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마 : 우리들의 월드컵
전교생이 체육관에 모였습니다. 오늘은 오전 10시부터 우리나라와 멕시코의 월드컵 축구 경기가 있는 날입니다. 통학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옷차림에는 빨간색이 많이 보였습니다. 어떤 친구는 빨간 모자를 쓰고 왔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응원하는 날입니다.
중요한 날이라 바로 체육관으로 가고 싶었지만 학교화단에서는 향나무 전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업체 직원들이 화단의 향나무를 하나씩 다듬고 있었습니다. 몇몇 분은 전동톱으로 나무 아래와 옆을 정리하고, 스카이차에 올라탄 분들은 높은 곳에서부터 가지를 정돈해 내려왔습니다. 전동톱 소리가 학교에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전정 작업은 하루 종일 이어질 예정이었습니다.
날은 무척 더웠고, 오늘은 우리나라의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일하시는 분들도 경기를 보고 싶으실 텐데......'
나는 마지막 통학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교문 옆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작업 구역으로 들어갈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화단 쪽으로 가지 않고 급식실 입구를 통해 교실로 올라갔습니다.
체육관은 어느새 커다란 영화관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어두운 체육관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는 축구 경기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빨간 응원봉을 흔들며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맨 앞에 앉은 유치원 아이들은 축구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전교생이 함께 체육관에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웠을 것입니다.
정보부장님께서 무대 한쪽에 사물북을 가져다 놓으셨습니다. 우리 학교 사물놀이 동아리 청어람의 상쇠 아이가 앞으로 나와 북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한민국!” 응원 박자였습니다. 얼마나 힘차게 치는지 사물북이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북소리에 맞춰 우리는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아이들은 경기 내용보다 응원 자체를 더 즐기고 있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쉬지 않고 응원했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컸고, 열기는 식을 줄 몰랐습니다.
전반전이 끝날 무렵 교장실에 들러 몇 가지 결재를 하고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물북 뒤로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한 친구가 북을 치며 응원을 이끌다가 힘이 들면 뒤에 줄 서 있던 친구가 앞으로 나와 다시 북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다음 친구가 이어받고, 또 그다음 친구가 이어받았습니다.
체육관에는 아이들의 북소리와 “대~한민국” 응원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습니다. 멕시코가 골을 넣어도 응원은 멈추지 않았고, 선수들이 물을 마시는 휴식 시간에도 응원은 계속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아이들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중꺾마.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오늘은 홈팀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아쉽게 졌지만 아직 경기는 남아 있습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만 있다면,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다음 경기에도, 또 그다음 경기에도 변함없이 응원을 이어갈 것입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말입니다.
우리 학교 체육관은 오늘 정말 커다란 영화관 같았습니다. 며칠 뒤에는 전교생이 함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로 되어 있는데, 오늘 보니 우리 학교에도 이렇게 훌륭한 영화관이 있었습니다. 내년에는 영화관을 따로 빌리지 않고 학교 체육관에서 시원하게 영화를 보며 맛있는 팝콘도 함께 먹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월드컵을 응원했던 때가 2002년이었으니 벌써 24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의 감동을 지금의 아이들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응원했던 기억, 그리고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었던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체육관을 가득 채웠던 아이들의 응원처럼, 우리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음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6.6.19.