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 나의 빈칸에 대하여
어제는 붕어빵을 굽지 못했습니다. 중간놀이 시간에 청어람 격려 방송이 있었고, 그 뒤에는 안중에서 손님 한 분이 학교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붕어빵을 굽더라도 중간놀이 시간에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없는 상황이어서 하루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교장실을 자주 찾는 한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와 붕어빵이 없는 것을 확인하더니 뻥튀기 몇 개를 집어 들고 나갔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붕어빵을 달라고 조르지 않습니다. 있으면 맛있게 먹고, 없으면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조금씩 나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붕어빵을 구워야 합니다. 늦어도 수요일에는 시작해야 이번 주 안에 반죽 한 통을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출근길에 생각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도 붕어빵 굽기였습니다. 오랜만에 찰붕어빵 반죽을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던 반죽입니다. 맛있게 먹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 교문 옆에 피어 있는 채송화를 사진으로 담고, 네모밭과 블루베리밭, 캠핑장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렇게 뒤뜰을 돌아 송엽국을 살피기 위해 놀이터 쪽으로 향하는데 수돗가 옆에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많은 물이 흘러나와 놀이터 옆에는 커다란 물길까지 생겨 있었습니다. 뭔가 큰일이 난 것이 분명했습니다.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시설주무관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주무관님은 아삭아삭채소밭에서 채소에 물을 주고 계셨습니다.
“주무관님, 수도가 터진 것 같습니다. 같이 가보셔야겠습니다.”
학교 시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주무관님과 함께 수돗가로 갔습니다. 펌프 뚜껑을 열고 밸브를 잠가 보았지만 물은 계속 흘러넘쳤습니다. 주무관님은 창고 근처의 다른 밸브를 잠갔습니다. 물줄기가 조금 약해지는 듯했지만 여전히 멈추지 않았습니다.
잠시 뒤 행정실장님이 오셨고, 외부 업체를 불러 배관 상태를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물이 언제부터 새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미 엄청난 양이 흘러나갔을 것입니다. 결국 포크레인으로 배관 주변을 넓게 파내 상황을 확인하고, 우선 문제가 생긴 배관을 막기로 했습니다. 며칠 뒤에는 다시 놀이터 수돗가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침부터 학교 시설 문제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목말라 보이는 송엽국에도 물을 조금밖에 주지 못했고, 1·2교시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오신 작가님께도 뒤늦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처리해야 할 공문도 많았고, 중간놀이 시간 전에 붕어빵도 넉넉히 구워야 했습니다. 참, 굿네이버스에 보내 드릴 사진도 찍어야 했습니다.
붕어빵을 굽는 중에도 수도배관 공사업자분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공사 방향을 정리한 뒤 다시 붕어빵 앞에 섰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정성껏 붕어빵을 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교감선생님께 부탁해 내가 붕어빵을 굽는 모습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중간놀이 시간에는 아이들이 교장실로 들어와 붕어빵을 가져가는 모습도 담았습니다.
나는 비닐장갑을 끼고 40분 동안 아이들에게 붕어빵을 나눠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드문드문 찾아왔지만 나는 의자에 앉아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중간놀이가 끝난 뒤에는 남은 붕어빵을 조금씩 나누어 관리사님과 교무실, 행정실에 전했습니다.
이제야 급한 일을 마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과 교감선생님이 찍어 준 사진, 그리고 단체방에 올라온 아이들의 붕어빵 사진을 골라 굿네이버스 사무국장님께 보냈습니다.
“사무국장님, 창신초 붕어빵 사진입니다. 평안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한참 뒤 답장이 왔습니다.
“교장선생님!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보니 더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본부회의 때문에 이제야 연락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교장선생님 존경드리고 앞으로도 저희와 쭉 함께해 주세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오늘 해야 할 일을 또 하나 마쳤습니다. 사무국장님 말씀처럼 앞으로도 굿네이버스와 오래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는 붕어빵 반죽을 보관할 수 있는 제법 큰 냉동고를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아이들에게 영양 가득한 붕어빵을 구워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굿네이버스와 함께하면서 말입니다.
오후에는 교감선생님, 주무관님과 함께 매실을 땄습니다. 매실청을 담그기 위해 통과 설탕까지 준비했지만 생각보다 수확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결국 시중에서 매실을 조금 더 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후의 날씨는 벌써 여름이었습니다.
오후 4시에는 체육관으로 가서 아이들과 생활체육을 끝으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차근차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일정표를 빈틈없이 채워 놓았는데,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모든 계획이 한순간에 흔들립니다. 해야 할 일이 많더라도 우선순위를 잘 판단해 가장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오늘은 수도배관 문제가 바로 그런 일이었습니다. 수도배관 공사는 깔끔하게 정리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무 일 없어 보이는 날일수록 학교를 한 바퀴씩 둘러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내 일정표는 빈틈없이 꽉 채우지 말고 중간중간에 빈칸을 남겨 두어야겠습니다.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여유를 두어야 다른 일이 덜 엉킬 수 있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내일도.......
감사합니다. 2026.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