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가닥 : 향나무야 멋져
난 머리를 깎기가 싫습니다.
교사로 발령을 받고 나서는 1년에 두 번 정도만 머리를 깎았습니다. 추석과 설, 명절을 맞아 고향 집에 갈 때였습니다. 머리를 단정하게 깎지 않고 집에 가면 부모님께 혼났습니다. 부모님은 짧고 단정한 머리를 좋아하셨고, 나는 덥수룩한 머리가 좋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덥수룩한 아들의 머리를 보셔야 했습니다. 마음에 들지는 않으셨겠지만 결혼하고 자식까지 둔 아들에게 더 이상 뭐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계속 머리를 길렀습니다. 그렇다고 포니테일을 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덥수룩하게 기르고 다녔습니다. 아마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똥장군을 맨 아저씨를 떠올리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길어지면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머리를 깎았습니다.
어느 날 보니 초등학생인 아들의 머리도 점점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늘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다니는 아빠를 보고 자라서인지 뒤에서 보면 여학생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깎으러 갔습니다. 그리고 아들도 함께 미용실에 갔습니다. 아들도 머리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유전일까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머리를 기르던 아들도 독립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드디어 마음껏 머리를 기를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웬걸.
머리가 숭숭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가늘어지고 쉽게 빠지는 머리카락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떠나버릴 것만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변화이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조금 씁쓸합니다.
“형님, 머리가 많이 빠지고 있어요. 하루가 다릅니다.”
“아직 막내가 고등학생인데! 막내 결혼할 때까지 우리 사수하자!”
형님은 얼마 남지 않은 머리라도 잘 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를 수도 없습니다. 길어지면 가늘고 휑한 머리가 금방 지저분해 보입니다. 한두 달에 한 번씩은 미용실을 가게 되었고, 덕분에 내가 좋아하던 덥수룩한 머리 스타일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습니다. 불과 1~2년 사이의 변화입니다.
머리카락이 더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오늘에 충실할 뿐입니다.
어지러운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귀여운 1학년 아이가 짧아진 머리를 보더니 살짝 말했습니다.
“교장선생님, 멋져요.”
미용실에 조금 더 자주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는 송엽국 뒤에 든든하게 서 있는 사철나무와 서편 울타리 앞 나무들의 전정 작업을 했습니다. 외부 업체가 들어와 잠깐 동안 학교 나무들의 머리를 깨끗하고 단정하게 다듬어 주었습니다. 사철나무만 조금 다듬었는데도 학교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화단 안쪽의 주인공인 향나무가 남았습니다. 삐죽삐죽한 향나무의 잎은 숱이 많던 시절 내 덥수룩한 머리를 닮았습니다. 자연스러운 모습도 좋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도 분명 보기 좋을 것입니다. 우리 귀염둥이 1학년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작업이 끝나면 향나무 곁에 가서 말해주어야겠습니다.
“향나무야, 멋져.”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조금씩 다듬어 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살아오던 모습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가끔은 한 걸음 물러나 나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조금 더 단정하고, 조금 더 단순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드니 머리도 예전처럼 빨리 자라지 않습니다. 머리를 자른 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방금 자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나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습니다.
걷는 속도도, 운전하는 속도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내 몸에 붙어 있는 모든 것들도 나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 느림보인 내가 빠르게 걷는 선생님들, 늘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 뒤처지지 않도록 오늘도 살펴보고, 오늘도 조금씩 노력해야겠습니다.
하하.
그런데 매일 여러 가닥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 걱정이 됩니다.
머리카락이 세 가닥 남으면 머리를 땋고, 두 가닥 남으면 반 가르마를 하고, 한 가닥 남으면 올백으로 넘긴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말 속에 담긴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마지막 한 가닥까지는 어떻게든 사수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마지막 한 가닥만 남더라도, 그때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6.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