 얼마 안 안된다는 강박관념과 싸워 시간을 얻어냈다. 이제 그는 자신에게 남은 모든 시간을, 시간을 아껴쓰고 연구하는 데에 바친다.
부디 그의 1나노초(10억분의 1초)가 1대겁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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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성석제가 쓴 자기소개
- 1960년 7월 5일, 미명에 태어났다고함.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근무 중, 증조부를 여의고 난 후 귀향,읍내 시장에 서민금융(시장상인들을 상대로 한 신용조합의 일종)을 운영하는 한편 농사도 지었음.
- 조부모, 종조모, 부모, 고모셋, 삼촌, 아홉 살 위인 형, 여섯 살 위인 큰 누이, 세 살 위인 작은 누이,머슴까지 합해 열세 명이 밥상에 둘러앉는 대가족. 3년 후남동생, 또 3년 후 여동생이 태어나 최고 15명분의 수저를 밥상에 놓아야 했음. 따라서 밥상이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저절로,확실히 깨닫게 되고
밥상을 연모하는 마음을 평생 가지게 됨.
- 스무 살 때까지 편식. 물고기,뭍고기를 먹지 않는 식성이어서 반드시 그것을 먹어야만 하는 다른 식구들에게 우호적인 대우를 받음. 최초로 돼지갈비를 먹은 것은 군대시절 휴가 때로 '야,이 놈들이 이렇게 맛있는 걸 저희끼리만 처먹고 살았구나.' 하고 바글바글한 옆자리 손님들에게 눈을 부릅뜬 적이 있음.
- 67년 국민학교 입학. 여리고 청초한 처녀를 담임선생으로 맞아 사모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함. 그해 겨울 선생은 결혼식을 한다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음. 그때 딴 녀석들은 수업시간이 줄어들어서 좋다고 책상에 뛰어오르는 등 광란을 하며 환호했는데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길, 십릿 길을 울면서걸었음. 다시는 여선생을 사랑하지 않으리라 결심.
- 2학년 때 담임선생은 여성은 여성이었으되 영국의 대처 수상을 연상케 하는 강철 같은 의지와 철권의 소유자. 감히 딴 마음을 품을 수 없어서 책으로 관심을 돌림.
집에 있던 책들은 옥루몽, 금병매,수호전, 연산군 같은 소설에 그림으로 보는 이야기 성서(이야기로 읽는 그림 성서였나?), 축산전서, 정체불명의 일본 추리소설, [사랑이 메아리 칠 때] 같은 저자 불명의 연애소설, 경향잡지(가톨릭 교회에서 간행하는잡지) 따위. 그걸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하다보니 학교에서 보고 배우는 이야기는 한 마디로 우스웠음. 따라서 학교에서 내내 실실 웃고 지냄.
- 3학년 때 {아라비안나이트}와 세익스피어의 {햄릿}, 중고등학생용 자유교양신서를 만남.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각 백번은 읽어 독서백편의자현이라는 말뜻을 체득하게 됨.
- 4학년 때 백일장에 나가 [노을]이라는
제목으로 '노을을 보면 시집 간 누나가 생각난다'는 요지의 거짓말을 주워 섬겨대 당선있는 가작 상을 받음. 그때 누나는 고등학생으로 시집은 십 년후에나 고려할 나이였음. 그 다음부터 갖가지 백일장에 반 대표, 학년 대표,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됨. 거짓말 선수가 됐음.
- 6학년 때 대학에 다니던 형이 군대 갔다가 사망. 온집안의 기대를 모으고 있던 형의 죽음으로 졸지에 장남이 됐고 무관심 속에서누리던 은일과 평화의 시대는 종막을 고함.
- 교내 폭력의 전성기에 거의 한 대도 맞지 않고 국민학교를 졸업. 졸업식 때 받은 상은 육성회장상인데 부상은 주판.
- 73년 아버지와 형이 졸업한 중학교로 진학, 자전거로 통학했음. 한없이 긴 방죽을 따라 등교를 하다 보면 스스로 한심하고 슬퍼지는 때가 많았음. 여름에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 조부모와 나만 커다란 시골집에 남게 됨.
담임 선생과 세계관이 맞지 않아 불화, 도서실에서 책을 훔쳐나오다 적발된 이후 학교에 가기가 싫어 시냇가에 앉아 혼자 가르치고 혼자 배우는 시간을 보냈음. 그때 공책을 찢어 띄워보낸 종이배는 지금 어디에서 항해를 멈추었는지.
- 2학년 봄에 서울로 전학. 말이 서울이지 구로공단의 배후지인 가리봉동이라는 변두리 동네는 수채가 질질 흐르고 비닐조각에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가운데 산업전사들이 사단급, 군단급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지옥같은 수용소였음.
- 독서실이라는 해방구에서 변두리 동네 사춘기 소년들이 즐기는 갖은 장난을 다 배우고 익힘. 여자 목욕탕을 들여다보다 불때는 할아버지에게 잡혀서 머리에서 예배당 종소리가 나도록 맞았음. 복수를 위해 세 번을 더 떼지어 출격했으나처음처럼 많은, 아리따운 여인들을 볼 수는 없었음. '나는 봤다!'고 목욕탕 벽에 낙서를 하는 것으로 복수를 마무리.
- 76년 2월 중학교 졸업. 지옥구 졸업. 뺑뺑이(추첨)로 혜화동의 경신고등학교로 진학.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은사(주호수 선생)을 만남. 매타작 전문가인 선생의 덕분으로 문예반에 들고 교지 편집이라는 걸 하고 1년 만에 문예반을 탈퇴하고 바둑도 두고 술도 마시고 선생이 압수해 집안에 쌓아둔 무협지도 읽고. 어릴 읽어둔 책들이 드디어 진가를 발휘, 40대의 성인과 대등한 사고를 하는 이상한 고등학생이 되는 데 성공하여 선생한테서는 한대도 맞지 않았음.
- 연세대에 진학(정법계열).후에 법학으로 전공을 정함. 법학을 전공으로 한 것은 고시생들이 많아 출석을 잘 부르지 않는다는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
- 기형도라는 인간을 만나 그가 나가는 사교 집단 연세문학회에 들어감. 교주는 문학이었고 교주 권한 대행은 술, 주정, 성원근(작고시인)의 철권, 시합평회의 난도질 등등. 성원근에게 한대도 맞지 않고 무사히 군대로 감.
- 군대 시절 벗들과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글의 위대함에 대해 눈을 뜸.
파블로 네루다(칠레의 시인), [창작과 비평] 영인본,[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미술의 역사], [음악의 역사], [철학사], [전쟁사], [역사란 무엇인가]를 접함.
- 84년 복학. 기형도의 인도로 교내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주관하는 [윤동주 문학상]
(시 부문)에 응모. 당선 있는 가작으로 입선.
- 85년 독자적으로 다채로운 영역을 개척하던 끝에 시, 소설, 희곡,3부문에 응모. 당연히 당선될 줄 알았던 (그 전해 당선자가 졸업했으니까) 윤동주문학상에서 낙선. 그때 심사위원은 정현종. 희곡은 당선작 없음으로 낙선. 심사위원은 오태석. 소설([박영준 문학상])이 가작 없는 당선으로 간신히 체면 유지. 심사위원은 잘 기억나지 않음.
- 86년 6월 월간 {문학사상}의 신인발굴에 시 [유리닦는 사람] 외 4편으로 등단.
졸업 후 출판사인 현암사에 취직.
- 11월 출판사 사직하고 제주-해남-상주로 이어지는 순례 시작.
6개월 정도 절에서 생활(절 생활은 종교문제 때문이 아니라 식성 때문임).
- 87년 겨울, 동양시멘트라는 회사에 취직. 홍보 일을 봄.
- 88년 5월 결혼. 현재 1남1녀.
- 91년 그동안 발표한 시를 모아 첫시집 {낯선 길에 묻다}(민음사)를 냄. 판매 실적 저조.
- 93년 8월 해마다 거듭된 시도 끝에 직장을 그만두는 데 성공. 주특기인 놀기에 탐닉, 마냥 신나게 먹고 놀았음.
- 94년 여름, 편서풍과 북태평양 고기압의 대결장이 된 서울 신림동 산자락 하숙집에서
악전고투 끝에 시도 소설도 산문도 아닌 이상한 글을, 미욱스럽게 책 한 권 분량이나 쓰게 됨.
그해 겨울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민음사)로 펴냄. 판매실적 저조.
- 95년 1월 산문집 {위대한 거짓말}(문예마당)을 냄. 물어보나마나 판매 실적 저조.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를 발표함으로써 소설가 행세를 하게 됨. 단편 [금과 은의 왈츠],단편 [첫사랑], 단편[이른 봄]을 발표하는 한편
장편 {왕을 찾아서}를 흑심을 가지고 씀.
- 96년 2월 {왕을 찾아서}(웅진출판)드디어 출간. 그러나 또 판매실적 저조.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 되면? 모르겠다.
6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침. 성한 왼쪽 다리도 노리는 인간들이 많은 세상에서 힘겹게 살고있음. 낫기만 하면 손보아줄 인간들 역시 많은 세상에서 야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
- 단편 [새가 되었네], [황금의나날], 중편 [스승들]을 보태 96년 7월 첫 창작집
{새가 되었네}(도서출판 강)를 펴냄. 판매실적은 말하지 않겠음.
- 중편 [어린 도둑과 40마리의 염소]('96 문예중앙 가을) 발표.
계간 {리뷰}에 장편 {왕의 인생} 연재 시작.
- 97년 1월 짧은 소설(꽁트,자유단편, 엽편소설이라는 장르와 비슷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서 뭐라고 이름붙이기 힘든 내 멋대로의 팬서비스)을 모은 {재미나는 인생}(도서출판 강) 출간.
- 단편 [조동관 약전], [경두],[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이인실],
[통속], [유랑], [고수], [칠십년대식 철갑],[비밀스럽고 화려한 쌍곡선의 세계]
등을 사방에 발표.
- 97년 5월부터 7월까지 PC통신 하이텔에 장편 [궁전의 새] 연재
- 97년 6월 두 번째 창작집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민음사)를 출간.
판매실적 점차 호전.
- 가을에 단편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음(공동 수상).
- 최근작으로는 단편 [붐빔과 텅빔], [소설 쓰는 인간].
- 현재 원고노동자, 사과나무에 반한 자, 막걸리 잔에서 복숭아꽃 피기를 기다리는 자 등 스무 개 정도의 직업 내지는 직함을 가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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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마시는 막걸리는 밥이면서 사직社稷의 신에게 바치는 헌주였다. 힘의 근원이고 낙천樂天의 뼈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자신을 알아볼 것이라고 한 말에서 유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여튼 그는 목이 멘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이유를 모른다. 우리는 이유 같은 건 모르고 산다고 말했다. 말하면서 맥주병을 내치려 깨뜨리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어느날 윤호는 고등학교 시절 통학하다 기찻간에서 사귀었다는 오종종한 처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섰다
간통이라는게 친고죄 이고,복역중에 세금포탈, 전치 2주는 성한사람도 끊을 수 있다는 게 지역의 통설이다
모든 일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고 사람 사이의 일은 사람이 못 풀 일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오래는 풀고 상처는 치료하고 감정은 씻으면 그만이다
이윽고 그 함성은“좆,좆,좆” 하는 말로 통일이 되어 부두목의 움직이는 귀의 귓바퀴를 통해 부두목의 외이도에 도달한다. 이윽고 고막을 진동한 소리는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로 이루어진 세 개의 이소막을 진동한 소리는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로 이루어진 세 개의 이소골을 거쳐 달팽이관의 난원창卵圓窓에 전달되고 음압이 20배로 상승한다. 달팽이관에서 나사 모양으로 돌며 기저막 위의 청세포에 전달된 소리는 청세포를 흥분시켜 신경으로 임펄스를 발사한다. 달팽이관 신경을 따라 들어간 임펄스는 연수延髓에 들어가 연수의 올리브 핵, 중뇌의 하구下丘, 내측슬상체內側膝狀體에 의해서 시냅스 전달이 되고 대뇌피질 측두엽의 청각부에 이르러 드디어 청각이 발생한다
몇몇 사람에게서 서음書淫이라고 불리기는 해도 그는 나름대로 극한까지 가본 사람이다
내가 사직 당국의 중대한 오해를 받아서 팔자에 없이
천지에 미만한 안개가 냇물처럼 흘러들어 움막을 감싸안았다
그당시 남가이는 첫잠을 자고 난 누에처럼 우화羽化를 하려면 먼, 그저 흉하고 가련한 벌레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 일별一瞥에 눈앞이 캄캄해졌다면 좋았겠으나 아직까지 남가이는 미완성이었다
남선생은, 성이 남씨가 아니고 남쪽 출신도 아니니 이선생, 아니 저선생이라고 하자, 저선생이라지만 멧돼지猪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훗날 제2의 후각기관인 鋤骨鼻器官어여쁜 여학생의 귀감 같은 여학생이 있었지만
그는 그들이 생각할 겨를이 없도록 눈을 크게 뜨고 그들 각자의 눈 속을 응시함으로서 그들의 뇌 속에 순간적으로 도파민의 분수가 솟아나도록 만들었다
진정한 야쿠자의 오야붕은 전문분야의 학자와 대등한 수준으로 학문적인 토론을 할 수이 있다는 나의 노가리도 진도를 나가는 데 보탬이 되었는지 모른다
특히 나 같은 반거들충이를 가르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나 요세 멘스 중이야
책은 무엇인가. 엉뚱한 과학사이다. 책은 지성의 몰락이며 글쓰기의 유혹이다. 책은 중국 중세사회로의 여행. 책은 중국 과학의 사상, 책은 사기(史記), 책은 인류 최후의 날이다. 책은 밤을 놓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지나 실학파의 정치 사상과 사회정치적 견해이고 독서술이며 동물의 미술이고 일본사와 동아시아 연표이다.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이며 생명의 기원이다. 육조단경六祖壇經인 책, 흥미있는 화학 이야기인 책, 팝리얼리즘인 책. 책은 권력과 지성이고 도연명 시집이지 엔트로피이다. 책은 천재의 정신병리의 발현이고 인간의 수상(手相)과 지문이자 표지가 떨어진 미학사전이다. 미국의 송어낚시에 요가,태고사 실크로드의 역사인 책,책,책, 책은 책에 담긴 모든 것이다. 재앙. 짐, 한 사람의 생의 자취, 모험, 여행, 유적이며 폐허 아니면 그저 책, 돈으로 삼억원, 종이로 팔면 몇십만원, 권수로 삼만권, 이게 다인가.
아무도 모른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형광등처럼 껌뻑껌뻑 명멸하더니 얇고 네모진 심연 앞에 쭈그리고 앉은 나를 환하게 밝혀왔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사는 가운데 비범하게 유지된다고 현자들은 말한다. ~~그역시 평범한 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모든 평범이 비범으로 변했다.
민주화의 대세와 방법론, 군산복합체의 동향 따위에 관해 기약도 없이 떠들어 대곤 했다.//알퐁스 도데
노름에서지지 않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소개하자면, 노름을 하지 않는 것이다.//이기고 싶어하는 마음 호승심(好勝心)
내가 적게건 판에서는 동점이 났고 크게 건 판에서는 블랙잭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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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서로 고무찬양 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 조성일 기자]
▲ 최근 <대한민국사(史)> 세 번째 책을 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 역사 교양 베스트셀러 <대한민국사(史)>(한겨레신문사) 세 번째 책을 낸 한홍구 교수(47. 성공회대)의 오지랖 넓음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지승호의 <마주치다 눈뜨다>(그린비)에 묘사된 그의 오지랖은 "학교 수업이 끝난 밤 10시20분에야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그 인터뷰가 끝난 밤 1시가 되어서도 정리할 원고가 있어 연구실에 남"아야 할 정도다.
그런데 그는 지금이 지승호와의 인터뷰 때보다 더 바쁘다고 했다.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인터뷰 시간과 장소를 정할 수 있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15분 전 전화로 다시 연락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밤 10시가 아닌 낮 3시경에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쇄하고 남는다.
인터뷰 약속을 위해 일전에 전화를 넣자 지금 올 수 있느냐고 할 정도로 스케줄 사이사이 짬을 활용해야 하는 그.
운동권에서 한때 '새끼 명망가'였던 그가 "가끔 허벅지를 꼬집어 꿈인지 생시인지를 확인해"봐야 하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약속 장소 도착 15분 전에 전화를 걸어 달라던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날 그는 그곳에서 15분쯤 떨어진 국가정보원에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쓸거리를 만들어준다!
"우리사회는 날마다 희망과 반전의 무대입니다. '조선말 하는 일본놈'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때가 있었고,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이상한 버릇을 가진 이름도 모르던 육군 소장이 총칼로 정권을 잡아 18년이나 나라를 농단하고, 한때 내로라하는 민주투사들이 저렇게 처참하게 망가지고…. 참으로 우리 역사는 날로 새롭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사(史)> 1, 2권을 통해 '소설보다 재미있고, 영화보다 짜릿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한홍구는 이번 3권에서도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이번 책에서 그는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라는 부제에 걸맞게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변절과 변질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보고,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과거청산문제, 2003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대통령 탄핵사태, 권력에 의해 조작된 간첩 사건, 최근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군대와 병역 문제를 정면으로 짚는다.
그의 <대한민국사(史)>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연재물을 묶은 것이다. 그는 2001년, 2002년 꼬박 두 해 격주로 연재하다가 중단했다. 자신의 원고를 담당하던 기자가 편집장이 되어 다시 강권(?)하자, 하는 수 없이 수락, 3주에 한번씩 연재하길 벌써 1년이 되었다고 했다.
"사실 너무 힘들어서 연재를 중단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마감을 못 지키는 악성필자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감 때가 되면 담당기자로부터 원고 달라는 독촉전화가 오는데, 특히 편집디자이너가 원고 언제 줄 거냐고 전화를 걸어오면 부담이 됩니다. 저 때문에 디자이너가 야근을 해야 되잖아요."
한홍구는 쓸거리는 늘 넘쳐난다고 했다. 쓸거리가 없을 때를 대비해 항상 쓸 준비가 되어있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김일성과 민생단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아껴두고 있지만 그다지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은 언제나 쓸거리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386들이여! 사회가 부여한 상징성만큼 역할을 하라!"
'악성필자'의 명성에 걸맞게 언제나 마감에 쫓겨 원고를 쓰다보니 그에게는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386 형님들에게 친구 유시민을 말하다'는 문제(?)의 글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 글이 발표되자 인터넷을 한바탕 뜨겁게 달구었고, 강준만 교수까지 그의 잡지 <인물과 사상>에서 비판글을 실을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이런 비판들에 대한 그의 입장을 들어봤다.
"문제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감에 쫓겨 글을 쓴 탓에 오해가 커진 느낌도 듭니다. 제가 그 글에서 얘기하려고 했던 의도는 친구 유시민을 변호하려 한 것이 아니라 386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급하게 글을 쓰다보니 유시민에 관한 이야기가 과도하게 들어갔고, 그 원고를 다시 수정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잡지사에 넘겨야 했었습니다."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의 주인공답게 유시민이 2002년 여름 "바리케이드 앞에 화염병을 들고 다시 서는 심정"으로 날렸던 또 하나의 격문을 평가한다는 한홍구는 그러나 이라크 파병에 찬성한 유시민의 생각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유시민이 적어도 386들로부터는 "싸가지 없고, 독불장군이고, 독선적이고, 말을 함부로 하고,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하는 식의 비난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대신 그는 "학생운동의 역사로 볼 때 세대로서의 386은 너무 웃자랐다"며 386들에게 "사회가 부여한 상징성만큼 역할을 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그는 "유시민과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 386"에게 오지혜가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에서 윤민석에게 했던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제발 철들지 말고 살라고….
그의 386에 대한 비판은 "도저히 '뉴'를 붙일 수 없는 낡은 모델"인 '뉴 라이트'에 대해서도 가해졌다.
"그들은 왼쪽으로 치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지금은 오른쪽으로 치달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들이 각광받는 것을 보면서 서글퍼지는 것은 그들이 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설치는 바람에 진짜 합리적인 보수세력 출현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뉴 라이트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주체사상식으로 말하면 품성의 문제이고, 우리의 일상의 말로 바꾼다면 '싸가지' 문제일 뿐이다."
"기회 되면 <김일성 평전> 쓰고 싶다!"
내친김에 정형근 의원이 김승규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그를 '김일성 찬양론자'라고 했던 주장에 대한 입장도 들어봤다.
한홍구는 누구인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홍구는 <한국사시민강좌>로 유명한 출판사 ‘일조각’집 넷째이다. 늘 책 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그는 어려서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열 살 무렵부터 생각했던 역사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대 국사학과에 들어갔다.
유시민 의원과 친구 사이인 그는 대학시절 운동을 하기도 했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에 유학했다.
강연회에 나갈 때면 으레 듣게 되는 ‘김일성 가짜 여부’에 대한 질문에 자극받아 김일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성공회대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사이버NGO 자료관장을 맡고 있다.
오지랖 넓기로 유명한 그가 현재 관여하는 일은 베트남 진실위원회 집행위원을 비롯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 집행위원장,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 등이다.
낸 책으로는 '한겨레 21'에 연재하면서 골수팬을 확보한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묶은 <대한민국사(史)> 1, 2, 3권이 있다.
조성일 기자
"솔직히 제 글을 읽지도 않고 하는 비판에 대해 코멘트 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 의원은 제가 '김일성을 민족의 영웅으로 찬양했다'는 식으로 주장했는데,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글의 논지는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1980년대 후반 현대사 강의 자리에 서면 박정희 얘기를 하든 학생운동사를 강의하듯 으레 받게 되는 질문 "김일성이 진짜예요, 가짜예요?" 때문에 아예 김일성 연구자(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상처받은 민족주의 : 민생단 사건과 김일성>)가 되었다는 그는 김일성은 "공산주의자였지만, 또한 민족주의자였다"면서, "20세기형 지도자"로 평가했다. '김일성이 20세기형 지도자'란 평가는 김일성이 21세기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의미이며, 나아가 현재적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 정리하려는 의도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며, 그것은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한홍구는 한반도의 분단 극복을 위해서 "남과 북이 서로 고무하고 찬양하자"고 했다. 박정희와 김일성에 대한 비판은 남과 북 각각의 자기 몫으로 두고, 대신 남은 김일성의 긍정적인 면을, 북은 박정희의 긍정적인 면을 서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또한 한홍구는 "김일성은 민족의 태양일 수는 없지만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을 인정해야 하고, 기회가 된다면 <김일성 평전>을 쓰고 싶다고도 했다.
"역사는 자기 눈으로 보자!"
총기사건이 터지자 그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 일이 또 자신의 일이 되면 안 되는데 하는 심정에서였단다. 총기사건이 나던 그날도 그는 평화박물관에서 미리 예정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젖혀두고 텔레비전 토론자로 나가야할 만큼 몸이 열개라도 부족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했다.
군대문제에 대해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길 원하면서 그는 국회의원이 10명'씩'이나 있는 민주노동당에서 노동문제만큼은 아니더라도 군대문제에 관심을 좀 가져주길 바란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모병제보다 징병제가 낫다고 생각하는 그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은 군대가 하지만 전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민간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평화박물관 건립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7월27일 저녁 7시30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후원의 밤 행사 '춤추는 평화' 소식만은 꼭 써달라고 기자에게 청탁(?)했다. 1994년부터 정신대할머니 돕기 공연을 해오고 있는 홍순관이 공연하는 이날 행사에는 KBS국악관현악단도 나오고, 장사익씨도 나오고, 시인 도종환씨도 특별출연한다며 그는 볼거리도 많으니 많이들 와서 적극적으로 후원해달라고 했다.(자세한 내용은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홈페이지 www.peacemuseum.or.kr 참조).
그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이 또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복지문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보는 것이 그것이다. 이젠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인권과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라며 '인권 없는 인권활동가'라는 형용모순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고 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누가 뭐래도 오지랖 넓은 그의 본업은 역사학자가 아닐까? 그래서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는 그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물으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늘 한결같이 주장하지만 역사는 자기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자는 민족주의, 유물론자는 유물론 등 다양한 입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각자가 자기의 눈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래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조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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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인간의 힘」
강연일시 : 2004년 9월 3일(금) 19:00 ~ 20:30
초대손님 : 소설가 성석제, 비평가 하응백
질의·응답
- 본강연 -
김원일 안녕하십니까. "금요일의 문학이야기" 제2기 강좌를 시작하는 첫 시간입니다. 오늘은 소설가 성석제 선생과 함께「인간의 힘」이라는 장편소설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또 한 분 초대 손님으로 비평가 하응백 선생이 함께 해주었습니다.
작가 성석제 선생은 1960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하여 연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시로 문단에 데뷔했다가 소설로 전향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인간의 힘」이란 작품은 작년에 여러 문학상 본선후보로 심사 대상에 올랐던 작품입니다. 그 때 심사하는 과정에서 저 역시 이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만, 작년에 발표된 우리 나라 소설 가운데 가장 힘있고 우수한 소설이라는 정평을 얻고 있는 작품입니다.
비평을 맡아주실 하응백 선생은 1961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경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현재는「휴먼&북스」라는 출판사 대표로 있으며 소설과 시 분야에서 비평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를 위해서 「인간의 힘」이라는 소설을 두 번째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시대에 우리가 주인공 '채동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와 해학과 풍자소설의 방향, 성석제 선생이 쓰고 있는 문장의 해학성 등을 한번 점검해봐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이 소설은 400년 전 봉건군주시대의 이야기인데 임금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이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를 따져보니까 어떤 숭모정신이라고 해야 할지, 북한 체제가 갑자기 떠올라서 이런 것과 아울러 인간의 신격화를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사상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는데, 조선 500년이 사실 유학을 받아들여서 유학정신, 그 중에서도 특히 주자학 정신에 의해서 500년 동안 이끌어져 왔습니다. 우리와 달리 일본 같은 경우는 유학 중 양명학을 받아들였죠. 실제로 주자학은 실천에는 미흡하고 이론과 예(禮)에 밝은 반면에 양명학은 언행일치 주장을 강조했습니다. 일본은 양명학에 기초하여 명치유신을 통해 강대국으로 설 수 있었고 우리는 사소한 문제를 두고 논쟁만 일삼다 열강의 침략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역사소설의 정통성에 대한 이해의 문제이기도 한데요.「인간의 힘」은 역사소설이면서 새로운 역사소설의 형태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은 상당히 귀하게 여겨지는데 이 점에 대해서도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우선 비평가 하응백 선생께서 「인간의 힘」을 읽고 느낀 점을 간략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교직되어 있는 작품>
하응백 반갑습니다. 저는 성석제 작가와 나이도 비슷하고 학번도 같고 또 지역도 비슷하고 해서 긴 시간 교유하며 지내는 사이입니다. 성석제씨가 소설에서도 워낙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는데 평상시에도 이야기를 잘 만들어냅니다. 처음에 이 소설을 읽을 때 이 탁월한 ‘이야기꾼’에게 속아넘어가지 않으려고 상당히 긴장했습니다. 보르헤스라는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그 속에, 인용되는 책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인용되는 책들을 찾아보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책들이죠. 우리 나라 소설 중에서도 최윤의「회색 눈사람」을 읽다보면 책이름이 하나 나오는데 그 책을 찾으려고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못 찾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부재 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런 기법을 쓰는 작가들이 종종 있기 때문에 어떤 책을 인용했다 그러면 그 책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서문에 나와 있는 「오봉선생 실기」라는 책부터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국립도서관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까 실제 있어서 복사를 했습니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이야기한 것과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교직 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우선 그것부터 짚고 넘어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석제 작가에게 소설적 진실과, 상상이라는 허구와,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병치시키고 교체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그렇게 함으로써 노린 효과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10%의 진실로 출발한 이야기>
성석제 참 어려운 질문인데요. 소설가로서 갈등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나 자신의 정직성에서 어긋나지 않는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 가치에 맞출 수 있을 것인가를 종종 고민하게 됩니다. 대개는 소설을 쓰는 중에 그런 갈등을 경험하는데 쓰고 난 뒤에는 방금 하응백 선생이 '사기'라고 표현한 쪽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소설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 보면 약 90%의 거짓에 10%의 진실이 있지 않은가, 심한 경우에는 그 정도에도 못 미칠 수도 있죠. 제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이 책의 서문에도 밝힌 바 있지만, 소설이라는 것을 쓰기 전인데요. 한번은 제사를 지내러 고향에 갔다가 시골에 계신 분으로부터, 자기 집안의 조상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 것을 우연히 접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책의 내용이 너무나 소략했고 그나마 반은 한문이고 한글로 된 부분 역시 반은 남이 쓴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행적은 전문(傳聞)으로만 있는 거죠. 문집이라는 말을 붙이지 못한 이유는 그 사람이 직접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글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대구 경북 지역의 시골 양반들 주변에는 실기(實記)라는 형태의 문집이 더러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양반이라는 것이 삼대를 벼슬을 못하면 양반이 아니고 삼대 동안 그 집안에서 문집이 안 나오면 그 역시 양반이 아니라 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삼대 안에 문집을 한 번 내거나 벼슬을 지내야 되는 것이었죠. 그런 경우에 형식을 맞추기 위해서 문집을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분의 경우는 벼슬을 지냈다고는 하지만 그것마저 불확실한 상태였습니다. 아마도 유명한 분들의 문집이었다면 저도 소설로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소략하고 문집에 비해서 격이 떨어지는 실기의 형태였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말하자면 그것이 소설로 쓰여지는 10%의 진실이었던 셈이죠. 처음에는 길게 쓸 생각은 없었고 문집의 뼈대가 되는 이야기 하나만 골라서 중편 정도로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100매 정도를 썼는데도 이야기가 시작이 안 돼서 중편으로는 곤란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유쾌한 소설 쓰기의 시작, 문장의 해학성과 주제의 풍자성>
김원일 외국에 나가면 한국 작가들이 많이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번역되어 있는 한국 소설을 읽었을 때 소설이 전부 다 너무 심각하고 어둡다는 것입니다. 소설이란 게 마치 원한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쓰는 글 같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거기에 대한 설명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었죠. 한국이 일제 식민지하와 해방공간을 겪고나서 동서냉전 최초로 전쟁도 치르고, 분단이 되고, 또 군사정권 아래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작가들이 쓰지 않을 수 없었지 않습니까? 그렇게 대답했더니 그쪽에서 묻는 질문이, 좀 밝고 명랑한 소설, 유쾌한 소설을 추천해달라는 거예요. 그게 뭐냐고 물으니까, 서구는 이미 2차대전이 끝난 뒤 오랜 평화시대를 구가해왔고, 굶주림과 전쟁 따위의 어두운 과거를 망각한 세대가 전면에 부각했다. 금요일에 오전 근무 마치고 책 한 권 사들고 집에 들어오면 침대에서 뒹굴며 읽다가 재미있어서 배를 잡고 웃을 수 있는, 다 읽고 나면 유쾌하게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소설을 선호한다고 그래요. 그런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서구는 예전에 이미 산업화 과정을 다 겪었고 안정된 시대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까 어둡고 절망적인 소설을 굳이 읽으며 고문을 받듯 심각해지기 싫어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7, 8년 전인데, 그 때는 아직 성석제라는 소설가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전이었지요. 성석제 선생이 나타난 것에 대해서 저는 김유정과 채만식 이후, 아마도 최초의 풍자 작가 혹은 해학 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보여집니다. 사실 우리 같은 전쟁세대는 워낙 배고프고 암울하게 성장했기에 그런 소설밖에 쓸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배고픔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나오니까 이런 소설도 나오게 되는구나, 이제 우리도 그런 시대로 접어들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죠.
성석제 선생의 또 다른 작품집이 있죠.「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역시 읽어보면 문장 자체도 유머러스하고 주인공의 행위나 말에 대해 계속적으로 웃음이 나와요. 그러나 실제로 황만근이라는 주인공은 참으로 순박하고 어리석은 인물이어서 그 사람 자체가 웃기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사람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이상하게도 감동으로 다가오죠. 저는 「인간의 힘」에 나오는 주인공도 읽었을 때 어딘지 모르게 ‘돈키호테’를 연상했습니다. ‘명선’이라는 등장인물 역시 ‘산초’같이 약간 어리석죠. 그런 명선이가 죽었을 때 이상하게도 슬펐어요. 실제로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는 서구에서 현대문학의 시조로 꼽히는 소설이고, 스페인이 서구문학 변방라는 그렇지, 서구 현대소설의 출발은「돈키호테」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겠어요. 「인간의 힘」역시 채동구라는 한 인간이 나라가 도탄에 빠지자 임금을 알현하기 위해서 네 차례에 걸쳐 출타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행동이 굉장히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이죠. 우리 나라 역사소설이 이광수, 박종화, 윤백남 같은 작가들로 거쳐 내려오며 처음에는 왕조사(王朝史) 중심으로 소설이 쓰여지다가 「장길산」이라든지 「객주』등의 작품에 이르러 민중사(民衆史)로 넘어오지 않았습니까. 왕조사는 이미 알려진 궁중기록의 산물이고, 이름 없는 초야의 민중들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한 시대의 질곡을 어떻게 넘겨왔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70년대로 넘어서며 만들어진 것이죠. 거기에는 일제 때 쓰여진 홍명희의 「임꺽정」의 성공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다가 「인간의 힘」에 와서는 이제 역사 속에 존재하는 한 개인, 그것도 약간은 삐딱하고 괴팍한 개인을 등장시켜 그 시대의 역사를 조명해본다는 측면에서도 「인간의 힘」은 앞으로도 거론이 될 소설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석제 선생이 데뷔할 때부터 강렬하게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작가가 가지고 있는 문장의 해학성과 주제의 풍자성 때문이거든요. 그런 것을 잘 보여주니까 읽는 사람이 마치 ‘사기 당하는’ 기분이 든다는 거지요. 우리 나라에 번역되기를 「사기사 펠릭스 크룰의 고백」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토마스 만이 말년에 쓴 장편소설입니다.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사기사’라는 것은 ‘영혼의 매혹자’라는 말을 잘못 번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기꾼들은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켜 사람을 정신없이 빨려들게 만들지 않습니까? 그 점을 두고 토마스 만은 마술사라는 직업을 그 유형으로 봤지요. 마술사는 한순간에 아주 감쪽같이 사람의 눈을 속이는데 그것을 보는 사람은 전혀 모르잖아요.「인간의 힘」을 읽다 보면 채동구라는 인물이 아주 허술한 대도 빨려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형상화해 놓았거던요. 어디까지가 실체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 모호합니다. 해학적으로 그려진 채동구라는 인물은 재력도 학문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오직 우국충정 하나로 무작정 임금을 뵈려 출발합니다. 마치 돈키호테처럼. 저는 이런 해학성이 성석제라는 작가에 와서야 발견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 하응백 선생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풍자의 대상과 독자가 함께 연민을 느끼도록 만드는 풍자>
하응백 저도 그 점에 대해 생각해봤는데요. 우리가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거대서사에 압도당한 듯한 느낌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를 피해보려는 경향이 생겨났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식상했다는 측면도 있구요. 여러 가지 시대 변화에 맞추어서 거대서사, 민족단위의 문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적인 몸부림도 있었고 또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런 경향이 생긴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럴 때 과연 후배 작가들의 글쓰기 전략은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누구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저희들 세대만 해도 경험들이 다 비슷합니다. 대학 나오고 군대 갔다 오고 혹은 한 두 번 연애하다 실패하고 직장 잡으려다가 한 두 번 또 실패하고, 다 그렇게 사는 거죠. 김원일 선생님 세대만 해도 6·25 때의 곡진한 삶이나 핍진한 삶들이 있지 않습니까? 삶은 아주 어려웠지만 작가로서는 행운의 세대라고 볼 수 있죠. 저희들 세대 이후의 세대는 오히려 삶은 편하지만 작가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세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럴 때 90년대 후반 이후의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모든 작가들의 굉장한 고민일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성석제씨가 나아가는 방향이 우리의 고전적인 문장들,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배웠던 가전체 소설의 형식, 여러 가지 한문의 형식, 이런 것을 우리 서사에 도입해서 서사의 다양성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재미’라는 양식을 소설 속에 의도적으로 끌어들여 온 것 같아요. 원래 풍자라는 양식은 작가가 작품을 읽는 독자와 함께 짜고서 주인공을 놀려먹는 거예요. 그래서 채만식의 소설도 그렇지만 그 대상이 대개 힘있는 자, 정치가, 가진 자 등을 풍자의 대상으로 놓습니다. 그럼으로써 통쾌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풍자죠. 그런데 성석제씨 소설에는 아주 색다른 점이 있다고 봅니다. '채동구'나 '황만근'처럼 풍자의 대상이 힘있는 자가 아니거든요. 가난한 자거나 아주 힘없고 바보 같은 농민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힘 없고 약한 자를 풍자의 대상으로 놓았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그 대상과 독자가 같이 연민을 느낄 수 있다는 거죠. 그것이 성석제 소설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제가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이 소설 속의 주인공 채동구를 보면 이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양반인데 열심히 공부도 안 했죠. 과거를 볼 생각도 안 했고. 물론 농사를 지을 생각도 안 했죠. 어떻게 보면, 바보인 명선을 꼬드겨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서도 겁에 잔뜩 질리기만 한 겁쟁이였죠. 사실은 채동구가 실제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무작정 임금 찾아가서 벼슬을 얻어보고자 하는, 그야말로 파렴치한 인간일지도 모릅니다. 결국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기 쳐서 나중에 71세로 죽을 때까지 자손들에게 비석을 만들게 해서 대대로 사기를 치는 그런 인물로 볼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맹목적인 충성과 숭명대의, 과시적인 공리공론이 아니라 실천과 성의, 죽음을 무릅쓰고 인간된 그 무엇인가를 관철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의 소중함이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고 이야기 하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이런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파렴치한인데 작가는 왜 이렇게 보았는지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성석제 이 사람이 가장 인간다운 점은 성장해간다는 점입니다. 변화해가고. 목석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단계를 거쳐서 성숙돼 가는 점이 인간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런데 약점이 많죠. 어떤 때는 비겁하기도 합니다만. 인간이라는 게 완전하고 아름답고 정정당당한 그런 존재가 아니라 약점 많고 나약한 것, 그런 것들이 다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빼버리고 소설을 쓴다면 소설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원일 그런데 우리 나라 소설을 보면 인물 설정에 있어서 이분법적 성격에 이분법적 논리를 많이 적용하는 편이거든요? 예를 들면 노동자들은 다 가난하다라든지, 사용자는 노동자를 많이 착취한다라든지 하는 식의 이분법적인 논리 말이죠. 어떻게 보면 너무나 주인공들을 판에 박힌 인물로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개선이나 변화조차 없이 그 성격이 소설 끝날 때까지 일관되지요. 저 역시 매일같이 고민하는 문제이지만, 이제는 한국소설이 그러한 통속성을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찍이 도스트예프스키는 선한 인간의 개인 속에도 선과 악의 요소가 서로 상충을 일으키고, 한 인간 속에도 그 성격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변화가 많다고 얘기했어요.「아Q정전」의 주인공은 아주 기회주의적인 노동자입니다. 결국은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서 죽게 되지요. 가난한 자도 악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괴테 소설을 보면 부유하지만 교양 있고 선량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정치라든지 사회문제에 있어서도 자꾸만 흑백논리로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요. 한 개인 속에도 좌(左)적인 성향이 일부 있고 우(右)적인 성향이 일부 있는 겁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거죠. 때로 선과 악은 병행할 수도 있는 겁니다. 채동구는 그런 의미에서 인간을 이분법적 분류의 틀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좋게 보았습니다.
성석제 글을 쓰다보면 여러 가지의 청탁을 받곤 합니다. 그런데 칼럼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으면 거절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소설처럼 우회하고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거든요. 남을 설득할 자신도 없구요. 중요한 것은 설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소설을 통해서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감이라는 방식 때문인데, 공감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김원일 앞으로도 이런 역사소설을 쓸 계획이 있습니까?
성석제 예. 있습니다. 그런데 당장은 아니고 좀 쉬었다가 쓸 생각입니다.
하응백 저도 앞으로 성석제 소설가가 저를 항상 ‘긴장’하도록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원일 끝으로 청중 여러분의 소감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면 질문을 받고 오늘 이 시간 마치도록 하죠.
- 질의, 응답 -
문 : 아까 하응백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요즘 시대가 작가에게는 어떻게 보면 불행한 시대라고 하셨는데요. 혹시 그런 이유 때문에 성석제 선생님께서 고전에 천착하시고, 거기에서 어떤 서사거리를 발견하고 글을 쓰시는 건지 궁금하구요. 제가 생각할 때는 우리 세대도 나름대로 아주 어렵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문학이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면 작가가 고전에 의거해서 서사적인 단서를 가지고 글을 쓰는 행위보다는 동시대적인 것에 의거해서 글을 쓰는 행위가 미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문제에 대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
답 : 뭘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서 착안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한 고민을 하면서 착안하게 됐던 것 중의 하나가 역사소설, 혹은 근대사적인 것이었죠. 당대 현실을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해서 역사 속의 인물을 찾은 게 아니라 제가 생각하기에는 역사 속의 인물도 충분히 현재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문 : 「인간의 힘」이라는 소설을 쓰실 때 전체적인 구성을 어떻게 잡으신 건지 궁금하거든요? 각 장별로 요약을 해서 전체 아웃트 라인을 잡아서 서술하신 건지, 아니면 그때 그때마다 생각나시는대로 썼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것은 제목인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 제목이 소설의 내용과 그다지 어울린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답 : 이 작품을 쓸 때 처음에는 맨 앞과 뒤의 장면을 그려놓고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들어가는 것들은 재료가 좀 허술한 것 같아서 일단 보류해둔 편이구요. 그렇게 놔두고 일단은 이 인물에 마음이 가 있는 상황이어서 분량에 크게 욕심 내지 않고 되는대로 조금씩 썼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서서히 완성이 됐습니다. 그리고 제목은 원래 다른 제목으로 정했었는데 이렇게 바꾼 것이구요. 제가 생각하기에, 조선시대에는 인간을 지칭할 때 인간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근대에 와서 생긴 것 같은데요. 역사 속의 인물을 다루면서 '인간'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주인공에게 그만큼 근대적인 힘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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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사가
그는 역사가였다. 그 중에서도 전쟁이 그의 관심 분야였다. 그는 유사 이래 벌어진 모든 전쟁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킬레스의 트로이 전쟁, 펠레폰네소스 전쟁, 중국 전국시대의 크고 작은 전쟁, 알렉산더의 원정, 카르타고인 한니발의 패배, 적벽대전, 황산벌 싸움, 정묘호란, 인도 무굴제국의 창시자 바부르의 파니파트 전투, 만주 사변, 1·2차 세계대전, 6·25 등의 전쟁은 물론이고 각각의 전투, 전투의 세부, 장군의 이름, 병사의 수효, 신무기, 작전, 첩보전 양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아가 그 전쟁을 기술한 사가 중 비교적 공정하게 평가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평가도 할 수 있었다.
그가 평가하기를 좋아했던 플루타르코스, 사마천과 마찬가지로 그는 역사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공식적인 직업이 없었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재야 사학자였다.
그가 재야 사학자임을 아는 사람은 그가 사는 동네의 아이들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것이 그의 직업이었고 보람이었으며 그가 이승에서 찾아낸 유일한 재미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 측에서 동원한 이천삼백십육 대의 수송기, 일만 삼천 대의 항공기, 육천 척의 함선, 팔천구백십오 명의 사망자와 같은 숫자를 정확하게 외웠고 연합군이 승리를 하게 된 원동력, 퍼붓는 포화 속에서 <나가서 싸우자>라고 외친 사람의 계급, 쌍방의 총사령관, 이를테면 아이젠하워와 롬멜의 전략, 승인과 패인, 그들이 졸업한 학교, 출신지, 주변의 평가, 권력자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는 해박한 지식으로 아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그 일을 하느라 바빴고 늘 기침을 달고 다니는 자신을 돌 볼 겨를이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모인 아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의 끼니를 걱정하거나 지붕이 새는 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눈을 반짝이며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듣다가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그와 그의 집은 궁핍하며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이웃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기억력과 분석력과 끊임없이 솟아나는 새로운 이야기에 놀라게 마련이었다. 그에게 책을 써보라고 권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나가서 일을 하라, 아내를 얻고 아이를 낳고 지붕을 수리하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으리라. 그에게 병을 고치고 새로운 출발을 하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들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그는 이웃의 어른들에게 미움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없을 때는 숲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어쩌다 그 노래를 들은 사람은 모두 그의 목소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한마디씩 하게 마련이었다. 그 노래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는
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그는 패잔병처럼 버림받았고 불구자처럼 살았다. 다른 사람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가 원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영웅과 영웅이 칼을 맞대고 병사와 병사가 숨죽이고 대치하며 예광탄이 어둠을 찢고 은은한 포성이 울리는 폐허는 매혹적이고 아름다웠다. 저공비행하는 전투기의 무자비한 기총소사, 문득 공중에 피어나는 뿌리 없는 꽃과 같은 낙하산. 국경이 무너지고 진주군의 발자국 소리가 탱크의 캐터필러 소리에 섞여 들리는 새벽은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 꿈을 꾸었다. 꿈 이야기를 들은 가족은 다시는 그의 집에 아이를 보내지 않기도 했다. 그게 그늘 낙망시키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들이 찾아왔고 그는 똑같은 이야기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언제든 되풀이할 수 있었다.
그는 전쟁을 일으킨 적도 없었고 전쟁터에서 병사를 지휘한 적도 없었고 심지어는 전쟁에 참가해 보지도 않았다. 세상 여러 곳에서 전쟁이 지나갔지만 그는 소집이 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사라졌다. 그는 죽음의 형식을 빌어 우리 곁을 떠났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그가 죽었다거나 없어졌다고 하지 않고 <떠났다>고 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기억했다. 그가 사라진 것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자랐을 것이다. 내가 자라 결혼했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있듯이 이제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그때 아이였던 어른들은 전쟁이 났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그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를 기억할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 그가 이제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 고통스럽다. 그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위대한 전쟁 사가였다.
요컨대 그는 누구에게나, 그 자신에게도 무해무익했다.
오오 나는, 누구보다 위대한 장군인 그가 어린 영혼들을 지휘하여 세월과 세상을 상대로 한 대전에서, 통쾌하게 싸워 전사했다고 기록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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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웃음소리
우리 나라 사람이 쓴 책에는 웃음 소리를 직접 인용한, 형용한 대목이 적다. 특히 진지하고 정통에 가까운 소설일수록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자주 나오는 것은 미소. 미소짓다, 미소를 흘리다, 미소하다, 소리없이 웃음짓다, 웃음을 머금다, 빙그레 웃음짓다 등으로 아까울 것도 없는 웃음 소리를 아끼고 있다.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점잖지 못해다고 여겨서인가. 그래서 감정 표현에는 점잖은 소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솔직한 만화를 대상으로 웃음 소리를 찾아보았다.
가장 웃음 소리가 많은 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1) 숨을 모아 한꺼번에 내보내는 소리에 가장 가까운 ㅎ 자음에 다섯 모음을 결합한 형태. 빈도수가 가장 높다.
하하, 허허, 헤헤, 후후, 흐흐, 히히.
2) 1)의 경우에 ㅅ을 결합, 강조한 것
핫핫핫, 헛헛헛, 헷헷헷, 후훗, 흣흣, 힛힛힛.
3) 1)의 경우에 웃음에 충분한 숨을 만들기도 전에 튀어나오는 웃음 소리를 형용한 것. 목적이 있는, 억지 웃음에도 쓴다.
아하하, 으하하, 와하하, 어허허, 에헤헤, 우후후, 으흐흐, 이히히.
4) 파열음 ㅋ, ㅍ을 ㅎ 대용으로 쓰고 있는 경우.
카(크)하하, 크카카, 카카카, 크크크, 파하하, 푸(프)하하, 푸후후,
5) 몇몇 작가만이 쓰고 있는 경우.
우후훙, 후아, 헐헐헐, ㅎㅎㅎ, ㅍㅍㅍ.
6) 헛웃음, 냉소
피식, 픽, 푸시시, 피시식.
7) 실제로는 들을 수 없으나 문자로는 쓰는 경우
깔깔깔, 낄낄낄, 끄끄, 깰깰깰, 킬킬
8) 위의 경우를 모두 이용하여 만든 간단한 소극(반드시 따라 읽어야 효과가 있음)
하하…허허…헤헤…후후…흐흐…히히…핫핫핫…헛헛헛…호호홋…후훗…흣흣…힛힛힛…아하하…으하하…와하하…어허허…에헤헤…우후후…으흐흐…이히히…우후훙…헐헐헐…푸하하…푸후후…ㅎㅎㅎ…ㅍㅍㅍ…피식…픽…푸시시…피시
식.
9)응용(반드시 따라 읽어야 효과가 있음)
하헤히호후후히힛헤헤이히히픽아하하하하하하하오호호호호호호흐흐흐흐히힛헤헷으흐으으으이아와으이호훗흐헷훗홋핫헐헐헐핫핫핫피시시.
비명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에는 비명 소리를 직접 인용하거나 형용하는 대목이 적다. 죽음에 임박한 순간의 비명, 단말마의 비명은 더구나 찾기 어렵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한국인이 매우 조용하게 숨을 거두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다음은 만화와 만화에 버금가게 친절하고 사실적인 무협지에서 가려모은 단말마의 비명 모음. 이 책이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온 어떤 책보다 단말마의 비명이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이 되도록.
1) 끄으윽
임종시 숨이 넘어가는 소리. 이승에 미련이 많은 사람의 비명.
2) 끅
임종시 숨이 넘어가는 소리. 이승에 미련이 적은 사람의 비명.
3) 끽
'끽 소리 없이 죽다'에서처럼 '끽'은 소리없는 죽음을 묘사할 때 쓰였으나 요즘은 음가가 생긴 듯.
4) 꽥
짐승, 그 가운데서도 집짐승인 돼지의 비명 소리에 자주 쓰이나 그에 맞먹을 정도의 짐승 같은 사람이 죽을 때 내는 비명으로 쓰임.
5) 으악
빈도수 높음. 단말마 비명의 대표격.
6) 아악
빈도수 높음. 5)의 여성형으로, 또는 고통을 호소할 때도 쓰임.
7) 우욱
고통을 참으며 죽어가는 비명.
8) 으윽
고통을 참으려고 할 때 나오는 비명. 이런 비명 소리를 자주 내다가는 이빨이 성하지 못할 것이고 대체로 '아악'의 단계를 거쳐 '으악'으로 생을 끝마치는 경우가 많다.
9) 짹
참새가 죽을 때도 '짹' 소리를 내는 법.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의 비명.
10) 찍, 깩
쥐처럼 작은 동물이 탱크처럼 육중하고 강한 물체에 깔려죽을 때 나올 법한 비명. 그에 가까운 상태에 있는 사람의 비명.
11) 흐흑(또는 흑)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많이 내지르는 비명.
12) 훅
11)의 경우와 비슷하나 폐활량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
13) 힉
놀라 죽을 때의 비명.
14)비명만이 등장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비극(따라 읽을 필요 없음)
끄으…윽…끅…끽…꽥…으악…아악…우욱…으윽…짹…찍…깩…흐흑…훅…힉.
15) 인류 최대의 비극 제 2탄(제발 소리내어 따라읽지 말 것)
힉…훅…흐흑…찍…짹…으윽…우욱…아악…으악…꽥…끽…끅…끄으윽…윽…끅…끽…꽥…으악…아악…우욱…으윽…짹…찍…흐흑…훅…힉…끄으…윽…끅…끽…꽥…으악…아악…우욱…으윽…짹…찍…흐흑…훅…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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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눈물
그는 늘 눈물을 흘린다. 밤이나 낮이나 술을 마시거나 않거나 누가 죽거나 말거나 슬프거나 말거나. 늘 눈물을 흘리는 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진데 눈물이 없이는 눈이 말라 눈을 뜰 수가 없는 법이다. 곡식이 익든 말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치거나 한결 같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려는 이 사람은 눈물을 눈 밖으로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넘치게 흘려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이만큼 맵시 있고 예의 바르게 우는 사람도 세상에 따로 없을 것이다. 그의 눈물에는 오랜 세월 동안의 경험으로 얻은 품위가 있고 평정이 있고 법도가 있다. 심지어 울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가 언제부터 울기 시작했는지, 왜 우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 그는 특별한 호의로 내게 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는 요즘 사람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늘 양복 가슴께에 달린 주머니에 분홍 손수건을 꽂고 다니는데 먼저 그 손수건을 기품있게 꺼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정신을 집중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가끔 수건으로 눈가를 훔쳤고 코도 풀었다. 잠깐 눈물을 멈추고 내게 울음 소리도 원하느냐고 했는데 나는 깜짝 놀라서 아니라고 손을 저었다. 그는 한동안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더니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낮은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삼십 분 정도를 그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 울음은 내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가히 경지에 달한 울음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분홍 손수건을 접어 양복 웃도리 주머니에 소중히 간수했다. 근육의 긴장과 감정의 격동을 자신과 남에게 동시에 경험하
게 하는 울음, 그 울음 뒤에 오는 나른한 편안함, 고요. 그는 후식이라도 되는 양 그것까지 맛보게 해주었다.
그 눈물 때문에 그는 늘 물에 빠진 종이처럼 처량해 보인다. 그래서 일자리도 변변치 못하고 하는 일도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나는 그에게 노래를 부를 때 늘 눈물을 흘리는 가수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 가수의 노래는 대체로 비장한 정조로 느리고 무겁게 흘러가는데 그 가수는 그와는 달리 손수건을 쓰지 않는다. 그저 눈물이 뺨 위를 흘러가도록, 텔레비전 카메라가 그 눈물을 더 잘 포착할 수 있도록, 관중이 잘 볼 수 있도록 얼굴을 돌려가면서 운다. 그의 노래가 끝나면 청중은 다른 가수에게 그러하듯 박수를 치는데 그의 눈물을 잘 봤다는 뜻인지, 노래를 잘 들었다는 뜻인지 불확실하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 또 눈물을 흘렸다.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게 기뻐서? 아니면 슬퍼서? 수준이 맞아서, 아니어서? 눈물까지 상표로 만든 게 더러워서, 감탄스러워서?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도리질하면서 그저 섧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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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폭력에 대하여
나는 행운아다.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맞지 않았다. 나는 행운아다. 이 폭력이 난무하는 나라에서 한 대도 맞지 않고 살아왔다니. 아니, 행운아가 아니다. 한 번은 맞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행운아다. 한 번밖에 맞지 않았다. 교내 폭력, 학교 주면 폭력, 폭력 서클, 폭력배, 언어 폭력, 폭력 단체, 비폭력무저항 등등등 갖가지 폭력이 판을 치는 나라에서 단 한 번밖에 맞지 않은 나는 행운아다.
중학교 때였다. 나는 시골에서 서울로, 서울의 변두리, 사람이 지독히 많이 살고 그 사람 수에 곱하기 2를 하면 대략 수가 나오는 주먹의 나라로 전학을 왔다. 전학 오기 전의 나라, 그러니까 요즘 말로 초등학교로 고친 국민학교 시절 내가 살던 곳은 양과 사자가 함께 노는 나라였다. 그 나라에서는 폭력을 쓰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다. 먹고 살기 위해 폭력을 쓴다는 말은 아예 없었다. 먹고 살기 힘들면 굶어죽으면 되지. 그 나라에서 이사를 온 건 내 뜻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뜻도 아니었을 것이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하기 위해 일부러
주먹나라로 전학을 보냈다고 믿을 수는 없다.
어쨌든 나는 주먹 나라의 중학교로 전학와서 며칠 안되어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내게 심부름을 시킨 아이는 나보다 서너 살은 많고 학년은 같고 주먹과 칼로 일대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재수생, 전문학교, 전수학교, 학원에까지 골고루 명성을 떨치고 있던 깡패였다. 그런 훌륭한 깡패가 왜 시골에서 막 전학 온 핏기없고 어리숙한 나한테 '매점 가서 빵과 사이다를 사오너라'는 심부름을 시켰는지는 모르겠다. 그건 하느님이 아시겠지. 다른 아이라면 '아아,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구나. 영광스럽게도 나한테 심부름을 시키시다니,
이 목숨 바쳐 빵을 사와야지.' 하면서 두 주먹을 꼭 쥐고 뛰어가련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왜냐구? 나는 물정을 몰랐다. 나는 양과 사자의 나라에서 왔다. 나는 바보였다. 그래서 그 심부름을 거부했다.
"싫다."
그 아이의 표정을 아직 잊지 못한다. 무안한 듯한, 어이가 없는 듯한, 귀찮은 듯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그 표정은 군대 가서 걸핏하면 몽둥이부터 들고 보는 내무반장에게도 나타났고 데모대가 시가지를 휩쓸던 어느 때 강경진압 담화를 발표하는 대통령에게서도 보았다. '네가 군인이야?' '네가 학생이야?'
'너는 뭐하는 놈이야?' '네가 인간이야?'라는 말을 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그 표정. 폭력 직전의 표정.
물론 나는 맞았다. 변소 뒤에 끌려가서 나보다 작고 나보다 힘없고 나보다 먼저 전학온 아이들에게 조롱을 받아가면서 두 시간은 좋게 맞았다. 맞아죽으면서까지 절대로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잖은가. 무릎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기 원한다는 어른들도 있잖은가. 나는 바로 그렇게 하염없이 버티어서 시원하게 맞았다. 그 다음부터 나는 절대로 맞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실천에 옮겼다. 나는 행운아다. 결심을 실천에 옮기고도 무사할 수 있었다. 이 폭력의 왕국에서.
어떻게? 가령, 고등학교 일학년 시절 교실 앞뒷문을 잠궈놓고 역도부 3학년 선배들이 단체로 '빳다'를 칠 때는 어떻게 하느냐. 가령, 사납게 생긴 국어선생이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한 시간 안에 외우라는 숙제를 주고 한 시간 후에 와서는 못 외운 사람을 몽둥이질할 때는? 학교 뒷담길을 지나가다가 이웃학교 야간고등학교 깡패들이 버스표를 달라고, 라면 사먹을 돈을 달라고 포크를 들이댈 때는 어떻게 하느냐? 토끼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라. 창문이 안 열리면 깨고 뛰어라. 가방이 무거우면 버리고 뛰어라. 다리가 부러지면
어떠냐, 창문이 깨지면 어떠냐. 치료비가, 창문값이, 가방값이 들면 또 어떠냐. 폭력에 당하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 훨씬 싸다. 폭력은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은 쉽게 잊을 수 있지만 그에 당하는 사람은 평생 두고두고 그 순간의 끔찍함에 몸서리칠 것이다. 무엇보다도 폭력은 폭력을 낳기 때문에 나쁘다. 토끼면 된다. 서로에게 이익이다. 중학교에 내가 처음 전학을 왔을 때 나는 1백미터를 20초에 뛰는 느림보였다. 처음으로 맞고 나서 1백미터를 뛰어보니 약 2초가 향상됐다. 졸업할 무렵 다시 2초가 단축됐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1백미터를 13초에 뛰는 준족을 자랑했고 1년이 지나기도 전에 11초대에 진입했다. 그때 국가대표급 축구선수로 각광받던 축구선수가 유일하게 나보다 빠른 발을 가졌다. 졸업할 무렵 나는 그 선수를 추월할 수 있었다. 자신과 비슷하게 발이 빠른 보통학생이 있다는 걸 안 그 녀석이 어느날 주먹을 쳐들고 나를 따라왔기 때문에 나는 순식간에 10초대에 진입했다.
마침내 나는 국가대표 달리기 선수가 되었고 태극마크를 달고 각국의 내로라하는 토끼들과 각축전을 벌여 국위를 선양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이 혹시 교내든 교외든 학원 근처든 집안이든 밖이든 폭력에 당하게 될 위기에 처하면 나를 기억해주기 바란다. 관중의 뜨거운 환호와 탄성 속에서 토끼고 또 토끼는 나를. 여러분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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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죽음에 이르는 병
나는 스스로의 동족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가엾은 닭을 알고 있다. 먹고 싶어서 먹은 것이 아니다. 계란을 먹고 나면 껍질을 부수어 닭에게 먹이듯 사람들이 닭에게 닭을 먹였다. 털이 뽑히고 내장이 털렸으며 목을 잘린 채 두 다리를 들고 팔려간 닭이 남기고 간 것을 사료로 만들어 사람이 먹인 것이다. 그것을 먹은 닭의 운명 역시 대부분은 먼저 간 동료와 같다. 닭보다는 오래 사는 양, 소는 어떤가. 양과 소에게 동족이자 동료가 남기고 간 내장과 뼈를 사료로 만들어 먹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 먹이사슬이 반복되자 어느 때에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는 이상한 병에 걸려 미친 증세를 나타내는 소가 생겼다. 사람들은 그 소를 먹고 비슷한 병에 걸려 미칠까 겁을 냈다. 그래서 수백만 마리의 양과 소를 무차별로 도살했다. 그 희생양들은 더 이상 다른 양에게 먹이지 않았다. 그 이상한 병의 이름은 광우병(BSE), 사람들이 걸릴까 겁을 낸 병의 이름은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이다. 나는 스스로를 먹은 뱀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 뱀은 제 꼬리를 먹기 시작해서 결국 제 입을 먹고 말았다. 알다시피 뱀의 이빨은 안으로 굽어 있어서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다 먹을 때까지 멈출 수가 없다. 사람의 이는 어떻게 생겼던가. 사람들이 말하는 발전은 어떤가. 부귀영화는 또 무엇인가. 스스로의 목구멍 안에 들어가기 전에 생각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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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식(大食)
1
내가 직접 목격한 대식(大食)의 기록은 함께 자취를 하는 고등학생들이 작성한 것이었다. 내가 방문하던 때 그들은 마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부지런히 라면 봉지를 뜯어서 수프와 면을 분리해놓고 있었고 한 사람은 파를 다듬고 달걀을 깨뜨려 반죽을 만들었다. 그들이 쓰는 솥은 칠인용 전기 밥솥이었다. 사방 벽에는 라면상자가 천장까지 쌓아올려져 있었는데 반은 비어 있었고 반은 들어 있었다. 라면 상자 때문에 책상이나 장을 놓을만한 공간도 없었고 교과서며 일상도구, 옷은 라면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라면 상자가 그들의 식탁이었고 조리대였고 설거지를 한 다음 남은 쓰레기를 버리는 쓰레기통이었다. 국물까지 하나 남김없이 마셔버리기 때문에 설거지라는 게 솥에 남은 기름기를 제거하는 것 정도로 간단했다. 그 기름기는 두루말이 화장지로 닦아서 라면 상자 안에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나마 기름기를 닦아낼 짬이 별로 없을 정도로 식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졌다.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자 그들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커다란 함지가 있었으면 좋겠어. 솥이 하나밖에 없어서 한 사람이 솥을 끌어안고 먹고 있으면 그동안 다른 사람이 기다려야 하거든. 순서 때문에 가끔 싸우기도 해. 그게 불편하고 싫어."
"그럼 한 사람이 한꺼번에 라면 아홉 개를 먹는단 말이니?"
"응. 엄마가 더 큰 솥은 안된다고 하셨어. 다른 솥을 하나 더 샀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라면값 때문에 등록금을 못 낼지도 모른다고 한사코 말리셨어."
2
내가 직접 겪어보지는 못하고 이야기로만 들은 대식가 역시 고등학생이다. 앞서 말한 고등학생들과는 달리 이 고등학생에게는 많이 먹을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씨름 명문으로 이름난 고등학교의 촉망받는 씨름선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몸무게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니 먹는 것도 두 배 이상이어야 마땅하다.
씨름선수의 아버지는 지방의 말단 공무원으로 삶의 희망이라고는 아들이 천하장사가 되어 제 덩치만한 금송아지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박봉으로는 도저히 아들의 식대를 댈 수가 없어 그의 희망은 희망으로 그칠 가능성이 많았다. 그 때문에 그는 남보다 먼저 머리가 세었고 늘 우울한 표정인데다 한숨을 쉬는 게 버릇이 되었다. 차츰 그의 사정을 알게 된 동료 직원들이 그를 돕자, 씨름 선수를 키워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그의 동료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씨름 선수에게 저녁을 사주기로 했다.
첫 번째 순서가 된 사람이 내게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다.
그가 씨름 선수 부자를 만난 곳은 지방 소도시에서 제일 유명한 불고기집이었다. 아들 때문에 비쩍 마른 아버지는 자리에 앉자마자 조그만 소리로 가까운 돼지갈비집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는 고민 많은 동료를 돕자고 나온 것, 이미 단단히 각오를 했다고 큰소리를 쳤고 십 인분의 불고기를 주문했다. 아버지는 젓가락을 들었다 말았다 하며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그는 씨름선수가 보여주는 엄청난 먹성에 질려 일 인분을 먹었나 말았나 했다. 그러니까 나머지 구 인분은 씨름 선수 혼자서 다 먹었다는 것이다. 눈
돌리는 법도 없고 입 한 번 떼지 않고 고개를 드는 법도 없이. 씨름선수의 아버지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불안해 했다. 그는 그 아버지를 위로하면서 다시 십 인분을 더 주문했다.
"어때? 충분해?"
다시 십 인분을 다 먹고 난 씨름선수에게 그가 물었다. 씨름 선수는 먹고 나면 머리를 숙이는 버릇이 있는지 방바닥을 보며 손끝으로 바닥에 떨어진 물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덥지도 않은데 땀을 흘렸다. 하지만 말이 없는 건 아들과 마찬가지였다. 아직 모자란 모양이라고 판단한 그는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밖에 나와서 돼지갈비 간판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처음부터 돼지갈비집으로 갔으면 이런 일이 없을 걸. 미안해서 어쩌지...."
"아니, 이제 겨우 시작인데 뭘 그러십니까. 오늘 저녁은 제가 책임진다니까요. 하긴 돼지고기라고 해서 영양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연한 건 참 맛있습디다."
부자는 그가 이끄는 대로 돼지갈비집에 발을 들여놓았다. 씨름선수는 여전히 묵묵부답 말이 없었고 아버지는 조금 시름을 덜은 듯했다. 그는 이번엔 먹고 싶은 만큼 시키라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지갑 사정이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씨름선수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뭐랍니까."
"배가 불러서 많이 못 먹겠다는군. 나보고 주문하래."
"하시죠, 뭐."
"그럴까. 이거 미안해서...."
아버지는 종업원에게 십오 인분의 돼지갈비를 한꺼번에 가져다 달라고 주문했다. 왔다갔다 하게 하는 것도 미안하다면서. 이번에는 그도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그저 김칫국물을 조금 마셨다. 씨름 선수는 엄청나게 빠른 솜씨로 고기가 구워지기 무섭게 서너 장의 상추를 솥뚜껑만한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열 점 이상의 고기를 들어올린 다음 한 입에 그 모두를 쓸어넣었다. 입 속에 든 내용물을 씹고 삼키면서 한 손은 이미 새로운 상추를 펴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식사가 끝나자 씨름 선수는 비로소 포만감을 느낀 듯 했다. 그도 간신히 주머니 사정과 체면이 모순을 일으키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했다. 그때 종업원이 다가왔다. 냉면, 밥 가운데 무엇을 먹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냉면을 주문했다. 그때 씨름선수가 아버지를 향해 또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뭐랍니까."
아버지는 간신히 입을 떼어 아들의 말을 옮겼다.
"밥을 먹으면 안되냐구...."
"아, 먹어야지, 먹어. 많이 먹어. 먹는 게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거야. 그래,
뭐 먹을래?"
씨름선수가 수줍게 고개를 들었다. 그에게 물었다.
"비빔밥 먹어도 돼요?"
"그럼. 여보세요, 여기 비빔밥을 특별하게 많이 갖다주세요."
아버지는 아예 천장을 쳐다보며 한숨을 후우후우 불어내고 있었다. 씨름 선수는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아버지가 전혀 도움을 주지 않자 할 수 없이 제 입으로 원하는 것을 말했다.
"저어, 그런데요, 두 그릇요."
그가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 비빔밥 두 그릇이 날라져 왔다. 씨름 선수는 씨름판에서 상대를 메다꽂듯이 비빔밥 한 그릇을 바짝 들어 다른 그릇에 엎었다. 그 다음 두 그릇 분의 밥을 한꺼번에 비벼 삽시간에 해치웠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냉면은 먹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씨름 선수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 먹고 나서 씨름선수는 콧등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빠, 내일도 저녁 약속 있어?"
3
이번에는 환상 속의 대식가 이야기다. 한 사람이 아니고 가족이다. 앞서의 부자처럼 여기에 등장하는 대식가 역시 부자인데 앞서의 부자와는 달리 두 사람 다 대식가다. 그의 부인을 통해 그들이 어느 정도 먹는지 알아보자.
제 친정 식구들은 전부 빼빼 말랐거든요. 친정 부모님은 원래 조금씩 드셔요. 형제들도 부모님을 닮아서 밥상머리에서 깨작거리는 게 버릇이구요. 결혼하기 전 그이를 만났을 때 시원시원하게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게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어요. 신혼여행을 갔을 때, 좀 많이 먹는다 싶었어요. 갔다와서 많이 먹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이미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우리집 엥겔지수는 99예요. 그런다고 잘 먹는 것도 아니예요. 반찬이라고 해야 김치가 오르는 정도인데 그것도 돈이 많이 들어서 보통 때는 밥도 반찬도 다 밥이예요. ....
친정에서 농사를 짓는데 신혼 때는 쌀을 얻어다 먹었어요. 친정 식구가 여덟 명이다가 제가 결혼해서 일곱으로 줄었거든요. 친정 식구들 한 달 먹는 쌀을 신혼 부부 두 사람이 열흘이면 다 먹어요. 얻어오는 것도 나중에 눈치가 보여서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 그때부턴 그이 월급 받는 게 거의 전부 쌀 사는 데 들어갔죠.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다니고 옷은 꿰매고 꿰매서 바늘 들어갈 자리도 없이 된 옷이 많아요. 결혼 이후 처음으로 택시를 타본 우리 애 낳으러 병원 갈 때였어요. 그런데 그 애가 자라니까 또 무섭게 먹기 시작하더라고요. 밥
많이 먹는 것도 유전인가 봐요. 젖 떼고 세 살 때 먹던 밥그릇이 어른 밥그릇만했어요. 일곱 살이 되니까 아빠 반을 먹더라고요. 할 수 없이 제가 취직을 했어요. 애는 누가 보느냐구요? 걔는 밥만 있으면 돼요. 나갈 때 밥을 한 함지 해놓고 가면 혼자서도 잘 놀아요. 파출부를 하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식당에 취직을 했어요. 남는 밥이나 반찬을 얻어가면 혹시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그것도 잠깐이었어요. 요새는 주인이 자꾸 눈치를 줘요. 남는 밥은 개나 돼지밖에 더 먹겠어요. 우리가 개나 돼지처럼 보일까봐 밥을 많이 가져오지도
못해요. 지금 우리가 사는 건 인간 이하예요. 밥이 뭔데 사람을 이렇게 망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 아빠가 덩치가 크냐구요? 아니오, 그냥 보통 사람보다 조금 큰 정도예요. 애는 좀 커요. 저는 보시다시피 말랐죠. 저요? 저도 갓 결혼했을 때보다는 많이 먹어요. 네. 한 끼에 다섯 공기는 먹어요. 왜 그렇게 되었냐고요?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에라, 이 다음은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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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의 △ 이야기
지금부터 30여년 전, 어느 초등학교에 학생들로부터 처참하게도 '미친개'라고 불리는 선생님이 있었다.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늘 자신의 큰 덩치와 울퉁불퉁한 근육에 걸맞는 크고 거칠거칠한 몽둥이를 가지고 다녔고 언제 어느 때나 그 몽둥이를 휘둘러 댔으며 그와 동시에 자신이 학생의 입에 담지 못하도록 하는 욕설을 퍼부어대는 것으로 명성을 날렸다. 한 해 동안 그에게 맞아 머리가 터진 학생의 수는 열 명을 넘었고 고막이 터진 학생은 그 두 배, 도망치다 담에서 떨어져 뼈에 금이 간 학생은 반 쯤 되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그런 일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고 학생들이 그를 무서워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학생의 이름은 ▽이다. ▽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눈에 잘 띄지 않았으며 광견병에 걸린 적이 없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 1박2일 예정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됐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미친개'는 '군기'를 잡는다고 버스마다 돌면서 눈에 띄는 대로 후려치고 쥐어막고 욕설을 퍼부었다. ▽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친개'의 눈에 띄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았다고 즐거웠다는 것은 아니다. '좌석 위 수류탄!' 하고 미친개가 외치면 좌석 밑으로 기어들어가야 했고 '만원버스!' 하고 외치면 차 맨 뒤쪽으로 몸이 터져나가도록 스스로를 집어던져야 했다. 나중에 ▽은 군대에서 고스란히 같은 훈련을 받게 되는데 군대에서는 군기를 잡을 이유도 있고 좌석 위에 수류탄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제일 처음 그 훈련을 받았을 때 ▽은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그때 ▽은 처음으로 '두고 보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버스는 부산 해운대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울산 공업단지를 거쳐 경주에 도착했다. 거기서 수학여행단은 하루를 묵게 되어 있었다. 숙소에서 선생님들은 한 방에 두 명씩, 몸이 작은 학생들은 15명에서 20명이 한 방에 배치되었다. 방의 크기는 같았다고 한다. 특별히 수학여행까지 몽둥이를 가지고 온 '미친개'에게는 방 하나가 배정되었고, 아니 어떤 학생이나 선생도 '미친개'와 한 방을 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배정했고, 그 때문에 ▽은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래서 ▽은 다시 '두고 보자'고 생각했다 한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손가락 굵기만한 멸치와 짜고 매운 김치를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고(그것도 미친개의 호령에 따라 조용히, 감사하며) 선생님들은 반주를 곁들인 성찬을 마쳤다고 한다
(만취한 선생님과 덜 취했지만 젓가락 장단으로 하던 노래를 계속 부르자고 소리치는 선생님이 있었다). 학생들은 저녁을 먹자마자 잠을 자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방이 너무 좁아 전원이 몸을 이층으로 포개지 않는 한 누워서 자는 것은 불가능했다. ▽은 다시 '두고 보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랫배에 힘을 주다보니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은 콩나물시루 같은 방에서 나와 화장실로 갔다. 당연히 화장실은 재래식이었고 지저분했고 어두웠다. ▽은 거기서 성냥개비 하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은 그 성냥개비 끝에 △ 모양으로 쌓인 화장실의 특산물의 일부를 묻혔다. 그리곤 밖으로 나와서 방으로 향하다 문을 연 채 만취해 잠든 '미친개'를 보았다. ▽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충동에 따라, 나중에도 이해할 수 없을만큼 빠른 동작으로 성냥개비 끝을 미친개의 코에 갖다댔다. 미친개는 성냥개비 끝이 코속에 닿자 근지러운 듯 손으로 쓱 훔쳐 버리곤 돌아누워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학생들은 일렬로 서서 세수를 하고 일렬로 서서 수건 하나에 15명에서 20명씩 얼굴을 닦은 뒤, 일렬로 줄을 지어 전날과 마찬가지의 식사가 마련된 큰 방으로 향했다. 이미 밥상 머리엔 선생님들이 다 앉아 있었고 미친개만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거품을 물고 구령을 했다. 학생들은 줄을 맞춰 앉았고 구령에 따라 일제히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식사 시작!'이라고 외쳐야 할 '미친개'는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바로 앞에 앉은 아이에게 물었다.
"너 방귀 꿨지?"
그 아이는 사색이 되며 고개를 저었다. 미친개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그 옆에 앉은 아이에게 물었다.
"너냐?"
그 아이 역시 얼굴이 푸르게 변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미친개'는 아이들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흔들고는 '식사 시작' 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숟가락을 들려다가 그는 옆자리에 앉아 열심히 숟가락을 놀리는 동료에게 물었다.
"누가 방귀 꿨소?"
그의 동료들은 일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밥을 먹었다. 그때부터 집으로 향하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너 방귀 꿨지?"
"너냐?"
"누가 방귀 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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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과의 연애
시간을 끔찍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실한 공무원이었고 매일 똑 같은 시간에 집에서 나와 똑같은 시간 만큼 기차역으로 가서 똑같은 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똑같은 시간이 경과한 후에 종착역에 도착하면 똑같은 시간을 걸어 자기 책상에 앉아 똑같은 시간동안 일했다.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고 똑같은 시간이면 기차역 앞에 도착해서 똑같은 가게에서 똑같은 분량의 술과
안주를 사서 똑같은 봉지에 담아들고 똑같은 걸음걸이로 걸어가서 똑같은 기차를 타고 똑같은 시간 동안 밖을 내다보며 하루를 정리한 다음 똑같은 속도로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고 똑같이 기분이 좋아져서 똑같은 통로를 걸어나와 똑같은 문을 통해 기차에서 내린다. 내일도 마찬가지일 인사를 기차역무원과 나누고 마찬가지로 꽃이 핀 길을 따라 마찬가지로 노래,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까지를 반복해서 작은 소리로 부르며 집으로 향한다. 그의 아내는 시집 와서 처음부터 그래왔듯이 그를 맞으러 나오고 처음부터 그래왔듯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나직한 목소리로 주고받으며 집안으로 들어가 저녁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는 그때부터 잠자기 전까지 혼자가 되어 시간에 대해 명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시간은 돈이다'라는 금언을 생각해 냈는데 벤자민 프랭클린이란 미국 사람이 그 말을 먼저 했다는 걸 알고는 다소간 실망했다. 하지만 곧 '시간은 가장 위대한 의사이다'라는 말을 생각해내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벤자민 디즈렐리가 없었다면 그는 한동안 행복했으리라. 시간은 두 장소 사이의 가장 먼 거리다라는 말은 그가 집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동안 심심풀이로 만들어낸 말인데 테네시 윌리엄스라는 미국의 극작가가 한 말도 그와 비슷하다. 그걸 알고난 다음 그는 홧김에 시간은 한순간도 쉬임이 없는 움직임이다(톨스토이)라는 말도 지어냈고 남이 먼저 했거나 말았거나 간에 시간은 잘 이용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다(쇼펜하우어)라는 말을 아들에게 들려주었고 어느날 생일을 맞은 아내에게 '시간은 야박스러운 술집 주인과 같다. 나가는 손님에게는 가볍게 작별인사를 하고 들어오는 손님에게는 호들갑스럽게 달려가서 악수를 한다. 반길 때는 웃는 모습이면서 헤어질 때는 언제나 한숨을 쉰다'(셰익스피어)는 말이 적힌 카드를 선물했다. 그 카드에는 '시간의 흐름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실은 화살같이 날아가고 과거는 여전히 정지하고 있다. - 실러'라는 경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가 시간에 대해 명상하는 방안의 벽에는 '시간은 지나가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매일 같이 찾아오긴 하지만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다'는 사마천의 말이 액자에 걸려 있다. 그는 이처럼 시간에 대해 시간을 넘어 석학과 문호와 역사가 및 자신과 잦은 대화를 나누어 왔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문득 자신이 늙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의 주변 사물 역시 어제에 비해, 처음에 비해, 그 생각을 하기 전에 비해 낡았다. 그의 아이들은 다 자랐고 집을 나가 각자의 일을 찾았으며 가정을 꾸몄다. 그가 변함없이 사랑하고 의지하는 아내의 얼굴에도 주름이 생기고 머리칼은 희어졌다. 말투는 느려지고 이따금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이 몸 구석구석을 찾아오며 옛일을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부터 그는 시간에 대해 일생을 바쳐 연구를 할 결심을 하게 됐다. 그의 지식의 일부를 빌어 시간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이 상상해낸 가장 긴 시간 단위 가운데 하나가 겁(劫)인데 1겁은 범천(梵天)의 하루에 해당하며 년수로 치면 4억3천2백만 년이다. 혹은 인간의 연월일로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이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하늘과 땅이 개벽한 이후 그 다음 개벽할 동안이란 뜻이다. 혹은 둘레 사십리 되는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하늘에 사는 나이 많은 이로 하여금 3년에 한 알씩 가지고 가도록 하는데 죄다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이 1겁이라고도 한다. 혹은 둘레 사십리 되는 돌을 하늘 사람이 무게 3수(銖)의 옷으로 3년에 한 번씩 스쳐 그 돌이 닳
아없어질 때까지 하는 것을 1소겁이라 하고 둘레 팔십 리 되는 돌을 그렇게 하면 1중겁, 120리 되는 돌을 그렇게 하면 1대겁이라고 한다. 혹은 8만4천 세의 때로부터 1백 년에 한 살씩 줄어 10세에 이르고 다시 1백 년에 한 살이 늘어 8만4천세에 이르는 것을 1소겁이라고 하고 20소겁을 1중겁, 4중겁을 1대겁이라고 한다. 어디 기왕 살 것 이만큼 살아나 보자. 20겁에 해당하는 성주괴공의 겁, 대겁이라고 해도 실은 가장 작은 시간 단위인 찰나(刹那, 刹那=叉拏=Ksama = 一念 = 1/75초)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120 찰나가 달찰나를 이루고 60달찰나( 刹那)가 하나의 납박(臘縛)이 되며 납박이 모호율다(牟呼栗多)인데 이것은 곧 수유(須臾)로서 30수유가 1주야(24시간)이다. 그러므로 바닥에 떨어진 찰나라도 눈 씻고 찾아서 닥닥 걷어올려 내 것으로 쓰자.
"성 형, 내가 한 가지 중요한 발견을 했소. 높은 데 사는 사람이 낮은 데 사는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소."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계의 경과시간을
t라고 하고 이 사람에 대해 속도 V로 움직이고 있는 산꼭대기의 관측자가 보면 시간 경과 로 표현할 수 있는데(c는 초당 30만km의 광속도) 지구의 자전에 의해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산꼭대기에 사는 사람에 비해 더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꼴이 된다. 따라서 수식에 의하여 속도가 빠를수록 속도가 느린 관찰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모두 산에 가서 살자. 인생을 백년이라고 칠 때 산에 사는 것이 바다에 사는 것보다 몇 분은 더 시간을 더 쓸 수 있을 테니까. 혹시 아들이 직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한다면 더 높은 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비행기 운전을 하라고 하자. 사실 직업 중 가장 장수를 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은 우주비행사이다.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지상에서 겨우 지구의 자전속도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들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진행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주선에 탄 친구들은, 아직 광속에는 어림없지만, 딴에는 상당한 속도를 자랑한다. 7.9 킬로미터(시속 28,000킬로미터)의 속도로 가면 지구 주위를 따라돌 수 있게 되고 11.2 킬로미터가 되면 지구를 벗어나며 16.7 킬로미터를 넘으면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다.
"더 말씀해 보셔요."
너무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잠깐 내 눈치를 보던 그는 내 말에 기운을 얻어 다시 설명한다.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갈 수 있는 우주선을 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속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의 시간은 지구에 남은 사람에 비해 느리게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카시오페이아 자리의 초신성에 다녀오는데 일 년이 걸렸다고 하면 지구상에서 문명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애써서 다녀왔는데 인간이 멸망하고 바퀴벌레들만이 땅을 덮고 있다면 그는 얼마나 허무해 할 것인가. 미칠지도 모른다. 고향의 미루나무와 미리 작별 인사라도 해둘 것을!
"그렇군요. 너무 빠른 우주선은 몸에 해롭겠네요."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그게 궁금하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사람이며 일이며 세상을 싫어하는 건 물론이고 싫어하는 시간마저 아까워한다. 나아가 쓸데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도 싫어한다. 그가 혼자 틀어박혀 시간을 연구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는 공직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공직과 싸워 시간을 얻었고 아버지로서 아들과 싸워가며 시간을 쟁취했으며 노인으로서 생로병사의 허무와 남은 시간이 얼마 안 안된다는 강박관념과 싸워 시간을 얻어냈다. 이제 그는 자신에게 남은 모든 시간을, 시간을 아껴쓰고 연구하는 데에 바친다.
부디 그의 1나노초(10억분의 1초)가 1대겁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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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성석제가 쓴 자기소개
- 1960년 7월 5일, 미명에 태어났다고함.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근무 중, 증조부를 여의고 난 후 귀향,읍내 시장에 서민금융(시장상인들을 상대로 한 신용조합의 일종)을 운영하는 한편 농사도 지었음.
- 조부모, 종조모, 부모, 고모셋, 삼촌, 아홉 살 위인 형, 여섯 살 위인 큰 누이, 세 살 위인 작은 누이,머슴까지 합해 열세 명이 밥상에 둘러앉는 대가족. 3년 후남동생, 또 3년 후 여동생이 태어나 최고 15명분의 수저를 밥상에 놓아야 했음. 따라서 밥상이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저절로,확실히 깨닫게 되고
밥상을 연모하는 마음을 평생 가지게 됨.
- 스무 살 때까지 편식. 물고기,뭍고기를 먹지 않는 식성이어서 반드시 그것을 먹어야만 하는 다른 식구들에게 우호적인 대우를 받음. 최초로 돼지갈비를 먹은 것은 군대시절 휴가 때로 '야,이 놈들이 이렇게 맛있는 걸 저희끼리만 처먹고 살았구나.' 하고 바글바글한 옆자리 손님들에게 눈을 부릅뜬 적이 있음.
- 67년 국민학교 입학. 여리고 청초한 처녀를 담임선생으로 맞아 사모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함. 그해 겨울 선생은 결혼식을 한다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음. 그때 딴 녀석들은 수업시간이 줄어들어서 좋다고 책상에 뛰어오르는 등 광란을 하며 환호했는데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길, 십릿 길을 울면서걸었음. 다시는 여선생을 사랑하지 않으리라 결심.
- 2학년 때 담임선생은 여성은 여성이었으되 영국의 대처 수상을 연상케 하는 강철 같은 의지와 철권의 소유자. 감히 딴 마음을 품을 수 없어서 책으로 관심을 돌림.
집에 있던 책들은 옥루몽, 금병매,수호전, 연산군 같은 소설에 그림으로 보는 이야기 성서(이야기로 읽는 그림 성서였나?), 축산전서, 정체불명의 일본 추리소설, [사랑이 메아리 칠 때] 같은 저자 불명의 연애소설, 경향잡지(가톨릭 교회에서 간행하는잡지) 따위. 그걸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하다보니 학교에서 보고 배우는 이야기는 한 마디로 우스웠음. 따라서 학교에서 내내 실실 웃고 지냄.
- 3학년 때 {아라비안나이트}와 세익스피어의 {햄릿}, 중고등학생용 자유교양신서를 만남.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각 백번은 읽어 독서백편의자현이라는 말뜻을 체득하게 됨.
- 4학년 때 백일장에 나가 [노을]이라는
제목으로 '노을을 보면 시집 간 누나가 생각난다'는 요지의 거짓말을 주워 섬겨대 당선있는 가작 상을 받음. 그때 누나는 고등학생으로 시집은 십 년후에나 고려할 나이였음. 그 다음부터 갖가지 백일장에 반 대표, 학년 대표,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됨. 거짓말 선수가 됐음.
- 6학년 때 대학에 다니던 형이 군대 갔다가 사망. 온집안의 기대를 모으고 있던 형의 죽음으로 졸지에 장남이 됐고 무관심 속에서누리던 은일과 평화의 시대는 종막을 고함.
- 교내 폭력의 전성기에 거의 한 대도 맞지 않고 국민학교를 졸업. 졸업식 때 받은 상은 육성회장상인데 부상은 주판.
- 73년 아버지와 형이 졸업한 중학교로 진학, 자전거로 통학했음. 한없이 긴 방죽을 따라 등교를 하다 보면 스스로 한심하고 슬퍼지는 때가 많았음. 여름에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 조부모와 나만 커다란 시골집에 남게 됨.
담임 선생과 세계관이 맞지 않아 불화, 도서실에서 책을 훔쳐나오다 적발된 이후 학교에 가기가 싫어 시냇가에 앉아 혼자 가르치고 혼자 배우는 시간을 보냈음. 그때 공책을 찢어 띄워보낸 종이배는 지금 어디에서 항해를 멈추었는지.
- 2학년 봄에 서울로 전학. 말이 서울이지 구로공단의 배후지인 가리봉동이라는 변두리 동네는 수채가 질질 흐르고 비닐조각에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가운데 산업전사들이 사단급, 군단급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지옥같은 수용소였음.
- 독서실이라는 해방구에서 변두리 동네 사춘기 소년들이 즐기는 갖은 장난을 다 배우고 익힘. 여자 목욕탕을 들여다보다 불때는 할아버지에게 잡혀서 머리에서 예배당 종소리가 나도록 맞았음. 복수를 위해 세 번을 더 떼지어 출격했으나처음처럼 많은, 아리따운 여인들을 볼 수는 없었음. '나는 봤다!'고 목욕탕 벽에 낙서를 하는 것으로 복수를 마무리.
- 76년 2월 중학교 졸업. 지옥구 졸업. 뺑뺑이(추첨)로 혜화동의 경신고등학교로 진학.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은사(주호수 선생)을 만남. 매타작 전문가인 선생의 덕분으로 문예반에 들고 교지 편집이라는 걸 하고 1년 만에 문예반을 탈퇴하고 바둑도 두고 술도 마시고 선생이 압수해 집안에 쌓아둔 무협지도 읽고. 어릴 읽어둔 책들이 드디어 진가를 발휘, 40대의 성인과 대등한 사고를 하는 이상한 고등학생이 되는 데 성공하여 선생한테서는 한대도 맞지 않았음.
- 연세대에 진학(정법계열).후에 법학으로 전공을 정함. 법학을 전공으로 한 것은 고시생들이 많아 출석을 잘 부르지 않는다는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
- 기형도라는 인간을 만나 그가 나가는 사교 집단 연세문학회에 들어감. 교주는 문학이었고 교주 권한 대행은 술, 주정, 성원근(작고시인)의 철권, 시합평회의 난도질 등등. 성원근에게 한대도 맞지 않고 무사히 군대로 감.
- 군대 시절 벗들과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글의 위대함에 대해 눈을 뜸.
파블로 네루다(칠레의 시인), [창작과 비평] 영인본,[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미술의 역사], [음악의 역사], [철학사], [전쟁사], [역사란 무엇인가]를 접함.
- 84년 복학. 기형도의 인도로 교내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주관하는 [윤동주 문학상]
(시 부문)에 응모. 당선 있는 가작으로 입선.
- 85년 독자적으로 다채로운 영역을 개척하던 끝에 시, 소설, 희곡,3부문에 응모. 당연히 당선될 줄 알았던 (그 전해 당선자가 졸업했으니까) 윤동주문학상에서 낙선. 그때 심사위원은 정현종. 희곡은 당선작 없음으로 낙선. 심사위원은 오태석. 소설([박영준 문학상])이 가작 없는 당선으로 간신히 체면 유지. 심사위원은 잘 기억나지 않음.
- 86년 6월 월간 {문학사상}의 신인발굴에 시 [유리닦는 사람] 외 4편으로 등단.
졸업 후 출판사인 현암사에 취직.
- 11월 출판사 사직하고 제주-해남-상주로 이어지는 순례 시작.
6개월 정도 절에서 생활(절 생활은 종교문제 때문이 아니라 식성 때문임).
- 87년 겨울, 동양시멘트라는 회사에 취직. 홍보 일을 봄.
- 88년 5월 결혼. 현재 1남1녀.
- 91년 그동안 발표한 시를 모아 첫시집 {낯선 길에 묻다}(민음사)를 냄. 판매 실적 저조.
- 93년 8월 해마다 거듭된 시도 끝에 직장을 그만두는 데 성공. 주특기인 놀기에 탐닉, 마냥 신나게 먹고 놀았음.
- 94년 여름, 편서풍과 북태평양 고기압의 대결장이 된 서울 신림동 산자락 하숙집에서
악전고투 끝에 시도 소설도 산문도 아닌 이상한 글을, 미욱스럽게 책 한 권 분량이나 쓰게 됨.
그해 겨울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민음사)로 펴냄. 판매실적 저조.
- 95년 1월 산문집 {위대한 거짓말}(문예마당)을 냄. 물어보나마나 판매 실적 저조.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를 발표함으로써 소설가 행세를 하게 됨. 단편 [금과 은의 왈츠],단편 [첫사랑], 단편[이른 봄]을 발표하는 한편
장편 {왕을 찾아서}를 흑심을 가지고 씀.
- 96년 2월 {왕을 찾아서}(웅진출판)드디어 출간. 그러나 또 판매실적 저조.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 되면? 모르겠다.
6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침. 성한 왼쪽 다리도 노리는 인간들이 많은 세상에서 힘겹게 살고있음. 낫기만 하면 손보아줄 인간들 역시 많은 세상에서 야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
- 단편 [새가 되었네], [황금의나날], 중편 [스승들]을 보태 96년 7월 첫 창작집
{새가 되었네}(도서출판 강)를 펴냄. 판매실적은 말하지 않겠음.
- 중편 [어린 도둑과 40마리의 염소]('96 문예중앙 가을) 발표.
계간 {리뷰}에 장편 {왕의 인생} 연재 시작.
- 97년 1월 짧은 소설(꽁트,자유단편, 엽편소설이라는 장르와 비슷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서 뭐라고 이름붙이기 힘든 내 멋대로의 팬서비스)을 모은 {재미나는 인생}(도서출판 강) 출간.
- 단편 [조동관 약전], [경두],[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이인실],
[통속], [유랑], [고수], [칠십년대식 철갑],[비밀스럽고 화려한 쌍곡선의 세계]
등을 사방에 발표.
- 97년 5월부터 7월까지 PC통신 하이텔에 장편 [궁전의 새] 연재
- 97년 6월 두 번째 창작집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민음사)를 출간.
판매실적 점차 호전.
- 가을에 단편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음(공동 수상).
- 최근작으로는 단편 [붐빔과 텅빔], [소설 쓰는 인간].
- 현재 원고노동자, 사과나무에 반한 자, 막걸리 잔에서 복숭아꽃 피기를 기다리는 자 등 스무 개 정도의 직업 내지는 직함을 가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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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마시는 막걸리는 밥이면서 사직社稷의 신에게 바치는 헌주였다. 힘의 근원이고 낙천樂天의 뼈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자신을 알아볼 것이라고 한 말에서 유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여튼 그는 목이 멘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이유를 모른다. 우리는 이유 같은 건 모르고 산다고 말했다. 말하면서 맥주병을 내치려 깨뜨리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어느날 윤호는 고등학교 시절 통학하다 기찻간에서 사귀었다는 오종종한 처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섰다
간통이라는게 친고죄 이고,복역중에 세금포탈, 전치 2주는 성한사람도 끊을 수 있다는 게 지역의 통설이다
모든 일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고 사람 사이의 일은 사람이 못 풀 일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오래는 풀고 상처는 치료하고 감정은 씻으면 그만이다
이윽고 그 함성은“좆,좆,좆” 하는 말로 통일이 되어 부두목의 움직이는 귀의 귓바퀴를 통해 부두목의 외이도에 도달한다. 이윽고 고막을 진동한 소리는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로 이루어진 세 개의 이소막을 진동한 소리는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로 이루어진 세 개의 이소골을 거쳐 달팽이관의 난원창卵圓窓에 전달되고 음압이 20배로 상승한다. 달팽이관에서 나사 모양으로 돌며 기저막 위의 청세포에 전달된 소리는 청세포를 흥분시켜 신경으로 임펄스를 발사한다. 달팽이관 신경을 따라 들어간 임펄스는 연수延髓에 들어가 연수의 올리브 핵, 중뇌의 하구下丘, 내측슬상체內側膝狀體에 의해서 시냅스 전달이 되고 대뇌피질 측두엽의 청각부에 이르러 드디어 청각이 발생한다
몇몇 사람에게서 서음書淫이라고 불리기는 해도 그는 나름대로 극한까지 가본 사람이다
내가 사직 당국의 중대한 오해를 받아서 팔자에 없이
천지에 미만한 안개가 냇물처럼 흘러들어 움막을 감싸안았다
그당시 남가이는 첫잠을 자고 난 누에처럼 우화羽化를 하려면 먼, 그저 흉하고 가련한 벌레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 일별一瞥에 눈앞이 캄캄해졌다면 좋았겠으나 아직까지 남가이는 미완성이었다
남선생은, 성이 남씨가 아니고 남쪽 출신도 아니니 이선생, 아니 저선생이라고 하자, 저선생이라지만 멧돼지猪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훗날 제2의 후각기관인 鋤骨鼻器官어여쁜 여학생의 귀감 같은 여학생이 있었지만
그는 그들이 생각할 겨를이 없도록 눈을 크게 뜨고 그들 각자의 눈 속을 응시함으로서 그들의 뇌 속에 순간적으로 도파민의 분수가 솟아나도록 만들었다
진정한 야쿠자의 오야붕은 전문분야의 학자와 대등한 수준으로 학문적인 토론을 할 수이 있다는 나의 노가리도 진도를 나가는 데 보탬이 되었는지 모른다
특히 나 같은 반거들충이를 가르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나 요세 멘스 중이야
책은 무엇인가. 엉뚱한 과학사이다. 책은 지성의 몰락이며 글쓰기의 유혹이다. 책은 중국 중세사회로의 여행. 책은 중국 과학의 사상, 책은 사기(史記), 책은 인류 최후의 날이다. 책은 밤을 놓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지나 실학파의 정치 사상과 사회정치적 견해이고 독서술이며 동물의 미술이고 일본사와 동아시아 연표이다.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이며 생명의 기원이다. 육조단경六祖壇經인 책, 흥미있는 화학 이야기인 책, 팝리얼리즘인 책. 책은 권력과 지성이고 도연명 시집이지 엔트로피이다. 책은 천재의 정신병리의 발현이고 인간의 수상(手相)과 지문이자 표지가 떨어진 미학사전이다. 미국의 송어낚시에 요가,태고사 실크로드의 역사인 책,책,책, 책은 책에 담긴 모든 것이다. 재앙. 짐, 한 사람의 생의 자취, 모험, 여행, 유적이며 폐허 아니면 그저 책, 돈으로 삼억원, 종이로 팔면 몇십만원, 권수로 삼만권, 이게 다인가.
아무도 모른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형광등처럼 껌뻑껌뻑 명멸하더니 얇고 네모진 심연 앞에 쭈그리고 앉은 나를 환하게 밝혀왔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사는 가운데 비범하게 유지된다고 현자들은 말한다. ~~그역시 평범한 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모든 평범이 비범으로 변했다.
민주화의 대세와 방법론, 군산복합체의 동향 따위에 관해 기약도 없이 떠들어 대곤 했다.//알퐁스 도데
노름에서지지 않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소개하자면, 노름을 하지 않는 것이다.//이기고 싶어하는 마음 호승심(好勝心)
내가 적게건 판에서는 동점이 났고 크게 건 판에서는 블랙잭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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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서로 고무찬양 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 조성일 기자]
▲ 최근 <대한민국사(史)> 세 번째 책을 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 역사 교양 베스트셀러 <대한민국사(史)>(한겨레신문사) 세 번째 책을 낸 한홍구 교수(47. 성공회대)의 오지랖 넓음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지승호의 <마주치다 눈뜨다>(그린비)에 묘사된 그의 오지랖은 "학교 수업이 끝난 밤 10시20분에야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그 인터뷰가 끝난 밤 1시가 되어서도 정리할 원고가 있어 연구실에 남"아야 할 정도다.
그런데 그는 지금이 지승호와의 인터뷰 때보다 더 바쁘다고 했다.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인터뷰 시간과 장소를 정할 수 있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15분 전 전화로 다시 연락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밤 10시가 아닌 낮 3시경에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쇄하고 남는다.
인터뷰 약속을 위해 일전에 전화를 넣자 지금 올 수 있느냐고 할 정도로 스케줄 사이사이 짬을 활용해야 하는 그.
운동권에서 한때 '새끼 명망가'였던 그가 "가끔 허벅지를 꼬집어 꿈인지 생시인지를 확인해"봐야 하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약속 장소 도착 15분 전에 전화를 걸어 달라던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날 그는 그곳에서 15분쯤 떨어진 국가정보원에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쓸거리를 만들어준다!
"우리사회는 날마다 희망과 반전의 무대입니다. '조선말 하는 일본놈'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때가 있었고,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이상한 버릇을 가진 이름도 모르던 육군 소장이 총칼로 정권을 잡아 18년이나 나라를 농단하고, 한때 내로라하는 민주투사들이 저렇게 처참하게 망가지고…. 참으로 우리 역사는 날로 새롭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사(史)> 1, 2권을 통해 '소설보다 재미있고, 영화보다 짜릿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한홍구는 이번 3권에서도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이번 책에서 그는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라는 부제에 걸맞게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변절과 변질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보고,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과거청산문제, 2003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대통령 탄핵사태, 권력에 의해 조작된 간첩 사건, 최근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군대와 병역 문제를 정면으로 짚는다.
그의 <대한민국사(史)>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연재물을 묶은 것이다. 그는 2001년, 2002년 꼬박 두 해 격주로 연재하다가 중단했다. 자신의 원고를 담당하던 기자가 편집장이 되어 다시 강권(?)하자, 하는 수 없이 수락, 3주에 한번씩 연재하길 벌써 1년이 되었다고 했다.
"사실 너무 힘들어서 연재를 중단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마감을 못 지키는 악성필자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감 때가 되면 담당기자로부터 원고 달라는 독촉전화가 오는데, 특히 편집디자이너가 원고 언제 줄 거냐고 전화를 걸어오면 부담이 됩니다. 저 때문에 디자이너가 야근을 해야 되잖아요."
한홍구는 쓸거리는 늘 넘쳐난다고 했다. 쓸거리가 없을 때를 대비해 항상 쓸 준비가 되어있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김일성과 민생단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아껴두고 있지만 그다지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은 언제나 쓸거리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386들이여! 사회가 부여한 상징성만큼 역할을 하라!"
'악성필자'의 명성에 걸맞게 언제나 마감에 쫓겨 원고를 쓰다보니 그에게는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386 형님들에게 친구 유시민을 말하다'는 문제(?)의 글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 글이 발표되자 인터넷을 한바탕 뜨겁게 달구었고, 강준만 교수까지 그의 잡지 <인물과 사상>에서 비판글을 실을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이런 비판들에 대한 그의 입장을 들어봤다.
"문제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감에 쫓겨 글을 쓴 탓에 오해가 커진 느낌도 듭니다. 제가 그 글에서 얘기하려고 했던 의도는 친구 유시민을 변호하려 한 것이 아니라 386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급하게 글을 쓰다보니 유시민에 관한 이야기가 과도하게 들어갔고, 그 원고를 다시 수정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잡지사에 넘겨야 했었습니다."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의 주인공답게 유시민이 2002년 여름 "바리케이드 앞에 화염병을 들고 다시 서는 심정"으로 날렸던 또 하나의 격문을 평가한다는 한홍구는 그러나 이라크 파병에 찬성한 유시민의 생각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유시민이 적어도 386들로부터는 "싸가지 없고, 독불장군이고, 독선적이고, 말을 함부로 하고,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하는 식의 비난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대신 그는 "학생운동의 역사로 볼 때 세대로서의 386은 너무 웃자랐다"며 386들에게 "사회가 부여한 상징성만큼 역할을 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그는 "유시민과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 386"에게 오지혜가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에서 윤민석에게 했던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제발 철들지 말고 살라고….
그의 386에 대한 비판은 "도저히 '뉴'를 붙일 수 없는 낡은 모델"인 '뉴 라이트'에 대해서도 가해졌다.
"그들은 왼쪽으로 치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지금은 오른쪽으로 치달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들이 각광받는 것을 보면서 서글퍼지는 것은 그들이 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설치는 바람에 진짜 합리적인 보수세력 출현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뉴 라이트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주체사상식으로 말하면 품성의 문제이고, 우리의 일상의 말로 바꾼다면 '싸가지' 문제일 뿐이다."
"기회 되면 <김일성 평전> 쓰고 싶다!"
내친김에 정형근 의원이 김승규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그를 '김일성 찬양론자'라고 했던 주장에 대한 입장도 들어봤다.
한홍구는 누구인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홍구는 <한국사시민강좌>로 유명한 출판사 ‘일조각’집 넷째이다. 늘 책 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그는 어려서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열 살 무렵부터 생각했던 역사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대 국사학과에 들어갔다.
유시민 의원과 친구 사이인 그는 대학시절 운동을 하기도 했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에 유학했다.
강연회에 나갈 때면 으레 듣게 되는 ‘김일성 가짜 여부’에 대한 질문에 자극받아 김일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성공회대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사이버NGO 자료관장을 맡고 있다.
오지랖 넓기로 유명한 그가 현재 관여하는 일은 베트남 진실위원회 집행위원을 비롯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 집행위원장,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 등이다.
낸 책으로는 '한겨레 21'에 연재하면서 골수팬을 확보한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묶은 <대한민국사(史)> 1, 2, 3권이 있다.
조성일 기자
"솔직히 제 글을 읽지도 않고 하는 비판에 대해 코멘트 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 의원은 제가 '김일성을 민족의 영웅으로 찬양했다'는 식으로 주장했는데,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글의 논지는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1980년대 후반 현대사 강의 자리에 서면 박정희 얘기를 하든 학생운동사를 강의하듯 으레 받게 되는 질문 "김일성이 진짜예요, 가짜예요?" 때문에 아예 김일성 연구자(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상처받은 민족주의 : 민생단 사건과 김일성>)가 되었다는 그는 김일성은 "공산주의자였지만, 또한 민족주의자였다"면서, "20세기형 지도자"로 평가했다. '김일성이 20세기형 지도자'란 평가는 김일성이 21세기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의미이며, 나아가 현재적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 정리하려는 의도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며, 그것은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한홍구는 한반도의 분단 극복을 위해서 "남과 북이 서로 고무하고 찬양하자"고 했다. 박정희와 김일성에 대한 비판은 남과 북 각각의 자기 몫으로 두고, 대신 남은 김일성의 긍정적인 면을, 북은 박정희의 긍정적인 면을 서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또한 한홍구는 "김일성은 민족의 태양일 수는 없지만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을 인정해야 하고, 기회가 된다면 <김일성 평전>을 쓰고 싶다고도 했다.
"역사는 자기 눈으로 보자!"
총기사건이 터지자 그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 일이 또 자신의 일이 되면 안 되는데 하는 심정에서였단다. 총기사건이 나던 그날도 그는 평화박물관에서 미리 예정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젖혀두고 텔레비전 토론자로 나가야할 만큼 몸이 열개라도 부족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했다.
군대문제에 대해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길 원하면서 그는 국회의원이 10명'씩'이나 있는 민주노동당에서 노동문제만큼은 아니더라도 군대문제에 관심을 좀 가져주길 바란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모병제보다 징병제가 낫다고 생각하는 그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은 군대가 하지만 전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민간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평화박물관 건립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7월27일 저녁 7시30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후원의 밤 행사 '춤추는 평화' 소식만은 꼭 써달라고 기자에게 청탁(?)했다. 1994년부터 정신대할머니 돕기 공연을 해오고 있는 홍순관이 공연하는 이날 행사에는 KBS국악관현악단도 나오고, 장사익씨도 나오고, 시인 도종환씨도 특별출연한다며 그는 볼거리도 많으니 많이들 와서 적극적으로 후원해달라고 했다.(자세한 내용은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홈페이지 www.peacemuseum.or.kr 참조).
그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이 또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복지문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보는 것이 그것이다. 이젠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인권과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라며 '인권 없는 인권활동가'라는 형용모순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고 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누가 뭐래도 오지랖 넓은 그의 본업은 역사학자가 아닐까? 그래서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는 그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물으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늘 한결같이 주장하지만 역사는 자기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자는 민족주의, 유물론자는 유물론 등 다양한 입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각자가 자기의 눈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래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조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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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인간의 힘」
강연일시 : 2004년 9월 3일(금) 19:00 ~ 20:30
초대손님 : 소설가 성석제, 비평가 하응백
질의·응답
- 본강연 -
김원일 안녕하십니까. "금요일의 문학이야기" 제2기 강좌를 시작하는 첫 시간입니다. 오늘은 소설가 성석제 선생과 함께「인간의 힘」이라는 장편소설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또 한 분 초대 손님으로 비평가 하응백 선생이 함께 해주었습니다.
작가 성석제 선생은 1960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하여 연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시로 문단에 데뷔했다가 소설로 전향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인간의 힘」이란 작품은 작년에 여러 문학상 본선후보로 심사 대상에 올랐던 작품입니다. 그 때 심사하는 과정에서 저 역시 이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만, 작년에 발표된 우리 나라 소설 가운데 가장 힘있고 우수한 소설이라는 정평을 얻고 있는 작품입니다.
비평을 맡아주실 하응백 선생은 1961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경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현재는「휴먼&북스」라는 출판사 대표로 있으며 소설과 시 분야에서 비평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를 위해서 「인간의 힘」이라는 소설을 두 번째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시대에 우리가 주인공 '채동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와 해학과 풍자소설의 방향, 성석제 선생이 쓰고 있는 문장의 해학성 등을 한번 점검해봐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이 소설은 400년 전 봉건군주시대의 이야기인데 임금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이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를 따져보니까 어떤 숭모정신이라고 해야 할지, 북한 체제가 갑자기 떠올라서 이런 것과 아울러 인간의 신격화를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사상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는데, 조선 500년이 사실 유학을 받아들여서 유학정신, 그 중에서도 특히 주자학 정신에 의해서 500년 동안 이끌어져 왔습니다. 우리와 달리 일본 같은 경우는 유학 중 양명학을 받아들였죠. 실제로 주자학은 실천에는 미흡하고 이론과 예(禮)에 밝은 반면에 양명학은 언행일치 주장을 강조했습니다. 일본은 양명학에 기초하여 명치유신을 통해 강대국으로 설 수 있었고 우리는 사소한 문제를 두고 논쟁만 일삼다 열강의 침략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역사소설의 정통성에 대한 이해의 문제이기도 한데요.「인간의 힘」은 역사소설이면서 새로운 역사소설의 형태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은 상당히 귀하게 여겨지는데 이 점에 대해서도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우선 비평가 하응백 선생께서 「인간의 힘」을 읽고 느낀 점을 간략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교직되어 있는 작품>
하응백 반갑습니다. 저는 성석제 작가와 나이도 비슷하고 학번도 같고 또 지역도 비슷하고 해서 긴 시간 교유하며 지내는 사이입니다. 성석제씨가 소설에서도 워낙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는데 평상시에도 이야기를 잘 만들어냅니다. 처음에 이 소설을 읽을 때 이 탁월한 ‘이야기꾼’에게 속아넘어가지 않으려고 상당히 긴장했습니다. 보르헤스라는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그 속에, 인용되는 책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인용되는 책들을 찾아보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책들이죠. 우리 나라 소설 중에서도 최윤의「회색 눈사람」을 읽다보면 책이름이 하나 나오는데 그 책을 찾으려고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못 찾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부재 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런 기법을 쓰는 작가들이 종종 있기 때문에 어떤 책을 인용했다 그러면 그 책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서문에 나와 있는 「오봉선생 실기」라는 책부터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국립도서관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까 실제 있어서 복사를 했습니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이야기한 것과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교직 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우선 그것부터 짚고 넘어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석제 작가에게 소설적 진실과, 상상이라는 허구와,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병치시키고 교체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그렇게 함으로써 노린 효과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10%의 진실로 출발한 이야기>
성석제 참 어려운 질문인데요. 소설가로서 갈등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나 자신의 정직성에서 어긋나지 않는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 가치에 맞출 수 있을 것인가를 종종 고민하게 됩니다. 대개는 소설을 쓰는 중에 그런 갈등을 경험하는데 쓰고 난 뒤에는 방금 하응백 선생이 '사기'라고 표현한 쪽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소설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 보면 약 90%의 거짓에 10%의 진실이 있지 않은가, 심한 경우에는 그 정도에도 못 미칠 수도 있죠. 제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이 책의 서문에도 밝힌 바 있지만, 소설이라는 것을 쓰기 전인데요. 한번은 제사를 지내러 고향에 갔다가 시골에 계신 분으로부터, 자기 집안의 조상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 것을 우연히 접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책의 내용이 너무나 소략했고 그나마 반은 한문이고 한글로 된 부분 역시 반은 남이 쓴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행적은 전문(傳聞)으로만 있는 거죠. 문집이라는 말을 붙이지 못한 이유는 그 사람이 직접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글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대구 경북 지역의 시골 양반들 주변에는 실기(實記)라는 형태의 문집이 더러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양반이라는 것이 삼대를 벼슬을 못하면 양반이 아니고 삼대 동안 그 집안에서 문집이 안 나오면 그 역시 양반이 아니라 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삼대 안에 문집을 한 번 내거나 벼슬을 지내야 되는 것이었죠. 그런 경우에 형식을 맞추기 위해서 문집을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분의 경우는 벼슬을 지냈다고는 하지만 그것마저 불확실한 상태였습니다. 아마도 유명한 분들의 문집이었다면 저도 소설로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소략하고 문집에 비해서 격이 떨어지는 실기의 형태였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말하자면 그것이 소설로 쓰여지는 10%의 진실이었던 셈이죠. 처음에는 길게 쓸 생각은 없었고 문집의 뼈대가 되는 이야기 하나만 골라서 중편 정도로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100매 정도를 썼는데도 이야기가 시작이 안 돼서 중편으로는 곤란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유쾌한 소설 쓰기의 시작, 문장의 해학성과 주제의 풍자성>
김원일 외국에 나가면 한국 작가들이 많이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번역되어 있는 한국 소설을 읽었을 때 소설이 전부 다 너무 심각하고 어둡다는 것입니다. 소설이란 게 마치 원한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쓰는 글 같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거기에 대한 설명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었죠. 한국이 일제 식민지하와 해방공간을 겪고나서 동서냉전 최초로 전쟁도 치르고, 분단이 되고, 또 군사정권 아래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작가들이 쓰지 않을 수 없었지 않습니까? 그렇게 대답했더니 그쪽에서 묻는 질문이, 좀 밝고 명랑한 소설, 유쾌한 소설을 추천해달라는 거예요. 그게 뭐냐고 물으니까, 서구는 이미 2차대전이 끝난 뒤 오랜 평화시대를 구가해왔고, 굶주림과 전쟁 따위의 어두운 과거를 망각한 세대가 전면에 부각했다. 금요일에 오전 근무 마치고 책 한 권 사들고 집에 들어오면 침대에서 뒹굴며 읽다가 재미있어서 배를 잡고 웃을 수 있는, 다 읽고 나면 유쾌하게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소설을 선호한다고 그래요. 그런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서구는 예전에 이미 산업화 과정을 다 겪었고 안정된 시대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까 어둡고 절망적인 소설을 굳이 읽으며 고문을 받듯 심각해지기 싫어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7, 8년 전인데, 그 때는 아직 성석제라는 소설가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전이었지요. 성석제 선생이 나타난 것에 대해서 저는 김유정과 채만식 이후, 아마도 최초의 풍자 작가 혹은 해학 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보여집니다. 사실 우리 같은 전쟁세대는 워낙 배고프고 암울하게 성장했기에 그런 소설밖에 쓸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배고픔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나오니까 이런 소설도 나오게 되는구나, 이제 우리도 그런 시대로 접어들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죠.
성석제 선생의 또 다른 작품집이 있죠.「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역시 읽어보면 문장 자체도 유머러스하고 주인공의 행위나 말에 대해 계속적으로 웃음이 나와요. 그러나 실제로 황만근이라는 주인공은 참으로 순박하고 어리석은 인물이어서 그 사람 자체가 웃기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사람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이상하게도 감동으로 다가오죠. 저는 「인간의 힘」에 나오는 주인공도 읽었을 때 어딘지 모르게 ‘돈키호테’를 연상했습니다. ‘명선’이라는 등장인물 역시 ‘산초’같이 약간 어리석죠. 그런 명선이가 죽었을 때 이상하게도 슬펐어요. 실제로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는 서구에서 현대문학의 시조로 꼽히는 소설이고, 스페인이 서구문학 변방라는 그렇지, 서구 현대소설의 출발은「돈키호테」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겠어요. 「인간의 힘」역시 채동구라는 한 인간이 나라가 도탄에 빠지자 임금을 알현하기 위해서 네 차례에 걸쳐 출타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행동이 굉장히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이죠. 우리 나라 역사소설이 이광수, 박종화, 윤백남 같은 작가들로 거쳐 내려오며 처음에는 왕조사(王朝史) 중심으로 소설이 쓰여지다가 「장길산」이라든지 「객주』등의 작품에 이르러 민중사(民衆史)로 넘어오지 않았습니까. 왕조사는 이미 알려진 궁중기록의 산물이고, 이름 없는 초야의 민중들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한 시대의 질곡을 어떻게 넘겨왔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70년대로 넘어서며 만들어진 것이죠. 거기에는 일제 때 쓰여진 홍명희의 「임꺽정」의 성공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다가 「인간의 힘」에 와서는 이제 역사 속에 존재하는 한 개인, 그것도 약간은 삐딱하고 괴팍한 개인을 등장시켜 그 시대의 역사를 조명해본다는 측면에서도 「인간의 힘」은 앞으로도 거론이 될 소설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석제 선생이 데뷔할 때부터 강렬하게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작가가 가지고 있는 문장의 해학성과 주제의 풍자성 때문이거든요. 그런 것을 잘 보여주니까 읽는 사람이 마치 ‘사기 당하는’ 기분이 든다는 거지요. 우리 나라에 번역되기를 「사기사 펠릭스 크룰의 고백」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토마스 만이 말년에 쓴 장편소설입니다.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사기사’라는 것은 ‘영혼의 매혹자’라는 말을 잘못 번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기꾼들은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켜 사람을 정신없이 빨려들게 만들지 않습니까? 그 점을 두고 토마스 만은 마술사라는 직업을 그 유형으로 봤지요. 마술사는 한순간에 아주 감쪽같이 사람의 눈을 속이는데 그것을 보는 사람은 전혀 모르잖아요.「인간의 힘」을 읽다 보면 채동구라는 인물이 아주 허술한 대도 빨려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형상화해 놓았거던요. 어디까지가 실체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 모호합니다. 해학적으로 그려진 채동구라는 인물은 재력도 학문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오직 우국충정 하나로 무작정 임금을 뵈려 출발합니다. 마치 돈키호테처럼. 저는 이런 해학성이 성석제라는 작가에 와서야 발견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 하응백 선생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풍자의 대상과 독자가 함께 연민을 느끼도록 만드는 풍자>
하응백 저도 그 점에 대해 생각해봤는데요. 우리가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거대서사에 압도당한 듯한 느낌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를 피해보려는 경향이 생겨났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식상했다는 측면도 있구요. 여러 가지 시대 변화에 맞추어서 거대서사, 민족단위의 문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적인 몸부림도 있었고 또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런 경향이 생긴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럴 때 과연 후배 작가들의 글쓰기 전략은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누구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저희들 세대만 해도 경험들이 다 비슷합니다. 대학 나오고 군대 갔다 오고 혹은 한 두 번 연애하다 실패하고 직장 잡으려다가 한 두 번 또 실패하고, 다 그렇게 사는 거죠. 김원일 선생님 세대만 해도 6·25 때의 곡진한 삶이나 핍진한 삶들이 있지 않습니까? 삶은 아주 어려웠지만 작가로서는 행운의 세대라고 볼 수 있죠. 저희들 세대 이후의 세대는 오히려 삶은 편하지만 작가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세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럴 때 90년대 후반 이후의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모든 작가들의 굉장한 고민일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성석제씨가 나아가는 방향이 우리의 고전적인 문장들,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배웠던 가전체 소설의 형식, 여러 가지 한문의 형식, 이런 것을 우리 서사에 도입해서 서사의 다양성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재미’라는 양식을 소설 속에 의도적으로 끌어들여 온 것 같아요. 원래 풍자라는 양식은 작가가 작품을 읽는 독자와 함께 짜고서 주인공을 놀려먹는 거예요. 그래서 채만식의 소설도 그렇지만 그 대상이 대개 힘있는 자, 정치가, 가진 자 등을 풍자의 대상으로 놓습니다. 그럼으로써 통쾌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풍자죠. 그런데 성석제씨 소설에는 아주 색다른 점이 있다고 봅니다. '채동구'나 '황만근'처럼 풍자의 대상이 힘있는 자가 아니거든요. 가난한 자거나 아주 힘없고 바보 같은 농민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힘 없고 약한 자를 풍자의 대상으로 놓았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그 대상과 독자가 같이 연민을 느낄 수 있다는 거죠. 그것이 성석제 소설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제가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이 소설 속의 주인공 채동구를 보면 이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양반인데 열심히 공부도 안 했죠. 과거를 볼 생각도 안 했고. 물론 농사를 지을 생각도 안 했죠. 어떻게 보면, 바보인 명선을 꼬드겨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서도 겁에 잔뜩 질리기만 한 겁쟁이였죠. 사실은 채동구가 실제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무작정 임금 찾아가서 벼슬을 얻어보고자 하는, 그야말로 파렴치한 인간일지도 모릅니다. 결국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기 쳐서 나중에 71세로 죽을 때까지 자손들에게 비석을 만들게 해서 대대로 사기를 치는 그런 인물로 볼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맹목적인 충성과 숭명대의, 과시적인 공리공론이 아니라 실천과 성의, 죽음을 무릅쓰고 인간된 그 무엇인가를 관철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의 소중함이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고 이야기 하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이런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파렴치한인데 작가는 왜 이렇게 보았는지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성석제 이 사람이 가장 인간다운 점은 성장해간다는 점입니다. 변화해가고. 목석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단계를 거쳐서 성숙돼 가는 점이 인간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런데 약점이 많죠. 어떤 때는 비겁하기도 합니다만. 인간이라는 게 완전하고 아름답고 정정당당한 그런 존재가 아니라 약점 많고 나약한 것, 그런 것들이 다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빼버리고 소설을 쓴다면 소설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원일 그런데 우리 나라 소설을 보면 인물 설정에 있어서 이분법적 성격에 이분법적 논리를 많이 적용하는 편이거든요? 예를 들면 노동자들은 다 가난하다라든지, 사용자는 노동자를 많이 착취한다라든지 하는 식의 이분법적인 논리 말이죠. 어떻게 보면 너무나 주인공들을 판에 박힌 인물로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개선이나 변화조차 없이 그 성격이 소설 끝날 때까지 일관되지요. 저 역시 매일같이 고민하는 문제이지만, 이제는 한국소설이 그러한 통속성을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찍이 도스트예프스키는 선한 인간의 개인 속에도 선과 악의 요소가 서로 상충을 일으키고, 한 인간 속에도 그 성격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변화가 많다고 얘기했어요.「아Q정전」의 주인공은 아주 기회주의적인 노동자입니다. 결국은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서 죽게 되지요. 가난한 자도 악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괴테 소설을 보면 부유하지만 교양 있고 선량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정치라든지 사회문제에 있어서도 자꾸만 흑백논리로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요. 한 개인 속에도 좌(左)적인 성향이 일부 있고 우(右)적인 성향이 일부 있는 겁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거죠. 때로 선과 악은 병행할 수도 있는 겁니다. 채동구는 그런 의미에서 인간을 이분법적 분류의 틀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좋게 보았습니다.
성석제 글을 쓰다보면 여러 가지의 청탁을 받곤 합니다. 그런데 칼럼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으면 거절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소설처럼 우회하고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거든요. 남을 설득할 자신도 없구요. 중요한 것은 설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소설을 통해서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감이라는 방식 때문인데, 공감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김원일 앞으로도 이런 역사소설을 쓸 계획이 있습니까?
성석제 예. 있습니다. 그런데 당장은 아니고 좀 쉬었다가 쓸 생각입니다.
하응백 저도 앞으로 성석제 소설가가 저를 항상 ‘긴장’하도록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원일 끝으로 청중 여러분의 소감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면 질문을 받고 오늘 이 시간 마치도록 하죠.
- 질의, 응답 -
문 : 아까 하응백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요즘 시대가 작가에게는 어떻게 보면 불행한 시대라고 하셨는데요. 혹시 그런 이유 때문에 성석제 선생님께서 고전에 천착하시고, 거기에서 어떤 서사거리를 발견하고 글을 쓰시는 건지 궁금하구요. 제가 생각할 때는 우리 세대도 나름대로 아주 어렵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문학이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면 작가가 고전에 의거해서 서사적인 단서를 가지고 글을 쓰는 행위보다는 동시대적인 것에 의거해서 글을 쓰는 행위가 미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문제에 대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
답 : 뭘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서 착안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한 고민을 하면서 착안하게 됐던 것 중의 하나가 역사소설, 혹은 근대사적인 것이었죠. 당대 현실을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해서 역사 속의 인물을 찾은 게 아니라 제가 생각하기에는 역사 속의 인물도 충분히 현재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문 : 「인간의 힘」이라는 소설을 쓰실 때 전체적인 구성을 어떻게 잡으신 건지 궁금하거든요? 각 장별로 요약을 해서 전체 아웃트 라인을 잡아서 서술하신 건지, 아니면 그때 그때마다 생각나시는대로 썼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것은 제목인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 제목이 소설의 내용과 그다지 어울린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답 : 이 작품을 쓸 때 처음에는 맨 앞과 뒤의 장면을 그려놓고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들어가는 것들은 재료가 좀 허술한 것 같아서 일단 보류해둔 편이구요. 그렇게 놔두고 일단은 이 인물에 마음이 가 있는 상황이어서 분량에 크게 욕심 내지 않고 되는대로 조금씩 썼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서서히 완성이 됐습니다. 그리고 제목은 원래 다른 제목으로 정했었는데 이렇게 바꾼 것이구요. 제가 생각하기에, 조선시대에는 인간을 지칭할 때 인간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근대에 와서 생긴 것 같은데요. 역사 속의 인물을 다루면서 '인간'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주인공에게 그만큼 근대적인 힘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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